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분주히 서두르던 아들이 떠난 후, 묘한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 어머니는 집 안 구석 구석 청소를 하시기 시작했다.
정신 없이 현관에 놓인 휠체어를 접어 신발장 옆에 세우시고는 웃는 낯으로 거실 정리를 하셨다.
전동휠체어는 높은 현관 턱을 넘지 못하는지라, 집 안에 들어올 때면 직접 손으로 미는 일반 휠체어로 갈아타기에, 아들이 출근하면 언제나 잘 닦아서 신발장 옆에 세워 놓으셨다.
그리고는 더욱 꼼꼼히 거실 이곳저곳을 살피시며 두 사람 밖에 살지 않아 딱히 매일 청소가 필요 없을 거실 정리를 하신 후 아들의 방으로 향하신 어머니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흐르셨다.
“에구 이런 정신 머리 하고는. 꼼꼼한 애가 오늘 급하긴 했나보네. 목발을 두고 가다니. 분주히 서두르더만, 나라도 챙길 걸.”
어머니는 아들의 방, 책상 옆에 세워져 있는 외로운 목발을 닦으시며 무척 속상해 하셨다.
전동 휠체어는 편하지만, 조금 높은 턱은 오를 수 없으며 무게 때문에 성인 남자 서넛이 들어야 옮길 수 있어서 외출 때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필수인 것이 목발임에도 놓고간 아들 걱정은 웃는 낯을 걱정 가득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동차 사고 당시, 발생한 화재로 두다리를 잃고 의족을 착용하였으나, 재활 치료를 받지 않았기에 목발을 사용해도 짧은 거리조차 보행에 어려움이 컸다.
이런 사실을 잘 아시는 어머니셨으니 목발을 두고 간 아들 걱정에 저절로 탄식이 연이어 나왔다.
“에휴, 어딜 간 건지 알아야 가져다 주지."
***
갈매기에게 뺏겼던 시선을 치우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사이, 시간은 어느덧 흘러 점심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산이 뱃속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에 그는 한참을 뛰어다녀 땀 범벅이 된 산이를 번쩍 안아 무릎 위로 앉히며 "식사하러 갑시다. 우리 산이 배고프구나."라고 말하며 산이의 땀 투성이 된 머리를 "이긍" 매만지는 그녀를 향해 부드러이 웃음을 보이는 그였다.
"우리 산이 뭐 먹고 싶어?"
다정스레 아이의 볼을 맞대고 묻자 산이가 "꼬기 먹을래요. 꼬기." 라며 꼬르륵 거리는 뱃 속 소리와 함께 급하게 대답했다.
"그래. 고기 먹자. 고기"
횟집이 즐비한 바닷가에서 고기쟁이 아들 덕분에 주변을 둘러보며 고깃집을 찾던 그녀는 그의 무릎에 앉은 산이를 내려다보며 찾기 힘든 곳보다 들어가기 쉬운 음식을 권해 보았다.
“산아, 여긴 바닷가라서 고깃집이 없을 것 같아. 우리 칼국수 먹을까? 우리 산이 칼국수 좋아하지?”
허나 마음을 정한 고집스런 꼬마의 답변은 그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싫어, 난 꼬기 먹고 싶어! 꼬기 먹자 엄마. 아찌 꼬기 먹어요. 응?”
엄마 한번 올려다보며 조르고, 동진 아찌 한번 보며 조르는 산이가 그저 귀여운 그는 허리에 양손을 올린 채 산이를 내려다 보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거 먹어요. 산이가 좋아하는 것 많이 먹고 행복한 게 우리도 좋잖아요. 그렇죠?”
아이 투정을 거르지 않고 다 받아주는 그가 고마워, 자신의 허리에 올린 양손을 풀고 한숨 한번 길게 내쉬고는 주변을 다시 둘러 보며 그녀가 말하였다.
