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여자는 정확히 한달이 더 걸려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못본 사이에 여자는 몰라보게 변해있었다. 남자의 말을 빈다면 여자와 나 둘다 몰라보게 살이 오르고 이뻐졌다는 것이다. 여자는 짐정리를 하다말고 남자에게 종주먹을 안겼다.
“뭐야, 그럼 내가 고양이랑 같은 등급이라는 거야?”
“그럼 아닌줄 알았어? 너 스스로 얘들 엄마라고 했잖아.”
남자는 한심하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고 여자는 발을 탕 구르더니 나를 덥썩 안았다. 나는 큰 숨을 들이키면서 여자의 품에 바싹 붙었고 여자는 나를 안고 거실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어디가, 어디가 같다는 거야.”
여자가 투덜거리다 말고 거울속의 나를 바라보면서 내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요 이쁜 것.”
“빨리 짐정리 하고 선물들 챙겨. 아버님이 잠깐 보자고 부르셨어.”
여자와 남자가 집을 나선후 나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모든 것이 제 궤도로 되돌아왔어…이젠 드디여 원상복귀 된 거야.”
“원상복귀는 아니지.”
썅썅이 볕쪼임을 하면서 느긋하게 내 말을 받았다.
“우리한테 식구가 늘었으니까.”
“그래…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해. 그러니 썅썅…우리 영원히 이렇게 살자. 알았지?”
나는 썅썅을 쳐다보았고 썅썅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이다가 문득 화제를 돌렸다.
“그럼 오빠는 안찾을 거야?”
“오빠?”
“임신하더니 건망증이 심해졌네. 니가 저번에 말했던 오빠…널 위해 자기를 희생했다던 오빠 말이야.”
“…오빠...”
“지금 행복에서 어쩌면 그것이 유일하게 부족한 부분 아니야?”
“아니, 안찾을 거야.”
나는 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있겠지…오빠는...꼭 그러리라 믿어. 그러니…안찾을 거야.”
썅썅은 뭔가 생각을 더듬는 듯 했고 나는 고집스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야. 난 그 말을 믿어.”
“무슨 말?”
“나를 찾아오겠다던 오빠의 말…”
썅썅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고 나는 시선을 들어 봄바람에 스치는 창밖의 목면꽃을 보았다.
“막연한 것 같지만…나는 내 감을 믿어. 오빠는 날 찾아올 거고, 나는 그때 가서 오빠랑 너랑 우리 아기랑 행복하게 살수 있을거야.”
후에 안 일이지만 고양이의 감이란 어느정도…딱 그 어느정도만 적중한 것이였다.
......
여자는 출장에서 돌아오자 회사에서 승진을 하고 재택근무를 하기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우리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여자와 온종일 집에 있는다는 것이 신이 났지만 곧 태어날 새 생명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나는 사뭇 조바심까지 들었다.
“왜 두달이 거의 되었는데 아직 출산기미가 보이지 않을까?”
여자도 불안했는지 모니터에 눈을 박은채 남자에게 말을 건넸고 남자는 귀찮다는 듯 뒤로 벌렁 누우며 대꾸했다.
“때가 되면 낳겠지.”
“그러고보니 당신은 왜 출근 안해?”
“나 휴가 냈어.”
“언제?”
“저번에 니가 출장갔을때...나도 휴가를 냈거든. 아직 몇일 남았어.”
여자가 남자에게 머리를 돌렸고 남자는 여자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요즘 은근히 날 간섭한다?”
“내가 언제?”
여자는 입술을 깨물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혹시 요즘 무슨 일이 있어?”
“아니.”
“그런데 내가 출장갔다 온다음부터 전보다 변한거 같아서.”
“뭐가.”
남자의 말투에는 살짝 짜증이 섞였고 여자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당신 지금…나한테 화내는 거야?”
“짜증나서 그래.”
남자는 더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여자는 잠깐 침묵했다. 여자의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급기야 볼을 타고 주르륵 굴러내려왔다. 남자는 여자의 침묵에 머리를 돌렸다가 여자의 눈물을 발견하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참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냐.”
“대체 왜 이래? 왜 전과는 달라진 건데?”
여자의 목멘 소리에 남자는 눈살을 심하게 찌푸렸다.
“어디가 달라졌는지 제대로 말 좀 해봐.”
“항상 내게 양보를 했고 이렇게 짜증 많지 않았어, 당신.”
