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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여인들
작가 : 헤이미치
작품등록일 : 20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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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일을 좀 도와 주십시오.
작성일 : 19-09-12     조회 : 51     추천 : 0     분량 : 5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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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숙의 고개가 떨어지더니 급기야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낀다. 서경과 종희가 애숙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하지만 애숙의 흐느낌은 멈추지 않는다. 서경과 종희는 어떻게 애숙을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경과 종희가 가고 혼자 남게 되자 애숙은 더 절망이 짙어진다. 밤이 깊어져 방안도 어두워졌지만 애숙은 불을 켤 힘조차 없다.

 

 그저 창으로 달빛이 스며들어와 이젤 앞에 앉은 애숙의 옆얼굴을 비춘다. 이젤 위에는 필용을 스케치한 얼굴이 캔버스 안에 있고 애숙은 굳어서 그 얼굴을 본다. 필용이 없는 삶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

 

 “일주일 후 저녁 8시에 강연회 하려구요. 주제는 ‘신여성의 자유연애’입니다.”

 

 애숙이 너무 절망해 있어서 강연회 준비는 결국 서경과 종희 두 사람만 하게 되었다. 둘은 종로 극장에 가서 대관 신청을 한다.

 

 “독립운동 얘기는 안 하실 거죠?”

 

 극장 사무원이 묻는다.

 

 “어허. 그걸 말씀이라고. 절대 안 합니다.”

 

 종희가 걸걸한 목소리가 크게 부인한다. 그 소리가 너무 커 사무원이 흘낏 본다.

 

 “그러면 뭐. 관중들의 시선은 모으겠네요.”

 “그렇죠? 엄청 흥행하겠죠?”

 

 서경이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해 사무원에게 동의를 강요하는 듯하다.

 

 “이왕이면 여배우처럼 화려하게 입고 하세요. 그래야 흥행하죠.”

 “그래. 선생님 말씀이 딱 맞다. 너 멋지게 양장 차려 입자!”

 

 종희가 서경의 어깨를 치며 동의한다. 서경은 맞은 어깨를 문지르며 사무원에게 묻는다.

 

 “입간판도 해 주시는 거죠?”

 

 둘은 무사히 2주 후로 강연회를 계약하고 극장을 나온다.

 

 “결국 강연회 준비는 언니랑 나랑 둘이서 하네. 언니! 고마워!”

 “야! 우리 벌써 10년 절친이야. 고등중학교 때부터 쭉.”

 “그렇지 언니 우리 처음 친해졌을 때 기억해?”

 

 서경은 여학교 수예 시간에 종희와 처음 마음이 맞던 순간이 생각이 난다. 서경보다 5살이나 나이가 많은 과부 출신 언니가 수예 시간에 수예 말고 수학 가르쳐 달라고 해서 서양 여성이었던 교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의사 되겠다고 말하며.

 

 교사는 종희를 나무랐지만 서경이 그 사이에 끼어들어 자기도 수예 말고 영어 가르쳐 달라고 한술 더 떴다. 미국 유학 가야겠다며. 같은 반 친구들이 까르륵거리며 웃는 바람에 교사는 크게 당황했었다.

 

 그날 이후 둘은 마음이 딱 맞아 개성 고등여학교와 이화학당을 함께 졸업해 지금까지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그때 우리 서로 한눈에 딱 붙은 찰떡 궁합인 거 알았잖아?”

 “그렇지. 그리고 조선 독립이랑 연애하자고 겨드랑이 밑에 문신도 새겨서 맹세했잖아?”

 “연애가 뭐냐? 결혼하자고 했지.”

 “응. 우리 조선 독립이랑 결혼한 거야. 남자랑 연애하기 없기다.”

 

 서경이 눈에 힘을 주고 종희에게 다짐시킨다.

 

 필용의 방에서 어머니의 ‘내 아들! 내 아들!’ 울부짖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낮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 온 애숙의 얼굴도 시체처럼 백지장이다.

