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도사청
대한민국에 IMF가 터지고 수많은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 도사 중에는 정재계에 진출한 사람도 꽤 있었기 때문에 도사 개개인의 상황도 좋진 않았다. 단지 도사청은 조금 달랐다.
IMF가 터지는 바람에 낙엽 떨어지듯 직장을 잃은 집안이 한둘이 아니었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가 간다지만 일반인들이야 직장에서 잘리면 당장 생계고민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학당 졸업 시 100% 취업과 정부기관인지라 60세 정년보장은 큰 메리트였고 학당 설립 이래 최고의 입학률을 보였다. 21세기의 도사청은 80-90년대생들의 수혈로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21세기의 도사청은 20세기보다 체계적이고 안정되었는데 이는 앞서 말한 젊은 이의 피땀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사청의 주요 기관은 중앙부가 있다. 중앙부는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삼권분립 체계를 가진다. 해당 부처가 정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건 문민정부가 들어서부터였다. 왜 문민정부부터였는지 할 말이 차고 넘치지만 지금은 21세기 도사청에 이야기 하고 있으니 나중에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
여하튼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도사청의 자치권을 인정하면서 체계에 박차를 가했다. 아무리 박차를 가해도 굴릴 인물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인데 때마침 몇 년 뒤 학당 신입생이 물밀 듯 밀려오니 도사청은 완전 땡큐인 상황인 것이다.
그들이 들어와 인원을 충족하면서 인사부, 대외협력부, 언론부 등 다양한 부처들이 인원증진으로 사업이 활발해졌다. 아약의 고통이 도사계는 득이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21세기에 들며 중앙부를 위협하는 인기부처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대외협력부다. 물론 대외협력부가 워낙 광범위한 업무를 하는지라 모든 부서가 인기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약과의 교류가 중요시되면서 젊은 감각의 인력들이 쏠리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럼 이 대외협력부가 무엇이냐. 말 그대로 대외적 업무를 도사가 참여 및 협력하는 부처로 산하의 수많은 과가 존재한다. 뭐 말이 대외협력부지 대충 도사 내부의 일이 아닌 아약과 협업 또는 관련된 업무를 한다 싶으면 모두 대외협력부 산하 과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자면 연구과에서는 아약연구원들과 협력연구를 진행하기도 하고, 공연예술과는 특기자들이 주로 소속되어 공연을 꾸린다. 수많은 과 중 지원과 소속 도사들은 프리랜서 혹은 용병과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도사에 따라 지원과 단독 소속이기도 하고 타부서와 이중 소속이기도 했다. 이들의 주 업무는 또 다른 대협부 소속 부처인 민원과가 일을 주면, 일을 하는 비정규 업무로 특별히 사무실도 없다. 그럼 민원과는 뭐고 이들이 지원과에게 주는 일은 또 뭐냐.
-
한나는 참 바쁘다. 얼마나 바쁘냐면 정말 바쁘다. 인원충원은 해준다 해준다 말만하지 단 한 번도 이뤄진 적 없다. 물론 한나도 알고 있다. 이 바닥 인력 난은 태초부터 있던 고질병 같은 것이라고. 그래도 너무 하지 않은가. 도사청 간판달던 시절부터 일하신 민원과 과장님은 회식 때마다 이 인원수는 너무 기적 같은 일이라며 눈물을 뚝뚝 흘리셨지만.
한나는 한창 서류와 모니터를 대조하다 일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영수증, 이따구로 하면, 행정비, 처리 안 된다니까는!!”
말소리는 작았지만 키보드는 부셔질 듯 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부사수가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한나의 회사생활은 8할의 분노와 2할의 행복으로 이루어져있다. 8할은 회사생활 대부분의 시간이며 2할은 점심시간과 퇴근 10분전이다.
과장이 식사들 하자며 금방 자리를 떴다. 사무실 내 사람들은 오늘 사내식당 메뉴가 뭔지 삼삼오오 모여 떠들었다. 한나도 서류를 저장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우당탕 거리며 문이 거칠게 열렸다. 1팀 직원이었다. 사무실 내 모든 이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한나는 불길했다. 눈이 마주치려는 순간 치켜뜨며 회피했다.
“죄송합니다! 이거 급으로 부탁드려요!”
소란스레 뛰어 들어 온 것과 대비되게 서류는 조심히 올려두었다. 그리고 붙잡을 새도 없이 우당탕거리며 다시 나가버렸다. 한나의 책상에 고이 올려진 서류에 고스란히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저 자식은 나에게 이걸 던져주고 룰루랄라 밥 먹으러 가겠지?’라 생각하는 한나의 머리위로 -대외협력부 민원과 2팀- 팻말이 달랑거렸다. 고작 2할의 행복마저 도려 가버린 순간이었다.
