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야기 구조입니다.
앞 부분에 조연처럼 등장했던 나왔던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 인물이 되는가 하면 인물과 인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엮어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입니다.
또한 앞 부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나중에 일어날 일의 복선이 되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짜임새 있게 엮었습니다.
또한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나누어서 진행되며 중간에 교차되기도 하는 구성을 통해 마치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극적 구성을 더하였습니다.
따라서 항상 회차별 제목을 꼭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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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되셨습니까?]
[예, 이 쪽은 아무 차질 없이 준비하고 대기 중입니다.]
[알겠습니다. 저희 쪽에서 신호를 드리면 그 때 함께 움직이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신호 기다리겠습니다.]
“젠장, 토요일에 이게 뭐래요?”
박본주가 무전을 끝내자 옆에서 그 내용을 듣고 있던 김 형사가 불평을 쏟아 냈다.
“게다가 부산 경찰의 지시를 받아야 하다니. 면이 안 서네요, 면이.”
“참아라. 계획대로만 되면 오늘이면 모든 게 끝이다. 그러면 특진도 가능할 수 있고. 여태까지 고생한 게 아깝지 않으려면 집중 하자고, 집중.”
“아이고, 형님. 특진은요 무슨. 부산 경찰서 애들이나 시켜 줄라면 시켜주겠지. 우리한테 특진은 무슨.”
김형사의 연이은 불평을 들으면서 박본주는 아무 말없이 손에 든 종이컵의 커피를 마시며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일망타진한다.
“그나저나 너 언제 머리 감고 안 감았냐?”
잠시 후 운전석 좌석을 뒤로 완전히 젖히고 누워있다시피 한 박본주가 김형사에게 물었다.
“한 3일 됐나요. 이젠 가렵지도 않아요.”
박본주는 김형사가 두 눈을 감은 채 대답하는 걸 들으면서 룸 미러로 자신의 얼굴을 비춰 봤다. 며칠 째 깎지 못해서 덥수룩한 수염과 까칠한 피부가 먼저 눈에 들어 왔다. 다행이 머리는 엊그제 공중 화장실에서 대충 감아서 기름으로 떡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오늘 집중해서 마무리 하자고. 너도 아들내미 보러 이제 집에 가야지.”
“야야, 일우야. 그 뭐시기냐 너네 직장 상사 있잖여, 사장님.”
일우의 엄마는 재활운동을 하다 일우에게 말을 걸었다.
“미향씨요?”
“응, 그랴. 미향 씨. 아니 사장님이지. 넌 어떻게 아직도 씨라고 부르냐?”
“그냥 그렇게 됐어요.”
오늘은 토요일이라 수업이 없어 일우는 걷기 운동을 하는 엄마를 옆에서 돕고 있었다. 미향은 약속한 대로 어머니를 2인실로 옮겨주었고 주간 간병인도 구해주었다. 낮에는 학교 수업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저녁에는 늘 어머니 곁에서 먹고 자며 간병을 하다가 아침이면 집에 가서 씻고 학교엘 갔다. 미향은 24시간 간병인을 붙여주겠다고 했지만 일우가 거절한 것이다. 대신 병원에서 운영하는 재활 프로그램에 등록을 해주었고 덕분에 어머니는 많이 좋아지셨다.
“그 처자 참 괜찮던데. 이것 저것 많이 챙겨주고 살뜰히 들여다 봐주기도 하고. 매일 오더라.”
엄마의 말에 일우는 아무 말 없이 옆에서 걷는 걸 도울 뿐이었다.
“그 처자 혹시 몇 살이다냐? 이렇게 정성으로 보살펴주니 심성이야 안 봐도 알겠고, 인물도 그만하면 미스코리아 감이고. 나이가 문젠데…”
“엄마는 무슨. 단순히 직장 상사가 아니라 회사 사장이에요. 그러니 당연히 나보다 훨씬 많겠지.”
일우의 얘기를 들은 엄마는 상당히 안타까운 표정으로 마음을 표현하며 말했다.
“그려? 것 참 아쉽네. 시집은 갔을랑가?”
“그건 저도 잘 몰라요.”
일우가 일부러 퉁명하게 대답했던 그 때 몇 명의 무리가 재활실로 들어왔다.
“일우야!”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지완이와 용일이가 온 것이었다.
“어, 너네들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 너네 어머니가 입원하셨다는데 당연히 와 봐야지. 오히려 좀 늦어서 미안한데. 학주는 오늘도 출근해야 된다고 해서 우리 둘이 왔다.”
용일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일찍 못 찾아 봬서 죄송합니다.”
용일이와 지완이가 함께 일우의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그려, 너희를 왔구나. 오랜만이네. 잘들 지내지?”