“꼭 따지고 들어야 하겠냐? 모르는 척 지나가주는 건 안돼?”
“모르는 척...그 말 참 잘했어. 내가 출장갈때 그렇게 부탁했는데 당신은 제멋대로 집 비웠었다며? 애들 잘못되었으면 어쩔뻔했어? 난 그거 다 지나가줬잖아.”
“내가 왜 집을 비웠는지는 안물어보냐? 난 그 일때문에 룸메이트랑 불화까지 생겨 집도 내놨는데…나라고 얘네 상관하기 싫어서 그래? 왜 넌 항상 사람보다 동물이 더 중요하지?”
여자는 억이 막혔는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쏟았다. 남자는 벌떡 일어서서 겉옷을 챙겨들고 문밖으로 사라졌다. 문이 쾅 하고 닫히자 여자는 무너지듯 쏘파에 주저앉았다.
“내가 잘못한 거야?”
여자는 쏘파위에 뛰어오른 내 목덜미를 어루만지면서 눈물이 글썽해서 혼자 중얼거렸다.
“왜 저렇게도 야속하지? 이해 못하는 건 아닌데…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거지?”
“냥…”
나는 여자를 달래주려고 가늘게 울음소리를 냈다. 순간 배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나는 맥없이 여자의 손에 머리를 떨구었다.
“냥…”
“투투…왜 그래? 투투…투투…어떡해...투투가 이상해!”
여자의 부름소리가 점점 커졌고 썅썅이 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곁에 다가온 썅썅은 경악의 표정을 지었고 나는 썅썅의 시선을 따라 내 몸아래로 눈길을 돌렸다.
붉은 피가 내 눈을 자극하며 서서히 쏘파를 물들이고 있었다.
......
여자의 호출을 받고 집으로 온 근처 동물병원 젊은 수의사는 내 상태를 보더니 촉산제를 가져와야 한다며 다시 집문을 나섰다. 고립무원이 된 여자는 허둥대면서 휴지를 가져오고 미리 만들어둔 종이박스안으로 나를 들어서 옮겼다. 하지만 크다란 통증으로 더이상 견딜수가 없게 된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박스안에서 기여나와 다시 여자에게 기대누웠다.
그때 생각으로는 어쩐지 여자의 곁에 붙어있어야만 내가 살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겪는 산통에 내 몸은 열이 올라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여자는 한손으로 나의 앞발을 꼭 잡은채 다른 한손으로 내 배를 아래로 내리쓸었다.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던 진통이 기적처럼 여자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조금씩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썅썅...넌 나가있어. 이 방 출입금지야.”
“냥…”
나를 낳아준 엄마도 이런 고통을 겪었을까…그와중에도 울컥 하는 기분이 들면서 나는 꼭 이런식으로 태어나야 하는 이 세상 모든 생명체의 생의 의의가 구경 무엇일까 하는 의혹이 들었다. 여자는 거의 실신에 가까운 내 모습에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이였다.
“어딜 간 거야…나를 이렇게 버려두고…투투…힘내야 해. 절대 무슨 일이 있으면 안돼.”
“냥…”
여자가 휴지를 버리러 화장실로 간 틈에 나는 비칠거리면서 일어나 여자의 뒤를 따랐다. 몸을 돌리던 여자는 깜짝 놀라 나를 안아들었다.
“투투…너 지금 피를 흘리고 있어. 좀 움직이지 마.”
“냥…”
“그냥 누워있어…지금 애기 발이 나오고있어.”
여자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중얼거렸고 나는 여자의 말에 잠시 누워서 안정을 취했다. 여자는 내 몸을 내려다보다가 한쪽으로 일회용 고무장갑을 준비하면서 한쪽으로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지금 투투가 아기를 낳으려고 해요. 그런데 한쪽 발부터 나오고있어요. 전에 엄마가 그랬잖아요. 이러면 난산 아닌가요?”
수화기 저쪽에서 여자의 엄마가 머라 했는지 여자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해쓱해졌다.
“그럼 어떡해요. 도로 밀어넣으라구요? 태줄이 목을 감아 질식해서 죽을수도 있다구요?”
“…”
“엄마 좀 와서 도와주면 안돼요? 엄마 전에 이런거 많이 경험해보셨다 했잖아요.”
“…”
“알았어요. 안와도 돼요. 내 고양이…내가 살릴 거에요.”
