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양쪽 눈이 빨갛다. 울었다 그치기를 반복하니 힘이 빠져서 이제 제대로 걷지도 못하겠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혹여 진우 씨가 나를 따라올까 봐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서 계속 걸었다. 지금은 그저 그를 피하고만 싶다. 마주할 자신이 없다. 힘들게, 정말 힘들게 마음을 정해서 결혼신청을 했다. 결코 쉽게 정한 게 아니었다. 몇 번이고 주저했고 오늘 아침까지도 어떻게 꺼내야 하나 이렇게 저렇게 수도 없이 말을 바꾸었다. 그렇게 힘들었지만 결국 그를 원했다. 그에게 아이가 있다는 미란 언니의 충고에도 그 마음이 꺾이지 않았다. 내 선택을 확신했다. 아내가 있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처음엔 그 말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이가 있다니까 아내가 있었을 거고 그렇게 아이가 생겼겠지. 그렇지만 말을 꺼내는 그의 태도가 단지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걸 전했다. 그는 아내가 있었다고 하지 않았다. 현재형으로 아내가 있다고 했다. 바보같이 ‘나는 유부남’이라고 하는 걸 한참을 걸려 이해했다. 아님 내 자신이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었을 수도 있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고함을 지르고 행패라도 부렸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무런 감정이 없었을까? 일말의 죄책감이나 미안한 감정이라도. 아님 아내와 자식에게라도. 그러니까 그가, 그 개같은 인간이, 양심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어서, 그래서∙∙∙∙∙∙.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다. 내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혼잣말이지만 앞뒤 문맥이라도 맞아야 하는데 이건 그저 떠오르는 대로 내뱉는 한탄이다. 한참동안 진정되지 않아 덜덜 떨었다. 누군가 옆에 있길 원했지만 이런 얘기를 하나나 가족에게 할 수는 없다. 사연을 이미 알고 있는 미란 언니만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사람이 충격을 받으면 멍청해지는 건지 수백 번, 수천 번 했던 동작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휴대폰을 켜고 연락처 목록을 열어서 전화연결만 누르면 되는데 그걸 하기 위해 한참이 걸렸다. 자꾸 엉뚱한 이름을 선택해 눌렀다 취소하고 다시 누르길 반복했다. 미란 언니의 목소리를 듣기까지 아주 긴 시간이 흐른 듯했다.
“여보세요.”
“언니, 저 은정이요.”
“어, 은정아.”
“언니. 저어, 언, 니∙∙∙∙∙∙.”
결국 목소리가 떨려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할 거라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 당장 누군가 필요했다. 이 상태로는 집을 제대로 찾아가지도 못할까 두려웠다. 언니는 울먹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왜 그래, 은정아,’ 로 시작해서 ‘무슨 일이야,’ ‘진정해,’ ‘어디 다쳤어,’ ‘거기 어디야,’ 까지 연달아 물어댔다. 어디야, 라고 묻는데 그 물음에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떨리는 손을 억지로 달래며 언니가 시키는 대로 휴대폰 지피에스를 이용해 주변 지도를 살폈다. 지역 이름을 알려주니 이번엔 언니가 지피에스를 이용해 대략 위치를 파악했다.
“언니가 차 몰고 금방 갈게. 어디 딴 데 가지 말고 기다려. 알았지? 괜히 엉뚱한 생각 하면 안 돼.”
엉뚱한 생각? 지금 머릿속엔 엉뚱한 생각은커녕 기본적인 생각도 들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개념이 통째로 사라져 완전히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디에라도 그저 주저앉고 싶었다. 근처에 보이는 굵은 통나무 밑동으로 다가갔다. 옷이 더렵혀지는 건 전혀 상관없었다.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으니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울컥, 하고 뭔가 올라온다. 주위에 사람의 그림자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주 대놓고 울기 시작했다. 걸어오며 울다 그치기를 반복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디에 나머지 눈물이 남아있었는지 한번 쏟아지기 시작하니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내 자신의 울음소리에 더욱 서러움이 복받쳤다. 더 이상은 짜내도 나오지 않겠다 싶을 때까지 마지막 한 방울을 흘려냈다. 우는 게 은근히 힘쓰는 일이다. 오랜 시간 울다 보면 탈진할 정도로 지쳤다. 이런 상황에도 본능은 남았는지 심하게 배가 고파왔다.
