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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여인들
작가 : 헤이미치
작품등록일 : 20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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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경찰서 폭파하려구!
작성일 : 19-09-25     조회 : 355     추천 : 0     분량 : 5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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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하하. 그럼, 그럼요. 신혼 여행은 당연히 신부가 다 계획하는 거지요. 걱정 말아요.”

 

 용석이 기분 좋게 허락한다. 애숙이 미소짓는다.

 

 그렇게 애숙과 용석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결혼식은 용석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게 유명한 경성 시내 교회에서 진행되었다. 용석은 애숙을 위해 결혼식에 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교회 예배당은 화사한 꽃으로 온통 장식되고 꽃향기가 식장 안을 가득 채운다. 초대된 하객들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려는 듯 성장을 하고 하나 둘씩 나타난다.

 

 예배당 옆 신부 대기실도 용석은 아름다운 꽃으로 단장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건 단아한 서양식 웨딩 드레스를 입은 애숙이었다.

 

 면사포를 쓴 애숙은 화사한 꽃 사이에서도 빛이 난다.

 

 “야! 너 진짜 이쁘다!”

 

 종희가 걸걸한 목소리로 칭찬해준다. 애숙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오늘은 좀 조신하게 있기로 한다.

 

 종희도 들러리를 서기 위해 심플하지만 선이 고운 드레스를 입었다. 용석은 친한 친구들을 들러리 세우고 싶다는 애숙의 요청을 흔쾌히 승낙하며 비용을 지불했다.

 

 대기실 구석에 옷을 갈아입기 위해 만들어 놓은 칸막이 커텐이 열리고 서경도 나타난다. 애숙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보부상 옷차림으로 경성에 올라와서 지금 들러리 드레스로 갈아 입었다.

 

 드레스는 애숙과 체형이 비슷한 서경의 몸에도 잘 맞아 하늘거린다.

 

 “서경이 미모 어디 안 갔네! 머리도 짧은 것이. 나보다 이쁘면 안 되는데...”

 

 애숙이 감탄한다.

 

 “하하. 임서방처럼 보이면 안 되는데...”

 

 서경이 짧은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넙죽 말한다.

 

 “걱정마! 이 언니가 다 따로 준비해둔 게 있다.”

 

 종희가 들고 온 보퉁이를 펴는데 안에서 너울이 달린 화관이 나온다. 가짜 꽃으로 만들어졌지만 예쁘다.

 

 종희가 서경의 머리에 씌워주자 짧은 머리가 완벽히 가려지며 서경이 더 예뻐진다.

 

 “임처녀 같지?”

 “그러네.”

 

 서경이 화관을 쓴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더니 놀랍게 변신한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반한다.

 

 “언니! 고마워!”

 

 그때 신부 대기실 문이 확 열리고 세 여자가 돌아보고는 눈이 커진다. 셋이 동시에 외친다.

 

 “세미야!!!”

 

 세미가 중국 여자옷 차림으로 들어온다.

 

 “잘들 지내셨어?”

 

 세 여자는 세미에게 달려들어 서로 부둥켜안는다. 서로 등을 두드리며 반가워한다. 서경이 눈을 비비며 말한다.

 

 “내 눈 이거 잘 못 된 거 아니지?”

 

 종희가 서경의 눈을 마저 비벼준다.

 

 “멀쩡하거든. 세미야! 고맙다! 건강하게 돌아와서!”

 “내 결혼식인 건 어떻게 알았어?”

 “허허. 내가 누군데. 이 정돈 식은 죽 먹기야. 나 요즘 잘 나가. 이런 정보쯤이야.”

 

 세미가 큰소리치자 네 여자는 둥글게 서서 드레스 따윈 상관하지 않고 발을 구른다.

 

 애숙은 아름다운 들러리 드레스를 입은 세 여자를 옆으로 세우고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을 마친다. 자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날 이렇게 절친들을 곁에 두고 결혼식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용석은 아름다운 신부를 맞아들이는 기쁨에 서양식 결혼식 피로연도 준비하였다. 집 마당은 결혼식 피로연을 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정원은 며칠 전부터 잘 다듬은 나무과 꽃들로 만발했다. 나무 곳곳을 분홍색 리본으로 장식하고 잘 깍인 잔디 위에 흰 레이스로 장식한 테이블을 놓았다.

