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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이 온다!
작가 : 알케이
작품등록일 : 2019.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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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그 남자의 시선 (13)
작성일 : 19-10-19     조회 : 327     추천 : 0     분량 : 8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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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야기 구조입니다.

 앞 부분에 조연처럼 등장했던 나왔던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 인물이 되는가 하면 인물과 인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엮어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입니다.

 또한 앞 부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나중에 일어날 일의 복선이 되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짜임새 있게 엮었습니다.

 또한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나누어서 진행되며 중간에 교차되기도 하는 구성을 통해 마치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극적 구성을 더하였습니다.

 따라서 항상 회차별 제목을 꼭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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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우는 순간 고개를 들어 대로변 쪽으로 난 창문 너머에 준희가 손을 흔들고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준희의 옆에는 늘 붙어 다니던 단짝 연경이 있었다. 미향과 인아도 일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 준희를 보았다.

 “잠시만요.”

 일우는 미향과 인아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카페 밖으로 뛰쳐나가 준희를 만났다.

 “너 여기 어쩐 일이야? 뉴욕까지?”

 “오빠야 말로 휴학한 이유가 뉴욕에 오기 위해서였어요? 그럼 굳이 휴학까지 할 필요 없었을 텐데. 어차피 방학인데 잠시 있다 가면 되죠.”

 준희는 일우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자기가 궁금한 것을 되물었다.

 “그러니까 여기 어쩐 일이냐니까?”

 일우는 표정변화 없이 다시 물었다.

 “오빠는 하나도 반갑지 않은가 봐요? 난 이역만리 뉴욕 한 복판에서 오빠를 발견해서 굉장히 반가운데.”

 준희의 표정에는 금세 서운하다는 느낌으로 가득 찼다.

 “마지막 방학이라고 아빠가 보내주셨어요. 뭐, 그래도 내가 알바해서 번 돈에 보탠 거지만.”

 준희의 얘기를 들은 일우는 금새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서울에서부터 가졌던 긴장감 때문에 놀라서 당황했었나 보다, 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랬구나. 그나저나 정말, 형사님은 잘 계시지?”

 “그럼요. 뭐 범인 잡는다고 요즘도 바쁘게 돌아다니시지만.”

 “그런데 오빠, 저는 안 보여요?”

 준희의 옆에서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만 있던 연경이 뾰루퉁하게 물었다.

 “아, 미안, 미안. 그런데 어떻게 두 사람이 함께 왔어?”

 “저도 마찬가지에요. 마지막 방학에 뉴욕 한 번 구경하자며 준희가 꼬셨거든요. 얼마나 붙어 다니면서 징징거리는지. 알았다고 하고는 같이 와 버렸어요. 그 덕에 모아둔 알바비 다 날렸지만.”

 연경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들 주위로는 뉴욕 사람들이 바쁘게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오빠 괜찮아요? 또 저 분들은 누구에요?”

 준희가 일우의 안색을 살피고는 카페 앉아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미향과 인아를 보며 물었다.

 “응, 난 괜찮아. 여기 오니까 그래도 쫓아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네. 그리고 저 분들은…”

 일우는 미향과 인아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하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중간을 딱 잘라 얘기하려니 어느 부분을 얘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런데 문득 준희와 미향이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예전에 우리 엄마 병원에 입원했을 때 너 병원에 온 적 있잖아? 그 때 1층 카페에서 만났던 분 기억하니?”

 일우의 질문에 준희는 기억을 되짚어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기억 속을 더듬어봐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눈치를 보이자 일우가 좀 더 설명을 덧붙였다.

 “그 왜, 내가 사고 가해자이면서 후원자라고 했던. 하긴 만나자마자 바로 헤어져서 잘 기억이 안 날수도 있겠구나.”

 그 때 준희가 작게 소리쳤다.

 “아, 맞다. 기억나요. 굉장히 미인이시던 분.”

 “그래. 기억나서 다행이네. 그 분하고 여기서 우연히 만났어. 너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그리고 그 옆에 분은 같은 회사 직원이시고.”

 “아, 그렇구나.”

 준희와 연경은 카페 안을 들여다 보며 미향과 인아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서 인사하고 갈래?”

 “아니요, 괜찮아요. 괜히 방해될까 봐. 그나저나 오빠, 이것도 인연인데 밥이나 같이 먹어요.”

 “그럴까?”

 그렇게 세 사람은 저녁에 만날 약속을 정하고 헤어졌고 일우는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 왔다.

 “누구야?”

 자리에 앉자마자 미향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일우는 학교 후배들이며 준희에게 해줬던 것처럼 친절하게 그 중 한 명은 미향과 만난 적이 있다고 얘기해줬고 그들이 왜 지금 뉴욕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아, 그 때 그 친구!”

