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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여인들
작가 : 헤이미치
작품등록일 : 20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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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춘삼월 독립군이라구요
작성일 : 19-09-09     조회 : 77     추천 : 0     분량 : 6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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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다. 그게 너무 위험한 일이라...”

 

 유학생이 대답을 얼버무린다. 비겁한 얼굴이다.

 

 “선생님들은 앞장서지 않으십니까? 도쿄에서는 만세를 부르셨다면서요?”

 “그. 그게... 뒤에서 좀 했다. 일본 경찰 서슬이 어찌나 시퍼렇든지.”

 

 세미가 캐묻자 남학생은 말을 더듬는다.

 

 “사내 대장부가 돼서 조선 독립을 하는데 뒤에서 하셨습니까? 앞에서 하셨어야죠.”

 “니가 뭘 안다고 가르치는 게냐? 기생 주제에 감히 일본에서 유학하는 우리한테 따지고 있어?”

 

 세미가 대담하게 한마디 하자 남학생이 얼굴이 벌겋게 되어 세미에게 발끈한다.

 

 “기생이면 기생답게 술이나 잘 따라라.”

 “어디서 천한 여자 주제에 나서고 있어.”

 

 세미가 얼굴이 굳어지더니 고개를 숙인다.

 

 다음날 아침 수원 명월관 기생들이 모인 방에는 분내가 피어오른다. 매일 아침 하듯이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의 명월관 기생들이 모여 앉아 함께 화장을 한다. 다들 화려한 한복 차림에 화장대를 앞에 놓고 분첩을 두드린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스물 세살의 세미도 분첩을 두드리며 말을 꺼낸다.

 

 “아무리 곤고할지라도 조선 사람 불효자식에게는 술 따라고 왜놈에게는 술 주지 말고 권주가 부르지 말아라!”

 

 세미의 말에 기생 동생이 노래 부르듯 호응한다.

 

 “그럼. 그럼요. 언니 언니 걱정 말아요. 저희가 이래뵈도 임금님 국상 때 상복을 입고 고무신도 안 신고 거리에 시위 나갔던 년들이에요. 우리도 춘삼월 독립군이라구요.”

 

 세미는 다시 한번 동생들이 자랑스러워진다.

 

 “그래. 역시 내 동생들이다. 그런데 내일 경성에서 보신각에 모여 대한 독립 운동을 한다고 하더라.”

 “네. 저도 그 얘기 들었어요.”

 “춘삼월 독립군인 우리가 가만 있어서 되겠어?”

 

 새미가 분첩도 내려놓고는 동생들을 쳐다본다.

 

 “그럼요. 조선 제일가는 애국 기생인 우리가 앞장서서 만세를 불러야죠.”

 “옳소.”

 “맞는 말이네 그려.”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

 

 여기저기서 동생들이 화음하듯 합창한다.

 

 “그래. 내가 이래서 너희들을 좋아한다.”

 

 세미의 얼굴도 흐믓해 환해졌다. 하지만 곧 엄혹한 현실이 다가온다.

 

 “그러나 걱정이 앞선다.”

 “뭐요?”

 “만세 운동은 위험한 일이야. 일본 순사들한테 잡힐 거라구. 괜찮겠어?”

 

 세미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위험하다고 해야 할 일을 안 하겠어요?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뭐가 바뀌겠어요? 지난번 임금님 국장 때도 순사들에게 잡혀갔지만 하루만에 나왔잖아요?”

 

 제일 나이 많은 동생이 바로 대답한다. 세미는 용감한 기생 동생들이 자랑스럽다.

 

 “그럼 우리도 내일 만세를 불러볼까?”

 “내일은 우리 수원 의원으로 단체 신체 검사 받으러 가잖아요?”

 “에이씨.”

 “정말 싫다”

 “우릴 뭐 홀딱 벗겨놓고 개 돼지 취급하니...”

 

 다른 동생이 잊었던 일정을 일깨우자 다들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 우리 가는 길에 만세 부를까? 나도 정말 신체 검사 받는 거 몸서리치게 싫다. 우리 그 복수를 하자!”

 “네.”

 “좋아요.”

 “얼씨구나!”