“예, 저희야 뭐…”
두 명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머리를 긁적이며 우물쭈물했다.
“그나저나 병원까지 와주고 참 고맙네.”
“아유, 별말씀을요. 당연히 와야죠.”
그 때 재활실 입구 쪽에서 일우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그 소리에 돌아보니 준희가 와 있었다.
“그러니까 오빠가 예전 경험을 바탕으로 추리를 해서 아빠의 사건에 대해 조언을 해준 거란 말이죠?”
준희와 일우 그리고 친구들은 병원 1층 카페테리아에 모여 지난 번 일우가 조언을 해준 박본주 형사의 사건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다니까. 그런데 그게 정확히 맞아 떨어진 거지.”
일우는 자랑스럽게 얘기했고 추리 동아리의 회장 격이었던 지완은 아무 말 없이 빙긋이 웃고 있었다.
“토마스 너도 그런 동아리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용일이는 어느 새 일우를 따라 준희를 토마스라고 부르며 준희에게 물었다.
“그것도 괜찮겠네요. 나름 특색 있고, 재미도 있을 것 같고요.”
“그나저나 오늘은 토요일인데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일우가 준희에게 물었다.
“마음이 심란해서요. 좀 뒤숭숭하기도 하고. 그래서 절에 잠시 갔다가 오빠 얼굴도 볼 겸 좀 들었어요.”
“왜? 무슨 일 있어?”
준희의 대답을 들은 일우가 다시 물었다.
“아빠가 특수 작전에 참여하셔서 부산에 가셨거든요. 오늘이 그 작전 수행하는 날이라고 하시는데 워낙 위험한 일을 하시다 보니 특수 작전 같은 거에 참여하시면 제가 늘 불안해지거든요.”
“아, 그 때 얘기하셨던 부산 경찰하고 공조하시는 거?”
준희의 얘기를 들은 일우는 다시 물었고 용일이와 지완이는 무슨 일이냐는 듯 호기심 어린 눈 빛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경찰 수사 관련 일이라 예전 추리 동아리 할 때의 호기심이 다시 솟구쳐 오르는 듯 했다.
“아빠가 얘기하지 말랬는데…기밀이라고.”
“괜찮아. 우리가 누구한테 얘기하겠냐? 그러니까 편하게 얘기해. 너 혼자 가슴에 담아 두고 있으면 병 된다, 그거.”
궁금함을 못 참겠는지 용일이가 준희를 재촉했지만 준희는 여전히 말하기가 꺼려지는 듯 머뭇거렸다.
“내가 추리하건데”
그 때 지완이가 한 마디 하자 용일이가 지완이를 뜯어 말렸다.
“너 제발 추리하지마! 토마스 얘기 좀 듣자.”
그러자 지완이는 풀이 죽은 듯 입을 다물었고 대신 준희가 얘기를 시작했다.
“오늘 저녁에 부산에서 일본 야쿠자하고 부산 조폭하고 무슨 회합식인가 단합 대횐가 그런 걸 하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 때 일망타진 한다고 부산에 가셨거든요.”
“그런데 서울 경찰인 너네 아버지가 왜?”
일우가 물었다.
“그 야쿠자가 강남에 본거지 같은 게 있나 봐요. 그래서 아빠가 마침 예의주시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부산에서 그런 일이 생겼으니 공조하러 가신 거죠.”
그 순간 일우는 갑자기 미향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나저나 오늘은 보디 가드들 없어요?’
‘없어. 노인네가 부산에 일이 있다고 데려갔거든.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그 생각이 들자 일우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만약 박본주 형사가 부산 경찰과 공조를 통해 일망타진하려는 야쿠자가 김미향의 노인네라면 김미향도 위험해질 수 있다. 그녀가 하는 한식당과 보석 브랜드는 어차피 야쿠자 노인네의 자금으로 운영되는 것이라 만약 그 노인네가 붙잡힌다면 경찰이 모든 자금을 수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김미향의 사업도 위험해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불우한 시절을 보냈던 김미향에게 또 다시 시련이 시작될 수 있다. 김미향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런데 문득 다른 생각도 들었다. 김미향을 만나면서 죽을 뻔한 위기도 있었다. 그것도 바로 그 야쿠자 노인네에게 말이다. 손 안대고 코 푼다고 가만히 앉아서 복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김미향과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친구들과 준희를 바라보며 마음에 일어나는 갈등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복수를 하느냐, 그래도 어머니를 위해 많은 것을 도와 준 미향을 돕느냐. 사회 악을 뿌리 뽑는 정의를 위할 것이냐 개인적 친분을 위할 것이냐.
