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야기 구조입니다.
앞 부분에 조연처럼 등장했던 나왔던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 인물이 되는가 하면 인물과 인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엮어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입니다.
또한 앞 부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나중에 일어날 일의 복선이 되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짜임새 있게 엮었습니다.
또한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나누어서 진행되며 중간에 교차되기도 하는 구성을 통해 마치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극적 구성을 더하였습니다.
따라서 항상 회차별 제목을 꼭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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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그래서 어떻게 됐어?”
소파 위에 널부러져 있는 효진에게 진경이 TV를 끄고는 물었다.
“어떻게 되긴. 밥 먹고 지운인가 하는 친구는 먼저 갔고 그리고는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졌지 뭐.”
효진은 소파에 누운 채 팔만 바닥으로 뻗어 리모컨을 집어 들어 TV를 다시 켰다.
“그게 다야?”
“그럼 소개팅이 다 그렇지 뭐 특별한 게 있을라고.”
“아니, 술이라도 한 잔 하고 뭐 그랬어야지.”
“일요일 대낮에 무슨 술이냐. 참, 그나저나.”
효진은 갑자기 일어나 앉더니 진경에게 물었다.
“넌 그 때 왜 그렇게 갑자기 간 거야? 무슨 방송 사고라도 났어?”
효진의 질문을 들은 진경은 살짝 당황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아니, 별 일 아니야. 미향이네 사무실에 일이 있어서 급하게 갔어. 내가 그 회사 모델이잖우.”
“그 회사는 일요일도 일한대? 뭐 그렇게 갑자기 사람을 부른다냐.”
“그럴 일이 있어.”
“오, 이제 나한테 비밀도 있다 이거지?”
효진은 뾰루퉁한 듯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비밀은 아니고. 언니 얘기나 더 듣자. 아무튼 그 사장 어때? 만날 만 하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외모야 그 정도면 연예인이 아니니까 그 나이치곤 괜찮고. 벌어 놓은 돈도 좀 있고, 대화도 곧잘 하던데. 그냥 한 번 눈 딱 감고 만나 봐.”
진경이 부추기듯이 말했다.
“그렇게 괜찮으면 네가 만나라.”
“언니, 삐쳤구나?”
“삐치긴. 아무리 내가 한 번 갔다 온 여자라지만 애프터를 먼저 신청할 순 없는 거 아니겠어? 남자가 해야지.”
“오올, 그러니까 마음에는 있다는 거네. 그럼 내가 지운씨한테 잘 얘기해 놓을게. 잘 돼서 언니 시집 갔으면 좋겠다.
“나도 나지만 넌 그 지운인가 하는 사람이랑 어떻게 되는 거냐? 뭐 발전 없어?”
효진은 탁자 위에 있던 과자 봉지를 뜯어 몇 개를 입에 넣고는 씹으며 진경에게 물었다.
“글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야.”
“고민? 무슨 고민? 그냥 진도 나가면 되는 거지.”
효진의 얘기에 진경은 두 발을 가슴 쪽으로 모으고 무릎에 턱을 괸 채 말을 이었다.
“그게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재벌 집 안이니까 내가 그 사람하고 연애를 하면 ‘여자 연예인은 어쩔 수 없어’라는 얘기 들을까 봐 그래. 아무래도 여배우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잖아?”
“참, 별 걱정 다 한다. 그럼 네가 그 사람하고 연애 안 하면 사람들이 잘했네, 라고 칭찬 해줄 거 같냐?”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효진의 얘기에 진경은 말 꼬리를 흐렸고 그런 진경을 보며 효진은 계속 말했다.
“어차피 사람들 마음은 네 마음대로 안 돼. 내 마음이나 네 마음이나 마음대로 안 된다니까.”
“하긴 그래.”
진경은 효진이 들고 있던 과자 봉지를 뺐어 과자를 입에 넣으며 골똘히 생각했다. 일우와의 열애설 때도 대중들의 반응도 그랬지만 사람들은 진실을 믿지 않고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믿는다. 어차피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뜻이다.
내 본심과 진심하고는 상관없이 자신들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그 생각은 곧 믿음이 된다. 그 때 진경의 전화기가 울렸다. 발신자를 보니 오지운이었다.
