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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이 온다!
작가 : 알케이
작품등록일 : 2019.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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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그 여자의 시선 (11)
작성일 : 19-10-17     조회 : 338     추천 : 0     분량 : 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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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야기 구조입니다.

 앞 부분에 조연처럼 등장했던 나왔던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 인물이 되는가 하면 인물과 인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엮어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입니다.

 또한 앞 부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나중에 일어날 일의 복선이 되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짜임새 있게 엮었습니다.

 또한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나누어서 진행되며 중간에 교차되기도 하는 구성을 통해 마치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극적 구성을 더하였습니다.

 따라서 항상 회차별 제목을 꼭 확인해 주세요!!!!!

 ======================================================================================================

 

 “지금까지 영화 소개를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타이밍에서, 아무래도 여쭤보지 않을 수 없는 게 바로 우리 도진경 씨 열애설이 아닐까 싶은데요. 도진경 씨 혹시 하실 말씀 없습니까?”

 TV 영화 프로그램에서 영화 소개를 하는 인터뷰 도중 리포터가 진경에게 열애설에 대해 물었다. 정확히는 진경의 사무실 측에서 꼭 물어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해야 하니까.

 “그냥 아는 후배에요. 가끔씩 차 한잔 하거나 밥 먹을 때 보거든요. 그 자리에 또 다른 제 친구도 있었고요.”

 역시나 진경은 유도진과 말을 맞춘 대로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아는 후배. 혹시 후배가 연인이 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리포터의 질문에 진경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전 연하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렇시군요. 도진경씨가 빨리 연애 사업에 성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송효진씨. 와, 스크린에서 정말 오랜만에 뵙는데요, 우선 소감 한 마디 부탁 드릴게요.”

 진경의 소속사는 열애설이 터진 바로 그날 해명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고 사실 확인 없이 추측성 보도를 한 언론사를 고소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미향이 증인이 되어주기로 했다. 이후 진경은 영화를 빌미로 출연한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동일한 내용을 계속 얘기했고 사람들은 여태까지 늘 봐 왔던 방법이라며 반신반의 했다.

 

 

 “윤 선배, 이래서야 이 일도 오래 못할 것 같아요.”

 조수석에서 쪼그린 채 잠을 자는 듯 눈을 감고 있던 남자에게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을 걸었다.

 “이게 우리 일인 걸 어떡하겠냐. 그래도 특종 건지면 기분이 180도 달라질걸? 딴 소리하지 말고 잘 지켜나 봐.”

 윤 선배라 불린 남자는 건조하고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특종이 될지 모르겠네요. 여차하면 사회부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얘기야?”

 남자는 크게 기지개를 켜면서 물었다.

 “아무래도 호스트 바 관련된 취재니까 그 남자가 여기서 일했었다는 증거가 안 나오면 그냥 호스트 바 관련된 기사가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뭐, 죽 쒀서 개주는 거니까.”

 “그래도 오지영이 정확하게 알려준 거니까 맞을 거야. 벌써 여기 드나드는 손님들 여럿 봤잖아.”

 

 

 “이제 다음 단계로 가셔야죠, 윤 기자님.”

 지영이 빙긋 웃으며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윤 기자에게 말했다.

 “다음 단계라니?”

 “그 남자, 뭐하던 사람인지 아세요?”

 그 때 윤 기자는 지금까지의 경험이 만들어 준 촉으로 뭔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급하게 물어 보지는 않았다. 이 바닥에서 먼저 조급해 보이면 지는 것이란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글쎄? 뭐 하던 사람인데?”

 윤 기자의 질문에 지영은 지난 번처럼 사진 몇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보세요.”

 윤 기자는 사진을 들고는 한 장씩 넘겨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그냥 가정집이잖아.”

 “그냥 가정 집이면 제가 바쁘신 기자님을 보자고 했겠어요?”

 진경은 여유롭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럼…?”

 “호스트 바.”

 “호스트 바?”

 지영의 얘기에 놀란 윤 기자는 사진을 다시 한 번 훑어 보고는 물었다.

