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중원 사도(邪道)의 최후 거물!
1.
무당산(武當山).
호북성 균현에 위치해 있는 팔백 리의 대산맥은 칠십이 봉과 삼십육 암, 이십사 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모양은 향로(香爐) 같고 사시사철 안개에 싸여 있다.
그중 천하 무림에 명성이 당당한 무당파 자소궁이 위치한 곳은 칠십이 봉 중 천주봉(天柱峰)으로, 일명 자소봉이라 불린다. 가장 높은 봉우리의 중턱에 수백 년 역사가 당당한 청정도량이 위치해 있는 것이다.
금마옥.
자소궁이 위치한 자소봉의 정상, 금전(金殿)의 바로 밑에 위치한 천혜의 비역.
수개월 전 파옥된 이곳의 중심에는 지금 한 명의 백발 노도사가 바닥에 쓰러져 있고, 반백의 머리를 한 장년인이 입구 쪽을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천혜의 동혈.
금마옥이란 이름이 그냥 붙여진 게 아닌지라 곳곳에 음습한 귀기가 넘실거리고 있다. 정사대전이 끝난 후 족히 수백 명이 넘는 사마외도의 마두가 갇혀서 죽어 간 장소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실제 빛 한 점 스며들지 않는 절대 암흑의 금마옥 안은 현재 꽤나 환했다. 반백의 머리를 한 장년인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한 자루의 보검이 원인이었다.
칠성보검(七星寶劍).
무당파의 장문신물로써 검갑과 검신, 검파 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일곱 개의 보석은 하나하나가 무가지보(無價之寶)로 유명하다.
피독(避毒), 피화(避火), 피한(避寒), 피사(避邪) 피진(避震).
천하의 모든 화(禍)를 피할 수 있는 검신을 장식한 다섯 개의 보주.
금강석(金剛石).
검봉에 머물러 금석을 무 자르듯 만드는 진보(珍寶).
야광주(夜光珠).
검파의 끝을 장식한 스스로 빛을 발하는 구슬.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에 칠성보검은 무당파의 상징이자 최고의 보물이라 할 수 있었다. 천하무쌍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칠성보검은 호사가의 입방정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여느 무림의 신병이기와 달리 세인들에게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강조###
― 남존무당!
###끝###
거진 천 년을 헤아리는 무림사 중 북숭소림과 유일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무당파의 상징으로써 천하인에게 인식되어 온 까닭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절세의 보물이 사마외도와 마두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금마옥의 내부를 밝히고 있는 것일까?
여기엔 사연이 있다.
바닥에 누워 있는 백발 노도사의 정체.
당금 무당파 장문인의 유일한 사형이자 대장로인 현허진인(玄虛眞人)이었다. 도가의 삼신(三神) 중 하나인 태상노군을 모시며 장문인을 대신해 칠성보검을 지키는 그가 금마옥의 파옥을 눈치채고 가장 먼저 달려왔다가 변을 당하고 만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금마옥이 파옥될 당시 안에서 탈출을 감행한 마두의 숫자는 무려 육십오 인.
그중 몇 명은 현허진인과 동수를 이룰 정도의 고수였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허진인은 칠성보검과 함께 결사 항전을 벌였다. 금마옥의 입구를 홀홀단신으로 막아 선 채 마두들의 탈출을 막아 냈다.
무당파의 최정예가 달려오기까지만 버티면 된다는 판단.
훌륭하게 들어맞는 듯했다.
전력을 다한 현허진인의 태극혜검(太極慧劍)과 칠성보검의 위력이 이 같은 기적을 가능케 했다.
한데, 바로 그때 현허진인은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끔찍한 살기와 조우하였다.
금마옥의 심부, 절대적인 암흑만이 존재하던 곳에서 벼락처럼 날아든 치명적인 살기를 피할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칠성보검으로 펼치던 태극혜검의 검기를 잃어버리고, 복부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 의식을 잃어버려야만 했다. 결국 금마옥의 파옥을 막지 못하고 포로까지 되어 버린 것이다.
‘무량수불! 적사멸왕(赤邪滅王) 사백령. 중원 사도의 최후 거물이라 불리우는 노괴물이 여태까지 살아 있었을 줄이야…….’
현허진인이 석 달 전 벌어진 끔찍한 경험을 떠올리곤 노안을 가볍게 떨어보였다.
회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진심으로 두려웠다.
오랜 수양으로도 지금 칠성보검 너머에 서 있는 반백 머리의 전대 노마두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만은 참기 힘들었다. 온기가 있는 사람에게선 결코 느낄 수 없는 살기의 덩어리와 조우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지난 석 달간 계속 현허진인을 포로로 삼은 채 금마옥에 남아 있던 사백령이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담았다.