“그 사람도 양반은 못 되네.”
탁자 위에 놓인 진경의 전화기를 보고는 효진이 말했다.
“여보세요.”
“저 지운입니다.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한 건 아니죠?”
“아니요, 괜찮아요. 마침 효진 언니하고 있는데.”
“아, 그래요?”
“효진 언니는 사장님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래서 열심히 애프터 기다리는 것 같은데.”
진경은 효진을 보며 한 쪽 눈을 찡긋하고는 말했고 효진은 그런 진경에게 주먹 감자를 날렸다.
“아, 그래요? 저도 사장님한테 물어볼게요. 분위기로는 괜찮아 보이긴 했는데 빠른 시간 안에 연락 드리라고 하죠.”
“네. 참 그나저나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아, 진짜. 전화한 이유를 까먹고 있었네요. 다름 아니라 진경씨 모델로 한 광고 덕분에 매출 올랐다고 광고주가 보너스를 줬어요. 그리고 한 턱 쏜다네요. 그래서 시간 되시면 같이 가셨으면 해서요?”
“언젠데요?”
“가급적 진경씨 시간 맞춰야죠. 이번 주 중에 괜찮은 날 알려주세요. 물론 저녁 시간입니다.”
“잠시만요.”
지운의 얘기에 진경은 전화기를 가슴에 댄 채 지운에게 들리지 않게 효진에게 속삭이듯이 물었다.
“언니, 광고주랑 같이 저녁 먹자는데 갈까? 매출 잘 나와서 광고주가 쏜대.”
그러자 효진도 속삭이듯이 대답했다.
“당연히 가야지. 만날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만나.”
효진의 대답을 들은 진경은 다시 전화기를 귀에 대고는 ‘금요일 어떠세요?’라고 물었고 지운도 괜찮다며 광고주에게 확인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광고주라면 그 지운인가 하는 남자 아버지 회사 아니야?”
효진이 물었다.
“그렇지.”
“흠, 분위기가 묘한데.”
“뭐가?”
“그런 촉이 있어. 내가 촉이 좀 좋거든.”
“그러니까 무슨 촉이냐니까?”
“너만 비밀 있으란 법 있냐? 그건 비밀이야.”
효진은 진경이 들고 있던 과자 봉지를 다시 뺏어 과자를 집어 먹으며 TV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이제 만족해?”
준서의 작업실에 있는 휴게실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지영에게 준서가 물었다.
“만족하긴 뭘. 그나저나 사무실 좋네. 이런 전망도 볼 수 있고. 돈 많이 버니까 좋긴 좋다. 그치?”
지영은 준서를 바라보며 의미 있는 미소를 지었다.
“네 걱정 많이 됐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하다가 잘못하면 오히려 네가 다칠 수도 있어서.”
“그래도 내 걱정 해주는 건 오빠 밖에 없네.”
지영은 천천히 준서의 맞은 편 의자에 앉았고 준서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만족하냐고 물었지? 아니, 절대 만족 못하지. 그건 내가 받은 자존감의 상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니까. 걘 그러고도 여기저기 잘 나오잖아.”
“대체 걔가 네 자존감에 무슨 상처를 줬다고 그러는 거니?”
“오빠는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몰라. 여자의 적은 남자가 아니고 여자라고. 왜 드라마 같은데서 남자가 바람 피면 본처가 남편한테 뭐라 그러는 게 아니라 바람 핀 여자를 찾아가서 머리 끄댕이 잡고 흔들잖아. 잘못은 같이 했는데. 그게 여자의 적은 여자라서 그래.”
“그러니까 그게 진경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걔는 항상 내 앞에 있었어. 집안도 외모도 내가 꿇릴 게 전혀 없었는데, 아니 훨씬 더 좋은데 성적도 항상 1등, 사회에서도 인기가 더 높고. 그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 줄 오빠가 알아?”
“혹시 패배 의식이니?”
준서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물었다.
“그런 거 아니거든. 그냥 나보다 못한 애가 항상 나보다 주목 받으니까 거기서 받은 상처랄까?”
“패배의식 맞네. 아니면 질투던지.”
“오빠가 편할 대로 생각해. 아무튼 그래서 다음 작전을 다 구상해 놨지.”
“이번엔 또 뭔데?”
