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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이 온다!
작가 : 알케이
작품등록일 : 2019.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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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그 여자의 시선 (3)
작성일 : 19-10-05     조회 : 313     추천 : 0     분량 : 9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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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야기 구조입니다.

 앞 부분에 조연처럼 등장했던 나왔던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 인물이 되는가 하면 인물과 인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엮어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입니다.

 또한 앞 부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나중에 일어날 일의 복선이 되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짜임새 있게 엮었습니다.

 또한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나누어서 진행되며 중간에 교차되기도 하는 구성을 통해 마치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극적 구성을 더하였습니다.

 따라서 항상 회차별 제목을 꼭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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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호씨 얘길 듣고 많이 고민했어요. 알겠지만 나, 남자 때문에 상처 많이 받았잖아요.”

 햇볕이 아스라히 내리쬐는 창가에 앉아 진경은 담담하게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에는 각자의 앞에 김이 사르르 올라오는 풍부한 향의 커피가 담긴 잔이 놓여 있었다. 카페는 전체적으로 순 갈색의 원목을 사용해서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진경의 앞에 앉은 남자는 말 없이 진경의 다음 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믿을 수 있을까, 믿어도 될까라고 스스로 끊임없이 되물었어요. 다시는 상처 받지 않겠다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신념처럼 날 감싸고 있었거든요.”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대신 그윽한 눈길로 여전히 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경은 커피 잔을 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날 지켜봐 준 사람, 아무 말 없이 언제나 옆에서 지켜주었던 사람이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 보았다.

 “당신을 믿기로 했어요. 당신의 말대로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위를 함께 걸어가고 싶어요.”

 진경의 말이 끝나자 그는 상체를 천천히 앞으로 숙이더니 손을 뻗어 진경의 손을 잡았다.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그의 손이 참 따뜻했다.

 “컷!”

 감독의 외침과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 상대 남자와 진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촬영 분을 확인하러 카메라로 다가갔다.

 “두 사람 다 연기 좋네. 마음에 드는데.”

 감독이 두 사람에게 칭찬을 하며 촬영 분을 재생해주었다. 장소 헌팅이 좋아서였는지 때깔도 잘 나왔고 연기도 마음에 들었다.

 “자, 그럼 잠시 쉬었다 갑시다-“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모두에게 외쳤고 그에 따라 스태프들이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다. 진경도 진희가 덮어주는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잠시 쉬러 대기하는 곳으로 향했다.

 “언니, 연기 정말 이거였어요.”

 진희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칭찬해주었다.

 “고마워. 참, 내 핸드폰 어딨니?”

 진희가 자기 외투에 넣어두었던 진경의 핸드폰을 꺼내 건네주었다. 혹시나 그 사람에게서 다른 연락이 없나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얼른 비밀번호를 풀고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그 이후 추가 메시지는 전혀 없었다.

 ‘어제는 잘 들어가셨나요?’

 그 날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받은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 연락처 관리 잘하라고 소속사에서 그리고 홍구가 항상 귀에 못이 박히도록 신신당부를 했던 터라 친한 친구들 외에는 연락처를 얘기해 준 적이 없었는데 그 날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연락처를 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두 가지 감정이 교차되며 지속적으로 진경을 괴롭혔다. 하나는 말근이, 아니 서일우라는 그 남자가 자신의 연락처를 여기저기에 자랑하고 다니지는 않을까라는 걱정, 또 하나는 그에게서 또 다른 연락이 왔으면 하는 기다림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술집 남자, 정확히 얘기하면 호스트 바에서 일하는 남자의 연락을 기다리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좀 한심하긴 하지만 효진의 말처럼 진경은 자신의 마음이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대신 다른 문자가 와 있었다. 지영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 이번 주말에 동창회 있는데 올래?’

 언제 동창회라는 게 있었던가? 나는 왜 여태 몰랐지? 그 때 또 다른 문자가 하나 들어 왔다.

 ‘끝나면 연락 바람’

 간단 명료한 효진의 문자였고 진경은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언니, 왜?”

 “너 언제 시간 돼?”

 “무슨 일인데?”

 “아, 전화로 얘기할 건 아니고 만나서 얘기해. 언제 시간 되는데?”

 무슨 일인지 좀 흥분한 듯 보였다.”

 “오늘은 늦게까지 촬영이 있어서 안 되고 내일 저녁쯤?”

