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8년 (연산군 4년)
시끄러운 시장통이라 할지언정 인경이 되면 조용해지기 마련이다.
그 조용함 속에서도 이따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의 근원지는 작고, 어둡고, 조용한 그저 별볼일 없는 나의 방에서일어난다.
흥부의 쓰러져가는 초가집보다 못하고, 저 멀리 뛰어가는 똥개의 집만도 못하지만 이곳에는 고귀하신 대작들이 줄을 잇는다.
성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고 이름은 그저 아무개요, 자는 무시(無視) 라.
낮에는 아무도 거들떠 안 보는 백정이나.
밤에는 나랏님마저 휘어잡을 최고의 책사일지니.
모든 정당이 내게 무릎 끓고 애원할지다.
비로소 그때, 나의 모든 기원과 숙원을 이룰 수 있겠지.
***
시끌벅적한 시장 속, 아무개의 보잘 것 없는 집엔 짐승의 피냄새와 내장냄새로 얼룰져 있었다.
천민들마저도 더럽고 추악한 곳이라며 욕하지만, 그것은 아무개의 숙원을 더욱 크게 하는 일이었다.
“아이고, 어르신. 요고 함 보고 가시죠.”
꽤나 부티 있어 보이는 양반이 아무개의 도살장을 찾았다.
그때다 싶었던 건지, 아무개는 닭의 양 날개를 한손으로 쥐고는 양반의 앞에 들이 밀었다.
그러자 양반의 표정이 차가워 지며, 뒤로 물러났다.
“난, 그딴 고기 덩어리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
양반은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아무개의 앞으로 다가와서는말했다.
“정랑 (이조 정랑. 전랑 중 하나. 관직의 이사를 담당하는 정5품 관직) 어른의 말을 듣고 찾아왔네. 소문을... 퍼뜨려 준다는...”
아무개는 닭을 내려 두곤, 입꼬리를 씨익, 끌어 올렸다.
“거, 어르신께서는 품계도 낮으신데 어찌 소문을 퍼뜨릴려 하십니까?”
그리 말하곤 아차차, 라며 덧붙였다.
“아니 그 전에, 무슨 소문을 퍼뜨리시길래 어르신을 보내셨을지고?”
양반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낮은 품계라는 말 때문인지, 심부름꾼 취급을 받아서인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아무개의 입은 아첨 아부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정4품은 되어야 해당 되는 것이었다.
“내가 품계가 낮다는 그런 허언은 대체 어디서 나온 망언이냐!”
양반은 아무개를 향해 소리쳤다.
아무개의 눈꼬리가 어여삐 접혔다.
“아무리 정랑이라고는 하나, 고작 정5품 밖에 되지 않는 관직을 높여 부름은 필히 정5품 이하의 품계라는 것일지고, 그렇다면 품계가 그리 높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실실 웃는 아무개의 눈가가 양반의 머리, 몸, 발 끝을 훑었다.
그러곤 들고 있던 닭의 날개를 내려놓았다.
닭이 푸드덕 거리며 다시 뒷편에 있는 닭장으로 날아가자, 아무개는 양반의 어깨를 털지도 않은 손으로 툭툭 쳤다.
“어르신, 우리 무지하신 어르신- 이 쉰네는 고저 백정일 뿐입디다. 그러니 그런 일로 오시려거든, 밤에 오십쇼, 밤에.”
양반은 아무개의 말이 끝나는 즉시, 그의 손을 잡고 있던 부채로 털어 내었다.
더럽다는 듯 불쾌한 표정도 함께였다.
그런 양반의 표정을 아무개가 놓칠리 없었다.
바보 같은 웃음 흘리던 아무개는 양반을 보내고 다시 큰 목청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