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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아니야
작가 : 판도라
작품등록일 : 201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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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이별
작성일 : 19-10-19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1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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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그번의 피터지는 싸움은 썅썅과 포포의 무승부로 끝났다. 내가 예상했던대로였다.

 

 포포는 혈기왕성했지만 결국은 썅썅의 연륜을 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싸움이 시작되자 포포는 몸을 반쯤 일으킨 채 썅썅의 얼굴을 몇번인가 후려쳤지만 썅썅은 눈을 꼭 감고 끝까지 뒤로 물러서지 않고있다가 포포가 앞발을 내리는 틈을 타서 갑자기 맹공격을 들이댔다. 잠시후 포포는 썅썅의 몸밑에서 간신히 몸을 빼어 구석쪽으로 달아났다. 싸움은 치열했지만 빨리 끝났다. 두 수컷은 어둠속에서 서로를 노려보면서 온밤을 대치해있었다.

 

 이튿날 아침, 남자는 썅썅의 피투성이 된 얼굴에 눈을 크게 떴다.

 

 “썅썅…얼굴이 이게 뭐냐.”

 “냐옹…”

 “혼자 어디 부딪쳤을 수는 없고 도대체 누가 한짓이야.”

 

 남자는 가슴이 아픈 듯 썅썅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포포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포포…너냐?”

 “야웅~!”

 

 포포는 곰상궂은 울음소리를 내면서 남자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고 썅썅은 그런 포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방바닥에 배를 붙이고 주저앉았다. 남자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곧 흩어질판에 왜 이렇게 싸우는 거야. 거실 꼴이 이게 머냐. 투투, 들어와. 애들이 운다.”

 

 남자가 나를 불렀지만 나는 들어가지 않고 거실에 남아있었다. 어쩐지 내가 들어가면 썅썅이 힘에서 밀릴 것만 같았다. 포포는 남자의 모습이 방안으로 사라지자 금세 곰상궂은 표정을 거두고 턱을 건뜻 쳐들면서 썅썅에게 물었다.

 

 “아직도 더 겨룰 거야?”

 “승부가 안났잖아.”

 “얼굴 그 모양 해가지고 부끄럽지도 않아? 힘으로 하면 나한테 밀릴텐데.”

 “네가 실전경험은 아직 역부족이야.”

 “이제 점점 더 좋아질 거야. 나는 커가고 있고 당신은 늙어가고 있으니까.”

 

 포포는 비웃듯이 말했고 썅썅은 베란다쪽을 바라보면서 잠자코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수 없어서 조용히 포포의 앞으로 다가갔다. 포포가 나에게 눈길을 돌리기 바쁘게 나는 포포를 힘주어 후려쳤고 짱! 하는 소리와 함께 포포는 뒤로 펄쩍 물러섰다.

 

 “엄마.”

 “나쁜자식!”

 “…”

 “우리가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항상 불복을 했어. 하지만 지금은 네게 이 말을 꼭 하고싶어.”

 “…”

 “이래서 짐승이라 하는 거야.”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안으로 향했고 포포는 멍하니 서있다가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럼 엄마는 아니야? 엄마도 똑 같은 동물이라고!”

 

 나는 홱 머리를 돌렸다.

 

 “그래 맞어. 나도 동물이야. 근데 그걸 아니? 사람중에 사람구실 못하는 사람이 있 듯이, 동물도 마찬가지야. 인륜을 모르는 사람이나, 에미를 모르는 동물이나 다 똑같애.”

 

 포포는 망연한 기색이였고 나는 쌀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아빠를 이겨서 나를 차지할수 있을 거 같아? 천만에…이 세상에 너와 나 단 둘이 남는다 하더라도 난 너한테 의지하지 않아. 죽어도.”

 “내가…그렇게도 최악이야?”

 

 포포의 눈에는 서글픈 기색이 어렸고 나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최악이면서 최하야. 너처럼 에미마저 모르는 놈은 누구한테도 사랑받지 못할거야.”

 

 내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그날이후로 포포는 많이 불안한 듯 보였다. 포포는 틈만 나면 집안 구석구석에 영역표시를 하기 시작했고 여자는 화를 내면서 걸레대를 한쪽으로 내동댕이쳤다.

 

 “포포! 너 언제까지 이럴 거야. 일년도 못참아서 이렇게 우릴 애먹이는 거니?”