 

 필용 가족의 연락을 받았을 때 애숙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내 곁에 항상 있어 주고 나를 사랑해주던 남자가 이 세상에 없다니 믿을 수 없다.

 

 자주 와서 익숙한 필용의 침대 안에는 필용이 누워 있다. 여위고 쾡한 얼굴로 숨도 쉬지 않는다.

 

 “필용씨!”

 

 믿어지지 않는 필용의 죽음을 보고 애숙은 옅게 이름을 불러 보지만 대답은 없으리라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 깨닫고 드디어 울음이 터지기 시작한다. 손으로 입을 가려 울음을 감춰 보지만 통곡 소리가 배어 나온다.

 

 필용의 장례는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게 치러진다. 부유한 집안의 둘밖에 없는 아들 중 하나라 필용의 부모는 작은 아들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려고 했다. 애숙이 아들의 애인인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발인에 참석하는 걸 막지는 않았다.

 

 서경과 종희도 애숙을 위로하기 위해 발인에 온다. 집 앞에서 필용을 실은 커다란 상여가 출발하는 걸 애숙은 보면서 거의 기절할 지경이다. 정식 가족이 아니라 상복도 못 입은 체 애숙은 상여를 따라간다.

 

 경성 외곽 집안의 선산에 필용이 묻힐 때 애숙은 가족 뒤에 서서 관 위로 흙이 떨어지는 걸 본다. 온몸이 축 늘어진 체로 선 애숙을 서경과 종희는 옆에서 부축한다.

 

 “간 사람은 잊고 힘내서 살아야지. 그게 필용씨가 바라는 일이야.”

 “그래. 결혼한 것도 아니었으니...”

 “나 때문에 죽은 것 같아. 나 때문에.”

 

 애숙이 흐느끼면서 말을 뱉는다.

 

 “그건 아니야. 그 사람의 운명이었지.”

 “그래.”

 “아니야. 내가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몰아 세워서. 흑흑. 원래 감수성이 예민하고 몸도 약한 사람인데 내가 주먹을 휘둘러야 한다고 다구쳐서. 흑흑.”

 

 애숙의 흐느낌은 더욱 커지고 서경과 종희는 애숙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운동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서경이 위로하자 애숙은 울음을 멈추더니 화를 낸다.

 

 “독립운동이 뭐가 중요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해? 그게 그렇게 사람을 죽일 만큼 중요해?”

 

 눈이 붉어져 있다.

 

 “애숙아!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도 많아.”

 

 종희가 한마디를 건네지만 애숙은 더 화를 낸다.

 

 “그런 말 아무 소용없어. 아무 의미가 없다구. 난 독립운동 안 할 거야.”

 

 애숙이 자신을 부축하는 서경과 종희의 팔을 뿌리친다.

 

 “아무 의미도 없다구!”

 

 애숙이 서경과 종희를 떠나 걸어나간다. 혼자 멀어져 가는 애숙의 어깨가 떨린다. 서경과 종희가 안타깝게 바라본다.

 

 “내 강연회에는 와!”

 

 서경이 멀어져가는 애숙에게 소리친다.

 

 ***

 

 조선 총독부 의료원은 조선 최고의 병원이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종희는 자부심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괴심도 가지고 있다.

 

 그 날도 조선 총독부 의료원 로비 입구가 요란해지더니 들 것에 허름한 노동자 복의 남자가 실려 들어왔다. 다리를 다쳐 피투성이인 체로 남자는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다.

 

 로비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 의사, 간호사들이 놀라서 돌아보고 마침 ‘산부인과’ 진료실을 나오던 종희가 그걸 본다. 황급하게 달려간다.

 

 “일단 응급실로 가세요!”

