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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이 온다!
작가 : 알케이
작품등록일 : 2019.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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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그 남자의 시선 (9)
작성일 : 19-10-14     조회 : 313     추천 : 0     분량 : 9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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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야기 구조입니다.

 앞 부분에 조연처럼 등장했던 나왔던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 인물이 되는가 하면 인물과 인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엮어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입니다.

 또한 앞 부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나중에 일어날 일의 복선이 되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짜임새 있게 엮었습니다.

 또한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나누어서 진행되며 중간에 교차되기도 하는 구성을 통해 마치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극적 구성을 더하였습니다.

 따라서 항상 회차별 제목을 꼭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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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진짜에요? 언제 가는데요? 아니, 그것보다 결심은 언제 했어요?”

 용희로부터 뜻 밖의 얘기를 들은 일우는 한 번에 여러 개의 질문을 쏟아냈다.

 “야, 하나씩 물어봐. 하나씩.”

 소주 잔을 비운 용희는 잘 구워진 삼겹살을 기름장에 찍어 입에 넣고는 아삭한 고추를 된장에 찍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음, 그러면 가장 먼저. 언제 그런 결심한 거에요?”

 일우도 소주잔을 비우고는 물었다.

 “너 학교 복학한 거 보고는 고민을 많이 했어. 너는 학교까지 복학하면서 네 자리로 돌아갔는데 나는 이 곳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 걸까라는 고민. 세상의 모든 대상은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는데 나는 과연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건가. 뭐 그런 것들. 그러다 유학을 결정한 거야.”

 그렇게 용희는 그 동안의 치열했던 고민 과정을 일우에게 털어 놓았다.

 “그러니까 형은 제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던 거군요.”

 일우는 용희가 한 말을 되풀이하며 물었다.

 “왜, 아니야?”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전 스스로 한 번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그럴 수도 있지. 원래 사람이란 의외로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없으니까.”

 토요일 오후 신촌의 어느 좁은 골목에 위치한 작지만 오래된 삼겹살 집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홍대 상권이 뜨면서 이미 그 기세가 기울어진 신촌인데다 그 중에서도 좁은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어서 조용할 줄 알았는데 나름 시끌벅적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아무래도 여기 왔던 손님들이 벽에 빼곡하게 남겨둔 낙서들만큼 오래된 집이라 추억을 되씹기 위해 찾은 사람들인 듯 하다.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서 용희와 일우는 과거의 추억이 아닌 미래를 얘기하고 있었다.

 “제가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축하 드려요, 형.”

 “축하는 무슨. 오히려 너한테 고맙지. 이런 생각을 하게 해줬으니까.”

 “참 그러면 가게는 어떻게 되는 거에요?”

 “이달까지만 나가기로 했어. 마지막까지 돈 벌어야지. 그리고 이것저것 준비해서 두 달 뒤에 떠나는 일정이야.”

 용희는 자신의 잔과 일우의 잔에 소주를 채웠다.

 “진짜, 그걸 안 물어 봤네요. 유학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어요?”

 “그 동안 번 돈이 있으니까. 나도 너처럼 번 돈을 흥청망청 쓰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거기다 갖고 있는 차도 팔고 전세집도 빼면 몇 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미국 대학은 장학금 제도가 워낙 잘 돼 있다고 하니까 나만 열심히 하면 잘 되지 않을까 싶다.”

 “오- 대단한데요? 그나저나 윤상무가 섭섭하겠어요.”

 “그렇겠지. 그래도 네가 가끔씩 나가서 도와주니까 그나마 위안은 되지 않을까?”

 용희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혹시 저 가끔 뉴욕에 놀러 가도 되요?”

 “그럼, 당연하지. 언제든지 놀러 와.”

 “자, 이 타이밍에서 우리 앗쌀하게 건배 한 번 할까요?”

 “그렇지. 앗쌀하게!”

 “앗쌀하게!”

