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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를 위하여
작가 : 그라시아스
작품등록일 : 20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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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당신과의 감정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작성일 : 19-09-17     조회 : 61     추천 : 0     분량 : 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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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통 깨져 벌어진 무릎에서는 가슴 속 깊이 흐르던 상처를 대변하는 검붉은 피가 흐르며 찢어진 청바지 차림에 울어 빨개진 눈과 너무 부어서 슬프게 아린 얼굴 가득하게 서글픈 손짓은 전화기의 동진 씨라고 표시된 번호를 연신 누르면서 아파하고 있었다.

 ​

 

 

 받지 않는, 아니 온통 거부당한 마음은 서서히 무너져내리며 그녀의 심장을 부시고 부시며 조각내고 있기에, 그녀는 아프다 못해 숨까지 쉴 수 없는 이 고통을 겨우 참아내며 축 쳐진 어깨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산이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

 

 

 수화기 너머 "전화를 받을 수 없어…,"라는 여자의 말을 수 십 번 들으면서 행적을 알 수 없는 동진 씨의 어떤 말이라도 듣고 싶었다.

 ​

 

 

 수없이 많은 동진 씨라는 글자가 새겨진 통화 기록을 또 남기면서 그녀는 마음속 깊이 울부짖고 있었다.

 ​

 

 

 ‘온 마음으로 보고싶습니다.’

 ​

 

 

 ‘도대체 어디 계셔요?’

 ​

 

 

 ‘당신의 몸은 괜찮으셔요?’

 ​

 

 

 ‘왜…, 절 거부하십니까?’

 ​

 

 

 ‘전 이제 당신과의 사랑을 시작했단 말입니다.’

 ​

 

 

 그렇게 원래의 시간을 훌쩍 넘긴 새벽으로 다가가는 저녁, 축 늘어진 어깨로 기운빠진 그녀가 집에 도착했다.

 ​

 

 

 이미 잠들었는지 그녀가 도착할 때마다 쪼르르 달려나오던 비타민 산이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아 더욱더 쓰러질 듯 기운이 빠지고 있었다.

 ​

 

 

 그런 마음 한가득 품고 들어선 집엔 팔짱 낀 채, 소파에 앉아있는 성난 얼굴의 엄마가 있었다.

 ​

 

 

 "너 지금 대체 몇 시인 줄 아니?"

 ​

 

 

 그녀는 그저 고개 숙인 채, 듣고만 있었다.

 ​

 

 

 예전 같으면 이미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 그녀는 자신의 엄마에게 항상 죄인이었다.

 ​

 

 

 "산이가 얼마나 지 엄마 기다리다 지쳐 잤는 줄 알아? 요즘에 너 왜그러는 거니? 너, 애 엄마야."

 ​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리고 그 남자는 누구야? 응? 너 대체 생각이 있는 거니?"

 ​

 

 

 엄마의 말에 그녀는 놀란 눈으로 뭔가 깨달은 듯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

 

 

 자신의 엄마가 언급하는 남자가 동진 씨임을 부정적인 눈빛 속에 충분히 알 수 있어 엄마의 편견어린 말은 직장 동료 언니들의 목소리와 겹쳐져 더없이 그녀를 반항적인 눈빛이 되도록 만들고 있었다.

 ​

 

 

 하지만, 이미 시작한 엄마의 화는 쉽게 그녀를 편히 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

 

 

 "니 몸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해서 지은 벌, 남자 잘못 만나서 생긴 그 잔혹한 감옥으로 스스로 들어갔으면 산이 잘 키우는 걸로 갚아야지. 도대체 너란 아이는 생각이란 게 있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

 

 

 그녀는 말문이 막힌 채, 그저 흔들리는 동공으로 자신의 엄마를 바라보다가 답답한 속에 무언가가 가득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

 

 

 가슴이 터져버릴듯 자신의 죄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온 머릿 속에 가득 차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터진 그녀의 한마디 "나도 내가 죄 지은 거 알아요. 그래서 살잖아요? 벌 받고 있잖아요?"라며 떨어지는 눈물은 그녀의 삶이 힘듬을 소리없이 외치며 슬프게 흘리고 있었다.

