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제 기억 속의 세 번째 죄는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아직 어리지만, 욕심이 자라기 시작한, 더욱이 비교란 걸 알게된 그런 나이였습니다.
돈이란 것은 많으면 좋은 것...,
하지만, 부모님께서 벌어오는 돈이란 것은 항상 한정적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가지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문구점에 가면 재미난 여러 용품들, 그 무엇보다도 맛난 불량식품, 특히나 그 한 켠에 커다랗게 세워져 있던 인형의 집 속 팔등신 미녀 인형이 정말 가지고 싶었습니다.
돈에 대해선 독하디독한 엄마는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한번 들여다 볼 생각도 말라며 엄포 놓으셨고 울며 불며 매달리기를 수 차례...,
하지만 단호히 거절당한 마음은 항상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못된 엄마, 나쁜 엄마...,
성인이 되어서 그것이 얼마나 쓸모없는 것임을 깨닫기까지, 장난감을 향한 저의 탐욕은 계속되었습니다.
가지지 못한 것의 서러움은 결국 죄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학교 친구중에서 누가 보더라도 부자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고급스러운 옷차림, 항상 공주님처럼 이쁘게 올림머리를 한, 그 친구와 친해진 어느날, 놀러간 그 아이의 집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새로운 것들의 투성이었습니다.
만화 속 공주님 방에서나 볼 법한 하얀 커텐 달린 침대, 컴퓨터가 놓여진 분홍색 책상과 여러 책들 그리고 열려진 옷장 사이로 보이는 이쁜 옷들.
이미 제 눈에 그 친구는 고귀하신 공주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
문구점에서 항상 제 눈길을 사로 잡았던, 제 키만한 인형의 집과 그 속에 팔등신 미녀 인형들이 우리집 소파보다 근사한 쇼파에서 다섯 이나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눈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마음 속 깊이 저 아름다운 것들을 만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그것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지요.
친구는 관대하게 웃으면서 "만져 봐. 괜찮아."라는 말을 했고 그것은 곧 제게 은총이었습니다.
빛나는 노란 머리, 부드러운 머릿결,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얼굴이 저를 향해 웃음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인형들을 보면서 저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서러우면서도 반갑고, 부러우면서도 고마웠습니다.
울고 있는 저를 토닥해주면서 휴지를 가져다 주는 친구의 부드러운 배려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형 놀이는 학교가 끝난 뒤, 며칠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행복했고 즐거웠으며, 친구는 착했습니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아직 유치원생인 친구의 남동생은 항상 저의 등장을 못마땅해 했습니다.
누나한테 무시하는 말투로 "저 거지 또 데리고 온거야?"라며 저를 손가락질하면서 자신의 누나가 자신과 놀지 않음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거지...,
제 옷차림이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항상 깨끗히 세탁해 주시는 엄마덕분에 결코 더럽진 않았습니다.
부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분이 나빴지요.
그 아이의 거지 발언은...,
하지만, 착한 친구의 "동생이 어려서 미안해. 내가 사과할게."라는 말로 저의 기분을 위로해 주고 있었던 터라,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늘 그렇듯 인형의 집으로 향하는 우리였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까요?
벌컥 열리는 방문, 그리고 들어온 남동생, 그의 손에는 물컵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 남동생은 화난 발걸음으로 저에게 다가 왔습니다.
그러고는 황당해 하는 저의 손에서 인형을 빼앗더니 들고 있던 물컵 속 물을 제 머리 위로 부어버렸습니다.
"꺼져! 거지야. 누나 장난감 탐내지 말고 가버리라고!"
황당함을 넘어서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제 집이 아니었지요.
당당한 그 꼬마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상할대로 상한 자존심만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제 얼굴 사이로 무너진 마음은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야!"
화를 내기 시작한 친구와 맞서 싸우는 그녀의 동생을 뒤로 하고 저는 상처받은 마음을 부여잡은 채, 집으로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꼴로 집에 도착하자, 부업을 하고 계시던 엄마는 놀란 얼굴로 저를 바라보면서 "무슨 일이야?"라며 수건을 가져오셨습니다.
엄마를 보자마자, 괜히 화가 났습니다.
인형을 가지지 못한 탐욕과 그 동생의 되바라진 발언으로 상한 자존심을 엄마에게 풀기 시작한 그저 철없고 어린 저였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가난한 건데? 짜증난다고!"
이 말을 시작으로 당황스런 눈빛 가득해 수건도 못 건네시며 그저 저를 바라만 보시는 엄마에게 더 못된 소리를 퍼붓었습니다.
