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강하게 내리쬐었다.
“윽…”
나는 강렬한 햇빛에 눈을 찌푸렸다. 며칠 동안 내리던 장마가 끝난 것이다.
나는 주차되어있던 스쿠터 쪽으로 향했다. 키를 꽂자 ‘부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렸다.
나는 찬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로 향했다.
“라면하고, 파 한단, 두부하고 콩나물하고…”
“시현아!”
살 것들을 둘러보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아 누나? 누나가 왜 여기있어?”
“아니… 그냥 좀 뭐 살거 있나 해서…”
“정말이야?”
민아 누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민아 누나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럼 정말이지!”
백퍼센트 거짓말이다.
“누나는 거짓말하는거 엄청 티 나니까. 게다가 몇 년을 같이 지낸 내가 모를리 없잖아. 그래서 진실은?”
“그치만… 요새 시현이 많이 못봤으니까…”
“그래? 그럴 거면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
같이 돌아다니며 말해보니 별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시현아 시현아! 나 이거 하나만!”
그렇게 말하는 민아 누나의 손에는 꼬맹이들이나 좋아할만한 캐릭터가 프린팅 되어있는 음료수가 들려있었다.
“누나... 이 나이 되서도 이런거 먹고싶어?”
“그게 아니고… 이거 은근히 맛있거든!”
가격이 비싼것도 아니고 결국에는 같이 계산하게 되었다. 마트 밖으로 나온 나는 민아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집 꽤나 멀잖아.”
“…근처 지나다가 들어온거라…”
“그럼 어떻게 갈건데.”
“…”
민아 누나는 답이 없었다. 할 수 없지. 같이 가는 수 밖에.
“데려다줄까?”
민아 누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렇게 좋나.
“응!”
핸드폰이 울렸다. 시연이에게 전화가 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오빠, 어디야?]
“마트 왔는데.”
“시현아 누군데?”
[오빠 지금 누구랑 같이 있어?]
순간적으로 시연이의 목소리가 굳어진 것을 느꼈다.
“응? 아니 민아 누나랑 어쩌다가 마트에서 만나서…”
[집에 데려오지마. 절대로.]
“으응… 알았어.”
전화가 끊기자 민아 누나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시현아 누군데?”
“시연이인데.”
“그럼 나 좀 바꿔 주지. 시연이랑 얘기하고 싶은데.”
“아마 시연이가 싫어할 걸.”
시연이는 민아 누나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민아 누나는 우리집에 올 때면 시연이를 막 껴안거나 머리를 쓰다듬거나 그런다. 시연이는 그런 누나가 싫은지 요전에 민아 누나가 왔을때는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뭐 나쁜 짓 한 기억은 없는데…”
본인은 자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민아 누나에게 예비용 헬멧을 건네주었다.
“뭔가 오랜만이네.”
“뭐가.”
“시현이랑 이렇게 붙어있는게.”
“징그러운 소리좀 하지마.”
스쿠터로 도로를 달리며 말했다.
“그런데 누나.”
“응?”
“공부 안해도 되는 거야? 아무리 2학년이지만 이제 여름방학도 거의 끝나가는데 내년에 어쩌려고 그래.”
고2인 민아 누나는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쉬는시간에 가보면 항상 자고있거나 놀고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나, 공부도 못하고 노력해 봤자 점수도 안나오는 걸… 그러니까 그냥 놀자고 있는거지… 그도 그럴게 이해는 전혀 안되고 기초문제도 어렵고, 내가 공부 잘했으면 충분히 높은점수 받을 수 있겠지… 시현이 너는 좋겠다. 공부 잘해서…”
나는 꽤나 의아했다. 누나가 그냥 놀기만 한 건 아니란걸. 노력을 해도 결과가 배신한 경우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이미 겪어봤던 나이기에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다.
“민아 누나, 누나가 공부를 못하는게 선천적으로 머리가 안 좋아서라고 생각해?”
