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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아니야
작가 : 판도라
작품등록일 : 201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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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본성
작성일 : 19-10-22     조회 : 269     추천 : 0     분량 : 9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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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나는 매일매일 고통스럽게 지냈다. 배는 갈수록 불룩해졌지만 나는 점점 여위기만 했다. 예상했던대로 썅썅의 빈 자리는 컸고 우리는 그렇게 적막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3년동안 썅썅은 나의 동반자였고 아이들의 아버지였으며 여자와 이 도시에서의 모든 추억을 같이한 소중한 식구이기도 했다. 그런 썅썅이 가버렸으니 이것은 버미가 가출한 것과는 차원이 아주 다른 슬픔이였고 그런 슬픔은 나와 여자로 하여금 침식을 잊고 삶의 의욕까지 잃게 할 정도의 살상력이었다. 만일 배속의 아이들만 없었더라면…

 

 여자는 거실에 나와서 우리를 보기만 하면 땅이 꺼지 듯 한숨을 내쉬군 했다. 며칠후 포포가 컴퓨터 액정 모니터에 영역표시를 하는 사고를 저질렀지만 여자와 남자는 의외로 관대했고 이튿날 남자는 모니터를 들고 나가 새걸로 바꿔왔을뿐 포포에게 일언반구의 꾸지람도 없었다. 그날 저녁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말을 듣고서야 나는 포포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다.

 

 “모니터가 켜지지도 않아. 매장에 갔더니 차라리 버리라고 해서 새걸로 샀어.”

 “저넘 포포가! 한번 실수에 모니터를 날리네. 당장 혼내놓을 거야!”

 “냅둬. 한낱 미물이야. 쟤가 그걸 알고 일부러 그랬을까. 필경은 동물이잖아.”

 “휴우...미안해”

 “그런 말 하지 마.”

 “...”

 “우린 이젠 가족이야. 가족이 잘못한 일은 덮어주고 용서해주는 수밖에 아무 방법이 없어. 이건 사람 사이나, 사람과 동물 사이나 다 똑같은 거야.”

 

 남자는 이 말을 한후 피씩 웃었다.

 

 “내가 전보다 아주 달라진 것 같지 않냐?”

 

 남자의 말은 농담이 아니였다. 여자의 아버지가 오래간만에 둘을 보러 왔고 여자가 술을 사러 간 틈을 타서 남자와 여자의 아버지 사이에는 허심탄회한 대화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동안 이렇다할 말씀도 못드려 죄송합니다. 일년안으로 결혼하겠습니다…”

 “내가 과년한 딸이 걱정되어 자네에게 괜한 압력을 줬네. 아무쪼록 너그러이 생각하게.”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아버님…언젠가 아버님이 그러셨잖아요. 가족사이에는 원칙이 통하지 않고 서로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거라고…”

 “…그랬나.”

 “저는 단촐한 식구에 아직 나이도 어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습니다. 이런 저를 항상 이쁘게 생각해주시니 고마웠습니다. 그러니 저를 가족으로 생각하신다면 그런 말씀은 삼가해주세요.”

 “허허...”

 “그러니…저의 부족한 점도 너그러이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남들이 가진 걸 다 갖추고 결혼을 하고 싶어서 미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결혼에 임하려구요.”

 

 여자의 아버지는 머리를 젖히고 호탕하게 웃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네. 내가 자네 대답을 들었으니 이제 또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여자의 아버지가 간후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정아야, 이젠 엄마하고 다투지 말아.”

 “엄마가 고양이를 기르지 말라고 하지 않는 이상 난 안다툴 거야.”

 “부모가 자식을 열번 생각할 때, 자식은 한번도 생각할까 말까 한다는 말이 있어. 마찬가지로 우리가 애들을 진심으로 대해줘도 애들은 그걸 믿어주지 않았어. 하지만 그렇다고 니가 애들을 안이뻐할 거냐?”

 “아니.”

 “그러니까. 부모들이 우릴 대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애들 대하는 거랑 똑같다는 걸 알게 되었어. 간섭보단 관심해서, 사랑해서 하는 말들도 많았지만 우리는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반항하고 거부해왔었지…부모들께는 우리의 생각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면서, 왜 우리는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부모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는지…”

 

 남자의 말에 여자는 잠자코 있었고 오히려 내가 그 말을 듣고 깊은 사색에 잠겼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썅썅…그런 썅썅을 나는 결국 이해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썅썅은 이런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수 있는 마음가짐은 도대체 얼마만한 관용을 기초로 하고있는 걸까. 썅썅에게 나는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못난 고양이였고 어쩌면 썅썅은 자신을 오해한 사람에게 회의를 느꼈다기보다 끝까지 자기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나에게 긍국적인 절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자유를 갈망하는 썅썅과 주인에게 길들여진 나는 앞으로 더 이상의 교점이 있을까…이해에 목말라있는 썅썅의 가출…하지만 그게 어찌 고양이만의 일일까. 나는 해답을 찾을수 없었다.

