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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아니야
작가 : 판도라
작품등록일 : 201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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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동거
작성일 : 19-10-05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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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악…

 

 나는 회오리바람처럼 내 눈앞에 나타난 정체 모를 흰 괴물에 놀라 발톱을 곧추 곤두세우고 뒤로 비실비실 물러섰다.

 

 지하철에서 여자의 따뜻한 품속에서 어렴풋이 잠들 때, 나는 내가 갈 집안 구조를 머리속에 그려보면서 여자가 언급했던 그녀의 집에 있는 고양이에 대해 잠시나마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내 눈앞의 내 몸 크기의 다섯배정도 되는 파란 눈을 가진 흰 괴물이 바로 그 고양이라면…나는 차라리 허기와 추위에 몸을 떨더라도 그 허름한 판자 창고를, 그리고 오빠의 곁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썅썅…니가 심심해하기에 데려온 아이야. 애가 놀라잖아. 뒤로 비켜.”

 

 여자가 가볍게 꾸짖자 눈앞의 흰 괴물은 조금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 틈을 타 소파밑으로 재빨리 몸을 피했다.

 

 괴물의 정체는 터키시앙고라나 페르시안 후대인 듯한 장모종 고양이였다. 썅썅이라는 이름을 가진 흰 고양이는 두 귀를 똑바로 세우고 호기심이 가득찬 파란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쏘파밑 좁은 공간에 몸을 움츠리고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썅썅이 쏘파앞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나갈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낯선 고양이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아무리 고양이계의 천재라 하더라도 두려움은 극복할수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는 시간까지 옴짝달싹 하지 않는 나에게 여자는 소세지조각을 손에 들고 여러모로 구슬렸다.

 

 “착하지, 빨리 나와. 배고픈데 밥먹어야지.”

 “...”

 “이렇게 온종일 숨어있을순 없잖아. 목욕도 하고 잠도 자야지.”

 

 나는 입술을 감쳐물고 숨도 크게 쉬지 않았고 여자는 나를 들여다보다가 방긋 웃으며 옆으로 머리를 돌렸다.

 

 “참 이쁘다. 여자같아.”

 “이쁘다고 다 여자냐?”

 “내 생각엔 암컷이 맞어. 내 감은 틀리지 않는 다니까.”

 

 여자는 쏘파에 앉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 싶었다. 목소리만 들어서는 퍼그나 젊은 남자 목소리였다. 나는 어이없다는 듯 여자를 내다보았고 여자는 여전히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이쁘다.이름은 머라고 지을까?”

 “묘돌이가 어때.”

 “그건 남자이름인데?”

 “뭐 어때. 어차피 성별도 모르는데.”

 “묘돌이…”

 

 나는 억이 막혀 한숨을 내쉬었다. 묘돌이가 뭔가...여자는 대체 어떤 정신나간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 썅썅때문에 급히 쏘파밑에 숨어들다보니 제대로 못 본것을 후회하고 있을 때였다.

 

 “집에 있냐…”

 

 누군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고 쏘파에서 누군가 벌떡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좀은 당황한 어조로 말했다.

 

 “아빠야.”

 “어떡하지?”

 “인사 드려.어차피 숨기지 못할거 같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호기심이 동해 쏘파 밑에서 고개를 내밀다가 바로 옆에 있는 썅썅을 발견하고 다시 쑥 들어가버렸다.

 ......

 

 “아버님 안녕하세요.”

 “...아빠, 제 남자친구에요.”

 “흐음...앉게.”

 

 다시 숨을때 위치를 잘 찾았는지 이제야 소파밖의 풍경이 보였다. 진한 인테리적 분위기가 풍기는 여자의 아버지는 안경을 건 왜소한 얼굴에 미소를 띄운채 여자를 돌아보았다.

 

 “또 한놈 더 데려왔구나? 엄마한테 혼나려고 그러냐?”

 “아버지...그게 무슨.”

 “고양이 말이다. 저 쏘파밑에 한놈 더 있지 않느냐.”

 “아빠도…왜 자꾸 고양이를 머라 그래요? 얼마나 예쁜 아이들인데.”

 

 여자가 투덜거리며 썅썅을 안아올리자 여자의 아버지는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네도 고양이를 좋아하는가?”

 “아, 네...싫어하진 않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말이군.”

 “아닙니다. 정아가 좋아하는 건 다 좋아합니다.”

 “흐음...”

 

 여자의 아버지는 남자의 말을 못믿겠다는 듯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안경너머로 쏘파밑의 나를 보았다.

 

 “거 참 영민하게 생긴 아이로구나.”

 “정말, 지금 한창 이름을 짓고 있는데 아빤 어떤 이름이 좋아요?”

 

 여자가 아버지의 팔을 끌어 맞은편 의자에 앉혔고 여자의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니가 생각하는 이름은 뭐냐.”

 “저는 따로 생각해둔게 없고 저이가 묘돌이라고 짓자고 하는데 혹시 성별이 여자면 어쩔까 고민중이에요.”