 “야옹~~~”

 

 포포는 여자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지만 여자는 그런 포포의 애교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자꾸 이러면 너부터 분양준다. 알았지?”

 

 여자의 말을 알아들은듯 포포는 풀이 죽어 방구석으로 숨어들더니 반나절이나 꼼짝도 하지 않고있었다. 하지만 나는 흥분했다. 그동안 썅썅과 포포의 서열전쟁때문에 항상 긴장해있는 나에게 있어서 여자의 말은 문득 어둠속을 꿰뚫고 들어온 한가닥 희망의 빛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포포만 이 집을 떠난다면…나와 썅썅…그리고 우리 애기들은 주인과 함께 적어도 일년은 행복하게 살수 있지 않을까. 자식 하나를 버리더라도 차라리 일년의 안정된 생활을 선택하고 싶은 내 이기적인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다. 그후 며칠동안 나는 포포를 쫓아내는 일을 어떻게 실천에 옮겨야 할지 고민하느라 침식을 잃을 지경이였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주인이 외출하고 포포가 방안에서 자는 틈을 타 내 계획을 썅썅에게 말해줬더니 썅썅은 무거운 한숨만 내쉬었다. 나는 썅썅의 한숨소리에 답답한 생각이 들어서 쌀쌀한 눈길로 썅썅을 쳐다보았다.

 

 “싫어?”

 “포포는…우리 아들이야.”

 “고양이 수컷은 아들 개념이 없다면서.”

 “다른 고양이들은 그럴지 몰라도…투투…우리는 틀리잖아. 너도 알잖아.”

 “그래서, 너를 아빠 취급 안해주는 아들과 힘이 진해질때까지 싸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그건 또 무슨 논리야? 네가 지면 어떻게 될는지 생각 안해봤어?”

 “지지 않으면 돼.”

 “그게 가능해? 지금은 괜찮다 쳐도 앞으로는? 포포는 하루가 멀다하게 커가고있어! 걔는 이미 발정기가 시작된 청년 나이라고.”

 “그래서 나도 전부터 생각해둔 게 있어.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야.”

 

 썅썅이 갑자기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고 그런 썅썅의 눈에는 동경의 빛이 반짝거렸다. 얼마만이였던가, 썅썅의 이런 눈빛을 본지가…익숙한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고 나는 목소리를 낮춰 조용히 되물었다.

 

 “뭔데.”

 “우리…가출하자.”

 

 나는 예상했다는 듯 잠자코 있었고 썅썅은 내 태도에 저으기 신심이 생긴 모양이였다.

 

 “어차피 일년후엔 다 떨어져야 하는 운명이야. 우리 운명…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때가 온 거 같어.”

 “…애들은?”

 

 나는 가까스로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뭔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이름못할 거부감이 서서히 머리를 쳐들었고 가출 얘기만 꺼내면 흥분에 젖어드는 썅썅의 태도에 나는 왠지 반감이 생기고 있었다. 왜 항상 우리는 떠날 생각만 해야 하는걸까. 이 좋은 집과 주인을 두고 험한 바깥세상으로 가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갑자기 방안에서 자지러진 울음소리가 터졌고 나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방안으로 달려들어갔다.

 ......

 

 “포포! 이 미친놈아!”

 

 나는 눈앞의 상황에 억이 막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방안에서는 어린 토미를 깔고 앉아 포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고 토미는 겁에 질린 눈길로 나를 바라보면서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엄마…나 무서워…”

 “토미야…”

 

 나는 포포에게 달려들어 토미를 빼앗아냈다. 토미는 온 몸을 바들바들 떨고있었고 버미와 제리는 상황파악이 안된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괜찮냐? 어디 다친덴 없지?”

 

 토미는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면서 내 품을 파고들었다.

 

 “엄마…포포 왜 저래? 무서워 죽겠어...”

 “괜찮아…포포 요즘 제 정신이 아니야. 엄마가 지켜줄께 겁내지 마…”

 “포포 어디 아파?”

 “아니 아픈 건 아닌데...”

 

 나는 겁에 질린 토미를 다독여서 버미와 제리옆에 눕혔다. 포포는 그동안 머쓱한 표정으로 방구석에 앉아있었고 나는 머리를 돌리고 그를 향해 나직히 한마디 내뱉었다.

 

 “따라나와.”