민원과는 1팀과 2팀으로 나뉘는데, 1팀에서 접수받은 민원 및 타부서, 아약들의 일 중 도사들이 해결할 일들을 추려 2팀으로 넘긴다. 그럼 2팀에서 해당 일을 처리할 도사를 선발해 보낸다.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모든 행정절차까지. 말이 도사청 산하기관이지 일반 공무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아해들이 가장 많은 민원과다.
-
도사학당은 지리산 어느 메에 위치해 있다. 산을 타고 가다보면 ‘일반인 접근금지’라는 팻말이 녹슨 철창에 붙어있다. 아약들이야 ‘여기에 군부대가 있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려갔다. 하지만 일 년에 두어 번 학생과 학부모로 보이는 대규모의 차량 무리가 산을 타고 올라가니 그 근처에서 산채비빔밥을 파는 음식점 사장님은 꽤나 빡빡한 수능기숙학원이 있다 생각했다. 까닭에 종종 가던 길에 밥을 먹는 학생과 학부모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보통 푸던 밥보다 더 퍼주곤 했다.
녹슨 철창이 열리고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길이 좁아지며 신원확인을 한다. 학당 입학자 본인과 직계가족이 확인되어야지만 문을 넘을 수 있는 것이다. 신원확인을 마치고 더 안으로 들어가면 입이 떡 벌어지는 주작대로가 펼쳐진다. 실학의 나라 조선의 후예답게 이 높은 산에 저 넓은 도로를 닦으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갈렸을까 혀를 찼다. 물론 대체로 이들은 아약이다. 어느 이는 군부대가 동원되었을 것이라 하였고 어느 이는 모 대통령시절에 일반인 잡아다 여기에 뿌렸다 했다. 모두다 근거 없는 헛소리지만 맞는 것 같다며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었으니 옆에 있던 도사들은 그들의 순진함에 할 말을 잃었다.
직계가족의 출입은 주작대로를 지나 학교 건물의 초입인 운동장까지만 허락된다. 이미 수많은 가족들이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은호도 가지고 온 짐을 잠시 옆에 내려두고 부모님과 인사를 나눴다. 벌써 눈시울이 벌개져 코를 킁킁거리는 은호의 아빠에 은호 엄마는 무심히 휴지를 건넸다.
“좋은 날 왜 울고 그래.”
"저 그만 들어가 볼게요."
"그래 밥 잘 챙겨먹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알았지?"
대한민국 보편적 자식들처럼 머쓱하고도 건조한 인사로 마무리 한 은호는 짐을 끌고 안내에 따라 이동했다. 입학서류와 함께 전달 받았던 종이에는 기숙사가 적혀 있었다. 올라간 남자 기숙사는 한산했다. 방으로 들어가니 깔끔한 2인 1실이었다. 룸메이트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 아무런 짐도 없었다. 생각보다 널찍했다. 침대와 책상 그리고 화장실까지 나름 필요한 건 얼추 갖췄다. 방 가운데 난 창엔 아이들이 건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옷을 갈아입은 은호는 짐을 두고 다시 건물 1층으로 향했다. 그가 걸을 때 마다 짙푸른 철릭 자락이 펄럭였다. 어렸을 적이나 입었던 한복에 은호는 조금 어색했다. 1층 로비에는 본인처럼 정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마치 민속촌으로 놀러온 느낌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대충 주위사람들의 발걸음에 맞춰 움직였다. 그리다 보니 어쩌다 줄을 섰다. 서고 보니 궁금했다.
“이거 혹시 무슨 줄이야?”
“나도 잘...”
일단 줄어드는 줄에 은호는 기다렸다. 본인의 뒤로도 줄이 계속 늘어나는 걸 보니 딱히 잘 못 선 것 같지도 않다. 길고 긴 줄이 점차 짧아지고 마침내 보이는 탁자에 몸을 길게 뺐다. 생각했던 풍경과 달리 무슨 체지방 검사 기계 같은 것으로 한명씩 검사를 하고 있었다. 입학 전 신체검사를 하는가 싶었다. 곧 자신의 차례가 왔다. 은호는 검사를 도와주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신발을 벗고 기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양손에 게임 스틱같은 것을 쥐어 줬는데 버튼이 달려 있었다.
“자 엄지손가락으로 버튼 누르세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안내자의 말을 따라 은호는 숨을 크게 들이 쉬자 가슴이 부풀었다.
“하나, 둘, 셋, 후-, 내쉬세요.”
후, 내쉬자 검사가 끝난 건지 삐리릭- 짧은 알람이 울렸다.
“됐어요. 내려와서 서류 받아가세요.”
길게 늘어진 테이블로 가자 기계적으로 컴퓨터를 투닥이는 사람이 보였다.
“이은호 학생.”
