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지 않았지만, 저의 나태함으로 동생에게 상처 입혔던 그 시절부터 저는 조용히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엄마에게는 동생에게 모진 년, 동생한테는 나쁜 언니가 되어 있었으니깐요.
외로운 마음에 항상 울적하고 쓸쓸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교내 영어 동아리에서 과제를 도와주던 저의 친절에 감동하여 점점 좋아하는 마음으로 발전한 첫사랑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착함은 항상 부드럽게 제 마음을 움직였고, 바라보는 눈빛 또한 사랑스러웠습니다.
손재주가 좋아 취미삼아 나무로 여러 모양을 조각하던 그 아이의 여러 작품 속에서 저에 대한 사랑이 드러날 때마다, 학교 내의 유명한 커플이 되어 가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학생이기에 가난한 데이트뿐이었지만, 손을 잡고 걷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행복감은 그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가족조차 관심을 주지 않았던 저의 꿈에 대해 그 아이는 성심성의껏 진심을 담아 받아주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대나무밭에 앉아 있는 것 같아서 행복했습니다.
학교의 모든 수업이 끝나면 '어디서 언제 만나.'라는 문자를 보내고는 친구들 눈을 피해 만나는 것도 좋았습니다.
맞잡은 손은 긴장 어리게 떨렸고, 서서히 부드럽게 껴안은 포옹 역시 포근했습니다.
그리고 다가온 첫 키스...,
달콤하다 말하기엔, 너무 떨리고 긴장해 빨리 떼어버린 촉촉함에 ‘이게 맞나?’ 싶은 어설픔도 참 따스했습니다.
하지만 학년이 높아질수록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 아래 점점 행복한 마음이 희석되기 시작한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과가 다름에 서러웠습니다.
같은 대학, 그 목표를 위해 긴 과정을 거쳐, 도착한 목적지인 수능 날에 다다르자, 너무 긴장한 탓에 시험을 완전히 망쳐버린 저의 첫 사랑은 재수는 꿈도 못 꿀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에 부딪혀 먼 지방으로 내려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3년의 노력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헤어짐에 익숙지 않았기에, 항상 보고 싶었지만 낯선 대학 생활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저는 저대로...,
그래도 놓지 않았던 그 아이의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항상 저만 바라보는 그 우직함이 정스러웠음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요.
대학 1학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의 만남을 하던 우리는 주말부부라도 된 양, 서로를 자주 볼 수 없음에 항상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군대라는 커다란 장애물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는 그저 조금 멀어졌다 생각해서인지, 그 아이와 헤어지는 것에 그저 마음 아팠습니다.
논산 훈련소에 함께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는 저의 발걸음을 막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저지르게 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다는 말씀과 함께 말입니다.
아직까지 순수했던 어린 커플은 서로의 입맞춤에 만족하고 있었기에, 어른들의 생각과 달리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런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던 우리는 아쉬움 가득 엉엉 울면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이미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느꼈던 것인지도…,
거기서부터 저의 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해군 통신병이 되었고 시간이 될 때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 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반가웠습니다.
그 아이의 어설픈 눈치 가득한 그 말투가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아직까지 느끼는 그 사랑이 좋았지만, 그러다가 "누군가가 오고 있어."라는 말과 함께 끊어버리던 아쉬운 통화는 항상 마음 속에 미련을 남기기에 충분했습니다.
점점 그 미련이 커지면서 오히려 무덤덤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짜증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론 자유로운 대학 생활이 행복했고, 그 아이가 없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아르바이트와 병행한 학업은 쳇바퀴 돌듯 굴러갔고,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면서 짜증 부리는 그 아이의 말투에 점점 더 무심해지는 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화장하면서 점점 예뻐지는 제 모습은 ‘군대에 간 그 남자친구를 기다려야 하나?’라는 아주 건방진 생각이 마음 속 가득 차오를 무렵, 소개팅도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쌓아진 정은 배신을 부를 수 없었습니다.
소개팅 주선자에게 군대 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요즘 세상에 누가 기다려?"라는 말로 무감각해져 가던 마음을 더욱더 세차게 흔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더 이상은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 느끼는 순간, 저는 저에게 끊임없이 전화하는 그 아이를 향해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방적인 분노.
그것은 죄악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마음은 아직 절 향해 있는데, 저는 이미 끝났다 단정 지어버렸습니다.
"그만하자. 이젠 널 사랑하지 않아."
수화기 너머에 무너지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저는 냉정하게 통화를 끊었습니다.
