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야기 구조입니다.
앞 부분에 조연처럼 등장했던 나왔던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 인물이 되는가 하면 인물과 인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엮어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입니다.
또한 앞 부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나중에 일어날 일의 복선이 되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짜임새 있게 엮었습니다.
또한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나누어서 진행되며 중간에 교차되기도 하는 구성을 통해 마치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극적 구성을 더하였습니다.
따라서 항상 회차별 제목을 꼭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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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오랜만이다.”
노량진 역 앞에서 용일이와 지완이를 만난 일우는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했다.
“그러게, 그나저나 너 좀 좋아진 것 같다?”
“그러게 말이야. 어딘가 좀 간지나는 것 같은데?”
용일과 지완은 일우의 몸을 더듬으며 장난을 쳤다.
“간지는 무슨. 오랜만에 보니까 그런 거겠지.”
“그나저나 뭐 할래? 아직 시간이 일러서 술 마시긴 좀 그렇고.”
용일이 시계를 보고 일우에게 물었다. 아직 하늘에는 해가 떠있는 한 낮이었다.
“노량진에 오면 꼭 먹어 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우선 그거부터 먹자.”
“그게 뭔데?”
“컵 밥. 어디 컵 밥 잘하는데 없냐?”
일우의 얘기를 들은 용일과 지완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들의 표정을 본 일우는 궁금해서 물었다.
“왜?”
“우리는 컵 밥에 질렸거든.”
지완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우리가 여기서 보낸 시간이 꽤 되니까, 숱하게 먹었지. 가격도 싸고.”
지완의 얘기에 용일이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덧붙였다.
“아, 그렇겠구나. 미안하다.”
그들의 얘기를 들은 일우는 멋쩍어하며 미안함을 표시했다.
“미안하긴 뭘, 우리 사이에. 노량진에 안 있어봤으니까 그럴 수 있지.”
사람이란 누구나 그렇듯이 다른 세계에 직접 들어가 경험해 보지 않고는 그 세계를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아는 것이 전부인냥 그 세계에 대해 환상을 갖거나 이러쿵저러쿵 말을 늘어 놓기도 한다.
“그거 말고도 맛있는 거 많으니까 일단 가자.”
용일이가 앞장서서 가자 일우가 따라가며 한 마디 한다.
“그래, 오늘은 내가 쏜다!”
“오- 정말? 어쩐 일로?”
“무슨 일은, 집안 일이다.”
“얘는 썰렁한 건 변함이 없어요. 차암- 안 변해.”
“참, 그나저나 학주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들은 일우가 물었다.
“야근이라신다. 거의 매일 야근이라던데.”
“그렇게 일이 많데?”
“아니, 일 없이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래. 윗사람들이 집에를 안 가신단다.”
그 때 “내가 추리하건데”라며 지완이가 다시 특유의 기계 톤으로 늘 하던 얘기를 꺼냈다.
“또 그 놈의 추리냐? 대학도 졸업하고 노량진 생활도 한지 좀 됐는데 이제 추리는 좀 마음 깊이 집어 넣으시지?”
용일이가 ‘깊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얘기했다.
일우와 용일이, 지완이, 학주는 대학 입학 직후 신입생 환영회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친해져 뭉쳐 다녔다. 그 중 지완이는 중학교 때부터 추리 소설에 빠져 탐닉했으며 안 읽은 추리 소설이 없을 정도였는데 한 번은 그의 집에 놀라갔다가 방안 가득한 추리 소설을 보고 놀라기도 했었다.
그러다 지완은 가칭 ‘명탐정 추리클럽’ 미등록 동아리 같은 걸 제안했고 딱히 다른 취미가 없었던 세 명은 지완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동아리라고 해 봐야 어차피 미등록이니까 다른 회원은 없고 하는 일이라고는 추리 소설을 읽고 의견을 교환하거나 신문에 나는 사건들을 추리해 보는 정도였는데 그 때도 지완이는 늘 ‘내가 추리하건데’라는 문장으로 말을 시작하곤 했었다.
“그래서 네 추리는 뭔데?”
일우가 물었다.
“학주가 회사 생활을 오래 못할 것 같다.”
“왜?”