 

 세미가 제안하자 동생들이 여기저기서 찬성한다. 하지만 세미는 좋아하며 찬성하는 동생들을 보며 걱정스레 입을 뗀다.

 

 “난 걱정이다. 우리 검사받는 의원 바로 옆에 경찰서 있잖아.”

 

 그러나 동생들은 무슨 말이냐는 표정들이다.

 

 “에이. 헌병대 멀리 있다고 순사들이 안 와요?”“아뇨. 오히려 잘 됐다. 대한 독립은 헌병대 앞에서 불러야 제맛이지.”

 

 다들 소란스럽게 동의한다.

 

 “어휴. 이 동생들아. 내가 너희들 정말 걱정된다.”

 

 언니 걱정 말라는 듯 동생들이 하하거리며 웃는다. 세미 마음의 밑바닥에서 동생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출렁거린다.

 

 세미는 얘기했던 대로 기방 동생들과 수원 장터로 나간다. 쌀가게, 어물전, 떡가게, 채소 가게, 푸줏간 등 장터는 평소대로 사람들이 많고 부산했다. 삼월 일일 전날의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따위는 없다.

 

 하지만 세미는 다르다. 이미 많은 상인들하고 얼굴을 트고 아는 사이지만 내일 거사에 대해 얘기할 생각에 가슴이 떨린다. 세미를 포함한 여덟 명의 기생들은 평소와는 달리 수수한 한복으로 장터 여기저기 가게들로 두세 명씩 짝을 지어 흩어져 간다.

 

 세미도 동생 기생과 함께 평소 친한 주인이 있는 쌀가게로 들어선다. 오늘도 사람 좋은 얼굴의 주인 아저씨가 가게를 지키고 있다.

 

 “주인 양반, 장사는 잘 되십니까?”

 

 주인 아저씨의 얼굴이 반가워서 환해진다.

 

 “아니 수원 최고의 꽃이 여긴 왠일이여?”

 

 세미가 주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더니 꼭 쥐었던 오른손을 편다. 그러자 손바닥 안에 돌멩이가 보이고 돌멩이 위에 ‘봉기 (蜂起)’라고 쓰여 있다. 주인이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꿈뻑대자 세미가 눈에 힘을 주고는 주인을 쳐다보고는 눈을 찡긋한다.

 

 “이게 뭐여?”

 

 그 말에 세미가 말을 안 하고는 두 팔을 들어 엑스자를 만들어 보이더니 다시 주먹 쥔 왼손을 펴서 보인다. 왼손 안에도 돌멩이가 보이고 돌멩이 위에 ‘화 (火)’가 보인다. 주인이 놀란 눈으로 세미를 다시 본다.

 

 “불 놓을 거요?”

 “그렇습니다. 내일요.”

 

 세미가 눈에 힘을 주고 주인을 보자 주인이 겁난 표정으로 두 팔을 들어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다. 세미가 알아듣고 미소짓는다.

 

 삼월 일일 경성에서 태풍처럼 만세 시위가 일어나는 것도 모르고 쌀가게, 떡집, 어물전, 푸줏간 등 여러 가게가 보이는 수원 장터는 평소처럼 분주하면서도 조용하다. ‘수원 의료원’도 보이고 맞은편에 ‘수원 헌병대’도 보인다.

 

 수수한 한복을 입은 세미와 후배 기생 8명이 두 줄로 와 선다. 비장하고 결연한 얼굴들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 세미가 먼저 손에 든 태극기를 번쩍 들어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른다. 다른 기생들도 세미를 따라 만세를 부른다.

 

 그러자 주변 가게 상인들이 뛰쳐 나오며 ‘만세’를 부른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놀라서 돌아보고 몇몇은 만세에 동참한다. 금세 사람들이 모여들고 만세 소리는 커져만 간다.

 

 그러자 맞은편 수원 헌병대에서 곤봉을 높이 들고 경찰 10여명이 몰려 나온다. 시위대 앞에 선 세미를 보더니 달려와 곤봉으로 내리친다. 퍽. 아름다운 세미가 비명과 함께 쓰러진다.