 “그럼 도진경이 만난 그 남자가 호스트 바 출신?”

 “놀라셨죠?”

 지영은 여전히 여유로워 보였다.

 “확실해?”

 “사진이 말해 주잖아요. 정 의심스러우시면 제가 위치를 알려드릴 테니까 한 번 가보세요. 놀라실 테니까.”

 

 

 이후 진경과 미향 그리고 일우가 만난 장면을 사진에 담았던 기자인 윤 기자와 그의 후배 여홍주는 며칠 째 일우가 일했던 호스트 바 근처에 차를 세워 놓은 채 잠복 취재 중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업소에 드나드는 여성 손님들의 사진을 여러 장 건질 수 있었다.

 “근데 호스트 바라더니 어떻게 손님만 왔다 갔다 하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도통 밖에 나오질 않네요.”

 “그거야 이런 데는 워낙 비밀스럽게 영업을 하다 보니…”

 “어? 선배. 저기 좀 보세요. 누가 나왔어요.”

 홍주의 눈에 어떤 남자가 호스트 바로 추정되는 건물에서 누군가 나오는 모습이 보이자 윤 기자의 말을 자르고는 툭툭 쳤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진호는 자세를 바로 하고 카메라의 대포 렌즈로 상황을 주시하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대문 앞 주차장으로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차에 올랐다.

 “야, 시동 걸어.”

 “쫓아 가게요? 여기서 취재 안 하고요?”

 “일단 동선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게 쫓아 가자고.”

 남자의 차가 시동을 걸고 어디론가 출발하자 홍주 역시 시동을 걸고는 거리를 두고 쫓아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천천히 차를 몰아 번화가로 진입하더니 한 은행 주차장으로 들어갔고 여홍주는 은행이 보이는 곳에 차를 주차했다.

 “돈 찾으러 왔을라나요?”

 “글쎄.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잠시 후 남자는 차를 몰고 은행 주차장을 빠져 나와 원래 출발했던 곳으로 차를 몰았다.

 “차량 통행이 적은 곳이니까 적당히 거리 두고 쫓아가.”

 윤 기자가 홍주에게 말하자 홍주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넵.”

 그렇게 미행을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남자는 처음 출발했던 집 앞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는 내렸고, 윤 기자는 그 모습을 보고 홍주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야, 빨리 내려.”

 윤 기자는 재빠르게 뛰어가 남자가 대문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남자를 불렀다.

 “저기요. 잠시만요.”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지만 그걸 뛰었다고 숨을 헐떡이는 윤 기자를 남자는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이고, 숨차다. 잠시 뭐 좀 여쭤보려고요.”

 남자는 여전히 매서운 눈초리로 윤 기자를 쳐다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주차를 하고 뒤따라 온 홍주가 도착했다.

 “야, 사진 줘 봐.”

 윤 기자의 얘기에 홍주는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사진 한 장을 클릭한 후 건넸고 윤 기자는 그 사진을 남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그 사이 남자는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이 사람, 아시죠? 여기서 일했던 것 같던데.”

 남자가 본 전화기 속의 사진은 일우였고 사진을 본 남자의 표정은 더더욱 날카로워졌다.

 “모르는 사람인데요. 그런데 누구시죠?”

 남자의 날카로운 표정과 목소리에 움찔한 윤 기자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불을 붙인 후 말했다.

 “다 알고 왔는데 이러지 마시죠. 우리도 여기서 보낸 시간이 있는데. 사진들 보여드릴까? 여기 드나들었던 아줌마들 사진도 다량 확보했는데.”

 “당신들 누구냐니까?”

 남자가 미동도 없이 큰 소리로 윽박지르듯이 물었지만 윤 기자는 늘 있었던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아아, 화내지 마시고. 우린 기자요, 기자.”

 “기자?”

 “우리가 뭐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하나만 확인하면 갈 거니까 솔직히 얘기합시다. 이 사람 알죠?”

 윤 기자가 다시 전화기를 남자에게 들이댔지만 남자는 여전히 표정의 변화 없이 대답했다.

 “모르는 사람이라니까.”

