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무협물
최강마졸
작가 : 곽운
작품등록일 : 2016.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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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마졸3
작성일 : 16-04-11     조회 : 613     추천 : 0     분량 : 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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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부들에겐 사숙과 호형호제하기로 한 사실을 숨겼다. 괜한 일로 잔소리를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둔보는 아직도 그날 사숙이 열변을 토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호방한 기개를 지닌 사숙이 너무나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겨우 열일곱의 나이로 그처럼 화끈하게 법도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사람이 천하에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둔보는 자신도 사숙처럼 호방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아무 거리낌 없이 사숙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막상 형님이라고 부르니 사숙이 정말 친 형님같이 살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사숙과는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고작 일 년에 두세 번 만나는 게 전부였다.

 사백조께서 사숙을 엄히 가르쳤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로부터 이 년 후, 둔보는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숙을 우상처럼 여기게 되었다.

 물론, 그리된 계기가 있었다.

 

 십만대산은 그 이름만큼이나 방대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완주하는 데만도 족히 십여 일은 소요가 될 정도였다. 그 십만대산의 골짜기 곳곳엔 수많은 마인들이 은거해 있었다.

 교에 출사하였다가 늙어 어쩔 수 없이 은퇴한 마인들. 잘못을 저질러 교에서 쫓겨난 마인들. 그냥 세상이 싫어 출사하지 않고 은거한 마인들. 다들 사연도 제각각이었다.

 개중에 성격이 괴팍한 자들은 홀로 살았지만 대부분의 마인들은 촌락을 이루고 살았다.

 그런 촌락을 마곡(魔谷)이라고 불렀다.

 둔보가 사는 초마곡도 그런 마곡들 중 하나였다.

 마곡에 은거한 마인들은 마공을 연구하거나 제자를 키우는 일에 전념했다. 그 또한 교를 위해 충성하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은거마인들이 제자를 받아들이면 교에 정식으로 보고를 해야만 했다. 만약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았다가 들통이 나면 교법에 의해 중벌을 받았다.

 마인들이 받아들인 제자들을 교에선 마졸로 분류했다. 아직은 마인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많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들이란 의미일 터였다.

 다시 말해 둔보도 마졸, 사숙도 마졸이었다.

 둔보가 열일곱 그러니까 사숙이 열아홉이던 해였다.

 어느 날 둔보는 산중을 달리며 둔사정이 가르쳐준 무영풍을 수련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발걸음이 가벼워 신나게 달리다보니 그만 초마곡을 한참이나 벗어나고 말았다. 천성이 게으르기 짝이 없는 둔보에겐 그야말로 평생에 다시없을 희한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막 발길을 돌리려는데, 갑자기 잠마곡(潛魔谷)의 마졸 셋이 나타나 그를 막아섰다.

 잠마곡은 꽤 규모가 큰 마곡이었다.

 잠마곡의 마졸들은 둔보에 비해 나이가 서너 살이나 많았고 덩치도 컸다. 그들은 다짜고짜 둔보에게 시비를 걸었다.

 왜 남의 구역을 침범했냐는 둥, 눈빛이 영 맘에 안 든다는 둥, 참으로 해괴망측하게 생겼다는 둥.

 다른 건 다 참아도 생긴 것 같고 놀리는 개자식들은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둔보는 실제로 눈이 왕방울만 했고 코는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들창코였다. 귀는 어찌나 큰지 날갯짓을 해도 무방할 정도였고 입술은 니미럴, 쓸데도 없는데 두툼했다.

 결정적으로 머리통은 큰데 키는 겨우 오 척이 될까 말까 했다.

 사부들은 그런 그를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용모를 지닌 복 받은 녀석이라고 했지만, 그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사부들이 그런 말을 꺼냈다는 것 자체가 그의 용모에 문제가 많음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래저래 둔보는 자신의 용모에 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잠마곡의 우라질 개자식들이 그 열등감에 불을 지핀 것이다.

 둔보도 욱하는 성격이 있었다.

 “좆같은 놈들! 아가리를 확 찢어 다시는 허튼소리를 지껄이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겠어!”

 놈들에게 그가 알고 있는 욕 중에 가장 자극적인 욕을 퍼부었다.

 당연히 대판 싸움이 벌어졌고, 결과는 둔보의 참패였다.

 주먹을 몇 번 날려보지도 못하고 죽도록 얻어맞았다. 세 놈이 달라붙어 마구잡이로 때리니, 수련을 게을리 한 둔보로서는 애당초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초주검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둔보는 사부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복수해 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사부들은 그의 간청을 외면했다.

 교에 몸담고 있을 때, 잠마곡의 곡주인 혼세비마가 상관이었다나 뭐라나.

 둔보는 너무나 억울했고, 너무나 서러웠다.

 잘못도 없이 죽도록 얻어맞았는데 사부들은 잊으라고만 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서러움을 달래려고 한적한 곳에서 홀로 훌쩍이고 있는데 갑자기 사숙이 나타났다.

 사숙을 만난 건 딱 반 년만이었다.

 “왜 여기서 질질 짜고 있어?”

 “….”

 “이런! 얼굴이 완전히 뭉개졌네. 누가 감히 내 하나뿐인 아우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내 하나뿐인 아우’란 말에 둔보는 참았던 서러움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사숙의 품에 안겨 한바탕 통곡을 한 뒤에 전후 사정을 설명하자 사숙의 눈빛이 대번에 싸늘해졌다.

 “그놈들이 감히 내 아우의 가슴에 멍울을 남겼단 말이지. 가자.”

 “어딜요?”

 “잠마곡.”

 “어쩌려고요?”

 “복수해야지.”

 “잠마곡주가 엄청 무서운 자래요.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어요.”