 

 테이블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놓여있고 음료수가 담긴 유리컵들은 햇살에 반짝거린다. 테이블 곳곳도 애숙이 좋아하는 꽃으로 장식하고 최신 양복과 드레스를 입은 몇몇 초대받은 하객들이 여기저기 서서 얘기를 나눈다.

 

 나무를 장식한 리본들이 바람에 시원하고 날리고 꽃향기가 식장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정원 한구석 가장 큰 나무 아래서 네 여자는 심각한 얼굴들이다.

 

 “대구 경찰서 폭파하려구.”

 

 세미가 상해에서 온 이유를 말해준다. 세 여자들은 눈빛이 변한다.

 

 “뭐?”

 

 셋이 함께 목소리를 높이자 세미가 진정하라는 눈빛으로 조용히 시킨다.

 

 “누가 시켰어?”

 “내가 재미로.”

 

 세미가 가볍게 얘기한다.

 

 “뭐야? 그게 말이라고 하냐?”

 

 종희가 세미의 등을 세게 친다.

 

 “너 잡혀 죽을 수도 있다.”

 

 애숙이 심각하게 일깨운다.

 

 “조국 독립을 위한 일이야. 난 할 거야.”

 

 세미의 단호한 말에 세 여자 사이에서는 잠시 침묵이 흐른다. 하지만 서경이 침묵을 깬다.

 

 “나도 도울게. 어차피 난 좀 있다가 중국 상해로 넘어갈 거야.”

 “정말? 다시 생각해 봐! 너 죽을 수 있어.”

 “그러야 알지.”

 “나도 할게. 끼워 줘!”

 

 애숙이 말하자 다들 돌아본다. 말하는 애숙 입술의 연지색이 곱다.

 

 “야! 애숙이 넌 금방 결혼한 새신부야! 그만둬!”

 

 세미가 말리자 애숙이 바람에 흔들리는 드레스 레이스 자락을 잡으며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너네 내가 우리 신랑이랑 어떤 서약서 썼는지 모르지?”

 

 세 여자가 일제히 의문의 눈으로 본다.

 

 “조선 독립 운동을 돕는다라는 조항을 넣었다구.”

 “뭐라구?”

 

 애숙의 말에 세 여자가 일제히 목소리를 높인다.

 

 “신랑이 실체를 알면 말릴 텐데.”

 “당연히 말 안 하지. 다른 조항으로는 나의 일에 상관하지 않는다가 있어.”

 

 서경의 걱정에 애숙이 무슨 걱정이냐는 투다. 그 말에 세 여자가 입을 모은다.

 

 “너 상당히 세다!”

 

 목소리가 커서 애숙이 손을 입에 갖다 대며 ‘쉿’한다. 세 여자는 함께 난감한 표정을 짓고 애숙은 그 모양이 우스워 웃는다. 화려하게 화장한 얼굴 때문에 웃음이 더 과장되어 보인다.

 

 “폭탄은 직접 제조할 거야. 나 폭탄 제조 기술자 됐어.”

 “뭐야?”

 

 세미가 말하자 세 여자가 또 일제히 놀란다. 목소리를 꾹꾹 누르면서.

 

 “어? 폭탄 제조할 줄 아니?”

 “못 말리겠다. 별 걸 다 배워.”

 “수원 기생은 뭐든지 잘 해! 하하.”

 

 세미가 또 수원 기생 자랑이다.

 

 “그럼 산 속 아지트에서 나랑 같이 하자. 거기가 산 속 깊이 으슥하고 짐승들이 많이 나와서 사람들이 접근 잘 못하고 폭탄 제조하기 딱이야.”

 

 서경은 벌써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리얼? 퍼펙트하네.”

 

 세미가 배운 영어를 써먹어 본다.

 

 “언제 폭파할 거야?”

 

 애숙이 정색을 하며 묻는다.

 

 “폭탄 제조 끝나고 일주일 후?”

 “잘 됐다. 내가 신혼여행 끝나고 바로 대구로 갈게”

 “굿. 그럼 일주일 후 대구에서 만나!”

