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는 그날로 여자의 침실에서 쫓겨났다. 남자의 작간이었다.
“네가 고양이를 이뻐하고 기르는 걸 뭐라고 하지 않아. 하지만 이런 상처가 생기면 얘기는 달라져.”
남자는 여자의 손을 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마 리사 바이러스(광견병 바이러스) 예방접종을 맞히고 온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날로 근처 애완동물용품의 가게 주인이자 수의사인 젊은 남자가 집으로 찾아와 길고 날카로운 침을 내게 꽂았다.
“썅썅 경우에는 접종이 다 된 상태인데 투투는 그냥 길에서 주어온 것이나 다름 없잖아.”
누굴 비렁뱅이 길냥이로 보나...속으로 투덜거렸지만 나는 어쩔수없이 수의사에게 목덜미를 잡혀서 고분고분 주사를 맞았다. 썅썅은 이 모든것을 깨고소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남자가 가고 여자의 방문이 굳게 닫히자 썅썅은 기다렸다는 듯 질풍같이 내게 달려들었다.
“이 요상한 것! 이 못된 것! 너도 오늘이 있구나.”
썅썅의 날카로운 이발이 내 목덜미를 파고들었고 나는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꼭 닫힌 여자의 방문을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그날밤 나는 하늘의 풍운조화는 진짜 예측키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높은 옷장위에서 행복하게 졸던 천사가 하루도 못되어 이런 지옥에 떨어져 썅썅같은 악마에게 폭행을 당하다니…거실에는 희고 노란 털들이 날렸고 집안에서는 여자의 불안한 듯한 기척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방문은 끝까지 열리지 않았다.
이튿날 여자는 출근준비를 마치고 방문을 닫은후 잠깐 내 앞에 와서 조심스럽게 쭈크리고 앉았다. 나는 얼굴을 돌려 여자의 시선을 피했고 여자의 손은 가볍게 내 목덜미에 머물더니 부드럽게 내 등을 쓰다듬었다.
“투투…어제 썅썅이 괴롭혔지? 미안해…널 보호해주지 못해서.”
여자의 손길이 내 상처를 스치자 나는 몸을 움찔했다가 가까스로 진정을 했다. 다행이 여자는 자기 상념에 잠겨 내 행동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듯 했다.
“나도 어쩔수 없어. 난 너희가 입히는 상처 따위 개의치 않아도, 그 사람에게는 틀리니까.”
여자는 서글픈 웃음을 짓더니 몸을 일으켜 집문을 나섰고 썅썅은 여자가 남겨준 사료를 배불리 먹자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섰다. 나는 천천히 눈을 들어 썅썅의 시선을 마주했다. 썅썅의 눈에는 알수 없는 그 어떤 빛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왜 이러는지 너도 알겠지?”
“서열싸움인가.”
“둔하지 않네.”
썅썅은 수염을 쫑긋거렸다.
“그래. 바로 그거야. 이 집에선 내가 너보다 위야. 앞으로 다른 고양이가 오면 걔는 너보다 아래가 되어야 하는 거고. 이런 서열이 없으면 인간세상이나 동물세상이나 관리 체제가 혼란을 겪게 되어있어. 어떻게 보면 이런 서열은 초반부터 바로잡아야 하는 거란 말이야.”
“이해해.”
“그럼 이젠 나에게 복종할 거지?”
“아니.”
내 대답에 썅썅은 억이 막힌 표정을 지었고 나는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썅썅을 바라보았다.
“무력으로 승부하려 하지 마. 재간 있으면 지혜로 날 이겨. 복종? 그건 날 이긴다음에 논할 일이지.”
썅썅의 눈에 짙은 빛이 스쳤고 나는 또다시 그의 몸에 깔리고 말았다. 썅썅의 예리한 이발이 내 몸에 박혔고 나는 묵묵히 매를 맞으면서 이를 악물었다. 하루해가 그렇게 지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 여자가 돌아왔고 여자의 뒤에는 나이가 지긋한 한 중년부인이 뒤따르고 있었다. 왠지 닮은 두 사람의 외모에서 나는 그 부인이 바로 여자의 엄마라는 것을 유추해낼수 있었다. 다만 여자의 엄마가 여자와 구별되는 점이라면 꽤 지긋해보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얼굴과 분위기가 풍기는 연륜의 카리스마였다. 여자의 엄마는 털이 흩날리는 거실의 살풍경을 보자 이마를 찌푸리면서 딱딱한 눈길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아버지 말을 듣고 설마 했는데 한마리도 모자라서 또 한마리냐.”
“엄마…”
“다른 사람 줘버려.”
“왜 다른 사람 줘버려요? 우리가 어릴 때 엄마도 고양이 귀여워했다면서요. 그런데 지금은 왜 이래요?”