 “알았어. 내일 봐.”

 그리고는 통화가 끊겼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언니가 이렇게 흥분할까? 진경은 궁금해졌다. 평소에도 흥분을 잘하는 급한 성격이긴 하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여느 때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아냐?”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효진은 진경의 팔을 잡아 끌고는 소파로 데려가서 앉히더니 쉴 틈도 없이 말을 쏟아냈다.

 “내가 어제 영동시장에 있는 포차엘 갔잖아.”

 “또? 언니 요즘 술 너무 마시는 거 아니야?”

 진경은 효진의 얘기를 자르며 물었다. 근래 들어 술 마시는 것 외에는 낙이 없는 사람처럼 계속 술 마시며 다니는 효진이 조금 걱정되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아무튼 포차에 갔더니 거기에 연예 프로 PD가 있었다는 거 아니야.”

 

 

 

 효진이 해준 얘기는 대략 이랬다. 아는 친구와 포차에 갔는데 유명한 연예프로 PD가 일행 세 네 명과 술을 마시고 있어서 인사를 하고는 한 쪽 테이블에 앉아서 술을 마시다가 그 PD쪽 테이블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부터 듣고 싶어서 들은 건 아니고 가게가 크지 않고 생각보다 조용했던 데다 사람이란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본인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다 보니 그 테이블에서 오고 간 얘기가 들린 거라고 했다.

 “그 박준서란 작곡가 있지? 프로듀서. 그 사람 완전히 계획적이었다는구만.”

 PD의 목소리였다.

 “계획적이라니, 뭐가?”

 PD와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 중 한 명이 물었다.

 “그 왜 여배우 누구지? 술 취해서 이름도 생각이 안 나네.”

 “도진경?”

 “그래, 도진경. 도진경하고 연애한 게 다 계획적이래.”

 “그게 무슨 얘기야?”

 같은 테이블의 일행들이 궁금해하며 PD에게 물었고 효진도 진경의 이름이 들리길래 술을 마시며 한 쪽 귀로는 그 PD의 얘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고 한다.

 “그 박준서가 무명 생활을 꽤 오래했잖아. 실력은 있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변변한 히트곡도 없고 말이야. 그래서 좀 떠 보려고 도진경한테 일부러 접근해서 연애한 거래.”

 “설마…”

 “정말?”

 PD의 얘기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고 효진은 깜짝 놀라서 술이 다 깨는 줄 알았다고 했다.

 “더 히트인 건 뭔지 알아?”

 그 PD는 더 큰 폭탄을 터트리려는 듯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고 사람들은 아무 말없이 PD의 뒷 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중간에 엮어준 사람이 오지영이라는 거야. 그 아나운서 말이야.”

 그 때 효진은 자기도 모르게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오지영이 왜?”

 “오지영이랑 도진경이랑 같은 고등학교 나왔잖아. 그래서 서로 잘 알거든. 그리고 박준서는 오지영 친 오빠랑 친구라서 어릴 때부터 알았고. 그래서 둘이 얘기해서 도진경을 발판 삼기로 한 거지. 오지영이 도진경한테 열등감 같은 게 있거든.”

 “무슨 열등감?”

 “공부를 도진경이 더 잘했나 봐. 문제는 오지영이네 아빠가 대기업 임원이라 돈이 많아서 걔네 엄마가 학부모회 회장인가 하면서 치맛바람이 장난 아니었던 거지. 그런데 성적이 나오면 항상 도진경이 위에 있으니 오지영 입장에서는 별 볼일 없는 집안의 애가 자기보다 공부도 잘하니까 질투심을 갖게 된 거고. 원래부터 남한테 지는 거 엄청 싫어했다누만. 거기다 외모도 사실 도진경이 더 예쁘잖아. 그러니까 2등 콤플렉스 같은 게 있었던 거지.”

 

 

 

 “세상에 그렇게 나쁜 놈들이 다 있냐.”

 효진의 얘기를 들은 진경은 정신이 멍해져 충격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달콤한 사랑 노래를 잘 만드는 사람이, 항상 내 얘기를 잘 들어주며 따뜻하게 위로해주던 사람이 사랑의 감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그저 유명해지기 위해서 날 이용했던 거라니. 그렇다면 그 날 기자에게 찍힌 데이트 장면도 의도적이었던 건가.