“우리가 아는 학주 성격 상 그렇게 급한 놈이 그런 불합리한 생활을 오래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역시나 기계 톤으로 지완은 말을 이었다. 사실 학주는 성격이 급해서 항상 추리 토론을 할 때마다 시간이 조금만 길어지면 늘 어깃장을 놓긴 했었다.
“이번엔 다를 걸? 어떻게 들어간 회산데 금방 때려치우겠냐?”
지완이의 얘기에 용일이가 반대 의견을 냈다.
“그렇게 말이야. 이것 참 먹고 사는 게 쉬운 일 아니네. 그치?”라고 얘기하며 일우는 분위기를 전환하며 잠깐 네 명의 사는 모습을 되씹어 봤다.
두 명은 공무원이 되겠다고 노량진에 들어왔고, 한 명은 어렵사리 취직은 됐지만 대기업에 비해 낮은 연봉과 이유 없이 반복되는 야근에 지쳐 했고, 또 다른 한 명은 공개적으로 ‘이런 일을 합니다’라고 하기 어려운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다는 20대에. 그 중에서도 최악은 바로, 일우 자신이었고 그래서 친구들에게도 아직 어떤 일을 하는지 얘기한 적이 없다.
“그나저나, 너 무슨 일 하는 거야? 느닷없이 술 사겠다고 노량진까지 나타나고.”
길거리 분식 포장마차에서 햄 치츠 팬 케이크를 먹으며 지완이 일우에게 물었다.
“그냥 물건 파는 거. 기본급 약간에다 파는 수량만큼 인센티브를 받거든. 근데 내가 좀 많이 팔았어.”
“혹시 다단계 하냐?”
용일의 질문에 일우는 사래에 걸린 듯 한참을 켁켁거리더니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듯 대답했다.
“야, 내 앞에서 다단계의 다자도 꺼내지 마라. 내가 옛날에 그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러자 용일이와 지완이 같이 큭큭거리더니 용일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뭐 파는데?”
“그런 게 있어. 너무 자세히 알면 다쳐. 죽을지도 몰라.”
“참, 얘 썰렁한 건 진짜 독보적이야. 귀신은 뭐하나 몰라.”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더라.”
지완이의 핀잔을 들은 일우는 속으로 긴 한 숨을 내쉬었다. 언제쯤이면 내가 하는 일을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니 그런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얼마 뒤 일우는 다시 김미향을 만나고 있었다. 떳떳하게 이런 일을 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돈이었다. 어머니를 위해서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주 그녀를 만나고 돌아갈 때마다 좀 이상한 게 한 가지 있었다면 식당 정문 앞에 늘 검정색 세단이 주차되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차 앞에는 언제는 호리호리한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는 것이었다. 세단이야 그녀가 타고 다니는 차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두 명의 남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 명이라면 그녀의 기사라고 생각해도 되겠지만 두 명이라니. 그렇다면 그녀의 차가 아닌가?
“경호원이야.”
네 번째 만나는 날 궁금한 걸 얘기했더니 김미향이 대답해 주었다. 여러 번 만나다 보니 친해져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일우에게 반말로 얘기했다.
“경호원이요?”
일우는 옷을 입으며 물었고 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 대답했다. 돈이 좀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 거기다 외모도 출중한 젊은 여자이긴 하지만 요즘 세상에 사설 경호원을 두 명이나 데리고 다니는 사람은 처음 봤다.
“남편이 붙여 놨어. 보호해 준다고.”
미향의 말을 덧붙였다. 그 얘기에 일우는 대체 남편은 뭘 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길래 자기 아내에게 경호원까지 붙인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물었다.
“그런데 공식적으론 결혼 안 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화장대 오른 쪽 위에서 두 번째 서랍을 열어 흰 봉투를 꺼내며 물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봉투에는 5만원짜리 40장, 총 200만원이 들어있다.
“그렇지 공식적으로는. 그나저나 말이야…”
그녀는 결혼 문제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다음 주에는 남편이 와서 못 만나. 한 2주 동안 못 만날 거야.”
“남편이 온다니요? 외국 갔어요?”
“응. 일본에.”
“그런데 2주 있다가 또 간다고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바빠.”