여자가 반박하자 여자의 엄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뻗어 나를 뒤집었다. 맥이 진해 엎드려있던 나는 미처 도망칠 사이도 없이 배를 보이며 쓰러졌고 여자의 엄마는 쌀쌀한 눈길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이것 봐. 암코양이잖아. 큰놈은 수컷이라면서. 수컷과 암컷을 키우면서 중성화도 시켜야 하지 그게 얼마나 애먹는 짓인줄 아냐? 여기가 어디 어릴 때 너희가 살던 고향집이냐. 이웃들 민원도 있고 사료 살 돈도 많이 들어. 그리고…”
“투투가 여자 맞죠? 엄만 어떻게 알수 있었죠?”
여자의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지만 여자의 엄마는 냉정하게 자기 말만 끝맺었다.
“여자들에겐 고양이가 독이다. 결혼, 출산에 미치는 영향 겁나지 않는다면 그냥 길러라.”
문이 탕하고 닫혔고 여자는 그 자리에 굳어졌다. 여자의 공허한 시선은 나와 썅썅에게 이윽토록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한참 멍하니 서있다가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독이 아니야…천사야. 고양이는…천사라고.”
......
이튿날 남자는 여자의 집에 들어서자바람으로 항상 하던대로 썅썅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그제야 우울하게 쏘파에 앉아있는 여자를 발견하고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어?”
“엄마가 왔댔어.”
여자가 침울하게 대답했고 남자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에 이어 어머님까지...두분께서 너 독립시키고 많이 걱정되시나 보다.”
“그런게 아니야.”
“그럼...”
“고양이들때문에 온 거야.”
남자는 머리를 기웃했고 여자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두분 다 내가 고양이를 기르는 걸 항상 못마땅해 하셨거든. 엄마가 고양이는 독이래. 누굴 줘버리랬어.”
“독이라고?”
“결혼, 출산에 미치는 영향 겁내지 않는다면 그냥 기르랬어.”
“결혼? 출산? 그거랑 뭔 상관이지?”
남자의 의문에 여자는 벌떡 일어나더니 내 앞으로 다가와서 쭈크리고 앉았다.
“전에도 말한적 있었거든. 고양이를 키운 사례로 회임이 안된 먼 친척 이모가 있었다고.”
“과학적인 근거가 있대?”
“고양이 몸에 있을수 있는 톡스플라즈마라는 기생충이 임산부나 임신예정자 태반을 통해 태아가 톡스플라즈마 감염이 되면, 유산되거나 또는 출산할 경우 25%정도에서 기형아가 태여나는 등 치명적인 합병증이 나타날수 있다고 했어.”
“고양이 기생충?”
“하지만 그건 애매한 고양이를 잡는 일이야. 톡스플라즈마는 고양이 뿐만 아니라 개, 닭, 사람 등 온혈동물이라면 누구나 감염될수 있는 질환이거든. 고양이가 아니라 덜 익힌 고기나 날고기, 오염된 채소나 흙, 바퀴벌레 등이 그 병균을 옮길수 있는 확률이 더 크다고 해.”
“그렇구나.”
“고양이중 톡스플라즈마에 감염된 고양이가 얼마나 되며, 그 고양이가 나한테 올 확률은 또 얼마나 되며, 내가 그 고양이의 배변을 손으로 치우고 그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집어먹을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 확률이 다 적집합되어야 내가 톡스플라즈마에 감염이 된다고.”
“감염은 누가 감염이 돼.”
남자의 말에 여자는 피씩 웃었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야. 그래서 말인데...”
여자는 가만히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면서 남자의 손을 잡아흔들었다.
“그러니 지금 말해봐. 정말 고양이를 좋아하는 거 맞어? 혹시 내가 좋아한다니까 같이 좋아하는 척 하는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그게...혹시 자기가 억지로 좋아하는 거라면 안그래도 된다는...”
여자는 말하다 말고 머리를 숙였고 남자는 가볍게 여자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뭐야. 왜 갑자기 내 마음을 의심하지? 정아 너답지 않은데?”
“의심이 아니라...”
“불안이라도 안돼. 내가 말했었잖아. 난 억지로 뭘 좋아하는 척 그러지 않아.”
“...미안해.”
“미안하면 오늘 나랑 데이트 해.”
“...데이트?”
“간만에 외식도 하고.”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여자의 겉옷을 챙겼다.
“오면서 애기들 맛있는 것도 사다줄까?”
여자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는 게 보였고 남자는 못말린다는 듯 피씩 웃었다.
“참…못말린다. 어쩜 데이트보다 애들 맛있는거 사주는 게 더 좋냐? 그렇게 얘들이 좋아?”
“응…”
“만일 그러다 앞으로 기르지 못하게 된다면…”
남자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자 여자는 단호하게 머리를 저었다.