여자는 탕 하고 소리나도록 전화를 끊고 결심이라도 내린 듯 일회용 장갑을 손에 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여자는 내 아래쪽으로 손을 대고 뭔가를 밀어넣었다. 순간 커다란 통증이 몸을 엄습했고 나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여자는 눈물이 글썽해서 내 배를 살살 쓰다듬었다.
“투투…조금만 참아. 지금 한쪽 발이 나와서 위험해. 이러면 나오는 시간이 길어지고 탯줄이 목에 감겨 아기가 질식할수 있어. 자칫하면 너까지 위험해.”
“냐앙!”
“한번 더…한번 더 힘줘봐.”
나는 두 앞발을 쭉 펴면서 하체에 힘을 주었고 여자는 머리를 흔들면서 다시 장갑을 바꿨다.
“또 한쪽 다리야. 이건 안돼. 한번 더 하자.”
나는 큰 숨을 몰아쉬면서 한참 가만히 있다가 젖먹던 힘까지 다 내어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갑자기 뭔가 쑥 빠져나오면서 맥이 쫙 풀리는 느낌이 들었고 여자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내 귀에 전해왔다.
“됐어. 이제야 꼬리하고 두 발이 같이 나왔어. 근데 움직이지 않아. 투투…힘 줘,조금만 더…조금만!”
“냥!”
애초에 나도 이렇게 이 세상에 나왔을까…투명한 막에 씌운듯한 끈적끈적한 물체가 드디어 여자의 장갑안에 떨어졌고 나는 한참 멍해있다가 본능적으로 허겁지겁 태막을 벗겨서 입안에 구겨넣었다. 보기에도 앙증맞은 흰 아기고양이가 자신의 존재를 이 세상에 알리려는듯 입을 짝짝 벌리며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
나는 기진맥진해서 자리에 드러누웠고 여자는 눈처럼 희고 작은 고양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죽었어!아기 고양이가…죽고 말았어.”
죽다니...내 아기가 이렇게 죽다니...눈을 뜨고 싶었지만 내 눈거풀은 천근무게라도 달아맨 듯 아래로 처지기만 했고 의식도 차츰 희미해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덜컹 문이 열리면서 남자가 집안에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고 여자는 쿨쩍이면서 내 몸을 들어 조심스럽게 담요위에 놓아주었다.
“어떻게 됐어?”
“당신 도대체 어디 간 거야! 내가 투투만 신경써서 아기고양이가 죽고 말았어! 엉엉…”
“울지마. 원장님 같이 왔어.”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남자가 옆으로 비켜섰고 남자뒤를 따라들어온 동물병원 젊은 수의사는 내 곁으로 다가와서 나를 들여다본후 고무장갑을 끼고 아기고양이를 살짝 집어들었다.
“구해줘…”
나는 눈을 감은채 미약하게 중얼거렸고, 여자는 눈물을 닦으면서 수의사에게 물었다.
“살려낼수 있을까요?”
“배속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 질식했군요. 그리고 몸도 너무 찹니다. 난풍기나 드라이어기 같은거 없으세요?”
“드라이어기 있어요.”
“그럼 그거라도 주세요. 타올 한장 가져오구요.”
남자는 드라이기를 가져왔고 여자는 커다란 타올 한장을 가져왔다. 수의사는 타올로 아기고양이의 몸을 꼼꼼히 닦은후 드라이기로 아기고양이의 털을 한차 말려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기고양이 입에 대고 인공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가 깜짝 놀라 시선을 나누었고 젊은 수의사의 이마에는 땀이 조금씩 내배이고 있었다.
“빽!”
아기고양이의 미약한 울음소리가 터진 건 바로 수의사가 인공호흡을 한지 15분쯤 되어서였다. 남자와 여자는 그 울음소리에 길게 숨을 내쉬었고 수의사는 땀을 닦으면서 여자에게 아기고양이를 건네주었다.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게 하고 큰 고양이를 돌보십시오. 아마 한마리만 낳지 않을거에요.”
“지금 배속에 더 있는지 봐줄수 있을까요?”
“지금 상황에서는 판단하기 어렵네요.”
“보통 얼마 지나서 더 낳게 되나요?”
“고양이에 따라서 틀립니다. 반시간이나 한두시간안에 낳는 경우도 있고 하루 지나 낳는 경우도 있습니다. 촉산제(催产剂)주사를 가져왔으니 한대 놔드릴께요.”