 “묘돌이라…”

 

 여자의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문득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투투라고 하면 되겠다. 성별을 모르니까 중성이름이면 되지 않겠냐.”

 “투투?”

 “옛날 우리말로 갑돌이 쇠돌이라는 돌자는 한자 <乭>자를 쓰는데 후에 사람들은 이 글자를 아예 돌연 <突>자로 썼단다. 묘돌이라면 역시 그 돌이니까 돌연 돌자를 쓰면 어울릴거 같구나. 어느날 갑자기 이 집으로 온 아이니까.”

 “투투...뜻이 좋네요. 어느날 갑자기 우리 집으로 온 투투천사.”

 “천사?”

 

 남자와 아버지가 이상하다는 듯 여자를 쳐다보았고 여자는 머리를 끄덕였다.

 

 “응…천사…누군가 블로그에 쓴걸 봤는데, 고양이는 천사라고 했어.”

 “....”

 “곁에 잠든 고양이가 있는 사람은 결코 불행해지지 않는대. 그 곁에 천사가 잠들기 때문에…”

 

 여자의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목소리 뒤에 남자 둘의 긴 침묵이 내려앉았다.

 

 밤이 깊어서야 여자는 쏘파밑에서 끄덕끄덕 졸고있는 나를 끌어내는데 성공했고 나는 여자의 손에 이끌려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사료를 조금 먹은후 여자가 준비해준 잠자리에 곯아떨어졌다.

 

 잠결에 옆에서 썅썅이 왔다갔다 하는 듯 했지만 이미 긴장이 풀린 나는 더이상 그를 경계할 힘이 없었다. 비몽사몽간에 썅썅이 내 옆에 살며시 다가왔고 그는 내게 이런 첫마디를 걸어왔다.

 

 “안녕…투투.”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고양이는 나와 오빠밖에 없는줄 알았는데…썅썅은 어떻게 내 새 이름을 알았을까. 순식간에 온몸에 식은땀이 쫙 흘러내렸고 썅썅은 웃는듯 마는듯 기묘한 눈빛으로 나를 쌀쌀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

 

 우리의 동거는 처음엔 꽤 무탈한 듯 싶었다.

 

 몇일이 지나서야 나는 썅썅이 고작 나보다 반년정도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잠깐 한가지 설명을 곁들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고양이들의 수명은 보통 10년~15년정도 되는데 반년이 되면 몸이 다 자라서 청년기에 접어들고 고양이 수컷은 발정기가 시작되어 집안 곳곳에 오줌 비슷한 액체로 영역표시를 한다.

 

 하지만 내가 본 썅썅은 비록 청년기에 접어든 고양이였지만 가끔 한밤중에 이상한 울음소리를 조금씩 내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무서운 자제력을 갖고있는 숫코양이였다.

 

 여자는 인터넷전자상거래 관련 회사에 출근을 하고있는 직장인이었고, 내가 온 첫날 본 여자의 남자친구는 같은 인터넷관련 업종인데 여자가 휴무일때만 가끔 놀러 오군 했다.

 

 남자의 말에 따르면 내가 오기전 무료하기 그지없었던 썅썅은 밤중만 되면 여자의 침대위에서 <말 달리자>를 신나게 연출했다고 한다. 무방비상태로 곤히 잠든 여자의 얼굴을 밟고 지나면서 발톱으로 할퀴는가 하면 풀쩍 뛰었다가 허공중에서 내리꼰지며 여자의 몸위에 자신의 육중한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났고 이튿날에는 최악의 컨디션으로 출근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이 집에 오자 썅썅에게는 새로운 놀이가 생겨났는데 그것은 <말 달리자>를 최신판 <톰과 제리>로 연출하는 것이였다. 천성으로 잠이 많은 나는 다른 어린 고양이들과 마찬가지로 하루에 최소 16시간을 자야 했는데 나머지 8시간은 사료를 먹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을 제외한후엔 방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썅썅에게 쫓겨야만 했다.

 

 썅썅은 <톰>이였지만 나는 <제리>가 아니였기에 결과는 항상 나의 비참한 최후로 끝나고 말았다. 썅썅에게 쫓기다 방바닥에 배를 붙이고 옆으로 누우면 그것은 우리 고양이들의 언어로는 싸움을 끝내고 항복한다는 뜻이였지만 유감스럽게도 나의 이런 제스처는 썅썅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야릇한 성취감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바닥에 드러누우면 썅썅은 쫓아오던 속도 그대로 나에게 달려들기 일쑤였고 나는 썅썅에게 짓눌려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여자의 방문을 쳐다보았다.

 

 “썅썅, 왜 항상 투투를 괴롭히는 거야!”

 

 내 비명소리를 들었는지 여자가 벌컥 방문을 열었고 썅썅은 뻘쭘한 기색으로 나에게서 몸을 일으켰다. 여자는 쌩하니 달려오더니 썅썅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툭 건드렸다. 썅썅은 귀를 잔뜩 뒤로 젖힌채 두눈을 꼭 감고 목을 아래로 움츠렸다.

