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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여인들
작가 : 헤이미치
작품등록일 : 20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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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이다! 다들 피해!
작성일 : 19-09-27     조회 : 327     추천 : 0     분량 : 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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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과 세미가 얼굴을 소리나는 쪽으로 돌리며 얼굴이 환해진다.

 

 “난 대구 경찰서로 갈게. 서경이 넌 어디가 좋을까?”

 

 세미가 먼저 말을 꺼낸다. 긴장으로 팽팽한 목소리와 눈빛이다. 애숙과 함께 부엌에 셋이 둘러 앉아서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한다.

 

 “내가 대구 경찰서로 갈게. 거긴 너무 위험해. 넌 딴 데 가라.”

 

 서경이 가로막으며 나선다.

 

 “위험하니까 내가 가야지.”

 

 세미가 고집한다.

 

 “어험. 이 언니 말을 들어. 세미 너 수원에서 기생 몇 명 데리고 만세 불렀니?”

 “그건 왜? 일곱 명...”

 “에게. 너무 적다. 난 여학교 후배들 스무 명 데리고 헌병대 안에서 만세 불렀다구.”

 “서경이 이겼네. 서경이 경찰서 당첨.”

 

 애숙이 결론짓는다.

 

 “어휴. 억울하다. 동생들만 열 명 더 있었어두 내가 되는데. 명월관 기생이 전부 일곱 명이야.”

 “경찰서 앞에 조선은행 대구지점 있거든? 세미 너는 거기 가라. 거기도 경찰서 못지않게 조선인들 피 빨아먹는 곳이야.”

 “좋아.”

 

 세미 얼굴이 밝아진다.

 

 “그럼 난 어디 갈까? 대구에 또 조선인들 피 빨아먹는 거머리들 있는 데가 어디야?”

 

 애숙도 빠질 수 없다.

 

 “그 옆에 농민들 땅 빨아먹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대구지점이 있어. 거기로 가면 되겠네.”

 “오케이!”

 

 서경이 알려주자 애숙이 시원하게 대답한다. 하지만 서경은 오지 않은 종희가 궁금해진다. 아무리 폭력에 반대한다고 해도 의리의 여신 종희가 얼굴 비치지 않을 여자가 아니다.

 

 “종희 언니는 어떻게 지내?”

 “참 언니 종로 경찰서에 있어.”

 

 서경과 세미 둘 다 얼굴이 창백해진다. 또 무슨 일인가?

 

 “병원에서 시위하다가 업무 방해로 경찰서에 갔대.”

 “대체 무슨 일이야. 오래 있을까?”

 

 애숙이 말하자 서경이 묻는다. 다들 감옥까지 갔다 온 신세라 경찰서 체포됐다는 건 걱정이 앞선다.

 

 “난 잘 몰라.”

 “언니 열심히 사네.”

 

 세미는 담담하게 반응한다. 우리 중 가장 대범한 세미답다.

 

 “하긴 언니는 폭력에 반대했었어.”

 “그렇지.”

 

 서경의 생각에 애숙도 동의한다.

 

 “우리 이렇게 얘기하지만 죽기를 각오해야 해.”

 “왜 죽기부터 생각해? 우리 홍길동처럼 도망치자구.”

 

 세미의 차갑고 냉정한 다짐이 무거워 서경은 경쾌함을 날린다.

 

 “참 말은 쉽다. 뭔가 잘 도망칠 방도를 생각해야지.”

 

 애숙이 현실적으로 제안한다.

 

 “홍길동? 그럼 우리 홍길동처럼 변신해 볼까?”

 

 서경이 자기가 말해 놓고는 스스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눈이 반달이 되어 웃는다.

 

 “뭐야?”

 

 세미와 애숙이 솔깃해서 귀를 기울인다. 서경이 둘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세 여자는 얼굴을 맞대고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의논한다.

 

 ***

 

 하시모토가 급하게 대구로 내려가 버리는 바람에 종희는 가벼운 업무 방해 혐의로 이틀 구류를 살고 종로 경찰서를 나온다. 바로 집으로 갔는데 그곳에 상연이 와 있었다.