 

 포포는 아무 말없이 따라나왔고 거실 한복판까지 나온 나는 홱 돌아서서 포포의 귀쌈을 후려쳤다. 순식간에 포포의 얼굴에는 기다란 상처자국이 생겼고 그 상처에는 금세 빨간 피가 내배이고 있었다.

 

 “미친새끼!”

 “…”

 “토미는 이제 두달째 되는 아기야. 그 어린 애한테까지 덮치다니? 니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그럼 나더러 어쩌라구? 엄마는 안된다 쳐도 토미는 괜찮잖아. 고양이들은 근친도 상관 없는 동물이잖아.”

 “차라리 가출해서 다른 암코양이 찾아가. 그게 차라리 편해. 내가 있는한 이 집안에선 안돼.”

 “그럼 난 누굴 좋아하고 생육할 권리도 없어? 사람처럼 인륜 지키면서 살려는 엄마 자신의 욕심 때문에?”

 

 나는 크게 숨을 불어 내쉬었다. 그리고는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니가 누굴 좋아할 권리는 있어. 하지만 너만 좋아한다고 일방적으로 덮칠 권리는 없어.”

 “엄만 너무해...”

 “고양이 본성에 대해 그렇게 잘 안다면, 고양이들은 암컷들이 원하지 않으면 수컷은 영원히 방법이 없다는것도 모르진 않을텐데.”

 

 나는 싸늘한 어조로 포포에게 말했고 포포는 상처입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항상 나만 미워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난 내 본능에 충실했을뿐이야! 그게 그렇게도 죄가 되는 거야?”

 “그래…죄가 되지는 않겠지…하지만 넌 유감스럽게도 내 아들이야. 나와 썅썅의 아들이라고. 하필이면 사람처럼 생각하는 천재고양이 사이에 아들로 태어났거든. 그게 바로 니 운명이야.”

 

 내 말에 포포의 얼굴에는 잠깐 서글픈 기색이 떠올랐다.

 

 “그럼 난…어떻게 해야 해? 엄마 마음이 돌려지길 기다리면 안돼? 토미가 클때까지 기다리면 안돼?”

 “아까 얘기했었잖아.”

 

 나는 포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출하라고. 다른 암코양이를 찾아가. 여긴 니가 있을 곳이 아니야. 누구도 널 좋아하지 않아.”

 “안돼. 안가…못가.”

 

 포포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여긴 내가 태어난 곳이고 내가 자란 곳이야. 내가 왜 여길 떠나야 하는데? 난 절대 못가. 엄마랑 토미 옆 난 절대 안떠날 거야.”

 “어차피 일년후엔 우린 다 헤어지게 되어있어.”

 “그러면 그 일년뒤에 헤어져. 지금은 안돼.”

 

 포포는 이렇게 딱 잘라 말한 다음 베란다쪽으로 몸을 이동했다. 베란다 옆에서 썅썅이 볕쪼임을 하고 있었고 포포는 썅썅의 곁에 다가가 나란히 식빵자세로 앉았다.

 

 “우리 잠깐 휴전해.”

 

 썅썅은 아무 말이 없었고 포포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당신은 여길 떠나려 하고 나는 여길 남아있으려 하고있어. 그 어떤 목적이든간에 여자를 지키고싶은 우리 마음은 똑같아. 그러니 우리 그만 싸워.”

 “건방진놈.”

 “그래. 어떻게 욕해도 좋아. 아직까진 당신은 다 가졌고 난 아무것도 못가졌어. 그러니 공평하게 경쟁하자. 우리 내기하는게 어때?”

 

 썅썅은 귀를 쫑긋했고 포포는 입가의 수염을 치켜올렸다.

 

 “기한은 일년이야. 일년안에 엄마나 토미 둘중 누구 하나 나한테 넘어오면 이 집안의 서열1위를 순순히 내놓기 바랄께. 피터지게 싸우는것보다 이런 식의 겨룸이 더 잼있지 않아?”

 “흥.”

 

 썅썅은 머리를 돌려버렸고 포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두고봐. 고양이란 어떤 동물인지 낱낱이 보여줄거니까. 반드시 내가 그걸 보여줄거야.”

 “...”

 “사람을 닮은 고양이의 인성보다, 사람과 전혀 다른 고양이의 동물성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깡그리 보여줄 테니까 기다려.”

 

 포포의 다짐을 뒤로 하고 그해 봄 정오의 해살은 눈부시게 따사로왔다.

