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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를 위하여
작가 : 그라시아스
작품등록일 : 20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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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행복해질 수 없는 삶에 찾아오는 행복
작성일 : 19-09-09     조회 : 41     추천 : 0     분량 : 4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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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끔찍한 기억은 지워버리고 싶은 당사자의 의지와 달리 쉽게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의 죄악은 화려한 불빛의 유혹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뻤습니다.

 

 누구보다 빛나던 저였지요.

 

 스스로에 도취되어 교만했던 나약한 어린 시절 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이것은 하나의 시험이야. 스스로 무너져선 안 돼. 그 찰나의 즐거움은 곧 사라지고, 삶은 내게 책임을 묻게 될 거야.”

 ​

 

 그러나, 반짝거리는 친구들과 함께 그 누구보다도 환했던 저는 그 광분된 사람들 틈바구니를 죽을지도 모르고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달려들었습니다.

 

 의지는 나약했고, 저에게 유혹적이게 다가온 술은 점점 저의 정신을 사라지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눈치빠르게 이 불이 자신을 태워버릴 거란 걸 알아챈 몇 명의 친구들은 만취한 저와 다른 친구들을 두고 떠나버렸습니다.

 ​

 

 그리고, 그 불길 속에서 하얗게 질려버린 저에게 찾아온 생명...,

 ​

 감히 끊어낼 수 없었습니다.

 ​

 뛰고 있는 작은 심장의 움직임과, 초음파상에서 둥실 떠 있는 귀여운 모습에 저는 온 마음은 이미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

 냉정한 의사 선생님은 "이 세상은 아가씨가 애 키우면서 살 수 없어요." 지우기를 설득했지만, 저 조그맣게 뛰고 있던 심장을 차마 제 손으로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

 그 심장을 지키고자, 무너지고 금이 가버린 제 심장을 붙잡으며 찾아간 엄마 집에서 떼어지지 않는 입으로 겨우 말을 이었습니다.

 ​

 하룻밤의 만남이란 말은 차마 하지 못한 채...,

 ​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고 성격 차이로 헤어졌으며 아기가 생겼다고...,

 ​

 그런데 그 남자를 만나기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짓말과 함께 엄마 또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

 절실한 신앙으로 생명의 중함을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생각했던 엄마는 아이를 함께 키워는 것에 동의해 주셨습니다.

 ​

 

 이제 막 들어간 회사에 감히 말할 수 없어, 점점 부푼 배를 큰 옷으로 숨기면서 힘들게 다니고 있었습니다.

 ​

 임신하니, 감정의 소용돌이는 걷잡을 수 없이 거셌습니다.

 ​

 밤마다 제 머리를 쥐어뜯는 일상은 계속되었고, 교만이라는 죄에 휩싸여 함부로 불결해진 몸을 보며, 살갗이 벗겨지게 닦고 또 닦았습니다.

 ​

 그러다가, 빨개지고 피가 나 딱지진 저의 몸뚱어리를 끌어안고 엉엉 우시는 엄마의 모습에 정신을 차리기 일쑤였습니다.

 ​

 점점 어두워지고 트러블이 생기는 얼굴빛에 걱정스러워 하는 동료들을 어색한 웃음으로 "괜찮아."라고 하면서 버티는 하루하루는 지옥이었습니다.

 ​

 다행히도 뱃속의 어여쁘고 착한 아가는 엄마가 힘든 걸 느끼는 것인지 입덧 한번 안 시키며 자신의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

 사랑스럽게도 작디작은 그 아기는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엄마를 걱정하는 듯 만삭 때까지 자신의 몸무게를 늘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

 그 또한,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웠습니다.

 ​

 가장 끝까지 티 안 나게 회사를 다니다가 별다른 가십에 휩싸이지 않고 몸이 좋지 않아서 퇴사한다는 핑계와 걸맞는 얼굴빛 덕분에 저는 다가온 출산을 혼자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

 출산의 고통은 저의 죄에 대한 벌인 양, 엄청났습니다.

 ​

 난생 처음 겪는 극심히 뒤틀리며 찾아온 고통은 죽음까지 생각하게 할 정도로 위협적으로 다가왔습니다.

