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야기 구조입니다.
앞 부분에 조연처럼 등장했던 나왔던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 인물이 되는가 하면 인물과 인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엮어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입니다.
또한 앞 부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나중에 일어날 일의 복선이 되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짜임새 있게 엮었습니다.
또한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나누어서 진행되며 중간에 교차되기도 하는 구성을 통해 마치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극적 구성을 더하였습니다.
따라서 항상 회차별 제목을 꼭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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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건 진희 거.”
“와, 언니. 이게 뭐에요?”
공항에서 기다리던 홍구와 진희를 만난 진경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진희에게 커다란 쇼핑백을 건넸다.
“한 번 풀어 봐.”
“언니! 이거 진짜 제 거에요?”
쇼핑백을 열어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진희가 신나서 진경에게 물었다.
“그럼. 네 거니까 너한테 줬지.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진짜 이렇게 비싼 명품 백을 저 주려고 산 거에요? 언니, 너무 고마워요!”
진희는 가방을 이리저리 둘러 보다 품에 꼭 안으며 진경에게 고마움의 표현을 했다.
“그리고 이건 홍구 오빠 거.”
진경은 홍구에게도 쇼핑 백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뭐야?”
“오빠도 풀어 봐.”
홍구가 진경이 건넨 쇼핑 백을 열어 보자 안에는 명품 로고가 박힌 지갑과 허리 띠 세트가 들어 있었다.
“뭘 이런 걸 사 왔어. 안 그래도 힘들었을 텐데. 같이 가주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힘들긴 뭘. 미향이 회사에서 일정이랑 숙소랑 에스코트랑 전부 알아봐 줘서 편하게 다녔어.”
“진짜, 언니. 광고주 분은 그냥 가셨어요?”
“응. 같이 가자고 해도 굳이 혼자 가겠다고 공항버스 타고 갔어. 걔가 그렇게 알뜰해.”
“그러네요. 그 분도 진짜 미인이던데.”
“나보다?”
진희가 미향을 칭찬하자 진경이 물었다.
“아니요. 당연히 언니보다는 아니죠.”
“장난이야, 장난. 그나저나 홍구 오빠, 나 광고회사 앞에 잠깐 세워 줘.”
진경이 웃으며 말하고는 홍구에게 지운의 회사 앞에 잠깐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거긴 왜?”
홍구는 운전을 하며 룸 미러로 진경을 보며 물었다.
“뭐 전달할 게 있어서 그래.”
“누구한테?”
“그 담당자 있잖아.”
“언니, 혹시 그 사람 선물도 샀어요? 혹시 그 사람이랑 진짜로 잘 해보려는 거에요, 이제?”
신이 난 진희가 진경에게 물었다.
“잘 해보는 건 아니고. 그냥 지난 번 촬영 때 워낙 신경 써줘서. 작은 보답이라고 할까?”
진경은 능청스레 진희의 질문을 받아넘겼다.
“오늘 귀국했는데 일단 쉬고 나중에 다시 연락하는 게 어때? 그 사람이 지금 사무실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런가?”
“그래요, 언니. 나중에 따로 만나서 조용히 얘기하면서 전달해야 확실하게 잡을 수 있죠.”
“잡긴 뭘 잡아?”
“그 남자요. 언니가 드디어 다시 연애를 하다니, 제가 다 좋네요.”
“연애 아니라니까.”
“네, 네. 알겠습니다요.”
이번엔 진희가 능청스레 진경의 얘기를 받았다.
“오빠 말이 맞네. 그럼 그냥 집으로 갑시다.”
그리고 며칠 후 진경은 지운에게 연락해서 지난 번 만났던 커피숍에서 다시 만났다.
“이게 뭐에요?”
진경은 테이블 위에 놓인 포장된 작은 상자를 보며 물었다.
“아, 이번 뉴욕 여행 갔다가 진경 씨 주려고 하나 샀어요. 촬영할 때 고생해주신 것도 있고 해서.”