“일우야, 우리는 만난 김에 토마스랑 같이 저녁 먹으러 갈 건데 넌 좀 어렵겠지?”
한창 대화를 하던 중 용일이가 일우에게 물었다.
“응, 아무래도 난 엄마랑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저녁도 좀 챙겨드려야 하고.”
“아쉽네. 그래도 혹시나 시간 되면 연락 줘. 이 근처에 있을 테니까.”
“그래요, 오빠. 시간되면 꼭 연락 주세요.”
친구들과 준희는 그렇게 일우에게 말하고는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고 일우는 그들과 헤어져 엄마의 병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인실이 있는 층에 내려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사이 참 많은 간호사들과 환자들이 오가는 것을 보며 ‘아프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병실 문 앞에 도착하니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 목소리를 들어보니 김미향과 어머니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 일우는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김미향을 보면 뭐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망설임도 잠시, 결국 문을 열고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얘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얘기하지 않고 가슴 속에 묻어두면 그 짐의 무게 때문에 평생을 고통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우 왔냐?”
병실로 들어서는 일우를 보고 엄마가 말하자 그 옆에 앉아 있던 미향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토요일인데 어떻게 여기까지…”
미향의 인사에 일우는 무뚝뚝하게 수학공식처럼 대답했다. 그러자 일우 엄마의 책망하는 듯한 얘기가 들렸다.
“넌 직장 상사님한테 왜 그러냐?”
그러자 미향이 일우 엄마와 일우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어머니. 일 마치고 집에 갔다가 들렀어요. 마침 이제 일어나려고 했었어요.”
“아이고, 일우 저 놈 자식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가시면 제가 송구스러워서…”
“아니에요, 어머니. 나중에 또 올게요.”
“안 그래도 할 얘기가 있는데 배웅하면서 잠시 얘기하시죠.”
일우는 여전히 무뚝뚝하게 얘기했고 미향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함께 병실을 나왔다.
“혹시 지금 운영하시는 한식당이나 젬므라는 브랜드 말이에요, 그 노인네가 없으면 잘 안 돌아가나요?”
1층 카페테리아의 빈 자리에 앉자마자 일우는 물었고 미향은 뜬금없는 질문에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갑자기 무슨 질문이지?”
“자세히 얘기하기는 곤란하고 그냥 대답해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병실 앞에서 결심을 했었지만 일우는 마지막까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운영하는 곳들에 대해 느닷없이 물어 보는데 함부로 대답해 줄 수는 없지 않겠어? 그나저나 뭐 마실래?”
미향은 클러치 백을 들고 일어서며 일우에게 물었다.
“아, 마실 것보다…음…내 얘기 잘 들으세요.”
일우는 미향의 한 쪽 팔을 잡고 자리에 다시 앉히고는 아까 준희에게 들었던 얘기를 전해줬다.
“그런데 미향 씨가 지난 번에 보디가드들이 부산에 갔다는 얘기를 듣고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군요. 그럼 이제 일우 씨한테 얘기를 들었으니 나는 그 노인네한테 연락해서 빨리 피하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잡혀 가도록 놔둬야 할까?”
일우의 얘기를 들은 미향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담담하게 오히려 일우에게 물었다.
“글쎄요, 그건…아마도 미향 씨 선택의 문제겠죠.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살 건지 아니면 현재의 삶을 유지할 건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는 남겠지만.”
일우의 얘기를 들은 미향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한식당은 내가 없어도 돌아갈 정도로 잘 되고 있긴 해.”
한식당은 야쿠자 노인네의 돈으로 차리긴 했지만 소유주는 김미향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초기에는 그 노인네가 운영하는 대출업 직원들이 회식을 할 때나 접대를 할 때 이용했는데 소문이 나면서 점차 정관계 인사들까지 드나들었다. 단순히 음식만 파는 게 아니라 요정처럼 운영했기 때문이었고 특히 미향의 미모를 보고 오는 손님들이 많았다.
“근데 요즘에는 접대하기 힘들지 않아요? 김영란 법 때문에.”
“훗, 역시 학생다운 생각이네. 모든 기업들에는 회식비라는 것이 있어. 예를 들어 30명정도 되는 인원들이 와서 인당 3만원 정도의 음식을 먹으며 회식을 하면 100만원 가까운 비용이 나오지. 두 명이 와서 그렇게 먹고 회식비로 처리하면 그만이고. 어차피 우리 식당에 접대하러 오는 사람들은 거의 대기업 쪽이니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데다가 회식비 말고도 방법은 많아.”
게다가 최근에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저렴한 한정식 메뉴를 개발해서 인기가 좋다고 했다. 미향의 얘기를 들은 일우는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놀랍기도 했고 흥미가 생기기도 했다.
