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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를 위하여
작가 : 그라시아스
작품등록일 : 20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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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당신은 제 자랑입니다.
작성일 : 19-09-17     조회 : 58     추천 : 0     분량 : 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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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와의 만남이 많아질 수록 두 다리와 함께 사라졌던 그의 자존감도 조금씩 살아났다.

 ​

 정상인처럼 완벽한 걸음을 보여 줄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목발에 의지한 의족 보행만으로도 서서 걸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

 그는 자애로운 신께서, 연인을 화염 속에 빼앗아간 불행이란 놈이 이후에도 감히 자신의 존재에 맞서지 말라며 잔인하게 두 다리마저 가져간 것에 맞서라 그녀를 보내 일어 설 수 있도록 해주었다 믿고 있었다.

 ​

 그녀는 그의 용기였고 상실한 자존감을 치유해 주는 천사였다.

 ​

 오렌지 불빛이 늘어진 거리에 그녀와의 통화는 일상의 마무리를 짓는 그의 행복이었다.

 ​

 서서히 드는 작은 욕심 속에서 차츰 그녀의 일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오늘 몇 시에 일어났어요? 아침은 뭘 드셨나요? 점심 때까지 진상 손님은 없었나요? 점심은 어디서 드셨나요? 보고 싶어요."

 ​

 

 그의 질문은 짧고 평범하며 딱딱했지만, 작은 것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통화를 마치고 가로등 불빛에 길게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새삼 일어 설 수 있음에 또다시 감사했다.

 ​

 그녀와의 거리를 더 가까이 하고 자주 보기를 원했지만, 그럴 때마다 여전히 불행이 던져준 이 삶으로, 정상인에 비해 초라한 자신의 모습과 누추한 형편이 그의 감정을 억제하고 있었다.

 ​

 

 ***

 

 ​

 마트가 끝나는 그 시간, 그에게 했던 것처럼 가로등 불빛이 길게 늘어져 그녀의 어두웠던 길을 밝힐 때면, 항상 외로운 전화기가 활발하게 그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었다.

 ​

 그의 일상적인 질문은 항상 소소했지만, 다시 없을 로맨스에 그녀는 너무나 즐거웠다.

 ​

 

 "오늘 7시에 일어났어요. 산이 학교 보내야죠. 아침은 계란 후라이에 멸치볶음 먹었네요. 안 그래도 오늘 어떤 아줌마 하나가 계산 물건 중 이중으로 찍힌 거 있다고 얼마나 화를 내던지. 아휴, 너무 힘들었어요. 점심은 마트 식당에서 먹었죠. 보러 오실래요? 내일?"

 ​

 

 오렌지 불빛 속 그녀도 그와 이 길을 함께 걷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

 그의 따뜻한 마음을 담은 눈빛을 바라보면서 나란히 걸을 수 있다면, 고된 일에 지친 몸이 한결 포근해질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그녀였다.

 ​

 

 ***

 

 ​

 그의 머리 속은 그녀의 "보러 오실래요? 내일?"이 한참을 맴돌았다.

 ​

 그녀의 환한 목소리에 취해 가겠다고 응했지만, 막상 내일 그녀를 보러 직장까지 찾아 가는 것이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

 오늘 따라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의 그림자는 유난스럽게도 목발만이 선명하게 보였다.

 ​

 절뚝절뚝 어둠이 내린 하루를 걸으며 집으로 향하는 그의 어깨가 무척 괴로워 보였다.

 ​

 양팔에 낀 목발의 무게가 유독 무겁고 고단한 이유가 무엇인지...,

 

 ​

 ***

 

 ​

 “자기, 오늘 무척 예쁘네. 은수 씨, 좋은 일 있나 봐.”

 

 ​

 옆 계산대 여직원이 그녀의 곁을 지나며 평범한 인삿말을 툭 던졌다.

 ​

 그녀는 그저 싱긋 웃으며 말없이 계산에 열중하면서도 오늘 만날 그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

 점심 시간이 되자, 그녀 주위로 계산대 업무를 보는 동료들이 하나 둘 모여 식당으로 향했다.

 ​

 마트 계산대 업무를 보는 여직원 중 가장 젊은 그녀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동료들과 관계가 좋은 편이었다.

 

 ​

 "요즘 자기 얼굴빛 좋아졌더라? 연애해?"

