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그녀의 집으로 향할 때면 가로등 불빛은 두 사람에게 환한 오렌지색 카펫을 깔아주었다.
그녀의 퇴근을 마중 나온 그에겐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보폭을 맞추어 걷는 이 시간이 다시없을 소중한 감정이 깃든 추억이 되고 있었다.
그녀의 지친 하루가 아침부터 걱정스러웠던 그는 그저 웃는 낯으로 그녀의 곁에서 온통 힘들었던 감정을 묵묵히 받아주고 있었다.
혹시, 자신의 손이 그의 목발을 건드리지나 않을까 신경 쓰는 부드러움이 전해져 다정스레 자신을 위하는 그녀의 마음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그녀의 퇴근을 처음으로 기다려 본 오늘은 무척이나 어색하고 두려웠으며 지하철역을 향하는 인파 속, 홀로 몸이 불편한 사람임이 부끄럽기도 했었다.
더욱이나 지하철을 내릴 무렵, 자신과 똑같이 없는 다리로 펄럭이는 바지단에 의족조차 끼지 않은 누더기 옷의 한 남성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와주십시요. 선생님." 하며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을 본 이후, 그는 자신에게 그나마 남아있던 조각난 자존감이 떨어짐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를 향하고 있는 착각에 휩싸이고, 작아진 마음에 용기가 사라진 그에게 아침 햇살보다 찬란한 웃음을 보이며 그녀가 손을 흔들고는 빠르게 달려와 이 세상에 없을 고운 빛으로 감싸 주었기에 움츠려졌던 그는 그 빛속에서 편안함과 따스함을 느끼며 다시 희망을 찾던 그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제 초라함도 부끄러움도 사라진 그는 그녀와 함께 누구보다 빛나며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지하철역 계단에서 구걸하는 장애인과 비교 당했던 그 마음과 달리, 그 아름다운 천사 옆에서 누구보다 당당해질 수 있었다.
***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퇴근길, 하지만 그의 어려움을 잘 아는 그녀였기에 그의 팔을 살며시 잡고 가로등 불빛이 예쁜 조금 먼 퇴근길을 함께하였다.
천천히 그렇지만 가로등 카펫이 깔린 그 길은 참 인상적이었기에 그녀의 얼굴은 연신 웃음이 가득했다.
"산이 없이 이런 둘만의 데이트도 참 좋네요."
아가씨 때의 자유로움을 느끼면서 그녀는 자신을 위해 그 불편한 몸을 이끌고 와준 그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생기는 욕심…,
혹여 목발을 짚은 그가 불편할까봐 살짝 잡은 그의 팔 느낌이 부드러워 온통 힘들었던 마음을 포근히 채우는 이 시간을 더 가지고 싶은 그녀였다.
“동진 씨, 저기 우리 불타는 금요일에 항상 이 길을 같이 걸을 수 있을까요? 산이가 기다리고 있어서 오랜 시간을 함께 더 보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길을 걸으며 반짝반짝 도시의 불이 켜지는 금요일 밤을 당신과 즐기고 싶어요.”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도시의 빛을 받아 더욱 반짝였다.
아무 말없이 그 눈을 들여다보던 그는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그의 허락에 뛸듯 기뻐 발걸음이 깡총거렸다.
그들의 아름다운 금요일 밤에 대한 약속, 서로의 마음 깊이 조각되고 있었다.
***
그는 이후로 그녀와의 아름다운 산책을 위해 토요일부터 금요일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금요일 밤에 의미가 생기자, 그저 평범했던 그 요일은 그에게 가장 특별한 날이 된 것이다.
금요일이 되면, 설렘으로 둘러싸여 그녀가 빛이 되어 달려왔던 마트로 향했고, 도시의 밤을 느끼며 가로등의 은은한 불빛 사이를 환상적이게 걸어 도착한 그녀의 집 근처, 아쉬움 가득 인사하고는 쓸쓸한 맘을 안고 그녀의 집 앞울 돌아 그제야 자신의 집으로 퇴근했다.
이 작은 행복이 일상이 되기를, 그 역시 마음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불편한 몸으로 돌아서는 그를 위해 그녀는 택시를 권해 보았지만, 그는 그녀와 함께 걸었던 길을 되짚어 가며 방금 새겨진 가슴 속 그녀의 모습과 대화를 떠올리기 원했다.
하지만, 그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행복함이 가득하니, 서서히 그를 흔들기 위해 다가오는 것을 설렘으로 듬뿍인 그는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도, 하나둘 켜지는 오렌지색 가로등 불빛에 곧 “동진 씨!”라고 부르며 인파 속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다가올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친 한 무리의 아줌마들, 고개를 돌리는 그의 귀 속으로 선명하게 그녀들의 대화가 날카롭게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저 사람이지? 은수 씨의?"
“그러게. 저 사람 또 왔네. 남자 구실도 못 할 거면서 왜 자꾸 오지?”
이제 그의 모든 감정은 어둠이 되고 있었다.
굳어버린 그에게 그녀들은 계속 비수를 던지고 있었다.
“그러게, 짐이 아니라 혹이네. 은수 씨 정도면 괜찮은 사람과 재혼할 수도 있지 않나?”
"은수 씨도 문제지. 바른 말을 해 줬으면 들어야지. 걔도 참 싸가지 없더라. 계속 우리 무시하고 스스로 왕따된 거 봤어?"