자신을 부른 이는 들고 온 입학서류에 뭐라 휘갈기고 뒤로 보냈다. 당최 뭐라 쓴 건지 알아보지 못할 글씨에 흐린 눈을 하는 것도 잠시 또 다시 테이블이 줄지어 있었다. 한 테이블 앞으로 서자 입학자 확인 및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확인 한 번 철저하게 한다 싶었다.
“앞으로 나가세요.”
도장을 찍어준 이의 말에 따라 앞으로 나가니 아까 봤던 운동장과는 또 다른 야외공간이 나왔다. 넓은 공간으로 나가자 입이 떡 벌어졌다. 마치 대궐 같았다. 은호는 어렸을 적 부모님과 같이 갔던 경복궁이 생각났다. 점차 지는 하늘엔 오색구름이 떠 있었고 그 아래로 오색 천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사람 눈높이에는 색색의 등롱이 줄지어 있었다. 바닥에 깔린 전돌에 빛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곳곳엔 종이꽃이 사람 키만 한 항아리에 꽂혀 있었다. 한쪽엔 학당과 도사청을 상징하는 문양이 수놓아진 각각의 깃발이, 다른 쪽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였다. 그들을 환영하듯 노래가 흘렀는데 고개를 돌리니 왼쪽 별채에 가야금이고 태평소며 실제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지지도 그렇다고 밝지도 않은 이 시간이 더욱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안으로 들어갈수록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어느 입학식이나 마찬가지 듯 도술 학당도 똑같았다. 길어지는 학당장의 인사에 다들 들어서던 순간 빛났던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흐리멍텅한 눈은 곧 동태눈깔이 되기 직전이었다. 개중에는 이미 곯아떨어진 아이들도 태반이었는데, 그럼에도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어지간히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은호의 옆자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왼쪽은 아예 숙면을 취한지 오래였으며 오른쪽은 연신 하품을 쩍쩍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반복했다.
“입학식은 어딜 가나 다 똑같구만.”
오른쪽 아이의 말에 은호는 고개를 돌렸다. 이내 마주친 시야에 먼저 입을 연 건 그 아이였다.
“안 그러냐?”
오른쪽 아이는 대답을 원했던 건 아니었던 듯 다시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반짝이는 핸드폰 불빛에 그 아이는 코를 박았다. 이내 다시 고개를 쳐들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게 같이 앉자니까’라며 작게 꿍얼거렸다. 그에 은호가 힐끗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 아이는 다시 코를 박고 핸드폰을 두드렸다. 그 와중에 학당장의 축사가 끝났는지 박수소리가 퍼졌다. 다들 끝났나 싶어 잠에 절은 눈을 힘겹게 꿈벅거렸다. 오른쪽 아이는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모양새였다.
“이어서 신입생 대표의 선서문 낭독이 있겠습니다.”
여기저기서 깊은 한숨의 소리가 울렸다. 소리를 낮춘다고 낮췄겠지만 한둘이 아니었으니. 오른쪽 아이도 질색을 했는데 이내 단념한 듯 등받이에 기댔다. 이번엔 엉덩이가 배긴다며 꿍얼거리더니 은호에게 물었다. 이번엔 대답을 들을 생각처럼 보였다.
“엉덩이 안 배기냐.”
“조금”
여전히 하품은 계속했다. 이번엔 은호가 물었다. 꽤나 궁금했다. 생각보다 적은 인원수는 학교라기 보단 학원 같은 느낌이었다.
“근데 전교생이 이게 다야?”
“엉. 애시당초 도사도 한줌인데 학당 신입생은 더 없지 뭐.”
고개를 끄덕이는 은호를 보던 오른쪽아이는 이름을 물었다.
“이은호. 너는?”
“나는 한결.”
조금은 시니컬한 첫 만남이었다. 그렇게 학당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다시 서울로 올라간 은호의 부모님은 장거리 운전에 녹초가 되었다. 먼저 씻은 은호의 엄마는 쇼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지잉 지잉 울리는 핸드폰 진동에 은호 엄마는 손을 쭉 뻗었지만 아무리 퍼덕여도 닿질 않았다. 뚝 끊기는 진동에 괜히 행복한 마음도 들었다. 안 받아. 다시 돌아누워 티비로 시선을 고정하는데 또 다시 진동이 울렸다. 터지는 한숨도 잠시 씻고 나온 은호의 아빠가 은호 엄마의 핸드폰을 확인했다.
“여보 장모님이신데?”
은호의 할머니는 대뜸 전화를 걸어 은호 학교 주소를 물었다. 택배를 보낸다고 하시는데 당최 뭘 보내는지 알려주질 않으니 은호 엄마는 답답했다.
“아니 그래서 뭘 보내는데.”
“너는 알거 없어.”
“아니 그게 딸한테 할 소리야?”
상처뿐인 통화는 나중에 알아보고 문자로 보내주겠다는 은호 엄마의 말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