 준희와 달리 미향은 한 번에 준희를 기억해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시간 지나고 보니 다 때가 있더라고. 할 수 있을 때 안 하면 남는 건 후회뿐이고. 여행도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좋아. 그래서 저 친구 참 예뻐 보인다.”

 미향은 준희가 떠나간 창 밖을 내다 보며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고 그 모습을 본 인아는 일우를 보며 살짝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까 말씀 중인 건 생각해 볼게요. 아, 참. 인아씨. 혹시 금요일 뭐해요?”

 “네? 금요일요?”

 일우의 뜬금없는 질문을 받은 인아는 무슨 일이냐는 듯 물었다.

 “네. 금요일 저녁에 그 때 봤던 용희 형이랑 한 잔 하려는데 같이 하실래요?”

 일우의 질문에 인아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일우와 미향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시간하고 장소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그렇게 세 사람은 헤어졌고 일우는 집에 들어와서 잠시 쉬다가 준희와의 약속을 위해 다시 집을 나섰다.

 

 

 “오빠, 근데 그거 사실 아니죠?”

 “뭐가?”

 자리에 앉자마자 연경은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연경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준희는 팔꿈치로 연경을 툭툭쳤다. 하지만 연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

 “그 도진경이랑 열애설 난 거요.”

 준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진경 누나 얘기? 당연히 아니지?”

 “어머, 누나라고 불러요? 원래 아는 사이?”

 연경이 호기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준희도 처음 듣는 얘기라 관심이 생기는지 자세를 다시 잡았다.

 “응, 원래 아는 누나야. 그러니까 카페에서 차 한 잔 한 거지. 근데 그게 열애설이 돼 버렸네.”

 “그럼 그냥 아니라고 하면 되잖아요? 도진경은 아니라고 했는데.”

 연경의 계속되는 질문에 일우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하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대게 불편한 진실보다는 달콤한 거짓말을 믿기 마련이지. 진실이고 아니고는 상관없어. 그리고 일단 믿기 시작하면 그걸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돼. 자기가 믿는 게 거짓일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사람들한테는 달콤한 거짓말이 필요했던 거야. 사회가 워낙 뒤숭숭하니까 뭔가 가십거리가 필요했던 거지. 그런데 내가 거기다 아니다라고 얘기해 봐야 불편한 진실 밖에 안 돼. 나 같은 일반인이 하는 말은 믿기 싫은 변명이 될 뿐이지. 진경 누나 같은 탑 연예인에 하는 얘기와는 파괴력이 다르다고. 게다가 말이야.”

 일우는 한참 얘기하다가 잠시 뜸을 들였고 준희와 연경은 일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과감히 생략하고 지나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굳이 내가 아니라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만큼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이라는 생각되지 않았거든. 앞으로 남은 시간이 훨씬 더 많으니까.”

 “오-, 오빠 멋있는데요?”

 연경이 웃으며 양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고 준희는 일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휴학계를 내고 나올 때만 하더라도 그렇게 지쳐 보이더니 어느 새 많이 편해진 모양이네, 다행이다.

 “그나저나 뉴욕 여행은 어때?”

 “얘기 하도 징징거려서 같이 온 거긴 하지만 좋긴 좋네요. 태어나서 처음 온 거라 볼 것도 많고, 가 볼 곳도 많고.”

 “나도 들은 얘긴데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더 그럴 거야. 아마 다음 주부터는 야경도 엄청 볼만할 거라는데?”

 일우는 용희한테 들은 얘기를 전해줬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 금요일이 지나면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이기 때문에 용희 형이 인아씨랑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군, 이라는 생각에 옅은 웃음을 지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아무래도 이성과 함께 있는 게 더 좋을 테니까.

 “진짜 오빠는 크리스마스 때 뭐해요?”

 이번엔 준희가 물었다.

 “글쎄, 아마 영어 공부를 하지 않을까. 어차피 온 김에 어학 연수를 하려는 거니까. 잠깐, 그러면 어학원도 쉬려나? 한 번 확인해 봐야겠네.”

 “재미없게 영어 공부는. 그냥 우리랑 놀아요.”

 연경이 인상을 쓰며 일우에게 말했다.

 “너네 그 때까지 여기 있으려고? 그렇게나 오래?”

 “글쎄요. 오빠 하는 거 봐서.”

 연경이 농담으로 얘기를 마무리할 때쯤 주문한 식사가 나왔고 세 사람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식사를 마치고는 맥주 집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계속 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준희가 술에 취했는지 앉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얘, 술 많이 먹었나 보네.”

 “그러게요. 기집애. 평소에 술 센 척 하더니.”

