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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아니야
작가 : 판도라
작품등록일 : 201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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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가출
작성일 : 19-10-09     조회 : 272     추천 : 0     분량 : 7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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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그날 저녁, 여자는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남자는 키로 문을 열고 제집 드나들듯 들어와서 거실 쏘파에 앉았다. 썅썅은 쏘파위로 뛰어올라가서 남자의 무릎위에 냉큼 올라앉았다.

 

 “냐옹~”

 “그래…배고팠어?”

 

 남자의 손이 썅썅의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있었고 썅썅은 그르릉그르릉 소리를 내면서 눈을 지긋이 감고 턱을 쳐들었다. 이제는 이 집의 반쯤 주인이 된 듯한 남자의 행동에 나는 흘끔흘끔 눈치를 보면서 벽쪽으로 붙어섰고 남자는 머리를 돌려 주춤거리는 나에게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투투…”

 “냥…”

 “그동안 반성 잘했지? 이제 또 정아 물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거야. 알아들었냐?”

 “냥…”

 “그래…알아들은 걸로 하고 이리와. 좀따 정아 올거야. 정아 오면 맛있는거 달라고 해.”

 

 내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쏘파에 뛰어올라가자 남자의 손이 내 목덜미를 쓰다듬었고 나는 경직된 상태로 흠칫 몸을 떨었다. 때마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남자가 머리를 돌리는 틈을 타서 나는 쌩하니 쏘파에서 뛰어내려 문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이제 오는거야?”

 “어. 회식이 있었어…”

 “투투 봐.”

 “왜?”

 “내가 싫은가봐. 아무리 쓰다듬어도 새초롬해 있더니 니가 오는 소리에 마중나가네.”

 “그랬어?”

 

 여자가 옅은 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안아 올렸고 나는 여자의 품속에 깊숙히 몸을 파묻었다. 여자의 품속 온기에 나는 몸이 나긋해졌고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허…가르릉 소리까지 내는걸…어떡하냐? 투투에겐 니가 진짜 엄마같은 존재인가봐.”

 “안될거 없지. 인터넷 애완동물 사이트 보면 주인들이 다 부모 행세를 하는 걸. 나 이제부터 투투 엄마야.”

 

 여자가 생글거리자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술마셨냐.”

 “왜?”

 “술은 왜 마셔?”

 “회식인데 어떻게 거절해?”

 “아무리 그래도 니 몸을 생각...”

 “왜 난 술마시면 안되는 건데?”

 

 남자와 여자의 대화는 왠지 화약냄새가 풍겼고 나는 귀를 쫑굿 세웠다. 아닌게 아니라 여자의 몸에서 술냄새가 은은히 풍기고 있었다. 여자는 나를 내려놓고 몸을 똑바로 세웠다.

 

 “언제부터 얘기하고 싶었지만...”

 

 여자의 눈에 도발의 빛이 언뜻 내비쳤다.

 

 “날 너무 간섭하지 마. 부탁할께.”

 “정아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내가 겨우 부모로부터 독립되어 나왔는데 다시 너라는 울타리엔 갇히기 싫어.”

 “그건 무슨 뜻이야?”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건, 그들의 독립적인 개성이 마음에 들어서였어. 내가 항상 갖고 싶었던 거...내가 지향하고 있던 것이 바로 독립이었거든. 그 독립을 위해 혼자 사는 건데, 이제 내 부모의 자리에 남친이라는 사람이 똑같은 역할 하는 거, 마음에 안들어.”

 “니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거 뭐라 안해. 난 다만...”

 “오늘처럼 주인 없는 집에 허락 없이 마음대로 들어오는 것도...마음에 안든다.”

 “키는 니가 준거 아니야?”

 “그래. 내가 줬지. 하지만 비상용이었지 마음대로 내 집 드나들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어.”

 

 여자의 말은 꽤 냉정하게 들렸고 남자는 아무 말 없이 한참동안 여자를 바라보았다. 나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고 썅썅은 어느새 멀리 피해서 커튼뒤로 꼬리만 보이고 있었다.

 

 탕...

 문소리와 함께 집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여자가 무너지듯 쏘파에 주저앉았고 나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다가 여자의 발치에 가서 앉았다.

 

 “그런다고 가버리냐.”

 

 여자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나는 의혹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 인간 여자들의 마음은 참 알고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들을 듣고도 가만히 남아있을 남자가 어디 있냐 말이다.

 

 “투투...너도 내가 이상해?”

 

 순간 나는 입을 열어 대답을 해버릴 거 같아서 그만 고개를 돌려버렸다. 여자는 내 목덜미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나도 내가 이상해. 그 사람도 똑같겠지. 하지만 싫어. 정말 싫어. 다들 내 인생에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개입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나도 이젠 숨 좀 틔우고 살자.”