알 수 없는 그녀였고 더 알 수 없는 그녀의 남편이었지만 일우 본인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렇게 2주가 지났고 다시 그녀를 만난 지 또 2주가 지났을 때였다. 그날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식당 정문을 나서는데 세단 옆을 지키고 서 있던 호리호리한 두 명의 남자 중 한 명이 일우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물어봐도 될까요?”
정중하게 물었지만 미묘하게 뭔가 어색한 것이 한국 사람이 아닌 듯 했다.
“알바 생인데요. 매주 수요일만 와서 잠깐씩 도와주고 있어요.”
미향이 예전에 누가 물어 보면 얘기하라고 알려준 대로 대답했다. 그 때는 그런 일이 있을까 싶어서 의아해했는데 정말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는 정중히 얘기하고는 물러섰고 일우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리고 2주쯤 후 그녀를 만나고 나오는 길에 그가 다시 말을 걸어 왔다.
“실례지만 잠깐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그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다른 사람이 다가와서는 일우의 한 팔을 잡고 차 쪽으로 끌고 갔다.
“왜요? 어디를요?”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당황스러워 일우는 앞 뒤 따지지 않고 물었다.
“가 보시면 압니다.”
구겨지듯 차 뒷자리에 억지로 들어간 일우의 눈에는 안대가 씌어졌고 곧바로 차가 출발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더욱 불안했다. 테이큰의 리암 니슨도 아니고 어디로 가는지 알아챌 길이 전혀 없었다. 얼마나 갔을까, 잠시 후 차는 어디선가 멈춰 섰고 안대는 벗겨졌으며 함께 온 남자들에 의해 차에서 내려졌다. 그랬다. 내린 게 아니라 일우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려진 것이다. 눈을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어느 한적한 곳이었고 알 수 없는 건물이 눈에 들어 왔다.
“이 쪽으로 오시죠.”
그들에게 이끌리다시피 건물로 들어서니 내부 인테리어는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채 사람이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무슨 용도로 사용하는 건물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데리고 왔습니다.”
어느 방문 앞에 도착하자 일우를 데리고 온 남자 한 명이 문 밖에서 말을 하자 문 안 쪽에서도 무슨 얘기가 들렸는데 우리 말은 아닌 듯 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떠 밀리다시피 방 안으로 들어가니 가운데 의자에 지긋해 보이는 중년의 신사가 정장을 입은 채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또 한 명의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일우를 끌고 온 두 사람은 그 신사와 불과 1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는 의자에 일우를 앉혔고 그가 앉자마자 정장의 신사가 무슨 말을 했는데 일본어였다. 신사 옆에 서 있던 젊은 남자가 통역을 했다.
“솔직하게 얘기하셔야 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신사는 다시 일본어로 뭐라고 말했고 젊은 남자가 통역을 했다.
“그 식당에는 왜 매주 오시는 겁니까?”
일우는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당황스러웠고 심지어 공포심까지 들어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등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알바생인데요. 수요일 점심 시간이 제일 바쁘다고 해서 일하러 간 거라니까요.”
이 곳으로 데리고 온 두 남자에게 했던 그대로 얘기했다. 직감적으로 솔직하게 얘기하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일우의 말을 들은 젊은 남자가 일본어로 통역을 하자 신사는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다시 일본어로 뭐라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솔직하게 얘기하셔야 합니다. 정말 알바생이십니까?”
“그렇다니까요. 제가 뭐 하러 거짓말 하겠어요.”
통역을 통해 일우의 얘기를 들은 신사가 갑자기 자리에 일어나서는 방 한쪽으로 가서는 무언가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칼이었다. 그것도 식칼이나 회 뜨는 칼이 아닌 영화에서나 보던 일본의 검 (劍) 이었다.
그가 칼집에서 천천히 칼을 빼자 흰색에 가까운 칼이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뿜으며 모습을 드러냈고 일우는 영문도 모른 채 공포에 질려 땀이 흘러내렸다. 신사는 그 칼의 끝을 일우의 목에 갖다 대고는 일본어로 뭐라고 했고 젊은 남자가 역시 통역을 해줬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그 식당에는 무슨 일로 매주 오시는 겁니까?”