 

 “다시 말하지만 한번만 더 그래봐. 통조림 안줄거야.”

 

 여자는 피씩 웃으면서 썅썅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참치통조림 알지?”

 

 썅썅은 혀로 입을 핥으며 꼬리를 얌전하게 말아서 발위에 올려놓았다. 나를 깔아뭉개던 모습과는 전혀 판이한 곰상궂은 자세였다.

 

 하지만 여자가 방안으로 들어가자 썅썅은 앞발을 구르더니 나를 향해 쏜살같이 돌진해왔다. 나는 새된 소리를 지르면서 방구석으로 깊숙히 몸을 숨겼다.

 ......

 

 “우리 대화 좀 하자.”

 

 여자가 잠든 깊은 밤중에 나는 드디여 입을 열었다. 썅썅은 나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더니 머리를 갸웃하고 수북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제야 입을 여네.”

 “....”

 “내가 예상한 시간보다 사흘이나 더 버텼는 걸. 이 집에 온지 열흘인데 지금에야 나한테 말을 건다는게 얼마나 예의없는 짓인지 너도 잘 알지?”

 “예의?내가 왜 너한테 예의를 갖춰야 하는데?”

 “하...”

 

 썅썅은 고개를 돌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단순히 몸집이 크다고 약한 동물 괴롭히는건 더 예의없고 무식한 행동이야. 이 말을 너한테 하고싶었어.”

 “몸집이 크다고 널 괴롭힌건 아니야.”

 

 썅썅이 쌀쌀하게 말했고 나는 꼬리를 홱 저었다. 무척이나 화가 났다는 표시였다.

 

 “그럼 뭔데?”

 “보다싶이 난 장모종이야.터키시앙고라와 페르시안의 후대라고. 주인은 날 애완동물시장에서 비싸게 사왔고 수입제로 좋은 사료를 사다 먹여왔어. 그런데 넌 뭐냐?”

 “내가 뭘.”

 “도둑고양이 주제에 이 집에 와서 호의호식하는 것도 모자라 주인 사랑까지 받겠다고? 나같은 귀족 고양이가 왜 너같은 천박한 것과 한지붕 아래에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다.”

 

 썅썅의 말에 섞인 경멸과 무시에 나는 입술을 깨물며 한동안 침묵했다. 하지만 잠시후 나는 뭔가를 떠올리고 허리를 꼿꼿이 펴면서 썅썅을 향해 냉소했다.

 

 “터키시앙고라와 페르시안의 후대라는 고양이 안목이 고작 그정도였냐?”

 “뭐라고?”

 “코리안숏헤어.”

 

 썅썅이 귀를 쫑긋했고 나는 그를 응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총명한 코숏이야.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코숏?”

 

 썅썅은 천정을 쳐다보면서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어둠속에서 썅썅의 눈이 파랗게 빛을 뿜고있었다.

 

 “코리안숏헤어? 설마 넌 코숏이 고양이들중에서 제일 총명한 터키시앙고라의 지능을 능가할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

 “그래서 어쩌라고. 네가 그 흔한 코숏이라고 해서 달라질건 또 먼데? 길거리에서 도둑고양이로 전락할 운명인 것을 괜찮은 주인 만났으면 본분 지키면서 살아. 어디 감히 주인에게 이를 생각을 해?”

 “...”

 “감히 내게서 주인 사랑 빼앗을 생각 했다간 저기 베란다로 해서 아래로 밀어뜨려 진정한 길고양이로 만들어줄테니까 고분고분 말 들어.”

 “…”

 “이 집에 온 이상 넌 내 장난감이야. 네따위가 나랑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면 뼈도 못찾고 죽을줄 알어. 지금 이 시각부터 사료, 물, 화장실은 내 허락 없이 다치지 못한다. 알겠냐?”

 

 썅썅은 기고만장해서 으름장을 놓았고 나는 분이 치밀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아무리 천재성을 타고난 고양이라 해도 내 크기 열배 되는 썅썅을 이긴다는 건 그야말로 아라비안 나이트같은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나는 썅썅이 팔자걸음으로 사료그릇옆에 다가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썅썅은 그 많은 사료를 한알도 남기지 않고 반반히 먹어치운 다음 옆에 있는 물그릇까지 깡그리 비운후 비웃는 듯한 눈길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내가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자 썅썅은 화장실옆에 자리를 틀고 앉아 앞발의 털을 열심히 핥으며 그루밍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썅썅을 바라보다가 거실 한쪽 구석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턱을 등위에 올려놓았다. 썅썅은 몸단장을 마치자 여자가 쏘파위에 펴준 포근한 잠자리위에 올라가더니 네각을 뻗고 대자로 드러누웠다.

 

 잠시후 썅썅의 코고는 소리가 거실을 진동했고 자정은 잠기 하나 없는 내 눈앞으로 소리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해 이른 봄...나와 썅썅의 대결속에서 고양이와 고양이, 고양이와 사람이 합주하는 우리의 특별한 하모니는 그렇게 그 첫시작을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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