 

 “글세 이 선상님이 매일 집에 오셔서 들여다 보시고 애랑 놀아 주고 했다.”

 

 어머니가 종희를 반갑게 맞으며 알려준다. 하시모토에게 붙잡히면서 구경하는 무리 속에 있는 상연을 보고 엉겁결에 어머니와 아들을 부탁했지만 진짜 이렇게 돌봐줄 줄은 몰랐다. 종희는 마음이 몽글해지는 걸 느낀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종희가 인사하지만 상연은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냉랭한 표정이다. 어머니가 차려 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어두워진 집 앞 골목에서 종희는 따로 상연과 얘기를 나눈다.

 

 “왜 이렇게 냉랭한 표정이세요? 그렇게 안 좋은 표정일 거면 우리 집에는 왜 오셨어요?”

 “이 선생님이 잡혀가면서 어머니랑 아들 부탁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부탁 안 들어줘도 되잖아요? 왜 신경 쓰셨어요?”

 “어머니하고 아들 책임지는 여자가 이게 뭡니까?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 거예요?”

 

 상연은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더니 토해내듯 종희를 나무란다. 종희는 상연과의 사상적 거리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건... 그럼 식민지 조선의 여성으로써 항의도 못 한다는 말씀이세요? 그 환자는 고문당해서 죽을 지경이었다구요. 그런데 가만히 말도 못하고 죽는 걸 내버려 두냐구요?”

 “그 사람 불령선인이었어요. 반일본 체제 전복 시도자였다구요.”

 

 상연의 말을 들으며 종희는 가슴에서 불이 확 올라오는 걸 느낀다. 목소리가 올라간다.

 

 “아니 그럼 당연하지. 일본 지배에 반대하는 게 조선인으로서 당연하지요. 조선인들은 일제에 죽어 지내야 합니까?”

 “조선인들이 못나서 일본에 지배당하는 거 아니냐구요? 임금은 자기 이익만 차리느라 우유부단하고 지 배만 불리구. 양반층은 임금에 빌붙어서 지 재산만 늘리구. 백성들은 글도 모르고 배우지도 못했구 눈 앞의 이익을 놓치지 않으려고 맨날 싸우고. 구질구질해.”

 

 종희는 화가 나 눈에서 불이 나온다.

 

 “꼭 그런 것만 보셨어요? 삼일 운동은 못 보셨어요? 그 많은 조선인들이 들고 일어선 가슴 벅찬 광경을요.”

 “그런 것 가지고 조선 독립이 이루어집니까? 총도 칼도 없고 경제적 능력도 없고 교육은 못 받아 무식해 가지구서 일본에 맞서는 게 가능합니까? 겨우 만세 불러서 이기겠어요?”

 

 상연도 목소리가 올라가 침을 튀기며 얘기한다. 종희는 얼굴이 울그락붉으락해지며 금방 받아치지 못한다. 말을 좀 더듬는다.

 

 “그건... 그래도 죽은 듯이 살 수는 없어요. 살아 있다는 걸 보여야지요.”

 “이런 꼴로는 백년 천년이 흘러도 일본 식민지를 못 벗어나요. 아니 일본 식민지로 있어야 그래도 잘 살 수 있다구요. 제가 일본 살아봐서 아는데 일본이 얼마나 선진적인지 아세요? 외국 문물도 빨리 받아들여서 무역을 활성화하고 기차길도 깔고 전화선도 까는 거 보세요. 탄복이 나온다구요.”

 “그 그건...”

 

 종희가 아닌 것 같지만 미처 대응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어차피 이기지 못 할 거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구요. 나서지 말구. 종희씨만 위험하잖아요. 어머니랑 아들도 돌봐야 하는데.”

 

 종희는 화만 난다. 상연의 주장에 한치도 동의할 수 없지만 금방 대응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더 기가 막힌다. 들은 척도 안 하고 상연에게서 돌아선다.