 “그 작곡가 놈도 나쁜 놈이지만 네 친구 걔가 더 나쁜 년이야. 아무리 사람이 못 됐다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효진이 옆에서 계속 그 두 사람을 싸잡아 욕을 해댔지만 진경은 맞장구 칠 힘도 여력도 없었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이 세상의 수 많은 배신들 중에 가장 나쁜 배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는 것 아닌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모든 만남이 철저하게 위장이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진경은 자신도 모르게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직접 그 사람의 목소리로 모든 것이 철저하게 거짓이었는지 아니면 그 PD의 얘기가 거짓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너 지금 뭐하냐?”

 전화기를 뒤적거리는 모습을 보더니 효진이 물었다.

 “너 혹시 전화해서 직접 확인하려고 하는 거야?”

 효진의 질문에 진경이 답이 없자 효진은 진경의 전화기를 낚아 챘다.

 “아서라. 그래 봐야 너만 더 상처 받는다. 그리고 연락처도 그 때 다 지웠잖아.”

 진경은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을 잊어 보겠다고 울면서 전화 번호와 함께 주고 받았던 문자 메시지까지 다 지웠던 그 때가 떠올랐다.

 “바보처럼 네가 왜 우냐? 어떻게든 복수할 생각을 해야지.”

 복수. 이미 헤어진 마당에 복수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복수란 현재와 미래를 살지 않고 과거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닌가.

 “아니야, 언니.”

 “뭐가 아니야.”

 “그냥, 아무 것도 아니야.”

 갑자기 감정이 격해져서 더 많은 눈물이 흘러 나왔다. 진경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울 수 밖에 없었고 효진은 조용히 진경의 옆으로 와서는 천천히 등을 쓰다듬으며 다독여주었다.

 

 

 

 며칠 후. 진경은 화장대 앞에 앉아 정성 들여 꼼꼼하게 화장을 했다. 립스틱은 화장 톤과 어울리면서도 가장 화려한 색으로 발랐다. 옷도 진희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신경 써서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옷으로 골랐다.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비쳐보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현관문 앞 신발장에서 화장과 옷에 가장 잘 어울릴만한 신발을 골라 신고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확인하고서 집을 나섰다.

 차를 몰고는 동창회가 있다는 식당으로 향했다. 시간을 보니 벌써 동창회 시작 시간이 지났지만 상관없다. 일부러 한 30분정도 늦게 도착하는 게 목적이니까. 미리 가 있는 것보다는 30분 정도 늦게 도착하는 게 더 시선을 끌 수 있으니까.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자 브레이크에서 천천히 발을 떼고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15분 정도 후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려 발렛 파킹을 맡겼다. 주차 아저씨가 진경을 보더니 살짝 놀라는 듯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성큼성큼 입구로 걸어가서는 문을 밀었다.

 “어서 오세요.”

 문을 밀자 입구에 있던 안내하는 여직원이 교육받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했고 동창회에 왔다고 하자 ‘무궁화’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룸으로 안내해 주었다.

 후-

 짧게 호흡을 가다듬고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진경한테 쏠렸다. 대충 보니 동창회라고 하기엔 적은 숫자인 10명 정도가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지영이 한 명이었고 전부 남자였다. 그리고 그 남자들은 모두 금수저, 즉 있는 집 자식들이어서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자라온 티가 확실히 나 보였다.

 “진경아, 왔어?”

 가장 먼저 들린 것은 지영이의 목소리였다.

 “바쁠 텐데 어떻게 왔어?”

 가증스러운 다정한 목소리를 내뿜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 쪽으로 오라며 손짓을 했다.

 “와, 진경이 진짜 예뻐졌구나.”

 진경이 자리로 가는 사이에 남자 동창들이 하나 둘씩 말을 건네 왔다.

 “무슨 소리야, 원래 예뻤지.”

 “그럼 예쁜 건 탑 오브 탑이었는데.”

 역시나 돈 밖에 모르고 여자는 외모로만 판단하는 가증스러운 인간들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난 너 못 올 줄 알았어, 얘.”

 진경이 자리에 앉자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지영이가 역시나 가식적인 미소를 보이며 말을 건네 왔다.

 “바빠도 오랜만에 너네들 보는 건데 와야지.”

 “그럼, 진경이가 빠지면 되나.”

 “진경이가 오니까 여기가 다 환해진다.”