 

 고양이와 사람 사이의 마지막 일년은 그렇게 소리없이 서막을 열고 있었다.

 ......

 

 그후 한동안 우리 생활은 조용했다. 가끔 포포가 영역표시를 해서 여자에게 욕먹긴 했지만 고양이와 사람의 생활은 그런대로 무난했고 토미, 버미, 제리도 어느새 어지간한 중고양이 크기가 되어있었다.

 

 사료를 제일 먼저 먹기 시작한 것은 버미였다. 버미는 토미와 제리가 젖을 채 떼지 않았을 때부터 사료그릇에 네발을 파묻고 앙앙거렸고 두달정도 지나자 셋중에서는 가장 건실한 아이로 자라있었다. 흠이라면 사람을 그리 따르지 않고 심지어 엄마인 나에게도 퍼그나 냉담하다는 그것이였다.

 

 “토미버미제리~”

 

 여자가 사료를 줄때마다 토미, 버미, 제리는 우르르 소리를 내면서 늦을 새라 달려갔고 애들이 사료를 다 먹은 다음은 내 차례였다. 그리고 내가 다 먹으면 썅썅과 포포가 서로 머리를 밀면서 그릇을 끝까지 차지하군 했다.

 

 여자는 우리가 먹는 순서를 보면서 웃음을 금치 못했다.

 

 “고양이들도 어린 것들한텐 양보를 하네.”

 “꼭 그런건 아닌 거 같아. 사료는 양보 하지만 진짜 맛있는건 양보 안하는 거 같은데?”

 

 남자의 말은 틀림없었다. 고양이들은 천성으로 이기적인 동물이여서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절대 양보하는 법을 몰랐다. 그 누가 먹을땐 개도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가. 먹을땐 우리 고양이들도 절대 건드리면 안되는 것이었다.

 

 버미가 그랬다. 버미는 사료를 먹을 때 으르릉 소리를 내기 일쑤였고 그런 버미의 반응에 토미는 의아해했다.

 

 “엄마, 버미 왜 저래?”

 “타고난 성격이 괴퍅해서 그래. 건드리지 마.”

 “제리는 자상한데 버미는 너무 까탈스러워. 우리 한배에서 나온게 맞어? 포포도 무서워죽겠는데 쟤까지 저러니까 부산해 죽겠어.”

 “신경쓰지 말고 제리하고 놀아. 제리야 이리 오나.”

 

 제리는 내 부름소리에 귀를 쫑긋하더니 발을 비비꼬면서 모델걸음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런 제리의 이상한 걸음걸이에 저도 모르게 머리를 갸웃했다.

 

 “제리야, 너 왜 그렇게 걷냐?”

 “언젠가 여주인이 그러는데, 모델들은 고양이걸음 한댔어.”

 “그래도 너정도 오버하지는 않아. 일자로 걸어야지 넌 비뚤비뚤한 걸음이잖아.”

 

 나는 가볍게 핀잔했고 제리는 내 말에 불복이라는 듯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주인이 보더니 엄청 웃는 걸. 엄마…이러는 우릴 보고 주인들이 기뻐하는 걸로 된 거 아니야?”

 

 제리의 말에 나는 잠깐 할말을 잃었다. 그러고보면 지금까지 우리는 항상 자기 위주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우리 고양이들은 한번도 주인을 위해 뭔가를 하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고 항상 우리가 편하게 사는 방식으로 주인을 강요했던 것이다. 어쩌면 개는 사람이 길들이지만 고양이는 사람을 길들인다는 말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새삼 남자가 가끔 푸념삼아 하던 말이 내 머리에 떠오르고 있었다.

 

 “밖에 사는 길냥이들 얼마나 불쌍한 줄 알어? 이 끼니를 떼우면 다음 끼니를 잇기 어렵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추위에 떨어야 하고. 그에 비해선 너넨…행복한줄 알어 이것들아.”

 

 그런가, 그랬던가…우린…행복했던가? 그리고 행복속에서 그 행복을 모르고 있는 걸까.

 

 “엄마, 뭘 그렇게 생각해? 왜 날 불렀는데?”

 

 제리가 나를 툭 다쳤고 나는 정신을 차리고 제리를 쳐다보았다.

 

 “다른건 아니고, 토미가 병약하니까 앞으로 좀 잘 챙기라고.”

 “아빠나 포포, 버미가 있는데도?”

