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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아니야
작가 : 판도라
작품등록일 : 201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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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체념
작성일 : 19-10-20     조회 : 262     추천 : 0     분량 : 9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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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여자는 버미가 사라지자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다. 언젠가 썅썅이 가출했을 때처럼 눈물을 쏟지는 않았지만 초점을 잃은 여자의 눈빛에서 나는 그녀의 상실감이 그번 못지 않게 크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여자는 베란다 철조망에 난 구멍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되뇌였다.

 

 “저걸 빨리 고쳤어야 하는데…빨리 막았어야 하는데…”

 “고치고 막아도 바로 구멍 뚫을 거야. 우리 애들 이발과 발톱으로는 쉽게 뜯을수 있어.”

 “베란다 문도 꼭 닫아놨어야 하는데…”

 “그러면 애들 화장실 어디에 둘 거야. 집안에 두면 냄새 때문에 안돼.”

 “우린 아직 가족사진도 못찍었는데…”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허락도 없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이번엔 남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집안의 공기는 숨막힐 듯 갑갑했고 토미와 제리가 방구석에 꼭 붙어있는 것이 내 눈에 띄였다. 썅썅이 몸을 한번 털더니 천천히 내 곁으로 다가왔다.

 

 “넌 알고 있었지?”

 “…”

 “네가 가만있은걸 보면 그녀석 위험은 없는 거겠지?”

 “…”

 “아주 나간다고 갔어? 아니면 잠깐 바람쐬러 간 거야?”

 “아주.”

 

 내 말에 썅썅은 이해 안된다는 듯 눈을 찌푸렸고 나는 천천히 눈을 들어 썅썅의 시선을 마주했다.

 

 “나 어제…오빠 찾았어.”

 “?”

 “그리고 오빠를 잃었어.”

 “오뺘?”

 “응, 어제 킹이 왔어. 킹이 바로 내 오빠였어.”

 

 나는 내 폭탄선언에 썅썅이 펄쩍 뛰는 반응을 기다렸지만 썅썅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앉아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귀를 쫑긋했다.

 

 “안놀랐니?”

 “그럴거라고 생각했어.”

 

 이번에는 내가 놀랐고 썅썅은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주시했다.

 

 “얼룩무늬…너랑 킹이랑 같은 얼룩무늬였어. 넌 삼색이고 킹은 이색이야. 니가 말하던 회색 얼룩무늬…그건 킹이 어렸을때니까 회색으로 보인거야. 고양이들은 크면서 그 무늬가 진해진다고 들었거든.”

 “그러면 넌 내가 오빠가 있다고 말했을 때부터 킹이란 걸 알았던 거야?”

 

 나는 살짝 배신감이 들어 입을 삐죽했고 썅썅은 뭔가 생각하다가 천천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확신하지는 못했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친 적은 있었어. 지금 보면 명백하지 않냐? 킹이 하필 우리를 찾아온 것과, 하필이면 너를 데려가려고 한 것…그건 너를 여자로 데려가려고 한 것이 아니였던 거야.”

 “데려간다고 따라갈 나도 아니야.”

 “설사 킹이 오빠인걸 알았다 해도?”

 

 썅썅은 머리를 갸웃했고 나는 조용히 사색을 더듬었다. 어제부터 실타래처럼 엉켰던 그 무엇이 차츰 정리되는 감을 느끼며 나는 어제와는 달리 가슴 한구석을 지지눌렀던 돌멩이를 부리운 듯 조금은 홀가분해졌다.

 

 “응, 오빠는 날 찾아오겠다고 약속했지, 날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진 않았어.”

 “…”

 “세월은 많이 흘렀고, 오빠와 나 사이엔 그동안 큰 변화가 생겼어. 우리사이엔…커다른 장벽이 가로놓인 것 같아. 서로의 인생관…아니 묘생관도 커다란 차이가 생겼고.”

 “…”

 “나보고 근본을 잊지 말래. 오빠는 사람을 믿지 못하고, 나는 사람을 믿고 있으니까.”

 

 나는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리다가 문득 머리를 들어 썅썅을 바라보았다.

 

 “넌?”

 “뜬금없이…내가 뭐.”

 “넌 사람을 믿냐?”