 연경도 혀가 살짝 풀린 게 취한 듯 보였다.

 “시간도 늦었는데 너네도 얼른 숙소로 돌아가야지. 가자, 내가 데려다 줄게.”

 일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그리고 그 때 연경이 한 마디 했다.

 “오빠, 그거 알아요?”

 “뭘?”

 일우는 대수롭지 않은 듯 되물었다.

 “얘가요, 오빠 좋아하잖아요. 오빠가 갑자기 연락 끊어진 다음부터 걱정된다고 얼마나 징징거리던지. 얘가 누구 이렇게 좋아하는 거 처음 본다니까요.”

 연경의 얘기에 일우는 하던 동작을 멈추고 당황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은 채 여전히 고개와 상체를 기우뚱거리고 있는 준희를 보았다.

 “제가 사실 얘랑 뉴욕 온 거는 얘 혼자 보냈다가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온 거에요. 근데! 아까 오빨 우연히 만나고 나서 얘기 완전히 다른 사람 됐다니까요. 완전히 신났어요, 신났어.”

 그 때 일우는 불현듯 지완이와 용일이가 했던 얘기가 생각났다.

 

 [내가 추리하건 데 토마스는 너를 좋아한다]

 [너 몰랐냐? 난 그 날 처음보고 알았는데]

 

 일우는 갑자기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그 복잡한 일을 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또 다시 머리가 복잡해지다니 내 인생도 참 쉽지는 않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가자.”

 일우는 자신의 가방과 준희의 가방을 챙겨 들고 준희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엉겁결에 연경도 눈이 살짝 풀린 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한 마디 더했다.

 “아, 진짜라니까요.”

 “알았어, 알았어. 그러니까 일단 너네 숙소부터 가자.”

 일우는 힘들게 맥주 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는 두 사람의 숙소에 내렸다. 한인이 운영하는 민박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숙소로 안전하게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본 뒤에야 돌아서서 다시 택시를 타고는 집으로 향했다.

  뉴욕의 밤거리는 아름다웠고 거리에는 아직 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 이 곳에 온지 얼마 안 된 낯선 이방인인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는 운명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는 대부분 '당신은 나의 운명' 또는 '나는 당신의 운명'이라며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지만 그 운명은 오래 가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이별을 하게 된다.

 운명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별도 사랑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은 지극히 거짓말이다. 거부된 운명이 어떻게 사랑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일우는 운명이란 것을 믿지 않는다. 스스로의 의지의 결과라기보다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거스를 수 없어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느낌이 너무 싫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보다도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리고 일들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이 아니라고 판단 내려지는 것이 너무 싫기 때문이다. 그 때의 배신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참혹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 갔다. 미향은 현지 매니저 최종 면접을 보고 돌아갔고, 준희는 본의 아니게 속마음을 남긴 채 연경이와 한국으로 돌아갔고, 용희 형과 인아씨는 함께 저녁을 먹은 날 이후 자주 데이트를 하더니 연말 연시 시즌을 맞아 인아씨는 집에 들어오지 않기도 했었다.

 도진경은 미향과 함께 아시아 사인회 투어를 아주 성황리에 마쳤다고 했으며 지완이와 용일이는 그토록 고대하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새해 벽두부터 들려왔다. 일우는 단톡방에 친구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축하한다, 이 놈의 자식들. 드디어 해냈구나!]

 [고맙다! 그런데 너 언제쯤 오는 거냐?]

 [글쎄, 어학 연수 시작했으니 당분간은 가기 어렵지 않을까?]

 [시험도 합격했겠다 우리끼리 한 잔 하는데 네가 빠지니까 좀 심심하다. 대신 미향이 누나를 좀 불러야 될까 봐. ㅋㅋ]

 [그 분 엄청 바빠서 너네들이 아무리 불러도 못 나오실 거다.]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보는 거지. 우리가 그 도전정신으로 여기까지 온 거 아니겠음?]

 [알아서들 하시게. 아무튼 다시 한 번 합격 축하해!]

 

 어학원은 역시나 연말연시를 맞아 휴무에 들어가서 일우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그저 용희와 인아가 만날 때 이따금씩 같이 만나서 밥을 먹거나 술을 같이 한 잔 하는 정도 외에는. 그렇게 며칠을 보내던 어느 날 밤, 미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우 씨, 나야.”

 최근에 굉장히 바쁠 텐데 이 시간에 뉴욕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하다니 무슨 일일까? 일우는 궁금해졌다.

 “아, 사장님. 이 시간에 어쩐 일로. 한국은 낮 시간 아니에요?”

 “응, 맞아. 근데 할말이 있어서 전화 했어.”

 “할 말이요? 어떤…?”