 

 여자의 눈은 진한 슬픔에 차있는듯 했고 나는 대체 왜 그런지 영문을 알수 없었다. 썅썅은 그런 내 의문을 알아챈 듯 했다.

 

 “불안감 때문일거야.”

 

 그날 밤 여자가 잠들자 썅썅의 눈은 어둠속에서 슬프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영원할수 없는 불안감…이런 생활이 지속될수 없다는 불안감…그것이 주인을 슬프게 하고있어.”

 “…”

 “그리고 누구도 날 알아주지 못하는 소외감…이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소외감도 있어…그래서 니가 가출했을 때 나는 미쳐버릴 것 같았어. 그동안 널 괴롭혔던거…그건 다 이런 불안감과 소외감을 감추기 위한 연기였거든…솔직히 내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는 걸 누가 알겠냐. 나의 이런 능력들을 누가 알아봐줄수 있겠어.”

 

 썅썅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그를 보았다.

 

 “지금 주인 얘기 하는중이거든? 이게 왜 니 얘기로 흘러가냐?”

 “그렇다고 들어주면 안되냐? 넌 왜 그리 따지기 좋아하냐.”

 

 썅썅은 홱 꼬리를 저으며 가버렸고 나는 앞발에 턱을 고인 채 엎드렸다. 썅썅에게 퉁을 줬지만 그의 말은 내 마음속 내밀한 불안감을 건드리고 말았다. 솔직히 그가 말한 그런 불안감은 나도 느껴본 적이 있었다. 그런 느낌은 찬바람이 가슴을 훑어내리는 듯 내 마음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고 나는 여기 와서 처음으로 고개를 쳐들고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엄마...”

 “엄마는 왜.”

 “깜짝이야...”

 

 옆에서 나는 목소리에 나는 펄쩍 몸을 일으키며 썅썅을 노려보았다.

 

 “간 거 아니었어?”

 “갔다가 왔지.”

 “왜?”

 “니가 슬퍼보여서.”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스모그로 뒤덮인 도시의 밤하늘이었지만 그래도 반짝거리는 별들이 띄염띄염 보였다.

 

 “엄마가 해준 얘기중에...고양이 별이라고 있었어.”

 “고양이별? 그런 제목의 동화책을 본적 있는데.”

 “너, 보기와는 달리 은근히 책 많이 읽었네.”

 

 나의 시까스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썅썅은 꼬리를 저어 거실 한쪽에 놓인 책장을 가리켰다.

 

 “저기 있지 않냐? 내가 말하던 <고양이 전사들>이란 소설도 저기 있어.”

 “내 얘기 안들을거야?”

 

 드디어 내가 화를 냈고 썅썅은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미안...그냥 니가 슬퍼하는거 같아서 주의력 분산 시키려고 그런 것 뿐이야.”

 “누가 슬퍼해? 우리 고양이들은 슬퍼하지 않아.”

 

 나는 머리를 홱 돌려버렸고 썅썅은 곰상궂게 내 앞에 와 앉았다.

 

 “그래, 알았어. 얘기해봐. 엄마가 해주셨다는 그 고양이별 얘기.”

 “하기 싫어졌어.”

 

 나는 여전히 입술을 감쳐물고 있었고 썅썅은 그런 내 앞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지 말고 얼른 얘기해...안그럼 간지럽힌다.”

 “저리 가. 시끄러.”

 

 나는 앞발로 썅썅의 얼굴을 떠밀었다. 하지만 내 입꼬리는 어느새 살며시 올라가고 있었다.

 ......

 

 나를 대하는 썅썅의 태도가 차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더 이상 페르시안과 터키시앙고라의 귀족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썅썅은 자신의 매너를 남김없이 과시하고 있었다. 매번 내가 샤료를 먹을 동안 조용히 지켜보다가 내가 물러선후에야 접시 밑굽에 남은 사료 찌꺼기에 입을 대는가 하면, 여자가 새로 갈아준 물도 내가 입을 대기전엔 절대 먼저 마시는 법이 없었다. 게다가 잠을 잘때도 항상 나에게 포근한 잠자리를 양보하고 자신은 벽 구석에 배를 붙이고 누워자군 했다. 썅썅이 변하지 않은 거라면 네각을 뻗고 사람처럼 반듯이 누워서 자는 것이였고 여자는 그런 썅썅이 기특한지 손을 내밀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이 그래도 여자 챙기는 걸 봐. 투투가 이쁘긴 한가봐.”

 

 여자는 문득 손을 멈추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말인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알어?”

 “냐옹~~~”

 

 썅썅은 가볍게 울음소리를 냈고 그 울음소리에 여자는 또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알어? 네가 뭘 안다고…사람들도 모르는데 너네가 뭘 안다고…”

 “냐옹…”

 “너넨 몰라…아니, 어쩌면 너네는 알지도 모르겠다. 독립과 자유라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냐옹.”