지운은 겸연쩍은 듯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살짝 긁으며 말했다.
“저야 뭐, 돈 받고 하는 건데요. 그나저나 뉴욕 다녀 오셨어요?”
“네, 회사에서 휴가를 줘서 잠시 다녀왔어요. 갤러리 투어 좀 하고 왔습니다.”
“갤러리 투어?”
“아, 제가 미술하고 예술 쪽에 좀 문외한이라서요. 뉴욕은 갤러리가 많고 또 유명하다고 해서.”
진경은 잠시 뉴욕에 있을 일우를 떠 올렸다. 일우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적응은 잘 하고 있을까?
“그나저나 이거 뭐에요?”
“립스틱이에요. 거기 가서 물어보니 곧 유행할 색깔이라고 해서 하나 사 봤어요.”
진경은 테이블 위의 상자를 천천히 손에 들었다.
“풀어봐도 되요?”
“그럼요.”
지운의 대답에 진경은 천천히 포장지를 벗겨내고 제품의 상자를 열어 안에 들어 있는 립스틱을 꺼냈다.
“오, 케이스가 너무 예쁘네요.”
“요즘 뉴욕에서 뜨는 브랜드래요.”
지운은 여전히 쑥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고 그 사이 진경은 립스틱의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와, 색도 예쁘네요. 곧 유행할 색이라더니 정말 예뻐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정말 잘 쓸 게요.”
진경은 립스틱을 다시 종이 상자에 넣고는 테이블 위해 올려 두고는 지운을 쳐다보면서 남궁시연이 해준 말을 떠 올렸다.
‘주변에 잘 찾아 봐. 주변에 사람이 있으니까’
아무리 주변의 남자들을 다 떠올려 보고 한 명씩 목록에서 삭제해 봐도 남은 사람은 딱 한 사람, 오지운 뿐이었다. 그리고 그 동안 만나왔던 있는 집 집안의 자식들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과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진경도 호감을 갖고 있었던 터라 나쁠 게 없었다.
“그런데 지운씨는 왜 아직도 연애를 안 하세요? 쫓아다니는 여자가 많을 것 같은데.”
“글쎄요. 저보다 더 쫓아다니는 남자가 많을 것 같은 진경씨는 왜 연애를 안 하세요?”
진경의 질문에 지운을 질문으로 대답했다.
“저야 워낙 공개된 사람이다 보니 일반인들이 힘들어 할 거에요. 어쩔 수 없이 모든 게 노출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연예인들은 제가 별로 관심이 없어서요. 모두 지 잘난 줄만 알아서.”
말을 하면서 지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보고 진경은 순간 자신의 너무 강하게 말했나 싶어 사과했다.
“어머, 죄송해요. 제가 너무 세게 말했죠.”
“아, 아니에요. 저야 그 쪽 세계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나저나 지운씨는 왜 아직까지 연애를 안 하세요?”
“설마 한 번도 안 했겠어요? 하다가 헤어지고 뭐 그랬는데 최근 몇 년간은 일에 파묻혀 살다 보니 딱히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회사에서도 쫓아다니는 사람이 있긴 한데 잘 타일렀죠.”
“어머, 회사에서요?”
“예. 입사한지 1년 조금 넘은 친군데 다양한 방법으로 에둘러 표현하길래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서 잘 타일렀어요.”
“인기 많으시네요.”
“인기는요, 무슨. 아, 참 그나저나 뉴욕 갈 때 비행기 안에서 일우씨를 봤어요. 우연히 같은 비행기더라고요.”
“어머, 그래요? 좀 어떻든가요? 가기 전에 워낙 크게 시달리다 갑자기 떠나는 바람에.”
지운의 입에서 뜻밖에 일우의 얘기가 나오자 진경은 자신도 모르게 빠르게 감정이 변하며 급하게 물었다.
“아무래도 열애설 상대라 신경이 많이 쓰이시나 봐요. 갑자기 그렇게 표정까지 변하면서 물어보시는 걸 보니.”