“좀 있으면 동창회가 있거든. 거기에 진경이가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어떻게 할지 다 생각해 놨어.”
지영의 얘기에 준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 작전이 뭐가 됐든지 이쯤에서 난 빼주라. 그리고 너도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고.”
준서의 얘기에 지영은 날카롭게 웃으며 말했다.
“오빠, 이 작업실 어떻게 구하게 됐지? 진경이하고 열애설 나고 인기 얻고 돈 벌어서 구한 거잖아. 그 작업 누가 해줬을까?”
지영의 얘기에 준서는 아무 말 없이 지영을 바라볼 뿐이었다. 쓰잘데기 없는 지영의 자존심 경쟁에 동참한 결과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무섭다. 자존심이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사람은 더 무섭다. 그 상처 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칼을 갈며 복수를 준비하고 또 복수를 하기 때문이다.
“뭐, 오빠한테는 아주 작고 간단한 부탁 한 가지만 할 거야.”
“네가 내 얘기 들을 사람은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얘기할게. 너도 이제 제대로 된 남자 만나서 연애하고 또 결혼도 해야지. 너희 부모님도 너 결혼하시길 기다리시잖아.”
“여기서 우리 부모님 얘기가 왜 나와? 아무튼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럼 난 이만 갈게. 조금만 오래 자리 비우면 우리 부장이란 인간이 자꾸 찾거든.”
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휴게실을 나와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준서는 휴게실에 앉은 채로 그런 지영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혼자 가도 된다니까 그러네.”
홍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면서 진경은 미안한 마음에 홍구에게 약간 짜증을 냈다.
“광고주랑 저녁 먹는 것도 일인데 내가 데려다 줘야지. 회사에서도 좀 더 너한테 신경 쓰라고 하고.”
“지난 번에 이사님한테 혼나서 그러는구나? 그거 별거 아니라니까.”
“넌 별 거 아니지만 나한테는 중요한 일이야. 내 직업이고. 잘리면 갈 데도 없어.”
평소에 말이 없던 홍구가 ‘잘린다’라는 단어까지 써 가며 굳이 지운과 광고주와의 식사자리에 데려다 주는 행동에 진경이 가슴이 찡해져 왔다.
“걱정하지마, 오빠. 오빤 절대 못 자르니까. 오빠 자르면 나도 계약 해지한다고 할 거야.”
“언니, 저는요?”
진경의 얘기에 뒤에 앉아 있던 진희가 갑자기 상체를 불쑥 내밀고는 물었다.
“당연히 진희도 마찬가지지. 우리가 같이 한 게 몇 년인데. 그나저나 오늘 진희도 꼭 가야 하는 거야? 얘는 쉬어도 되잖아.”
“나 혼자 기다리기 뭐해서 물어 봤더니 괜찮다고 하더라. 그래서 남자친구도 부르라고 했지. 내가 운전 때문에 술은 못 마시지만 맛있는 거 사준다고.”
“이따 집에 데려다 주기까지 하려고?”
“그래야 내가 안심하지.”
홍구는 무뚝뚝하게 한 마디 하면서 계속 운전을 했다.
“완전이 시집살이네, 시집살이. 이사님한테 오빠 자유시간 좀 더 주라고 얘기해야겠다. 그래야 오빠도 데이트도 하고 결혼도 할 테니까.”
진경의 얘기에 홍구가 아무 말이 없자 진경은 진희를 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시간 딱 맞춰 와서 다행이다.”
“그래도 너무 딱 맞춰 가는 건 없어 보이지 않을까? 그냥 차에서 좀 더 기다리다 들어갈까 싶은데.”
진경의 홍구에게 물었다.
“그냥 들어가. 시간 약속은 곧 신뢰니까.”
홍구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진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알았어. 끝날 때쯤 전화할게.”
차에서 내린 진경은 약속 장소 입구에 다다르자 이름을 얘기하고는 안내를 받았다. 지운에게 미향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보자고 제안했고 지운과 광고주는 진경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손님 들어가십니다.”
방까지 안내해 준 분이 문 밖에서 얘기하고는 문을 열어줬고 진경이 이내 방 안으로 들어서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가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도진경입니다.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들 빨리 오셨네요.”