“그럼 보석 브랜드는요?”
“그 노인네와 내가 주식을 반반씩 갖고 있어. 하지만 그 노인네한테 문제가 생기면 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그 사람을 주주에서 빼 버리면 자연스럽게 내 지분이 100%가 될 수 있지. 법적 절차가 좀 까다롭겠지만 사회적으로 엄청난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니까 해결 될 거라고 생각해. 한식당을 운영하면서 쌓아 놓은 정∙관계 쪽 인맥들이 있어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고.”
아무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얘기하는 미향을 보고 일우는 속으로 감탄했다. 저 연약해 보이는 여자가 이렇게 크게 보이는 일을 이토록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그럼 미향씨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나요? 어쨌든 조사하면 그 노인네와 미향씨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 텐데.”
“그 노인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질구레한 일까지 경찰에 얘기하지는 않을 거야. 어차피 자기가 벌여 놓은 일들이니까. 설령 그렇다 해도 얘기한대로 나는 나대로 인맥이 있으니까 괜찮기도 하고. 이래 보여도 나름 미인계를 활용하니까.”
미향은 역시 빙긋 웃으며 대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오히려 홀가분해지겠네. 그 노인네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물론 영원히는 아니겠지만.”
“네? 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에요?”
“야쿠자가 왜 야쿠자겠어. 잡혀가도 어떤 식으로든 얼마 안 가 풀려날 거야. 그러면 일본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들어올 수 있지. 여권 위조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니까.”
“그렇군요.”
일우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얘기를 들으며 놀라웠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면 미향 씨 인생은 시지푸스 보다 더 불행하군요.”
“그게 무슨 뜻이야?”
“시지푸스의 비극이라고 알죠? 힘겹게 산 정상에 무거운 바위를 올려놓으면 그 바위가 반대쪽으로 글러 떨어져 다시 반대쪽에서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면 또 다시 반대쪽으로 굴러 떨어져서 다시 산 정상으로 바위를 올려놓기를 무한히 반복해야 하는 비극."
“응,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시지푸스의 진짜 비극은 그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 놓아봐야 반대쪽으로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이고, 다시 올려놓으면 또 반대쪽으로 굴러 떨어질 것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무한히 반복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라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그 노인네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이 미향 씨의 비극이라는 거죠. 노인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일우의 얘기를 들은 미향은 잠시 말 없이 일우의 눈을 바라 보았다. 그렇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비극이 아니라 반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비극일지도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스트레스가 될 테니까.
“고맙네. 그렇게 생각해 줘서.”
다음 날, 언론에서는 경찰이 부산에서 있었던 조직폭력배와 일본 야쿠자의 단합대회를 급습해서 그 자리에 있던 일당을 체포했다는 기사가 도배 되었지만 체포된 사람들의 사진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그 노인네가 잡혔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일우는 어떻게 됐는지 김미향씨에게 직접 물어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나중에 토마스한테 물어보거나 박본주 형사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잔잔한 미향씨의 마음을 건드릴 필요는 없으니까.
쿵-.
그 때였다. 용희를 만나고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가던 중 신호 대기를 하고 있는데 뒤차가 택시를 들이 받았다.
“이런, 썅-“
택시 기사는 화가 잔뜩 난 채로 접촉 사고가 나면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한 손으로 목을 잡은 채차에서 내려 뒤 차로 다가갔다. 그리고 뒤차에서도 사람이 내렸는데 선글라스에 정장차림을 한 늘씬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여자는 연신 택시 기사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듯 보였고 택시 기사는 화가 난 듯 뭐라고 계속 쏘아 붙이는 모습이 일우의 눈에 들어 왔다. 얼마 후 여자가 택시 기사에게 명함 같은 것을 건네주고는 일단락 되는 듯싶더니 여자가 갑자기 택시 쪽으로 다가와서 일우가 앉아 있는 쪽 창문을 노크했다. 일우가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을 내리자 여자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미안한 듯 물었다.
“죄송합니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얼굴이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 일우는 아무리 머리를 뒤집어 봤지만 누구인지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 예. 괜찮습니다.”
일우는 이런 경우가 처음으로 당황스럽게 대답을 했다.
“혹시나 나중에라도 어디 불편하시면 이 쪽으로 전화 주세요.”
여자는 선글라스를 벗고는 명함을 일우에게 건넸다. 명함을 보니 최근에 인기 있다는 아나운서인 ’오지영’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 왔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저도 그 쪽 연락처를 알고 있어야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지영이 일우의 연락처를 묻자 일우는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지영은 일우의 연락처를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하고는 알 듯 모를 듯한 묘한 미소를 띈 채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자기 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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