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야기 구조입니다.
앞 부분에 조연처럼 등장했던 나왔던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 인물이 되는가 하면 인물과 인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엮어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입니다.
또한 앞 부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나중에 일어날 일의 복선이 되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짜임새 있게 엮었습니다.
또한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나누어서 진행되며 중간에 교차되기도 하는 구성을 통해 마치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극적 구성을 더하였습니다.
따라서 항상 회차별 제목을 꼭 확인해 주세요!!!!!
======================================================================================================
눈이 마주친 남자도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더니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일우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는 다시 머리를 깊이 묻고는 눈을 감았다. 제발 여기서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기를. 그 때였다.
“저, 혹시 그 때 신라 호텔 커피 숍에서…”
아까 눈이 마주친 남자, 그 때 커피 숍에서 도진경과 함께 있었던 남자가 자기 자리로 갔다가 다시 일우의 옆으로 와서는 말을 걸었다. 일우는 깜짝 놀라 눈을 뜨고는 무슨 일이냐는 듯 물었다.
“네? 실례지만 누구…?”
짐짓 모른 척했다. 괜히 아는 척 하면 피곤해질 것 같아서였다.
“그쵸? 맞죠? 전 그 때 도진경 씨랑 같이 있었고 그 쪽은 오지영 아나운서랑 같이 있었는데. 아마 직접 인사하지 못해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남자는 자신의 추측이 맞아서 기쁘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말했다.
“아, 네. 제가 잘…기억이…”
“괜찮아요. 그나저나 뉴욕 가세요?”
“아, 예. 뉴욕 행 비행기니까 당연히 뉴욕으로…”
일우는 계속 말을 얼버무렸다. 조심스러워서였다.
“뉴욕엔 어쩐 일로 가세요?”
지운의 질문이 계속 이어지자 일우는 조금 귀찮아져서 한 마디 하려는데 지운이 말을 이었다.
“그러지 말고 제가 옆자리로 올게요. 마침 이 자리가 비었네.”
그러더니 지운은 스튜어디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듯 하더니 얼마 되지 않는 짐을 들고는 일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긴 시간을 가야 하는데 이렇게 말동무가 생겨서 좋네요.”
말동무라니, 누가? 난 지금 쉬고 싶을 뿐인데, 라는 생각과 함께 이 남자 조금은 뻔뻔한 사람이네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일우는 지운을 바라보았다.
“뉴욕은 어쩐 일로 가세요?”
일우의 옆 자리에 앉자마자 지운은 아까 물었던 질문을 다시 했다. 일우는 딱히 할 말이 없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아무 이유나 대기로 했다.
“어학 연수 하러요. 아는 형도 거기 있고 해서.”
“어학 연수라. 그럼 학생?”
“네.”
“아, 전 그날 오지영 씨랑 있길래 방송국 관계잔 줄 알았더니 학생이군요.”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지운의 얘기를 듣고는 이번엔 일우가 지운에게 어쩐 일로 가는지 물어 보려는데 지운이 알아서 먼저 대답했다.
“전, 휴가에요. 얼마 전 큰 프로젝트도 끝났고 매출도 좀 많이 만들어서 회사에서 특별 휴가를 줬거든요.”
프로젝트? 매출? 거기에 특별 휴가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최근에 도진경 씨 모델로 나온 의류 광고 봤죠? 그거 제가 기획한 거거든요.”
“아, 그럼 광고 회사 다니세요?”
일우는 자기도 모르게 지운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네. 사실 못할 짓이긴 하지만.”
“근데 광고 회사 연봉이 높은가 봐요. 비즈니스 석을 타고 가시는 걸 보면.”
일우는 궁금한 걸 물었다.
“아, 이건 예전부터 여행이나 출장 다니면서 모으고 모은 마일리지로 가는 거에요. 그러는 그 쪽은 학생인데 어떻게 비즈니스 석을?”
지운의 대답에 일우는 순간 당황했다. 어쩌면 이 비즈니스 석을 타기 위한 모든 과정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러면 얘기가 길어질 뿐 아니라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 말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는 분이 마일리지가 많다고 해서 그걸로 해서 가는 거에요.”
“오, 그럼 우린 마일리지 친구군요. 참, 그나저나 이름이 어떻게 되요? 이름도 안 물어 봤네.”
“전 서일우라고 합니다.”
“전 오지운이에요.”
“참, 그나저나 그 날 도진경 씨와는 어쩐 일로 커피 숖에서 만나신 거에요?”
