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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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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6
작성일 : 19-09-09     조회 : 79     추천 : 0     분량 : 10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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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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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짭조름하니 짠내가 난다. 이게 바닷물 냄새였지, 하고 새삼 떠올렸다. 갈매기가 특유의 소리를 내며 낮게 날아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간다. 잊고 지냈던 냄새, 풍경, 소리. 나이가 들수록 산이 좋아진다 싶었는데 그래도 나름 바다만의 매력이 있다. 탁 트인 해변에서 파도가 밀려오는 걸 보고 있노라면 진득하게 묵혀놨던 가슴 속 응어리가 하염없이 풀려나간다.

 하나는 바다를 보자마자 흥분해서 지선이와 같이 소리를 질러가며 해변가를 뛰어다닌다. 저게 바로 하나의 매력이다. 자신이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반응하는 모습. 나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하나처럼 저렇게 마음껏 뛰어다니기에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먼저 의식해서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한다. 어쩔 땐 하나가 너무 오버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런 모습이 너무 부럽다. 나도 하나처럼 앞뒤 재지 말고 내 감정에만 충실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대천으로 오기 위해 탔던 버스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볼이 화끈거린다. 그 사람과 같은 버스에 오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게다가 바로 그 사람 앞자리에 앉다니. 지금 생각하면 내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이왕 인사를 나누고 소개를 받은 김에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더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도 불구하고 어째 눈도 제대로 마주치기 힘들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낯을 가리는 성격이지만 처음 만난 자리도 아니었는데. 말을 나눈 건 처음이지만.

 “풋.”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코를 골았다는 얘기를 듣고 당황해하는 모습이라니.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은근히 귀여웠다. 부끄럼 같은 건 전혀 타지 않을 모습의 철물점 아저씨가 수줍어하는 게 눈에 달달하게 들어왔다.

 “후훗.”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는데 하나가 자길 보고 웃는 줄 알고 손을 흔든다. 요즘 들어 자주 웃게 된다. 원래 실없이 웃는 성격이 아닌데 이상한 데서 웃음이 터지고 감정을 주체 못하겠다. 왜 그러지? 설마 철물점 아저씨 때문인가? 아, 그러고 보니 이제 그만 철물점 아저씨라고 해야겠다. 진짜로 철물점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이름이 남진우라고 했지. 진, 우, 라는 이름이 인상이랑 어울린다.

 사진 모임의 장소 선정 기준이 ‘사진을 찍기 위해 최적화된 환경이면서 사람이 많이 모여들지 않는 곳’이어서, 오늘 모이게 된 장소도 대천에 속하지만 외곽을 벗어난 나름 한산한 위치다. 모임 회원들을 제외하고 마주쳤던 관광객은 아기를 동반한 젊은 부부 한 쌍이 전부였다. 근처에 살고 있는 주민 같아 보이는 사람들은 가끔 지나쳤지만 관광객은 보기 힘든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원래 사람이 붐비는 데는 피하는 성격이다 보니 그런 선정 기준 때문에라도 이 모임에 더욱 끌린다.

 “그냥 파도만 찍는 건 너무 단조로우니까 아예 해변가를 비스듬히 두고 피사체를 잡아볼까 싶어요.”

 민우가 그렇게 제안을 하자 종진 오빠가 덧붙인다.

 “바다에 왔다고 꼭 바다 사진만 찍고 가라는 법은 없지. 근처 마을 풍경이나 주변 산세를 둘러보는 것도 옵션이 될 거고.”

 “그래도 이왕 대천에 왔는데 난 무조건 바다 사진이 최우선.”

 하나가 그렇게 말하고 얼른 물가로 가자며 나를 조른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유난을 떤다. 긴 하루가 되지 싶다.

 “일단 밀려오는 파도를 중심으로 찍어볼까. 난 너무 정적인 사진만 많이 찍어서 이번엔 움직임이 들어간 사진을 건져보고 싶어.”

 “그것도 좋지. 매번 비슷한 사진만 찍는 건 아니라고 봐. 창조는 변화에 대한 욕구에서 시작된다잖아.”

 하나가 하는 말에 동조한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주며 사진기를 가방에서 꺼내려다 멈칫했다. 이 기분, 이전에도 느꼈던 것 같은데. 시선을 드니 진우 씨와 상현 씨가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특별히 우릴 향하는 것이 아니라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는 듯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걸 텔레파시라고 하기엔 그렇고 기시감이라 해야 할까? 아님 전류 반응? 굳이 이름을 붙일 이유는 없지만 진우 씨가 근처에만 있어도 그가 있는 곳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툭.