 

 세미가 약속을 정하고 세 여자가 들고 있던 술잔을 부딪히며 약속을 굳힌다. 하지만 옆에 있는 종희는 조용하다.

 

 “언니는?”

 

 서경은 아까부터 말이 없는 종희가 신경이 쓰인다. 세 여자가 종희를 본다. 종희가 천천히 말을 꺼낸다.

 

 “우리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폭파를 해야겠니?”

 

 목소리가 낮다. 세 여자가 잠시 멍한 얼굴이 된다. 침묵이 흐른다.

 

 “난 이런 폭력적인 방법은 반대다.”

 

 종희가 얼굴을 굳히며 단호하게 말한다. 세미가 기가 막히다는 얼굴이다. 말을 쏘아낸다.

 

 “언니! 일본이 우리한테 쓰는 폭력은 생각 안 해봤어? 의병들은 총을 쏘아 죽이고, 삼일 운동 때 평화적으로 만세하는 사람들한테 총을 쏘고, 독립 투사들 잡아가 고문하고 그런 폭력은 몰라?”

 

 종희와 세미가 서로 노려본다.

 

 “그건. 그래.”

 

 서경이 느릿느릿 말을 꺼내며 세미의 편을 든다.

 

 “일본이 폭력적이라고 해서 우리도 같이 폭력적이면 되겠어? 그럼 우리 같이 폭력배되는 거 아니냐구? 난 반대다.”

 

 종희가 날카롭게 지른다.

 

 “언니...”

 

 서경은 안타깝다.

 

 “그럼 언니는 빠져.”

 

 세미가 단칼로 베듯이 말하고 네 여자 사이에서는 다시 침묵이 흐른다. 표정들이 굳었다.

 

 그때 멀리서 손님들과 얘기하던 용석이 다가온다.

 

 “여보! 뭐해?”

 

 얼굴이 싱글벙글이다.

 

 “아무것도 아니예요.”

 

 애숙이 침착하게 웃어 보이고 세 여자도 함께 들고 있던 잔을 들어 보인다. 입을 모아 용석에게 말한다.

 

 “결혼 축하드려요!”

 

 ***

 

 “유럽으로 신혼여행 가는 것도 마다하고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요?”

 

 조선에서 가장 고급 자동차 안 뒷좌석 시트에 몸을 기대앉아서 용석은 애숙에게 작게 불평을 한다. 애숙은 아까 피로연 때 친구들과 한 얘기가 머리를 떠나지 않지만 오늘은 용석에게 친절하기로 마음먹었다.

 

 웃으며 남편을 달랜다.

 

 “우리의 서약서를 잊지 마셔야죠. 제가 하는 일에 상관하지 않기로 하셨잖아요.”

 

 웃는 얼굴이지만 말은 칼같다.

 

 “그, 그건. 아, 알았소. 이상한 데 가는 건 아니지?”

 

 더 많이 사랑하는 용석이 애숙 앞에서는 을이다. 애숙의 웃는 얼굴을 보며 용석은 입을 닫는다. 고급 자동차가 부드럽게 종로 거리를 지나간다.

 

 자동차는 동대문을 나가 애숙이 가리키는 작은 산 아래에 선다.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길 앞에 내려서 애숙과 용석은 걸어서 산을 올라간다.

 

 최고급 양장과 양복을 입고 최고급 하이힐과 신사화를 신은 애숙과 용석의 신발에는 흙이 묻는다. 용석은 산을 올라오느라 짜증이 나지만 애숙은 하이힐로도 아무렇지 않게 산을 오른다.

 

 그리곤 작은 묘 앞에 선다.

 

 “아니 여기가 당신이 오자고 하는 데요?”

 “네. 여기가 신혼여행 목적지예요.”

 

 묘지석 앞에는 ‘이필용’이라고 이름 석자만 쓰여 있다. 용석은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진다.

 

 “하. 참. 신혼여행을 남의 산소로 오다니. 내 참 기가 막혀서. 아니 이필용이 누구요?”

 

 용석의 말에 애숙이 담담하게 대답한다.

 

 “제가 전에 사궜던 애인요.”