일우는 불현듯 왜 그가 도진경과 함께 호텔 커피숍에 있었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아, 그게…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일우의 질문을 받은 지운은 잠시 뜸을 들였고 일우는 그런 지운의 대답을 차분히 기다렸다.
“뭐 굳이 거짓말 할 건 없으니까. 엄마가 하도 만나보라고 성화를 해서요. 어디서 선이 들어왔다고. 그런데 제가 그런 자리를 워낙 싫어해서 처음에는 안 만나려고 했어요.”
이 사람 뭐지? 아까 얘기로는 평범한 회사원 같았는데 누군가를 통해 도진경과 선을 볼 정도라면 보통 집안 사람은 아닐 텐데. 일우는 오지운이라는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만나보니 도진경 씨는 다른 여자 연예인들이랑은 다르더라고요. 착하고 순수해요. 아니, 순박하다고 해야 하나. 자신을 잘 숨기지 못하고 쓸데없는 허례허식이나 겉멋이 없어서 좋았어요. 물론 광고 모델 건으로 만남이 끝나긴 했지만.”
다른 연자 연예인? 그렇다면 연예인들과 선을 자주 봤다는 얘긴데 그럼 평범한 회사원은 아닌 것 같은데?
“실례지만 광고 기획 일을 하면 연예인들과 선을 자주 보나 봐요?”
일우는 직접적으로 물어보기가 뭐해서 빙 돌려가며 물었다. 정확하게는 어떤 집안 사람이길래 그렇게 연예인들과 선을 자주 보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 그게.”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었는지 지운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가 생각을 정리했는지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그렇게 됐어요. 엄마가 치마바람이 워낙 세서요.”
지운의 대답을 들은 일우는 원했던 답이 아니라 왜인지 모르게 실망스러웠지만 굳이 더 캐묻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이 말하고 싶지 않은 걸 굳이 더 캐물어서 좋을 건 없으니까.
“그래도 도진경 씨한테는 호감이 있나 봐요.”
“그렇게 느껴져요?”
“얘기하시는 게 그런 느낌이네요.”
“혹시 도진경 씨 열애설 상대라서 신경 쓰이는 건 아니죠?”
지운의 기습적인 질문에 일우는 아무 말 못하고 그저 멍하니 지운을 바라볼 뿐이었다. 뭐야, 이 사람. 다 알고 있었으면서 지금까지 날 놀린 거야?
일우는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피곤해서 혼자 있고 싶었는데 갑자기 나타나 방해를 하더니 사람을 갖고 놀기까지 하다니. 그런 일우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지운이 손사래를 하며 말했다.
“아, 농담이에요. 농담. 일이 일인지라 연예계 뉴스도 시간 나는 대로 챙겨보는데 최근에 도진경 씨 열애설이 났잖아요. 근데 SNS를 타고 퍼진 사진에서 본 남자의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 거에요. 그래서 그냥 잊어버리자 했는데 아까 눈이 마주쳤을 때 바로 기억이 난 거에요. 그래서 반갑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아는 사람을 만나게 돼서 이렇게 옆 자리에서 수다를 떨고 있네요. 저랑은 어울리지 않게.”
지운의 얘기를 듣고 있는 일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난 일우씨와 진경 씨의 열애설, 안 믿어요.”
“왜요?”
일우는 지운이 열애설을 믿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남친이 있는데 선보러 나올 이유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그날 일우씨는 오지영 씨하고 있는 걸 제가 봤으니까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죠. 하지만 사람들은 눈으로 보여주지 많으면 믿고 싶은 걸 믿어 버린다니까요. 진실 따위하고는 상관없이.”
지운은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오지영씨하고는 어떤 사이에요? 평일 낮에 호텔 커피 숍까지 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아, 그게…”
일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솔직하게 얘기했다. 자신이 타고 있던 택시를 지영이 뒤에서 받아 접촉 사고를 냈고 나중에 연락을 해서는 사과의 의미로 좋은 곳에서 커피를 사주겠다고 하길래 따라갔다는. 거짓말을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오지영씨 착한 사람이네. 보통 그 정도 외모에 그런 직업 갖고 있으면 그 정도로 친절하진 않을 텐데. 그러고 보니 도진경씨랑 둘이 고등학교 동창이라는데 그 학교는 좋은 사람만 졸업시키나 봐요.”