 

 종희가 응급실을 가리키며 이끈다. 다친 남자를 데리고 온 일군의 무리들은 다들 허름한 한복 노동자복 차림으로 막일을 하던 차림들이다. 종희가 아는 체를 하자 구세주를 만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그들은 굽신거리며 애절하게 부탁한다.

 

 “네. 의사 선생님 찾아 드릴께요.”

 

 종희가 얼른 주변을 살피며 의사를 찾는다. 마침 외과 진료실에서 일본인 외과 의사가 나온다.

 

 “기무라 선생님! 다리 부상 환자 봐 주세요!”

 

 종희가 일어로 급하게 부른다. 하지만 의사는 다가오지도 않고 힐끗 보더니 일어로 짜증스럽게 소리친다.

 

 “조선 사람이야? 안 돼! 나 다음 환자 예약 있어.”

 “뭐라구요?”

 

 종희가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친다. 주먹을 쥔다.

 

 “기무라 선생님! 지금 이 환자 출혈이 심해요. 이 환자부터 먼저 봐 주십시오!”

 

 종희가 다급하게 외친다. 하지만 일본 의사는 상관없다는 얼굴이다.

 

 “나 다음 환자 총독부 경무님이야. 진찰하고 가든지 할게. 이선생이 응급처치 해 놔!”

 

 일본 의사가 신경질적으로 지시하고는 모른 체 떠난다. 그 뒤에 대고 종희가 소리지른다.

 

 “선생님! 지금 조선인이라서 차별하시는 겁니까?”

 

 일본 의사가 휙 뒤돌아보더니 종희를 노려본다.

 

 “뭐라구? 이선생?”

 

 얼굴을 구기며 얘기하고는 종희에게 경고한다.

 

 “나 지금 예약시간 돼서 가야 하는데 두고 보겠어.”

 

 일본 의사가 얼른 다시 자신의 외과 진료실로 들어가 버린다. 종희가 낭패한 얼굴로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들것을 지휘하여 응급실로 뛰어간다. 그걸 이비인후과에서 나오던 20대의 남자 의사가 본다.

 

 응급실로 들어가 종희는 비어 있는 침대를 찾아 들것에 실려 들어온 조선인 환자를 옮긴다. 응급실 입구에 이비인후과 의사가 나타나더니 다가온다.

 

 종희가 지혈 처치를 위해 붕대 등을 찾으러 가다 이비인후과 의사와 마주치고는 좀 놀란다. 일어로 얘기한다.

 

 “요시다 선생님이 여기에 어떻게?”

 

 이비인후과 의사가 일어로 말한다.

 

 “어디 환자 좀 봅시다.”

 

 급히 환자에게 다가가 다리 상태를 살핀다. 종희가 급히 옆에 와 의사 옆에 선다.

 

 “내가 외과 전문의가 아니라서 응급 처리 지시밖에는 못 하겠네요.”

 “빨리 지시해 주세요.”

 

 둘은 여전히 일어로 얘기한다. 환자는 고통스럽게 ‘살려 주세요’하고 비명을 지른다.

 

 “조금만 참으세요.”

 

 의사가 조선어로 환자에게 말한다. 종희가 놀라서 의사를 본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비인후과 의사가 조선어를 하는 걸 처음 봤다. 일본인일 줄 알았는데.

 

 하지만 곧 의사는 종희에게 일어로 지시한다.

 

 “일단 붕대랑 지지대 그리고 염증 치료제와 진통제 주사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놀란 표정을 지우고 종희가 익숙하게 일어로 대답하고는 약품 준비대로 달려간다. 의사가 환자의 피가 흐르는 다리를 자세히 보며 살핀다.

 

 비록 이비인후과 의사지만 능숙하게 응급처치를 하였다. 그리곤 그 의사가 일본인 외과 의사에게 부탁하는 걸 종희는 봤다. 외과 의사는 한가해지자 환자를 처치하였다.

 

 “요시다 선생님! 아까는 감사했어요. 조선인 환자 다들 무시하는데 봐 주시고.”