몸에 힘이 남아 있질 않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멍하니, 그저 하늘만 바라봤다. 그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그가 궁금하다니 나도 참 한심하다.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무슨 생각으로 나와 함께 상화원에 간 걸까? 힘들었을까?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을까? 이제야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이리저리 떠오른다. 그가 어떤 대답을 한다고 해도 지금에 와서 달라질 건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 한 곳엔 그가 안쓰러웠다. 그가 안쓰럽다고? 그런 마음을 가지는 내 자신에게 어이가 없었지만 그도 힘들었을 거고 많은 고민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리숙한 바보인 건가? 어릴 때부터 어리숙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는데, 그 말이 나이 들면서 정말 듣기 싫었지만, 어쩌면 그게 사실이어서,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그렇게 듣기 싫었나 보다.
사람이 지치니까 이건 숫제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내 몸에 남아있던 에너지가 밑바닥까지 말라버려서 눈앞이 가물가물하다. 머릿속이 부옇게 탁해지고 현실감각이 떨어져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싶을 즈음 자동차 한 대가 가까이 오더니 근처에서 멈춘다. 미란 언니가 황급히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핀다.
“은정아.”
“언, 니.”
몸에 힘이 없어 말이 띄엄띄엄 끊어진다. 내 몰골이 보기 흉하겠지. 가까이 다가서던 언니가 눈살을 찌푸린다. 내가 무슨 신생아라도 되는 양 조심스레 곁으로 와 이마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준다.
“이것아. 그러게 내가 주의를 줬잖아. 이리 될 걸 알면서도 그렇게 그가 좋았어?”
“미안해요.”
“미안하긴 네가 뭘 미안해. 다 그 거지 같은 인간 때문이지.”
언니가 역정을 들어주자 조금 기분이 나아진다. 슬쩍 미소가 새어나온다.
“웃기는. 일어날 수 있겠어?”
“제가 몸에 힘이 너무 없네요. 죄송해요. 괜히 번거롭게 만들고.”
억지로 무릎에 힘을 주고 몸을 지탱하려고 애썼다. 언니가 옆에서 어깨를 잡고 부축해주자 간신히 허리를 세울 수 있었다. 근처에 주차해놓은 차까지 가는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미란 언니에게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었다.
“언니, 정말 죄송해요. 이런 모습 보이고 이렇게까지 신세를 지다니. 제가 꼭 언니한테 진 빚 나중에 제대로 갚을 게요.”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본인 몸이나 어서 챙겨. 얼른 마음 추슬러서 회복하는 게 신세 갚는 거야. 그래야 나도 신경 안 쓰고 편해질 테니까.”
운전석에 앉은 언니가 애 돌보는 마냥 내 얼굴을 쓰다듬더니 머리를 다듬어준다. 지금은 그런 언니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 한 구석에 혼자 버려진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집으로 갈래? 혼자 있기 싫음 언니네 가도 돼. 이럴 땐 누가 옆에 있어주는 게 나을 거야.”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언니, 정말 죄송한데요.”
“그 죄송하다는 말 한 번만 더하면 언니 화낼 거다. 그만 죄송해도 돼.”
말을 꺼내기 전에 배가 요동을 친다. 내 뱃속에서 그렇게 큰 소리가 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언니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너, 배고프구나. 그럼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꾸르륵, 또 소리가 나자 언니가 킥, 소리와 함께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린다. 쑥스러워 얼굴이 뜨거워졌지만 언니가 웃는 소리에 나도 웃음이 새어나왔다. 언니가 너무 우스워 참기 어렵다는 듯이 더욱 크게 웃어젖히자 덩달아 크게 웃어댔다. 그러다 힘이 들어 배를 움켜잡았다.
“아, 언니, 그만 웃어요. 허기져서 힘들어 죽겠는데 웃으려니까 더 힘들어요. 아, 배 아파.”