일우의 얘기에 한참 동안 오지영에 대한 칭찬을 늘어 놓자 일우는 진경에게 들은 오지영의 실제 모습까지 얘기하려다 말았다. 안 그래도 본인 정신이 피곤한데 남의 뒷얘기까지 하면서 피곤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침 지운 역시 하품을 하며 시계를 보더니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너무 떠들었죠? 피곤한데 우리 눈 좀 붙일까요?”
그리고는 이내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리고는 눈을 감았다. 뭐야, 이 사람. 제멋대로네. 광고 기획자, 연예인과 여러 번의 맞선, 아무튼 보통 사람은 아닌 게 확실하다.
한 가지 더 확실한 게 있다면 이사람, 도진경에게 호감이 있다. 분명히. 일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운과의 대화 덕분인지 쫓기는듯한 긴장감은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내의 모든 불이 들어 오고 안내 방송으로 착륙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장의 얘기가 흘러 나왔다. 일우는 자연스럽게 눈을 떴고 옆에서 크게 기지개를 켜는 지운을 보았다. 세상 걱정 없는 사람 같았다.
“벌써 도착인가. 시간 빨리 가네.”
지운은 시계를 보더니 혼자 중얼거리고는 일우를 보며 물었다.
“잘 잤어요?”
일우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이내 질문을 하나 했다.
“휴가 온 거면 뉴욕에 있는 동안 뭐 하실 거에요?”
“갤러리나 돌아다니려고요. 이른바 갤러리 투어랄까? 미술에는 영 관심이 없었는데 일 때문에라도 좀 돌아다녀 봐야겠어요.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는 꽤 돌아다녔는데 뉴욕 갤러리들은 처음이라.”
지운을 대답을 하더니 작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하나 꺼내더니 일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로밍 해왔으니까. 심심하면 연락해요. 같이 밥이나 먹게. 이것도 인연인데 뉴욕에서 같이 밥 먹으면 더 기억에 남지 않겠어요?”
명함이었다. 일우는 그 명함을 받아서는 잠시 살펴 보더니 자신의 가방에 넣고는 대답했다.
“네. 상황 봐서 연락 드릴게요.”
잠시 후 비행기는 뉴욕 JFK 공항에 착륙했고 두 사람은 긴 비행을 마치고 뉴욕에 발을 디뎠다. 일우는 짐이 많아 위탁으로 보낸 수하물을 찾아야 했고 지운은 작은 캐리어 하나만 갖고 온 덕분에 바로 입국을 할 수 있어서 두 사람은 입국 심사 후 악수를 나누고는 헤어졌다.
일우는 빙빙 도는 컨테이너 벨트에서 자신의 짐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찾아서는 카트에 싣고 입국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 때 한 쪽 끝에서 손을 크게 흔들며 반갑게 웃고 있는 용희가 보였다.
“어서 와. 고생했지?”
“고생은요 뭘. 그나저나 형이야 말로 나오지 말라니까 뭐 하러 나왔어요.”
“너 같은 촌놈이 뉴욕까지 왔는데 국제 미아 될까 봐 나왔다. 그래도 몇 달이나마 먼저 경험한 내가 더 낫지 않겠냐?”
용희가 일우의 카트를 받아 대신 밀며 말했다.
“주소 좀 줘 봐. 어딘지 찾아 보게.”
일우는 미향에게서 받은 주소를 적은 쪽지를 주머니에서 꺼내 용희에게 건넸고 용희는 스마트 폰에 주소를 입력하고는 이리저리 확인하고는 한 마디 했다.
“그리 멀진 않네. 슈퍼 셔틀 타고 가면 되겠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가더니 표를 끊어와서는 일우를 끌고 다시 어디론가 향하자 한국에서 연예인 차로 많이 보던 차가 서 있었다.
“타자.”
용희의 한 마디에 일우는 카트에서 짐을 내린 후 카트를 지정 장소까지 갖다 두고는 다시 와서 차에 올랐다.
“이게 무슨 시스템이래?”
궁금해 하던 일우가 물었다.
“그런 게 있어. 나중에 천천히 설명해 줄게. 그나저나 어쩌다 이렇게 갑자기 오게 된 거야?”
용희의 질문에 일우는 그 긴 얘기를 다시 하려니 잠시 눈 앞이 아찔했지만 숙소로 가는 동안 차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해 줬다. 다행인 것은 같은 차에 한국인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군. 그럼 어머니께도 연락 못 드리고 온 거야?”