 그 때 또 다른 남자 한 명이 손에 대포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공터로 걸어 들어오면서 남자를 불렀다.

 “윤 상무님. 이거 이 분들 카메란데 사진이 꽤나 많네요?”

 그 소리에 윤 기자와 홍주는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 보았고 윤 기자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홍주를 보며 말했다.

 “너, 차문 안 잠갔냐?”

 “아, 예. 그게 급하게 오느라…”

 윤 상무는 카메라를 넘겨 받고는 사진을 몇 장 확인 한 후 메모리를 포맷시켜 버린 후 아예 메모리를 빼낸 다음 윤 기자에게 카메라를 건넸다.

 “이거 부시지는 않을 테니까 조용히 돌아가쇼. 그리고 다시는 이 곳에 얼쩡거리지 마쇼.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면 그 땐 카메라도 당신도 온전한 상태가 아닐 테니까.”

 카메라를 넘겨 받은 윤 기자는 홍주를 째려보며 말했다.

 “이런 등신 같은 놈. 다 된 밥이었는데.”

 그리고는 앞장서서 공터를 빠져 나왔고 홍주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윤상무는 생각했다.

 ‘꼬일 때로 꼬였네. 소나기는 잠시 피해야겠지.’

 그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효진 누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아주 잘 나가시던데.”

 좀 전까지의 날카로운 표정과 말투는 온데간데 없이 밝은 표정이었다.

 “윤상무가 어쩐 일이야? 먼저 전화를 다 주고.”

 “누님, 요즘 제가 아주 괴롭습니다.”

 “괴로워? 왜? 세상 물정 모르는 아줌마들 돈이란 돈은 다 긁어 모으는 사람이.”

 “누님, 무슨 말씀을 또 그렇게. 그나저나 말근이 때문에 말이에요. 도진경 씨랑 열애 기사 난 놈.”

 “말근이가 왜?”

 “기자들이 여기까지 찾아오고 난리도 아니에요.”

 “허허. 거기까지 갔어? 그럼 윤상무 어떡해?”

 “어떡하긴요, 당분간 잠수 타야죠.”

 윤상무의 얘기에 효진은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말을 꺼냈다.

 “참, 사람이란 게 그래. 한치 앞을 알 수가 없으니 말이야. 내 마음이나 네 마음이나 뜻대로 되지도 않고. 그나저나 미안하게 됐어, 윤상무.”

 “미안하긴요. 다음에 또 놀러 오시면 되죠.”

 

 

 “개인적으로 난 반대 의견이야. 확실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그런 얘기 풀었다가 그 진원지가 너라는 걸 알면…안 봐도 끔찍하다, 얘.”

 미향의 사무실에서 진경은 자신의 열애설에 대해서 오지영과 얽힌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주고는 오지영과 박준서에 대한 얘기까지 더했다. 물론 일우를 호스트 바에서 만났다는 얘기는 빼고.

 그리고는 오지영을 이번 열애설을 퍼트린 범인이 확실하다며 오지영과 박준서의 얘기를 기자에게 털어 놓으면 어떻겠느냐고 상담하던 차였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내가 아닌 누구라도 똑 같은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을 걸.”

 미향의 의견을 들은 진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지으며 효진이 했던 얘기를 떠 올렸다.

 

 ‘내가 볼 땐 분명히 그년이야. 오지영인지 육지영인지 그년.’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해 볼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미향에게라도 털어 놓고 싶었던 것이었다.

 “지영이가 그런 앤 줄 예전엔 정말 몰랐었는데. 사람, 정말 모르겠다.”

 미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고는 책상 위에서 서류 뭉치 하나를 들고는 덧붙여 말했다.

 “그나저나 이거 고마워.”

 “그게 뭐야?”

 “네가 힘 써준 이번 계약서. 네 덕분에 모델비를 반 값에 할 수 있어서 돈 많이 아꼈어.”

 미향은 보석 브랜드 젬므의 한국과 아시아 모델을 진경에게 부탁했고 진경은 유도진 상무에게 얘기해서 반 값에 안 하면 다른 광고 모델도 모두 안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체결한 계약서였다.