 “아빠는 누구 하나 편애하지 않을거고 포포는 토미를 괄시하지 않으면 다행이야. 버미는 너무 차거워서 토미가 접근하기 무서워 하는구나. 아무래도 니가 챙겨야겠다. 셋중에서도 니가 제일 형이 아니냐.”

 

 내 말에 제리는 토미를 돌아다보았다.

 

 “토미 넌 너무 나약해. 좀 강해져야지 그렇게 나약해서 어떡해.”

 “괜찮아, 나한텐 엄마가 있잖아.”

 “만일 언젠가 엄마가 우리 곁에 없다면?”

 

 제리의 말에 토미는 멍해졌고 나 역시 그 말에 흠칫 몸을 떨었다.

 

 “오빠, 그런 무서운 말은 왜 해. 엄마가 왜 우리 곁에 없겠어.”

 “그래서 만일이라고 했잖아. 만에 하나 그런 날이 온다면 넌 어떡할 거야. 항상 이렇게 부들부들 떨고만 있을거야?”

 “…그건...”

 “내가 챙겨주는데도 한계가 있어. 나도 니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 그러니까 니가 강해져야 해. 알았어?”

 

 제리는 목소리에 위엄을 담아 말했고 토미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정말이야? 우리…언젠가는 다 헤어지게 되는 거야?”

 “토미야.”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면서 토미를 불렀다. 토미의 불안이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 나를 엄습했다.

 

 “제리가 말한건 만일인데, 솔직히 그런 가능성을 배제 못하는거잖아. 니 아빠가 말한적 있어. 생활에는 여러가지 변수가 따르기 마련이라고.”

 “싫어! 난 헤어지기 싫어! 이대로 항상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토미가 내 품에 머리를 틀어박았고 제리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베란다쪽에 앉아있던 버미가 우리를 돌아보더니 쌀쌀하게 입을 열었다.

 

 “천하엔 흩어지지 않는 연회석은 없다고 했어. 니가 싫다고 해서 니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야.”

 “안돼! 그래도 싫어! 난 엄마 안떠날 거야…”

 

 토미는 울먹거리면서 나에게 깊숙히 안겼고 버미는 문득 무엇엔가 끌린 듯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버미의 눈길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던 나는 맞은켠 복도 베란다에 앉아있는 익숙한 얼룩 무늬에 흠칫 몸을 떨었다.

 

 킹이였다.

 ......

 

 그날 킹을 다시 본후로부터, 나는 킹이 단순히 썅썅과 나를 다투기 위해 이 동네로 온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알수 있었다. 맞은켠 베란다에서 나를 지켜보는 킹의 눈길에는 동정의 빛이 가득찼고, 그런 킹의 눈빛에서 나는 익숙한 서러움을 느끼면서 왠지 가슴이 저렸다.

 

 “잘 지냈어?”

 

 바로 그날 밤 킹은 우리 집 베란다에 뛰어내려왔고 베란다 문틈을 사이두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썅썅과 포포, 그리고 세 아이는 방안에서 잠든지 오래였고 나는 문틈사이로 킹의 영롱한 눈빛을 보면서 그가 이렇듯 집요하게 나를 찾아오는 이유를 한번쯤은 물어보리라 생각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응. 잘 지내.”

 “정말로 그런가보네. 몸도 많이 좋아진 거 같고.”

 

 킹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곧 쌀쌀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믿고 사는 생활이 괜찮은가보지?”

 “뭐?”

 “동물은 동물일뿐이야. 사람을 자기 족속처럼 믿으면 안돼. 그걸 말해주려고 왔어.”

 “내가 어떻게 살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나는 머리를 기웃했고 킹은 살짝 수염을 치켜올렸다.

 

 “너더러 우리 코숏의 웃음거리가 되지 말라 그거야.”

 “...웃음거리?”

 “우리 길냥이들도 다 너와 같은 코숏인건 알고 있겠지? 니가 운좋게 집고양이로 되었지만 자기 근본은 잊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 우린 저 썅썅처럼 무능한 애완동물이 아니라 이 동네 생태환경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동물이야. 니가 사람을 믿고 한낱 애완동물로만 살다간 언젠가는 이 세상에 쓸모가 없는 무능한 동물로 전락되고 말거야. 그걸 알아두라고.”

 “너무 어이없다고 생각되지 않니?”

 

 나는 냉랭하게 킹의 말을 받았다.