 두 사람은 잔을 부딪치고는 단 숨에 잔을 비우고 안주를 집어 먹었다. 육상 경기는 시작할 때 레인 순서가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 순서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할 때의 순서와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시작과 끝 사이, 과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마지막 숫자가 정해질 뿐이다. 출발이 남들보다 조금 늦었다고 해서 마지막도 남들보다 늦으리란 법은 없는 것이다.

 용희의 새로운 출발이 남들보다 늦을 순 있지만 과정만 잘 보낸다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곳이 용희가 있어야 할 자리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용희를 만난 후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지영이 운전하는 차와 접촉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평범하게 흘러갔다. 일우는 계속 학교에 나가 수업을 듣고 준희 같은 후배들과 어울렸으며 일주일에 1~2회는 윤상무가 운영하는 가게에 나가 돈을 벌었다. 물론 그가 호스트 바에 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학교 내에 한 명도 없었다.

 일우의 엄마는 무사히 퇴원해서 다니던 공장에 다시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게 예전처럼 평화롭게 아무일 없었던 듯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우는 집에서 TV를 보며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와 채널을 멈췄다.

 [다음 소식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미국 하원 의원이 탄핵을 발의했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오지영이었다. 잠깐 저 그 때 받았던 명함을 어디에 뒀더라? 일우는 불현듯 얼마 전 접촉 사고 당시 받았던 그녀의 명함을 기억해 내곤 그 명함을 찾기 시작했다. 사고 이후에도 신체의 어느 곳도 불편한 곳이 없어 잊고 있었기 때문에 연락을 하려는 의도보다는 그냥 명함을 어디에 두었는지 궁금해서였다. 하지만 지갑을 열어 보고 갖고 다니던 가방을 뒤집어 보고 그 날 입었던 자켓을 기억해내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명함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으니까.’

 일우는 편하게 생각하며 다시 뉴스를 보다가 채널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며칠 후, 수업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가는 길에 낯선 번호로부터 연락이 왔고 일우는 누구지라는 생각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서일우씨 되시죠?]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택시 타셨을 때 접촉사고 났던…]

 일우는 누군지 알아채고는 상대방의 말을 끊고 대답했다.

 [아, 오지영 씨]

 [기억하시네요]

 미소를 머금은 듯한 목소리의 지영이 말을 이었다.

 [다름 아니라 지난 번 사고 낸 것도 있고 해서 제가 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혹시 이번 주 목요일에 시간 괜찮으세요?]

 [아, 괜찮습니다. 어디 다친 것도 아닌데요. 전화 주신 것만으로 됐습니다. 그 보다는 그 택시 기사님께…]

 그 때 지영이 일우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택시 기사님께는 따로 만나서 보험처리하고 선물도 드렸어요. 죄송하다고. 근데 그 때 택시에 타고 있던 일우 씨한테도 만나서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지영의 얘기를 들은 일우는 잠시 고민하다 차 한 잔 얻어 마시는 게 뭐 어떨까 싶어 말했다.

 [목요일이요? 잠시만요]

 일우는 전화기의 일정표를 눌러 목요일 스케줄을 보고는 말했다.

 [오후 2시 이후에는 시간 괜찮아요]

 [그럼 제가 모시러 갈게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두 사람은 그렇게 약속 시간과 장소를 잡고는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그 주의 목요일 학교 정문 길 건너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던 일우의 앞에 검은 색 세단이 스르르 정차하더니 조수석 쪽 창문이 열리고는 여자의 말 소리가 들렸다.

 “일우 씨, 안녕하세요. 얼른 타세요.”

 그 소리에 허리를 숙여 차 안을 들여다 본 일우는 운전사가 오지영임을 확인하고는 바로 조수석에 올라탔다.

 “이런 인사가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이에요.”

 지영이 차를 출발시키며 일우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게요. 나름 오랜만이네요.”

 일우도 어색하지 않으려는 듯 대답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이렇게 낮에 나오셔도 되요? 회사 일이 바쁘실 텐데.”