 “뭘 그거 갖고. 그나저나 너네 회사 아시아에도 매장 내고 정말 대단하네. 언제 그렇게 큰 거야?”

 “몇 년 전부터 준비해왔어. 그래서 싱가폴, 방콕, 쿠알라룸푸르, 호치민에 이어 이번에 홍콩에도 매장을 여는 건데 아직 매장이 몇 개 안 돼. 그나마 다행인 건 백화점 내에 들어가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거지. 얼마 뒤에 오픈 할 뉴욕 매장은 단독매장이거든.”

 “뉴욕까지? 완전 세계로 뻗어나가는구나. 부럽다.”

 진경은 사업을 계속 확장하면서 젬므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어가는 미향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TV 화면 속에서나 보이는 자신과는 달리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비즈니스 우먼의 이미지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부럽기는, 이제 시작인데. 일본도 열어야 하는데 일본은 영 하기가 싫네. 그 노인네 때문에.”

 미향의 얘기에 진경은 예전이 그녀가 해준 야쿠자 노인네를 떠올렸다. 그 노인네가 미향에게는 아무래도 트라우마처럼 작용하면서 일본에 거부감을 갖게 한 듯 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네 덕분에 우리 브랜드가 더 크게 됐는데 정작 고마워 해야 할 사람은 나지.”

 미향은 아시아에 한창 고공비행 중인 한류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 진경을 모델로 하기 위해 부탁했던 것이다. 진경이 출연한 드라마가 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 대박을 터뜨리면서 그녀의 인지도와 이미지가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홍콩에 론칭 할 때 같이 가자. 가서 너 인터뷰도 하고 그러면 너도 좋으니까. 물론 모든 비용은 내가 낼게.”

 “얘는, 돈이 문제니. 네 말대로 가서 인터뷰도 하고 사인회도 하고 하면 나도 좋은 건데. 언제든지 얘기만 해.”

 두 사람은 마주보며 빙긋이 웃었다.

 “그나저나 너 그렇게 바빠서 어떡해? 네가 그렇게 자리 비우면 관리는 누가 하니? 특히 식당은.”

 “식당은 운영한지 오래 돼서 나 없어도 잘 굴러가. 직원들이 아니라 가족이니까. 참 그러고 보면 나도 험난하게 살았다.”

 미향은 얘기를 하며 긴 숨을 내쉬었다. 뜻하지 않은 가족사 때문에 야쿠자 노인네의 집으로 가던 날 어린 나이의 미향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밤새 울었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스스로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녀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다.

 야쿠자 노인네의 비위를 맞춰가며 사업을 하기 시작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최대한 냉정하고 정확하게 판단해서 모든 일을 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자신의 모습이 된 것이다.

 “널 보면 정말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 시작이야 계기가 어떻든 현재 네 모습은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비즈니스 우먼이니까.”

 “그렇게 얘기해주니 고마워.”

 미향은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운명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한탄하고 슬퍼할 시간에 그 운명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실행해온 것이다. 그래서 미향은 운명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개척해나가는 것이라는 신조를 갖게 되었다.

 운명에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시작은 미약할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노력의 결과물이 눈 앞에 나타난다는 믿음이었다.

 “어쩌면 지금 모습이 네가 원래 있어야 하는 자리였겠지. 누가 그러더라. 세상 모든 것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가장 아름답다고. 그래서 넌 지금 정말 좋아 보여.”

 진경은 진심으로 미향에게 축하의 마음을 담아 말했다.

 “참, 그나저나 일우는 어떻게 지낸다니? 다행히 네가 집이랑 이것저것 알아봐줘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궁금하긴 하다.”

 분위기도 전환할 겸 진경은 얼마 전 미향으로부터 들은 연락도 없이 떠난 일우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졌다.

 “글쎄, 나도 아직 그 뒤로는 연락 안 해 봤어. 우리 직원 말로는 밥 잘 먹고 시차 적응 잘 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모르지 뭐. 안 그래도 조만간 매장 오픈 때문에 뉴욕에 가야 되는데 뭐 갖다 줄 거 없어?”

