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이렇게 많은 별을 보기 오랜만이다. 서울 하늘은 많은 별을 품지 않는다. 아니 품고 있어도 그 아래 공기가 탁해 별이 드러나질 않는다. 이곳에서는 머리 위 가까이 생생하게 빛나는 별들이 촘촘히 늘어섰다. 은정 씨는 그 광경에 압도되었는지 가만히 한 자리에 멈춰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무언가를 보고만 있어도 좋다는 게 이런 걸까. 딴생각이 들지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
은정 씨는 나보다 훨씬 더 몰입해서 시선을 고정시킨 채 석고상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그런 은정 씨로부터 색색, 거리는 그녀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전해진다. 그 전까지는 깨닫지 못했다. 일정한 리듬으로 사근사근 반복한다. 그걸 가만히 듣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그 리듬에 맞춰 숨을 쉬고 있다. 그녀와 맞춰가는 호흡. 천천히 조금씩 내 몸 안으로 그녀가 들어오고 있다는 비정상적인 감각. 머리 한구석에서 스멀거리며 불안하게 올라오는 경고를 애써 눌러댔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내 머리 위 하늘의 모습이 저렇게 비현실적인데 나라고 어떻게 지금 현실적으로만 행동할 수 있겠나. 이건 모두 이성을 마비시켜 버리는 밤하늘의 풍경 때문이다. 자기 위안, 아니면 원인 전가. 뭐라고 해도 좋다. 지금 나를 지배하는 건 이성이 아니라 본능이다.
은정 씨의 손을 잡았다. 서늘한 감촉이 전해진다. 차가운 밤기운에 몸이 식었으리라. 온기를 느끼라고 살짝 문질러 주었다. 그녀가 웃는다. 옷깃 위로 맨살을 드러낸 어깨가 보인다. 파란 빛깔의 핏줄이 목을 타고 흐른다. 숨 쉬는 간격에 맞춰 들렸다 내려오는 동작. 살아있다는 증거. 그 떨림이 신기해서 손가락으로 건드려 보았다. 그 접촉에 살짝 몸을 떤다.
촉각은 피부를 타고 전달된다. 그 경중에 따라서 그것이 쾌락이었다가 고통으로 변하기도 한다. 최고조에 이르고 싶으나 선을 넘지 않기 위한 탐색. 은정 씨가 나로 인해 기쁨이 아닌 통증을 느낄까 조심스럽다. 그건 가장 원하지 않는 바다. 언제나 시작은 주의 깊은 탐색전이다. 그녀의 목을 타고 가슴 언저리로 손을 내렸다. 풍만한 몸매라고 하긴 그렇지만 적당히 살집이 붙어 부드럽게 쓸린다. 손을 쓰는 직업을 가져서 그런지 상체 근육이 제대로 발달되어 있다. 탄탄한 가슴 언저리가 손끝으로 전해진다. 허리로 팔을 내리는데 그만 그녀의 상의가 팔 주위에 감겨버린다. 너무 서둘렀다. 은정 씨가 쿡, 하고 무안한 웃음을 참지 못한다.
“죄송, 요.”
“괜찮아요.”
은정 씨가 스스로 상의를 벗는다. 드러난 팔 위로 소름이 돋았다.
“춥지 않아요? 안으로 들어갈래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거실로 들어와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을 닫았다. 앞서서 걸어가는 뒷모습이 달빛을 받아 하얀 기운을 머금는다. 맨살이 드러난 어깨 사이 브래지어의 끈이 밑으로 향한다. 허리께 위로 살짝 튀어나온 속옷 레이스. 양팔을 조심스럽게 가슴 주위로 모으고 거실 가운데 놓인 소파 앞에서 멈춘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듯했다.
“거실보다 침실이 더 따듯할 겁니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본다. 말을 꺼내놓고 나서 아차, 싶었다. 굳이 그런 뜻은 아니었다. 이미 주워 담기엔 늦었다. 은정 씨가 몸을 감싸 안은 채로 말이 없다.
“∙∙∙∙∙∙.”
주저하는 그녀 앞을 지나쳐 방문을 열었다. 심플한 느낌의 침실이었다. 침대와 옷장 말고 다른 가구는 없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침대 위로 반쯤 덮여진 이불과 베개가 놓여 있다. 은정 씨의 표정을 읽고 싶지만 고개를 숙인 채로 들지 않는다. 성급하게 행동하고 싶지 않다. 그녀를 최대한 배려해주려는 의사가 전달되면 좋겠는데. 이미 시작한 상황에서 그만둔다면 그게 더 어색하겠지. 그녀 곁으로 다가가 가슴과 허리를 주시했다. 뽀얀 살들이 숨을 쉬기 위해 올랐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밑으로 시선을 내리니 한 가운데 배꼽이 자리했다. 손가락 끝으로 그 언저리를 건드렸다. 움찔, 하며 주변 근육이 긴장한다. 서서히 배꼽 언저리 주위로 범위를 넓혀갔다. 가만히 정지한 채로 있는 그녀. 허락한다는 무언의 동의로 받아들였다.
