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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여인들
작가 : 헤이미치
작품등록일 : 20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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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에 성공해서 다행이네요.
작성일 : 19-10-01     조회 : 326     추천 : 0     분량 : 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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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야!”

 

 일본 중년 부인이 말한다.

 

 “이치엔 고”

 

 그리곤 서경 보라는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발음한다.

 

 “주엔 해야지!”

 

 서경이 눈치챘다. 얼른 따라 한다.

 

 “이치엔 고주엔!”

 “어릴 때 조선에서 온 애라 코 발음은 여전히 잘 못하네요. 호호”

 

 부인이 긴장을 풀려는 듯 일부러 간드러지게 웃는다. 경찰이 어리둥절하지만 서경의 목에 댄 칼을 떼지 않는다. 그러자 부인이 무서운 얼굴이 된다.

 

 

 “지금 자국의 제국민을 무시하시는 겁니까? 중국 땅에서요?”

 “아. 에.”

 

 경찰이 굳은 표정을 펴며 서경의 목에서 칼을 뗀다.

 

 “치안국에서 상해에 도착하는 사람 중에 지명 수배된 조선인이 있다고 연락이 와서 검사를 하는 겁니다.”

 

 중년 부인이 앞에 얼음처럼 굳어 서 있는 서경의 손을 잡더니 ‘얘야 가자!’하며 이끈다. 서경은 정신없이 이끌려 나오면서도 안심한다. 앞에 서 있던 세미도 이도 저도 못하던 안타까움에서 벗어나 가슴을 쓸어내린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배에서 내린 서경은 항구 한쪽에서 허리 굽혀 일본 중년 부인에게 인사한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 한적한 구석에서 서경과 세미 그리고 부인이 마주 본다. 부인이 서경의 예의 바른 인사에 웃어준다.

 

 “제가 일본인이 아니고 조선인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배 안에서부터 눈치챘지요. 된장국 먹을 때 일본인처럼 먹지 않더라구요. 숟가락으로 국을 퍼 먹구 그리고 무릎으로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하구요.”

 

 서경이 수긍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중국인과 한국어로 말하는 것도 이상했구요.”

 

 옆에 서 있는 세미를 보며 부인이 덧붙인다.

 

 “다 보셨어요?”

 

 세미는 아직도 안심이 안 되는 표정이다.

 

 “묶음띠에는 뭐를 숨기셨어요?”

 

 부인이 묻자 서경은 잠시 생각하다 결심한 표정으로 답한다.

 

 “기밀 서류입니다. 대한 독립 운동에 필요한 정보입니다.”

 “중요한 거였군요.”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다. 그러더니 잠시 서경과 세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입을 뗀다.

 

 “나는 이해합니다. 조선인이 일한합방에도 불구하고 제 나라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부인의 말에 서경과 세미는 잠시 놀란다. 부인이 계속 말을 잇는다.

 

 “일본인들이 그들에게 고문을 하고 감옥에 가두는 것은 부당한 거예요. 제가 동경 대학 앞에 하숙을 쳐서 독립운동하는 조선 청년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좋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제야 서경과 세미가 얼굴을 펴고 감격한 표정으로 부인에게 고개를 조아린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아가씨들! 나는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부인이 서경과 세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세 여자는 서로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며 감동이 밀려오는 걸 느낀다.

 

 부인이 돌아서 가고 그 모습을 보며 서경은 환한 표정으로 큰 숨을 들이쉰다. 앞으로는 ‘상해항 (上海港)’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보이고 서경은 새로운 공기를 느낀다.

 

 세미가 익숙하게 가방을 들고 앞장서 가고 서경은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대한 임시 정부가 있는 상해 프랑스 조계지 안으로 들어서니 서경의 눈 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서양식 건물들이 돌이 잘 깔려진 대로를 따라 즐비하고 화려한 상점들과 극장도 늘어서 있다. 서양 문물이 물밀 듯이 들어오는 국제 도시답게 거리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프랑스식 드레스를 입은 서양 여자들과 금시계를 늘어뜨리고 최신 양복을 입은 서양 남자들이 돌아다닌다.

 

 영어도 들리고 불어도 들리고 일본어도 들리고 당연히 중국어가 가장 많이 들린다. 곳곳에 중국 옷을 입은 사람들도 있고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이 달리거나 호객을 한다. 간간이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그러는 와중에도 베트남 남자들이 경찰복 차림으로 총과 칼을 차고 돌아다닌다. 서경이 놀라운 눈으로 이리저리 돌아보자 세미가 옆에서 보며 웃는다.

 

 세미는 마자르가 있는 의열단 아지트로 가고 서경은 이한이 부탁한 대로 대한 임시 정부를 찾아간다.

 

 “안녕하세요? 경성에서 온 임서경입니다.”

