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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여인들
작가 : 헤이미치
작품등록일 : 20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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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부수고 너 구하러 올게!
작성일 : 19-09-09     조회 : 322     추천 : 0     분량 : 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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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문 형무소 여감사 벽 위 창으로 오후 햇살이 들어온다. 좁은 감방 가운데에는 유관순이 누워 있다. 고문을 심하게 당해 얼굴이 엉망이고 피폐하다.

 

 그 주위에 네 명의 이십대 여죄수들이 둘러 앉아 걱정스레 본다. 이지적인 얼굴에 단정한 이마의 스물세 살의 임서경, 조금 몸집이 있고 목소리가 걸걸한 스물여덟 살의 이종희, 화려한 이목구비의 스물세 살의 김애숙, 그리고 갸름한 얼굴에 붉은 입술이 아름다운 스물세 살의 정세미다.

 

 오늘은 일본 황제의 특사로 서대문 형무소의 죄수들이 일제히 출감하는 날이다. 하지만 옥중에서 삼일 만세를 주도한 유관순은 심한 고문을 받으며 특사에서 제외되었다. 서경, 종희, 애숙, 세미도 출감하는 날이라 다소 상기된 얼굴이다.

 

 “다들 출감하는데 너만 못 가고...”

 

 서경이 힘없이 위로한다. 하지만 곧 표정을 단단히 바꾸더니 말을 잇는다.

 

 “꼭 독립운동 열심히 해서 서대문 형무소 부수고 너 구하러 올게.”

 

 서경이 관순의 손을 잡으며 결심을 밝힌다. 다른 세 여자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내가 곡괭이 들고 올 거야!”

 

 애숙이 던진다.

 

 “곡괭이 가지고 되겠어? 망치 정도는 돼야지! 나만 믿어!”

 

 종희도 질 수 없다.

 

 “촌스럽게 곡괭이, 망치가 뭐예요? 나는 폭탄 들고 올게.”

 

 세미가 진지하게 말한다. 관순이 언니들을 올려다 본다. 불타는 눈빛들이다. 관순은 진짜 이 언니들이 서대문 형무소를 부수러 올 것 같다. 피식 웃는다.

 

 감방을 나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서경은 6개월 전 처음 서대문 형무소를 들어 올 때 생각이 난다.

 

 ***

 

 여감사가 있는 건물로 들어서자 철제 창살이 을씨년스럽게 사방을 가로막고 있어 서경의 마음은 더욱 춥다.

 

 “임서경 맞나?”

 

 간수가 서경의 이름을 불렀을 때 대답할 힘마저 없어 고개만 끄덕인다.

 

 “옷을 벗어.”

 

 서경은 무슨 말인지 힘없이 떨구었던 고개를 들어 앞에 선 간수를 본다. 항의의 눈빛이다.

 

 “신체 검사한다. 옷 벗어!”

 

 서경은 수치감이 든다. 머뭇대면서 두 손으로 가슴을 꼭 가린다.

 

 “이게 어디서 반항이야! 범법자 주제에!”

 

 간수가 다가가 서경의 옷을 강제로 벗긴다. 서경이 몸을 흔들어 반항하지만 결국 옷이 벗겨진다.

 

 서경의 하얀 알몸이 드러난다. 하지만 여기저기 상처가 있고 멍이 있다. 서경은 너무 부끄러워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다.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린 체 떤다.

 

 신체 검사를 마친 후 서경은 서대문 형무소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여감사로 간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감방 안에는 10여명의 죄수들이 너무 좁아 앉아 있지도 못하고 서 있다.

 

 이 중 애숙과 종희가 있다. 이들은 들어 온 서경을 일제히 본다. 애숙과 종희가 바로 서경을 부른다.

 

 “임서경!”

 “애숙아! 종희 언니!”

 

 서경의 눈이 반가워지더니 셋은 얼싸안고 방방 뛴다. 다른 죄수들이 보고 있는 걸 보며 겨우 진정하고 몸을 뗀다.