 “화, 정말로 엄청 무서운 자인가 보네.”

 “….”

 “젠장, 무섭다니까 더 보고 싶어 못 참겠다. 어서 가자.”

 “전…싫어요.”

 “왜?”

 “장가도 못가보고 죽긴 싫다고요. 전 다 잊었으니 형님도 그만 잊어버리세요.”

 “….”

 사숙은 잠시 둔보를 측은히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잠마곡주인 혼세비마가 둔보를 때렸던 마졸 셋을 데리고 둔보의 집으로 찾아왔다.

 혼세비마는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한 것으로도 모자라 다리까지 절룩이고 있었고, 온몸을 하얀 천으로 칭칭 싸맨 마졸 셋은 들것에 실려 있었다.

 “노부가 아이들을 잘못 가르쳐 네가 험한 꼴을 당하였구나. 용서하여라.”

 육십이 넘은 혼세비마가 둔보에게 직접 허리를 숙여 정중히 사과했고, 세 마졸은 습기 찬 눈동자로 사죄를 청했다. 움직일 수 있는 게 눈동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부들의 입이 쩍 벌어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고, 당사자인 둔보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분명 사숙이 잠마곡으로 쳐들어가 뭔가 일을 벌인 것이 틀림없었다.

 둔보는 혼세비마가 돌아가자마자 사부들과 함께 사숙의 거처로 찾아갔지만 사숙을 만날 수는 없었다.

 사숙은 이미 사백조와 함께 초마곡을 떠난 후였다.

 사숙은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나서야 초마곡으로 돌아왔다. 전에 비해 한층 성숙된 모습으로.

 “어디 갔다 오셨어요?”

 “바다.”

 “바다는 왜요?”

 사숙은 빙긋이 웃으며 딴소리를 했다.

 “아! 바다는 끝없이 넓어서 좋더라.”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숙은 홀로 잠마곡으로 쳐들어가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일 년 동안 초마곡을 떠나 있었던 이유는, 그러한 사실을 안 사백조께서 사숙을 남해로 데리고 가 중벌을 내렸기 때문이고.

 한낱 마졸이 이름난 대마두를 때리고, 그 마곡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뻔히 벌을 받을 줄 알면서도 자신을 위해 복수를 해 준 사숙!

 둔보는 그때부터 사부들보다 사숙을 더 존경했다.

 

 계곡을 따라 흐르던 물이 용소폭포(龍沼瀑布)에서 멋들어지게 낙하했다. 물은 용소에서 잠시 맴돌다가 계곡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갔다.

 용소폭포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몇 아름은 됨직한 고목이 보였고, 그 고목 중간에 오두막이 멋들어진 모습으로 지어져 있었다.

 이 고목 위의 오두막이 바로 사숙의 거처였다.

 “형님!”

 큰 소리로 사숙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고목의 가지를 밟고 오두막으로 올라가 안을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사숙은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가셨지?”

 오두막에서 내려와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린 둔보는 계곡을 따라 위쪽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올라갔을까?

 “응!”

 둔보의 눈이 번쩍 빛났다.

 사숙이 계곡 옆의 둔덕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숙 적무항(赤武沆)!

 언제 봐도 멋진 분이다.

 육척이 훌쩍 넘는 키에 당당한 체구.

 때론 부드럽고, 때론 강인해 보이는 인상.

 그야말로 둔보와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는 멋들어진 사내였다.

 “형님!”

 둔보는 그쪽으로 달려가며 큰 소리로 사숙을 불렀다.

 힐끗 그를 돌아본 적무항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한숨까지 푹 내쉬더니 힘겹게 일어서며 쓴웃음을 지었다.

 “끄응, 둔보 왔구나.”

 “여기서 뭐 하고 계셨어요?”

 적무항이 손가락으로 둔덕 아래를 가리켰다.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 안으로 토끼가 들어갔다.”

 “아! 토끼 잡으려고 그러고 계셨구나. 근데, 왜 그런 방법으로 토끼를 잡아요? 불을 지펴 연기를 불어넣던지 아니면 성질대로 땅을 확 파재끼던지….”

 “그렇게 잡으면 재미없지.”

 “재미요?”

 “난 녀석과 인내심을 겨루는 중이었다. 후훗, 이 토끼는 참으로 인내심이 대단한 녀석이었다. 내 사흘 동안이나 기척을 죽이고 기다렸는데도 안에서 꿈쩍 않더구나.”

 둔보의 표정이 멍해졌다.

 “사흘 동안이나 그러고 계셨어요?”

 “네가 시끄럽게 굴지만 않았다면 오늘 해지기 전엔 녀석을 잡을 수 있었을 거다.”

 “푸웃.”

 둔보가 참지 못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하여간 괴팍하고 엉뚱한 걸로만 따지면 사숙은 천하제일이었다.

 “그렇게 심심하세요?”

 “아니.”

 “심심하지도 않은데 토끼하고 인내심을 겨뤄요? 사흘 동안 지겹지도 않으셨어요?”

 적무항이 정색을 했다.

 “이것도 수련인데 왜 지겹겠느냐? 동물은 사람보다 감각이 몇 십 배 아니 몇 백 배나 뛰어난 법이다. 난 최대한 기척을 죽여 토끼를 밖으로 유인해 내려고 하고, 토끼는 내게 잡히지 않기 위해 온 감각을 총동원하여 밖을 살폈을 것이다. 녀석에겐 생사가 걸린 싸움이었을 테고, 난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느냐 마느냐의 싸움이었지. 이처럼 재밌는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느냐?”

 열변을 토하는 적무항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둔보가 피식 웃으며 팔을 잡아끌었다.

 “토끼는 그만 잊으시고 사슴고기나 먹으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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