머리 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잘못 말하면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살려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면서 대체 김미향이라는 그 여자는 누구일까라는 생각과 이 남자와는 어떤 관계일까라는 궁금증도 들었다.
“정말 알바생이라니까요. 제가 알바하는 게 싫으시면 안 갈게요. 그런데 진짜 알바라니까요.”
일우의 얘기를 통역을 통해 들은 신사는 잠시 일우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이내 칼을 도로 칼집에 넣고는 일우를 데리고 온 남자 중의 한 명에게 건네주었다.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신사가 일본어로 뭐라고 하자 통역의 얘기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처음 이 곳에 데리고 온 남자들에 의해 끌리다시피 그 곳을 빠져 나와 역시 구겨지다시피 타고 왔던 차에 올라 탔고 다시 안대가 씌어졌다. 살면서 이처럼 공포심을 느껴본 순간이 없었던 터라 팬티까지 젖을 만큼 땀을 흘렸다.
“저 죄송한데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되요?”
그 와중에도 궁금한 것이 있어 눈이 가려진 채로 함께 온 사람들에게 물었다.
“대체 아저씨들은 누구에요? 아까 일본말 하던 아저씨는 또 누구고요?”
내 질문에 그들은 아무 말이 없다가 잠시 후 한 사람이 짧게 얘기해 주었다.
“일본 야쿠자입니다. 아까 그 분은 저희 오야붕이십니다.”
그리고는 잠시 쉬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그 식당 사장님은 저희 오야붕의 한국 부인이십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일우의 머리는 망치로 맞은 듯 띵하고 울렸다. 야쿠자, 오야붕, 한국 부인. 그 때 김미향이라는 여자의 얘기가 떠올랐다.
‘공식적으로는 결혼하지 않았다’
‘남편이 붙여준 보디가드’
‘남편은 일본에 있다’
이런 제길. 그렇다면 그녀는 일본 야쿠자 두목의 한국 현지처란 얘기 아닌가? 그렇다면 그 식당하고 보석 브랜드도 다 아까 야쿠자 오야붕의 돈으로 한 거란 거잖아. 이거 완전히 미친 짓이었네. 만약 아까 사실을 얘기했다면 내 목숨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온 몸에 닭살이 돋았고 팔 다리의 모든 털이 곤두서는 듯 했다.
잠시 후 차는 어딘가에 정차했고 안대가 벗겨진 후 떨궈지다시피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일우가 내리자마자 차는 바로 어딘가로 출발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니 무슨 지하철 역 같은 게 보였는데 자세히 볼 힘이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 땅 바닥에 그대로 털썩 주저 앉았다. 그야 말로 죽다 살아난 셈이었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 일우는 윤상무에게는 몸이 좋지 않아 못 나간다고 얘기하고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어디 아픈 건 아닌데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다가 풀어지니 온 몸이 다 분해된 것처럼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흘 째 되는 날 문득 가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옷을 대충 챙겨 입고 할머니를 만나러 구멍 가게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씩씩거리며 뛰어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할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변함없이 TV를 바라본 채 미동도 없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을 소개 해줬냐고요, 나 죽다 살아났다고!”
목소리를 조금 높여서 화를 내봤지만 소용 없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할매는 그 여자가 일본 야쿠자 한국 현지천거 알고 있었죠?”
점점 소리를 높여가며 화난 듯 말하자 드디어 할머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지만 그 시선에는 변함이 없었다.
“네가 선택했잖아.”
굵고 짧은 대답이었다.
“그거야 할매가 처음부터 정확한 정보를 알려줬으면…”
하도 황당해서 다시 따지려는데 할머니가 내 말을 자르고는 말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하는 법이지. 그 정도 돈을 받으면서 그런 위험도 없을 줄 알았어?”
그리고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고 할머니의 얘기에 일우는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몰라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그래도 할매, 다음부턴 그러면 안 돼. 나 정말 죽다 살아났다고!”
그리고 돌아서려는데 평소와는 달리 할머니가 덧붙였다.
“넌 일찍 줄을 관상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대신 여자 조심해. 네 얼굴에 여자가 잔뜩 끼었어.”
- 디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