“고깃집은 보이지도 않는구만, 어디를 가야 할까요? 하여튼 산이는 고집쟁이라니깐. 에휴.”
그녀의 한숨에 옆을 지나던 백발의 노파가 힐끔 그녀를 쳐다보더니 불쑥 말을 건넸다.
“저기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돌믄 나오는 먹자 골목에서 바닷가로 쯔기로 쭉 들가면 방파제 근처에 고깃집 나와. 이 근방에서 육고기는 그 집만 혀지. 멀리 갈 필요 없다고.”
갑자기 말을 걸어온 노파에게 일제히 시선을 돌리며 자세한 설명에 동시에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할머니 감사해요.”
그녀는 자신의 곁에 선 노파에게 감사를 표하며 흰머리 가득함에도 노파의 꼿꼿한 허리에 감탄하였다.
이들 일행의 감사에도 무심한 반응을 보이며 되려 전동 휠체어에 앉은 그에게 노파가 질문을 건넸다.
“이거 손으로 바퀴를 애써 밀지 않아도 슬슬 굴러 댕기는 휠체어지? 이거 많이 비싼가? 참 편해 보이는구먼. 부럽네. 좋것어.”
그의 전동 휠체어가 부럽다는 노파의 황당한 말에 기도 안 찬 그녀는 그의 마음이 상했을까 염려되어 살며시 그를 바라보았으나 그 부럽다는 전동 휠체어에 앉은 그의 표정은 오히려 밝고 환한 미소까지 띄며 친절히 노파에게 답변하고 있었다.
“예, 아주 편합니다. 살려면 비싸긴 한데, 어르신들과 중증 장애인들에게 나라에서 지원하고 있어요. 할머니도 구해 보시게요?”
그의 무릎에 앉은 산이도 거듬에 한몫하였다.
“이건 동진 아찌 거예요. 그런데 참 좋아요.”
똘망똘망 눈을 빛내며 말 잘하는 아이가 귀여운지 노파가 손을 들어 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의 전동 휠체어가 아직도 부러운지 시선을 계속 고정하고 있었다.
긴 백발을 틀어올려 비녀를 꼽았으나 꼿꼿한 허리 덕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노파인지라, 전동 휠체어가 편해 보인다는 말에 빈정 상했지만, 실례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어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그녀였다.
“할머니는 젊은 사람 못지 않게 정정하셔서 전동 휠체어 없이도 괜찬으실 것 같으신데요? 길 안내 감사합니다.”
그녀의 말 속에 뼈가 있음을 느꼈는지 노파는 겸연쩍게 웃으며 “에고, 미안혀. 내가 말 실수 했나 보네.”라며 말하고는 일행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
노파의 설명은 정확해, 방파제 근처 언덕 위에 횟집들로 둘러 싸인 곳에 ‘충남 갈비’라는 이질적 간판이 보였다.
“주인이 충청도 분인가 봐요.”
멀리서 간판을 가리키며 그녀가 말하자, 동진의 무릎에 앉은 산이의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바닷바람을 타고 숯불 갈비 냄새가 그들에게 전해오자 누구라 할 것 없이 식욕이 돋아 기분 좋게 꼬르륵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들의 즐거움은 고깃집 문 앞에서 막혀 버렸다.
전동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턱…,
도로를 향해 시원스레 문을 낸 고깃집의 유리 자동문이 열리자, 양념된 갈비를 숯불에 굽는 냄새가 자극적으로 유혹하는 가운데, 바닷가 근처라 그런지 문 앞에 턱을 높이 세워 도로에서 빗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도록 되어 있었다.
성인 남자에겐 아주 작은, 심지어 산이에게도 조금의 방해조차 되지 않았다.
산이는 휠체어에서 폴짝 뛰어내려 이미 자리 잡고 앉아, 문밖에서 난처해 하는 그와 그녀를 바라보며 해맑게 들어오라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누구의 출입에도 방해되지 않을 작은 턱이었으나, 그에겐 달랐다.
