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일어나라 안시현!”
아침부터 나를 깨우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윽…”
나는 솟구치는 짜증에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아무소용 없었다.
“야, 일어나라고.”
그새 내 방까지 들어와말하는 바람에 나는 어쩔수 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세웠다.
“왜요, 방학인데 귀찮게스리.”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자기 할 말만 했다.
“아니, 가기전에 할 말이 있다.”
“또 어딜 가는데요?”
항상 출장이 잦았던 아버지인지라, 어디 간다고 하는게 익숙해져 있던 나였다.
“이탈리아다. 이번엔 장기출장이라 10개월 정도 예상하고 있는데.”
“뭐요?”
내가 잘못들은 것인가? 출장을 간다해도 3개월을 넘긴적이 없었다. 그런데 10개월이라니…
“못들었어? 10개월이라고.”
“아니, 무슨 출장을 10개월을 나가요!? 그리고 10개월동안 나하고 시연이는 어떡하라고?”
화가 치밀었다.
내가 동생과 살림을 모두 살펴야되는건 물론, 학교성적 유지를 위해 공부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한 번은 아버지가 나가더니 2일째도 들어오지 않아 전화해봤더니, 중국으로 출장을 간뒤였다.
내가 아버지의 이런 태도가 싫은이유는 이미 그의 행동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생활비는 넉넉히 보내줄게. 너 성적도 상위권이고, 살림도 잘하잖아. 이번만 좀 봐주라.”
“잘하게 된게 누구때문인데…”
이런 상황에서 자라온 나이기에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조금씩 살림살이를 하다보니 늘게 된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전혀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미안,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너희 둘을 남자 혼자 키우는게 쉬운것도 아니고, 풍족하지도 않으니. 그래도 이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한다. 네 엄마는 하늘에서 너희가 힘들게 사는걸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그래도 우리에게 쏟은 시간은 얼마없잖아… 나는 괜찮지만 시연이는 아직 어려서 더욱 사랑이 필요할 때인데…”
내가 외동이었거나, 동생이 충분히 컸으면 나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생이 어리고 애정을 쏟아부어야 할 부모가 없으니 외롭고 심리적인 고통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시현아, 이젠 네가 시연이의 엄마야. 시연이도 많이 힘들겠지만 네가 시연이의 버팀목이 되어주렴.”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시연이의 엄마라는 중대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우선은… 알았어. 근데 이번에는 뭔데 그렇게 오래걸려?”
“회장님이 글로벌로 뻗어나가겠다면서 해외에 매장을 몇개 열었거든. 우선은 미국, 이탈리아, 일본, 영국, 프랑스. 이 다섯개국에 매장을 열었는데 매장정리 부터 영업, 같은 기본적인게 하나도 안되있어서 10개월 동안 다 하고 오라지 뭐냐.”
살짝이지만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가라앉은것 같았다.
“알았어. 아버지, 그럼 이번 출장이 끝나면 한동안 출장 안나가겠지?”
“아마도 그렇겠지.”
“그럼 돌아와서 평범한 가족으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 시연이도 분명 원할것이고.”
내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무의식적으로 친구들의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 부러웠던 건지도 모른다.
“알았어. 일 얼른 끝내고 돌아올게.”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자상한 미소가 옅게 띄어있었다.
“어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그럼 시현아 아빠 갔다올게.”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세요.”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인사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살짝 뒤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시연이, 잘 부탁한다.”
“알겠으니까, 빨리 가세요. 시간 별로 없잖아요.”
나는 살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버지는 걱정은 되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현관을 나섰다. 나는 창밖으로 아버지가 가는 걸 확인한 뒤 침대에 다시 누웠다.
솔직히 나는 아버지가 싫다. 애정 한 번 쏟지 않고 돌아가신 엄마의 유언만 따라 일만 하는 우리 아버지가 싫다. 자식들 힘들게 살게 하지 않게 해달라는 유언이 아버지가 일만 하게 만들었다.
