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뒤에 늘어선 칠성검수는 어떠한가?
놀랍게도 칠성검수 역시 신형을 부들거리며 진형을 점차 뒤로 물리고 있었다. 적천경이 발출한 기도가 신무도장을 투과한 후 칠성검수에게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설마 격산타우(隔山打牛)의 내공을 기도만으로 발출한 것인가?’
격산타우.
산을 앞에 둔 채 소를 때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무도장은 곧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격산타우는 말 그대로 타격한 당사자에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타격의 첫 번째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이 이미 영향력을 느끼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말이 안 되는 추론이다.
그렇다.
적천경이 일시 일으킨 검기는 초절정의 신공인 격산타우조차 뛰어넘었다. 신무도장과 칠성검수 전체가 일제히 합공한다 한들 이길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슥!
결국 신무도장이 일촉즉발의 기세를 먼저 풀고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은연중 적천경과의 대치를 스스로 포기한 상황!
그것으로 끝일 리 없다.
간격의 조정과 함께 신무도장이 어느새 푸른빛 검광과 함께 태극진검을 빼 든 채 정중하게 기수식을 취해 보였다. 처음에 보였던 형식적인 예의와는 완연히 달라진 표정과 함께다.
“무량수불! 적 관주께서 하신 말씀을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빈도의 수양이 아직 부족하니, 호승심을 너무 탓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빈도 역시 검을 연마한 처지라 잠시 수행하는 자의 본분을 잊도록 하겠습니다.”
“도장…….”
적천경은 신무도장에게 뭐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푸르고 청백한 검기!
일순간 신무도장의 검에서 일어난 푸른 검기가 사방으로 분광을 일으키더니, 한줄기 섬광으로 변했다. 여전히 적수공권인 채인 적천경을 노린 채 파고들었다.
건곤무극검(乾坤無極劍)!
무당파가 자랑하는 오대 검학 중 하나가 적천경을 노리며 일어난 것이다.
반면 적천경은 굳이 신무도장의 검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에겐 호검관주로 지낸 지난 칠 년간, 제자들을 키우기 위해 스스로 독창해낸 분뢰보(分雷步)란 보신경이 있었다.
단 몇 걸음, 그것만으로 족했다.
신무도장의 건곤무극검을 피해 내는 데는.
하지만 적천경은 신무도장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봤다. 그가 이번 일 검에 평생의 심득을 몽땅 집결시킨 것임을 마음 깊숙이 이해했다.
‘부드럽지만 무엇에도 꺾이지 않을 굳건함을 지닌 검이다. 받아주는 것이 검의 길을 함께 걷는 자로써의 도리일 터!’
건곤무극검의 푸른 검기가 지척에 이르렀을 때다.
일순 아무렇게나 늘어뜨려져 있던 적천경의 좌수가 최단의 거리로 공간을 갈랐다.
지잉!
식지와 중지.
단 두 개의 손가락이 기묘한 변화와 함께 푸른색 노을과 같이 파고들던 검기 사이로 파고들었다. 검면을 가볍게 퉁겨내곤, 이어 반대편으로 부드럽게 밀어냈다.
“웃!”
신무도장이 어찌 검기가 손가락에 밀리는 괴사를 경험해 본 적이 있으랴!
그러나 그는 무당파가 자랑하는 십검 중 일좌였다.
###강조###
― 이일대로(以逸待勞), 이정제동(以靜制動).
편안함으로써 피로해진 적을 상대하고, 고요함으로써 움직임을 제압하리라!
###끝###
무당 무학의 핵심을 이루는 요결이다.
신무도장은 자신이 펼친 건곤무극검의 검기가 밀려난 순간, 입문 시 외웠던 구결을 떠올리며 재빨리 검세를 돌이켰다. 더욱 강하게 적천경을 몰아붙이는 대신 방어로 전환한 것이다.
‘역시 신검무쌍!’
적천경은 순식간에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신무도장의 검을 보고 내심 감탄했다.
천하를 둘러본다 한들 이 정도의 검객이 몇 명이나 있을까?
내심 흥취가 인 적천경이 처음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정(靜)에서 동(動)으로의 변환.
이는 신무도장이 되새긴 무당 요결에 대한 정면 부정이다. 무당파에 대한 도전이었다.
적천경의 신형이 빠르게 신무도장의 면전에까지 치달아왔다.
스읏!
더불어 또다시 앞으로 내밀어진 두 개의 손가락.
신무도장의 극한까지 응축되어 있던 검기의 막이 출렁하고 울렸다.
굳셈으로 부드러움을 깬다.
그보다는 극도에 이른 빠름으로써 부드러움의 극치를 찔러 들어갔다고 할 수 있겠다.