“급하게 여행 간다고 문자는 드렸어요. 근데 걱정은 하시겠죠. 아무래도 먼 길을 가는데 얼굴도 못 뵈었으니.”
“그렇게. 짐 정리하면 일단 어머니께 전화부터 드려야겠네.”
“그래야죠.”
그렇게 얘기하는 사이 두 사람은 목적지에 도착했고 차에서 짐을 내려 집 앞에 도착했다.
“집 예쁜데.”
용희가 집을 보고 감탄하는 사이 일우가 벨을 누르려는데 벨 옆에 붙어 있는 메모를 하나 발견했다.
‘서일우 씨. 도착하시면 전화 주세요.’
“형, 나보고 전화 달라는데? 근데 이렇게 문 앞에 이런 메모를 붙여 놓고 있으면 ‘집에 아무도 없으니 도둑은 들어와서 훔쳐 가시오’라고 광고 하는 거랑 마찬가지 아니야?”
“너 왜 미국 집들에는 우리나라처럼 대문이 없는 줄 알아?”
“글쎄?”
“집에 총을 갖고 있어서야. 훔쳐가려고 들어갔다가 잘못하면 총 맞아 죽는 거지.”
용희는 오른손 엄지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동작을 하며 말했다.
“내가 전화해서 널 바꿔줄게.”
용희는 메모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해서는 일우를 바꿔줬고 일우는 상대방과 통화를 간단히 하고는 다시 전화기를 용희에게 건넸다.
“뭐래?”
“짐을 집 안에 들여 놓고는 식탁에 있는 메모지에 적힌 주소로 찾아 오라는데.”
“열쇠는?”
용희의 질문을 받은 일우는 화단의 한 쪽 구석으로 가더니 웅크리고 뒤적거리다가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 좋네.”
용희가 집 안을 둘러 보는 사이 일우는 식탁 위의 메모지를 살펴 보더니 용희를 불렀다.
“형, 여기 알아?”
메모지를 받아 든 용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유명한 동네지. 가자, 내가 데려다 줄게. 그나저나 밥은 먹었냐?”
“아니. 일단 이 사람하고 인사부터 한 다음에 뭘 먹던지 하려고.”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나서 메모지에 적힌 주소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지하철을 나와 목적지로 이동하는 동안 보여진 생경한 풍경에 일우는 한 마디 했다.
“내가 미국에 와 있긴 한 모양이네. 여길 봐도 코쟁이, 저길 봐도 코쟁이. 전부 코쟁이야.”
“풋. 야, 누가 들으면 네 나이가 환갑은 넘은 줄 알겠다. 단어 선택이 왜 그 모양이냐?”
일우의 얘기를 들은 용희가 손으로 툭치며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마무리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가게 앞에 섰다. 간판에는 영어로 ‘젬므’라고 적혀 있었다.
“실례지만 우인아씨 찾는데요.”
그나마 영어를 할 수 있는 용희가 일우 대신 공사 인부 중 한 명에게 말을 걸었고 그 인부는 턱으로 안 쪽을 가리켰다. 그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한 미국 남자와 도면 같은 것을 놓고 의논하고 있는 늘씬하고 큰 키의 동양 여성이 보였다. 일우와 용희는 그 곳으로 가서 말을 걸었다.
“저…우인아씨?”
그 때 얘기를 나누던 동양 여자가 대화를 멈추고는 누구냐는 듯 쳐다보았다.
“서일우라고 하는데요. 오늘 도착 하기로 한.”
“아, 그렇군요. 반가워요.”
우인아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일우는 얼떨결에 그 손을 잡아 악수를 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인아는 대화를 하던 사람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는 두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이라 내부는 시끄럽고 정신이 없어서요. 저쪽 카페에 가서 얘기하시죠.”
인아가 먼지를 털 듯 손에 든 장갑으로 옷의 여기저기를 털면서 말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카페로 이동해 마주 앉아 얘기를 시작했다. 주로 집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규칙과 주변의 기반 시설 등에 대한 인아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번 매장 오픈으로 파견되어 온 직원이며 매장 관리 현지인이 뽑히면 6개월 정도 함께 일하다가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장님하고는 어떤 관계세요?”
얘기의 끝에 인아가 일우에게 물었다.
“사장님요? 누구…?”
일우는 갑자기 누굴 얘기하는지 몰라 되물었다.
“당연히 김미향 사장님이죠.”
“아, 그냥 아는 누나에요.”
일우는 자세한 설명을 하기 싫어 대충 얼버무렸다.