전동 휠체어는 무거웠고 의족은 꼈지만, 걸을 수 없었다.
하필 목발을 두고 온 것은 그의 불행이며 행복한 순간에 잠시 잊었던 장애를 다시금 그에게 인식시켜 주었다.
목발 없이 의족으로만 걸어 들어가기엔 다리의 힘이 부족했고 그녀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 앉은들 이후에도 불편함은 여전할 것 같아 전동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는 것이 망설여졌다.
‘동진 씨에겐 이 작은 턱마저 넘을 수 없구나. 하..., 산이에게 미안하지만, 함께하지 않으면 이곳은 의미가 없어.’
그런 그의 마음을 그녀도 느낀 것인지, 시선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 숙인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고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이미 테이블에 자리잡은 산이의 손을 잡아 끌었다.
하지만 고기 굽는 냄새에 마음을 뺏긴 산이는 엄마가 손을 잡아 끌어도 쉽사리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산아, 바닷가에 왔으니 굽는 고기 말고 물고기 먹자. 칼국수 먹고. 물고기 구워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싫어. 싫다고. 난 여기서 꼬기 먹을 거야."
한참을 실랑이 속에서 억지로 엄마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 선 산이의 표정은 이미 울상인지라, 미안한 마음 한가득 된 그는 더욱 죄인이 되어야 했다.
고기를 먹고 싶어 떼쓰는 아이의 손을 끌어 가게를 나선 그녀에게 가게 안을 바삐 돌아다니던 종업원들과 손님들의 시선이 모였고, 사람들의 의아한 표정은 문 밖, 그가 앉은 전동 휠체어에서 그제야 납득하기 시작했으나 남의 일이기에 흥미롭게 바라보기만 했다.
이런 소란 속에서도 문 앞, 카운터에 앉은 가게 주인은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구경만 할 뿐,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녀가 달래보아도 아직 어린 입맛이라 양념된 육고기를 더 좋아하는 산이에게 엄마의 제안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워 가게 밖을 나와서도 투정이 계속 되었다.
“난, 생선 싫은데. 꼬기 먹자 엄마. 꼬기! 응? 엄마 꼬기?”
보채는 산이를 달래도 어리기에 철없는 산이의 행동은 여전하였고, 이 모둔 것을 자신의 탓으로 생각해 그가 마음 불편해 할까 걱정스러워 조급한 마음에 언성이 높아지는 그녀였다.
그제야 높아진 엄마의 음성에 산이는 코끝을 간지르는 숯불 갈비 냄새를 뒤로 하고 퉁퉁 부은 얼굴로 더 보채지 못한 채 그의 무릎 위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전동 휠체어 위엔 고개 숙인 그와 그의 무릎에 앉아 고개 숙인 산이가 더해져 그녀의 속을 답답하게 뒤집어 놓았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주위를 둘러 보았으나 바닷가의 특성 상 횟집만 즐비할 뿐, 산이가 바라는 고깃집은 이 가게 말고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에 앉아 이들을 말없이 지켜보던 중년 사내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더니 조금 전 고깃집을 안내해 주던 노파의 음성이 들려왔다.
“에구, 미안혀. 우리집 턱이 좀 높았지? 내가 먼저 왔어야 허는디 약국들려 파스 좀 사오느라 늦었네.”
언제 왔는지 하얀 비닐봉지를 손에 쥔 노파가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그들의 뒤로 걸어오던 노파를 먼저 알아본 가게 안 중년의 사내가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몸을 앞뒤로 흔들더니 카운터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카운터를 벗어난 중년 사내를 향해 시선을 돌린 그녀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중년 사내는 무덤덤한 얼굴로 계속 앞뒤로 몸을 흔들었고 그 흔들림에 따라 어깨도 들썩이며 미끄러지듯 이동해 문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가게 문 앞에서 멈췄다.
휠체어.