 남자들의 칭찬이 이어지자 지영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고 진경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너무 그러니까 쑥스럽다. 지영이도 예쁘잖아.”

 확실히 화장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났다. 머리는 미용실에 가서 만지고 온 것이 확실했다.

 “에이, 그래도 너한테는 안 되지.”

 “그럼, 공부도 언제나 1등이었고.”

 “외모면 외모, 공부면 공부 거기다 요즘 연기까지. 참, 요즘 나오는 드라마 잘 보고 있다.”

 남자들의 칭찬이 이어졌고 진경은 말 없이 그냥 웃기만 했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지영이의 얼굴을 보니 표정이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것이 고소하다 싶었다.

 “넌 요즘 어때? 벌써 뉴스 진행하는 것 같던데.”

 “아, 그거. 운이 좋았지 뭐.”

 방송국 임원과 친분이 있는 아버지 덕분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뉴스 진행을 하게 됐으면서도 뻔뻔하게 그냥 운이 좋았다니.

 “다른 선배들 질투는 없고? 우리도 여자지만 여자들이 원래 질투가 좀 심하잖니.”

 일부러 들으라고 한 얘기였는데 지영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거 없어. 다행히 다들 예뻐해 주시거든.”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 가며 식사를 마치곤 후식으로 커피가 나왔다.

 “요즘 그 노래 좋더라. ‘어떻게 그대가 그래요’인가?’

 진경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지영이게 말했다. 박준서가 작곡한 노래다.

 “그치? 나도 요즘 그 노래가 땡기더라. 그 노래 부른 남자가수 신인이던데 완전히 떴어.”

 옆 자리에 앉은 친구가 방정맞게 진경의 얘기에 동의를 하는 동안 지영이는 아무 말 없이 커피 잔만 손에 쥐고 있었다. 진경이 어떤 의미로 말을 한 건지 알아챈 걸까. 말 없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가슴 속에 쌓여있던 것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듯 했다.

 “사람이란 때론, 아니 어쩌면 일상적으로 가면을 쓰고 살지. 진짜 얼굴은 그 가면 뒤에 숨긴 채 거짓 표정과 거짓 웃음과 거짓 말투로 말이야.”

 상체를 지영이를 향해 숙인 채 조용히 얘기하자 지영이는 갑자기 무슨 얘기냐는 듯 진경을 쳐다 보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살건 말건 난 크게 신경 안 써. 방금 얘기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 거짓된 것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다면 그 사람은 어떤 기분이 들까?”

 “무슨 얘기야?”

 지영이 당황스러운 듯 물었다.

 “누군가는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 상처 때문에 죽을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정작 상처를 준 그 가면 뒤의 얼굴은 즐겁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야.”

 지영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들고 있던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조용하게 말한다고 했는데 다 들렸는지 방 안이 조용해지더니 모든 친구들이 진경과 지영이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세상은 공평하진 않지만 대가는 반드시 돌려주기 마련이야. 돌고 돌아서 언젠가는 뒤통수를 치거든.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어. 늦게 오는 경우는 있어도 오지 않는 경우는 없어. 그리고 늦게 돌아올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기 마련이지.”

 여전히 말없이 진경을 바라보는 지영이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러니까, 우리 착하게 살자.”

 진경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을 끝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미안하다, 얘들아. 오랜만에 봤는데 스케줄이 있어서 말이야. 나중에 또 보자.”

 진경은 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다 다시 뒤돌아서는 한 마디 덧붙였다.

 “아차. 방금 한 말 있잖아, 내 얘기가 아니라 어느 책에서 본 얘기야.”

 그리고는 문을 닫고 그들과의 세상과 단절했다.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뭘 언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가슴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정체 모를 그 무엇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내 뱉은 말이었다. 그리고 이왕 내뱉은 거 한 번 해보겠다고, 현재나 미래를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끈을 끊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을 벗어나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그 목소리에 진경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돼서 바로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나야.”

 간신히 입을 떼고 말을 했다.

 “나 지금 갈 건데, 가면 볼 수 있어?”

 

 

 

 “아빠, 왜 안 되는 건데.”

 지영은 저녁 식탁자리에서 아빠인 오지철에게 현재 진경이 출연 중인 드라마에 집행하고 있는 광고를 빼달라고 요청했지만 오지철은 정중히 거절하고 있었다.