“감사합니다.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게 주사를 놓고 수의사를 가버리자 여자는 내곁의 아기고양이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아기고양이는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눈을 꼭 감은채 머리를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고 여자는 그런 아기고양이의 모습이 신기한 듯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얼굴을 돌렸다.
“아기고양이 이름 생각했어.”
“머라고.”
“포동이…아까부터 지켜봤는데…발이 너무 포동포동해. 몸도 통통하고.”
“포동이라…귀여운 이름이네. 그럼 애명은 포포라 하지.”
남자와 여자는 마주보면서 조용히 웃었고 나는 눈을 감은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날 밤, 여자가 잠든 틈에 나는 또 한번의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미처 손쓸 사이 없이 또 하나의 생명이 이 세상에 나왔고 나는 아까처럼 태막만 거둬줬을뿐 아무런 도움도 줄수 없었다. 태어난지 몇초도 못되어 그 가녀린 생명은 입을 짝 벌린채로 마지막 숨을 몰아쉰후 자기가 미처 지내보지도 못한 이 세상을 무기력하게 떠나고 말았다. 포포와 쌍둥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눈처럼 희디흰 아이였다.
여자와 나의 경험부족으로 빚어진 비극이였다. 이튿날 아침 그 참상을 본 여자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남자가 여자를 달래면서 싸늘하게 식은 아기고양이의 시체를 두터운 종이에 싸서 내갔다.
나는 멍하니 남자의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삶과 죽음의 경계란 고작 한발 차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슴이 먹먹하게 저려오고 있었고 포포가 칭얼대며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포포는 그렇게 우리 곁으로 왔다. 썅썅을 꼭 빼닮은 고양이였다. 다른 점이라면 썅썅은 머리위에 검은 털이 두줄 나있었는데 포포는 눈처럼 흰 색상이였고 털이 썅썅보다 조금 짧았다는 점이다. 페르시안 고양이와 코숏 고양이의 특점을 모두 빼닮은 놈이였다. 그것도 결점들만 골라서…
평온한 이 집에 포포를 비롯한 새로운 생명들이 탄생하면서, 그동안 어렴풋이만 느꼈던 고양이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는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조금씩 우리의 목을 옥죄여오고 있었다.
......
포포는 혼자 젖을 먹어서인지 하루가 남다르게 쑥쑥 커갔다. 여자의 아버지가 구경왔고 여자의 친구도 소세지를 가지고 포포를 보러 왔다. 나는 경계의 눈빛을 하고 남자가 만들어준 상자안에 웅크리고 앉아있었고 여자는 그들에게 쉴새없이 그날의 그 정경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아요? 엄마한테 전화했더니 엄마는 와주지도 않고…결국 나 혼자 다 받아냈단 말이에요. 그랬기에 망정이지…”
“결국은 원장님이 도와준 거잖아.”
남자가 빙그레 웃었고 여자는 눈을 흘겼다.
“꼭 그렇게 말해야 하겠어? 내가 살려낸 거야.”
여자의 아버지는 신기하다는 표정이였다.
“어떻게 딱 한마리만 낳냐? 고양이들도 적게 낳고 잘 키우자는 생각인가?”
“사실…그날밤 한마리 더 낳았는데…그만.”
여자가 입아래로 중얼거렸고 여자의 아버지는 이마를 찌푸리다가 피씩 웃었다.
“그건 어쩔수 없는 거다. 옛날에 농촌에서는 에미고양이가 아기고양이를 깔아죽인 일도 있었다. 그리고 너도 어릴 때 한마리 깔아죽였잖냐. 기억 안나지? 고양이란건 악착스런 동물인거 같으면서도 의외로 취약하단다.”
“제가 깔아죽여요?”
여자는 눈이 휘둥그래졌고 여자의 아버지는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어릴때부터 넌 유독 고양이를 좋아했지. 우리가 안고 자지 말라는데도 기어이 이불속에 끌어들이더니 끝내 깔아죽이고 말았지. 이튿날 네가 깨어나기전에 내가 발견하고 그 시체를 버렸단다. 넌 그 아기고양이를 잃어버렸다고 하루종일 울었고.”
“잃어버린 건…기억나요. 그게 결국은…죽었던 거군요. 그것도 나 때문에…”
여자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고 여자의 아버지는 짐짓 홀가분한 어조로 화제를 돌렸다.
“어쨌거나 집안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는 건 좋은 일이다.”
......
여자의 엄마는 여자의 아버지와 같은 생각이 아닌 듯 했다.