 “뭐요?”

 

 용석은 놀라고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느낌이다. 기가 막혀서 주변을 빙글빙글 돈다.

 

 “아니. 당신.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거요? 이거 뭐요?”

 “여보. 우리 서약서 잊으셨어요? 내가 하는 일에 상관 안 하시기로 했잖아요.”

 “그 그건. 허. 참. 그래도 이건 아니지.”

 

 용석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왔다 갔다한다. 하지만 애숙은 조용히 산소 앞에서 묵념을 한다.

 

 “아. 그래. 이 사람은 죽은 사람이야. 당신 애인이었던 뭐든 간에 이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구.”

 

 애숙이 묵념을 끝내고 고개를 든다.

 

 “그래.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니까 됐어.”

 

 용석이 계속 혼잣말한다. 애숙은 용석의 말에 상관하지 않는다. 조용히 돌아서더니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용석이 ‘여보’ 부르며 애숙을 쫓아 내려간다.

 

 ***

 

 “대구에서 뭘 하려 했냐니까?”

 고문실 의자에 결박당한 남자는 온 몸의 옷이 찢겨 지고 피투성이다. 하시모토는 의열단원인 남자의 목을 뒤로 젖히고는 얼굴 위에 수건을 올려 놓는다.

 

 조선 총독 지하 고문실에서 하시모토는 어떻게든 이 의열단원에게서 정보를 얻어내겠다고 심한 고문을 가한다. 지난번 의열단 윗대가리 이한의 거짓 정보에 속은 후 하시모토는 경찰서 내에서 위험한 처지에 처해 있다.

 

 이한이 탈출까지 하는 바람에 하시모토에 대한 문책은 가중되었다. 다행히 경상도에서 몇몇 의열단원들이 잡히는 바람에 경찰서장은 하시모토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겼다.

 

 경상도에서 잡힌 의열단원으로부터 캐낸 정보로 경성에 있는 다른 의열단원을 잡아서 하시모토에게 취조를 하라고 맡긴 것이다. 하시모토는 워낙 고문 기술자로 명성이 자자하다.

 

 하시모토는 이번 취조에 최선을 다하려고 잡힌 의열단원에게 더욱 악랄한 고문을 가했다. 수건이 올려진 의열단원 얼굴 위로 물이 가득한 주전자를 붓는다.

 

 주전자에서 물이 굵게 흘러 나오자 고문 의자에 결박된 남자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몸부림친다. 물이 수건을 적시며 얼굴에 꽉 붙어 숨을 쉴 수 없을 것이다. 물은 코와 입을 통해 폐속으로 넘어가고 남자는 숨이 넘어가는 죽음의 고통을 느낀다. 아악.

 

 마지막 순간 하시모토는 주전자를 멈춘다.

 

 “여기서 너 하나 죽어 나가도 아무도 모른다구. 빨리 말해! 대구에서 뭘 하려 했나니까?”

 

 의열단원이 숨이 넘어갈 듯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말을 하지 않는다.

 

 “이게! 정말 죽고 싶나? 지옥이 어떤지 좀 알겠어?”

 

 하시모토가 다시 주전자를 들더니 남자의 얼굴 위로 물을 붓기 시작한다. 하지만 남자가 몸부림마저 치지 못하고 축 늘어진다.

 

 하시모토는 낭패한 표정이 되어 옆에 선 부하 경감에게 소리친다.

 

 “이 자식이 죽으면 안 돼! 아직 정보도 못 캐냈는데... 병원 가자구!”

 

 부하 경감이 급히 의자에서 남자의 결박을 풀기 시작한다.

 

 이들은 급히 축 늘어진 의열단원을 들 것에 싣고 총독부 의료원에 들어선다. 로비로 들어서며 하시모토가 소리지른다.

 

 “야! 여기 의사 어디 있어?”

 

 오가는 많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산부인과에서 나오던 종희가 그걸 봤다. 급하게 달려 간다.

 

 들것에 실린 의열단원은 거의 시체로 보인다. 종희가 헉한다.

 

 “이럴 수가. 응급실로 가십시다.”

 

 종희가 급히 하시모토 무리를 응급실로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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