 “글쎄…”

 “글쎄라니? 우리 주인들 같은 사람이라면 믿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난 너랑 틀려…난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사람도 봤어. 그래서 지금 헛갈려.”

 “사람도 여러 부류가 있잖아. 분명 고양이를 잡아먹는 사람들이 있어. 하지만 그 사람들이라고 인간들 세상에선 나쁜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너무 잔인하잖아. 그리고 길냥이들 보면 망치로 때려죽이는 사람들도 있어. 우리 고양이들이 뭘 잘못했다고…”

 “그건…길냥이들이 도둑고양이라고 생각해서 그럴거야…”

 

 내 변명은 점점 무색해졌고 썅썅은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언젠가 우리가 길냥이로 될 때,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넌 그때도 이렇게 말할수 있는거니? 길냥이들이 어때서…이 아파트가 쥐들의 공격을 받은지도 몇해째야. 길냥이들이 없다면 아파트 전체가 무너져버릴걸. 바로 이 동네 길냥이들이 여기 생태환경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킹이랑 하는 말이 똑같네.”

 

 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썅썅은 알릴락말락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

 

 며칠후 교교한 한밤중에 맞은켠 동네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츠럽게 들렸다. 잠에서 깨어난 여자는 나는듯이 거실로 달려나왔고 남자가 급히 여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 가는 거야?”

 “버미 울음소리 같어.”

 “그건 환청이야. 투투 반응을 봐. 무덤덤하잖아.”

 “아니야. 꼭 버미 목소리야. 애가 가출했는데 지금 집을 찾고있는 거라고…아니면 위험에 봉착했을지도 모르고…가봐야 해. 투투는 버미 목소리를 몰라서 그래.”

 “썅썅이 잃어졌을 때를 잊었어? 투투가 왜 자기 가족 목소리를 몰라.”

 “아니야…이번엔 거리가 멀어 모를수 있어. 그리고 요즘 투투 좀 이상해. 모든것에 관심 끄고있어. 투투 반응 믿을 거 못돼.”

 

 여자는 겉옷을 꿰어입고 신을 신었고 남자는 머리를 흔들더니 손전등을 찾아들었다.

 

 “기다려. 혼자 어디 간다고 그래.”

 

 문소리가 탕 나더니 집안이 조용해졌고 나는 베란다쪽으로 다가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밖은 칠흙같이 깜깜했고 맞은켠 동네의 고양이 울음소리는 잠깐 멈춘 듯 하더니 더 자지러지게 들려왔다.

 

 “버미 목소리 아니잖아.”

 

 썅썅은 길게 기지개를 켰고 나는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어느새 깨어났는지 토미와 제리도 눈이 초롱초롱해서 나를 바라보았고 그옆에서는 포포가 옆으로 가로누워 코를 골고있었다.

 

 “너넨 왜 깨어났니? 빨리 자.”

 

 나는 애들에게 머리를 돌렸고 토미는 울먹울먹하더니 입을 열었다.

 

 “엄마…불안해. 버미는 어디 간거야. 갔다가 오는거야?”

 “버미…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 이 동네 킹을 따라갔어. 아마…여긴 다시 안올거야.”

 “킹? 킹이 왔댔어? 아~날 깨우지. 킹이랑 한번 대결해보게.”

 

 자고있던 포포가 비몽사몽중에 내 말을 받았고 나는 포포에게 눈을 흘겼다. 토미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였다.

 

 “다신 안온다고…왜? 우리가 그렇게 싫어? 내가 버미 성격을 머라 한 것 때문에 그래?”

 “그런 거 아니야.”

 

 제리가 나대신 토미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는 머리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불안해하지 마.”

 “내가?”

 “응, 토미보다도 엄마가 더 불안해하는 거 같아. 그래보여. 버미는 어차피 여길 떠날 애였어. 걔는 처음부터 냉담했으니까. 원래 세상 일은 변화가 무상한거야.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네녀석이 뭘 안다고.”

 

 썅썅은 그런 제리가 기특한지 앞발로 제리의 머리를 가볍게 터치했고 제리는 코를 찡긋하더니 썅썅을 향해 몸을 비비꼬았다.