 ​

 

 

 "그래. 죄 많으니 빌면서 살라고…, 너로 인해 아프게 태어난 산이를 생각해서라도 더욱 올바로 살아야지. 어디 만날 사람이 없어 다리 없는 남자야? 뭐가 그렇게 급해? 왜 하필 그런 사람이야? 산이가 아침마다 동진 아찌 동진 아찌 하길래 연애하는 줄 알았지만, 장애인이라니…, 에휴, 내가 널 잘못 키웠어. 그렇게 되라고 내가 널 잘못 가르쳤어."

 ​

 

 

 이미 아픈 마음, 온갖 편견어린 시선에 지쳐있었던 그녀는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

 

 

 알아달라고, 난 지금 온 마음이 아프며 쓰리다고...,

 ​

 ​

 "엄마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요? 애 가진 거? 애 낳은 거? 상황이 나쁜 거였어요. 상황이 나를 몰고 간 거라고, 내가 무슨 죄가 있는데요? 엄마는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만큼은 내 편이여야지.”

 

 

 그녀의 목소리가 커짐에 떨림도 함께 커지며 볼울 타고 흐르는 눈물도 턱끝에 맺혀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항변에 맞서 더욱 언성을 높이려던 엄마는 딸의 눈물 방울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

 

 가슴에 묻어둔 사연이 그녀의 입을 타고 밤 공기를 울렸고 엄마는 가만히 그 공기의 떨림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동생 대학 등록금 없다고 해서 과외비 받은 거 다 줬잖아? 아빠 교통사고 났을 때 내가 모았던 돈 다 생활비로 줬잖아? 그래도 그게 맞는 거였어.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기쁘게 살았어. 산이가 생겼다고 죄 많고 벌 받는 년이 될 바에 이기적으로 살 걸 그랬어. 나는 뭐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거야? 엄마 눈에 내가 편해보여? 엄마한테도 지옥이고 감옥이지만, 나한테도 지옥이고 감옥이야. 그 속에서 그 사람 왜 만나냐고? 유일한 사람이었어. 산이 살려준 사람. 내 마음 알아준 사람. 근데 죄 많은 년, 벌이나 받으라고? 그런 사람 만나지 말고? 그럼 누굴 만나? 내가 애까지 달린 미혼모에,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떤 사람이든 아무 것도 없는 날 선택한다는 건 이유는 단 하나인 거야. 잠자리 상대. 엄마 딸이 그렇게 되는 걸 바라냐고? 엄마 원하는 대로 난 자신의 욕구를 위해 잠자리 상대가 필요한 누군가를 만난다 치자. 그럼 산이는? 내 보물은? 내가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평생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그 누구를 데려와 봐. 산이를 그처럼 사랑해 줄 수 있나?"

 ​

 

 

 그녀의 외침은 점점 커지며 절규로 변했고 엄마의 심장에 한단어 한단어 가시가 되어 박혔다.

 

 

 언제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얼굴로 놀란 눈을 부비며 산이가 방문을 열고 서서, 할머니와 엄마의 대화를 들으며 어린 심장에 상처가 쌓고 있었다.

 

 

 그녀와 엄마는 그제야 산이가 모두 듣고 있음을 느끼고 심연 가득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 속에서 입을 닫았다.

 ​

 

 산이와 시선이 마주치자 품에 안고 목놓아 울고 싶은 약한 마음에 무너져 내릴 자신이 두려운 그녀는 울면서 밖으로 뛰어 나갔고, 엄마와 아직 어린 산이는 그녀의 눈물이 애처로워 그녀를 부르지도 못했다.

 ​

 

 

 ***

 ​

 

 

 한평생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살아왔던 엄마에게 혼전순결을 어기고 미혼모가 된 딸은 죄인이었으며, 아픔이었고, 가여움이었다.

 ​

 

 

 아직 한창 나이인 딸을 생각한다면 산이는 고아원에라도 보내고 좋은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하고픈 마음이었고, 한편으로는 이미 옴팡지게 정들어버린 저 사랑스러운 어리디어린 산이를 키워 그녀의 아픔을 달래 주고픈 마음이기도 했다.

 ​

 ​

 

 사실, 엄마도 무엇이 진정한 자신의 의지인지 몰랐다.

 ​

 ​

 그녀 생각에 마음이 아파, 가슴이 답답해, 심장이 떨려 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

 

 

 은수 아빠가 지난해 세상을 떠나기 전만해도 어떤 식으로든 산이와 그녀를 돌보려 노력했으나, 이젠 버팀목을 잃은 늙은 몸으로 힘겹게 사는 딸의 모습이 너무도 서글프고 자신이 초라했다.