“만일은 없어!”
“만일…만일의 만일 정말 얘들을 기를수 없게 된다면?”
“일단 기른다고 데려왔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어?”
여자는 물기어린 시선으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게 애완동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야? 난 기를거야. 누가 뭐래도 끝까지 기를 거야!”
여자의 눈빛은 단단했지만 나는 남자의 입에서 새여나오는 가벼운 한숨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가슴을 훑어내리는 헛헛한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
그날 밤, 방에서 여자의 고르러운 숨소리가 들릴 무렵, 나는 드디여 낮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일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낮에 여자와 엄마의 대화를 들은 후부터, 아니 어쩌면 어젯밤 여자에게 본의아니게 상처를 입힌 후부터…이런 계획은 내 뇌리에서 어렴풋한 윤곽을 그리기 시작했고 오늘 남자와 여자의 대화는 나로 하여금 내 생각이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하게끔 만들었다.
중성화…여자의 엄마가 한 그 한마디는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말이었다. 중성화를 하면 나는 고양이 암컷으로서의 모든 생육능력을 잃게 될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볼때 진정한 고양이도 아니다. 물론 고양이 수컷의 썅썅에게도 똑같이 무서운 단어이긴 했지만 그가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는 아직 중성화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썅썅은 기회만 생기면 나에 대한 학대를 멈추지 않았고, 나는 이런 매너없고 무지막지한 숫코양이와 한 지붕을 쓰고 사는 것에 이미 극도의 스트레스와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여자가 깊이 잠든 밤중이 되자 썅썅은 또다시 날카로운 이발을 드러냈고 나는 슬슬 뒤로 피하다가 후닥닥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화장실 창문위에는 자그마한 공기구멍이 있었고 그곳을 그냥 얇은 비닐로 막아놓은 것을 낮에 미리 봐둔 것은 내 계획의 한부분이였다. 썅썅이 우당탕거리며 화장실로 뛰어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변기 두껑을 밟고 살짝 점프하면서 공기창 비닐을 찢고 단숨에 밖으로 솟구쳐나왔다. 발에 무엇이 걸리는 순간 나는 또 한번 몸을 솟구쳤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윗층 베란다 창문가에 몸을 바로세운 뒤었다. 코리안숏헤어 고양이의 높이뛰기는 고양이들속에서도 제일 출중하다는 오빠의 말이 증명되는 순간이였다.
아래로 내려다보니 여자의 집 화장실 창밖은 베란다 비슷한 자그마한 공터였고 금방 내가 공기창으로 뛰쳐나오면서 밟은 것은 바로 빨래줄에 걸린 이웃집 빨래였다. 이른 봄날의 새벽한기가 몸을 엄습해왔고 나는 창문가에 엎드린 채 바싹 몸을 움츠렸다. 뛰쳐나오긴 했으나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추위와 기아를 피해 여자를 따라왔지만 결국은 바보고양이의 폭력을 못견뎌 가출하다니,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나를 먼저 보낸 오빠가 이 일을 알면 얼마가 가슴아파 하고 통탄할 것인가.
내가 뛰쳐나온 공기구멍은 어둠속에서 괴물의 입처럼 벌려져있었고, 그곳으로부터 썅썅의 허스키한 울음소리가 새여나온 것은 바로 내가 추위를 못이겨 까무룩 정신을 잃기 바로 직전이였다.
“냐옹~~~”
문득 울컥 설음이 몰려들었다. 미운 정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그렇게 이를 갈면서 미워하던 썅썅의 목소리가 지금은 왜 이렇게 슬프게 들려오는지…좋아하던 장난감을 잃은 어린애처럼 썅썅은 서럽게 울고 있었고, 차거운 새벽공기속의 썅썅의 목소리는 그의 발톱처럼 내 가슴을 허비고 있었다.
“냐옹! 냐옹~~~”
저건 뭐하는 짓인지. 나의 의혹을 증폭시키며 썅썅의 울음소리는 더욱 급촉해졌고 얼마 안지나 여자의 침실 창문이 갑자기 밝아졌다. 방문이 삐걱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여자가 썅썅에게 묻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왔다.
“썅썅…왜 그렇게 울어? 투투는 어디갔지?”
“냐옹~~~!”
“그래…없어진 건 알겠는데 어디 갔냐니까.”
“냐옹~~~”
썅썅이 여자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오는 듯 했고 드디여 화장실 창문이 밖으로 열렸다. 여자는 창문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칠흙 같은 어둠속을 향해 애타게 내 이름을 불렀다.
“투투…투투…어디있니…도대체 어디 간 거야…!”
나는 숨을 죽이고 잠자코 있었다. 머리속이 삼검불처럼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여자의 가녀린 몸이 찬바람속에 조금씩 떨고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투투…어디있어…이렇게 추운데…그동안 잘해주지도 못하고…”
여자의 목소리가 갈린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울고있는 듯 했다. 여자의 흐느낌소리에 나는 그만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눈앞에서 창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드디어 체념을 하고 말았다.