“후후, 과연 썩어도 준치라는 건가? 아주 괜찮은 진세야. 하지만 내 생각에 현재의 무당은 이 정도 위력의 진세를 계속 유지할 만한 저력은 남아 있지 않을 터. 어리석은 말코 녀석아! 그만 본좌에게 항복하는 게 어떠하냐?”
“…….”
“싫다고? 알량한 네놈의 자존심 때문에 무당파의 어린 말코 녀석들을 모두 죽여 버릴 작정인 것이냐? 내 장담하건데, 내 수하들이 진세를 박살 낸 순간 무당파는 끝장이다. 어린 말코, 늙은 말코, 무공을 익힌 말코, 익히지 않은 말코 할 것 없이 모조리 한데 몰아서 구덩이 속에 파묻어 버릴 거야.”
극단적으로 살벌한 말과 달리 처음 봤을 때와 비교하면 현격하게 줄어든 살기다.
적어도 현허진인이 보기엔 그렇다.
하지만 그는 전날 사백령에게 일격을 당해 이미 단전이 위치한 기해혈(氣海穴)이 파괴된 상태였다. 그때보다 살기가 줄어들었다 하나 지금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더욱 컸다.
“크억!”
결국 현허진인의 굳게 닫혀 있던 입에서 핏덩이가 터져 나왔다. 언뜻 내장 부스러기까지 보인다. 잠시 잠깐 사이에 내상이 더욱 심해지고 만 것이다.
사백령의 미소가 조금 짙어졌다.
“이런! 핏물이 붉지 않나? 빨리 운기조식을 취하지 않으면 일신의 내공을 몽땅 잃어버리겠는걸?”
“……허억! 허억!”
“아참! 그러고 보니 이미 말코 네 녀석은 기해혈이 파괴되어 버렸으니, 운기조식을 취하긴 글렀군. 그럼 어찌할까? 본좌가 격공전력으로 내상을 가라앉게 도와줄 수도 있는데…….”
“되, 되었소!”
“왜?”
“어, 어찌 당당한 무당파의 대장로인 빈도가 금마옥에 갇힌 흉악한 마두의 도움을 받겠소이까? 전날 금마옥이 파옥되었을 때 몇 명이나 탈출했는지 모르겠으나 이미 본파의 대천강진세(大天?陣勢)가 펼쳐진 이상 단 한 명도 자소봉을 떠나지 못할 것이외다!”
“대천강진세? 장삼봉(張三峰)이 만들었다는 그 망할 진세로 금마옥 뿐 아니라 자소봉 전체를 가뒀다는 뜻이냐?”
“그, 그렇소! 하니 이만 포기하는 게…….”
“씨부랄!”
사백령의 입에서 갑자기 쌍욕이 터져 나왔다. 고희(古稀)를 앞둔 현허진인보다 높은 배분과 백 세를 넘긴 나이조차 개의치 않았다.
그에 따라 급격히 증폭된 살기!
가뜩이나 피를 토한 후 기진해 있던 현허진인이 얼음으로 된 화살 다발을 얻어맞은 듯 두 눈을 부릅떴다.
미친 말과 같은 고통이 전신을 휘몰고 돌아다녔다.
“크아악!”
현허진인이 고통을 참다못해 허리를 크게 굴신해 보였다. 마치 용수철처럼 바닥에서 튀어올랐다.
더불어 당장이라도 죽음에 이를 듯한 헐떡거림의 폭발!
여태까지와 달리 간헐적이 아니라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너무나 지독한 고통에 의식조차 잃어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무심하기만한 사백령의 표정.
언제 쌍욕을 터뜨렸냐는 듯 그의 얼굴엔 일말의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다.
살기 역시 마찬가지다.
“흥! 본좌의 심살사령진기(心殺邪靈眞氣)는 죽음조차 지배한다! 조금이라도 편해지고 싶다면 한시라도 빨리 포기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
현허진인이 눈을 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엔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그러자 입가에 명백한 비웃음을 매단 사백령이 천천히 살기를 거둬들였다. 심살사령진기를 풀고 여태까지의 죽음과 같은 고요 속으로 빠져든 것이다.
‘대천강진세라고? 곽채산, 그놈이 제대로 일을 처리할지 모르겠군…….’
곽채산.
한때 폭호검이란 무림명을 지녔던 삼류 무사의 이름이 이런 곳에서 다시 등장했다. 그가 속했던 오호문과 귀검추혼루의 분쟁으로부터 촉발된 정사대전 이후 무려 팔 년이란 세월이 지나서 말이다.
어찌 된 일인가?
조금 더 지켜봐야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