 

 “아빠, 난 알건 다 알아요. 이제 우리는 엄마, 아빠, 포포, 나 토미 그렇게 행복하게 지내면 돼요. 그리고 언젠가 뿔뿔히 흩어질 때엔 쿨하게 헤어지면 되고. 인생, 아니 묘생이란 다 이런 게 아닌가요.”

 

 제리의 말에 나는 잠자코 있었고 썅썅은 한숨을 쉬면서 제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상 일이…니 말대로 간단했으면 좋겠구나.”

 

 그랬다. 세상 일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였다. 여자와 남자가 맞은켠 동네에서 헛탕을 치고 집에 들어온 그날 새벽, 삼라만상이 조용히 잠든 계명 시간에 곤하게 자고있는 나에게 포포가 덮친 것이였다.

 

 처음에는 동네 고양이가 베란다를 통해 들어왔는줄 알았다. 썅썅은 종래로 그렇게 나를 완력으로 덮친적 없었거니와 썅썅의 긴 털과 익숙한 체취는 내가 눈을 감고도 알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속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반항을 했고 내 날카로운 발톱과 예리한 이발에 상처를 입은 상대방이 야옹 소리를 내면서 뒤로 성큼 물러섰을 때에야 나는 그것이 포포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너무 황당해서 숨이 꺽 막혀왔다.

 

 “포포 네놈이!”

 

 썅썅이 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호통을 쳤고 나는 희미한 새벽빛을 빌어 썅썅이 온 몸을 털을 곤두세우고 부들부들 떨고있는 것을 보았다. 포포는 나에게 할퀸 상처를 혀로 천천히 핥더니 여유작작하게 썅썅을 마주했다.

 

 “엄마 반항이 꽤 쎄네.”

 “이런 짐승같은놈!”

 “말을 잘못한거 같은데? 짐승같은놈이 아니라 짐승놈이야. 아빠, 우린 짐승 맞잖아.”

 

 포포가 능글맞게 이죽거렸고 썅썅의 파란 눈에서는 불찌가 튕기고 있었다.

 

 “네놈이 말하던 공평이 바로 이것이였냐? 애초부터 그 공평하게 경쟁하자는 것도 엉터리 제안이였다. 네놈이 하도 고양이 본성을 운운하기에 측은해서 지금껏 가만 놔둔 것을…”

 “그래, 맞아. 본성이야. 오늘 이것도 본성이지…그럼 난 어떡하라고? 난 정상 숫코양이야. 아무런 거세도 거치지 않은 정상적인 수컷이라고!”

 “그래…네놈의 그 수컷을 인정하마. 그러니 여기서 당장 나가! 나가서 이 동네 다른 암코양이들을 찾아!”

 “싫은데? 내가 왜 나가? 난 여기가 좋아! 끼니마다 먹이를 주는 사람이 있어 좋고 추운 곳에서 떨지 않을수 있어서 좋아! 내가 왜 여길 떠나서 살아야 하는데?”

 “그러면 나갔다가 와. 들어오는 길 잘 봐뒀다가 가던 길로 오면 되잖아.”

 “싫어! 난 엄마가 좋다고, 왜 난 누군가를 좋아할 권리도 없어?”

 

 썅썅은 이를 악물었고 나는 눈앞의 상황에 눈을 꼭 감았다 떴다. 어쩌면 제리가 말하던 내 불안이 바로 이거였을지도 몰랐다. 그때 포포의 제안은 시간을 벌고 힘을 기르기 위한 계책에 불과했고, 지금 우리는 가족의 평화와 우리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득불 그 선택을 해야만 했다.

 

 “좋아. 오늘은 드디여 결판을 내는 거다. 너 같은 후레자식은 이 집에 있을 자격이 없어.”

 

 썅썅은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희미한 새벽빛속에서 썅썅의 동공은 서서히 짙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

 

 썅썅과 포포는 그날 새벽부터 오후까지 피터지는 싸움을 했지만 승부를 가를수 없었다. 나는 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둘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둘은 밀치락 닥치락 하더니 어느새 베란다로 빠져나갔고 또 한번 거세게 엉키는가 싶더니 어느새 창문턱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싸우는 소리가 뚝 멈췄다. 베란다에는 썅썅 혼자 피투성이 된채 서있었고 한참 지나자 아래쪽에서 포포의 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옹~~~”

 “이젠 끝났어.”

