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물은 꼭 정수기에서 받아서 주고 화장실 변기뚜껑은 닫아둬. 물 없으면 애들이 거기 말을 마시니까.”
“알았어.”
“음식은 이틀에 한번 두그릇 꼴똑 주면 되고 사료그릇은 저기에 있어.”
“응.”
“화장실은 이틀에 한번, 늦어도 사흘에 한번은 쳐줘야 해. 고양이모래는 베란다에 있어.”
“알았어.”
“그다음 외로움을 잘 탈거니까 가끔 와서 놀아줘야 하고 또…”
“걱정마. 내가 다 알아서 할께.”
“일정이 한달이지만 경우에 따로 며칠 더 지연될수도 있어. 그때까지만…”
“그정도는 내가 돌봐줄수 있어. 자주 올께.”
여자가 남자를 데리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인계를 해주고 있었고 나는 여자의 시름겨운 얼굴을 바라보면서 과연 남자가 우리 일상을 돌봐줄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에 벌어진 일들은 나의 이런 걱정이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해주었다.
이틀이 지난후 여자는 우리를 몇번이나 번갈아 껴안아 준후에 출장길에 올랐다. 집을 나서기전 여자는 자신의 침실문을 활짝 열어놓고 나와 썅썅을 불러들였다.
“여기 겨울은 난방장치가 없어서 집안이 많이 추울거야. 내가 있을땐 사람 온기도 있고 에어컨도 켜놓아서 괜찮지만 집이 비면 너네 둘이 서로 의지해야 한다. 알았지? 내가 털담요를 침대에 펴놓을 테니까 이불삼아 덮어.”
언제부터인가 여자는 우리를 상대해서 이렇듯 길게 말하길 좋아했고 나와 썅썅은 알았다는 듯 여자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남자가 트렁크를 들고 여자를 재촉했다.
“전기담요 스위치는 절대 켜지 말아.”
남자의 당부에 여자는 머리를 끄덕였다.
“한달 비우니까 전자제품 코드는 모두 빼놓았어. 이건 그냥 얘들이 이불삼아 덮게 하려고…”
여자는 둬걸음 옮기다가 아쉬운듯 다시 머리를 돌려 나를 돌아보았다.
“투투는 체질이 약한데…얘네 좀 자주 들여다봐줘.”
“걱정하지 말아. 내가 올수 없으면 내 룸메이트한테 부탁할테니까.”
탕! 하는 문소리와 함께 집안에서는 한참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썅썅을 돌아보았고 썅썅은 나와 시선이 부딪치자 눈을 가슴츠레 뜨고 코수염을 찡긋했다.
“이제부턴 자유다…”
“한달 맞지?”
“응, 나도 그렇게 들었어.”
나는 풀쩍 뛰었다가 가볍게 착지해 섰고 썅썅도 기쁜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우리는 멀리서부터 냅다 달려서 닫아놓은 침실 문에 퉁 하고 부딪쳤다가 다시 방향을 돌려 거실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가기를 거듭했다. 한참 달리고나니 우리는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렸고 나는 벌러덩 거실 바닥에 배를 붙이고 드러누웠다. 썅썅도 내 곁에 다가와 털썩 모로 누웠다.
“이젠 주인 눈치 안보고 뛰어놀수 있어서 좋네.”
“쉿!
나는 썅썅의 말을 자르면서 조용히 공기속으로 귀를 기울였다. 썅썅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바람소리인거 같아.”
나는 귀를 쫑긋 세운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코숏은 청각이 발달했고 페르시안은 후각이 발달했다고 한다. 썅썅이 소고기 냄새에 민감하고 내가 샤워기소리에 민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날 청각이 인간의 200배정도가 되는 내 귀에 전해진 것은 바로 그해 겨울의 지독한 한파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느라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고 있는 소리였다.
......
여자가 떠난 이틀후, 우리는 남태평양의 한류 영향으로 따뜻한 기온을 유지해왔던 이곳 도시 에는 50년이래 처음으로 전대미문의 대폭설이 터졌다는 것을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는 남자의 입에서 알수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부탁이 신경 씌였는지 매일 한번씩은 여자의 집으로 들어섰고 우리가 엉망진창으로 만든 사료 그릇을 거두면서 근심조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추워져서 어떡하냐? 정아 두꺼운 옷 안챙긴 거 같은데...”
그러던 어느 하루 집에 와서 우리 화장실 모래를 바꿔주려던 남자가 문득 전화 하나를 받았다. 전화를 받던 남자는 금세 낯색을 흐리더니 밖으로 뛰쳐나갔고 나는 썅썅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내 이럴줄 알았지.”
“뭐가.”