“그래요? 무슨 그냥 아는 누나가 그렇게 잘 좀 신경 써달라고 신신당부를 그렇게 하셨을까?”
인아는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혹시 한국에서 남자 친구가 오신다든가 하면 알려주세요. 며칠 동안 이 형 집에서 지내면 되거든요.”
일우는 대화 주제를 전환 하려고 옆에 앉은 용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전 일우 대학 선배 정용희라고 합니다.”
“아, 그렇시군요.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어쩌죠?”
인아의 갑작스런 질문에 두 사람은 무슨 일인가 싶어 아무 말 없이 인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제가 남자 친구가 없어서 그럴 일은 없겠네요. 애석하게도. 참, 그리고 사장님이 다음 주에 오실 거에요. 현지 매니저 최종 면접이 있거든요.”
그렇게 세 사람은 이런 저런 대화를 잠시 나눈 뒤 헤어졌고 일우와 용희는 지하철로 향했다.
“야, 나 저 아가씨랑 연결 좀 해줘. 저런 미인이 이런 곳에 있었네.”
“연결은 무슨. 형이 능력껏 해야지. 이미 인사까지 했는데.”
용희가 능청스레 일우에게 인아 얘기를 하자 일우도 능청스레 맞받아쳤다.
“그래도 네가 같이 저녁 먹는 자리도 마련 해주고 그럼 좋지 않겠냐?”
“알았어요. 어떻게든 도와 드리리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장난을 치며 뉴욕 시내를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한 주 뒤. 아침에 인아가 출근하면서 오늘 사장님이 오시는 날이라며 매장으로 바로 오실 거라고 얘기하고는 출근했다. 일우는 용희를 만나 대학교 부설 어학원 등록을 하고 바로 매장으로 가려는 계획을 하고는 집을 나섰다.
용희가 도와준 덕분인지 원래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어학원 등록은 일사천리로 끝났고 함께 점심을 먹은 뒤 헤어져 일우는 매장으로 향했다. 매장은 여전히 마무리 공사 중이라 어수선했지만 그래도 1주일 전보단 훨씬 정돈 돼 보였고 며칠 후면 공사가 마무리 될 듯 했다. 그리고 그 공사 현장 사이로 미향이 인아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일우는 눈에 들어 왔다. 무슨 얘기를 먼저 해야 하나 싶어 일우는 일단 담배를 한 가치 피면서 생각하고 있는데 미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뭐해? 왔으면 들어 오지.”
그 목소리에 돌아보니 미향의 검은 눈동자가 담긴 큰 두 눈이 자신을 살갑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 예. 오셨어요.”
일우는 얼른 담배를 끄고는 인사를 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인아랑 같이 점심 먹자.”
미향은 말을 남기고는 매장 안으로 다시 들어 갔고 일우는 새 담배를 하나 꺼내 다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세 사람은 식당으로 이동했다.
“앞으로 어떻게 지낼 생각이야?”
주문을 마치자마자 미향이 일우에게 물었다.
“글쎄요. 휴학까지 하고 온 김에 어학연수나 제대로 해볼까 해요. 영어 하나라도 잘 하면 취업하는데 경쟁력은 생기니까.”
“그래?”
일우의 대답을 들은 미향은 인아를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일우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매장에서 알바라도 하면 어때? 정확히 얘기하면 알바보다는 인턴이지. 물론 어느 정도 영어가 되는 시점부터겠지만. 일단 허우대도 멀쩡하고 인상도 좋아서 괜찮을 것 같은데. 생활비 번다고 생각하고.”
미향의 뜬금없는 제안에 일우는 어리둥절해 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 봤다.
“그래요, 일우 씨. 어차피 이 곳에 있을 거면 인턴이라도 사회 생활 해보는 게 경력에 좋지 않겠어요?”
인아도 옆에서 미향을 거들었다. 하지만 일우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만 했다. 그 때, 로밍해 온 일우의 전화기가 짧게 울렸다.
[오빠, 혹시 지금 뉴욕에 있는 카페에 있어요?]
준희로부터 온 문자메시지였다. 그런데 준희가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는 거지? 일우는 또 한번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준희에게는 뉴욕에 온다고 한 적이 없는데.
“왜 그래? 누구야?”
당황스러워하는 일우를 보며 미향이 물었지만 일우는 대답은 하지 않고 준희에게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뉴욕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리고 잠시 후 준희로부터 답장이 왔다.
[지금 보고 있으니까요]
- 다은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