 

 시간은 살같이 흘러 두달이 흘렀고 드디여 나에게는 출산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여자가 산파 역할을 맡았고 나는 여자의 도움으로 나와 썅썅의 세번째 아이들을 순산했다. 모두 여섯마리였고 두마리는 썅썅을, 두마리는 나를 닮았다. 그리고 나머지 두마리는 하얀 털에 검은 털, 하연 털에 노란 털이 섞여있는 예쁜 아기들이였다.

 

 아기들은 입을 짝짝 벌리며 젖을 찾았고 나는 박스안에 꽉 차있는 아기들의 모습에 오래간만에 한가닥 희열을 느꼈다. 썅썅은 떠났지만 썅썅을 닮은 아이가 두마리나 있었고 어쩌면 저 아이들이 내 남은 삶의 위로가 되어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포포는 큰형님 행세를 내면서 상자입구를 지키고 앉았고 토미와 제리는 신기한 듯 상자를 들여다보다가 포포에게 쫓겨 먼발치로 달아나고 말았다. 여자는 남자를 바라보면서 난처한 기색을 지었다.

 

 “여섯마리나…지금 우리 집엔 고양이 열마리나 있어. 썅썅과 버미가 있었더라면 열두마리네.”

 “일단은 다 잘 길러서 제일 어린 애들부터 분양주기로 하자.”

 

 남자는 팔을 썩썩 거두고 상자 입구를 넓혀주었고 나는 한참 망설이다가 상자안에 들어가 애들을 끼고 누웠다. 어쩐지 포포가 문어구에 있는 것이 불안했고 나는 멀리 있는 토미와 제리를 불렀다.

 

 “얘들아, 이쪽으로 오너라.”

 

 토미와 제리는 슬금슬금 앞으로 다가왔고 포포 눈치를 살피다가 널찍한 상자 입구로 냉큼 뛰어들어왔다. 눈도 뜨지 못한 아기들이 하악 소리를 냈고 토미와 제리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렇게도 작을까. 엄마, 우리도 저랬어?”

 “나도 엄마처럼 쟤들 끼고 누울거야.”

 

 제리는 말이 끝나기 바쁘게 다가오더니 내옆에 털썩 누웠고 여자는 제리가 내는 기척소리에 상자를 들여다보다가 기겁을 했다.

 

 “제리야! 당장 못나와? 그러다 애들 깔아서 상하게 하면 어쩌려고…”

 

 토미와 제리가 여자에게 질질 끌려 나갔고 포포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가 기회를 엿보고 입구에 털썩 가로 누웠다. 나는 눈덩이처럼 하얀 포포의 털을 바라보다가 내 가슴을 파고드는 새하얀 두 아기한테 눈길을 돌렸다. 썅썅은 자기가 떠날 때 내가 임신했다는 걸 알고있었을까. 만일 알았다면 그렇게 냉정하게 떠나지 않았을텐데…나는 썅썅을 꼭 삐어닮은 두 아이에게 눈길을 떼지 못했다.

 

 입구에서는 포포가 입술을 감빨면서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상자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이틑날 썅썅을 닮은 두 아기중 한 아기가 죽었다.

 

 아기는 천성으로 약하게 태어난 듯 했고 젖이 모자라서 다른 애들한테 밀린 듯 보였다. 여자가 발견했을 때 아기는 상자 구석에 끼어 나른해져 있었고, 여자가 그런 아기를 타올로 옮겼을 때 아기의 작은 몸은 이미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아기고양이의 몸이 경련을 일으킬 때에는 이미 살릴 가망이 없음을…

 

 여자는 눈물을 뚝뚝 떨구었고 하얀 아기는 몇번 더 경련을 일으킨 후 길게 마지막 신음소리를 내보내더니 차츰 딱딱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여자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지 끝까지 아기를 쓰다듬고 있었고 가끔 애원의 눈길을 나에게 보내면서 나에게 젖을 물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아기의 곁에 다가가 혀로 둬번 핥다가 냉정하게 뒤로 돌아섰다. 포포의 쌍둥이 동생이 죽을 때에도 똑 같은 상황이였다. 나는 내가 아기를 살릴 힘이 없다는 판단을 했고 더 이상 죽어가는 생명에게 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기 싫었던 것이다.