 그만 가방을 손에서 놓쳤다. 바닥에 깔린 모래가 사방으로 튀고 가방이 지저분해졌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갑자기 손에서 힘이 빠졌다. 한심하긴.

 “안녕하세요.”

 상현 씨가 우리 일행을 향해 인사를 건네는 게 들렸다. 미란 언니가 대답한다. 손으론 가방에 묻은 모래를 열심히 털어내면서 귀는 쫑긋, 무슨 말이 들릴지 예민하게 세우고 있다.

 “상현 씨, 왔어요? 오늘 날 제대로 잡았네. 날씨 너무 좋지 않아요?”

 “그렇네요. 어제만 해도 꽤 흐렸었는데 오늘은 구름이 하나도 안 보이네요. 아, 이쪽은 남진우라고 합니다. 같은 데서 일하는데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함께 왔어요.”

 철물점은 운영하지 않는 거다. 아니지, 직업이 두 개일 수도 있는 거잖아. 한 번 철물점이라는 말과 연관시키니까 끝까지 따라다닌다. 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자신을 보고 웃는다고 생각한 것일까 진우 씨가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그만 고개를 돌렸다. 지금 내가 뭐하는 거지? 예의 없는 사람으로 보이려나? 슬쩍, 다시 쳐다보니 미란 언니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조금 전 내가 한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기를. 평소 인사 잘하고 예의 바르다는 칭찬을 듣는 편인데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자연스레 목례만 했어도 됐을 텐데 뭐가 부끄러웠는지 쳐다볼 수가 없었다. 한심하다. 내 자신이 정말 한심하다. 미란 언니가 나를 본다.

 “은정이도 인사해. 여기는 알지, 상현 씨? 지난 번에 봤잖아. 친구를 데려오셨네. 진우 씨라고 했죠?”

 “그렇지 않아도 같은 버스를 타고 오면서 이미 인사를 나눴습니다.”

 상현 씨가 사람 좋게 웃는다. 미란 언니가 내 어깨를 툭, 건드린다.

 “어떻게 같은 버스를 타고 왔구나. 그것도 인연이다, 얘. 앞으로 친하게 지내.”

 괜히 민망해져서 쓸데없이 열심히 가방을 털어댔다. 그러면서 속으론 ‘한심하다, 한심해’를 반복하며 사교성 없게 행동하는 내 자신을 탓하는 중이다. 미란 언니가 뭔가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이 언니 눈치 십 단인데.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 얼른 가방을 둘러메고 해변가로 향했다.

 “해파리네. 나 해파리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뒤통수가 따가워 뒤를 보니 미란 언니의 시선이 그대로 나를 향하고 있다. 하나는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진우 씨는 바다 사진 찍는 거 좋아해요?”

 미란 언니가 진우 씨에게 묻는다.

 “그닥 바다 풍경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나와서 바다를 마주하니까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아 좋네요.”

 목소리가 상당히 저음이다. 노래방에 가면 높은 고음은 못 내겠네.

 “거 봐. 가자고 할 때는 그렇게 안 간다고 거절하다 막상 오니까 좋지. 그러니까 항상 이 형님 말씀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앞으로 잘해.”

 “아, 예, 예, 형님.”

 진우 씨가 굽신거리는 시늉을 하자 미란 언니가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린다. 나도 미란 언니처럼 저렇게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좋을 텐데 도대체 그 사람 앞에 있으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먼저 말을 걸어보고 싶은데 어떻게 된 게 내 신경회로는 주인의 명령과 따로 노는 걸까?

 꺄르륵.

 지선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뒤에서 쫓아오고 그 앞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다. 하나가 따라잡지 못할 속력이 아닌데 일부러 잡지 못하는 척 거리를 둔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날 기회다 싶어 그쪽으로 향했다.

 “지선이는 이모가 잡는다. 왕.”

 이야아.

 지선이가 나를 피해 돌아간다. 하나가 속력을 줄여 나랑 같은 속도로 지선이를 뒤따른다.

 “오늘 날씨 완전 대박이네. 피사체가 뚜렷하다 못해 사진을 뚫고 나올 정도겠다.”