시연이가 태어나기전, 나는 부모님과의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 기억들이 조금은 남아있다. 하지만 시연이가 태어난 뒤, 몸이 쇠약해진 엄마는 며칠을 버티지 못해 하늘나라로 떠나가 버렸다. 그 후 아버지는 일에만 몰두했고, 어렸던 나는 시연이를 돌보며 창밖을 보면 아버지와 즐겁게 놀고있는 아이들을 보며 부러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경험을 했던 나로써는 시연이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자주 밖에서 놀아주거나, 놀이공원을 데려가거나, 맛있는 것도 사주었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을 이길 수는 없었는지, 시연이가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래서 이런 아버지가 싫은 것이다.
그렇지만…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에게서 문자 한통이 와 있었다.
[사랑한다]
짧은 한마디.
이 말이 아버지를 완전히 버릴 수 없게했다.
“망할 아버지… 흐흑…”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평범한 삶을 원했던 나지만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한게 바로 [사랑한다] 이 한마디라고 생각한다. 항상 내가 출장같은 일로 화나있으면 하는 말이었다. 다름없이 언제나 같은 말이었다.
“돌아오면… 반드시 몇 시간씩... 설교해 줄테니까… 크흑…”
......
조금 시간이 지나자 진정이 되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시간은 11시. 이미 아침을 먹을 시간은 한참 지난 뒤였다. 조용한 걸 보니 시연이는 아직 자는 듯했다.
그래도 깨우긴 깨워야지.
“시연아 벌써 11시야. 일어나야지.”
안에서 아무소리 안들리는 걸 보니 꿈나라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내눈에 비친 것은 침대에서 굴러떨어져 바닥에서 웅크리고 자는 시연이의 모습이었다. 나는 시연이를 흔들어 깨웠다.
“시연아 일어나야지.”
“우웅…”
시연이는 일어나기가 힘든지 한쪽 눈만 작게 떴다.
“오...빠...?”
“그래, 좋은아침 시연아.”
이미 아침은 한참 지났지만 인사를 건넸다.
“자, 일어나자.”
내가 시연이를 안아들자, 시연이는 그대로 나에게 안겼다.
“아니, 안기지 말고 제대로 서야지.”
“오빠 미워.”
왜 미움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오빠, 아빠는?”
“출장갔어.”
시연이도 이 상황이 익숙한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좀만 있어. 금방 밥해줄게.”
“응…”
시연이는 소파로가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밥통을 열어 남은 밥에 계란프라이를 올리고 간장을 뿌렸다. 간장계란밥이다. 버터나 마가린을 넣기도 하지만 없기 때문에 생략했다.
“시연아 일로와. 밥먹자.”
시연이는 내 말을 듣고 쫄래쫄래 다가와 의자에 앉았다.
밥을 먹는 중, 전화가 울렸다. 친구, 우진이였다.
“여보세요?”
[어, 시현아 나 지금 엄청 심심하거든? 드라이브나 시켜주라.]
내가 오토바이 면허 딴 걸 또 어떻게 알고 말을 한거지?
“나 지금 밥먹고 있고 아버지 출장가서 시연이 봐야 돼.”
[그러냐? 그럼 나중에 한번 태워주라. 너 너네 삼촌 스쿠터 받아왔다며.]
“하아, 알겠으니까 우선은 끊어 봐.”
전화가 끊겼다. 항상 우진이는 귀찮게 한다니까.
“시연아, 장보러 가야 되는데 안갈래?”
“그냥 집에 있을래.”
시연이가 입에 밥이 한가득 들은 체 말했다.
“그래?”
장보러 가는 겸 바람좀 쐬게 하고 싶었지만 시연이가 싫다는데 뭐 어쩌겠어.
““잘먹었습니다.””
밥을 먹어서 힘도 나겠다. 설거지와 청소를 빠르게 마친 뒤 나갈 준비를 했다.
“진짜 안갈거야?”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