“아, 제가요? 그건 아니고…그냥 아는 동생이다 보니 좀 불쌍하기도 해서요.”
지운의 얘기를 들은 진경은 짐짓 자세를 다시 고쳐 앉으며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애썼다.
“많이 지쳐 보이기는 했는데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뉴욕에 있는 동안 밥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명함을 줬는데 연락을 안 해서 그 이후로는 못 봤고요.”
“아, 네.”
비행기에서 보고 뉴욕에서는 못 봤다는 말에 진경은 애써 실망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나저나 그 때 일우씨 얘기 들어보니 그 때 여기서 만났던 친구 분 있잖아요, 오지영씨라고 아나운서 분. 그 분 괜찮은 분이던데요?”
“네, 그게 무슨…”
지운은 일우에게 들었던 오지영과 서일우의 만남 스토리를 전해주면서 농담으로 말했다.
“그 학교는 외모도 성격도 좋은 사람들만 다니는 학교인가 봐요.”
지운의 얘기를 들은 진경은 어이없고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혹시 일우가 그 뒤에 다른 얘기는 안 하던가요?”
“다른 얘기요? 글쎄요? 별 거 없었는데.”
지운은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다른 얘기가 기억이 나질 않아 있는 그대로 말했고 그 얘기를 들은 진경은 순간 갈등에 빠졌다. 지영이의 대한 얘기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리고는 얘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에 굳이 얘기를 해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 참. 그나저나 저도 뭐 드릴 게 있는데요.”
진경은 가방에서 포장된 작은 상자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리고는 지운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에요? 설마 저한테 크리스마스 선물?”
“이번에 출장이랄까, 아무튼 사인회 투어 갔다가 오는 길에 작은 거 하나 샀어요.”
“진짜, 이번 투어는 어땠어요? 사람이 엄청 많이 몰렸다던데.”
“다행히 대 성공이었어요. 친구 회사에서 경비를 모두 내서 가는 거라 사람이 안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이 와서 즐겁게 질하고 왔어요. 간 김에 친구랑 즐거운 시간도 보냈고요.”
“다행이네요. 그럼 엄청 피곤하겠어요.”
“아직까진 젊어서 괜찮아요.”
진경은 농담을 하며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선물을 지운 쪽으로 슬쩍 밀었다.
“풀어봐도 되요?”
“그럼요.”
진경이 준 선물을 풀자 향수가 들어 있었다.
“갑자기 웬 향수를…”
지운이 향수와 진경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향수를 뿌려야 되요. 안 그러면 아저씨 냄새 난다고요. 보니까 향수 안 뿌리시는 것 같던데.”
진경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그렇다고 저한테 냄새 난다는 건 아니죠?”
지운도 농담을 건넨 후 말을 이었다.
“잘 쓸게요. 그나저나 어디 가서 저녁이나 드실래요? 갑자기 배가 고프네요.”
“그래요. 삼청동에 탤런트 하시던 분이 운영하는 식당 있는데 같이 가요.”
사무실의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려다 보고 있는 유도진은 벌써 30분째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여기까지 참 힘들게 왔는데, 그래서 이렇게 멋진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사무실을 구했는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복잡한 생각에 습관적으로 전자 담배를 입에 물고는 연기를 계속 뿜어 내지만 담배를 피우는 것 같은 개운한 맛은 나지 않는다.
‘김미향이 도진경 친구라…’
생각지 못한 난관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유도진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도진경에게 친구는 여러 명 있을 수 있으니 그 중의 한 명이라는 존재에 대해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미향은 달랐다. 그녀는 바로 자신의 돈줄인 야쿠자 노인네의 현지처다. 처음 연예 기획사를 시작하면서 준비했던 아이돌 가수가 생각처럼 뜨지 않자 유도진은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녔고 누군가가 돈 많은 일본 사람이 한국 연예계에 관심 있어 한다며 소개 해준 사람이 바로 야쿠자 노인네였다.