썅썅이 스적스적 옆으로 다가왔고 나는 화장실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길 봐. 모래 안바꿔줬어. 이젠 어떡할거야.”
“어쩔수 있냐. 일단 적게 먹어야지. 그리고 우리 화장실 다 차면 이쪽 화장실 이용하자.”
썅썅은 여자가 쓰는 화장실에 눈길을 돌렸고 나는 머리를 끄덕이다가 슬그머니 침실로 들어갔다. 벌어진 문틈사이로 싸늘한 바람이 불어들어와 왠지 오싹 추운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 밤, 텀담요를 덮고 자던 나는 갑자기 으스스 떨리는 감을 느끼며 몸을 바싹 말고 머리를 두 앞다리사이로 밀어넣었다. 몽롱한 가운데 어제까지만 밖에서 자던 썅썅이 텀담요 한쪽을 들추고 안으로 기여들어오는 것이 보였고 나는 와뜰 놀라 발로 썅썅을 힘껏 밀어냈다.
“가.”
“왜?”
“몰라서 물어?”
“춥잖아.”
“나 몸살기운 있어.”
썅썅은 내 말에 동공을 확대하더니 휴우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야, 그러니까 내가 필요해. 난 장모종 고양이잖아. 봐, 털도 다 자라났어. 나한테 기대면 춥지 않을거야.”
나는 두 앞발로 머리를 감싸고 뒤로 돌아누웠다. 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대폭설이 이 도시에 주는 영향은 어마어마했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뼈속깊이 침투하는 진정한 추위를 실감할수 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이를 사려물었고 그런 나를 썅썅이 살그머니 다가와 껴안았다. 떨리던 몸이 차츰 안정을 취하고 있었고 나는 온몸이 경직된채로 숨소리를 죽였다.
“이젠 괜찮아?”
“응…”
“너 오전부터 지금까지 잠만 잔거 알아? 코도 젖고.”
“…”
“감기인 거 같아.”
썅썅의 말에 나는 귀를 쫑긋 곤두세웠다.
“감기 알어?”
“응. 또 우리는 감기 걸리면 잘 낫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
나는 비틀거리며 썅썅의 품을 벗어나려다가 썅썅이 힘을 주는바람에 그만 그의 품안에 도로 쓰러지고 말았다. 썅썅이 나직이 내 귀가에 속삭였다.
“니가 뭘 생각하는지 알아.”
“…”
“우리는 감기에 걸리면 잘 낫지 않고, 쉽게 감염되기도 하고 쉽게 다른 고양이에게 전염시키기도 하지. 하지만 그런건 걱정마.”
“…”
“고양이 감기라는 건 고양이 상부호흡기증후군이라고 말할수 있어. 특히 여러마리의 고양이들이 같이 생활할 때 감염 가능성이 높아지는 전염성 질환이지. 우리 감기의 바이러스는 세균처럼 항생제에 단번에 반응하지 않아. 그래서 설사 약이 있다 해도 넌 스스로의 면역력을 동원해야 하고, 감기증상의 호전에도 꽤 시간이 걸리게 될거야. 감기가 심해 기침을 하게 되면 심장의 문제까지 일으킬수도 있으니 넌 기침만 하지 않게 잘 조섭해야 해.”
썅썅은 의외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나는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떴다. 뒤이어 내 귀를 파고드는 썅썅의 진지한 목소리에 나는 갑자기 울컥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젠 내가 널 훈련시킬 시간이야.”
“...”
“이런 걸 상부상조라고 하지. 면역력 훈련...니가 꼭 이겨나갈수 있을거라고 믿어. 터키시앙고라와 페르시안 이름을 걸고 내가 장담할거야.”
나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창밖에서 바람이 기승을 부리며 세차게 불고 있었다.
......
나는 사흘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식욕도 없었고 내처 자기만 했으며 썅썅이 사료그릇을 가까이 밀고와도, 물을 앞발에 적셔 내 입가에 조금씩 떨궈줘도 전혀 일어나지 못했다. 중간에 한번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가 사료를 주고 우리 화장실을 들여다보다가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단언컨데 결코 남자는 아니었다. 여자와 남자의 체취는 우리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집안의 환경은 차츰 악렬해졌고 내 감기도 전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 썅썅이 극진히 간호했기에 아직 기침만은 하지 않았다.
사흘후에 나는 돌덩이처럼 무거워나는 머리를 쳐들고 걱정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썅썅에게 말했다.
“썅썅…나 이대로…그냥 못일어나면 말이야.”
“바보 같은 소리.”
썅썅은 나에게 퉁을 주면서 창밖으로 머리를 돌렸다.
“고양이중에서 가장 악착스런 코숏의 생존본능이 겨우 이정도였냐?”
