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章 공짜로 마병을 얻다
“마졸들에게 소집령(召集令)이 하달되었네.”
둔사정의 말에 적무항이 담담한 신색으로 물었다.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일월교(日月敎)와의 관계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들었네. 장차 있을 그들과의 분쟁에 대비해 전력을 보강하려는 것이 틀림없네.”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 아니고선 마졸들에게 소집령이 발동될 리가 없었다.
둔사정은 이어 일월교의 탄생 배경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전대교주였던 환우마신(寰宇魔神)이 죽자, 교의 태상장로였던 수라마존(修羅魔尊)이 외손자인 진성마황(眞性魔皇) 능군위를 내세워 광동의 곤산에서 일월신교를 창건했다.
능군위는 환우마신의 아들이자 천마신교의 현 교주인 능조양의 배다른 아우였다.
본래 수라마존의 딸과 환우마신이 혼인을 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후사가 없었다. 그러던 중 환우마신이 시녀와 관계를 가져 능조양이 태어났다.
뒤늦게 본처에게서 능군위가 태어났지만, 환우마신은 끝내 능조양에게 교주의 직을 물려주고 말았다.
“본교와 일월교는 절대로 한 하늘 아래에서 공존할 수가 없네. 그들이 광동 땅을 빼앗아 간 것으로도 모자라, 천마지존(天魔至尊)의 적통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지. 지금껏 가만 내버려둔 것도 교주께서 많이 참으신 게야. 암, 그렇고 말고.”
천마신교의 마인들은 일월신교(日月神敎)를 일월교라 불렀다. 의도적으로 신(神) 자를 빼고 부르는 것이다.
여하튼 적무항은 천마신교와 일월신교 간의 분쟁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소집령에 응해 교에 소속되면 얼마나 귀찮고 번거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일월교가 괴멸되어야만 소집령이 해제되겠군요.”
“물론일세. 하지만 대부분의 마졸들은 교에 출사하여 입신양명하기를 갈망하고 있으니, 소집령이 해제되어도 교를 떠나려하지 않을 걸세.”
“소집령을 거부하면 어찌 됩니까?”
생각지도 않았던 물음에 둔사정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야 당연히…척살령이 내려져 쫓겨 다니다가 끝내는 비참한 모습으로 죽게 되겠지. 그런데 그건 왜 묻나? 자네 설마…?”
“으음.”
적무항은 둔사정의 애타는 심정도 모르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짐작이 들어맞았음을 확신한 둔사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절대, 절대로 쓸데없는 생각을 해선 아니 되네. 사백께서도 기회가 되면 교에 출사하라고 하셨잖은가?”
분명 사부께선 그리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입신양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밖으로 나가 세상 공부를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이었다.
사부는 그가 오로지 무도(武道)에 전념하여, 사부 자신이 올랐던 경지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길 바라셨다.
적무항에게서 여전히 대꾸가 없자 둔사정은 바짝 똥줄이 탔다. 그가 끝내 소집령을 거부하면 둔보 혼자서 입교해야만 했다.
그렇게 되면 미욱하기 짝이 없는 둔보는 누가 돌봐준단 말인가?
“교의 명을 거역하면 십만대산엔 영영 발을 붙이지 못할 걸세. 사백의 묘소를 찾아 제(祭)를 올릴 수도 없을 거란 말일세.”
그제야 적무항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싫어도 응할 수밖에 없겠군요.”
*
새 무복으로 갈아입은 둔보는 허리에 가죽으로 만든 요대를 둘렀다.
요대 왼쪽엔 도가 매달려 있었고, 오른쪽엔 물주머니와 식량주머니 등 잡다한 물건들이 매달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등 뒤에 장포를 두르니 한결 모양새가 살았다.
떠날 차비를 마친 둔보는 밖으로 나왔다.
사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둘 다 눈동자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빼놓은 건 없느냐?”
“잘 살펴봐.”
“장포가 삐뚤어졌잖아.”
“어깨를 좀 곧게 펴야지.”
사부들의 끝없는 잔소리가 둔보는 너무나 지겨웠다.
“제발 좀 그만 하세요. 저도 이젠 다 컸다고요.”
“그래그래. 이젠 그만 하련다.”
“험, 모쪼록 교에 들어가거든….”
“뭐든 시키는 일만 하여라. 괜한 영웅심으로….”
그만 하겠다면서 사부들은 또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둔보를 구해준 건 적무항이었다.
“저기, 사숙께서 오세요.”
사부들 앞이라 평소처럼 적무항을 형님이라고 부를 수가 없어 사숙이라고 불렀다.
적무항은 평소 복장 그대로였고, 병기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표정도 담담한 것이 마치 근처에 산책이라도 나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사젠 저 미욱한 놈의 사숙이고, 이 초마곡의 당당한 곡주일세. 저놈이 허튼짓을 일삼거든 곡주와 사숙의 권위로 따끔히 혼을 내도록 하게.”