 “글쎄, 아빠 마음대로 광고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

 “아니, 무슨 임원이 그래?”

 “요즘은 옛날 같지가 않아서 임원이라고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지철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며 어린 아이 달래듯이 지영에게 말했다.

 “아빠, 이래 봬도 내가 마케팅 전공했거든요. 어차피 월 단위로 광고 집행하는 거잖아.”

 “이번엔 3개월 미리 했네요. 진경이가 나오는 드라마라고 해서. 거기 들어간 돈이 얼만데 중간에 어떻게 취소를 해.”

 “하나 뿐인 딸 부탁인데 그것도 못 들어줘? 그리고 그 드라마 시청률도 잘 안 나오잖아.”

 지영은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은 채 계속 아빠를 졸라댔다. 그러자 함께 밥을 먹고 있던 지영의 엄마가 한 소리 한다.

 “너 진경이랑 무슨 일 있니? 갑 자기 왜 그래? 아빠 피곤하실 텐데.”

 “하나고 둘이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나저나 진경이랑 요즘도 연락하지? 혹시 통화하면 시청률 좀 잘 나오게 어떻게 해달라고 해 봐라.”

 “아빠!”

 지철의 얘기를 들은 지영이 갑자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작게 소리쳤다.

 “아니 얘가 갑자기 버릇 없이 왜 이래?”

 지영의 엄마는 난데없는 지영의 행동에 나무라기 시작했다.

 “나보고 지금 진경이한테 부탁을 하라는 거야? 내가 왜? 딸이 하는 부탁은 들어주지도 않으면서.”

 지영은 불평을 늘어 놓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을 벗어났다.

 “쟤가 누굴 닮아서 저러지?”

 “누굴 닮긴. 다 당신 닮아서 그렇지. 딸은 엄마 닮는다잖아.”

 그런 지영을 보고 지영의 엄마가 고개를 흔들며 혼잣말을 하지 지철이 숟가락으로 국을 떠서 입에 넣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이내 쾅-하고 지영이 방문을 닫는 소리가 부엌까지 들였다.

 “당신도 참. 그나저나 쟨 또 진경이랑 무슨 일이 있어길래 저러는지 모르겠네.”

 “그러게. 언제 철들려는지.”

 자신의 방에 들어 온 지영은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어떻게 하면 진경에게 시원하게 복수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감히 친구들 앞에서 나한테 그런 망신을 줘? 가만 두나 봐라.’

 한참을 고민하던 지영은 책상 위의 전화기를 들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준서 오빠, 나야.”

 “어, 지영아.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냐니, 좀 서운하네. 목표 달성해서 이제 볼 일 없단 얘긴가?”

 “왜, 또. 무슨 일이 있길래 그렇게 날카로워?”

 수화기 너머로 움찔한듯한 준서를 목소리를 들은 지영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다름 아니고, 부탁 하나만 들어줬으면 해서.”

 “무슨 부탁?”

 지영은 자신이 생각했던 걸 준서에게 자세히 얘기했다.

 “꼭 그렇게 해야겠어?”

 지영의 얘기를 들은 준서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응. 나 살리는 셈치고 한 번만 들어주라. 이유는 묻지 말고.”

 준서는 잠시 아무 말이 없더니 긴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그래, 알았다. 지난 번에 빚 진 것도 있고.”

 “고마워, 오빠. 아 참, 그리고 혹시 흥신소 아는데 있어?”

 “갑자기 흥신소는 왜?”

 “이유는 묻지 말고 혹시 주변에 아는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걱정 된다. 너 괜찮은 거냐?”

 “그럼, 나 아주 멀쩡해.”

 “알았어, 알아 보고 연락 줄게.”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지영은 속으로 다짐했다.

 ‘두고 봐. 어떻게든 복수해 줄 테니까.’

 

 - 다음 편에 계속 -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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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10. 그 여자의 시선 (5) 10/8 321 0
9 # 9. 그 남자의 시선 (5) 10/8 334 0
8 # 8. 그 여자의 시선 (4) 10/6 292 0
7 # 7. 그 남자의 시선 (4) 10/6 305 0
6 # 6. 그 여자의 시선 (3) 10/5 314 0
5 # 5. 그 남자의 시선 (3) 10/5 298 0
4 # 4. 그 여자의 시선 (2) 10/3 324 0
3 # 3. 그 남자의 시선 (2) 10/3 3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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