 ​

 

 

 ‘내가 부자였다면, 내가 배움이 깊어 일이라도 했다면.’

 ​

 

 

 엄마의 성냄은 자신에 대한 화였을지도 모른다.

 ​

 

 

 그렇게 엄마도 아팠다.

 ​

 

 

 어느새 초등학생이 된 산이를 보며 대출 가득한 집밖에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이 무엇을 해주고 남겨 줄 수 있을지 막막했다.

 ​

 

 

 ‘더 늦으면 안 되는데, 아직 은수는 젊은데.’

 ​

 

 

 엄마에게 그녀는 아직 어린 딸이었고 소중한 내 새끼였다.

 ​

 

 

 어찌보면 엄마에겐 산이는 그녀의 앞길을 막는 혹이었으니, 그녀가 말하는 것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

 

 

 엄마는 아직도 그녀의 엄마였다.

 ​

 ​

 ***

 ​

 ​

 부재중 통화 50통...,

 ​

 

 

 그의 마음이 아리고 무너져 내렸다.

 ​

 

 

 잠도 이룰 수 없는 저녁. 더 이상 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

 

 

 '산이'

 ​

 

 

 그는 망설임 없이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이미 잘 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 수화기 너머 산이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숨 죽인 채, 들리고 있었다.

 ​

 

 

 "산이야. 왜? 왜 그래?"

 ​

 

 

 놀란 그 목소리에 안정을 느낀 것일까?

 ​

 

 

 산이는 더욱더 크게 울며 그의 마음을 불안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

 ​

 "아저씨 엄마가...엄마가."

 ​

 ​

 "응, 산이야. 아저씨가 듣고 있어. 걱정 마."

 ​

 ​

 "흑, 할무니랑 싸우고 집 나갔어."

 ​

 ​

 산이의 짧은 한마디 말에 그의 정신은 이미 제자리를 놓치고 있었다.

 ​

 

 

 그는 전동 휠체어에 몸을 싣고, 울고 있는 산이를 달래며 전화를 끊고는 어딘가에서 산이만큼 울고 있을 그녀가 걱정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

 

 

 산이의 울음 섞인 전화에 그녀를 찾기 위해 무작정 전동 휠체어에 몸을 싣고 밖으로 나간 그는 어두운 골목 외로운 가로등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에 주춤거리며 멈춰 서고 말았다.

 ​

 

 

 문득 고개 들어 자신을 비추는 가로등을 올려다 보는 그의 눈에 젊은 연인 한쌍이 지나가는 것이 들어 왔다.

 ​

 

 

 잘 어울리는 젊은 연인들은 서로의 허리에 손을 두른 채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맞대 듯 가까이 걷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마주한 눈빛이 사랑함을 가득 담고 있기에, 그는 전동 휠체어에서 하염없이 넋 빠진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는 결코 할 수 없을 애정 표현.

 ​

 

 

 가까이 맞댄 서로의 입맞춤, 그 간단하고 평범한 연인 사이의 스킨쉽이 그에게 결코 쉽지도 가능해보이지도 않았다.

 ​

 

 

 지금의 그는 자신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음을 깨달으며, 젊은 연인들이 사라지는 것을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

 

 

 그녀에 대한 걱정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결심과 망설임 사이에서 그렇게 휴대폰을 들여다 보던 그의 손이 다짐어린 종료 버튼을 길게 눌렀다.

 ​

 ​

 그동안 아침 저녁으로 산이와 그녀에게 한결 같았던 휴대폰의 전원을 그렇게 강제로, 아직 가득 남아있는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은 무시한 채, 휴면상태에 빠져버렸다.

 ​

 

 

 어딘가에서 산이처럼 그녀도 울고 있겠지만, 자신과 함께 하는 삶은 결코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란 결심이 선 그는 전동 휠체어를 집으로 돌렸다.

 ​

 

 

 ‘그래, 잘 생각한 거야. 그녀는 아직 젊고 아름다워. 나와 그녀는 여기까지가 좋은 거야. 더 이상은 한계야.’

 ​

 

 

 그녀는 산이를 위해 베푼 선행에 대한 답례로 친근감을 표한 것임에도 그간 외로웠던 자신이 선을 넘으려 했다고 자책하며 전동 휠체어 진동에 맞춰 덜덜덜, 몸을 떨었다.

 ​

 

 

 휠체어 바퀴가 지나가는 사이사이 흐르는 것인지, 버리는 것인지 그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온 가슴을 곪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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