“그래도 말을 들어먹지 않으면 사제 뜻대로 죽이든 살리든 하게. 우린 결코 사제를 원망하지 않을 걸세.”
“상명하복, 교법의 엄중함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아니 되네. 상관의 명엔 무조건 복종해야 뒤탈이 없다는 말일세.”
“부당한 명이라고 해서 항명을 하면….”
사부들이 사숙에게까지 쓸데없는 잔소리를 끝없이 늘어놓는 걸 보고, 둔보는 얼른 적무항을 잡아끌었다.
“갈 길이 멀어요. 그만 출발하시죠.”
두 사람이 저만치 멀어져가는 모습을 애달프게 지켜보던 둔사정과 보가력의 눈에서 끝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에효, 무정한 놈.”
“저래서 제자 놈은 애지중지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니까.”
*
넉넉잡고 나흘이면 총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적무항과 둔보의 걸음걸이는 마치 유람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여유로웠다. 이틀은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둔보는 존경하는 사숙과 동행하는 것이 너무나 기뻐 끝도 없이 주절거렸고, 적무항은 둔보가 우스갯소리를 할 때마다 가끔씩 미소를 지어보이곤 했다.
밤엔 노숙을 했고, 낮엔 길을 재촉했다.
초마곡을 떠나온 지 사흘째가 되는 날 늦은 오후, 시종 말이 없던 적무항이 문득 말을 꺼냈다.
“근처에 잠시 들를 데가 있다.”
“어디요?”
“철마곡.”
철마곡(鐵魔谷)은 은퇴한 대장장이들이 모여 사는 마곡이었다. 곡주는 철마란 노인이었는데 병기를 만드는 재주가 교내 제일이란 소문이 자자했다.
“병기를 구입하시려고요?”
“도.”
“아…!”
둔보는 얼른 허리에 찬 도(刀)를 뽑아들었다.
짧고 뭉툭한 도였는데 군데군데 이가 빠져 있었다.
“몰골이 말이 아니죠? 사부님들은 교에서 지급해줄 거라며 아무 걱정 말라고 하셨어요.”
“마음에 드는 도를 구하려는 거다.”
“하긴, 교에서 지급하는 건 죄다 형편없을 게 틀림없어요.”
“너도 이 기회에 하나 장만해.”
“달랑 동전 열 냥밖에 없는걸요.”
동전 열 냥으론 좋은 도를 구입할 수가 없었다.
사부들이 돈이 없으니 제자도 돈이 없는 게 당연했다.
사실, 대부분의 마인들은 미리미리 충분히 저축을 한 뒤에야 은퇴를 했다. 하지만 둔사정과 보가력은 예외였던 듯 가진 돈이 거의 없었다.
“내가 구해주마.”
“화, 형님 돈 많은가 보네요.”
“돈?”
적무항이 허리춤을 툭툭 쳐 보였다.
“난 전낭도 없다.”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철마곡에 당도했다.
철마곡은 오두막이 삼십여 채 가량 모여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마곡이었다.
과연 대장장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집집마다 짙은 연기가 오르고 있었고 쿵쾅거리는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첫 번째 오두막으로 들어섰다.
처마에 온갖 병기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고, 안쪽의 좌판에도 병기들이 가득했다.
좌판 뒤의 의자에 앉아 곰방대를 빨고 있던 사십 대의 대장장이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았다.
“어서들 오시오. 도를 찾으시오 아니면 검을…?”
“곡주께선 어디 사시오?”
대장장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적무항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곡주님을 아시오?”
“아니까 만나러 온 것이 아니겠소.”
적무항의 용모가 워낙 걸출하고 눈빛마저 강렬한 까닭에, 대장장이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뭐 그러시다면야….”
겸연쩍은 표정으로 일어선 대장장이가 밖으로 나와 길을 알려주었다.
“이리로 쭉 올라가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일 거요. 그 윗집이오.”
적무항과 둔보는 대장장이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정말로 철마 노선배를 아세요?”
“이름만.”
“예에?”
둔보는 기가 막혔다.
사숙이 원래부터 저리 막무가내였던가?
“철마 노선배께선 명성이 자자한 마인이 아니면 아예 상종도 하지 않는다던데, 우리 같은 마졸들을 만나주기나 할까요?”
“만나주든 말든, 마음에 드는 도를 구하려면 그분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어.”
“그렇긴 하지만….”
“나만 믿어.”
“…!”
둔보는 결연한 표정으로 이를 악다물었다.
사숙이 믿으라는데 뭔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 무섭다는 혼세비마도 작살을 낸 분이거늘.
“우리 말고도 병기를 구하러 온 마졸들이 꽤 많아요.”
안으로 들어갈수록 집집마다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대부분 젊은 무사들이었다. 행색으로 보아 소집령을 받고 총단으로 향하는 마졸들임이 분명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더 이상 마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느티나무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느티나무를 돌아 위쪽에 보이는 오두막으로 다가갔다.
앞마당에 널찍한 평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덩치가 산만한 노인이 웃통을 까 재낀 채로 앉아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