 

 썅썅은 나지막하게 으르릉거렸고 포포의 목소리는 잠깐 멎었다가 다시 애처롭게 울렸다.

 

 “야옹~~~날 구해줘…엄마…엄마…”

 “이럴땐 엄마냐?”

 “아빠…날 구해줘…무섭단말야. 여기 사람들이 왔다갔다해…너무 무서워…”

 

 필경 포포는 태어나자마자 한번도 바깥세상을 구경한적 없는 한낱 평범한 애완고양이였다. 오가는 행인들의 시선이 포포에게는 퍼그나 공포스러웠는지 포포는 기승스레 울어댔고 잠시후 목이 쉬어서 맥없이 으르릉대기만 했다.

 

 “저리가. 들여다보지 마…가…허벼놓을거야! 엄마 여기 사람들 많아…무서워…”

 “썅썅…”

 

 나는 불안해서 썅썅을 바라보았고 썅썅은 머리를 들었다.

 

 “왜?”

 “포포를…진짜 꼭 쫓아내야만 하겠어?”

 “지금 상황에선 어쩔수 없는 게 아니야?”

 “사실…냉정하게 말해서 포포 잘못도 아니야.”

 “뭐?”

 “고양이로 태어난 우리 잘못이고, 고양이 본성을 고집하는 포포와 사람처럼 가족을 이루어 살자는 우리 욕심이 서로 모순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니 생각은?”

 “포포…구해오자. 이젠 반성할 거야.”

 “미쳤어?”

 

 썅썅은 나를 노려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얼굴을 돌렸다.

 

 “오늘새벽 그놈이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몰라서 그래?”

 “알어. 그렇지만 너도 그걸 모르진 않잖아. 고양이들은…암컷이 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

 “포포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래. 나만 거부하면 포포는 어쩌지 못해.”

 “그게 말이 돼? 그럼 앞으로 그냥 그렇게 살겠다는 거야?”

 “…”

 “진짜 한심하네. 그럼 지금껏 내가 싸워왔던 게…대체 무엇때문이였지?”

 

 나는 머리를 숙이고 말을 못했고 썅썅은 나를 주시하다가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투투…넌 너무 고집이 쎄. 니 고집이…너를 해칠수도 있다는걸 명심해.”

 “…”

 “난 포포 안구해. 절대 구해주지 않을거야. 저놈이 뼈저리게 느낄 때까지…그리고 혼자 밖에서 생존의 방식을 터득할 때까지…”

 “저러다 잡혀가면 어떡해.”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것도 그놈 팔자야.”

 “썅썅…너 언제부터 그렇게 냉혹해졌어?”

 “내가 냉혹해? 그럼 서열을 포포한테 넘겨줘? 너 혼자 애들 데리고 즐겁게 살든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고민하고 망설였는데…나라고 제자식 아까운줄 몰라서 이러는줄 알어? 새벽에 그 일만 없었더라면 난 저놈한테 서열을 넘겨줘도 상관이 없었어. 하지만 지금은 안돼…고양이에게도 마지노선이란 게 있어.”

 “나만 거부하면 된다고 했잖아.”

 “그럼 나는…포포가 널 덮치는걸 눈뜨고 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이냐?”

 

 우리의 다툼은 여자와 남자가 들어서는바람에 중단되었고 썅썅은 화가 나서 거실을 오락가락했다. 여자는 우리 사료그릇을 채워준후 썅썅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혀를 찼다.

 

 “너 또 싸웠지?얼굴 꼴 봐…왜 항상 뜯기우냐? 포포는…”

 “야옹~~~”

 

 포포의 목갈린 울음소리가 다시 창문밖에서 미약하게 들려왔고 여자와 남자는 잠깐 서로 마주보다가 우당탕탕 밖으로 달려나갔다. 썅썅은 맹랑한 표정으로 홱홱 꼬리를 저었고 나는 가만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포포는 남자의 팔에 안겨서 집안에 들어섰다. 얼굴이 먼지투성이가 된 포포는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고있었고 남자는 이마를 찌프리면서 품안의 포포를 달래고 있었다.

 

 “그렇게 기고만장하던 애가 완전 겁에 질렸구나. 됐어. 이젠 안전해졌어. 내려.”