“그럼 노력해도 안 되는 걸 머리가 나쁘다고 밖에 할 수 없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럼 봐봐. 내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이 평범하다 생각해?”
“…”
“엄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뭣하면 출장에 내가 살림 전부를 책임지고 있는 상황에 공부를 잘하는 건 힘들어. 이건 진짜야. 나도 중학교 땐 누나 같았어. 그때는 뭐만 해도 안되고, 실패만 하고 노력해도 안 됐지. 그래서 나도 포기할까 생각 많이했어.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노력하고 노력했더니 결국은 되었잖아.”
“그런데 나는 시간이 많이 없잖아! 조금있으면 3학년이고, 또 조금 지나면 수능 봐야 되는데…” “그래도 벌써 포기하면 정말 답 없어. 시간이 얼마나 남았던 끝까지 해봐야지. 만약 정말 힘들다면 내가 가르쳐줄까?”
“정말?”
“솔직히 어려운건 아니지. 그럼 2학기 시작하면 가르쳐줄게. 대신 중간에 포기하지 않기로 약속하나만 해.”
민아 누나는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
민아 누나를 내려준 뒤 나도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시연이는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거의 4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식탁에는 시연이가 끓여 먹은 컵라면이 보였다.
“시연아 일어나야지.”
시연이를 깨웠지만 아무래도 시연이는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식탁들 치우고 컴퓨터를 켰다.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서 였다. 아버지는 대부분 메일로 연락을 하기 때문에 자주 확인하지 않으면 황당한 일이 종종 벌어지게 된다.
메일함을 열었다. 도착한 메일은 [확인해라]라는 제목의 메일 하나였다. 메일을 클릭하자 사진 한 장과 글로 된 내용이었다.
사진은 비행기에서 찍은 구름 사진이었다.
“자기가 뭐 사진작가 인 줄 아나…”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시현아 지금 비행기 안이다. 그리고 너한테 까먹고 말 못한게 있는데 네 사촌 예리 알지? 그 녀석이 2학기 시작되면 우리집에 오기로 했다. 형님하고 형수님이 같이 해외여행을 오래 간다해서 나한테 부탁한건데 너라면 충분히 맡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약 한 학기 정도? 그 정도만 부탁한다 아들아.]
뭐? 예리가 우리집에 온다고? 나는 짜증이 솟구쳤다.
나는 예리가 좀 껄끄럽다. 나이는 같지만 생일이 조금 빠르다고 누나처럼 행동하고, 여자면서 힘이 무식하게 세서 항상 내가 당하기만 한다. 그런데 예리가 한 학기를 우리집에서 지낸다니 여러모로 짜증나고 귀찮아 진다.
메일을 조금 내리자 추신이라 적혀져 있었다.
[추신. 생활비하고 용돈은 더 넣어 줄게. 좀 만 부탁한다.]
아무리 생활비를 더 넣어줘도 애초에 말이지, 내 병원비가 더 나올것 같단 말이다. 예리 녀석, 봐주는 거 하나 없이 끝까지 가니까 잘못하면 뼈가 부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메일로 아버지에게 욕하려다가 손가락을 멈추었다. 아버지 특성상, 내가 말해도 끝까지 안 바꿀것이고 나만 열받을 것을 알기에 그냥 포기하기로 하였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예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야 신예리. 너 우리집에 온다며.”
나는 최대한 딱딱하게 말했다.
[응. 2학기 시작하면 갈거야. 아닌가? 2학기 전에 갈 수도 있겠다. 시작하면서 전학하는게 편하니까.]
“하아, 골때려. 너 왜 이렇게 맘대로야. 네가 오면 내가 힘들거든?”
[사촌끼리 왜 그래. 옛날에는 맨날 같이 놀아 놓고는.]
“옛날하고 지금하고 같냐?”
[몰라. 어쨌든 갈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이때부터 내 지옥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