 

 종희는 근무시간이 끝나자 이비인후과 의사를 진료실로 찾아갔다.

 

 “아닙니다.”

 

 요시다도 일어로 대답한다.

 

 “혹시 조선어 배우셨어요? 아까 조선어로 말하시던데.”

 

 종희가 조선어로 묻는다. 그러자 요시다가 잠시 멈칫한다.

 

 “음. 제가 조선인이라서요.”

 

 종희가 놀라서 상연을 본다.

 

 “네, 조선 사람요?”

 “네. 조선 사람입니다.”

 “저, 정말요? 전 지금껏 내지인이신 줄 알았는데. 일본인 의사들하고만 어울리고 다니셔서.”

 

 요시다가 잠시 말을 안 하고 침묵을 지킨다.

 

 “그럼 조선 이름은 어떻게 되세요?”

 “최 상연입니다.”

 “최 상연. 최 선생님...”

 

 종희가 상연의 이름을 되새기듯 다시 불러본다.

 

 “아까 조선인 환자 제가 치료했다고 소문내지 말아 주세요.”

 “네? 왜요?”

 

 종희가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지금까지 조선인인 걸 숨겨 왔는데 더 이상 밝혀지는 게 싫습니다.”

 “이미 다 밝혀졌는데...”

 

 상연이 종희를 부탁하듯이 지그시 본다.

 

 “왜 지금껏 조선인인 걸 숨기고 사셨어요?”

 “그걸 꼭 제가 얘기해야 합니까?”

 

 상연이 까칠하게 얼굴을 찌푸린다.

 

 “그래도 조선분이신데. 조선인인 게 창피하세요?”

 “네. 창피해요. 조선인이 내지인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상연이 기다렸다는 듯 창피하다고 대답하자 종희는 화가 난다.

 

 “뭐라구요? 그걸 말이라구 해요? 그럼 조선인 노동자는 왜 응급처치해 주셨어요?”

 “그럼 죽어가는 환자를 나 몰라라 합니까?”

 

 상연의 목소리도 올라간다. 종희는 잠시 헉한다.

 

 “그래도 조선 사람이라고 생각은 하네요.”

 

 종희가 비꼬자 상연은 입을 다문다. 잠시 조용히 침묵이 흐르고 종희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벤치에서 일어난다.

 

 벤치를 떠나가려다 종희는 멈춘다. 잠시 생각하다 벤치에 앉아 있는 상연을 뒤돌아본다.

 

 “그래도 오늘 조선인 목숨을 구하신 건데 제가 그냥 넘어갈 순 없네요. 우리 집에 한번 밥 먹으러 오세요. 우리 어머니가 음식 솜씨가 좋아요. 오늘 신세 진 거 갚아야 할 것 같습니다.”

 

 종희의 말에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연의 얼굴이 부드러워진다.

 

 ***

 

 “수원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단단한 목소리와 신뢰가는 눈빛으로 말하는 자신을 마주 보고 얘기하는 이 남자가 의열단의 협두라는 것만 세미는 안다. 상해에 도착해 일본 경찰의 손길이 비교적 미치지 못하는 프랑스 조계령 안에 들어 와 대한임시정부를 찾아갔었다.

 

 대강 여인숙에 임시로 숙소를 정하고 임정에서 할 일을 찾았는데 자신을 찾아온 이 남자는 자신의 이름이 김원봉이라고 했다. 다른 조선인들에게 물으니 다들 신뢰할 수 있는 독립운동가라고 해서 세미는 선선히 이 남자의 말에 웃어준다.

 

 중국식 인테리어로 꾸며진 프랑스 조계령 내 다방에서 김원봉은 주변을 경계하듯 두리번거리더니 음성을 낮춰 세미에게 몸을 내밀고 말한다.

 

 “저희 의열단 일을 좀 도와 주십시오.”

 

 

작가의 말
 

 내일 추석에 올리고 14일 하루 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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