 

 “내가 어떻게 살든 니가 상관할바 아니야. 너는 너대로 이 동네 킹으로 살고 나는 나대로 이 집에서 애완동물로 살면 돼. 왜 이렇게 가끔 찾아와서 내 생활에 간섭하는 거야.”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로 모르겠니?”

 “그 이유를 모르겠어. 이 동네에 다른 고양이들도 많을 거 아니야. 언젠가 썅썅이 물어봤던 것처럼, 왜 하필 나야?”

 “엄마, 그 이유는 내가 알어.”

 

 등뒤에서 갑자기 또 하나의 목소리가 또렷이 울려퍼졌고 나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깨어났는지 버미가 바로 등뒤에 서있었고 버미를 보는 순간 킹의 눈빛은 반짝 하고 빛났다.

 

 “누구...?”

 “안녕하세요. 전 버미라고 해요.”

 

 버미는 항상 시니컬하던 태도를 일변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킹을 주시했다. 버미의 눈도 샛별처럼 빛나고있 었고 나는 그 어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작게 숨을 불어 내쉬었다.

 

 “아저씨는 누구에요?”

 “나? 이 동네 킹이야.”

 “그걸 물어보는게 아니에요. 아저씨는 우리랑 어떻게 되는 사이죠?”

 

 버미의 물음에 나는 눈을 찌푸렸고 킹은 말문이 막혔는지 한참을 머뭇거렸다.

 

 “저…그게…그러니까.”

 “혹시 제 아버지는 아니죠?”

 “버미야!”

 

 나는 화가 나서 버럭 언성을 높였고 킹도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귀를 쫑긋했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니…허 참…”

 

 킹은 어이가 없다는 듯 머리를 젓다가 버미의 다음 말에 크게 몸을 흠칫했다.

 

 “그럼...저랑 그 어떤 다른 혈연관계가 있는 거죠?”

 “버미야,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나는 큰소리로 버미를 꾸짖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그 어떤 생각에 잠깐 몸을 비틀했다. 숨막힐 듯 아름답던 그 어떤 눈동자가 눈앞의 킹의 영롱한 눈동자와 겹쳐지면서 나는 크게 숨을 들이킨후 천천히 한걸음 물러섰다.

 

 “설마…”

 

 그런 내 반응에 킹의 눈빛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었고 버미는 간절한 눈빛으로 킹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암튼 아저씨…이참에 저를 데려가면 안돼요?”

 “버미야…”

 

 나는 또 한번 맥없이 버미를 불렀고 버미는 단단한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엄마, 미안한데 나 여길 떠나야겠어. 바깥 세상이 너무 자유롭고 구속이 없어보여. 나 혼자 떠나면 엄마가 걱정할가봐 말을 못했는데, 이 아저씨가 동네 킹이라니까 엄마도 시름 놓아도 되잖아. 날 가게 해줘.”

 “어쩌면…어쩌면 넌 이렇게도 냉정하냐.”

 

 나는 킹과 버미에게서 내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가슴이 먹먹해오는 가운데 버미의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고양이들은 원래 냉정하잖아. 이건 당연한 거지 놀라운 건 아니야. 엄마랑 아저씨, 어떤 관계인지 엄만 몰라도 난 알 것 같아…혈연관계가 있는 엄마와 아저씨도 이렇게 모르는 사이로 되어버리는데…그러니 엄마와 나 사이도 앞으로 그렇게 될 거고…우리 고양이들은 그냥 이렇게 사는 거야. 이게 우리 운명이야...”

 

 나는 새삼스러운 느낌으로 버미를 주시했다. 버미의 눈에는 그 누구도 막을수 없는 비장한 결심이 어려있었고 나는 체념의 한숨을 쉬면서 몸을 돌렸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베란다 문틈으로 훅 하고 찬바람이 불어들어왔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감을 느끼며 베란다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크고 작은 얼룩그림자 둘이 맞은켠 베란다로 몸을 날리는 것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두 그림자는 맞은켠에서 잠깐 이쪽을 바라보다가 또 한번 몸을 날려 금세 무연한 바깥세상으로 자취를 감추고말았다.

 

 그해 봄, 오빠는 약속대로 나를 찾아왔지만 버미를 데리고 다시 내 곁을 떠났다.

 

 우리의 이별은 사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리고 내가 미처 감당할 시간도 주지 않은채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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