언니는 웃음을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웃을 힘은 남았었는지 나도 같이 한껏 웃어댔다. 끝 간 데까지 울어대다 이제 정신없이 웃어대니 누가 보면 딱 미쳤다고 하기 좋다. 상관없다. 이미 머릿속에서 통제력은 자취를 감추었다. 하도 웃어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 때까지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언니는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웃어대다 겨우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너무 웃어 눈가가 젖어있다. 웃음이 잦아든 후 언니는 차에 달린 거울을 보며 얼굴을 가다듬었다. 현기증이 일어 잠시 눈을 감고 머리를 의자에 기댔다.
“괜찮아?”
언니가 묻길래 눈을 뜨며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그럼 우리 이제 제대로 달려볼까?”
언니는 규정 속도보다 조금 더 빨리 차를 몰았다.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싫지 않았다.
“몰랐네요. 언니가 이런 속도광인 줄은.”
“이렇게 한산한 외곽에 나왔을 때나 달려보는 거지 언제 해보겠어. 교통 혼잡한 시내로 들어서면 교통법규 완전 준수야.”
언니가 라디오를 튼다. 산울림의 회상이 흘러나온다. ‘묻지 않았지. 왜 나를 떠났느냐고. 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어머, 미안해. 노래가 너무 우울하지. 채널 돌려볼게.”
언니가 가사를 듣더니 미안해하며 다른 채널로 돌리려 했다.
“아뇨, 언니. 제가 좋아하는 노래네요. 그냥 들을래요.”
“그럴래?”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미운 건 오히려 나라고? 내 자신이 진우 씨보다 더 미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바보같이 혼자 놀아나서 속을 다 내보이고 하늘 끝까지 기뻐서 올라갔다 바닥 저 아래까지 슬퍼서 추락해버리는 몰골이라니. 지나고 나면 이해가 될지 몰라도 지금은 나라는 인간이 그렇게 어리석어 보일 수 없다. 이건 진우 씨 잘못만이 아닌 거다. 내가 그렇게 속절없이 행동했으니 진우 씨도 덩달아 맞춰준 거겠지.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제 저 바닥 아래 끝까지 퍼냈다고. 그랬는데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있으니 울컥, 하는 감정이 올라온다. 옆에서 운전하는 미란 언니의 기분이 더 나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입술을 단단히 깨물며 괜히 슬픈 얼굴 보이지 않게 고개를 숙였다.
“어디 안 좋아?”
“아니, 아니에요. 하도 울다가 웃다가 했더니 진이 빠져서요.”
언니가 심술궂은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오므린다.
“너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알지? 어쩐지 앉아있는 태도가 이상하더라니.”
“아이, 언니.”
감사했다. 언니가 옆에 있는 게 너무 고맙고 다행이었다. 혼자였으면 조금 전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어 밤새 그러고 있었을지 모른다. 숫제 살아있는 박제가 되었으리라. 한동안 얼굴을 기분 좋게 만져주는 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 조금씩 차량이 많아지고 도로 옆에 보이는 건물들이 촘촘해진다. 시내가 가까워지는 걸 알 수 있었다.
“뭐 먹을래?”
“돈까스 먹어도 될까요?”
“겨우 돈까스? 언니가 낼게. 근사한 걸 골라 봐. 이럴 때 제대로 얻어먹는 거지 언제 그러겠어?”
“돈까스로 족해요. 치즈 듬뿍 올라간 돈까스 먹을래요.”
“그래? 그럼 돈까스데쓰 갈까? 동네에서 유명한 곳이잖아.”
텔레비전 방송을 타고 엄청 유명해진 돈까스집이다. 사진 동호회 모임에서도 여러 사람이 언급을 해서 친한 사람끼리 갔다 생각지 못하게 모임 회원을 만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돈까스 얘기를 하니 더욱 배가 고팠다. 사람이 바닥까지 내려오니 남는 건 본능밖에 없는지 식욕으로 온몸이 채워지듯 허기가 졌다.
“좋아요. 지금 같으면 그릇까지 부셔먹겠어요.”
“어이구, 두 개든, 세 개든 시켜줄 테니 그릇은 먹지 말고.”
패밀리 레스토랑 느낌으로 인테리어를 한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돈까스 튀기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원래 식탐이 많은 편은 아닌데 허기가 지니 주방으로 들어가서 바로 튀겨진 돈까스를 입에 넣고 싶을 정도였다. 음식이 나오기 전 물을 여러 잔 들이키자 언니가 물 많이 마신다고 타박을 준다.