휴가 받아, 저의 집 근처를 서성이던 그 아이에게 찌그러진 미간을 쉬 풀지 않으며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그 아이 마음에 일부로 생채기 내면서 정을 끊으려 했습니다.
"네가 수능 날 긴장만 안 했어도..., 군대를 그렇게 일찍 가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어. 네가 방치 한거야. 네가 나를 방치 한거라고...,"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일관한 저에게 말문이 막혀버린 그 아이는 그저 고개만 떨구었습니다.
그렇게 저지는 죄로, 모든 것은 뒤틀렸습니다.
그 아이의 처진 어깨는 아직도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왜 그 모든 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건방지게 생각했을까요?
그 아이의 정성 하나하나가 절 향한 사랑이었음을...,
나중에 우연히 만나본 그 아이는 여자에 대한 상처가 가득한 남자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말했죠.
"차라리 그렇게 헤어질 줄 알았다면, 너 따위 여자에게 그렇게 무참히 차일 줄 알았다면, 그렇게 귀하게 지켜주지 말 것을...,"
그 말이 아직도 제 심장에 조각되어 마음 한켠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순수했던 그 사랑을 철저히 분노로 짓밟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죄악은 저를 향해 저격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
제 기억이 맞다면 다섯 번째 불행은 예고에 진학한 직후부터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미술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 함께 과제를 하면서 전해진 그 친절이 참 감사했습니다.
몸이 가까이 있다 보니, 마음이 붙어버린 듯, 그 친구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좋았습니다.
항상 우울해 혼자 있는 모습에 안쓰러워, 그 친구를 위로하고 곁을 지켰습니다.
그러다 커져 버린 마음은 어린 저에게 하나의 목표를 만들었습니다.
그 아이와 결혼하는 것.
예쁜 외모도 좋았고, 착한 마음씨는 더 좋았습니다.
항상 문자로 친구들의 눈을 피해 만날 때면, 저는 그 친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와 꿈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다가 스친 손의 감촉은 참으로 긴장 어려 좋았습니다.
그럴 때면 마주 잡은 손의 움직임이 귀여워 꼭 감싸고 그녀를 보며 웃었습니다.
첫 포옹의 느낌도 새로왔습니다.
서로 어긋난 약속 길에 전화기 배터리마저 부족해 하염없이 학교 운동장을 돌며 그녀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절 찾아 뛰어다녔는지, 헉헉거리는 그녀의 가슴 움직임은 설렜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러움이 가득했습니다.
덥석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게 그녀를 용기 내 끌어안았습니다.
제 가슴에 닿은 그녀의 부드러운 느낌이 퍽이나 저를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놀란듯 가만히 있던 그녀의 팔이 저의 허리를 감싸는 걸 느끼면서 행복했습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그녀의 작고 빨간 조그마한 입술...,
유혹적인 얕은 숨을 여전히 내보내고 있는 촉촉한 그것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도장 한번 꾹 찍어본 용기에 서로의 첫 키스를 가슴에 담아보았습니다.
놀란 토끼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너무나 예뻐서 그 촉촉하고 어설픔이 가득한 도장을 더욱더 용기 내 찍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작은 손재주로,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작은 수족관을 만들어 교내 전시회에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작은 구피들이 헤엄치는 그 수족관에 칠해진 그녀에 대한 마음 때문이였는지, 우리는 학교에서 유명한 커플이 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그녀와 저의 대학 진학은 다가왔습니다.
공부를 잘했던 그녀는 경영학과를, 미술을 잘하던 저는 디자인과를 지원한 터라, 과는 다를지라도 같은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수능 날 너무 긴장한 제 여자 친구는 심하게 위경련을 일으키며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급차에 실려 시험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이미 준비해둔 모든 것을 완벽히 끝마쳤지요.
시험이 끝나고 전화 너머 눈물 가득한 목소리를 들었을 때, 마음 한쪽이 무너져 내림을 느꼈습니다.
당연히 저와 그녀가 함께 다닐 것으로 생각했던 행복한 캠퍼스의 꿈이 깨졌다는 사실은 그녀와 제게 서로 상처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아마도 저의 다섯 번째 불행이 시작된 것이...,
그녀는 재수 학원에 다니며 그 누구보다 모질게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한 번씩 찾아갈 때면, 볼멘 소리로 "나 공부해야 해."라는 싸늘함에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깊게 자리 잡은 다크서클과 화장기 없는 얼굴을 보면서 그녀의 힘듬이 이해되고 안쓰러웠습니다.