 

 “투투…너도 참 냉정하고 가혹해…”

 

 여자가 천천히 내뱉었고 남자는 하얀 천으로 아기의 시체를 조심스럽게 감았다. 그 작은 몸이 그렇게 빠르게 죽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우리는 멍하니 지켜볼수밖에 없었다. 몇번의 경험을 거치자 죽음이라는 것이 그토록 구체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얀 아기의 죽음은 그 어떤 불길한 징조인듯 했고 나는 썅썅이 갈때부터 불안했던 내 마음이 어린 생명을 혼자 힘으로 지켜주지 못하는 무기력함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때까지 우리는 정말 몰랐다. 몇시간후 더 큰 불행…더 큰 비극이 우리에게 닥쳤고 우리 생활은 그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게 될 거라는 것을…

 ......

 

 참사는 눈깜빡 할 사이에 발생했다.

 

 새벽이 되어 어렴풋이 잠들었던 나는 갑자기 울려퍼지는 자지러진 울음소리에 언뜻 눈을 떴다. 울음소리는 토미와 제리의 소리 같았고 텅 빈 상자안을 확인하고 급히 일어나서 상자밖을 나가려는 순간, 나는 문득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에 몸을 흠칫했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보았다…거실 바닥 가득한 피자욱을…

 

 그리고 또 보았다…거실 중앙에 가로놓인 절반의 아기 시체를…

 

 “아!!!!!!!!!!!!!!!!!!!!!!!!!!!”

 

 나는 저도 모르게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바닥에 몸을 뒹굴면서 내 머리를 집어뜯기 시작했다. 두달간의 영양실조에 출산까지 겹쳐 아까 깜빡 잠든 것이 화근이였다. 도대체 누가!!!!누가 내 아기들에게 이런 악행을 저질렀단 말인가!!!!!!!!!!

 

 “엄마…포포…포포…”

 

 토미의 공포에 젖은 울음소리가 내 귀청을 때렸고 나는 언뜻 정신을 차렸다. 벌떡 몸을 일으킨 나는 포포가 시뻘건 입을 핥으면서 절반짜리 아기 시체에 입을 대는 것을 면바로 포착할수 있었다.

 

 “포포!!!!!!!!이 나쁜새끼야!!!!!!!!!!!!!!”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살같이 앞으로 내달렸고 포포의 입에 들어가려는 아기 시체를 물었다. 나와 포포는 누구도 놓으려 하지 않았고 나는 발톱을 쫙 펴서 포포의 눈을 할퀴었다.

 

 “헉…”

 

 포포가 뒤로 성큼 물러섰고 나는 드디여 포포에게서 아기시체를 빼앗아낼수 있었다. 여자가 제일 이쁘다고 했던, 나를 꼭 떼닮은 삼색 얼룩이였다. 얼룩이는 허리 아래부터 뒷다리와 꼬리만 남았고, 그 이쁘고 앙증맞은 상체는 어느새 그 모습이 사라져 있었다. 아마 포포의 배속에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아!!!!!!!!!!!!!”

 

 나는 외마디 신음을 지른후 얼룩이의 몸을 핥고 또 핥았다. 꼭 마치 그렇게 핥으면 얼룩이가 몸이 회복되어 다시 살아날수 있을 것 같은 환각이 생겼다. 포포는 나에게서 시체를 빼앗기자 곧 상자쪽으로 달려갔고, 상자 주위에서 나는 또 하나의 참담한 살육현장을 발견했다...

 

 남자가 거실의 기척소리를 듣고 나왔을 때에는 아기고양이 한마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하얀 털에 노란 털이 섞인 아기는 누군가의 날카로운 이발에 여린 배가 찍혀 창자가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다. 토미와 제리는 거실 한쪽켠의 책장위로 몸을 숨기고 부들부들 떨고있었고, 나는 거의 실신상태가 되어 얼룩이의 절반을 에워싸고 건드리기도 하고 핥기도 했다. 남자가 급히 여자를 불렀다.

 

 “정아야…문 걸어. 절대 나오지 마.”

 

 여자는 남자의 말을 주의하지 못한채 잠이 덜 깬 표정으로 거실로 걸어나와 전등을 켰다. 남자는 거실의 참상에 헉 하고 숨을 들이키더니 차마 못보겠다는 듯 머리를 돌려버렸다. 여자는 입을 딱 벌리고 한참을 멍해있다가 천천히,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게...이게 무슨 일이지?”