 

 ​

 그녀의 사정을 아는 친한 몇 명의 직장 동료들은 오늘따라 환하게 화장도 잘 먹은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인사치례가 아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네, 저 오늘 어때요? 언니."

 ​

 

 언니들의 반짝이는 눈빛에 괜히 기분 좋아진 그녀였다.

 

 ​

 "이뻐. 아주 이뻐.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 거야. 부럽다. 젊음이, 그런데 오늘 약속있는 거야? 왜 이리 꾸미고 왔어?"

 

 ​

 “오늘 사랑하는 사람이 퇴근 시간에 맞춰 올 거예요.”

 ​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아름답게 빛났다.

 ​

 

 “어머 어쩜. 자기 요즘 연애했구나. 누구야? 뭐하는 사람이야?”

 ​

 

 “은수 씨야 원래 이쁘지. 그런데 이렇게 고은 미인을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오늘은 직접 모시러 오는 거야?”

 

 ​

 궁금함이 많은 동료들은 한껏 놀라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

 그런 질문이 귀찮고 싫기는 커녕 반갑고 기쁘기만한 그녀였다.

 ​

 

 ***

 

 ​

 그는 전동 휠체어를 이제 더 이상 이용하지 않았다.

 ​

 힘에 겨워도 그녀와 보폭을 맞춰 걷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

 그녀가 일하는 마트는 그의 구둣방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지하철역사에 있었다.

 ​

 그녀를 보러 가기 위해 가게 문을 일찍 닫고 바람을 맞으며 길을 나섰다.

 ​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구두약 냄새를 바람에 날리면서...,

 ​

 부끄러운 직업은 아니었으나 그녀의 직장으로 가는 오늘은 구두약 냄새가 몸에 남아있는 것이 싫었다.

 ​

 고작 지하철 한 정거장의 거리였지만, 목발에 의존해 걷는 길은 생각보다 불편함이 많았다.

 ​

 저물기 시작한 태양은 그의 뒤에 강한 열을 보냈고 차량 통행을 위해 군데군데 턱이 있는 끊어진 인도는 의족에 연결된 두 무릎을 시리게 하기 충분했다.

 ​

 그녀가 일하는 마트에 도착할 무렵 가로등 불이 하나둘 빛나기 시작했고 자신의 몰골에 자신감 없어 마트 안까지 들어갈 용기를 내지 못한 그는 가로등 아래에서 그녀의 퇴근을 기다리기로 생각했다.

 ​

 양팔에 목발을 끼고 지하철역사 앞에 서서 마트를 바라보는 그의 행색은 비록 옷이 깔끔하다 해도 힐끗거리는 사람들의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

 마침 그가 서 있는 가로등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지하철 출입구 계단에서 목발 하나에 의지한 걸인이 구걸하고 있었다.

 ​

 그 사람의 영향인지, 근처에 서 있는 그의 대한 서람들의 시선 속에 선입견이 가득함을 그도 느끼고 있었다.

 ​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선 그를 지하철 입구에서 구걸하는 장애인과 동일시함이 분명하였다.

 ​​

 그렇게 어둠이 내리는 시간, 부정적 인식 속 사람들의 시선에 점점 침울해지며 초라해짐에 위축되는 그였다.

 

 ​

 “동진 씨!”

 

 ​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밝은 그녀가 오늘은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며 경쾌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

 아름다운 그녀의 부름에 사람들의 부정적 시선은 사라지고 그도 빛으로 환하게 빛났다.

 ​

 

 “감사합니다. 나의 은수 씨.”

 ​

 

 ***

 ​

 환한 가로등 불빛 속 그가 서 있었다.

 ​

 같이 나온 언니들에게 "저 분이에요. 저 이제 가볼게요."라며 손을 흔드는 와중에 살짝 바라본 언니들의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

 그녀는 잠시 의아함을 느꼈지만, 자신을 향해 속닥거리는 마트 언니들의 모습을 인지하지 못하고는 조심스레 소리도 못 내고 그저 그녀를 보면서 손만 흔드는 그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

 차이나 타운 이후, 엄청 힘들 텐데도 목발을 짚고 나온 그에게 그녀는 항상 고마웠다.

 ​

 시선을 맞출 수 있어서, 그의 팔을 잡을 수 있어서, 그녀는 마냥 행복했다.