 “내게 맞추려고도, 나를 맞추라고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아껴주고 사랑해줄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썅썅은 조용해졌고 거실에는 여자의 한숨소리만 들렸다. 나는 화장실로 가려고 걸음을 옮기다가 쏘파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자의 핸드폰이 진동으로 연속 울렸다. 문자가 오고있었다.

 

 -뭐해?

 -밥은 먹었어?

 -생각해봤는데...내가 잘못했어.

 -넌 정말 고양이같은 여자야. 그런데 난 고양이를 잘 안다고 자부하면서 널 몰랐어. 미안해.

 -너의 독립과 자유, 존중해줄께.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어느새 사뿐히 가벼워지고 있었다.

 ......

 

 시간은 살같이 흘러 내가 여자의 집에 온지도 어느새 석달이 되었다. 여름이 유난히 긴 이 도시는 어느새 빨간 목면꽃 망울들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창문으로 내다본 행인들의 옷차림도 차츰 가볍게 바뀌고있었다. 비싼 사료 덕분인지 아니면 여자가 사흘이 멀다하게 사주는 닭간이나 소고기 등 간식 때문인지 나는 포동포동 살이 오르기 시작했고 그런 내게 썅썅이 시선을 고정시키는 일도 차츰 많아졌다.

 

 햇살이 화창한 어느 오후 썅썅은 내 옆에 다가와 앞발을 들어 내 이마를 살짝 건드렸다.

 

 “야.”

 “왜?”

 

 나는 발딱 일어서면서 앞발로 썅썅의 얼굴을 떠밀었고 썅썅은 눈을 찌푸리면서 뒤로 성큼 물러섰다.

 

 “같이 놀자.”

 “뭘 놀건데?”

 “우리…술래잡기 놀이 할까?”

 “또 내가 달아나라고?”

 “그럼 내가 달아나? 상황이 웃기지 않냐?”

 

 썅썅의 말에 나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아직 몸집이 내 두배이상은 되는 썅썅이였고 그런 썅썅이 나에게 쫓겨 방안을 뛰어다닌다면 우스운 그림이 될 거 같았다. 나는 하품을 하고 몸을 길게 늘군후 펄쩍 뛰면서 한메터 밖으로 몸을 날렸다.

 

 “나 잡아봐라~”

 

 썅썅의 눈빛에 짙은 기색이 스쳐 지나더니 그는 곧 으르렁 소리를 내면서 질풍같이 나에게 달려왔다. 나는 온몸의 털을 바짝 세우고 거실을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가끔은 가구들에 발톱을 박으면서 거실 책장에 톺아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온 거실에서 털들을 날리면서 신나게 뛰어다니는데 바깥쪽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는 숨을 죽이고 책장뒤에 몸을 숨겼다.

 

 “누굴까?”

 

 썅썅이 거친 숨을 내쉬면서 내 귀가에 속삭였고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우리 고양이들의 후각은 특별히 영민해서 만일 여자나 남자라면 언녕 알아차릴수 있었겠지만, 지금 우리가 감지할수 있는 냄새는 생소한 사람의 것이였고 나는 귀를 바짝 세우고 문쪽으로 신경을 도사렸다. 문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리더니 잠긴 문이 삐걱 하고 열렸다.

 

 “아직 퇴근 안했나.”

 

 집안에 들어온 사람은 여자의 아버지였다. 저벅저벅 발걸음소리가 가까와오더니 책장문이 드르륵 열렸고 여자의 아버지는 책 몇권을 뽑아들고 몸을 돌려 문쪽으로 향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집안 꼴이 말이 아니구나. 이 털들은 또 뭐냐. 애도 참.”

 

 여자의 아버지가 문을 나선후 나는 발볌발볌 책장뒤에서 몸을 내밀었다. 책장문은 열린채로였고 책장안의 알락달락한 책들이 내 시선을 끌었다. 나는 냉큼 책장안으로 뛰어들어가서 책들을 앞발로 톡톡 건드렸다. 인쇄냄새와 종이냄새만 날뿐 별로 특이한 것이 없어서 몸을 돌리려는데 어느새 썅썅이 뒤따라 책장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들어오지 마. 비좁단 말야.”

 “나도 보고싶어. 뭔데? 이것들은?”

 “주인이 저번에 새로 산 책들 같은데?”

 “우와…많다.”

 “이쪽은 판타지 위주, 저쪽은 고양이소설 위주, 그리고 여긴...”

 

 나와 썅썅은 책들을 이러저리 건드리면서 도란도란 말들을 주고받았다. 갑자기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책 한권이 바닥에 떨어졌고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서로 쳐다보다가 화닥닥 책장안에서 뛰쳐나왔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곧 여자가 퇴근할 때가 되었던 것이다.