두다리가 없는 듯 푹 꺼진 바지단으로 다가온 중년 사내는 손으로 미는 불편한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그것 역시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
“내가 미안혀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겠는가?”
난데없는 노파의 제안에 그녀는 대답을 망설였지만, 노파는 전혀 개의치 않고 가게 안으로 소리쳤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노파의 양손은 바삐 움직였다.
‘수화?’
노파는 가게 안으로 소리쳐 젊은 종업원을 부르는 한편 수화로 휠체어에 앉은 중년 사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 명규야! 경석아! 뭐 허냐? 어여 이리 와 봐라.”
노파의 부름에 가게 안에서 젊은 사내들이 나오더니 전동 휠체어를 힐끔 쳐다보곤 노파에게 느릿느릿한 충청도 사투리로 물었다.
“할머니, 왜요?”
노파는 또랑또랑한 말투로 지시를 내렸다.
“너, 언능 가서 우리집 뜰에 상 좀 봐라. 아무래도 이분들은 가게보다 마당이 조용허니 편허실 것 같다. 뭐허냐? 어여 안 가고?”
노파의 지시에 젊은 종업원중 한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 상차림을 준비하였고 중년 사내도 휠체어를 돌려 가게 안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가게의 분주함에 그와 그녀의 시선은 의아함을 담아 노파에게 고정하였고 그들의 의아한 표정에 환한 미소로 응대하며 노파가 조곤조곤 설명하였다.
"우리 아들도 휠체어 타. 어려서부터 귀가 안 들렸는디, 그만 뒤에서 차 오는 소리를 못 들어 두다리마저 잃었지. 사실, 가게 앞 문턱은 우리 아들도 혼자서는 못 넘어. 우습지? 원래 문턱대신 인도로 경사를 만들었는디. 구청에서 인도는 우리 땅 아니라믄서 행인에게 방해된다고 해체해 버렸어. 덕분에 우리 아들은 가게 주방과 연결된 집을 통해 밖으로 나오게 되었지. 아깐 우리 아들 생각나서 전동 휠체어 물어본 건데 마음 상하게 해서 미안혀. 나 죽기 전에 꼭 구청에 민원 넣어 문턱대신 인도로 경사 만들어야 하는디. 에휴. 아무튼 불편하게 해 미안혀구먼. 자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내 뒤를 따라들 오시게. 귀찮것지만, 이것도 다 추억이니께. 아가, 꼬기 먹자.”
장황한 노파의 말을 모두 이해하진 못했지만, 배려 가득한 말투와 눈빛에 일행은 머뭇거리지 않고 뒤를 따랐다.
가게를 돌아 뒤로 나가니, 가게와 연결된 단층 집이 나왔다.
열린 대문으로 들어가자, 넓은 뜰과 바다로 향한 낮은 담장이 눈에 들어왔고 바닷가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자리한 탓에 한눈에 멀리 수평선까지 시야가 들어올 정도로 탁 트인 전경이 인상적이었다.
어느새 준비했는지 뜰엔 젊은 종업원이 마련한 파라솔과 식탁이 놓여 있었고 고급스럽진 않지만 하얀 의자가 풍경과 어울려 보기 좋았다.
그 옆에 준비된 바베큐용 그릴 위에선 산이가 좋아할 갈비가 유혹적인 냄새로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편히 자리잡고 식사들 혀. 여기 석양이 꽤 멋지니 천천히 들다가 해 저무는 거 꼭 보고 가고. 우리 아들이 고기 구워 나를 테니 걱정혀지 말고 편히 들어. 아가 많이 묵으렴.”
휠체어에 딱 맞는 높이…,
에어컨은 없었지만, 햇볕을 가릴 파라솔 아래에 함께하여 좋았고 탁 트인 풍경이 더없이 훌륭했다.
그녀가 노파에게 연신 감사를 표하자, 손을 내 저으며 감사할 것 없다 노파가 말하였다.