 

 남자가 포포를 내려놓자 포포는 꼬리를 끼고 방구석으로 기여들었다. 그리고…아까부터 포포를 노려보고있던 썅썅이 포포를 덮친 것, 그리고 남자의 발이 언뜰하고 썅썅이 웩 비명을 지르며 저만큼 날아 떨어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냐옹~~~”

 

 나는 남자가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남자는 한껏 미간을 구기면서 썅썅을 노려보았고, 그런 남자의 눈에는 전에없는 실망의 빛이 진하게 스쳐지나갔다.

 

 “썅썅…네 새끼인데 너무하는 거 아니야? 고양이들이 혈연관계에 무심한 건 안다만 어떻게 떨어져서 구해온 애를 들어오자마자 그렇게 구박하냐.”

 

 썅썅 대신 억울하고 서러운 생각에 머리를 돌려 썅썅을 본 나는 그의 눈에서 뿜겨져나오는 싸늘한 파란 빛에 흠칫 몸을 떨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한...절망의 눈빛이였다.

 ......

 

 그날 밤, 썅썅은 베란다 문틈으로 철조망을 소리없이 빠져나가 좁다란 창문턱에 위태롭게 섰다. 나는 썅썅이 내는 인기척에 잠에서 깨었고 썅썅은 머리를 돌려 시선을 나한테로 고정시켰다.

 

 “잘 있어. 투투…”

 “썅썅…가지마.”

 

 나는 급히 베란다로 달려나갔고 그런 나에게 썅썅은 쌀쌀하게 말을 내뱉었다.

 

 “너야 포포, 토미, 제리만 있으면 다 아니야?”

 “이렇게 가면 넌 너무 비겁해!”

 

 나는 가슴이 터질 듯 해서 이를 악물었고 썅썅은 냉혹한 표정을 유지하고 나를 주시했다.

 

 “난 여러번 네게 말했어. 가지 않으려고 한 건 네쪽이었어. 난 최선을 다했다.”

 “왜 꼭 이래야만 하는 건데? 반쪽 주인이 널 발길질했다고 그래? 널 오해했다고 그래? 충분히 오해할만한 상황이었잖아.”

 “그 사람은 우릴 믿지 않았어. 그게 제일 큰 이유야.”

 “우리가 믿음을 준 적도 없잖아. 그리고 우린 사람들을 믿었니? 왜 우린 안믿으면서 사람에겐 그 믿음을 강요하는데?”

 “난 아니야. 여주인이 울면 위로해주고, 반쪽 주인이 가면 앞을 막아줬어. 믿음...그걸 꼭 말로 해야 하냐? 말로 믿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난 이미 믿고 있었다고.”

 “...”

 “하지만 그들은 날 믿지 않고있어. 내가 포포를 쫓아내려고 생각하고 있고, 포포가 너에게, 우리에게 했던 짓은 전혀 모르고 있어. 그래도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믿고 살아야 하냐?”

 

 나는 입을 벌렸지만 말을 할수 없었고 썅썅은 그런 나를 이윽토록 주시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뒤이어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흰 실루엣 하나가 창밖으로 몸을 날리는 게 보였다. 나는 머리를 들고 길게 절규했고 썅썅의 갈린 목소리도 화답하 듯 울려펴졌다.

 

 “투투…잘 있어…언젠가 니 생각이 돌아설 때면…내가 데리러 올께…”

 “썅썅!!!너 이렇게 가면…널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거야!!!”

 “투투…만일 니가 잘 지내지 못하면…꼭 데리러 올께.”

 “절대 따라 안갈거야!!!썅썅…이 나쁜자식아!!!”

 

 썅썅의 울음소리는 점점 멀어져갔고 나는 그 자리에 풀썩 무릎을 꺾었다. 고양이는 슬퍼도 눈물을 흘릴수 없다는 일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썅썅…썅썅…어떻게 니가 이럴수 있어…어떻게 니가 날 떠나…”

 

 나는 실신한 듯 그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바로 그때 거실에서 토미의 자지러진 울음소리가 터졌다.

 

 “앙앙…다 가버렸어…왜 다 가버리는 거야.”