 

 서경은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한다. 아직 상기된 얼굴이다. 임시 정부는 작은 건물 2층에 있다. 사무실 안에는 가운데 커다란 책상이 있고 양쪽으로는 2개의 작은 책상이 있다.

 

 가운데 큰 책상에는 ‘국무총리’라는 명패가 놓여 있고 그 앞에 멋진 카이젤 수염을 한 40대 신사가 앉아 있다.

 

 신사는 서경의 인사를 받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성큼성큼 서경에게 다가온다.

 

 “임서경 동지십니까?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내가 이동휘입니다.”

 

 이동휘가 얼굴에 만면의 웃음을 띠우며 서경에게 악수를 청하자 서경도 고향에 찾아온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손을 내밀어 이동휘의 손을 잡고 악수한다.

 

 여기를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긴 여정이었으며 많은 고비를 넘겼는가? 죽을 뻔한 고비들도 있었다는 생각에 서경은 눈시울이 빨개지며 울컥해진다.

 

 “이동휘 선생님이세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서경은 울컥한 마음을 겨우 다잡고는 겨우 말한다.

 

 “저도 이한 동지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경성에서도 고생하셨습니다.”

 

 이동휘가 애라의 어깨를 두드린다. 서경이 눈물이 나오려는 걸 다잡으며 돌아서 기모노 묶음띠를 열어 서류를 꺼내 돌아서서 이동휘에게 소중하게 건넨다.

 

 “일본인 만주 침투 계획과 임정 밀정 명단입니다.”

 

 이동휘가 서경이 건네주는 서류를 조심스레 받는다. 감격에 손이 떨리고 있다.

 

 “이게 임동지가 목숨을 걸고 구한 거로군요.”

 “이한 동지도 홍석원 동지도 그리고 제가 모르는 많은 의열단 동지들이 목숨을 걸었습니다.”

 

 말하는 서경의 목소리도 감격에 차서 살짝 떨린다. 이동휘가 받아 든 서류를 소중히 가다듬는다.

 

 “그렇지요.”

 

 옆에 있던 직원 2명도 주시해 보며 감격한 얼굴들이다. 이동휘가 모두를 둘러보며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 정부가 이렇게 작은 데서 시작하지만 조선 독립을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있으니까 그 어느 곳보다도 큰 곳입니다!”

 

 그 말에 서경을 포함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임동지! 이곳에서 지내면서 대한 애국 부인회 일을 좀 도와주세요!”

 

 서경이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희망에 찬 얼굴이다.

 

 ***

 

 “당신은 역시 천재적이야. 이 그림 그냥 두기에 너무 아깝잖소?”

 

 2층 애숙의 화실에서 이젤 위에 두고 그리고 있는 유화 그림을 보며 남편 용석은 감탄한다. 애숙은 앞에 둔 여인의 전신 그림에 마지막 붓질을 한다.

 

 “조선 미술 전람회에 내 보려고 해요.”

 “그래요? 잘 생각했소. 나야 대찬성이지.”

 

 용석이 애숙을 보며 웃는다. 애숙도 마주 다정하게 웃어준다.

 

 결혼 후 애숙과 용석에게는 경사가 겹치는 것 같다. 애숙은 남편의 지원으로 안정적으로 그림을 그려 완성시켜 국선에 제출했다. 또 용석은 일본 외무성에 변호사로 채용되었다.

 

 “근데 중국 상해로 발령받았소. 이사 가야 하는데 괜찮겠소?”

 “상해요?”

 “오히려 좋은 기회야. 국내에 있으면서 총독부에 충성해서 사람들의 질시를 받기보다는 외국에 근무하는 게 훨씬 낫지. 조선인들 상대 안 해도 되고.”

 “그렇겠네요.”

 

 그 얘기를 듣고 애숙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해 갈 준비합시다!”

 “네.”

 

 애숙은 이사 준비에 바빠지기 시작한다.

 

 ***

 

 프랑스 조계지 내 중등학교의 넓은 운동장에는 백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린다. 한복을 입은 사람, 양복을 입은 사람, 중국 옷을 입은 남녀노소들이 가득 관중석을 채우고 웅성거린다. 기다란 서양 드레스에 하늘거리는 모자를 쓴 서양 부인도 보인다.

 

 하늘은 파랗게 맑고 가벼운 바람이 살랑거린다. 운동장 양쪽에는 좀 가까운 거리를 두고 축구 골대가 놓여 있다. 운동장 한 켠의 커다란 나무 사이에는 ‘대한임시정부 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 여자 축구대회 – 대한애국 부인회 주최’라는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

 

 운동장 양쪽 축구 골대 사이에는 축구장 모양으로 흰 선이 그려져 있고 가운데 선에 8명의 간편한 축구복을 입은 여자 선수들이 4명씩 마주 보고 대열해 있다.