제가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이렇게 당한 것 같아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엄마가...엄마가 그 인형만 사줬어도 그 친구 집에 안 갔어! 엄마가 날 무시만 안 했어도 나도 무시 안 당했다고! 엄마는 항상 내가 원하는 걸 해주지도 않아! 돈 벌잖아? 돈 벌면서 왜 나한테 해주는 것도 없는 건데? 나 거지야? 돈 없는 거지냐고? 엄마가 날 거지로 만든 거야. 친구 동생이 나보고 거지라고 꺼지래. 친구는 나에게 재미있게 놀라고 했는데, 그게 잘못된 거래. 이건 모두 다 엄마 탓이야. 그거 하나 못 사 주는 엄마 탓이라고!"
발악어린 비명은 엄마의 맘에 못이 되어 피를 철철 흘리게 박히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울먹이시는 엄마의 전화를 받으신 아빠는 문구점에서 그 아름다운 인형을 하나 사 오셨습니다.
단순하고 어리석은 저는 그저 그것이 좋았지요.
아직은 어린 동생이 신기해하며 만지려는 걸 못되게 굴면서 동생의 작은 손을 때리면서까지 귀이 여겼습니다.
부모님은 온통 저의 상처받은 마음을 걱정하셨고, 저는 제 자존심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비싼 인형 값이 사실은 동생의 유치원비에서 나온 것임을 몰랐던 저는 원하는 것을 얻어 기쁘기만 했습니다.
제 탐욕은 냉정히 웃으며 신의 법칙으로 저에게 씻을 수없는 죄를 씌웠고, 동생은 그 것으로 인해 도리어 즐거운 유치원을 갈 수없다는 우울함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는 제 옆에 유치원을 보내달라는 동생의 울부짖음이 저때문인지를 어리고 어리석은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
제게 세 번째 불행이 찾아 온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로, 능숙하고 사악하게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타고 다가왔습니다.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신기한 것 재미난 것을 즐기며 보다 좋은 것을 동경하기 시작한 때.
바로 좋은 것과 더 좋은 것에 대한 비교란 걸 알게된 나이였습니다.
장난감이란 것은 많으면 좋은 것.
하지만, 부모님이 항상 한정적인 경계를 내세우며 절제를 시키셨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가지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재미난 여러 용품들, 특히나 요즘 옆집 민우가 타고 다니는 전동 오토바이는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여느 엄마와 다름 없으신 엄마는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 하나로, 가질 생각도 말라며 간단히 단정지으셨고 떼를 써보았지만 역시 단호히 거절당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이내 곧 포기한 마음은 갖지 못한 좋은 것과 더 좋은 것으로 가득했습니다.
저의 엄마는 못된 엄마도 나쁜 엄마도 아니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 좋은 분이셨습니다.
제가 간절히 바란다고 생각한 것은 우리집 형펀에 맞지 않는 물건이며 몇 해 지나 좀 더 나이를 먹게 되면 쓸모 없는 장난감이 될 것임을 잘 아시는 현명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런 부분까지 고려할 머리가 없던 저로선 갖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간절함은 대단했지요.
성인이 되어서 그것이 얼마나 쓸모없는 것임을 깨닫기까지, 좋은 것과 더 좋은 것을 향한 저의 아쉬움은 계속되었습니다.
가지지 못한 것의 서러움.
친구에게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은 "나 한번만 타보면 안 돼?"라는 말조차 못하게 했습니다.
저의 부러운 눈길을 새침하게 바라보던 민우는 항상 부릉거리면서 저의 주변을 멋지게 맴돌았습니다.
'가지고 싶다.'
그 마음이 눈을 통해 나갈 때마다, 민우는 승리의 웃음으로 저의 주변을 일부로 빙글빙글 더 맴돌았습니다.
내일은 꼭 "나 한번만"을 말해보리라, 다짐하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저에게 의기양양한 눈빛을 보내는 민우를 부럽게 바라만 보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이었습니다.
민우 엄마가 민우와 손을 잡고 함께 씩씩거리며 우리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놀란 눈의 엄마에게 이미 모든 걸 안다는 예의 없는 말투로 공격하는 그 자세는 성인이 된 지금도 참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모자의 말에 이미 황당함을 넘어 화가 나기 시작한 엄마는 무슨 일인가 제 방문을 빼꼼 연 저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셨습니다.