 ​

 언제나 외롭고 쓸쓸했던 오렌지색 불빛이 세상 가득 채운 듯한 느낌은 그녀에게 너무나 신선한 경험이 되고 있었다.

 ​

 

 "좋네요. 당신이 제 옆에 계시니."

 

 ​

 그녀의 작은 웃음 소리에 그는 미소띤 얼굴로 함께 화답해 주었다.

 ​

 산이가 기다릴세라, 오래 머물 수 없이 그녀의 집 근처까지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즐거웠고 그녀를 배웅한 후 힘들게 돌아서 걷는 그의 모습에 미안함과 아쉬움을 담아 그녀의 시선은 쉽게 돌리지 못하였다.

 

 그의 모습이 멀어져 사라질 때까지 담고 또 담으며 온 마음으로 무사히 집에 도착하기를 빌면서 바라만 보았다.

 ​

 그렇게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한 가득 담고 있었던 그녀였지만, 다음날 자신을 향한 이해할 수 없는 시선을 보내는 직장 동료 언니들에게 갇히고 말았다.

 ​

 점심 시간, 식당에 모인 친한 언니들은 누가 먼저 말할 것인지 옆구리를 찔러 가면서 어색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

 그러다 가장 연장자며 아무 생각없이 거침없게 말하기로 유명한 언니가 그녀에게 망설이던 말을 건네고 있었다.

 

 ​

 "저기, 자기 애인이 다리가 불편한 목발짚고 다니는 장애인이었어?"

 

 ​

 "네. 사고로 다리가 불편하세요."

 

 ​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그녀 덕에 용기를 얻은 것일까? 언니들은 돌아가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혼자서 애 키우기도 힘들잖아. 자기 힘들지 않아?"

 ​

 

 "그 애인분, 저기 밥 벌이는 가능해?"

 ​

 

 "모아둔 돈은 있는 사람이야?"

 

 

 "돈이 중요한가. 남자가 보호해주는 게 있어야 하는데…,"

 

 ​

 "자기랑 어떻게 알게 됐어?"

 ​

 

 "자기가 옴팡 뒤집어 쓸 수 있어. 잘 생각해봐."

 

 ​

 "왜 장애인이랑 사귀는 건데? 자기 예뻐. 부족하지 않다고."

 ​

 

 "에이 짐이야. 짐. 자기 산이도 키워야 하잖아?"

 

 ​

 "남자는 자기 가정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 거야."

 ​

 

 "설마 결혼까지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언니들의 쏟아지는 부정어린 말에 밥 먹던 수저마저 들지 못하고 당황함이 가득해진 그녀였다.

 ​

 그러다가 순간 올라오는 화에 그녀는 수저를 탁자에 탁 내려놓으면서 차분하지만, 그 누구보다 냉정하게 말했다.

 ​

 

 "그 분이 저랑 결혼해 주시면 정말 감사한 거죠. 언니들이 그 분의 겉모습을 볼 때, 저는 그 분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까요. 장애가 뭐가 중요해요? 그래서요? 다리 좀 불편한 게 뭐가 문제인데요? 일반인과 다를 것이 없어요. 그 분은 누구보다 밥 벌이 잘 하고 살아요. 걱정할 것은 또 뭔데요? 돈이요? 언니들, 부자들도 고민 있어요. 돈이 다 뭔가를 해결해 주는 건 아니라고요. 저 사람은요 제 마음의 병을 치유해 주셨고 우리 산이 아플 때 고쳐준 분이에요. 이 세상 가장 잘생긴 남자를 저에게 가져와도, 저 분이랑 안 바꿀 거예요. 부족해 보이죠? 정말 아닌 거 같죠? 외모가 뭐가 중요한데요? 언니, 외모는 쓸모 없어요. 아무 것도 나에게 준 것이 없거든요. 저 분 때문에 이뻐진 것이고, 저 분 때문에 밝아진 거예요. 동진 씨는요, 이 세상에 숨어져있는 몇 안 되는 천사고요. 저는 그 천사를 발견한 재수 좋은 여자인 거예요. 그는 제 자랑이고, 저의 자부심이예요."

 ​

 

 그녀의 당당함에 할 말을 잃은 직장 동료들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기 시작했고, 그녀는 자신의 그가 그런 시선을 받았다는 것에 화가 나 식판을 들고 그 부족한 사람들 사이를 박차고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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