 

 그 뒤에 대고 상연이 한마디한다.

 

 “병원은 바로 복귀하세요. 내가 잘 얘기해 놨어요. 간호사도 모자라고.”

 

 종희가 못 들은 척 집으로 들어간다.

 

 ***

 

 내일 거사하기로 결정하고 서경, 세미와 애숙은 준비에 나선다. 서경은 시장터에서 헐값에 파는 고등학교 남학생 교복을 구한다. 세미는 서경이 넘겨 준 기모노를 정리하고 애숙은 경성에서 가져온 화구 가방을 정리한다.

 

 서경은 장터에서 만난 학생에게 자전거를 빌리고 세미와 애숙은 대구역으로 나가 인력거꾼과 예약을 한다. 서경은 뒷목까지 깡충 짧은 머리를 가다듬고 애숙은 긴 머리를 감아올려 빵모자 속에 감춘다. 세미는 기모노를 입고 치마의 옆트임을 좀 찢어 놓는다.

 

 거사날 아침 서경은 고등학교 남학생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대구 경찰서 앞에 멈춘다.

 현관 앞에는 총을 들고 칼을 찬 정복 경찰이 보초 서고 있다. 자전거 뒤에는 소포 꾸러미가 묶여 있었고 서경은 그걸 풀어서 보초 서는 경찰 앞으로 가져간다.

 

 마침 하시모토가 안에서 나오는데 다른 경찰과 이야기하느라 남학생 교복의 서경을 무심히 흘린다. 서경이 하시모토를 흘낏 보고는 보초 서는 경찰에게 소포를 넘기고는 바로 돌아서 자전거를 탄다.

 

 보초 서는 경찰은 무심히 총을 내려놓고 소포를 받다가 하시모토에게 걸린다.

 

 “그거 뭐야?”

 

 하시모토가 묻는다.

 

 ***

 

 대구 시내 번화가 ‘동양척식회사 대구지점’ 현판 앞에 화구 가방을 든 남자가 서서 현관 앞을 지키는 수위에게 말을 건다.

 

 “직원들에게 그림을 팔러 왔습니다.”

 

 뭉퉁한 남자 목소리 같지만 주의 깊게 들으면 좀 여리여리하다. 화상은 빵모자를 쓰고 남자 양복을 입은 애숙이다.

 

 “이거 뭔 장돌뱅이야! 여기 그림 같은 거 살 사람 없어.”

 

 수위가 무시하며 애숙에게 소리 지른다. 애숙은 낭패한 얼굴이 된다. 수위가 ‘빨리 꺼져!’ 하며 애숙의 몸을 밀친다.

 

 애숙이 얼굴을 찡그리더니 가방에서 폭탄을 꺼내 힘껏 현관 안으로 던진다.

 

 ***

 

 은행원들이 세 명쯤 창구에 앉아서 돈을 받거나 내주고 있고 창구 앞에는 몇몇 사람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린다. 다들 부유한 느낌이 나는 차림들이다.

 

 은행 창구 너머를 유심하게 살피는 세미는 기모노 차림에 화려한 화장을 했다. 누가 봐도 기생이다. 수위가 그런 세미가 눈에 띄는지 다가온다.

 

 “무슨 일이십니까?”

 “야사오 오라버니를 찾으러 왔어요. 술값을 안 내고 가버리시면 어떡해?”

 

 세미가 콧소리를 내며 기생스럽게 말한다.

 

 “야시오? 그런 사람 없어요.”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세미가 콧고리를 빼더니 차갑게 말한다. 조금 불룩한 기모노 앞섭 쪽으로 한 손을 넣으며 말한다.

 

 “오라버지 죽지 않아도 돼서.”

 

 하더니 품 안에서 폭탄을 꺼내 멀리 창구 안으로 던지고 돌아서 달린다.

 

 ***

 

 서경에게서 소포를 받은 경찰이 다가와 하시모토에게 소포를 내밀어 보인다.