 

 “와! 우리 여기서 결국 보는구나!”

 

 애숙은 너무 반갑다. 종희는 버릇 대로 서경의 등짝을 친다.

 

 “도망 잘 갔다고 얘기 들어서 너는 안 올 줄 알았는데 왜 왔어?”

 “하하. 함경도 국경선까지 갔는데 산만 타고 다니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장터에 나갔거든. 거기서 국밥 사 먹는데 함경도 사투리 못해서 붙잡혔어. 하하.”

 

 서경은 등짝을 맞으며 아픈 줄도 모르겠고 조금 전까지도 절망스러웠던 기분은 어디 갔는지도 모르게 사라 버렸다.

 

 “그러게. 배가 고파도 참아야지.”

 “그게 아니지. 함경도 사투리를 미리 배워 뒀어야지.”

 

 애숙과 종희가 핀잔한다.

 

 “임선생! 나도 반가워!”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난다. 서경이 돌아보는데 어윤희 선생이다. 개성에서 서경 대신 먼저 시장통에서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준 그 전도부인. 서경이 눈이 커진다.

 

 뿐만 아니다. 그 옆으로는 개성 호수돈 여학교 기숙사 사감인 신관빈과 장님 부인 심명철도 보인다. 서경은 놀라운 반가움에 눈이 커진다. 얼른 다가가 손을 맞잡는다.

 

 “어선생님! 신선생님! 심선생님!”

 “이거 반갑다고 말을 해야 할까요? 여기서 다 만나다니”

 “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앞을 보지 못하는 심명철도 서경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선생님은 몸도 불편하신데 이렇게...”

 

 서경이 심명철의 손을 잡으며 눈이 빨개진다. 심명철이 조용히 서경의 팔을 쓰다듬는다. 따뜻한 온기가 흐른다. 넷은 서로 얼싸안고 등을 두드린다.

 

 “어휴! 여기서 동창회, 동향회를 다 하네.”

 

 서경을 데리고 온 간수가 기가 막혀 한다. 서경을 보며 말한다.

 

 “너는 조용하게 지내. 안 그러면 가만 안 둔다!”

 

 간수가 서경에게 위협하고는 돌아서 감방을 나가고 문을 닫는다. 그때 구석에 있던 10대 후반의 소녀가 서경을 알아보고 앞으로 나선다.

 

 “임 선배님, 아니세요?”

 

 서경은 금방 알아보지 못하고 생각을 떠올리기 위해 유심히 본다.

 

 “저 유관순이에요. 이화학당 때 기숙사에 같이 있었잖아요.”

 

 서경이 반가움에 눈이 커진다.

 

 “그렇구나. 관순아!”

 

 서경이 얼른 다가가 관순과 손을 맞잡는다.

 

 “정말, 널 여기서 몇 년만에 만나다니. 만세 운동이 좋긴 좋다.”

 “하하. 선배님도. 반가워요.”

 

 둘은 서로를 안고 토닥거리고 다른 이들이 전부 본다. 의문에 찬 그녀들의 눈을 보며 서경이 설명한다.

 

 “관순이는 이화학당 1년 후배예요.”

 

 그러자 애숙과 종희가 서경에게 와 손을 잡고 여덟 여자들은 손을 이어 잡으며 반가워한다.

 

 이들을 구석에서 한 여죄수가 부러운 눈빛으로 본다. 아름다운 세미이다.

 

 그 날밤 서경과 애숙과 종희는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수다로 풀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닥으로는 여죄수들이 몸을 포개 누워 자는데 한쪽 구석에서 서경, 애숙, 종희가 좁게 둘러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이렇게 만세를 부른다고 조선 독립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어. 일본은 이렇게 강하고 거대한데...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애.”

 

 서경은 힘없는 얼굴이다. 애숙이 돌아보며 동의하는 눈빛을 보낸다.