“…”
“체온은 떨어진 것 같지 않은데…”
“체온이 떨어지면 낫는 걸까.”
“바보…체온이 떨어지지 않아야 낫는 거야. 고양이들한테는 따뜻한 환경이 제일 좋은거 거든. 우리가 뭐 사람처럼 열이 내려야 낫는가 하냐?”
“...”
“이 집에 오기전 내 절친이 고양이 감기로 무지개다리를 건넜어. 그래서 내가 잘 알아.”
썅썅은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후 한쪽에 있는 사료그릇을 가까이 밀어왔다.
“조금 먹고 힘이라도 내. 그래야 면역력이 강해져. 어떻게 식욕 당기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나는 썅썅이 근심할까봐 모래알 같은 사료를 억지로 몇입 삼켰다. 갑자기 욱 하는 소리와 함께 위속에서 뭔가 방치같은 것이 올리치미는 듯 하더니 나는 방바닥 가득 거품을 토해놓고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내 몸은 오바이트로 심한 경련이 일었고 썅썅이 급히 달려와서 내 등을 쓰다듬었다. 나는 한참 숨을 할딱거리다가 얼마 남지 않은 미약한 힘으로 썅썅을 뿌리쳤다.
“가.”
“안돼.”
“가. 전염된단 말이야.”
“지금 그게 문제야? 니 체온 유지하는게 중요해.”
“둘다 앓아눕는 것보단 낫지 않니? 주인이 왔을 때 우리 둘다 보이지 않는게 좋겠어? 저쪽 멀리로 가.”
“차라리 내가 같이 앓았으면 좋겠어!”
썅썅의 말에 나는 잠깐 멍해졌고 썅썅은 그런 나를 내려다보다가 뭔가 결심이라도 내린듯 뒤로 물러섰다.
“투투…”
“응.”
“두시간만 혼자 있을수 있겠지?”
“어딜 가?”
“잠깐 나갔다 올께. 두시간만…두시간만 혼자 있어줘.”
“밖은 추워.”
“괜찮아.”
“어딜 뭘 하러 가는데?”
“니가 몰라도 돼. 그냥 잠깐 나갔다 올께.”
“나 혼자 있는 거…싫단말야.”
강추위에 나갔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되어 들어온 엄마의 모습이 머리를 스쳐 나는 울먹거렸다. 썅썅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면서 혀로 내 머리털을 부드럽게 핥아주었다.
“꼭 두시간안에 올 테니까. 약속해.”
“정말?”
“응…꼭 돌아올께.”
“알았어.”
나는 겨우 머리를 끄덕였고 썅썅은 비장한 기색으로 뒤로 물러섰다가 몸을 돌려 거실로 나갔다. 이윽고 툭 하는 소리가 들렸고 열린 베란다 문으로 찬바람이 새여들어왔다. 나는 몸을 움츠리면서 털담요를 꽁꽁 여몄다. 집안은 차츰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또다시 몽롱한 꿈나라로 빠졌다.
비몽사몽중에 누군가 내 수염을 간지럽혔고 나는 언젠가 맡았던 강렬한 사향고양이 냄새에 천근같이 무거운 눈거풀을 들었다. 어렴풋한 내 시야로 들어오는 것은 크다란 얼룩 무늬였다. 나는 하악 소리를 내면서 털담요속으로 깊숙히 몸을 감췄다.
“누구얏!”
“쉿!”
얼룩무늬는 킹이였다. 킹은 눈을 가슴츠레 뜨고 나를 주시했다. 어둠속에서 그의 눈은 날카로우면서도 현란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
“여긴…여긴 왜 왔어?”
온몸에 식은땀이 쫙 내배이는 감을 느끼며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눈앞의 거물을 상대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킹은 과연 이 동네 우두머리 답게 싸늘한 눈매와 예리한 이발, 웅장한 체구에 넙적한 큰 발을 가지고 있었다. 킹의 몸은 야생고양이답게 단단하게 다져진 몸이였고, 뒷다리쪽에는 손가락 길이만한 상처흔적이 어렴풋하게 남아있었다. 킹은 내 시선이 머무는곳을 의식하고 한쪽 수염을 치켜올리며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에 네 주인한테 쫓겨서 뛰어내리면서 돌멩이에 찢긴 흔적이지.”
“…”
“그 잘난 주인한테서 별로 잘 지내는 것 같지 못하구나. 그래, 그동안 생각 잘했니? 이 동네 퀸으로 시켜준다는 내 말 잊지 않았겠지?”
“싫다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겨났는지 몰랐다. 아마 며칠을 앓고난 내가 고열에 시달리면서 머리가 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킹이 그런 식으로 여자를 말하는 것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흐릿한 가운데서 킹의 등뒤로 하얀 그림자가 소리없이 덮치는 것이 보였고 나는 팽팽했던 신경을 풀며 맥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캬악!”
