5.
사진 동호회 모임에 처음 나갔던 날, 사실 모임에 나가지 않으려 했다. 상현이 자신이 가입한 사진 동호회에 함께 나가자고 자꾸 부추겼다. 괜찮은 취미생활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요즘 현대인들에게는 필수라며 귀찮게 했다. 그런 권유가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사교성이 좋다는 얘기는 듣지 못하며 자랐다. 사진 동호회라면 아무리 사진이 주가 되더라도 회원들과 어울리면서 인간관계도 맺어야 할 텐데 굳이 부족한 시간 내가면서 동호회 활동을 할 만큼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내 의사를 물어오는 상현에게 어물거리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다가 그냥 피해버리려 했었다.
모임이 있다는 당일 날, 일부러 당직을 자청했었는데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 당직이 아니라 외근을 나가게 되었다. 당직이든 외근이든 사진 모임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외근을 나간 곳이 하필 모임 장소 근처였고 외근 업무도 예상보다 일찍 끝나버렸다. 업무 보고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상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현에게서 오는 전화면 일단 받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응답을 주려고 했는데 그만 전화 두 통이 겹쳤다.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전화가 고향집에서 왔고 통화 중 전화가 끊어져서 다시 전화가 온 줄 알았는데 통화 버튼을 누르니까 상현이었다.
예상치 못한 전화에 미리 준비해뒀던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어디냐는 질문에 고스란히 있는 곳을 말해주고 말았다. 게다가 같이 외근을 나갔던 동료가 미리 업무 보고를 했던지 이곳 업무가 완료된 것까지 알고 있었다. 나가는 게 내키지 않았을 뿐이지 굳이 억지로 피하려 했던 게 아니었던 만큼 상황이 그렇게까지 진전되자 같이 가자고 해버렸다. 모임 장소가 버스로 가도 금방 도착하는 거리였다.
약속 장소에 나가서 상현을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이었다. 전부 사진을 찍으러 오는 건 아니었고 관광하러 오는 사람도 많이 보였다. 업무지에서 바로 오느라 사진기를 준비하지 못했는데 상현이 첫날인 만큼 사진 안 찍어도 좋으니까 모임 분위기만 보고 가라 했다. 오래 머무를 필요도 없다며. 별로 내키기 않은 채로 왔지만 오랜만에 산을 타니 숨통이 트이고 머릿속이 새로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씩 신선한 공기를 마셔줘야 한다는 게 다 이유가 있는 말이다. 사진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게 그리 나쁜 결정은 아니겠다 싶을 때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뚫어지게 쳐다보면 직관적으로 그걸 알아차리게 된다. 처음 고개를 돌렸을 땐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제각각 같이 동행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거나 산 속에 펼쳐진 풍경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괜한 생각을 했나 싶었는데 다시 그 느낌이 들자 이번엔 확실했다.
눈을 돌리니 세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배낭을 바짝 당겨서 어깨에 짊어진 중년 여자가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 건너 건너에 있던 홀쭉하게 키가 큰 남자는 내가 쳐다보는 것과 동시에 고개를 돌렸던 것인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가장 멀리에서 급하게 앞으로 향하던 여자가 보였다. 그 여자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앞모습을 정확히 보진 못했지만 아는 사람 같진 않았다. 왜 날 쳐다봤지? 혹시, ∙∙∙∙∙∙, 과거 사건에 연관된 사람이 날 알아본 건가?
경찰 업무를 하다 보면 그런 일이 가끔 생긴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수사를 하면서 워낙 이 사람, 저 사람 두루 거치다 보니 정말 큰 사건이 아니면 사건에 관련됐던 사람들의 얼굴을 금방 잊어버린다. 그렇지만 수사 과정을 겪은 당사자는 살면서 경찰 수사에 관련될 일이 흔하지 않아 담당했던 경찰관을 오랫동안 기억하곤 했다.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곤란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혹시 인사를 하면 어떻게 답해야 하나 미리 가정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그 여자의 시선을 느끼자 점점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혹시 수감자였나?
그냥 단순히 관련된 정도가 아니라 나 때문에 감옥까지 가야 했다면 그 앙금의 깊이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하려 애써도 지금까지 다뤘던 사건에서 여성 범죄자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성별의 특성 상 여성과 관련된 범죄는 주로 여수사관이 일임하는 게 통상적이고 업무와 관련해서 도움을 준 적이 있다고 해도 주도해서 수사에 임했던 사건 중에 여성 범죄자와 얽힌 사례가 기억나지 않았다.