 

 다른 기생들도 경찰의 곤봉에 맞아 쓰러지자 주변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세미와 기생들은 곤봉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대한독립만세’를 부른다. 경찰이 땅에 쓰러진 세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세미는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경찰은 세미를 일으켜 세우고 아파서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세미의 빰따귀를 때리고 세미의 몸이 돌아간다. 아름다운 세미의 기생 머리가 흩어져 산발이 되고 예쁜 한복이 찢겨진다.

 

 ***

 

 “우리가 신체 검사 받는 의원 맞은 편에 경찰서가 있었지만 그게 무서워서 못하겠어요? 의원 앞에서 밤새워 그린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를 부르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같이 불렀지요. 순사들이 달려와 총 칼을 내밀었지만 눈 하나 깜짝 안 했어요.”

 

 세미가 이야기를 마칠 때 눈을 빛내며 듣던 서경의 눈빛은 탄복으로 바뀌어 있다.

 

 “대단하시네요.”

 “그럼 수원 기생은 칭찬받아야 돼!”

 

 세미가 서경에게 눈을 찡긋해준다. 기생을 무시하던 서경의 눈빛이 변한 걸 보며 기를 눌러줬다는 생각이 든다.

 

 “하하하. 너가 너무 예뻐서 더 흥행에 성공한 거 아니야?”

 

 서경은 어느새 반말로 바꿨다. 하지만 세미는 기분이 좋아 받아주기로 한다.

 

 “그렇지? 그런 것 같아.”

 

 세미가 자랑스럽게 말하자 여감사 안의 죄수들은 다들 하하하 웃는다. 서경이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구 힘들다! 누가 노래 좀 불러 봐라!”

 

 빨래 노역장에서 여죄수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어윤희가 큰 소리로 말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여죄수들은 노역장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한다. 요즘은 빨래터에서 모두 함께 빨래를 하고 있다.

 

 그래도 점심시간 1시간은 부실한 밥이나마 먹으며 아침부터 굽혔던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만큼은 간수들도 점심을 먹으러 죄수들 곁을 잠시 떠난다.

 

 “노래하면 기생이잖아요! 제가 맨날 노래 불러서 잘 합니다!”

 “어 그렇겠다! 세미 노래 듣고 싶다!”

 

 서경이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세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목청을 가다듬는다.

 

 “에 에.”

 

 다들 재밌겠다는 표정으로 세미를 올려다 본다. 세미의 창이 유장하게 시작된다.

 

 “박연폭포 흘러가는 물은 범사정(泛槎亭)으로 감돌아든다.”

 

 춤도 춘다.

 

 “에 에헤야 에 에루화 좋고 좋다 어러험마 디여라 내 사랑아.”

 

 서경이 일어나더니 세미 옆에서 춤을 따라한다.

 

 “선인교(仙人橋) 옆에 읍비(泣碑)는 울고 섰는데 일대충의(一代忠義)는 만고강상(萬古綱常)이로다.”

 

 노래를 끝나가고 세미와 서경의 춤이 어울어진다. 앉아 있던 다른 이들도 어깨를 들썩이며 장단을 맞춘다. 서경은 신이 났다.

 

 “와! 정말 좋다! 너는 어쩌면 이렇게 노래도 잘해! 얼굴도 예쁜데 노래도 잘 하구 춤도 잘 추고 부럽다 부러워!”

 “그것만 잘 하게요? 만세도 잘 하시잖아요!”

 

 관순이 한마디 보탠다. 다들 하하 웃는다. 서경이 세미에게 붙어 몸을 치댄다.

 

 “세미야! 나도 가르쳐줘!”

 “그럴까? 자 날 따라해! 박연 폭포!”

 

 세미가 창소리를 내자 서경이 따라한다.

 

 “박연 폭포!”

 

 그런데 음정과 박자가 틀리고 엉망이다.

 

 “그래서 되겠니? 이화학당에서는 이런 거 안 가르치지?”

 “안 가르쳐.”

 

 애숙이 냉큼 대답한다.

 

 “내가 공부는 잘 하는데 이런 건 못 배워봐서. 잘 가르쳐 줘요! 스승님!”

 

 서경이 세미에게 허리를 굽히자 세미가 웃으며 야단을 친다.

 

 “다시 해라! 박연 폭포...”

 “박연 폭포...”

 

 서경이 노래를 따라하면서 어깨를 들썩인다.