거실에서는 투닥투닥 소리가 들렸고 썅썅의 으르릉거리는 소리는 전에없는 위엄이 넘쳤다.
“아직도 겁없이 여길 찾아온 거야? 내가 있는한 절대 너를 마음대로 하게는 못해!”
“크으…애완고양이가 많이 컸구나. 하지만 너는 항상 말뿐이었고 언제 한번 저 아이를 제대로 지켜준 적 없었잖아. 지금도 저런 된감기에나 시달려 목숨이 경각을 다투게나 하고. 너란 녀석은 너무 무능한게 아니냐?”
“뭐?”
“여자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주제에 감히 이 동네를 지키는 킹을 상대하겠다고? 썩 꺼져.”
“안돼.”
“오늘은 어떻게 하든 꼭 저 아이를 데려갈거야. 날 따라가면 호의호식은 몰라도 몸을 튼튼히 보호할수는 있어. 난 절대 너처럼 저렇게 병약하게 나두진 않을거란 말이다.”
“왜 하필 우리야?”
썅썅의 말에 킹은 어이 없다는듯 허공을 쳐다보았다.
“제대로 말하면 너네가 아니고 저 아이야. 너같은 건 내게 아무 의미도 없고 난 저 아이를 데려가고 싶을뿐이라고.”
“그러니까 그게 왜?”
“이건 다 인연이고 운명이 아니겠어?”
“운명…웃기지 마. 인연이라면 내 인연이고 운명이라면...투투 역시 나의 운명이야.”
썅썅의 말은 어느덧 내 마음을 움직였다. 킹이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니 운명? 내가 저 아이라면 너 같은 나약한 녀석을 마음에 두지 않겠다. 내가 저 아이라면 당장이라도 여길 떨치고 나서서 나를 따라 갈것이고 이 철창 없는 감옥도 벗어날 것이야.”
“잔말 말고 오늘은 제대로 승부를 겨루자. 내가 이기면 넌 당장 이 동네를 떠나야 하는거다. 알겠냐?”
“반대로 내가 이기면? 저 아이를 보낼거냐?”
킹의 목소리도 도발적으로 들려왔고 썅썅은 잠깐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네가 이기면 내가 이 집을 떠날거야. 그땐 어디로 가든 투투 마음에 달렸겠지?”
나는 더 이상 듣고있을수 없어 비칠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썅썅이 목을 번쩍 쳐들고 앉아있었고 킹은 베란다를 등지고 찬바람을 등지고 있었다. 거실의 공기는 당장 터질듯이 팽팽했고 두 숫코양이는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곧 일어날 치열한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어…”
내 얼굴을 맞받아오는 찬바람에 나는 저도 모르게 기침이 터졌다. 썅썅이 펄쩍 뛰더니 나를 향해 달려왔고 킹은 썅썅이 펄쩍 뛰는바람에 자신도 놀라 뛰면서 허공중에서 앞발을 휘둘러 썅썅을 공격했다. 삽시에 썅썅의 흰 털이 거실에 날렸고 썅썅은 허리에 기다란 상처를 남긴채 나를 막아섰다. 킹은 멈칫하더니 득의양양해서 입을 열었다.
“자, 이로써 승부가 가뤄진 것이 아닌가? 누가 이겼는지 투투…네가 증명할수 있겠지?”
“빨리 들어가! 여긴 바람받이란 말이야. 기침하면 안돼. 빨리 집안으로 들어가!”
썅썅은 킹을 아랑곳하지 않은채 호통쳤고 나는 머리를 저으면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한마디만 할께…”
나는 썅썅의 상처입은 허리를 바라보다가 킹을 보면서 기침을 참고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왜 꼭 날 데려가려고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난 썅썅을 좋아해.”
킹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고 나는 천천히 썅썅의 곁으로 다가갔다. 썅썅이 몸을 흠칫했다.
“투투…”
“내 기침이…니 승부보다 중요한 거였냐…”
“...”
“선제공격에서 기회를 잃으면 너한테 얼마나 피해인줄도 몰라? 이 바보야.”
“너야말로 바보야! 기침을 하면 니 병이 얼마나 중해지는지도 몰라?”
나는 눈을 들어 썅썅의 시선을 마주했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 얽힌 시선은 무수한 말을 한 것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킹은 그런 우리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베란다쪽으로 몸을 옮겼다. 잠시후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베란다 문이 닫혔고 킹은 베란다 밖에서 우리를 한번 돌아본후 몸을 날려 아래로 뛰어내렸다.
문밖에는 바람이 차츰 잦아들고 있었고 내 가슴속에는 봄빛이 서서히 깃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