“허억”
건곤무극검의 검세를 극단적으로 축소시켜 검막(劍幕)을 형성시키려 하던 신무도장의 입에서 격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완전히 허를 찔려 버렸다는 판단.
그뿐 아니다.
그는 언제 적천경에게 검기를 날렸냐는 듯 연달아 신형을 뒤로 물렸다.
일 보에 일 장 이상씩!
신무도장이 걸음을 멈췄을 때 그와 적천경 간의 거리는 어느새 오 장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그럼 칠성검수는?
하늘처럼 여기고 있던 신무도장이 적천경의 일격조차 받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자 칠성검수가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차차차차창!
검광은 무지개처럼 빛나고 살기는 만장(萬丈)이다.
북두칠성(北斗七星)!
밤하늘을 지키는 일곱 별과 같은 방위를 형성하며 칠성검수가 적천경에게 일제히 검기를 종횡시켰다.
위위구조(圍魏救趙).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한다는 뜻.
즉, 칠성검수는 적천경을 동시에 공격함으로써 수세에 몰린 신무도장을 구하려 했다. 적천경이 완전한 수세에 몰린 신무도장을 재차 공격해 목숨을 노릴 거라 여긴 까닭이었다.
그러나 적천경은 애초에 신무도장을 제압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자신의 일격을 받아내지 못하고 뒤로 물러선 것과 동시에 적천경은 공격을 멈췄다. 그만하면 신무도장 역시 만족했으리란 판단이었다.
당연히 칠성검수의 위위구조는 목표를 잃어버렸다.
부유하는 검기의 편린들.
적천경은 혹여라도 칠성검수의 검기가 얽혀서 사람이 다치는 걸 걱정해 재빨리 손가락을 튕겨 내었다.
티팅!
티티티팅!
한차례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하나씩.
적천경이 일곱 번 손가락을 튕겼을 때 칠성검수 중 빈손이 되지 않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창천(蒼天).
맑고 푸른 하늘 위로 일곱 자루의 검이 찬연한 검광을 흩뿌리며 날아올랐다. 예외는 없었다.
“아!”
“아아!”
완전히 넋이 나가 버린 칠성검수.
그때 적천경이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뎌 그들 앞에 이른 후 나직하나 힘 있는 목소리로 권고했다.
“도장들, 빨리 진을 풀고 물러서는 게 좋을 것이오! 하늘로 날아올랐던 물건은 반드시 떨어지게 마련이니까!”
과연 그랬다.
적천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곱 자루의 검이 날카로운 검명을 일으키며 밑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쉬악!
쉬쉬쉬쉬쉭!
칠성검수들이 방금 전 신무도장이 그랬듯 황황히 적천경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더불어 바로 그때,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적천경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던 일곱 개의 검이 추락을 멈춘 것이다.
게다가 일곱 개의 검은 흡사 생명이라도 얻은 듯 스스로 움직이더니, 곧 주인인 칠성검수에게 돌아갔다.
차차차차착!
칠성검수들은 일제히 신형을 움찔거렸다.
빛살처럼 자신들을 향해 파고든 검이 본래 위치인 검갑 속으로 모습을 감춰 버린 여파였다.
“허어!”
신무도장이 결국 참지 못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평생 본 적이 없는 엄청난 광경에 일시 방관자가 되고, 구경꾼이 되어 버린 것이다.
4.
호검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독특한 기도를 지닌 백염 백의의 노인과 매우 특징적인 대머리에 몹시 화려한 황포 차림을 한 중늙은이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소이까?”
“뭐, 제법 괜찮구만.”
“제법 괜찮구만? 저런 놀라운 광경을 보고 하는 말이 고작 그 정도뿐인 게요?”
“정사대전 이후 무당파의 위세는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는 걸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확실히! 하지만 그래도 무당파의 십검 중 일좌인 진무각주와 칠성검수를 저리 어린애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자가 천하에 몇이나 있겠소이까?”
“적어도 열 명은 넘지.”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부족하지. 아주 많이. 하지만 확실히 저 호검관주란 자는 한번 기대를 걸어볼 만 하겠어.”
“그 말인즉슨?”
“…….”
대머리 황포인, 황금왕 황대구의 질문에 대답대신 어깨를 한차례 으쓱해 보인 백염 노인이 천천히 신형을 돌려세웠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절대 책임질 일은 만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황대구에게 이런 일이 한두 번 일 리 없다.
특유의 후덕한 입가에 살짝 비틀린 미소를 만들어 보인 그가 곧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그럼 이번 일은 내 뜻대로 해 보겠소이다. 그러니 황금귀상련에 대한 제재는 일단 좀 풀어주시오. 맹주, 그건 꼭 해줘야만 하는 거요.”
“그러지.”
짤막한 대답. 그와 함께 맹주라 불린 백염 노인의 신형이 황대구의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