 “…”

 “이 피들은, 이 피들은 뭐야…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

 “아닐거야…투투…원래 출산하면 피를 흘리잖아. 투투 피일거야.그치…맞다고 말해줘.”

 “…”

 “그럴수 없어…어떻게 이런 일이…어떻게 우리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수 있어?”

 

 여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로와졌고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다가가 여자의 눈을 막았다.

 

 “정아야, 방안에 들어가 있어.”

 “안돼!!!안돼!!!!어쩌면 이런 일이 발생해…이건 아니야!!!!!!이건 진짜가 아니라고…난 지금 꿈을 꾸고있다고!!!!!!!!!누가 날 깨웠잖아…하지만 이건 꿈이야. 난 깨지 않았어…그래…난 깨지 않았어…이건 꿈이야. 꿈인 게 분명해.”

 “들어가있어.”

 “투투!!!!!!!!!!!!”

 

 여자가 느닷없이 꽥 소리를 질렀고 그때 나는 절반짜리 얼룩아기의 시체를 물고 막 장소를 옮기려던 참이였다. 여자는 그런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가 갑자기 머리를 싸쥐며 소리를 질렀다.

 

 “아!!!!!!!!!!!!!!!!!!!!!!!!!!!”

 “정아야, 진정해!”

 “투투…투투가 어떻게...투투가 아기를 죽였어!!!!!!!!아!!!!!!!!!아!!!!!!!!어떻게 이런 일이!!!!!!!!!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수 있어?!!!!!!!!!!!나…나…안돼, 이건 아니야!!!!!범도 제새끼를 물지 않는다는데……어쩌면 이런 참담한 일이 내 집에 생겨?!!!!”

 

 나는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여자는 그렇게 비명을 지르다가 스르르 남자의 품에 쓰러졌다. 남자가 여자를 방안으로 안아 들여갔고 나는 여자의 말을 천천히 되새기다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문득 머리를 돌려 거실 거울을 본 나는 거울에 비친 내 기괴한 모습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거실 거울속에는 흉흉한 야생의 눈빛을 번뜩이는 한 어미고양이가, 피묻은 입으로 절반의 아기 시체를 문채 싸늘하게 거울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

 

 시간이 썩 지난후에야 생각난 것이였지만 고양이과 수컷의 영역싸움이란 원래 잔인한 것이였다.

 

 혹시 티비프로에서 동물세계를 즐겨 보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점을 이해할 거라 믿는다. 누차 말했었지만 고양이과 수컷의 영역싸움에서 제일 대표적인 예로는 사자를 손꼽을수 있다. 사자는 무리지어 생활하는 고양이과 대표동물로서 사자의 힘쎈 수컷은 여러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며 그 수컷은 보통 그 사자무리의 왕이 된다. 사자왕이 늙으면 일가들이거나 다른 지역에서 다른 숫사자가 와서 영역싸움을 하며, 영역싸움에 사자왕이 지게 되면 사자왕은 그 무리를 떠나거나 죽임을 당하군 한다. 새로운 사자왕은 전 사자왕의 새끼들을 잔인하게 물어죽인 다음 그 무리의 암컷들을 차지한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사자의 암컷이 숫사자가 자기 새끼를 물어죽이는. 걸 보면서도 체념한듯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상황이 종료되면 새끼들의 시체를 거들떠보지도 않은채 포효하는 수컷의 옆에 순종하듯 엎드린다. 고양이과 동물은 과연 다 이래야 하는 것일까.

 

 나는 절대 그럴수 없었다. 썅썅이 떠나고 포포가 썅썅의 아이들을 죽였지만 나는 포포에게 굴복할수 없었다. 여자가 쓰러지고 남자가 여자를 방안에 들여간 틈을 타서 나는 포포에게 달려들어 내 혼신의 힘을 다해 그와 싸웠다. 이건 내 자신의 정조 문제만이 아니였다. 겨우 살아남은 아기 고양이 두마리중 한마리가 유독 썅썅을 닮아 있었고, 포포가 낮에 그 아이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포포가 물러선 다음 나는 상자입구를 든든히 지켰다. 남자가 하얀 천과 주머니를 가지고 와서 아기 시체들을 조심스럽게 담고있었고 기진맥진한 나는 남자를 향해 미약한 울음소리를 냈다.

 

 “냥…”

 “투투…진짜 니가 그런 거였어? 아니라고 해봐.”