또 힐끔거린다. 상현과 같이 올라가면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주의는 그 여자를 향했다. 상현은 일찌감치 어디가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을 위치인지 가늠하기 위해 부지런히 지형 탐색을 하고 있다. 산 정상에 다다르자 동호회 회원들은 사진 찍기 좋은 위치를 찾아 방향을 틀었다. 목적했던 곳에 도달해 탁 트인 광경을 마주하는 순간 사진기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동호회 나름대로 정보를 입수하고 장소를 정했을 것이다. 산세를 휘두르는 풍경이 손가락을 얽어 대충 만들어본 구도 안에 제대로 잡혔다. 여기까지 와서 이걸 놓치고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녀는 미리 음식을 준비해와 같이 온 일행과 둘러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상현은 넉살 좋게 옆으로 다가가서 인사를 주고받고 음식까지 얻어먹는다. 그런 상현이 나와 다른 존재로 느껴진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등을 떠밀어도 못할 일이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서글서글한 이마를 가졌다. 눈이 적당하게 크고 코가 약간 솟아올라서 동양적이면서도 서구적인 면을 함께 갖춘 모양새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모습이 밝다. 어렸을 때 예쁨 받고 자랐을까?
시간을 확인하고 상현에게 그만 가야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내심 이 풍경 속에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그러다 보면 집에서 보내기로 한 저녁 약속에 늦을 것이라 아쉬운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마지막으로 풍경을 눈에 한 번 더 담으려고 주변을 훑다가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역시 그녀였다. 내 예상이 맞았다는 사실에 아직 수사관으로서의 촉이 살아있다며 만족했지만 그건 산을 다 내려와서 버스에 앉은 후에 들었던 생각이다. 눈이 마주쳤을 때는 머리 가장 안쪽에서 시작해 몸 한가운데를 지나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저릿한 감각에 휩싸였다.
오래 전 고등학교 생물학 시간에 배운 내용을 떠올렸다. 사람 몸 안의 세포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 전극신호를 이용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보면 인간은 걸어다니는 전도체가 아닌가. 그 전극신호를 세포 내에서뿐만 아니라 몸 밖으로 내보내지 말란 법도 없다. 내가 느끼기에 분명 그 저릿함은 그녀와 내가 발산하는 전기적인 신호가 서로 얽혀서 만들어낸 파생효과였다.
한참을 얼얼한 느낌에 취해 바라보고 있자 그녀가 먼저 눈을 돌렸다. 눈을 돌렸다가 다시 나를 향해 슬쩍 곁눈질을 했다. 내가 아직 바라보고 있는 걸 알아채자 아무렇지 않은 척 음식 위로 눈을 떨군다. 계속 그렇게 쳐다보면 동물원에 와서 동물 구경을 하는 사람 같아 보일까 물러났다. 누군가를 빤히 쳐다보는 것도 학대의 일종이라고 경찰학교 범죄학 시간에 배웠다. 그렇지만 먼저 시작한 건 그녀였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위를 향해 쳐다보곤 했다. 결국 보이는 건 무성한 나무로 채워진 산자락뿐이었지만.
상현이 이번엔 대천으로 간다고 했다. 바다에 가본 지 오래됐다. 바쁜 일상에 치여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낼 여유가 별로 없었다. 간만에 느꼈던 산 공기가 무척 상쾌했던 것처럼 바다 공기가 어떤 선물을 줄 것인지 궁금했다. 그녀도 올까? 친하게 지내는 일행들이 있는 걸로 봐서는 자주 모임에 참석하는 것 같다. 말을 걸어볼까? 날 어떻게 아는지 물어보면 뭐라고 하려나? 만약 수감자였다면?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혼자서 이런 저런 상상을 하는 모습이라니. 언제부터 내가 이런 망상 환자였지? 미리 앞서 나가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것이 우습다. 언제나 사실에 근거해서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이 버릇인데. 정해진 방식을 따르고 논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 익숙해서 그 틀을 벗어나면 불편하다 느끼는 편이다. 그랬기 때문에 상상력과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평을 자주 듣곤 했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나와 다른 모습을 접하면서 당혹스럽지만 묘하게 흥분되기도 한다. 일탈. 그 단어가 지금 상황에 맞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은근히 기대하게 되는 마음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모임이 있는 날,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눈이 떠졌다. 학교에서 소풍 가기로 한 아침에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는 아이처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마음 한 구석에 처박아둔 상자가 갑자기 열리려 하고 있었다.