 “그렇긴 한데 햇살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뿌옇게 찍힐까 걱정이야.”

 “그늘이 별로 없어서 조도를 어떻게 맞추나 염려가 되긴 해. 그래도 어떻게 되겠지. 우리가 무슨 사진 전문가도 아니고 굳이 그런 걱정까지 미리 할 필요는 없잖아.”

  힘들게 따라잡은 척하며 지선이를 품에 안았다. 놓아주니 금세 또 엄마를 따라 나선다. 애들은 저게 좋다. 굳이 이 생각 저 생각 하지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바로 반응하잖아. 이제 사진 찍을 장소를 정해볼까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예상치 못하게 하나가 상현 씨 곁으로 다가간다.

 “상현 씨는 어디서 찍을 생각이에요?”

 말을 건네는 행동이 어쩜 저리 자연스러울까? 나는 입도 벙긋 못하겠는데. 상현 씨가 진우 씨를 본다.

 “글쎄요. 딱히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넌 어때?”

 진우 씨가 하나를 지나쳐 나를 본다. 얼른 시선을 피했다. 왜?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그냥 시선을 받든가 아님 미소라도 지으라고. 아니, 잠깐. 그냥 이유 없이 웃으면 정신 나간 여자로 보려나?

 “오늘 날씨가 좋긴 한데 햇살이 너무 강하네요. 조금 뒤로 물러나서 바다 풍경을 찍든가 아님 아예 비스듬히 만을 끼고 구도를 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렇죠? 저희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대놓고 직사광선을 받으니까 아무래도 사진이 제대로 안 나오지 싶어요. 은정아, 우리도 따라 가자. 이 근처는 아니지 싶어.”

 하나가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발걸음을 옮긴다. 하나와 상현 씨가 앞서서 나아가자 남은 진우 씨와 내가 어정쩡 따라가는 상황이 전개된다. 진우 씨와 맞춰 걸어가는 게 어색해 살짝 속력을 늦추자 조금씩 처지는 나를 향해 묻는다.

 “제가 너무 빨리 걷나요?”

 “네? 아, 아뇨. 모, 모래를 밟는 게 좋아서 천천히 걷고 있어요.”

  그가 잠시 멈춰 기다려준다. 속력을 낼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사람 한 명이 더 들어설 거리를 두고 맞춰 걸었다. 속에서 뭔가 훅, 하고 끓어오르는 기분이 든다. 입이 바싹 마른다.

  “은정 씨는 모임 자주 나오세요?”

  “동호회 사람들이 다들 잘 해주세요. 모임에 나오면 좋은 사람들 만나고 사진 찍는 것도 재미있고, 매주 나오려고 하는데 어떤 일이든 꾸준히 한다는 게 쉽지는 않네요.”

  갑자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 많아진다. 혹시나 말실수를 할까 조심하고 싶은데 아무 말도 안 하면 어색해질 것도 같아 멈출 수가 없다.

  “여기저기 가보지 않은 곳에 갈 수 있다는 것도 참 매력적이에요. 여행을 좋아하긴 하는데 굳이 시간을 내서 계획하고 일정을 짜기가 녹록치 않은데 모임에서 정해진 준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니까 그것도 편하구요.”

 “저는∙∙∙∙∙∙.”

 “사실∙∙∙∙∙∙.”

  진우 씨가 말을 꺼내려는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려던 관성을 억제하지 못해 사실, 이라는 두 글자까지 내어놓다 멈췄다. 이런, 자기 말만 하는 여자로 보려나? 하나랑 있으면 주로 말을 듣는 게 내 역할인데 오늘은 통제불능이다.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내 자신이 두려워진다. 차라리 오늘 하루 입을 꼭 다물고 있을까? 진우 씨가 하려던 말을 멈추고 내가 말하기를 기다린다. 점점 어색해진다. 이 어색한 기분, 너무 싫은데.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네? 무슨 말 하려고 하셨죠?”

 “죄송해요. 말을 끊으려던 건 아닌데.”

 “아니에요. 중요한 말도 아니었어요. 뭔데요?”

  진우 씨가 조용히 미소 짓는다. 나란 여자, 이상한 여자. 내 이마에 또렷하게 쓰여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는 사진 찍는 건 좋아하는데 굳이 모임에 나가서 사진을 찍어야 되나 하고 주저했었거든요.”