몇일후 엄마의 집에 갔다온다던 여자는 쾅 문소리를 내면서 집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에서 포포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남자는 여자의 얼굴에서 눈물흔적을 발견하자 화닥닥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그래? 누가 우리 정아를 괴롭혔어?”
“…”
여자는 울분을 참느라 씩씩거렸고 남자는 무거운 표정으로 여자의 손을 잡았다.
“왜 그래? 엄마한테 말을 들었어?”
“항상 그 말이셔. 오늘도 엄마가 나더러 다짜고짜 투투를 버리라는 거야.”
“허…왜 그러셔?”
“고양이 기르면 출산을 못한다고 그러면서…또 요즘 사람들 애완동물 때문에 기형 낳는다고 막 야단쳤어. 오늘 뉴스에서 그런 내용 봤다나?”
“어느 뉴스에서 그런 허망한 내용을 실었대?”
“고양이 기르는거 반대해도 좋아. 그런데 왜 저주까지 하면서 저래? 내가 결혼도 안했는데 왜 벌써부터 출산갖고 야단쳐? 내가 지금까지 부모 속 태운적 있어? 장사 바쁘다고 평소엔 식구들 거들떠도 안보다가 왜 꼭 이런 때 관심을 빙자하고 내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거냐구.”
여자의 눈에는 눈물이 보였고 남자는 한숨을 내쉬면서 여자의 어깨를 안았다.
“그래서 울었어? 이 바보야.”
“다퉜어. 난생처음 엄마랑…”
“…”
“내 사생활 간섭하지 말라고, 나 그냥 핍박하면 여기 떠나 멀리 딴곳 이사가겠다고 했어.”
“그래서…머라 하셔.”
“당신 만나더니 내가 변했대.”
남자는 조용히 침묵했고 여자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난 변하지 않았어. 난 독립했고 내 고집이 생겼고 내 자아를 찾은것뿐이야. 그걸 어떻게 변했다고 해?”
“그게 변한 거지.”
남자는 쓸쓸하게 웃었다.
“가족에게 넌…더 이상 고분고분하던 딸이 아니니까.”
“그...그런가?”
“그래. 그리고 니가 변해가는거…가족들에겐 짜증나는 일일지 몰라도 내겐 엄청 기쁜 일인 걸. 넌 자기 주장을 세울줄 알게 되었고 요즘 나한테 하던 것처럼 따박따박 따질줄도 알게 되었어.”
“…”
“사람은 누구나 변해가고 있어. 변하지 않았다면, 넌 지금까지 가족에게 순종하면서 살았을 거야. 가족들 말을 순종하고 니 개인 생활은 완전히 희생하게 되었을 거야.”
여자는 천천히 구겨졌던 얼굴을 폈다.
“나...솔직히 가족들에게 버림 받는거 같아 기분 나빴어. 내가 변했다는 건…내가 더 이상 전처럼 마냥 착해서 좋았던 그 딸이 아니라는거잖아. 난 그게 슬프고 견디기 어려웠어.”
“그건 관성이야. 가족에게 착했던 관성…마냥 순종했던 너의 성격에…지금 그 틀에서 벗어나려면 그 성장통을 같이 견뎌야 하지 않을까.”
여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쪼크리고 앉았다. 썅썅이 상자옆에서 살살 꼬리를 젓고 있었고 나는 여자의 투명한 눈망울을 바라보았다. 포포가 갓 뜬 눈을 들더니 하악 소리를 내고있었고 여자는 그런 포포의 반응에 어이없는지 풋 웃어버렸다.
“너도 이런 변화가 당황한 거니?”
여자는 상자앞에 앉아서 두손으로 무릎을 감싸안았다. 여자의 목소리가 다소 울먹이듯 들려왔다.
“변하는 세상…변하지 않으려는 관성…무엇이 정답일까? 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거니.”
여자의 말에 썅썅은 꼬리를 홱홱 저었다. 자기 고민을 여자가 대변해주었다는 표시인 듯 했다.
“세상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없어. 중요한건 그 변화를 대처하는 자세인거야.”
그날 밤 나에게 이 말을 하는 썅썅의 눈은 어둠속에서 또 한번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썅썅의 말을 되새기다가 그 어떤 불길한 예감이 들어 가볍게 몸을 떨었다.
숨막히듯 고요한 자정을 깨뜨리며 포포의 자지러진 울음소리가 갑작스레 터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