서서히 그 큰 사람들 사이로 다가간 조그마한 저는 앨리스의 쿠키를 잔뜩 먹은 양, 그 화난 눈빛들 사이에 놀라 더욱더 쪼그라들고 있었습니다.
"네가 훔쳤니?"
다짜고짜 ‘뭘 훔쳤을까?’라는 생각에 빠진 순간, 엄마는 제 어깨를 잡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오토바이! 어디있냐고? 항상 부럽게 바라보고 있었다며?"
부럽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엄마 말에 동조어린 고개 끄덕거림은 더욱 제가 훔쳤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분노한 엄마의 격앙된 목소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 충분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하나 둘, 다가와 구경거리가 된 저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없는 말재간과 저를 향해 집중된 시선의 당혹스러운 때문에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미적거림은 절 둘러싼 사람들의 마음 속에 확신을 자리잡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민우 엄마의 "그게 얼마짜린데..., 자식 교육을 어찌 시키신건지...,"
빈정담은 단정어린 화난 말투가 던져지자마자, 엄마는 손을 들어 제 뺨을 가격하셨습니다.
돌아간 고개, 얼얼한 아픔...,
억울함은 물에 떨어진 새빨간 물감처럼 온 가슴에 요동치며 퍼지지 시작했습니다.
"안 훔쳤어! 내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고 왜 때려!"
이미 저를 도둑으로 단정내린 엄마의 손은 제 입에 불을 붙였습니다.
화가 나자, 작아졌던 저는 분노로 커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아픔보다 억울함에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소리소리 치는 절 민우와 민우 엄마는 팔짱낀 건방진 태도로 일관하며 “저거 봐라?”라는 사나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왜? 엄마는 내 편이 아닌데? 욕심내지 않았어. 한 마디도 못해 봤어. 한번만 타볼게. 그런 말도 못해 봤다고! 근데 오토바이를 내가 어떻게 훔쳐? 엄마는 왜? 날 의심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내 편이어야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전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억울함을 입은 채, 엄마와의 신뢰가 무너지는 불행을 겪고 말았습니다.
엄마의 눈길이 서서히 미안함으로 바뀌는 게 보이는 순간,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이 치밀어 오른 화는 저를 밖으로 뛰쳐나가게 만들었습니다.
맞은 뺨보다 절 의심하던 엄마의 눈빛에 생채기난 심장이 더 아팠습니다.
상처 가득한 심장을 달래며 떨어지는 눈물의 수치심도 모른 채, 갈 곳 잃은 제 다리는 동네 놀이터 그네에 그저 처량히 앉혀 놓았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저의 옆에 어느새 다가온 엄마는 비어있는 그네에 앉아 "미안해. 아팠지?"라고 하시며 미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화가 잔뜩난 제 마음은 쉽게 풀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흔든 그 의심도 미웠습니다.
엄마는 한참을 옆에 아무 말 없이 앉아 계셨습니다.
그러다 서서히 가라앉는 분노에 전 몸을 일으켜 "엄마 가자."라며 심드렁하게 말 했습니다.
웃는 얼굴에 환해진 미소가 이뻤지만, 오늘 맞은 뺨이 아직 얼얼해 살짝은 굳어있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민우는 미안한 표정으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어제의 건방지고 짜증났던 태도가 벗겨진 그 작아진 아이를 저는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저기...미안해. 내가 다른 곳에 세워두고는 널 의심했어. 근데 어제 엄마들 진짜 무섭더라?"
엄마? 그 아이의 언급은 더욱 절 의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어제 너 뛰쳐나가고 너의 엄마가 막 화내기 시작하셨어. 두 분이서 말싸움하시는데 후덜덜했다니까? 왜 쓸데없이 착한 아들 의심하게 만들었냐면서 너의 엄마 막 쏟아내시는데..., 진짜 우리 엄마 아무 말도 못했다니까..., 결국 우리집 차 뒤에서 발견된 오토바이 보고 엄마가 너한테 꼭 사과하랬어. 미안해."
우쭐해졌습니다.
민우의 그 눈빛에 처음으로 승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집 마당에는 민우 것보다 더 좋은 전동 오토바이가 반짝거리며 절 반기고 있었습니다.
강아지가 된 양, 펄쩍 뛰어다니는 절 보면서 엄마는 다시 한번 "미안해. 사랑해." 하셨지요.
저는 엄마를 꼭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오토바이를 타고 민우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민우는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절 바라보았겠지요?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가끔은...,
올바른 행동이 불행을 행운으로 바꾸기도 하지요.
전 그 행운 속에 승자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