 잘 나오셨어요. 문득 머릿속으로 그 생각이 스치자 직접 입으로 그 말을 소리 낼까 힘을 주어 입술을 다물었다.

 “막상 나오니까 모임 분위기도 좋고 이렇게 그동안 잊고 지내던 신선한 공기도 느껴보고 참 잘했다 싶습니다. 은정 씨가 매주 나오고 싶어 하는 기분 이해가 되네요.”

 “그렇죠? 우리 모임 되게 좋아요. 최고에요.”

 최, 고, 에, 요. 무슨 초딩이야? 머리로 김이 확 올라온다. 이은정, 그 입 다물라고, 제발.

 “하나 씨랑 친하신가 봐요?”

 “아, 네. 하나랑은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완전 성격 좋아요. 저랑 달리 시원시원하고 사람들 잘 챙기고 저한테 과분한 친구죠.”

 “왜요. 은정 씨도 성격 좋으시고 사람들하고도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제가요? 아니에요. 내성적인데다 낯가림도 심해서요, 흐흐흐.”

 별안간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흐흐흐, 라고 웃다니. 호호호, 아니면 섹시하게 홍홍홍,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하기야 섹시가 나한테 가당치도 않겠지만.

 “상현이도 하나 씨 같아요. 뒤끝 없고 사람들 잘 사귀고. 이 모임도 상현이 덕분에 이렇게 나오고 된 거구요.”

 앞에서 걷던 하나가 뒤를 돌아본다.

 “두 분, 어서 오시죠.”

 하나가 환한 햇살에 눈이 부신지 눈썹 위로 손을 올려 가린 채 우리 두 사람을 재촉한다. 아래로 깊숙이 파인 작은 구릉 같은 곳을 찾아냈다. 뒤로는 드문하게 나무들이 자라 있어 완전히 가려주진 않더라도 틈틈이 그늘을 만들어낸다. 상현 씨 옆에 하나, 그 옆으로 진우 씨가 서고 내가 그 다음에 자리했다. 이렇게 가까이 서니까 가슴 맥박이 빨라지는 게 느껴진다. 병이다. 이걸 어쩌나?

 “저는 하늘이랑 바다가 겹치는 풍경이 좋던데요.”

 상현 씨가 카메라 렌즈에 눈을 대면서 말한다.

 “그런 것도 좋죠. 있다가 해가 지면 그 사이에 해가 걸린 풍경도 꽤 멋질 겁니다.”

 “노을 지는 바다의 석양, 대강 찍어도 작품이 되겠죠.”

 하나와 상현 씨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카메라를 만지작거린다. 진우 씨는 말없이 렌즈를 조절하고 있다. 이럴 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되나? 아니야, 차라리 조용히 있는 게 낫겠어. 상현 씨와 하나가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쉬지 않고 대화를 이어간다. 하필 둘씩 그렇게 나뉘었는데 한쪽은 대화가 끊이질 않고 한쪽은 말이 없으니 신경이 더 쓰인다. 아, 할 말이 없을까? 이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궁금한 김에 무심코 진우 씨를 돌아봤는데 손에 든 카메라 속 렌즈 안에 옆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그 모습을 계속 들여다보고 싶었다. 셔터만 누르면 평생 간직할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고려해보지도 않았다.

 “찰칵.”

 셔터 소리가 무슨 천둥치는 소리처럼 내 귀를 울렸다. 진우 씨가 소리를 듣고 나를 바라본다. 그의 정면이 렌즈 안에 잡힌다.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카메라를 그의 바로 앞에 들이대고 있다는 현실감이 그제야 다가왔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셔터가 예민해서요. 살짝 건드렸는데 찍히네요.”

 진우 씨 표정으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겠다. 로봇처럼 딱딱한 동작으로 카메라를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카,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하나 보려고 했는데 셔터가 너무 민감하네요.”

 그가 나를 향해 손을 내민다. 무슨 뜻이지? 나보고 그 손을 잡으라고? 카메라를 내리고 손을 들어보이자 그가 난감하다는 듯 눈썹을 모은다.

 “카메라 한 번 줘보세요.”

 “네? 아, 예. 카메라, 카메라.”