그들을 보며 진경이 인사를 하자 제일 끝에 앉아 있던 지운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오셨어요. 겉옷은 이 쪽으로 주세요. 제가 걸어 드릴게요.”
“아니, 괜찮은데…”
지운이 진경이 들고 있던 겉옷을 받아 옷걸이에 걸었고 그때서야 진경은 참석자들을 한 명씩 바라볼 수 있었다. 참석자 중에는 지운의 회사 사장인 유진수도 있었다. 그리고 시선이 가운데 있는 흰 머리의 노인에게 다다르자 누군가 싶어 살짝 갸웃거렸다.
“제가 소개해드릴게요.”
지운이 한 명씩 참석자들을 소개할 때마다 진경은 깍듯이 인사를 했고 흰 머리의 노인을 소개하자 깜짝 놀랐다.
“이 분은 광고주 회장님이신 오세중 회장님입니다.”
“어머, 회장님까지. 영광이에요, 회장님.”
진경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역시 깍듯이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저희 브랜드 모델을 해주신 덕분에 매출이 많이 올랐다고 해서 이렇게 직접 만나 뵈러 왔습니다. 감사 인사도 드릴 겸.”
“별말씀을요. 브랜드가 좋아서 그런 걸요. 전 별로 하는 게 없었어요. 다 지운씨 회사에서 광고를 잘 만들어 준 덕분인데요.”
“허허.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일단 앉으시죠.”
오 회장이 얘기와 함께 자리에 앉자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다.
‘마치 군대 같은데.’
진경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마침 비어있는 지운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지운의 귀에 속삭였다.
“회장님이 오신다는 얘기는 없었잖아요.”
그러자 지운도 손을 닦는 척하며 말했다.
“오시지 말라니까 굳이 오시겠다고 하셔서. 진경씨를 직접 한 번 보고 싶으셨대요.”
지운의 얘기에 진경은 갑자기 머리 회전이 빨라졌다.
‘가만, 회장님이면 지운씨 아버지잖아? 뭐야, 그럼 지금 설마 며느리 면접 보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자 진경은 갑자기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딱히 실수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음식을 먹거나 젓가락질 하나에도 괜히 신경이 쓰였다.
“자, 일단 축하주부터 한 잔 하시죠. 김상무, 주문한 음식이랑 술 좀 달라고 하지.”
“알겠습니다, 회장님.”
오회장의 얘기에 김상무라고 불린 사람이 벨을 눌러 사람을 불렀고 음식을 달라고 얘기했다. 미리 주문을 해 놓은 덕분에 금방 상이 차려졌다.
“도진경씨를 이렇게 직접 만나게 돼서 영광이고, 또 우리 브랜드가 잘 돼서 영광입니다. 건배합시다.”
오회장의 건배사에 모두들 고개를 한 쪽으로 돌리고는 술 잔을 비웠고 진경도 마찬가지로 잔을 비웠다.
“어떻게 술은 좀 드십니까?”
오회장이 진경에게 물었다. 진경은 어떻게 대답할까 잠시 고민하다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많이는 못하고요 그냥 분위기를 맞추는 정도입니다.”
“다행이시네요. 술을 강권한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이번엔 제가 한 잔 드리겠습니다.”
오 회장이 술 주전자를 직접 들자 진경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가서는 술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이번엔 유사장도 한 잔 받지.”
“네, 감사합니다.”
진수도 고개를 숙이며 오 회장이 주는 술을 받았다.
‘이거 오늘 피곤하겠는데.’
진경은 이런 생각을 하고는 거의 얘기를 하지 않고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대화에 동참을 했다. 그렇게 대화가 오고 가고 술과 음식을 어느 정도 먹었을 때 오회장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전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나이가 드니 일찍 피곤해져서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함께 온 그룹 임원들도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진수와 지운 그리고 진경은 식당 앞에까지 나가 그들을 배웅했다.
“아따, 힘들다. 힘들어.”
진수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오래 참았다는 듯이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아니, 회장님은 갑자기 왜 오셨대요?”
진경이 지운에게 물었다.
“아까 얘기 했잖아요. 굳이 진경씨를 직접 보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오시지 말라고 했는데.”
그 때 진경은 효진이 한 말이 떠 올랐다.