 “냥…”

 “나도 알어. 네가 지금 내는 그 울음소리는, 고양이가 사람을 향해 말하는 소리라고…너네끼린 절대 야옹 하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했어. 그러니까 넌 지금 나한테 니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싶은 거지? 그렇지?”

 

 나는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기만 했고 남자는 한숨을 쉬면서 절반짜리 아기 시체를 천으로 감쌌다. 다시 손을 내밀어 노랑이를 주머니에 담으려던 남자는 그만 머리를 돌려버렸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남자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투명한 눈물을…

 

 배에 구멍이 뚫린 노랑이는 그때까지 죽지 않고 있었다. 숨을 쉴때마다 흘러나오는 창자와 붉은 피가 상자안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고, 노랑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이 한많은 인간세상을 향해 마지막이 분명한 신음소리를 또렷이 내고있었다.

 

 “앙…”

 “잘 가. 노랑아.”

 

 남자의 목소리는 진한 슬픔에 젖어있었고 방안에서 여자의 통곡소리가 터지고 있었다. 여자가 울면서 머라고 소리쳤고 남자는 그 소리에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제발…”

 “나오지 마.”

 “버리지 마…”

 “정아야.”

 “아직…아직 죽지 않았어…제발 버리지 마…제발…죽더라도 우리 품안에서 죽게 해.”

 

 여자가 비틀거리며 방문가에 나타났고 남자는 머리를 돌리고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못구해. 배에 구멍이 뚫렸어.”

 “그런데 아직 죽지 않았잖아…”

 

 여자는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 말했고 남자는 이를 악물고 노랑이를 비닐에 넣었다.

 

 “노랑아…안녕…”

 

 남자의 손이 노랑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자 여자는 손으로 입을 막은채 방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이어서 방안에서는 여자의 통곡소리가 들렸고 노랑이는 그 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그때 나는 미처 몰랐었다. 여자와 나 사이에 그날의 오해가 그렇게 오래 갈줄은…나는 밤새 자지 않고 남은 두 아이를 지켰고 포포도 피곤했는지 더 이상 내게 달려들지 않았다. 길고 지루한 밤이였다.

 

 이튿날 아침, 여자는 피발이 선 눈으로 거실로 나왔고 잠깐 나를 일별하다가 사료그릇으로 다가갔다. 여자가 그릇에 사료를 담고 일어서자 포포가 달려들어 먹어댔고 나도 비틀거리면서 상자안을 나왔다.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자면 조금이라도 음식을 먹어야 했던 것이다.

 

 “저리 가.”

 

 여자가 나를 사정없이 밀어낼 때까지만 해도 나는 영문을 알지 못한채 여자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여자에게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한 제스처였고 나의 이 행동에 여자는 더 심하게 몸을 떨었다.

 

 “가! 저리 가라니까!”

 

 여자의 손이 짱, 하고 내 얼굴을 내리쳤고 그 서슬에 나는 맥없이 뒤로 쓰러졌다. 나는 내 눈을 믿을수가 없었다. 여자의 눈에서는 전에없는 차가운 빛이 번뜩였고 나는 맞은 얼굴이 아픈 감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쓰러진 자세 그대로 멍하니 여자의 얼굴을 주시했다.

 

 “냥?”

 “투투…넌 이젠 천사가 아니야.”

 

 여자는 잠깐 멈추었다가 이사이로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호랑이도 자기 새끼는 물지 않아. 그런데 넌? 너넨 애완동물이야. 호랑이처럼 야생동물이 아니라고. 어쩌면 그렇게 잔인하고 가혹해? 아니 이런 진부한 단어로는 표현이 너무 약해…넌…넌…”

 

 나는 그제야 얼굴이 화끈거리는 감을 느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썅썅이 떠난후 줄곧 허약했던 내 몸은, 갓 출산한데다가 수유로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어제밤 참혹한 일까지 겪다보니 한없이 무기력했다. 여자는 그런 나를 쳐다보면서 쓸쓸하고 냉정한 미소를 지었다.

 

 “옆에 잠든 고양이가 있는 사람은…행복한 사람이래.그 옆에 천사가 잠들고 있으니까…그래서 나도 고양이들을 천사라고 생각하고 싶었어.”

 “...냥.”

 “그리고 누가 머래도…난 너희들을 천사처럼 이뻐해주고 아껴주고 싶었어. 내 가족, 내 연인, 내 친구들과 멀어지면서까지…그렇게 너를 사랑했는데 투투…넌…”

 “냥...”

 “넌, 천사가 아니야.”

 “...”

 “넌, 악마야.”

 

 나는 그 자리에 굳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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