그리고 그 야쿠자 노인네를 만났을 때 유도진은 있는 뻥 없는 뻥을 다 쳐가며 자신감을 보였고 알면서도 속아줬는지 야쿠자 노인네는 유도진에게 거액을 투자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또 다른 아이돌 가수를 키워내 성공시켰고 돈이 돈을 낳는다고 연기 분야까지 확장하면서 도진경도 거액의 계약금으로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노인데 덕분에 자신의 소속사 가수들이 일본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미 일본 연예계 쪽에서 그가 발휘하는 영향력은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진경은 회사 매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 도진경이 김미향과 친구라니. 김미향은 예전 노인네와 몇 번 식사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
유도진은 지난 연말에 받은 야쿠자 노인네의 전화 내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가 한 얘기는 간단 명료했다.
‘김미향을 잘 감시하라.’
유도진과 노인네는 그가 경찰에 체포된 후 일본으로 송환되고 나서도 한국에 남아 있는 그의 똘마니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있었다. 아니 할 수 밖에 없었다.
시작부터 그의 돈으로 굴러가는 회사였기 때문에 그와의 관계를 단칼에 끊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의 돈이 아니어도 충분히 회사가 운영될 정도로 커졌지만 야쿠자에게, 특히 그 노인네에게 배신이란 상상할 수 없는 단어였다.
그래서 그 날, 도지경의 열애설이 터진 그 장소에 김미향이란 여자도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거였다. 그의 똘마니들 덕분에.
‘이것 참 복잡하게 됐네. 새해 벽두부터 느낌이 안 좋아.’
다시 한 번 전자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연기를 내뱉었다. 김미향이 인맥이 닿는 정∙관계 인사를 총동원해서 자신을 몰아내려는 낌새를 눈치챈 노인네는 유도진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김미향을 잘 감시하라고.
하지만 자신의 입장에서는 김미향을 잘 감시하고 말 것도 없었다. 비즈니스 분야도 다른 데다 자신의 일도 워낙 바빠서 누구를 감시하고 말고 할 틈이 없기 때문이었다. 당장 잠시 후에는 예능국 PD들과 저녁 약속이 있고 내일도 방송국 드라마 국장과 PD들과 약속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인네와의 관계를 단칼에 끊어 버릴 수는 없다. 야쿠자의 특성 상 아무리 추방되었다고 해도 위조 여권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어쩔 수 없지. 아예 만나서 담판을 지어야겠어.’
생각을 마무리 한 유도진 바로 전화기를 들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김미향이었다.
“여보세요?”
김미향이 전화를 받자 유도진은 아주 잠시 짧은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김미향 사장님이시죠? 유도진입니다. 한 번 뵀으면 하는데요.”
“제가 찾아 뵀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바쁘신데 오시라고 해서요.”
미향은 자신의 사무실에 찾아 온 유도진을 환한 웃음으로 맞이하며 악수를 했다.
“아닙니다. 누가 움직이면 어떻습니까.”
유도진 역시 웃으며 악수를 하고는 소파에 앉았다.
“출장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유도진이 미향에게 물었다.
“네 아시겠지만 홍콩 들렀다가 방콕하고 쿠알라룸푸르까지 짧지 않은 일정이었는데 진경이가 힘든 내색 없이 잘 해줘서요.”
“제가 다른 일이 있어 함께 가지 못했는데 반응이 엄청났다면서요.”
“진경이니까요. 게다가 연말이라는 특수성도 있었고요.”
미향이 웃으며 대답했다.
젬므 브랜드의 사인회 일정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대 성공이었다. 홍콩 매장은 오픈 당일 사인회를 열었는데 도진경을 보겠다고 물려 든 사람들 때문에 경찰이 동원됐을 정도였고 쿠알라룸푸르, 방콕에서는 백화점 같은 층의 다른 매장들이 영업 방해를 신고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당연히 방송국 카메라를 비롯한 언론들도 도진경의 사인회 취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사인회 후 각 방송사마다 도진경을 인터뷰하기 바빴다. 그 과정에서 젬므라는 브랜드의 인지도는 해당 국가에서 단숨에 급상승했으며 매출 역시 급상승했다. 사인회 이후에도 매장에 걸려 있는 도진경의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진경이가 부럽더라고요. 가는 곳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진경일 보기 위해 모이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 피곤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아껴준다는 것. 나에게 열정을 보내주고 사랑을 보내준다는 것. 전 부럽던데요.”