 

 그중에 서경과 세미가 마주 보고 서 있다. 둘은 각각 팔에 빨간띠, 파란띠를 메고 편을 나눴다. 얼굴엔 긴장이 흐른다. 축구공을 앞에 두고 서경과 세미는 웃음기도 없이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가운데 선 심판의 호각 소리를 기다린다.

 

 축구장 선 밖 관중석에 선 사람들은 빨간색 깃발이 있는 응원석과 파란색 깃발이 있는 응원석에 반씩 편을 나뉘어 있다. 즐거운 표정으로 ‘홍팀 이겨라!’ ‘청팀 이겨라!’를 외친다.

 

 양편 응원석 중간에는 아이들이 흰색 창호지를 나무판에 붙인 점수판을 들고 있고 두 명쯤 아이들이 작은 바구니를 들고 모금을 한다.

 

 마침내 심판의 호각 소리가 울리고 축구공을 놓고 마주 선 서경과 세미가 치열하게 몸싸움을 하다 서경이 먼저 공을 잡는다.

 

 서경이 자기편 선수한테 공을 차지만 세미나 잽싸게 나서 막는다. 잡은 공을 세미가 치고 나가자 서경이 세미를 뒤쫓아가 태클을 걸어 세미가 넘어진다. 아야.

 

 그러자 심판이 다가와 호각을 불며 서경에게 주의를 준다. 세미가 일어서며 서경에게 눈을 흘긴다. 서경이 눈을 찡긋하며 미안하다고 한다.

 

 공은 세미의 청팀으로 넘어가고 세미가 공을 잡아 드리볼해 나간다. 하지만 잘 못 뛰고 발이 빠른 서경이 공을 가로챈다. 서경이 홍팀 동료에게 패스해 넘어가고 동료가 골대 앞까지 거침없이 달려 나간다.

 

 서경이 빠르게 골대 앞으로 달려와 자리를 잡고 동료가 막아서는 상대편 선수들을 피해 서경에게 패스한다. 세미가 서경에게 달려와 마크하며 드리볼해 나가는 서경의 발을 걸려고 다리를 넣지만 서경이 가볍게 뛰어 넘는다. 쏘리!

 

 마침내 서경이 골대 안으로 볼을 차 넣는다. 골인! 서경이 뛰어 나오며 손을 흔들어 승리의 세리모니를 하고 홍팀 선수들이 엉겨 붙어 펄쩍펄쩍 뛴다.

 

 빨간 깃발 아래 응원석도 ‘잘했다!’ 소리 지르며 기뻐한다. 이동휘가 가운데 점수판에 다가가 준비한 붓으로 ‘1’을 써 넣는다. 응원석에서 환호성이 올라간다.

 

 다시 경기가 시작되어 접전이 벌어지고 청팀도 골을 넣는다. 서경과 세미가 제일 열심히 이리 저리 뛴다.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든 얼굴들이지만 표정은 밝다.

 

 경기가 끝나자 세미는 청팀 응원석 쪽으로 돌아가는데 마자르가 얼른 나오더니 바가지에 떠 온 물을 세미에게 내민다.

 

 “세미! 유 디드 어 베리 굿 잡!”

 “댕큐!”

 

 세미가 물을 받아서는 벌컥벌컥 마신다. 얼굴에서는 땀땀 줄줄 흐르고 머리도 흩뜨려져 엉망이지만 세미의 빰은 빨갛게 상기되어 아름답다.

 

 서경은 숨을 헐떡거리며 홍팀 응원석으로 돌아가 물을 마시는데 이동휘가 다가온다.

 

 “임 동지! 언제 그렇게 축구 배웠어요?”

 “중국에 오니까 학교에서 여자들도 축구하더라구요. 신기해서 얼른 배웠습니다.”

 

 서경이 숨이 차 헉헉거리면서도 즐거운 표정이다.

 

 “하하. 아주 잘 하더만. 부인들이 축구한다고 소문이 나서 구경꾼들이 아주 많이 왔어요.”

 “네. 기금도 많이 모였나요?”

 “그럼. 지금까지 대한 애국 부인회가 한 바자회 중 제일 많은 것 같아요. 좋은 생각 내 줘서 고마워요”

 “옙! 흥행에 성공해서 다행이네요.”

 

 서경이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도 자랑스럽다.

 

 사람들이 다 돌아가고 이 행사를 주최한 서경이 세미와 마자르와 함께 뒷정리를 한다. 어느새 저녁이 되어 노을빛이 운동장을 비껴든다.

 

 저쪽에서는 세미가 마자르와 함께 물이 담겼던 항아리 등을 손수레에 싣고 있고 서경은 나무 사이에 걸린 현수막을 걷는다. 너무 높아 손이 닿지 않아 까치발로 발을 드는데 큰 손이 올라오더니 현수막을 맨 노끈의 매듭을 푼다.

 

 익숙한 향기라고 생각하고 서경이 돌아본다. 이한이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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