약속했던 시외버스 대합실에 도착하니 상현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표를 끊으러 가는 도중 아이를 안고 통곡을 하는 이상한 여자를 지나쳤다. 당사자에게는 매우 슬픈 상황이겠지만 그런 모습마저도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을 텐데 묘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어릴 적 명절에 고향집을 방문했다 돌아가며 할머니와 울면서 헤어지던 기억이 생각났다. 중년이라는 소리를 들을 나이에 이런 감수성을 가진 걸 새삼 깨닫게 되는 게 생소하다. 의뭉스럽게 가슴 저 안쪽에 자리 잡은, 이래도 되는 걸까, 라는 일말의 불안함도 동시에 느낀다. 내 나이, 내 위치에서, 새삼 이런 감정들을 느껴도 되는 건지 혼란스럽다. 이러면 안 될 텐데?
상현이 요기 거리를 사자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아침을 거르고 나온 터였다. 새삼 바나나 우유가 당겼다. 평소라면 누가 권해도 고개를 저어댈 바나나 우유였지만 오늘은 그걸 꼭 마시고 싶었다. 정확하게 떠오르진 않지만 어릴 적 할머니가 헤어지면서 손에 바나나 우유를 쥐어줬던 듯하다. 음식이 든 봉지를 들고 버스에 오르니 아무도 없었다. 버스 끝자락에 위치한 뒷좌석으로 향하는 상현을 따라가서 그 옆에 앉았다. 앞 열보다 반쯤 올라간 위치에 있는 맨 뒷좌석은 앞을 내려다보게 한다. 상현이 건네는 말에 대꾸하느라 고개를 돌리고 있는 채로 무심코 앞을 향해 힐끔거렸는데 그녀가 입구를 지나 버스로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고개를 돌려 제대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목이 굳어버렸는지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 상현이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건네는 말에 건성으로, 어, 그래, 라며 얼버무리고 있지만 온 신경이 그녀를 향한다. 좌석 절반을 지나쳤는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온다. 아는 얼굴이라고 인사라도 하려는 걸까? 상현과는 이전에 인사를 나눴지만 나와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상현이 소개를 시켜주면 정식으로 인사를 할 요령이었는데 이 주변머리 없는 놈이 입속으로 삼각김밥만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다. 바로 앞까지 왔는데도 알아채지를 못한다. 그녀가 우릴 향해 먼저 말이라도 건넬 줄 알았는데 바로 앞 열까지 와서 의자 위로 몸을 던지듯이 푹, 내려앉는다. 우릴 못 봤나? 눈치 없이 식탐만 내는 상현에게 신호를 줄까 하고 쳐다봤지만 아예 음식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말로 하기 뭣해 어깨를 툭, 하고 건드렸다. 쓱,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내린다. 둔한 놈! 그녀는 창밖만 보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인 내가 말을 걸면 이상하게 쳐다보겠지. 이번엔 조금 더 힘을 줘서 상현을 쳤다.
“어?”
하, 이렇게 둔한 녀석이 어떻게 경찰이라는 직업을 택했는지 모르겠다.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상황에 빠르게 대처해야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렇게 둔해서 어떻게 오래 버티려나. 슬쩍 고갯짓을 하자 상현의 눈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따라가다 그녀를 발견한다. 처음엔 누군가 살피고만 있더니 그녀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자 기억을 해낸다.
“저기, 안녕하세요. 지난 번 모임에서 만났던 분 맞으시죠?”
얼떨결에 그녀와 악수를 나눴다. 이름이 이은정이라고 했다. 은정이라는 이름, 어쩐지 여성스럽다. 이름에 ㅇ이 세 개가 들어간다. 각 글자마다 하나씩.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인지. 잡은 손을 놓기가 아쉬웠다. 그녀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 인사를 나눈 후 그녀가 자리에 앉자 상현은 다시 먹는 데 집중한다. 이렇게 먹성이 좋은지 몰랐다. 버스가 출발한 후 흔들리는 의자 위로 몸을 기댔다. 앞에 놓인 음식에는 손이 가질 않는다. 입맛이 싹, 사라져버렸다. 은정 씨는 인사를 나누고 나서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고개를 그대로 고정한 채 목이 아프지도 않는지 꼿꼿이 그 자세 그대로 유지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다. 구름이 하나도 없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장소가 많은데도 바쁘다는 핑계로 그저 미루기만 했다. 오늘 하루만은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오롯이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껏 사진을 찍고, 음, 그리고, ∙∙∙∙∙∙, 모임에서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되면 좋겠지. 좋은 친구? 슬쩍 앞자리에 앉은 은정 씨를 내려다 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뒷머리를 하나로 묶어 위로 올려 목덜미가 그대로 드러난다. 가지런하게 아래로 향하는 선이 고와서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무심코 손이 올라갔다.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당황해서 황급히 손을 내리려는데 창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은정 씨가 고개를 홱, 돌렸다. 올라간 내 손이 그녀의 눈 근처 어디쯤 위치에 머물렀다. 난감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날 어떻게 생각할까?