진경은 비즈니스 우먼인 미향을 부러워했지만 미향은 오히려 가는 곳마다 사랑을 받는 진경이 부러웠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사람이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 본 적 없이 혼자서 성장해 온 미향은 누군지 모를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받는 사랑이라도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사장님 덕분에 진경이 인기가 더 올라간 것 같아요. 아예 매년 투어를 해볼까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많은 팬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참, 그나저나 오늘은 어쩐 일로…?”
미향은 분위기를 바꿔 만남의 목적을 물었고 질문을 받은 유도진은 어떻게 얘기할까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 분의 연락이 왔습니다.”
“그 분이라면…?”
미향이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시잖습니까. 그 분.”
미향은 길게 한 숨을 내쉬더니 물었다.
“새해 초부터 달갑지 않은 소식이네요. 뭐라고 하던가요?”
“그 얘기를 제가 다 말씀 드릴 순 없고, 한 가지는 꼭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만.”
“그게 뭔가요?”
유도진은 바로 얘기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이며 미향의 분위기를 살폈다.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고 전혀 모르는 눈치기도 했다.
“조만간 오신답니다.”
“그렇군요. 야쿠자 이름 값은 하네요.”
“무슨 말씀이신지?”
“일본 사법당국으로 공식적으로 인계된 사람이 벌써 다시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다니, 이름 값 한다는 거에요.”
“그렇군요.”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침묵이 발끝에서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이었고 사무실의 공기가 굉장히 어색해졌다.
“와서 뭘 하시겠다는 건가요?”
“글쎄요, 그건 사장님께서 더 잘 아실 텐데요.”
미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노인네가 오는 이유는 뻔하다. 나와 회사, 둘 다 위험하다. 이제 막 그의 그늘에서 빠져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무너질 순 없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잘 알겠습니다. 말씀 전해주시러 여기까지 와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미형의 인사에 유도진도 목례로 답했다.
“그런데”
그 때 미향이 말을 이었다.
“이사님도 이제 그 노인네와 연을 끊는 게 좋지 않으시겠어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쉽지 않다는 거 사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그럼 전 이만.”
유도진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더니 이내 미향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아, 정말 힘들어지겠네. 대책이 필요한데. 대책이.’
유도진이 빠져나간 사무실에서 미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일우를 떠 올렸다. 지금 일우가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고 그 누군가로 일우가 떠 오른 것이다.
여태까지 모든 것을 혼자 준비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지내온 삶이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힘든 순간이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 시계를 보니 뉴욕은 새벽 1시쯤 된 시간이라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향은 전화기를 들어 일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다행히 자다 깬 목소리는 아니었다.
“일우 씨, 나야.”
“아, 사장님. 이 시간에 어쩐 일로. 한국은 낮 시간 아니에요?”
일우가 미향을 부르는 호칭은 어느 순간부터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지난 번 인턴 사원을 제안하고 나서부터 일우는 갑작스레 미향을 사장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직 인턴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응, 맞아. 근데 할말이 있어서 전화 했어.”
“할 말이요? 어떤…?”
미향은 잠시 입을 오물거리며 주저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혹시 지난 번에 내가 부탁을 하면 들어달라고 한 말 기억해?”
수화기 너머에선 바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도 지난 그 대화를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미향도 아무 말 없이 일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네. 그런데 혹시 그 부탁을 지금…”
“그래. 부탁이 있어.”
“어떤 건데요?”
미향은 점점 커지는 심장 소리를 느끼며 주저하다 힘을 내서 말했다.
“혹시 최대한 빨리 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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