 

 토미의 울음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멀거니 토미를 바라보았고 토미는 입을 크게 벌리며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제리가 몸을 돌려 토미를 껴안았다.

 

 “괜찮아. 난 안떠날 거야. 모두가 다 떠난다 해도…나만은 니 곁에 남아있을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마.”

 

 방안은 아이들의 슬픈 울음소리로 차넘쳤고 포포는 처음부터 끝까지 멍한 표정으로 꼼짝도 하지 않고있었다.

 ......

 

 이틑날아침, 썅썅이 없어졌다는 것을 안 여자와 남자는 온 세상이 무너져내린 얼굴을 하고있었다.

 

 “결국은…결국은 가버리는구나. 고양이들은, 특히 숫코양이들은 꼭 가출하는구나.”

 “저번처럼 돌아올수도 있지 않을까.”

 

 여자의 목소리에는 막연한 기대가 섞였고 남자는 침울한 얼굴로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번은 안올 거야. 내 예감이야. 어제 내 발길질…그게 결국 썅썅을 떠나게 한 거야. 다…내탓이었어.”

 “아니야…”

 

 여자는 급히 머리를 저으면서 남자의 손을 잡았다.

 

 “올거야. 그리고…만일 안오더라도 자책하지 마. 우린…최선을 다했어. 우리 진심이 애들한테 통하지 않았다면…이것도 하늘의 뜻이야.”

 “냥…”

 

 나는 맥없이 울음소리를 냈고 내 울음소리에 여자는 슬픈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투투…투투…너도 슬프지?어떡하냐…이게 네 팔자인 걸…이게 너네 본성인 걸…”

 “냥…”

 “너무 맥놓지 말자, 너무 절망하지 말자…어쩌면 올지도 모르니까. 그때처럼…그때 가출했던 것처럼…닷새쯤 지나 울면서 우리더러 구해달라고 할지도…모르니까...썅썅…썅썅...”

 

 여자는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울어버렸고 나도 여자를 따라 울고싶어졌다. 머리속에는 온통 썅썅의 다정한 모습뿐이였고 어제 왜 따라가지 못했던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사실 포포도 컸고 토미도 제리가 돌봐주니 이제 더 이상 걱정할 것도 없었다. 여자가 저렇게 울지만 않는다면…나는 당장이라도 베란다 창문을 뛰어넘고 싶었다.

 

 그날 밤이 깊어지자 나는 천천히 베란다 문틈을 빠져나왔다. 멀리 어렴풋이 썅썅의 부름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고 나는 큰 숨을 불어쉬면서 좁은 창문턱에 위태롭게 올라섰다. 바로 멀지 않는 눈앞에 맞은켠 베란다가 있었고 킹과 버미가 떠나던 그날 밤 모습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몸만 솟구치면 내것이 될 바깥세상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고 나는 드디어 몸을 날려서 맞은켠 베란다에 발톱을 걸었다.

 

 “엄마…엄마…가지마…엄마…”

 

 집안에서 토미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내 발목을 잡았다. 한발만 내디디면 바깥으로 통하는 베란다였고 뒤로 뛰어내리면 금방 올라섰던 우리집 베란다 창턱이였다. 나는 눈을 꼭 감았다가 뜨면서 동시에 몸을 솟구쳐 맞은켠 베란다로 올라서려고 했다.

 

 바로 그때 제리의 애절한 목소리가 내 가슴을 두드렸다.

 

 “엄마…우리…같이할수 있을때까지만 같이 있자고 했잖아. 그후에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뿔뿔히 헤어져도 돼. 그냥 우리가 같이할수 있을때까진…최선을 다해…같이 있자구. 그게 그렇게도 어려워?”

 “엄마…나도…더 이상 엄마 속썩이지 않을께. 돌아와…엄마…”

 

 포포의 목소리가 제리의 뒤를 이었고 나는 허공중에 매달린채 한참 망설였다. 머리를 돌려보니 세 고양이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나는 길게 탄식을 한후 발을 한번 구르자 홱 몸을 돌쳐 우리집 베란다로 뛰어내렸다.

 

 그날 저녁, 그렇게 두번 몸을 날리면서…나는 분명 느꼈다. 내 몸속에 또다시 꼼지락거리는 애어린 생명들의 움직임을…

 

 나는, 결국은 떠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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