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야기 구조입니다.
앞 부분에 조연처럼 등장했던 나왔던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 인물이 되는가 하면 인물과 인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엮어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입니다.
또한 앞 부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나중에 일어날 일의 복선이 되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짜임새 있게 엮었습니다.
또한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나누어서 진행되며 중간에 교차되기도 하는 구성을 통해 마치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극적 구성을 더하였습니다.
따라서 항상 회차별 제목을 꼭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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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우 넌 좋겠다. 도진경이랑 열애설도 나고, 토마스도 너 좋다고 하고, 거기에 또 미향 누나까지 좋다고 하니. 여복이 터졌네, 터졌어.”
일우의 얘기를 들은 용일이가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토마스가 누구야?”
학주가 용일에게 물었다.
“아, 너는 그 때 없어서 모르겠구나.”
용일이는 예전에 일우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문을 가서 만났던 준희 얘기를 학주에게 들려줬다.
“그런 일이 있었군. 정말 용일이 말대로 일우 넌 여자 복이 터졌네. 부럽다, 야. 난 매일 회사에서 노인네들하고 억지로 밥 먹고 수다 떨어주느라 심신이 피곤한데.”
학주 역시 용일이의 의견이 동참하며 술 잔을 비웠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일우는 스스로 자괴감에 빠졌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사연이 있다. 그것이 감추고 싶은 것이든 드러내고 싶은 것이든.
그 중에서도 감추고 싶은 사연은 그 내용이 때론 처절하기도 하고 때론 부끄럽기도 하고 또 때론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다시 얘기하면 말 못할 사연이라는 얘기다. 일우는 자신의 호스트로 일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을 하다 도진경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미향을 어떻게 만났는지 또 미향의 과거가 어떤 지에 대해서도 아무리 친한 친구들이지만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말 못할, 감추고 싶은 사연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이 지금, 가장 친한 친구들 앞에서 자신을 자괴감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우의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지완이가 분위기 전환을 위해 한 마디 했다.
“자, 술이나 삐뚤어지게 마시자고. 오늘은 우리 축하해 주러 모인 자리 아니냐?”
그러면서 친구들 잔에 술을 따라주고는 건배를 하며 술잔을 비워냈다. 일우는 친구들과 함께 잔을 비워냈지만 머리 속에는 아직 미향과의 저녁 자리에 대한 잔상이 남아 있었다.
“저랑 사장님이랑 연애를 하자고요?”
뜬금없는 미향의 얘기에 일우는 당황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뭘 그렇게 놀라. 남녀가 만나다 보면 연애를 할 수도 있는 거지.”
미향은 일우를 보지도 않은 채, 아니 일우를 보지 못하고 음식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포크로 돌돌 말은 파스면을 먹지는 않고 벌써 몇 번이나 포크를 돌리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그래도…저…전 아직 어학 연수도 해야 하고 학교 졸업도 안 했고 또 뉴욕에서 알바도 하기로 했고…”
일우는 여전히 당황스러워 똑바로 얘기하지 못하고 횡설수설 하듯이 말했다.
“모든 건 내가 알아서 할게. 알바든, 회사 취업이든. 원하면 회사에 취업도 하게 해줄게. 난 다만, 너와 연애를 하고 싶을 뿐이야. 내가 무섭거나 외로울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인 너하고.”
미향의 얘기는 더더욱 일우를 당황스럽게 만들어 일우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여전히 포크로 면을 돌돌 말고 있는 미향을 빤히 쳐다 보았다. 그러자 미향과의 첫 만남 이후 지속적으로 유지해 온 그녀와의 관계가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 그녀가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결과물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알려줬으면 좋겠어.”
일우가 특별한 말이 말이 없자 미향이 한 발짝 물러서듯 말했다.
“연애는 둘째 치고라도 알바든 취업이든 알아서 해준다는 얘기는 좀 그런데요.”
그 때서야 미향이 고개를 들어 일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가?”
“사장님과 연애를 안 하면 알바도 취업도 못한다는 얘긴 거잖아요? 게다가 그 얘기는 제 미래를 이미 저당 잡혔다는 생각밖에 안 들고요.”