“버, 벌레가∙∙∙∙∙∙.”
“벌레요?”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상현이 입을 우물거리며 뭐 하냐는 듯이 내 쪽을 본다. 아무것도 없는 의자 등받이를 괜스레 쓸어댔다.
“여기 위에 기어다녀서요.”
왜 굳이 벌레를 골랐는지 모르겠다. 여자들이 보통 벌레에 질겁한다는 생각은 그제야 떠올랐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후다닥, 일어서더니 주변을 둘러본다. 뭔가 기어다니는 것이 없나 다급하게 찾는다. 있을 리가 없다. 원래 없었으니까.
“괜찮아요. 제가 잡았어요.”
좌석 뒤편 허공에 버리는 시늉을 하고 아무것도 없는 손바닥을 은정 씨 앞에 펼쳐보였다. 그러자 안심을 했는지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감사합니다. 벌레가 있는지 몰랐어요.”
놀랐는지 약간 상기된 얼굴이다. 일부러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옆을 보니 상현이 물끄러미 옆을 본다. 입술 위로 살짝 웃음이 걸린 것도 같다.
“이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녀 얼굴을 눈앞에서 제대로 봤다. 볼을 따라 내려오는 턱선이 완만하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지도. 우리 두 사람의 시선이 엉키자 바로 고개를 내리면서 살짝 목례를 한다. 내가 미소를 짓자 같이 웃는다. 이 사람은 웃어야 예쁜 상을 가졌다. 무표정은 어울리지 않는다. 자리에 앉는데 상현이 귓속말을 한다.
“너, 뭐 하냐?”
“무슨 소리야?”
“벌레는 무슨 벌레. 손에 아무것도 없던데. 그런 식으로 작업 거냐?”
“있었어.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면서.”
“진짜 벌레가 있었다고?”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과장되게 고개를 저으며 앞에 놓인 삼각김밥을 집어 입에 물었다. 상현이 그냥 넘어갔으면 했다. 평소 거짓말을 잘하는 편도 아니고 괜히 당황해서 거짓말한 게 들통 날까 내심 편치 않았다. 딱히 둘러댈 말이 없었다. 은정 씨에게 이상하게 행동한 걸로 제대로 낙인찍혀 한참을 시달려야 할지도 몰랐다. 다행히 녀석이 먹는 일에 집중한다. 그녀는 여전히 창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다. 한참을 저러고 있으면 목이 아플 것 같은데 불편하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뱃속에 음식이 들어가서 소화시키는 중인데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해 갑자기 말을 꾸며내느라 진땀을 빼서 그런지 몰라도 슬슬 졸려왔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꾸벅 졸았다 싶었는데 웃는 소리에 퍼뜩 잠에서 깼다. 상현이 괜히 실실 거린다. 왜 그러지? 상현이 그러는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데 은정 씨가 이쪽을 보며 같이 웃는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왜? 웃는 이유가 뭐야?”
나를 놀리는 게 재미난지 대답을 해주지 않고 딴청을 피운다.
“은정 씨한테 물어 봐.”
은정 씨를 보자 수줍게 시선을 피한다.
“별 거 아니에요. 고단하셨는지 약간 코를 고셨어요.”
“약간이 뭡니까? 은정 씨가 돌아보고 웃을 정도로 소리가 컸는데.”
“어, 내가 코를 골았어?”
잠깐 졸았다고 생각했는데 코까지 골 정도로 깊이 잠들었었나. 하필 이런 상황에서 코까지 골며 잠들다니. 평소에 눕기만 하면 바로 잠든다고 그것도 슈퍼파워라며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이럴 때 그 실력을 발휘하다니. 자꾸 킥, 킥, 거리는 상현의 옆구리를 쿡, 쿡, 찔렀다.
“아, 아, 나한테 왜 그래. 코는 자기가 골아놓고.”
“알았으니까 그만하라고.”
얼굴로 피가 모이는 게 느껴진다. 창피한 생각에 붉어지는 걸까. 은정 씨가 신경 쓰여 살짝 훔쳐보니 고개를 내린 얼굴 전체에 미소가 가득하다. 한층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다. 경직됐던 어깨에 힘이 빠지고 많이 웃겼던지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 웃는 모습에 나도 미소 지었다. 역시 웃어야 예쁜 상이다. 그녀가 옆에 자신을 웃겨주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항상 웃으면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불쑥, 들었다. 이건 정말 자연스레 나오는 감정이다. 머리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