“물 그만 마셔. 그러다 음식 나오면 제대로 못 먹는다.”
돈까스가 나오기 전 스프와 샐러드가 나왔는데 또 그걸 많이 먹어댄다고 이번엔 아예 포크를 빼앗겼다.
“헤헤.”
“실없이 웃기는. 자꾸 주전부리 하지 말고 돈까스 나오면 많이 먹어. 먹고 모자라면 더 시켜줄게.”
속없는 아이처럼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진우 개자식은 싹 잊어버리라고. 경찰이라는 작자가 어디서 함부로 사람을 갖고 놀아. 법치의식은 있기나 한 거야? 양심은 어디 팔아먹었냐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사람이 어디대고 헤프게 굴러먹어, 굴러먹기는!”
대답 없이 시선을 돌렸다. ‘언니, 저도 똑같은 인간이에요. 손뼉이 어디 손 하나로 쳐지나요.’ 그 말을 차마 꺼내진 못했다.
“음식 나온다.”
다가오는 돈까스 냄새와 언니의 말에 기분 좋게 고개를 들자 누군가 멀찍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홍아리 아줌마. 그 아줌마 3인방 중 한 명. 가슴이 철렁했다. 다 들었을까? 어쩜 그 많은 장소와 시간 중에 이렇게 여기서 마주친 상황이 야속했다. 하기야 동호회 회원들이 많이 오는 곳이니 미리 조심했어야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지나친다.
“왜?”
미란 언니가 내 눈을 따라 둘러본다.
“어머? 저, 저기 홍아리 아니니?”
“네, 그런 것 같아요.”
“아이, 씨, 어쩌다 이렇게 만나니?”
“그래도 아리 아줌마는 착한 편이잖아요.”
“그래봤자 그 3인방의 한 명이야. 곱게 보일 리가 없어.”
언니가 입으로 손을 가져간다.
“아차. 설마 우리가 하던 얘기 들은 건 아니겠지?”
“신경 쓰지 마세요. 우와, 돈까스 맛있겠다.”
미란 언니는 영 기분이 켕기는지 시선을 계속 그쪽으로 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나는 앞에 놓인 돈까스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하도 다급하게 입으로 밀어 넣자 급기야는 미란 언니가 천천히 먹으라며 말려댄다.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돈까스를 먹어본 적이 있었는지 감탄할 정도로 그 맛을 보며 황홀해졌다. 입 안에서 녹는 치즈를 시작으로 소스에 젖은 돈까스가 씹혀 육즙이 퍼지자 온몸 곳곳으로 황홀감이 퍼진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더니 목을 타고 넘어가는 조각 하나하나에 감격하고 또 감격했다. 너무 맛있었다. 맛있다 못해 가슴이 벅찼다. 미란 언니가 내 감격하는 모습에 ‘무슨 애가 돈까스 먹으면서 신내림 받는 모습을 하니,’ 라며 신기해한다. 그래, 살면서 누군가 만나고 헤어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겠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 먹고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즐겁게 살면 되는 거겠지. 힘든 시간은 그렇게 어느새 지나갈 거다. 지나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기억으로 남으리라.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어가는 돼지고기가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 이 맛을 영원히 머릿속에 저장하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삶이 힘들고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 떠올리길 바란다. 삶 안에서 이런 맛이 있었다고. 그 맛 덕분에 무지 행복하고 황홀했었다고 기억해내기를. 다시 그 맛을 찾아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일어설 수 있게 격려하는 내가 되길 원한다. 다들 그러면서 사는 거 아닌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인생은 무조건 어둡고 탁하고 칙칙하지만은 않다고 깨우치며 계속 나아가는 것. 아, 행복하다. 입 안에서 퍼지는 치즈향이 너무 좋다. 다만 눈가가 그만 젖었으면 좋겠다. 이리 좋은 음식을 먹는데 왜 눈물이 나려고 하지? 아마 너무 행복해서 그렇겠지.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것만은 아니니까. 오늘 인생 최고의 돈까스를 먹는다. 평생 잊지 못할 거다. 궁극의 돈까스. 신께 감사한다. 이런 맛을 느끼게 해주셔서. 살면서 이 맛을 보게 해주셨다니 잊지 않고 살아가야겠다. 난 참 복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