 

 “어머! 애 봐! 노래도 못 하는 것이 춤부터 춘다.”

 “어어! 몸이 먼저 나가는데!”

 

 서경이 팔을 움직이며 호들갑이다.

 

 “못 말리겠다!”

 “냅 둬라! 쟤는 노래 못하니까 춤부터 배워라!”

 

 가장 나이 많은 윤희가 큰소리를 낸다. 서경은 못 들은 체 노래를 계속한다.

 

 “박연 폭포...”

 

 물론 춤도 같이 춘다. 잘 못 춰서 다들 웃는다.

 

 ***

 

 여감사 안에서 있었던 지난 일들을 회상하던 서경은 눈 앞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풀리는 수 많은 죄수들을 본다. 일본 황제의 특사로 수백 명의 죄수들이 함께 풀려나 형무소 앞 거리는 마치 만세 현장처럼 사람들이 많았다.

 

 서로 같은 방에서 몇 개월을 함께 한 죄수들은 이별의 인사를 나눈다. 서경은 애숙, 종희, 세미와 일주일 후 경성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아쉬운 이별을 한다.

 

 죄수들의 가족들은 연락을 받지 못해 마중을 나온 사람은 없었다. 네 여자가 아쉬운 이별을 끝내고 돌아서는 데 멀리서 애숙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애숙의 애인인 필용이다.

 

 애숙이 얼른 필용에게 달리다시피 간다. 나머지 세 여자도 각자 자기의 길을 향해 흩어져 가고 서경도 개성으로 가기 위해 경성역으로 향한다. 가면서 서경은 애숙과 필용이 만나 가볍게 포옹하는 걸 본다.

 

 하지만 필용이 곧 기침을 심하게 하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애숙이 그 손을 보며 놀라는 게 보인다. 손 안에 피가 고여있다. 그걸 보며 서경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후에 경성에서 출발하여 개성에 도착하니 벌써 어두워졌다. 서경이 기차에서 내려 역 광장으로 나오니 가로 등불이 여기저기 켜져 있다. 수수한 블라우스와 치마 차림의 서경은 작은 보퉁이를 들고 역광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 거리로 향한다.

 

 그런데 역광장 나무 밑 어둠 속에서 일본 형사가 서경을 알아보고 쫓기 시작한다. 눈치를 채지 못한 서경은 역 광장을 가로질러 거리로 빠르게 걸어나간다. 형사가 계속 서경을 쫓는데 맞은편 어둠 속에서 다른 남자 그림자가 서경과 형사를 쫓는다.

 

 서경이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를 돌아 거리 뒷골목으로 들어선다. 형사의 뒷모습도 계속 서경을 감시하며 쫓다가 골목 모퉁이를 도는데 검은 그림자가 갑자기 형사의 몸을 친다. 퍽.

 

 형사가 놀라서 ‘헉’ 비명을 지르며 몸을 휘청한다. 허름한 노동자복 차림의 남자가 발을 날려 형사의 몸을 때리지만 형사도 몸을 웅크려 남자의 발차기를 피한다. 형사는 휘청하다가 다시 몸의 균형을 잡고 손으로 남자를 공격한다.

 

 하지만 남자는 다시 형사의 목을 잡으며 손으로 쳐 기절시킨다.

 

 그 소리에 서경이 돌아본다. 갑작스런 사태에 놀라 가슴이 뛴다. 서경이 남자를 보는데 등불 아래 의지가 강해 보이고 눈빛이 형형한 30대 후반의 남자다. 그가 서경에게 다가온다. 이한이다.

 

 “임서경양 되십니까?”

 

 서경은 놀라서 눈이 더 커진다. 자기의 이름을 알다니.

 

 “네. 누구세요?”

 

 그리곤 바닥에 쓰러져 있는 형사를 보며 묻는다.

 

 “이건 무슨 일인가요?”

 “개성 헌병대 형사입니다. 서경양을 미행했어요.”

 “그럼 당신은 누구세요?”

 이한이 잠시 멈칫하더니 순순히 입을 연다.

 

 “상해 임시 정부에서 왔습니다.”

 

 서경이 놀라 입이 벌어진다.

 

 “네?”

 “독립 운동을 계속하려면 조선 총독부 홍석원 경감을 찾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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