“감사할 것 없구먼. 먹고 돈낼 거 아닌가? 공짜도 아닌데 왜 감사를 혀? 오히려 손님을 문전박대할 문턱 맹근 내가 미안허지. 어여 편히들 앉고. 난 가게 가 봄세. 우리 아들도 고기 다 구우면 가게 들어갈 건디, 저 문에 소리치면 가게 주방에서 들리니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그럼 편히들 들어.”
열린 대문 사이로 고깃집의 벽을 두른 통유리가 시원스레 들어왔기에, 식사 중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하는 식사 내내, 산이는 그의 무릎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참… 좋군요. 생각보다 시원하고 풍경이 너무 좋아요. 더구나 산이가 맘에 들어 하니, 참 다행이에요."라며 눈앞에 펼쳐진 바닷가 풍경을 가리켰다.
"정말 고마운 할머니세요. 산이가 실망하는 것이 싫었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모두가 함께해 정말 다행이에요.”라 말하며 그를 바라보고는 싱그럽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 참 예뻤다.
그리고는 그가 가리킨 풍경에 시선을 옮겨 함께 한곳을 바라보며 수줍게 말을 이어 나갔다.
"천만 원을 구걸할 때, 전 모든 걸 내려 놓았어요. 수치심, 자존심…, 이런 거 다 버렸죠. 그러고나니 악과 깡만 남아 있어요. 살아야겠다. 잘 살아야겠다. 사신이 내 목을 잡고, 산이를 위협해도 살아야겠다. 그때 나타난 선생님은 저의 행복이십니다. 당신 덕분에 전 살 수 있었어요. 오늘도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감사한 눈빛 가득 담은 그녀의 모습이 눈부셔 말을 잃은 그였다.
마침, 젊은 사내가 "여기 많이 더우실 텐데…,"라며 집 안에서 선풍기를 가지고 나와 그들을 향해 틀어준 덕에 쑥스럽게 잠시 고개 돌릴 수 있었다.
그는 탁자와 높이가 잘 맞는 전동 휠체어 위에 앉아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휠체어에 탄 중년 사내에게서 집게를 건네 받아 그릴에서 직접 고기 굽는 그녀의 모습이 예뻐서 힐끔 한번씩 바라보다가, "엄마. 심심해."하는 산이에게 집에서 챙겨온 피규어를 가방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처음 본 피규어에 산이는 "야호!" 하면서 무척 신나하였다.
사고 이후, 바라보지도 않았던 그것들이 누군가에 의해 의미를 가지니 새삼스레 삶이 너무 좋은 그였다.
이 작은 피규어를 선물함으로, ‘집과 구둣방만 오가는 생활로 그저 인생 이리 살다 죽지. 뭐’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 모자와 함께함이 좋은 건 무슨 이유일는지…,
저 여자의 남편으로, 이 피규어에 행복해하는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로 살고 싶은 생각에 살짝 도리질하며 헛된 희망을 멀리 밀어내 보았다.
혼자 오롯이 애를 키워야 하는 사람.
장애가 있는 그는 자신의 다리를 손으로 슬며시 만져 보았다.
그러다 느끼게 된 것.
짐…,
그는 그녀에게 또 하나의 짐이 될 수 없었다.
"다 됐어요. 고기 드세요. 사장님 여기 앞접시 두 개요!"
"내가 먹을 수 있어요. 괜찮아요."
그녀의 챙김에 괜히 사양하는 그의 모습이 쑥스러워 보였다.
"산이 이리와. 엄마가 안아 줄게. 아저씨 식사하셔야지."
"싫어. 아저씨 좋아."
전동 휠체어에 거부감 없이, 마냥 그의 품이 그저 좋은 아이였다.
어쩌면, 따스한 그의 손길이 아이에게 가장 필요했던 걸지도.
"놔두세요. 저랑 같이 먹을게요. 자, 산이 아!"
잔잔한 물결처럼 행복감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