 카메라를 건네니 그가 이리저리 훑어본다. 카메라에 대해서 잘 아는 걸까? 나는 그저 인터넷에서 추천하는 대로 지금 쓰는 카메라를 사버렸다. 카메라라는 것이 가격이 싼 물건도 아니고 처음에는 마음 단단히 먹고 치밀하게 준비해서 좋은 가격에 최고의 조건으로 사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아봐야 할 게 너무 많아지고 선택의 폭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넓어지면서 그만 제 풀에 지치고 말았다. 어렵사리 모아놨던 정보를 모두 밀어내버리고 눈에 띄었던 여섯 개 후보 중에서 구매자 리뷰가 가장 좋았던 지금의 카메라를 사버리고 말았다. 사고 나니 진즉 그렇게 해버릴 걸 왜 그렇게 골머리를 앓았나 후회했다. 나한테 선택은 항상 어려운 난제다. 결국 지나고 나서 보면 무엇을 선택하든 그 차이는 별로 없는데도 선택해야 하는 그 당시에는 무척 심각해진다. 잘못 고르면 커다란 재앙이라도 닥칠 것처럼.

 “관리를 잘 하셨네요. 스크래치 난 곳도 거의 없고 렌즈도 아주 깨끗한데요.”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처음 사용했던 카메라는 얼마 전에∙∙∙∙∙∙.”

 ‘바닥에 떨어뜨려서 고장 났어요’, 라고 말하려다 문득 나를 얼마나 조심성 없는 여자로 볼까 싶어 멈췄다. 이것도 큰일이다. 이 사람 앞에서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자동 검열이 시작된다. 나를 이렇게 보지 않을까, 저렇게 보지 않을까 스스로 단속을 하다 보니 말이 자꾸 꼬이고 오히려 상황을 더 이상하게 만든다. 말을 하다 중단했더니 그가 그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나도 난감하다고요.

 “나사가 풀렸어.”

 “나사가 풀려요?”

 내 머리 어딘가에 나사라도 풀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만 그 문장을 입에 담아버렸다. 자, 그 다음은 뭐지? 그 다음은 뭐냐고? 나사가 풀렸다니 그런 말을 왜 하는데!

 “어, 그게, 나사가 풀려서 본체가 분리되더니 다시 조립을 못했어요.”

 이게 무슨 소리야? 분리와 조립이라고? 대화가 멈췄다.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겠지. 멀쩡한 카메라가 그렇게 될 리가 없으니까. 잠시 그가 나를 멀뚱하게 쳐다본다. 나도 안다. 내가 얼마나 이상한 여자로 보일지. 차라리 잘 됐다. 이제 모임에 나올 때마다 나한테서 백 미터 넘게 떨어져 있겠지. 아니, 더 이상 모임에 나오지 않는 건 아닐까? 나 때문에 나오지 않으려 하진 말아요. 차라리 내가 그만 나올게요.

 “음, 보통 그런 일은 안 일어나는데 무척 오래됐거나 중고로 사셨나 보네요.”

 그래, 빨리 무슨 말이라도 해서 대화를 끝내자.

 “네, 벼룩시장에서 샀는데 판매자가 연락도 안 되고 그만 돈만 날렸어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중고는 안 사려 해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카메라를 둘러본다. 휴, 어떻게 마무리는 했지만 이제 다음 말을 꺼내기가 무섭다. 차라리 멀리서 쳐다보기만 할 때가 나았었나.

 “중고도 잘 알아보고 사서 관리만 제대로 하면 괜찮긴 한데 아무래도 새제품을 사는 게 믿을 만하고 관리도 용이하죠.”

 나를 향해 카메라를 내민다. 조심스레 받아드니 렌즈를 똑바로 자기 얼굴 앞으로 향하도록 당긴다.

 “옆모습보다 정면을 찍는 게 낫지 않겠어요?”

 내가, 내가 자신을 찍으려 했다는 걸 아는, 건가?

 “이왕이면 제대로 잘 찍어 봐요.”

 일부러 포즈를 잡더니 날 향해 웃는다. 뒷모습만 봤기에 그의 미소를 바로 앞에서 마주하긴 처음이다. 뭐든지 처음은 기억에 뚜렷이 남는다고 했던가. 이 미소,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찰칵, 손가락에 힘을 주자 맑은 쇳소리가 난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반복해서 들었던 소리인데 이렇게 맑은 소리였나 의아해진다.

 “보기 좋게 찍었어요? 줘 봐요. 얼마나 잘 찍었나 보게.”