 

 “이런 물건 막 받고 그러면 되겠어?”

 

 하시모토가 얼굴을 찡그리며 소포를 받아서는 잠깐 살핀다.

 

 “수취인이 없잖아. 누구 건지 자네가 찾아줘.”

 

 소포를 얼굴 가까이 대고 확인하고는 다시 경찰에게 넘긴다. 돌아서다가 눈이 반짝한다.

 

 “수취인이 없다니.”

 

 하시모토가 소포를 다시 받아들고 주소를 확인하려고 소포에 얼굴을 들이대다가 코를 킁킁하더니 인상을 확 구긴다.

 

 “아니 이게 뭐야? 화약 냄새잖아.”

 

 하시모토가 급하게 소포를 뜯는다. 소포 안에는 초침이 달린 폭탄이 들어 있다. 초침이 째각째각 넘어간다. 하시모토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크게 소리 지른다.

 

 “폭탄이다! 다들 피해!”

 

 보초 서던 경찰도 놀라 사방으로 ‘비켜’라고 소리친다. 주변에 오가던 사람들이 놀라서 흩어진다.

 

 하지만 하시모토는 침착하게 바닥에 소포를 놓고는 폭탄에서 시계를 분리시킨다. 침이 꼴깍 목울대를 넘어간다. 마침내 초침이 무사히 폭탄에서 분리된다.

 

 하시모토는 바로 일어나 자전거가 달려나간 쪽을 본다. 서경은 이미 멀리 달려나가 보이지 않는다.

 

 “의열단원이었어?”

 

 하시모토가 얼굴이 붉으락 해지며 분해서 발을 구른다.

 

 동양척식회사 대구지점 건물 현관 안에 떨어진 폭탄은 돌멩이 구르듯 바닥에 떨어진다. 수위가 ‘뭐지?’하고 가까이 다가와 들여다보는데 고요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수위가 돌아서 돌멩이를 던진 양복쟁이 화상을 보는데 화상은 이미 인력거를 타고 달아나고 있다. 애숙이 미리 예약해서 대기시킨 인력거는 거리를 달려 나간다.

 

 애숙은 인력거 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속상해한다.

 

 세미가 던진 폭탄이 은행 창구 안으로 떨어진다. 수류탄 모양의 폭탄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피식하고 연기가 나고 작은 불빛이 팍하고 오르지만 금방 꺼진다. 그러나 화약 냄새가 진동한다.

 

 창구 안에 있던 은행원들이 전부 폭탄을 본다.

 

 “이거 폭탄이다! 다 물러서요!”

 

 군인 출신의 은행원 하나가 폭탄을 알아보고는 소리친다. 다들 악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세미는 은행 밖으로 달려나간다.

 

 “저년 잡아라!”

 

 수위가 소리치며 달려나간다. 은행을 나온 세미가 창백한 얼굴이 되어 앞에 선 인력거에 오르려고 한다. 하지만 인력거꾼이 달려 나오던 수위를 보더니 세미를 밀친다.

 

 세미가 몸을 휘청하며 인력거꾼에게 대들지만 인력거꾼이 오히려 세미를 잡으려 한다. 뒤에서는 수위가 달려와 세미에게 팔을 뻗는다.

 

 그때 거리 쪽에서 다다다 말발굽 소리가 들어오더니 키가 큰 말이 세미 옆에 와 선다. 히히힝. 세미가 올려다보니 종희다.

 

 종희가 급한 얼굴로 세미에게 손을 내밀고 세미가 그 손을 잡자 끌어 올린다. 휘릭. 세미가 말 안장에 착 안착한다.

 

 “언니!”

 “꼭 잡아!”

 

 세미가 종희의 허리에 팔을 감는다.

 

 종희가 말허리를 발로 차더니 말을 출발시킨다. 밑에서는 수위과 인력거꾼이 갑자기 나타난 말 때문에 허둥거린다.

 

 말은 리드미컬하게 달려나가고 세미는 종희의 등에 얼굴을 댄다. 포근하고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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