 ​

 그럼에도 아랫배에 없는 힘을 쥐어짜 버텨 보았습니다.

 ​

 고통은 1분 간격으로 찾아왔고, 힘이 없는 산모의 배는 연신 간호사가 눌렀습니다.

 ​

 겨우겨우 6시간 만에 태어난 작은 아이...,

 ​

 야무지게도 2.5킬로 밖에 안 되던 그 아기는 울음을 멈추고 똘망거리는 눈망울로 인큐베이터를 거부했습니다.

 ​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모습에 저는 보자마자 결심했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온갖 시선을 받겠지만, 이 아이를 위한 삶을 살 것이라고 말입니다.

 

 ​

 제 죄로 태어난 아이...,

 ​

 이것은 저에게 벌이자, 축복이었습니다.

 ​

 

 ***

 

 

 그날은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

 올린 기획서들은 상사의 마음에 들었으며, 오랜만에 듣는 긍정적인 반응은 신선했습니다.

 ​

 외국에서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제는 결혼 약속한 여자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더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

 저녁 7시쯤, 공항에 도착하는 그녀를 마중 나가기에 오늘은 정말 분위기 좋은 날이었습니다.

 ​

 야근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된 일은 정시 퇴근의 눈치를 막아주면서 저의 하룻밤을 응원하는 거 같았습니다.

 ​

 공항에서 그녀를 만나면 바로 그녀의 오피스텔 근처 마트로 가서 오랜만에 항상 꿈꾸왔던 신혼부부 모습으로 빙의해 카트의 한쪽 끝을 잡고는 팔짱을 낀 채, 그녀가 좋아하는 알리오 올리오 재료와 와인, 그리고 과일 몇 가지를 사서 그동안 비워져있었던 그녀의 오피스텔로 행복한 기분 가득해 향하게 될 것이라 상상하는 맛이 정말 좋았었습니다.

 ​

 뜨거운 불 앞, 텔레비전 속 셰프들처럼 그녀를 위해 파스타를 만들고 멋스럽게 접시에 담아 그녀에게 가져가 디캔딩한 와인을 잔에 따르며, 은은하게 켜진 촛불을 바라보고 "사랑해" 한 마디와 함께 유혹적이며, 뜨겁게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오랜만에 자극적인 식사를 하게 될 것이 좋아서 계속되는 웃음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었습니다.

 ​

 그리고 와인에 취한 그녀의 눈빛을 탐닉하면서 제 넥타이를 잡고 저돌적인 자세로 이끄는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익숙하면서도 너무나 그리웠던 입술을 찾는 거로 분위기를 띄우고는 한 달 동안 잊지 못하게 그리웠던 그녀와의 데이트를 즐길 걸 생각하면 오늘의 이 잘된 일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

 이 모든 것이 불행의 시작인 줄은 알지 못한 채...,

 ​

 멍청하게 저는 이 모든 상황에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

 공항에서 그녀의 모습이 나타나자마자 격렬한 포옹과 함께 사람들이 보든 말든,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입술을 취하는 것까지 좋았었습니다.

 ​

 그녀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을 잡고 운전하는 그 순간에도, 저는 작게 울리는 그녀의 웃음소리에 갇혀 있었습니다.

 ​

 불행은 저의 행복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

 커다란 소리가 귓가에 지나가며 소리 나는 쪽으로 돌린 시선 너머에 역주행하는 빨간 외제차가 앞에 차들을 들이박고 제 차로 돌진하고 있었습니다.

 ​

 잡은 손에서 식은땀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제 옆의 앉은 그녀의 비명에 저는 정면에서 달려오는 역주행 외제 차를 향해 미친 듯이 경보음 울리며 핸들을 돌렸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온 그 차는 급하게 꺽은 저희 차의 조수석 옆구리를 강하게 받아버렸습니다.

 ​

 신기하게도 갑자기 시간은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

 깨지는 조수석 유리창에 흔들리는 그녀의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 파편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막히고 있었습니다.

 ​

 팔을 들어 보려 했지만, 제 행동이 너무 느려서 답답했습니다.