조금 전까지 당황스러웠던 것과는 달이 일우는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번엔 미향이 당황스러워했다.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미안해.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미향은 바로 사과를 했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한 말이 상대방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지는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일우는 지금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거다, 라고 미향은 생각했다.
남자의 자존심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사회 생활을 통해 알게 됐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그만 실수를 한 것이다.
“미안해 하실 것까진 없어요. 그래도, 좀…”
일우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는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무슨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맛은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머리 속이 터질 듯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서도 머리 속은 여전히 복잡할 뿐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용일이가 물었다.
“그냥 뭐. 좀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야,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어딨어. 미향 누나 정도면 무조건 연애 하는 거지. 취업도 시켜준다며?”
일우의 얘기를 들은 학주가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이번인 지완이가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지.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여자가 연애하자고 한다고 바로 ‘그럽시다’라고 할 수 있냐? 그건 완전히 없어 보이는 거고. 취업 문제도 그래. 일우가 무슨 데릴 사위도 아니고. 거기다 만약 연애하다 싸우거나 헤어져 봐. 그 땐 어떡할 거야?”
“하긴 그것도 그렇네.”
지완이의 얘기에 학주는 바로 수긍을 했다.
“아무래도 내가 괜한 얘기를 한 것 같다. 너네 축하해주고 오랜만에 얼굴 보려고 만난 건데 괜히 분위기만 이상하게 됐네.”
일우가 잔을 들고는 팔을 뻗으며 말했다.
“무슨 얘기야, 우리 사이에. 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는 거지.”
다른 세 명도 잔을 들어 일우의 잔에 부딪치고는 잔을 비웠다.
“크-그나저나 또 언제 들어가냐.”
용일이가 안주를 집어 먹으며 물었다.
“글쎄, 온 김에 엄마도 봬야 하니까… 빠르면 2주 안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어.”
미향과 야쿠자 노인네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일우가 어떻게 할 수도 없을 일인데다 더 이상 뭔가를 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이제 공은 경찰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벌써 해가 져 어둑어둑 해진 시간, 일우는 차 안에서 생각에 잠긴 채 정면을 바라보며 미향의 뜬금없는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 중이었다. 사실 전혀 뜬금없던 것은 아니고 처음 밖에서 친구들과 만났을 때도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미향은 직접적으로 얘기만 안 했을 뿐이지 마음을 전달해 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일우 스스로가 애써 그런 미향을 외면했을 뿐.
그러다 준희까지 떠 올랐다. 뉴욕에서 준희가 술에 취했을 때 연경이 해준 준희의 속마음을 알았을 때 일우는 당황스러웠다. 그 전에 지완이와 용일이가 눈치를 채고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지만 설마 했었다. 그런데 그걸 준희의 친한 친구인 연경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받았던 느낌은 전혀 달랐다.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어학연수고 뭐고 미국 생활을 접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올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그런다고 해결될 게 뭐가 있을까란 생각에 다다르면 또 그건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때 공장에서 엄마가 다른 아줌마들과 나오는 모습이 눈이 들어 왔다.
드디어 퇴근인 건가. 일우는 자기도 모르게 시계를 한 번 보고는 차에서 내려 엄마에게로 다가갔다.
“엄마.”
일우의 목소리를 들은 엄마는 깜짝 놀라며 일우를 쳐다 봤다.
“일우 네가 지금 여기 어쩐 일이냐? 미국 간 거 아니었어?”
“일이 있어서 잠깐 들어 왔어요. 다시 또 가야 하는데 그 전에 엄마 보려고 왔어요. 지난 번엔 하도 급하게 가는 바람에 엄마도 못 보고 가서.”
“그래, 잘했다. 어디 상한 덴 없고?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거지?”
일우 엄마는 일우의 뺨을 쓰다듬으며 세상의 모든 엄마라면 할 수 밖에 없는 걱정을 질문으로 대신했다.
“그럼요. 먹는 건 안 빠트리고 잘 먹고 다녀요. 가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일우는 그런 엄마의 손을 잡고는 차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이게 웬 차냐?”
차를 본 엄마가 다시 한 번 놀란 듯 물었다.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차 빌리기 쉬워요. 그래서 날 추운데 엄마 집에 모셔다 드리려고 빌린 거에요.”