아직 차가운 그녀의 몸을 끌어당겨 안았다. 내 온기가 전해져서 차가운 몸이 데워지길 바랐다. 조심스레 그녀를 놓아준 후 침실 문을 닫았다. 침대 앞으로 그녀를 이끌며 등 뒤로 손을 넣어 브래지어 끈을 풀었다. 흠칫, 어깨에 힘을 줬던 그녀가 흘러내리는 브래지어를 움켜잡는다. 천천히 그 손을 잡아내렸다. 브래지어가 바닥 위로 떨어지고 도톰한 그녀의 가슴이 모양을 드러낸다. 양손으로 움켜쥐자 눈을 감는다. 파노라마 사진처럼 양쪽의 꼭지가 조금씩 느릿하게 솟아오른다. 천천히 부드럽게 젖가슴을 쓰다듬으며 훑으며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조금씩 단단해지는 느낌이 전해온다. 먼저 오른쪽 꼭지로 입을 가져갔다. 작은 신음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손가락을 움직여 왼쪽 꼭지를 천천히 어루만져 주면서 입 안에 놓인 꼭지도 동시에 빨았다 놓아준다. 내 몸이 반동을 하면 그녀도 같이 허리를 숙였다 편다. 사랑을 나눈다는 표현처럼 이건 혼자서 이루는 행위가 아니다. 역할을 분담해서 나누어 한쪽이 밀면 물러났다 당기면 따라오는 호흡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모두 자기 몫을 다 했을 때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공유 의식이다.
가슴 위 어깨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팔과 연결된 쇄골 부위를 지나 어깻죽지 아래 부드러운 살 위로 혀를 미끄러뜨렸다. 민감한 곳을 건드렸는지 하아, 조금 더 긴 숨을 내쉰다. 살짝 장난기가 도졌다. 지나쳤다가 되돌아와서 그녀가 반응했던 부위를 더욱 집요히 건드린다. 그녀가 참기 힘든지 몸을 비튼다. 조금 세게 압박했다 힘을 뺐다 다시 주위를 미끄러지듯 깨물었다. 그녀의 가빠지는 숨소리가 들려오자 몸 한가운데서부터 열기가 흘러나와 전신을 덮친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약을 먹은 것도 아닌데, 사람이 만들어내는 숨소리와 몸부림에 취하기도 한다.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대는 반복적인 동작에 맞춰 빚어지는 교성과 탄식이 머리끝부터 발아래까지 흠뻑 적신다. 점점 그 취기에 빠져 머릿속이 몽롱해진다.
가슴 부위로 돌아와 그 아래로 향하며 그녀의 몸을 군데군데 핥기 시작했다. 내 숨소리도 더욱 가빠지고 동작이 과격해진다. 주저하거나 멈출 여지는 없다. 이미 이성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몸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며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그녀의 왼젖꼭지를 깨물었다. 통증이 전해졌는지 소리를 지르며 상체를 내게서 빼내려 한다. 돌려주고 싶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은 은정 씨가 내 완전한 소유다. 살짝 놓아주며 입술로만 세차게 빨아댔다. 그녀가 내지르는 소리의 피치가 템포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가슴 주위를 맴돌다 허리를 지나서 그 아래로 내려왔다. 음모에 가려진 곳을 헤집었다. 조심스러울 여유가 내겐 없었다. 너무 취해버려 몸이 헐떡거린다. 입술과 혀가 집요하게 안으로 전착해갔다. 그녀가 다리를 오므렸지만 용납하지 않았다. 조금은 사납게 허벅지를 잡아서 밀어냈다. 입구를 들어낸 곳을 마음껏 포식했다. 그녀의 상체가 뒤로 젖혔다 되돌아온다. 조금씩 안에서부터 젖어서 흘러나온다. 이제 허벅지로 내려와 부드러운 안쪽 살을 문질렀다 떼며 맛을 음미했다. 그녀의 안쪽 허벅지는 하얀 치즈처럼 말캉거렸다. 단단한 무릎을 지나 종아리와 발목을 간지럽히며 발등 위로 도달했다.
양쪽 발가락 끝 하나하나를 핥았다. 끝으로 내려갔다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기도 하고 옴폭하게 들어간 부위를 돌고 돌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이제 그녀의 얼굴이 그리워졌다. 지나온 과정을 오롯이 반복해서 되돌아갔다. 젖어있는 부위는 손가락 끝으로 지긋이 눌러주었다. 그녀가 눈을 완전히 감은 채 고개를 젖혔다 내려놓는다. 양볼이 빨갛게 상기되었다. 머리칼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아직 남아있는 샴푸 냄새가 맡기 좋다. 내 숨이 그녀의 귓볼에 닿을 때마다 조금씩 몸을 떤다. 혀로 목덜미를 훑으며 올라가 뺨을 지나 코를 살짝 깨물었다. 인중을 건드리자 입술이 닫힌다.