 “뭐 딱히 그런 건 없고 안부나 전해 줘. 연락도 없이 가서 내가 엄청 삐쳐있다고.”

 진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진경은 문득 남궁시연 할머니가 해준 얘기들이 생각이 났다.

 

 ‘아가씨 때문에 쟤가 힘들어져’

 ‘사단이 났어도 벌써 크게 났어야 했는데 억지로 막고 있네’

 ‘큰 일이 난다는 얘기야. 아무튼 같이 힘들어지니까 만나지마’

 

 결과론적이지만 현재 자신과 일우에게 벌어진 일은 그 할머니가 얘기해 준 그대로였다. 자신 때문에 일우가 힘들어졌고 그래서 미국으로 도피하다시피 떠나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면 그날 일우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자 진경은 다시 한 번 그 할머니가 만나고 싶어졌다. 만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 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 노인네가 촌구석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단 얘기지?”

 “촌구석은 아니고. 언니도 알지만 개발이 안 돼서 그렇지 서울하고 가깝잖아.”

 “개발이 안 됐으면 그게 촌구석이지 뭐.”

 진경은 효진과 함께 직접 운전을 해서 남궁시연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처음에는 혼자갈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혼자 가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혹시 또 파파라치에게 찍혀 이상한 소문이 나돌 수도 있는데다 그냥 혼자 가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혼자 갔다가 그 할머니에게 더 안 좋은 얘기를 듣게 되면 혼자서 다시 운전해서 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기도 했다. 하지만 효진은 그 노인네를 내가 지금 만나서 뭐하냐며 귀찮다고 처음엔 안 가려고 했다. 그런 효진을 진경은 설득에 설득을 했고 효진은 결국 따라 나서기로 했다. 차가 가게 근처에 다다르자 진경은 차를 세웠고 내려서 효진과 함께 걸어갔다.

 그리고 가게에 다다르자 가게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에서 하드 두 개를 꺼냈다.

 “하드는 왜?”

 “몰라, 일우가 이렇게 하더라고. 자신은 항상 아이스크림을 사서 가게에 들어갔다나?”

 진경은 일우가 했던 것과 같은 행동을 하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서서 남궁시연을 찾았다. 그녀는 여전히 TV를 보고 있었고 사람이 들어오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할머니, 여기 아이스크림 값이요.”

 진경은 돈을 꺼내 매대 위에 올려 두며 말했다. 그런 진경의 목소리에 남궁시연은 슬쩍 고개를 돌려 진경을 한 번 봤다가 진경 뒤에서 가게를 이러 저리 둘러보고 있는 효진을 보고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그 어떤 얘기도 없었다.

 “저, 할머니.”

 남궁시연이 아무 말이 없자 진경이 조용히 그녀를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진경은 다시 한 번 불러보려고 심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 남궁시연이 시선은 TV에 그대로 둔 채 갑자기 말했다.

 “큰 사단이 나긴 났나 보네. 여길 다시 온 걸 보니.”

 그녀의 얘기에 진경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고 효진은 무슨 얘긴가 싶어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잊을 사람은 빨리 잊어야지. 만나게 되어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만나게 되지만 잊어야 하는 사람은 잊는 게 상책이야. 주변에 잘 찾아 봐. 주변에 사람이 있으니까.”

 “네?”

 이어지는 남궁시연의 뜬금없는 얘기에 진경은 무슨 말인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할머니, 그럼 얘 주변에 인연 있는 남자가 있다는 얘기에요?”

 그 때 효진이 불쑥 끼어들어 물었지만 남궁시연은 얘기가 없었다.

 “아니, 할머니. 사람이 물어보면 좀 얘기를 하라고요. 아까부터 보니까 대체 왜 그런데요?”

 효진이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지만 남궁시연은 미동도 없었고 오히려 진경이 효진을 말리듯 팔을 잡아 끌었다.

 “알겠습니다, 할머니. 혹시 다른 하실 말씀은 없고요?”