 “괜찮아요. 저희 하는 일 특성 상 업무 시간을 정해 놓고 일하지 않아서 급한 일 없으면 시간을 자유롭게 써도 돼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지영은 오늘 낮에 외출하는 문제로 부장과 입씨름 한 걸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자신이 낙하산인 줄 모르는 부장은 원리원칙주의적인 성격 그대로 왜 외출이 필요한지에 대해 기안서 작성을 지시했고, 평일 낮에 외출하는지라 그 흔하디 흔한 장례식이나 결혼식을 핑계로 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지영은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했고 부장은 어머님이 계시지 않느냐, 네가 낮에 느닷없이 병원에 가야 할 만큼 편찮으신 거냐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래서 지영은 아버지가 편찮으신데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아버지 모시고 병원에 가는 것은 도리 아니겠냐며 사정을 해서 겨우 나올 수 있었다.

 ‘내가 낙하산이란 걸 티를 낼 수도 없고. 정말 저 꽉 막힌 부장이 문제야, 문제.’

 지영은 부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회의실을 나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는 거에요?”

 “제가 사과하는 의미로 좋은 곳에서 차 한 잔 대접하려고요. 납치 안 할 테니까 저만 믿고 가시면 돼요.”

 지영은 은근히 농담을 하며 차를 신라호텔로 몰았다. 잠시 후 차가 호텔에 도착하자 도어 맨이 문을 열어 주었고 일우는 어리둥절해 하며 차에서 내리면서 물었다.

 “차를 이 호텔에서 마시게요?”

 “네. 이왕이면 제대로 모셔야죠.”

 지영은 미소를 띈 채 차를 도어 맨에게 맡기고는 먼저 1층 로비로 총총 걸어 들어갔고 그 모습을 본 일우는 얼른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이후 커피 숍 입구에 도착한 두 사람은 직원의 안내로 자리를 안내 받았고, 자리로 가는 도중에 지영은 슬쩍 진경이 있음을 확인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안드로이드는 생각보다 보안에 약해요. 그래서 상대방이 문자를 클릭하기면 하면 그 순간부터 도청이 시작되는 거죠. 단순히 통화 내용만 도청되는 게 아니라 그냥 일상적인 얘기도 도청이 됩니다. 말 그대로 상대방 전화기가 그대로 도청기가 되는 거죠. 그 원리는…”

 “원리는 됐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거죠?”

 흥신소 사장의 설명을 단호하게 자른 채 지영은 물었다.

 “말씀 드린 것처럼 문자를 보낼 겁니다. 무료 쿠폰 같은 걸로요. 문자를 클릭할 때까지 보낼 거고 언젠가 한 번은 누를 겁니다. 그리고 나면 도청을 하는 거죠.”

 지영은 이해했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떤 내용을 알아봐 드리면 될까요? 워낙에 많은 내용을 저장해야 하는지라…”

 “전부요.”

 “전부요?”

 지영의 대답에 흥신소 사장은 살짝 놀란 듯이 되물었다.

 “그 애가 어디서 누굴 만나는지 다 알았으면 좋겠어요. 기왕이면 새로운 약속을 잡았을 때.”

 “흠. 그렇군요.”

 흥신소 사장은 긴 말없이 짧게 대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비용이 조금 비싼데요. 수 많은 내용을 계속 들어야 하고 또 그 중에서 약속 같은 걸 별도로 뽑아야 하니까.”

 “제가 언제 돈 안 드린 적 있어요?”

 “당연히 없으시죠.”

 “그럼 믿고 진행해 주세요. 돈은 이번 주 내로 보내드릴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흥신소 사장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까페를 떠났고 남아 있던 지영은 그대로 준서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저런 상황을 하며 얼마간의 돈을 요구했다.

 [너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

 지영의 요구를 들은 준서는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오빠, 나 몰라? 그년한테 그렇게까지 망신당하고 그대로 있으라고? 그리고 오빠도 내가 도와줘서 그 정도까지 될 수 있었던 거잖아. 그러니 오빠도 날 좀 도와줘야 하지 않겠어?]

 지영은 한 치의 망설임이나 부끄러움 없이 준서에게 말했다.

 [후-, 그래 알았다. 뭐 돈이야 빌려 줄 수도 있는 건데 난 네가 걱정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진경이한테 집착할래?]