“그래? 정말 세상이 좋아지긴 했나 보다. 그런데 이렇게 차 빌리는데 돈을 써서 어쩌냐. 그냥 버스 타고 가면 되는데.”
“에이, 엄마. 버스는 매일 타고 다니시니까 오늘은 저랑 차로 가요.”
일우는 엄마를 차에 태우고는 히터를 좀 세게 틀어 차 안의 온도를 높인 후 차를 출발시켰다.
“엄마야 말로 별일 없는 거죠?”
“내가 뭐 별일 있을 게 있냐. 내 나이쯤 되면 하루하루 그냥 살아가는 거지. 특별한 일이 있으면 오히려 신경 쓰이고 골치 아파. 그냥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한 거지.”
“다행이네요.”
일우가 계속 운전을 하는 동안 엄마의 말이 이어졌다.
“그나저나 그 처자 있잖아, 김미향 사장님. 그 분이 자주 찾아왔었다.”
“네, 언제요?”
엄마로부터 뜻 밖의 얘기를 들은 일우는 놀라서 엄마를 보며 물었다.
“병원 퇴원 하고도 가끔씩 연락하고 찾아 왔었고 너 갑자기 미국 간 다음에도 가끔 찾아 왔었어. 걱정하지 말라면서. 그리고 올 때마다 뭘 한아름씩 사 들고 와서는 한참을 같이 얘기하다 가고 그랬어. 그 뭐시기냐 과일도 사오고 마실 것도 사오고 아무튼 올 때마다 빈손으로 온 적이 없어서 내가 미안하더라고.”
“그런데 왜 저한테 얘기 안 하셨어요?”
“나보고 하도 얘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얘기를 할 수가 있었어야지. 그런데 오늘은 오랜만에 네 얼굴을 갑자기 보니까 왠지 해야 할 것 같아서 말한 거야. 어떻게 보답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자기도 모르게 엄마를 찾아와 말동무도 해주면서 여러 번 왔다 갔다니 일우는 고맙기도 하면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다 또 며칠 전 들은 그녀의 고백이 다시 머리에 떠 올랐다.
“그나저나 그 처자, 참 좋던데. 너랑은 대체 어떤 사이냐? 아무리 예전에 일했던 직원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해주는 사장님은 없을 텐데.”
엄마의 질문을 받은 일우는 아무 말 없이 앞만 바라본 채 운전을 하고 있었다. 딱히 어떤 사이다라고 얘기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이도 얼추 비슷해 보이더만. 어떻게 잘 해볼 생각은 없어? 엄마는 그 처자 참 좋더라.”
‘참’을 강조하여 이어진 엄마의 얘기의 일우는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니 미향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그 정도면 인물도 훤하지, 또 사장님이기도 하지. 대체 빠지는 게 없는 처잔데.”
엄마는 일우의 표정을 슬쩍 슬쩍 들여다 보며 계속 말을 했지만 일우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사람 오래 골라봐야 별 거 없다. 얼른 짝 만나 결혼하는 게 제일 좋은 거지. 네 아빠 죽고 없으니 나라도 너 장가 가고 자식 낳는 거 봐야 하는데.”
미향에 대한 얘기를 하다 넋두리로 까진 엄마의 얘기에 일우가 한 마디 했다.
“엄마는, 아빠 얘기는 뭐 하러 하고 그러세요.”
“너한텐 그냥 아빠지만 나한텐 평생 살 부딪치며 산 사이다. 어디 그게 쉽게 잊혀지겠냐.”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얘기하는 엄마의 얘기에 일우는 갑자기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참, 너 그나저나 도진경인가 하고 열애설 난 건 뭐야? 둘이 진짜 연애 하는 거 맞아?”
갑자기 엄마가 분위기를 바꿔 물었다.
“에이 진짜는요. 도진경이 여기저기 나와서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냥 우연히 알게 된 사이에요. 몇 번 본적도 없고.”
일우는 사실대로 얘기했다. 엄마한테 거짓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허허, 그것 참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공장에서 난리가 났었어. 유명한 탤런트 며느리 보는 거 아니냐고. 여기저기서 밥 사라고 얼마나 볶아대던지.”