 ​

 서서히 올라가는 팔에, 그녀는 이미 기절한 듯,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

 에어팩은 터지고, 하얀 막에 가려진 시야는 더욱 상황을 악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

 달리는 속도, 틀어진 각도...,

 ​

 차는 자신의 움직임을 이기지 못하며 뒤집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

 몸 이곳저곳은 너무 아파왔지만, 옆에서 미동조차 없는 그녀가 너무 걱정되어 저는 겨우 올라간 팔로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습니다.

 ​

 "으."

 ​

 작은 신음…,

 ​

 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

 살아있었고, 사이렌 소리도 들렸습니다.

 ​

 불행은 여기서 마무리 되는 듯했습니다.

 ​

 그때였습니다.

 ​

 다리 쪽에서 느껴지는 뜨겁다 못해 미칠듯이 타는 고통스러운 느낌이 가득해졌습니다.

 ​

 연료가 새는 것이었을까?

 ​

 다리에 불이 붙어버림에 당황하고 무서웠습니다.

 ​

 매캐한 냄새가 코끝에 다가왔고, 다리의 느낌은 너무 끔찍해 공포에 가득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

 소방관들이 다가와 문을 뜯어내기 시작하자마자, 저는 다급히 옆좌석의 그녀를 가리켰습니다.

 ​

 "제발, 살려주세요. 제 옆에 여자를 살려주세요."

 ​

 소방관들은 저와 차를 번갈아 보면서 힐끗 보더니 "시간이 없어. 빨리..., 빨리."라면서 그녀가 있는 반대편 문 쪽으로 몇 명이 가서 매달리며 문을 떼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

 쉽게 열린 제 문에 비하면, 부딪히는 충격 때문이었을까요?

 ​

 그녀가 있는 쪽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

 제 다리는 종아리 아래부터 심각하게 타버렸지만, 그 고통은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

 다만, 절 끄집어내는 소방관을 향해 그녀를 살려달라 고래고래 소리쳤습니다.

 ​

 "네, 네…, 사장님 다리부터 치료합시다. 지금 부상이 심각하세요."

 ​

 소방관의 친절하고 안전어린 권유로 그녀에 대한 걱정을 접고 구급차로 이동하는 순간.

 

 펑.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달려오는 소방관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

 "안 돼! 안 돼!"

 ​

 그녀를 잃고, 정신도 잃었습니다.

 ​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습니다.

 ​

 ‘그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번쩍 떠지는 눈 그리고 제 눈앞에 눈물 가득하신 어머니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

 "어머니…, 미진이?"

 ​

 첫마디는 이미 상견례까지 마친 제 여자친구의 안부였습니다.

 ​

 제 말에 어머니는 그저 눈물만 흘리고 계셨습니다.

 ​

 "악!" 머리를 쥐어뜯고, 울부짖었습니다.

 ​

 몸을 일으켜 링거를 빼고 이불을 걷는 순간, 저는 경악을 하면서 다시 더 크게 소리지르기 시작했습니다.

 ​

 저의 소리에 놀란 의료진들이 진정제를 놓을 때까지...,

 ​

 저는 진정제 기운에 다시 쓰러져 기운 빠진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

 아프디아픈 마음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진정제 맞기를 몇 차례...,

 ​

 무릎 아래로 사라진 양다리의 불편함 덕에 목숨을 버리기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

 어머니는 항상 제 옆에서 저를 지키고 계셨으니까요.

 ​

 어머니의 눈물로 조금씩 마음의 피고름이 씻어져 내려갔지만, 그 무식하게 흉진 자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

 마음이 아프니,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

 촉망받았던 아트 디렉터...,

 ​

 잘 나갔던 과거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

 미진이가 없는 세상은 아무런 살아갈 의미가 없었습니다.

 ​

 어머니의 눈물만 아니면...,

 ​

 살아 남음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

 병원에 누워있던 저는 제 불행의 흔적을 쫓아가다가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

 제 불행은 계속 저를 저격하기 위해, 제가 행복해지기를 기다렸다는 것 말입니다.

 ​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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