 [이길 때까지. 그 애가 나한테 잘못했다고 할 때까지.]

 지영은 자신도 모르게 오기가 머리 끝까지 차올라 분한 듯 아무 생각 없이 말했고 그 얘기를 들은 준서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 알았다. 보내 줄게. 근데 이제 좀 멈췄으면 좋겠어. 아무래도 네가 더 걱정 돼]

 [알았어. 충고 고마워]

 통화를 마친 지영은 준서가 보내 줄 돈에 자신이 모아 둔 돈을 조금 더 보태면 충분히 흥신소 비용을 마련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생활이야 아버지한테 용돈을 받아서 하면 되니까. 그리고 얼마 후 흥신소 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2주 후 화요일, 신라 호텔 커피 숍에서 호원 그룹 아들과 만나기로 했답니다]

 [그래요? 수고했어요]

 ‘도진경, 두고 보자.’

 짧게 통화를 마친 지영은 거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었다.

 “지영씨, 여기서 뭐해? 뭐 안 좋은 일 있어?”

 그 때 화장실에 들어 온 선배 아나운서가 세면대 앞에 있던 지영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아니에요, 선배님. 그냥 표정 연습 좀 하느라고요.”

 “아나운서가 연기할 것도 아닌데 표정 연습은. 자기는 발성 연습을 좀 더 하는 게 좋겠더라. 뉴스할 때 아직 좀 어색해 보여.”

 “알겠습니다, 선배님.”

 대답과 함께 화장실을 나온 지영은 생각했다.

 ‘자기나 잘하지. 아직 라디오 뉴스나 전전하는 주제에.’

 이후 지영은 그 만남의 순간에 어떻게 하면 진경에게 최고의 충격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는 작전을 세워 실행에 옮겼고 오늘 이 호텔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진경에게 자신이 일우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 하면서.

 

 “어, 저기 진경이가 있네?”

 자리에 앉으면서 지영은 혼잣말처럼 내뱉었고 그 얘기를 들은 일우는 반사적으로 지영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침 우리 쪽을 보고 있네요. 가서 인사라도 하고 와야겠다.”

 속삭이듯 일우에게 말한 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진경이 앉은 쪽으로 걸어갔고 그 때 지운도 지영이 다가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머, 진경아. 반갑다, 얘. 여기서 널 다 보네.”

 “어… 그래.”

 느닷없는 지영의 방문에 당황한 진경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앉지도 서지도 않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인사를 했다.

 “오늘은 촬영이 없나 보네. 그나저나 이 분은 남자친구?”

 지영은 활짝 웃으며 지운을 가리키며 물었고 진경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진경이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자 지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신 지영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지영 아나운서 되시죠? 뉴스에서 자주 보고 있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절 알아봐 주시니 감사 드려요.”

 지영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진경씨랑 저는 그냥 아는 사이랄까, 뭐 아무튼 그런 사입니다. 사귀는 거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아주시고요.”

 “오해는요, 무슨. 진경이도 이제 연해 해야죠. 헤어진 지가 언젠데.”

 지영이 말을 하는 동안 진경은 혼자 테이블에 남아 이 쪽을 바라보고 있는 일우를 보고 있었고 지영은 그런 진경을 보며 지운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저랑 진경이는 고등학교 동창이거든요. 졸업하고도 가끔씩 동창회에서도 보고 만나왔어요. 그런데 여기서 이런 멋있는 분이랑 데이트를 하고 있는 줄을 몰랐네요.”

 “칭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두 분이 그런 사이시라니 유유상종이라고 역시 미인은 미인끼리 친하시네요.”

 지운 역시 웃으며 지영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저야말로 그렇게 칭찬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진경아, 너는 이런 분을 앞에 두고 왜 딴 사람을 흘낏거리니? 혹시, 너 아는 사람이니?”

 이 상황 자체가 워낙 당황스러웠던 데다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을 모르는 척 물어 보는 지영이 황당하기까지 해서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진경을 본 지운이 끼어들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아직 할 얘기가 좀 남았는데요.”

 “아, 그러시군요.”