“냥…”
창문이 다시 활짝 열렸고 여자와 나의 눈이 허공중에서 마주쳤다. 물기에 젖은 여자의 맑은 눈망울을 보는 찰나 섬광처럼 반짝이는 그 무엇이 내 머리속을 윙 울리게 했다.
그날 새벽 나는 드디여 알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의 눈은 바로 대화의 창문이였고, 사람과 고양이도 눈으로 대화할수 있다는 것을…
......
차거운 새벽바람속에서 나와 여자는 서로의 눈을 통해 어쩌면 이미 우리는 서로 떨어질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윽토록 여자의 눈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순간 걷잡을수 없는 현기증이 일었고 휘청거리는 나를 향해 여자가 다급히 소리를 쳤다.
“투투, 움직이지 마!”
“냥…”
나는 겁에 질려 미약한 울음소리를 냈다. 하느님 맙소사…내가 왜 이렇게 높이 올라와 있을까…윗층 창문과 여자네 집 베란다사이는 5메터도 훨씬 넘어보였고 전에 방안 옷장위에서 내려오지도 못하던 내가 이 높은 창문턱으로 올라왔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눈앞이 아찔해져서 두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떴다.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거실로 달려들어갔다. 하지만 여자는 1분도 안되어서 되돌아왔고 그녀의 손에는 기다란 옷걸이대가 들려있었다. 거실 구석에 세워두었던, 썅썅이 나를 뒤쫓아올 때 내가 자주 숨어있던 그 옷걸이대였다.
“여기에 올라탈수 있겠어?”
여자가 창문턱에 올라서더니 옷걸이대 꼭대기를 나에게 내밀었고 나는 십자모양으로 된 그 꼭대기부분을 내려다보다가 뒤로 몸을 움츠렸다. 좁은 창문턱에서 여자의 몸이 위태롭게 흔들렸고 여자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내돋고 있었다.
“그래…내가 요구가 너무 높았지…한낱 미물에게…”
여자는 입술을 꼭 깨물다가 다시 창문턱에서 내려 거실로 들어갔다. 잠시후 여자가 돌아왔고 그때 옷걸이대 꼭대기부분에는 대나무로 결은 자그마한 바구니가 얹혀져 있었다. 여자는 옷걸이대를 힘겹게 끌어올리더니 다시 창문턱에 올라서서 두팔로 그것을 높이 쳐들었다.
“자…이젠 들어올수 있겠지? 바구니안에 들어오면 돼.”
옷걸이대 꼭대기의 십자모양의 받침대에 놓인 바구니는 겨우 내 몸이 들어갈수 있는 크기였고, 나는 코앞까지 올라온 바구니를 보자 크게 마음이 동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여자의 얼굴은 삽시에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맞아…바구니안에 들어와. 앞발을 먼저 들이밀어.”
“냥…”
나는 걱정조로 가벼운 울음소리를 냈다. 여자의 키를 넘는 옷걸이대는 꽤 무거워보였고 높이 쳐든 여자의 두팔은 그 무게로 인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나까지 들어간다면 과연 그 무게를 감당해낼수 있을지 걱정이였고 여자는 그런 내 걱정을 알아챈 듯 부드럽게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투투…니 몸무게가 얼마 안가거든…바구니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움직이지 않아도 돼. 내가 이렇게…이렇게 팔만 내리우면 넌 안전해지게 될거야. 이걸 봐…이렇게…”
여자는 내가 알아듣지 못할가봐 옷걸이대를 아래로 내렸다 올리면서 시뮬레이션을 몇번 반복했다. 나는 드디여 결심을 내렸고 여자는 내 결심을 알아차린 듯 두팔을 더 높이 쳐들었다. 바구니가 눈앞에 다가오자 나는 천천히 앞발을 들이밀었다. 그때 갑자기 옷걸이대가 밑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나는 급히 소리를 내질렀다.
“냥!”
“미안해…이게 너무 무거웠어…미안해 투투…”
여자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흐르고 있었고 바구니는 다시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위태롭긴 했지만 더이상 좋은 방법이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발을 바구니안에 넣었고 주춤거리며 바구니에 내 무게를 완전히 실었다. 옷걸이대가 아주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고 그것이 일정한 높이가 되자 나는 땅바닥으로 뛰어내리다가 그만 발을 접질러 바닥에 구을고말았다. 바구니도 나를 따라 땅바닥에 떨어져 구을고 있었다.
“투투…”
여자는 창문턱에서 베란다 공터에 뛰어내려 나를 한품에 끌어안았다. 여자는 맨발바람이였고 여자의 몸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