 

 “야, 뭐야?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니?”

 

 종희의 목소리가 올라간다. 걸걸한 목소리라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서경과 애숙이 목소리를 낮추라고 손짓한다. 종희는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어간다.

 

 “계란을 바위에 던지면 꿈적은 안 하더라고 바위가 더러워지잖아. 그게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야”

 

 서경은 그 말에 망치를 머리를 맞은 것 같이 번쩍한다. 천천히 말을 꺼낸다.

 

 “그렇겠지? 아무 것도 안하면 시체랑 똑같잖아. 이길 수 없어 보이더라고 계속 뭔가를 해야 우리의 정신이 사는 거겠지?”

 

 담담하고 단단한 목소리다.

 

 “그걸 말이라고 해요?”

 

 서경, 애숙, 종희가 돌아본다. 세미다.

 

 한구석에 누워 있던 세미가 날카롭게 말을 던졌다. 세미가 일어나 앉으며 말을 잇는다.

 

 “이화학당 나오신 최고의 신여성들이 우리 기방 동생들 생각하는 것보다 못하네요.”

 “어디서 그런 비교질을...”

 

 서경이 발끈한다. 하지만 종희가 나무라듯이 서경의 팔을 툭 친다. 가만히 있으라는 거다.

 

 세미가 얼굴이 붉어지며 입을 움찔하지만 말을 참는다. 서경과 세미가 서로 노려 보듯 본다. 너무 늦은 밤이라 그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바닥에 눕는다.

 

 감옥의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릇 만들기, 빨래, 의복 염색, 가마니 짜기 등등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이 이어진다. 고된 노동에도 나오는 식사는 양도 적고 거칠다.

 

 하지만 식사 시간은 둘러앉아 잠시 쉴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이다.

 

 “그래서 내가 임처녀한테 독립 선언서를 받아서 개성 시장통으로 나갔지.”

 

 저녁으로 주먹밥을 먹으면서 어윤희가 개성에서의 만세 시위 무용담을 꺼낸다.

 

 “전 어 선생님이 그렇게 덥석 한다고 하실 줄은 몰랐어요.”

 

 서경이 밥 한쿰을 입에 넣어 우물거리면서 웃는다.

 

 “하하. 시집도 안 가본 처녀가 그 맛을 모르고서 감옥소에 가면 너무 불쌍하지 않니? 내가 나서면서 처녀 애 하나 살린다 생각했다.”

 “하하하. 고마워요, 어 선생님! 그래도 처음 취조당하실 때 너무 힘드셨죠?”

 

 서경은 그 생각에 얼굴이 심각해진다.

 

 “아니다. 형사가 취조하면서 독립 선언서가 어디서 났냐고 묻길래 내가 직접 찍었다고 그랬다.”

 “정말요? 제가 준 건대요?”

 

 서경이 놀라서 묻는다.

 

 “그런 말 할 수 있니? 니가 잡히면 그 고초를 어떻게 당하려구? 내가 직접 손으로 수천장 만들어서 찍었다고 했다.”

 “그러게요. 하하.”

 

 옆에서 듣던 관순이 웃으며 동조한다.

 

 “네? 어선생님! 200장이었잖아요.”

 “개들이 그걸 세겠어? 내가 수천장 시장통에 뿌렸다고 했다.”

 

 서경이 사실을 밝히자 다들 놀라면서 웃는다.

 

 “와! 어 선생님! 대단하세요.”

 “우리 어 선생님은 역시 대장부시다!”

 

 애숙이 감탄하고 종희가 엄지를 척 해 보인다.

 

 “아주머니가 다 뒤집어 쓰셨어요?”

 

 세미도 웃으며 끼여 든다.

 

 “말도 마세요! 재판정에서 어선생님 내가 주도자다 라고 어찌나 주장을 하시던지. 검사가 아니라고 변명해 줬어요.”