 지영은 알았다는 듯 진경을 보고는 말했다.

 “그럼 이따 봐. 바쁘면 나중에 연락하고. 그럼.”

 지영은 지운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돌아서서 일우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변함없이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도진경이랑 아는 사이에요?”

 지영이 자리에 앉자마자 일우가 물었다.

 “진경이 어떻게 아세요?”

 지영이 대답대신 되묻자 일우는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침착하게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요즘 도진경 모르는 사람 있나요? 그런데 지영씨는 직접 가서 인사할 정도니까 보통 사이는 아닌 것 같아서.”

 “하긴 요즘에 진경이 모르면 간첩이니까. 걔랑은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같은 반이기도 했고요. 참, 그나저나 주문해야죠.”

 지영은 진경의 테이블 쪽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짓고는 메뉴 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 오렌지 주스 마실게요. 여기는 생과일 주스가 맛있어요.”

 “그럼 저도 지영 씨랑 같은 거 마실게요. 그런데 호텔이라 그런지 되게 비싸네요.”

 ‘쯧쯧. 출신이 천하니 이런 데서 가격 얘길 하네. 하긴 호스트 바 출신이 뭘 알겠어.’

 지영은 표정은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이런 상황에 있는 자신을 어이없어 하며 손을 들고는 웨이트리스를 불러 주스 두 잔을 주문했다.

 “그나저나 학교 생활은 어때요? 난 졸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캠퍼스가 그립네.”

 “글쎄요, 학교 생활이 뭐 별거 있나요. 다 똑같죠. 수업 받고 과제하고 시험보고 가끔씩 술도 마시고 그런 거죠.”

 “그래도 그 때만 즐길 수 있는 낭만 같은 게 있잖아요.”

 “낭만이라…”

 일우는 뭐라고 얘기할지 고민하면서 지영을 쳐다 봤다. 확실이 도진경이나 김미향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네?”

 “아니, 제 얼굴을 그렇게 빤히 바라 보시니까.”

 “아, 그건 그냥…”

 지영의 도발적인 질문에 일우는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 채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습관적으로 왼손 검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려댔다.

 ‘촌스럽기는. 감히 날 넘보는 건 아니겠지?’

 지영은 생각과는 달리 겉으로는 빙긋 웃어 보였고 곁눈질로 진경을 쳐다 보았다. 확실히 뭔가 불편해 하는 모습이었고 이따금씩 이 쪽을 쳐다보는 것도 눈에 들어 왔다.

 ‘이 정도면 성공한 건가? 조금만 더 기다려라. 크게 한 방 먹여줄 테니까.’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그 때 웨이트리스가 주스가 나왔음을 알려주며 테이블 위에 주스 잔을 올려주었다. 얘기하는 말투나 행동 하나하나가 서비스 교육을 제대로 받은 듯 예의 발랐고 정갈했다. 일우는 분위기도 어색하고 해서 아무 말 없이 바로 빨대로 입을 가져가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비싼 주스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주스는 그냥 주스였다.

 그리고는 지영을 슬쩍 쳐다봤는데 그녀의 표정이 뭔가 어색하게 변하는 게 보여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진경이 다가오고 있었다.

 “난 먼저 가려고.”

 가까이 다가선 진경이 한 마디 하고는 일우와 지영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남자 친구 새로 생겼나 봐?”

 진경의 얘기에 일우는 당황스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지영이 대답했다.

 “남자 친구는 무슨. 어쩌다가 알게 된 사이야. 그나저나 오늘 보니까 너는 곧 시집 갈 것 같은데? 잘 해봐.”

 목소리에 날이 선 채로 비꼬듯이 말하는 지영의 얘기를 들으며 일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한 자세로 진경과 지영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두 사람의 눈 빛이 부딪치며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리고 그 때 진경이 한 마디 했다.

 “착하게 살자. 그리고 너도.”

 그리고는 일우를 보며 덧붙였다.

 “너도 사람 가려가면서 만나.”

 그리고는 돌아서서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향해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고 그런 진경을 보며 지영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완벽한 성공!’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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