[분위기가 묘한데]
“분위기가 묘하네요.”
진경은 효진이 한 얘기를 똑같이 지운에게 했다.
“뭐가요?”
“아니에요. 추운데 들어가서 술이나 마저 마시죠.”
진경의 얘기에 세 사람은 다시 들어가서 남은 술과 안주를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참 사장님. 효진 언니한테 연락 해보셨어요?”
진경이 진수에게 물었다.
“아, 네. 일요일에 한 번 더 뵙기로 했어요.”
“어머, 잘 됐다. 효진 언니는 남자가 진도 팍팍 빼주는 거 좋아하거든요. 어차피 두분 나 나이가 있으시니까 주저하지 마시고 진도 팍팍 나가주시면 되요. 그리고 잘 되시면 저한테 정장 하나 사주셔야 합니다.”
진경이 농담을 섞어가며 말하자 진수도 웃으며 잔을 권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이래저래 감사 드립니다.”
술 잔이 몇 번 더 돌고 난 후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수와 지운은 대리 기사를 부르고 진경은 홍구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끼리 축하주는 다음 번에 다시 해요. 제가 다시 연락 드릴게요.”
지운이 홍구를 기다리는 진경에게 말하자 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오늘은 회장님까지 오셔서 편하게 못 마셨으니 다음을 기다릴게요. 대신 장소는 제가 정할게요.”
진경이 웃으면서 말했다. 잠시 후 홍구가 도착해서 진경은 차를 타고 떠났고 진수와 지운도 대리 기사도 도착해서 각각 집으로 향했다.
“별일 없었지?”
홍구가 운전을 하면서 물었다.
“별일 있었어. 세상에, 회장님까지 왔었다니까.”
진경이 호들갑스럽게 대답했다.
“회장님? 광고주 회장님?”
“그래. 광고주 회장님. 머리가 하얀 백발이시던데.”
그 때 뒷자리에 있던 진희가 불쑥 끼어들었다.
“어머, 언니. 그럼 예비 시아버지 만나신 거에요?”
“얘는, 별 말을 다 하네.”
진경이 진희의 얘기에 대꾸를 할 때 진경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액정에 뜨는 번호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익숙한 번호였지만 진경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았다.
‘누구 번호였더라’
전화번호를 바라보기만 할 뿐 전화를 받지 않자 홍구가 물었다.
“왜 전화 안 받아?”
“누군지 몰라서.”
잠시 동안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진경은 마침내 전화를 받았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 듯 했다.
“오랜만이야. 나 준서야.”
진경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니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동시에 진경의 머리 속은 갑자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느닷없이 이 사람이 왜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일까? 왜 시간에 전화한 걸까? 지영이와 함께 있는 걸까?
“여보세요. 거기 있어?”
“얘기하세요.”
진경은 차갑고 냉정하게 대꾸했다. 그런 진경의 행동에 홍구는 룸 미러로 진경을 슬쩍슬쩍 쳐다 보았고 진희도 슬그머니 진경의 분위기를 살폈다.
“만나서 얘기했으면 좋겠지만 네가 만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전화로 말할게.”
만나자니. 나한테 그렇게 몹쓸 짓을 해 놓고선 만나자니. 대체 이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전화를 한 걸까.
“얼마 뒤에 너 동창회 있지? 거기 안 갔으면 해서.”
갑자기 이건 무슨 뜬금없는 얘길까. 동창회가 있는 건 어떻게 알았으며 또 자기가 뭔데 동창회에 가라 마라 하는 거지?
“무슨 얘기에요, 그게?”
“전화로 긴 얘기는 못 하겠고. 아무튼 안 갔으면 해. 그게 내가 해주고 싶은 얘기야. 그럼 이만 끊는다.”
준서는 자기 할 말을 다하고는 전화를 끊었고 진경은 무슨 일인가 싶어 황당하기까지 했다.
“누구야? 무슨 일인데?”
어이없어 하는 진경을 보며 홍구가 운전을 하면서 물었지만 진경은 아무 말없이 정면을 응시한 채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대체 느닷없이 전화해서 동창회에 가지 말라니, 무슨 사연을 숨기고 있는 걸까? 한참을 고민하던 진경의 머리 속에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 올랐다.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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