 

 함께 재판을 받았던 신관빈이 말을 거든다. 둘러앉은 다른 여죄수들도 어윤희의 허풍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거린다.

 

 “그럼. 그런 자리에서 누굴 대겠니? 그럴 거면 아예 독립 운동을 하지 말아야지.”

 

 어윤희의 큰소리에 다들 하하하 웃는다.

 

 “세미야! 니 만세 얘기도 해 봐라! 서경은 아직 못 들었잖니?”

 

 윤희가 세미에게 말을 시킨다. 세미는 서경의 기를 죽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제 얘기 한번 해 볼까요? 제가 또 수원 바닥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만세 운동을 하지 않았겠어요?”

 

 서경이 귀가 솔깃해져서 세미에게 몸을 기울인다.

 

 ***

 

 수원 명월관 기방 벽에는 연산홍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향기로운 세미가 술을 따른다. 화려하게 차려진 술상 위에는 무지개빛의 구절판이 차려져 있고 일본 대학생복 차림의 남자들 셋이 세미의 술잔을 받는다.

 

 초승달 같은 눈썹,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 매끄럽게 흐르는 코, 앵두같은 입술에 흰 연꽃처럼 하얗고 단아한 세미의 얼굴 때문에 술상은 아름다워진다.

 

 “도쿄에서 이팔독립선언 때 난리도 아니었잖아. 덕분에 부모님 성화로 입국했다.”

 “조선 유학생들 조직 변동에 대한 투표를 한다고 모이라고 해놓고는 독립 선언을 할 줄이야 몰랐지.”

 “그렇게 안 하면 경찰이 대규모 회합을 허가했겠어? 난 잘 했다고 생각해.”

 

 일본 유학생들은 세미는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세미는 술잔을 따르면서도 유심히 귀를 기울이며 눈을 반짝인다.

 

 “지도부는 다 현장에서 체포됐어. 아버님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당장 귀가하라고 하잖아. 돈이 똑 떨어져서 들어왔다.”

 “도코에서 조선 유학생들이 대한 독립 선언할 때 현장에 계셨네요?”

 

 유학생이 계속 말을 잇자 세미가 끼여들었다. 그러자 옆에 앉은 남학생이 핀잔을 준다.

 

 “뭔. 기생이 뭘 알려고 그래?”

 

 하지만 세미가 웃는 얼굴로 대꾸한다.

 

 “저희도 다 듣는 바가 있는 걸요. 이번 도쿄 유학생 독립 선언은 작년 11월 미국 윌슨 대통령이 민족 자결주의 선언을 하자 조선 독립도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하였다구요?”

 

 세미의 말을 똑 부러지고 유학생들은 놀란 눈으로 세미를 본다.

 

 “또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 1월 열렸던 전승국의 강화회의 때 김규식 선생님을 보내 조선 독립 청원서를 제출하셨구요.”

 

 유학생들은 다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다.

 

 “니가 어떻게 그런 것을 다 아느냐?”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다른 술자리에서도 듣는 바가 있다구요.”

 

 세미가 아름다운 얼굴로 웃으며 말해 준다.

 

 “한낱 기생들인 저희 가슴에도 조선 독립의 열망은 남자들 못지 않습니다. 너무 무시하지 마십시오. 자 제가 따르는 술 받으세요.”

 

 유학생들은 할 말이 없어져 술잔을 내밀고 세미가 미소지으며 술을 따른다.

 

 “그럼 너는 삼월 일일 경성에서 독립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아느냐?”

 

 유학생이 묻자 세미의 눈이 커진다.

 

 “네? 아뇨 몰랐습니다.”

 

 세미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눈을 빛낸다.

 

 “그렇습니까? 그럼 수원에서도 하나요?”

 

작가의 말
 

 불꽃 여인들은 1920년대 초반 독립 운동을 했던 여성 독립 운동가 4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허구로 구성했습니다. 재밌게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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