 일우는 미향의 목소리에서 뭔가 미묘하게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혹시 지난 번에 내가 부탁을 하면 들어달라고 한 말 기억해?”

 미향의 질문이 무슨 얘기인가 하고 일우는 잠시 기억을 되짚어 봤다. 그러고 보니 한국을 떠나올 때 뉴욕 숙소와 뉴욕 행 비행기 표를 알아봐주면서 미향이 했던 말이 기억 났다. 자기가 도와주는 건 공짜가 아니라며 했던 말.

 

 ‘어떤 일로 부탁할지 모르지만 나중에 내가 부탁할 일 있으면 들어줘’

 

 “네. 혹시 그 부탁을 지금…”

 “그래. 부탁이 있어.”

 “어떤 건데요?”

 미향은 점점 커지는 심장 소리를 느끼며 주저하다 힘을 내서 말했다.

 “혹시 최대한 빨리 올 수 있어?”

 “네?”

 일우는 뜬금없는 미향의 얘기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운 거 알아. 하지만 지금 네가 필요해.”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그 얘기는 만나서 하고 최대한 빨리 와 줬으면 해. 그게 내 부탁이야.”

 일우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역만리에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도 급하게 돌아오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뭔가 중요한 일이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알겠어요. 최대한 빨리 비행기 표 알아볼게요.”

 일우는 통화를 마치자마자 바로 인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아마 용희 형이랑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거나 잠을 자느라 못 받는 듯싶었다. 그런데 잠시 후 인아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일우씨,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자다가 깬 목소리였다.

 “아, 인아씨. 다름 아니고 사장님이 저보고 급하게 좀 들어오라는데 비행기 표를 어떻게 알아봐야 하나 해서요.”

 “네? 사장님이 갑자기요? 왜요?”

 인아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고 용희 형의 ‘무슨 일이야?’라는 잠에서 덜 깬 목소리가 저 뒤에서 들려왔다.

 “이유는 말씀 안 해주셨어요. 와서 얘기하자시네요. 그런데 최대한 빨리 좀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데요.”

 “그래요? 갑자기 왜 그러시지? 한 번도 이런 적 없으셨는데…”

 인아는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제가 알아보고 다시 전화 드릴게요.”

 그렇게 말을 남기고 인아는 전화를 끊었다. 너무 늦은 시간에 귀찮게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미향이 급하게 부탁한 거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을 하며 인아의 전화를 기다린지 10분이 좀 넘었을 때 인아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혹시 한국에서 올 때 갖고 오신 비행기 표 있죠?”

 “네.”

 “그거 혹시 오픈으로 해 오셨어요?”

 “네? 오픈이 뭐에요?”

 일우는 처음 듣는 용어라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었다.

 “아, 혹시 귀국 일을 정해 놓으신 거냐고요.”

 “아니요. 귀국일 안 정했어요. 참, 사장님이 1년짜리라는 얘기는 했었는데.”

 “그래요? 그럼 내일 오전에 사무실에 나올 수 있어요?”

 “휴일인데 괜찮겠어요?”

 “제 랩탑이랑 필요한 것들이 다 사무실에 있어서요. 괜찮으시면 10시쯤 봬요.”

 “알겠습니다. 내일 사무실에서 뵐게요.”

 다음 날 일우는 사무실에서 인아를 만나 인터넷을 통해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구하고는 얼마 뒤 한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일우를 보며 힐끗 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불과 한 달여 만임에도 사람들에게 잊혀진 것이다.

 하지만 일우의 모든 신경은 그것 보다는 왜 미향이 갑자기, 그것도 급하게 자신을 보고 싶어 했을까에 쏠려 있었다.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는 어떤 상태인지 도저히 가늠할 길이 없었다.

 

 [저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말씀이 없으시네요. 근데 뭔가 굉장히 불안해 하시는 느낌이랄까?]

 

 비행기 표 확인을 위해 사무실에서 인아를 만났을 때 들려준 얘기였다. 불안해 하는 느낌이라. 무엇이 미향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일까, 라는 고민을 하다 설풋 잠이 들었던 일우는 어느새 인천 공항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을 듣고는 정신을 차렸다. 공항에 내려 입국 수속을 받은 일우는 입국장을 빠져 나오자마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미향을 발견했다.

 “이른 시간인데 어떻게 여기까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미향에게 물어 보는 순간 미향이 갑자기 일우를 와락 껴안는 바람에 놀라 일우는 하던 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리고는 당황스러워 어떻게 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고마워. 와줘서.”

 잠시 후 미향이 일우의 귀에 속삭이고는 껴안았던 몸을 풀었고 그 때 미향의 눈에 살짝 고여 있는 눈물을 일우는 놓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인 거에요?”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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