손가락으로 충분히 젖어있는지를 확인한 후 손을 떼고 단단하게 경직된 부위를 허벅지 위로 미끄러뜨렸다. 그녀가 조금씩 몸을 떤다. 움찔거리며 몸이 경직되었다 이완한다. 눈을 감고 색색, 거리며 가쁜 숨을 반복하고 있다. 날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가 된 건가. 그녀 안으로 들어가기 조심스럽다. 축축한 감촉이 예민한 곳 주위로 전달된다.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밀어넣었다. 아, 아아아, 그녀의 교성이 이렇게 섹시하다. 서서히 몸에 반동을 준다. 허리가 위로 올라갔다 내려올 때마다 하아, 혹은 흐음, 또는 그 비슷한 소리가 입에서 빠져나온다. 그럼 그 소리가 더욱 자극적으로 다가와 허리에 힘이 들어가고 그에 맞춰 그 소리는 더욱 커져간다. 꼭 시계태엽 같다. 힘주어 돌리수록 태엽이 착착 감기고 시계바늘은 힘차게 나아간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허리와 다리가 경직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머리로 전기 자극이 끊임없이 들어오며 그 속을 가득 채운다. 숨이 가쁘다.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소리가 새어나온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녀도, 나도 거칠게 숨을 뱉어낸다. 번뜩, 머리 한 구석에서 섬광이 스쳐가더니 그만 조절하고 있던 끈을 놓아버렸다. 이제 어찌되어도 좋아. 머리가 새하얘진다. 저기 어딘가 너머로 아주 멀리 날아간다. 내 몸에 달려있던 모든 걸 놓아버리고 아주 멀고 먼 곳으로. 까마득하니 멀어져간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나 보다. 눈을 떠보니 주변이 환하다. 고개를 들자 침대 옆 바닥에 가지런히 포개어진 내 옷이 보인다. 옷을 걸치고 침실을 나서 거실로 향하자 소파 위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은정 씨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가 인기척을 느끼고 나를 돌아보더니 걱정스런 눈짓을 한다.
“어쩌죠? 일출 사진을 찍긴 너무 늦어버렸어요.”
그런 그녀의 걱정이 우스꽝스러워 허허, 웃어버렸다.
“왜요?”
“아뇨.”
“뭐가 우스운데요?”
“그게, 은정 씨 걱정하는 얼굴이 너무 진지해보여서요. 오늘 못 찍으면 다음에 와서 찍으면 되죠.”
“그래도 사진 찍으러 여기까지 온 건데 못 찍고 가면 목적 달성에 실패한 거잖아요.”
그녀 곁으로 가서 같이 앉았다. 샴푸 냄새가 맡고 싶어져 목에 코끝을 묻으며 대답했다.
“대신 생각지 못했던 큰 선물을 받았으니 됐어요.”
그녀가 수줍게 웃는다. 장난치듯 개 짖는 소리를 내며 목 위를 타고 올라가며 머리칼을 헤집었다. 더 크게 웃는다. 그만하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짓궂게 굴었다. 어젯밤을 그렇게 보내고 난 후 일어난 다음날 아침에 그녀와 어색하지 않아 다행이다. 내심 걱정이었다. 은정 씨가 힘들어할까 봐.
느지막이 일어난 까닭에 체크아웃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서둘러야 했다. 아침 겸 점심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해결했다. 되돌아오는 고속도로는 한산해서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은정 씨는 나에게 연신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렇게 많은 별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고 했다. 너무 예쁜 곳에 가서 황홀한 일몰 사진을 찍었고 평생 못 잊을 거라고도 했다. 잠깐 말을 멈추더니 한 템포 쉬고 작별 인사를 한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는지 알 듯도 하다. 표현하고 싶어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을까. 아님 굳이 말을 꺼내 필요가 없었는지도.
집으로 돌아오며 어젯밤 일을 떠올려 보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믿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꿈을 꾼 듯하다. 내 안에 그런 자신이 있다는 게 너무 놀랍다. 정말 그 일이 일어난 게 밤하늘 풍경 때문이었을까. 백미러로 보이는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졌다. 앞머리를 툭, 툭, 건드려본다.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집으로 들어서기 전 깊게 숨을 들이마셔 보았다. 가슴 한편이 불쾌하게 아렸다. 죄책감 아니면 불안? 찝찝하게 켕기는 마음일지도. 일하면서 자주 접했던 뭔가를 숨기는 피의자가 보이는 표정이 내 얼굴 위로도 나타날까 반신반의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자 친숙한 얼굴이 나를 보고 반긴다. 어떻게든 그 눈을 피하지 않기 위해 오롯이 집중했다.
“지현 아빠, 사진 많이 찍고 왔어요? 오늘 저녁은 뭘로 하지? 난 맨날 뭐 먹을지 정하는 게 제일 하기 싫은 고민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