엄마는 즐거웠던 기억이라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아니어서 어떡한대요. 공장 식구 분들이 엄마한테 밥 사셔야겠네.”
“왜?”
“엄청나게 실망이 되니까.”
일우의 얘기에 엄마는 활짝 웃었고 그렇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 두 사람은 엄마의 집에 도착했다.
“엄마,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가기 전에 전화 한 번 드릴게요.”
“집에 안 들어가? 들어가서 저녁 먹고 가.”
“괜찮아요. 일이 있어서 또 바로 어디 가봐야 돼요.”
“뭔 일이 그렇게 바쁘길래 집에까지 와서 밥도 안 먹고 가냐.”
엄마는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다음 번에 오면 그 때는 꼭 먹을게요. 대신 엄마가 꼭 차려줘야 돼요.”
일우는 차에서 내려 엄마에게 다음 번을 약속하고는 다시 차에 올랐고 엄마는 멀어지는 일우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바라보았다. 사실 일우가 특별한 약속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엄마와 함께 있으면 계속 미향에 대한 얘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자리를 피한 것이다. 아직 그 어떤 마음의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머리 속이 복잡한데 자꾸 같은 얘기를 들으면 더 혼란스러워질 것만 같아서였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엄마의 얘기가 계속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 처자 참 좋더라]
벌써 세 가치째다. 담배를 끊으려고 한 동안 전자 담배를 사용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담배가 너무도 절실해서 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중이다. 금연 건물이라 담배를 피우려면 1층까지 내려와야 해서 조금 불편하지만 어차피 줄 담배를 피우는 거니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계속 담배를 피우는 유도진의 머리 속에는 오전에 받은 전화 내용이 계속 머리 속에 맴돌았다.
‘다음 주에 오신답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유도진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손은 미세하게 떨렸다. 얼마 전 박본주 형사와 나눈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통화를 마친 유도진은 처음엔 박본주의 얘기를 무시하려고 했다. 일본에 있는 그 노인네 회사와 계약되어 있는 소속사 친구들의 미래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스타가 되기까지 그 회사가 많은 노력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아직까지 계약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자기가 노인네의 입국 사실을 경찰에게 알린 게 노인네의 귀에 들어가면 소속사 친구들의 일본 활동은 물론이고 자신의 목숨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야쿠자는 그래서 위험한 존재다. 그걸 미리 알고 진작에 관계를 청산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참에 그 노인네와의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게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더 오래 함께 가지 못할 인연이라면 이쯤에서라도 정리하고 싶었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일본 쪽 회사에서는 소속사 친구들의 일본 활동을 훼방 놓을 수도 있다. 워낙 여러 방면에 손을 뻗어 놓은 인맥이 많아 아예 일본 활동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아니 그 정도라면 다행이다. 일본 외의 다른 나라에서도 이미 인기가 어느 정도 올라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매출을 커버할 수는 있다. 그런데 또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비밀이 없는 요즘 세상에 이 회사가 일본 야쿠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 쪽에서 터트릴 경우다. 내가 경찰에게 얘기한 것을 이유로 완전히 회사를 망가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박본주 형사는 이번 수사가 공식적인 것이라고 했다. 만약 알고 있었는데도 미리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담배만 계속 피워대고 있는 유도진의 머리 속은 터질 지경이었다.
“이사님, 뭐 고민 있어?”
그 때 도진경이 건물로 들어가려다 유도진을 보고는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고민은 무슨.”
유도진은 애써 아무 일 없는 척 했다.
“담배 피우는 거 오랜만에 보는데? 고민 있는 거 아니야?”
도진경은 선글라스를 낀 채 유도진을 보며 물었다.
”고민 없다니까. 그나저나 오늘 어쩐 일이야?”
“소속사 연기자가 회사 나오는데 꼭 무슨 일 있어야 오나?”
유도진의 질문에 진경은 당연한 일 아니냐는 듯이 대답했다.
“하긴 그렇네. 먼저 올라가. 나도 금방 올라갈 거니까.”
“그래요. 위에서 봐요.”
진경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유도진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켜 끄며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여보세요. 저 유도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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