 ......

 

 그날 저녁 썅썅은 여자에게서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밥을 먹고 책장을 정리하면서 여자는 화를 내고있었다.

 

 “이제는 책장에까지 손을 뻗쳐? 내가 책들은 제일 아끼는데 이게 뭐야? 책장안에 털이 가득하고 책들은 다 흩어져있고…썅썅…너 이제 책장도 열줄 아니? 넌 참 가지가지 한다.”

 “손이 아니라 발을 뻗쳤겠지…”

 

 나는 가만히 한마디 받았고 여자는 여전히 화를 냈다.

 

 “암튼 썅썅 니가 문제야. 온 거실에 니 털이 널려서 꼭 마치 눈이 온 거 같잖아. 저넘 털을 내가 언젠가는 싹 깎아치우지 않나 봐.”

 

 나는 고개를 돌려 썅썅을 보았다. 여자의 말대로 썅썅의 목앞 긴 털들은 지저분 하다못해 엉켜붙기까지 했다. 목욕을 자주 시키는데도 장모종 고양이들의 털은 케어가 어려운가 보다. 내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여자는 당장 말을 행동에 옮겼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썅썅은 이미 가위를 든 여자앞에서 몸을 움츠리고 비실비실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가만 있어. 잠깐이면 되니까.”

 

 여자는 썅썅의 목을 어루만지다가 곧바로 가위를 들이댔다. 털들이 잘려지는 소리가 사락사락 났고 썅썅은 한참 멍해있다가 급기야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비틀었다.

 

 “냐옹~~~”

 “가만 있으란데! 여기 다 엉켜붙어서 지저분하기도 하고 이제 더워지면 어떡해. 이건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

 “냐옹냐옹~~~”

 

 무서울만도 했다. 조용한 방안에서 울려퍼지는 사락사락 소리는 우리를 공포의 심연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나는 여자가 나를 발견할새라 부랴부랴 책장뒤에 숨어서 숨소리를 죽였다. 썅썅이 심하게 몸부림을 치는지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가만 못있어?! 왜 이렇게 말을 안듣는 거야. 그러다 가위에 목이라도 찔리면 어떡하려고!”

 

 매가 은을 냈는지 썅썅이 잠자코 있는듯 했고 그 사락사락 소리는 한시간 남짓이 지속되었다. 드디여 여자가 홀가분한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제야 천천히 책장뒤에서 기어나왔다.

 

 “됐다. 이젠 더 이상 엉켜붙지 않겠지. 너도 투투처럼 장모종이 아니라면 이럴 필요까진 없었잖아.”

 

 나는 남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썅썅의 모습을 돌아보다가 그만 큰 숨을 들이켰다. 여자의 이발기술은 형편없었던 것 같았다. 온몸의 털이 군데군데 잘려 전혀 원형을 알아볼수 없게 된 썅썅이 덕지덕지한 몰골로 내쪽으로 오고있었고 나는 그런 썅썅을 향해 소리쳤다.

 

 “오지마!”

 “지금 내가…어떻게 되었어?”

 

 내 목소리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썅썅은 속도를 내어 내쪽을 향해 달려왔다. 내가 서있는 거실 문가쪽에는 큰 거울이 있었고 썅썅은 그 거울을 지나다가 펄쩍 뛰면서 크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한참후에 다시 눈을 떠보니 썅썅은 머리를 털면서 거울을 바라보다가 믿기 어렵다는 듯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한참 지나서야 그는 시선을 거울쪽으로 고정시킨채 멀거니 나를 향해 한마디 던졌다.

 

 “저건…누구야.”

 “...”

 “냐앙!!!”

 

 썅썅은 문득 상황파악이 된 듯 비틀거리더니 갑자기 미친듯이 바닥에서 뒹굴면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여자는 썅썅을 놀란 눈길로 바라보다가 허둥지둥 달려와서 썅썅을 끌어안았다.

 

 “썅썅…괜찮아. 털만 자른 거야. 이제 몸의 털이 다 자라나면 또 괜찮을 거야. 너무 엉켜붙잖아. 그냥 놔두면…”

 “냐아앙!!!”

 

 썅썅은 여자의 손길을 피하더니 부들부들 떨면서 방구석으로 깊숙히 숨어들었고 나는 눈앞의 상황을 주시하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페르시안과 터키시앙고라 같은 장모종 고양이의 자부심이 바로 자신의 긴 털이였음을 여자가 어찌 알수 있으랴!

 

 장모종 고양이에게 털을 잃었다는 건 곧 자신을 잃었다는 상징이였고 그것은 어쩌면 썅썅같은 귀족고양이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잔인한 일이였던 것이다.

 

 “난…여길 당장 떠날거야!”

 

 그날 밤…나에게 이 말을 하는 썅썅의 눈은 어둠속에서 형형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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