 진경의 질문에 남궁시연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같이 온 그 아가씨는 평생 혼자 살 팔자구만.”

 “뭐야? 이 할망구가 진짜!”

 효진이 화가 나서 진경을 뿌리치고 남궁시연에게 달려가려는 걸 진경이 가까스로 붙잡고 있었다.

 “아가씨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남자 만나. 그래야 잘 살아.”

 “아이고, 할망구. 내 나이가 조금 있으면 마흔인데 그럼 50살이라도 되는 남자를 만나라는 거야?”

 남궁시연의 이어진 얘기를 들은 효진은 화가 나서 따지듯이 물었다.

 “그것보다 더 많아야 돼. 안 그러면 계속 헤어질 거야.”

 “뭐야? 진짜 이 노인네가…”

 “언니, 왜 그래…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짜증이 머리 끝까지 난 효진의 팔을 붙잡고 가게 밖으로 끌어내며 진경이 인사를 했다.

 “아, 뭐 저런 노인네가 다 있어. 쉰 살보다 더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나라니, 그럼 나보고 아버지 뻘을 만나라는 거야, 뭐야? 곧 노인정 가서 고 스톱이나 칠 노인네를?”

 효진은 화가 안 풀렸는지 차 있는 데까지 와서도 투덜거렸다. 그런 효진의 불평을 들은 진경은 자기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야, 이게 웃기냐? 난 엄청 진지하다고.”

 “아, 미안. 웃긴 건 아니고. 얼른 차에 타. 이제 가자.”

 진경은 손사래를 치며 차 문을 열고는 먼저 차에 올랐다. 그리고는 남궁시연이 한 말을 떠 올렸다.

 

 ‘주변에 잘 찾아 봐. 주변에 사람이 있으니까’

 

 주변에 누구를 말하는 걸까? 유도진 이사? 그 사람은 애까지 있는 유부남인데. 혹시 홍구 오빠? 홍구 오빠도 여자 친구가 있으니까 아니고. 거기다 말 그대로 최고의 매니저 이상은 아니니까. 그럼 누구지? 진경은 운전을 하면서 자신 주변에 있는 남자들을 하나씩 떠 올려봤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운전하면서? 운전에 집중 해야지.”

 효진은 아직도 화가 덜 풀린 듯 뾰루퉁하게 말했다.

 “넵, 알겠습니다. 언니, 내가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이태원이나 갔다 가자. 여기까지 같이 와 준 거에 대한 보답이랄까?”

 “오, 그래? 그렇다면 당연히 가야지.”

 맛있는 음식 이라는 얘기에 효진은 한 순간에 짜증이 누그러진 듯했다. 그렇게 진경은 차를 이태원으로 몰면서 계속 주변 남자를 떠 올리면서 한 명씩 제외하다가 어떤 남자가 떠 오르자 생각이 멈춰졌다.

 

 ‘설마…?’

 

 - 다은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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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19. 그 남자의 시선 (10) 10/16 338 0
18 # 18. 그 여자의 시선 (9) 10/14 348 0
17 # 17. 그 남자의 시선 (9) 10/14 314 0
16 # 16. 그 여자의 시선 (8) 10/13 340 0
15 # 15. 그 남자의 시선 (8) 10/13 327 0
14 # 14. 그 여자의 시선 (7) 10/12 349 0
13 # 13. 그 남자의 시선 (7) 10/12 357 0
12 # 12. 그 여자의 시선 (6) 10/9 304 0
11 # 11. 그 남자의 시선 (6) 10/9 326 0
10 # 10. 그 여자의 시선 (5) 10/8 322 0
9 # 9. 그 남자의 시선 (5) 10/8 335 0
8 # 8. 그 여자의 시선 (4) 10/6 293 0
7 # 7. 그 남자의 시선 (4) 10/6 306 0
6 # 6. 그 여자의 시선 (3) 10/5 314 0
5 # 5. 그 남자의 시선 (3) 10/5 298 0
4 # 4. 그 여자의 시선 (2) 10/3 324 0
3 # 3. 그 남자의 시선 (2) 10/3 3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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