"장애인이랑 사귀면서 당당하긴…,"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여인들의 음성에 그는 고개 들 수도, 고개 돌려 그녀들을 바라볼 수 도 없었고 그저 자신의 의족을 가린 구두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깨끗한 구두였지만, 의족과 쇠를 박아 연결한 도구일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아무 것도 아닌 그녀의 혹, 장애인이란 세 글자가 그의 마음을 때리며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모든 빛을 잃고 몸을 돌려 그날 그곳에서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처지임을 새삼스레 되새기며 그녀와의 기쁨은 헛된 욕심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행복을 마련해 주기는 커녕 짐이되고 혹이 될 수는 없었다.
돌아가는 길은 이전처럼 행복하지 않았고 내일은 오늘과 달리 깨어나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그렇게 그의 잠시나마 행복했던 시간은 다가오는 가을에 밀려나는 여름처럼 저항없이 사라져 갔다.
***
금요일, 홀로 전철역 가로등 아래에 서서 그가 기다림에 마무리를 서두르는 그녀였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사물함 속 거울로 얼굴에 화장을 고치는 와중에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언니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녀는 아무 말없이 자신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속닥거리는 그녀들을 힐끗 바라보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마주치기도 싫은 편견들의 주장은 그녀에게 의미없는 것이였다.
그저 자신을 기다릴 천사만이 그녀에게 의미 있을 뿐.
그녀의 그런 행동이 못 마땅 했는지 더욱더 큰 소리로 쑥덕거리는 느낌이 그녀를 온통 감싸고 있었다.
그러던지 말던지 무덤덤한 그녀가 재미없다는 듯 한 무리의 그녀들은 싸늘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자신의 볼에 생긴 트러블에 짜증을 내며 연신 신경 쓰고 있을 무렵, 그녀의 무관심적인 행동에 빈정이 상한 언니들의 타겟은 바로 그였다.
마트 앞에서 그녀를 온 마음으로 행복하게 기다리는 그를 바라본 그녀의 직장 동료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 눈짓을 나누더니, 그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척, 그를 향해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는 것을 피부 트러블 하나에 집중한 그녀 은수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귀 속으로 정확히 들어가도록 그녀들의 대화는 송곳보다 날카롭게 파고들고 있었다.
"저 사람이지? 은수 씨의?"
“그러게. 저 사람 또 왔네. 남자 구실도 못 할 거면서 왜 자꾸 오지?”
그의 모든 감정은 어둠이 되고 있을 무렵, 그녀는 손목 시계를 확인하고는 놀라 립스틱을 바르며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굳어버린 그에게 직장동료 언니들은 계속 비수를 던지고 있었다.
“그러게, 짐이 아니라 혹이네. 은수 씨 정도면 괜찮은 사람과 재혼할 수도 있지 않나?”
"은수 씨도 문제지. 바른 말을 해줬으면 들어야지. 걔도 참 싸가지 없더라. 계속 우리 무시하고 스스로 왕따된 거 봤어?"
"장애인이랑 사귀면서 당당하긴…,"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여인들의 음성에 그는 고개 들 수도 고개 돌려 그녀들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저 자신의 의족을 가린 구두에만 시선을 고정하다가 힘없는 어깨로 세상 가장 어두워져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이윽고 가방을 다 챙긴 그녀가 나왔을 땐 그, 동진이 있었던 자리가 비워져 있어서 우직한 약속을 깰 리 없다는 의아함을 안고 전화기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울리는 송신음, 하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그녀의 심장이 내려 앉기 시작한다.
‘왜?’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다.
‘혹시 사고가? 무슨 큰 일이?’
핸드폰으로 검색한 뉴스는 그녀의 마음 속 걱정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럼 뭐지?’
하는 순간, 그녀는 미친 듯이 달렸다.
불길한 마음이 그녀를 울렸다.
그의 구둣방을 향해 달리며 그가 혹시 걸어 왔을 길의 모든 것을 살폈다.
‘무슨일이 있는 걸 거야. 그 분은 그럴 분이 아니라고. 혹여 몸이 불편해 느리게 걷는 걸까? 가게에 일이 많은가?’
너무도 두리번거리며 달린 탓에 넘어지기를 수 차례, 아스팔트에 갈려 아픈 무릎을 툭툭 쓸고 그녀는 계속 달렸다.
‘내가 가야했어. 오시지 말게 하고 내가 가야 했어, 이 길을 그분이 걸으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울며 달리는 그녀를 인파는 의아하게 바라보았고 그녀는 그들을 무시했다.
그리고 도착한 그의 구둣방, 굳게 닫힌 문 앞에 주저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마침내 아이처럼 오열하고 말았다.
그가 없어 슬펐고 그가, 무사한지 몰라 슬펐으며, 그와 함께 걷지 못해 슬펐다.
***
그는 힘없이 발걸음을 돌려 그녀의 집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멀리서도 들리는 산이의 웃음 소리가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그의 어둡고 힘든 마음을 파고 들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그녀, 온통 넋나가 천만 원을 구걸할 때는 그저 호기심으로 그 돈을 빌려줬지만, 지금은 그 돈을 받은 대신 자신의 마음을 모두 넘겨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 밝아진 그녀가 힘들지 않길 소망하면서도 자신의 몸을 아프게 지탱하는 의족은 그녀의 직장 동료들이 말한 것처럼 짐이고 혹이였다.
모진 병마와 싸우고 이제 세상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사랑스런 산이 역시, 항상 활동적인 나이에 맞춰 놀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사랑이 끝나지 않은 마음은 온통 그녀를 놔줄 수없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집, 불 켜진 창문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서서히 돌리기 시작했다.
단호히 그녀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는 이제 피눈물을 흩날리며, 자신만의 어둡고 차가운 감옥으로 서서히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금요일 밤은 찬란한 도시의 빛속에 그저 슬프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