 그가 찍힌 사진을 보려 내 손에 든 카메라를 잡자 불쑥,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줘서 뺏기지 않으려 저항했다. 이, 이게 아닌데 내 손이 왜 이러지?

 “아니, 뭘, 감추려고 할 것까진 없잖아요. 우리가 무슨 전문 사진가도 아니고 평가하려는 건 아니니까 이리 줘 봐요.”

 그 사람 손으로 카메라가 넘어가는 것까진 문제가 없었는데 그만 사진기에 달린 줄에 팔이 걸려버렸다. 진우 씨는 그것도 모르고 사진을 확인하려고 자신을 향해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줄에 걸린 팔이 돌아가고 정말, 이건 정말, 말도 안 되게, 그렇게 앞으로 균형이 쏠리더니 몸이 넘어갔다. 지나고 나서도 어떻게 그런 상황이 돼버렸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의 옆에 섰을 때부터 이미 반쯤 정신이 오락가락 하던 터라 몸이 더욱 말이 듣지 않는 상태였고, 줄에 걸린 팔을 보고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

 “∙∙∙∙∙∙.”

 그가 내뱉는 숨이 뺨에 닿을 만큼 가까이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하니 나보다 키가 큰 것이 더욱 실감났다. 그의 입술이 내 이마와 콧잔등 사이에서 입김을 내뱉고 있다. 몸이 마비된 것 같다.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겠고 아무런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도 말이 없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다. 그가 내 왼팔을 가볍게 잡았다. 팔에 걸린 줄을 천천히 빼낸다. 바로 눈앞에 그의 웃옷 체크 마크가 또렷하게 다가온다.

 “죄송해요. 제가 함부로 카메라를 잡아당겼네요. 줄이 감긴 걸 보지 못했어요. 괜찮으세요?”

 “∙∙∙∙∙∙.”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러다 그냥 포기해버렸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나을 듯 했다. 아님 그냥 그렇게 있고 싶었던 걸까? 그가 살짝 고개를 들어 카메라 렌즈를 본다. 픽, 가벼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거 무슨 증명사진도 아니고. 반쯤 웃다가 멈춘 표정이네요.”

 “어머, 그래요?”

 사진 얘기에 겨우 두뇌가 반응을 한다. 그가 들고 있는 카메라 화면을 봤다. 너무 가깝게 들이대고 있었는지 어깨 위 상반신이 렌즈를 꽉 채웠다. 어설프게 웃는 모습이 이력서에 넣기 위해 어쭙잖게 찍은 증명사진 같았다.

  “하.”

  나도 모르게 김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보니 역시 철물점 아저씨다.

  “어? 지금 비웃었어요?”

  “네? 아니, 비웃은 게 아니라∙∙∙∙∙∙.”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아, 지겹다, 이 문장. 끝없이 솟아오른다. 그걸 누가 모르냐고.

  “아니면요?”

  아니면, 그게, ∙∙∙∙∙∙, 아니,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건 뭐야. 이렇게 가까이서.

  “그게 아니라, 화면이 꽉 차니까, 얼굴이, 그러니까, 비율이 말이죠.”

  차라리 땅 밑으로 꺼지고 싶다. 이게 지금 무슨 말이야.

  “아, 제 얼굴 비율이 이상하다는 말인가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그의 입술 한쪽이 살짝 말려 올라간다. 뭔가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모습. 날 갖고 노니까 재밌어요?

  “은정아, 방금 물속에서 고기가 뛰어올랐어. 이거 봐, 봐. 내가 그거 찍었다.”

  하나의 목소리가 들리자 내 몸이 반사적으로 뒤로 홱, 물러났다. 마법에라도 걸렸다 풀려난 것처럼. 그럼 내가 공주란 말인가? 시녀가 마법에 걸렸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데. 아무리 봐도 하나가 공주고 난 시녀 같지만.

  “어디, 어디, 그거 완전 대박이다. 어떻게 그런 걸 찍었어?”

  하나 곁으로 다가가기 위해 그를 지나쳤다. 진우 씨가 내 뒷모습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뒤로 돌아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가슴 밑바닥에서 아쉽다는 감정이 저릿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 더 머물렀다가는 혼절이라도 할 것 같았다. 살짝 말려 올라가는 그 입술. 건드려 보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그를 지나치면서 간절한 마음이 더했다. 처음엔 손가락으로 대보고 싶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건드려보고 싶었다. 내 입술로.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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