볼멘 소리를 듣더라도 저는 학교가 파하고 아르바이트가 끝날 때면 그녀에게 쪼르르 달려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흐른 1년 속에서 그녀와의 어색한 만남에도 저는 그녀가 여전히 좋았습니다.
독하게 공부한 그녀는 제가 다니던 대학에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가 들어도 “와!” 감탄할만한 대학에 합격한 그녀의 얼굴은 다시 수능 보기 전 그때의 밝음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더욱더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어느날, 그날은 제게 입학을 앞둔 그녀와의 약속에 즐거운 데이트가 될 것이라 아침부터 기대한 그런 날이었습니다.
시험이 끝나서일까요?
카페 안에서 기다리던 더욱더 아름다워진 그녀의 얼굴은 정말 다시 보아도 사랑스럽고 행복했습니다.
그녀에게 걸어가면서 저는 이제부터 펼쳐질 그녀와의 추억에 설레고 있었습니다.
막 들어간 대학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그녀를 위해서 운전도 배우고 조금 돌더라도 항상 데려다줄 예정이었습니다.
제 차에서 내리는 그녀의 모닝 키스를 받으면서 행복해할 저의 얼굴은 정말 상상만으로도 짜릿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성인임을 인정하면서 고등학교 내내 지켜왔던 그녀의 모든 것을 제 것으로 만들 예정이었습니다.
그동안의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받듯, 함께 떠난 여행에서 서로의 마음을 미친듯이 확인하려 생각했습니다.
변하지 않은 제 마음에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것을 말해주면서 그동안의 기다림에 많이 갈증난 저의 욕구로 그녀의 입술을 서서히 탐하다가, 마주친 눈빛이 사랑스럽게 뜨거워 달아오르면 몸을 주체할 수 없어, 처음으로 그 아름다운 몸에 저의 온 체취를 섞어 날개옷을 뺏긴 선녀처럼 저의 옆에 붙잡아 둘 생각이었습니다.
완벽히 내 여자가 되면, 사랑하는 저의 마음을 무시한 채 ‘멀리 가버리지 않을까?’란 걱정을 덜어낼 수 있을 거 같아서 온통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차츰 짙어만 가는 냉정함에 온 몸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눈빛은 예전에 절 바라보던 그 사랑스러움이 없었습니다.
자리에 앉은 절 바라보면서 그녀의 첫 마디는 싸늘한 “헤어지자.”였습니다.
아직 마음의 정리가 끝나지 않았던 저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떨리는 손을 겨우 붙잡고 있었습니다.
1년의 기다림은 무엇인지...,
이미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것처럼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녀는 먼저 시킨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며 더욱더 냉정히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 인연은 이미 내가 수능에 떨어졌을 때부터 끊어졌어. 재수할 때부터 너한테 느꼈던 그 자괴감..., 학원에 왜 찾아오지 말라고 했는지 알아? 널 보면 괴로웠어. 대학생인 너와 재수생인 나..., 공부도 잘했어. 내가 훨씬..., 혼자 붙고 나서 나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없었던 너의 그 철딱서니 없는 모습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었어. 그때부터야. 재수 학원 다닐 때는 관상용이였고, 지금은 필요 없어진 것뿐..., 내 사랑은 끝났어. 그러니 나타나지 마. 재수 없는 자식아."
그녀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저의 기다림을 잘난 척으로 왜곡하고 있었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다 이해가 됩니다.
"제발, 내 마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해되지만, 억울한 마음은 눈물이 되어 부끄럽게도 볼을 타고 턱끝에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분노어린 눈을 풀지 않으며, 저를 향해 말했습니다.
"너의 그 착한 척이 재수 없었어. 위해주는 척, 보고 싶어 하는 척. 자괴감이 느껴지게 하는 그 모든 말투가 싫었어. 재수 학원에 매번 찾아와서 나의 엄청난 몰골을 확인하고 그냥 가버리는 꼴..., 이 말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헤어져. 이 개자식아."
그녀의 분노는 저에게 여자라는 존재를 한동안 부정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뭘 잘못했을까요?
아니면, 제가 그녀를 무시했어야 했을까요?
전 여전히 그녀의 분노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첫사랑을 잃었고, 사랑하는 그녀가 나타날 때까지, 어떠한 여자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첫사랑은 그렇게 슬펐습니다.
나이든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지요.
“첫 사랑을 잊는데는 칠 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두 번째 사랑은 일 년, 세 번째 사랑은 한 달, 그 이후의 사랑은 며칠이면 된다.”
이 기간에 대한 수치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진리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첫 사랑을 허무히 잃음은 그 시절, 큰 고통임은 틀림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