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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아니야
작가 : 판도라
작품등록일 : 201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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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각성
작성일 : 19-10-24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9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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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언젠가 여자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 있었다.

 

 고양이들은 행여 주인한테 버림을 당했어도 절대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일 주인이 고양이를 길에 버리고 간다면 그 고양이는 주인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경우도 아주 많다고 한다. 고양이들은 주인이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 범위외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소외당한 느낌만 있을뿐 버림당한 기억은 없다고 한다.

 

 자신이 주인을 떠나면 떠났지 절대 주인은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고양이들…대체 우리는 총명한지 바보스러운지 나는 지금까지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포포 역시 그랬다. 포포는 여자가 자신을 버린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부주의로 집밖에 갇히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포포의 그런 태도는 여자의 마음 깊숙히 묻어버린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충분한 것이었다. 두번 포포를 내쫓는 과정에서 이미 크다란 죄책감을 느낀 여자는 조금씩 자상하고 살틀한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었다.

 

 “투투…요즘 왜 이리 적게 먹는 거야.”

 

 몇일후 여자의 손길이 가볍게 내 등을 쓰다듬을 때, 나는 눈을 가슴츠레 뜨고 가르릉 소리를 내였다. 이게 얼마만인가…여자의 이런 따뜻한 애무를 느껴보기가…크다란 감동이 내 몸을 휩쓸고 지나갔고, 나는 몸을 돌려 여자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우리는 오래간만에 다정한 자세로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한여름의 햇살은 그런 우리의 몸위에 눈부시게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어렵게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여자와 남자의 일도 일사천리도 풀리기 시작했다. 우선 여자가 회사에서 관리직으로 승진했고 여자가 출근을 회복한후 남자에게도 동종업계 제휴의 기회가 찾아왔다. 여자와 남자는 차츰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졌고 우리의 서열에도 질서가 잡혀 생활은 그런대로 무난했다.

 

 흠이라면 포포가 아직 영역표시를 하고 밤중에 청승맞게 우는 습관이 생겼으며, 토미와 쇼썅썅은 담이 점점 작아져 사람 그림자만 봐도 허겁지겁 책장뒤로 숨는다는 것이다. 울울과 제리는 같은 남자노라고 서로 뒤엉켜 싸우기도 하고 쫓기도 하면서 거실을 수라장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하루는 제리가 정수기 개폐기를 하루종일 열어놓아 여자와 남자가 집에 들어섰을 때에는 거실이 아예 바다로 변한 일도 있었다. 여자와 남자는 포포가 한짓이라고 애매한 포포를 혼내주었고 제리는 구석에 숨어 그들이 거실을 다 거둘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름이 거의 지날무렵, 여자의 집에는 큰 변고가 생겼다. 여자의 말을 들어보면, 여자의 엄마가 섭외한 바이어가 공장에 큰 오더를 내린채 납기를 몇일 앞두고 갑자기 잠수를 탔다고 했다. 공장장은 여자의 엄마를 찾아와서 그 바이어의 행방을 대라고 행패를 부리다가 급기야는 여자의 엄마를 연행해가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후에 여자의 엄마는 겨우 풀려나왔지만 그것은 공장이 손해를 본 금액을 상환해주기로 약속한 전제에서였다.

 

 “사실 엄마한텐 책임도 없어. 왜 바이어가 잠수 탔는데 엄마가 그 책임을 져야지?”

 

 여자가 화가 나서 남자에게 말했고 남자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없었다.

 

 “공장은 계약을 한 바이어를 찾아야지 왜 직원에 불과한 엄마를 찾는 거야. 그리고 왜 엄마한테 그 빚을 물라고 해? 이럴 때 법은 뭐하고 있어.”

 “바이어가 잠수를 탔으면 어머님께 연대 책임은 있어. 담당자로서 사인도 있을테니까.”

 “그럼...엄마도 잠수 타면?”

 “정아야, 어머님은…책임지고 다시 일어서려고 하실 거야. 공장과 약속도 하셨으니까.”

 “휴우…”

 

 여자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마침 내게 어느정도 돈이 있긴 해. 이건 이 도시에 작은 집 선불금을 낼수 있는 정도야.”

 

 남자는 한참 생각에 잠겨있다가 결심이라도 내린 듯 여자에게 말했다.

 

 “…우선 어머님께 연락을 드려. 금액이 얼마인지 확인해야 하니까.”

 “그다음엔 어떻게 하지?”

 

 여자는 머리를 싸쥐고 고민했고 남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을 내가 상환할께.”

 

 여자는 눈을 크게 뜨고 남자를 바라보았고 남자는 진중한 태도로 머리를 끄덕였다. 여자의 눈에 얼핏 착잡한 기색이 스쳤다.

 

 “그걸로 투자삼아 다른 회사와 제휴한다고 하지 않았어?”

 “원래는 그렇게 계획했는데...변경해야지. 동업이 아닌 취직으로. 그까짓 금액이야 몇년정도 다시 모으면 될 것 같아.”

 “하지만…그렇게는 절대 안돼. 내가 너무 미안해.”

 “집안이 위기인데, 그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나.”

 “...”

 “그리고 너한테 있는 그 돈으로는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해. 여기 임대비를 절약하고 앞으로 우리 둘 월급으로는 대출을 갚자.”

 

 남자가 빙그레 웃었고 여자는 의아한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당신 참...많이 변했다.”

 “어느 부분에서?”

 “전에 누가 나보고…항상 집안 위해서 희생만 한다고 했었어?”

 “…”

 “이상하네.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바뀌게 한 건지.”

 “음…아버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댔어. 집안엔 아무 원칙도 없다고…그냥 사랑하니까, 가족으로 사랑하니까…다 받아들이고 양보하는 거라고.”

 “…”

 “우린 사랑하니까, 그래서 가족인 거야. 가족의 잘못과 실수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감싸줄수도 있다고 하셨어.”

 “...”

 “아버님 그 말씀이 참 마음에 와닿았어.”

 “...”

 “어쩌면 우리가 우리 고양이들에 대해서도…같은 감정이 아닐까. 가족의 실수를 포용할줄도 알아야,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

 

 남자의 말은 낮게 울렸고, 여자의 눈에는 언뜻 맑은 이슬이 보였다.

 ......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여자의 엄마는 여자와 남자의 도움으로 공장의 빚을 청산하고 빈 허울만 남은 무역회사를 정리했고, 여자는 여기보다 작은 집을 구매해서 두달후 임대계약이 완료되면 이사를 하기로 결정지었다.

 

 두달...두달후에 여자는 이사를 할거고, 새 집으로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건 나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 여자와 남자가 틈만 나면 사들고 오는 값비싼 고양이 간식거리를 보면서 나는 이별을 앞둔 처연함은 나 혼자만의 몫은 아니라는 것도 알수 있었다.

 

 나는 차츰 식욕을 잃었고 여자와 남자는 갈수록 말라가는 내 몸을 보면서 무거운 한숨만 내쉴뿐이였다.

 

 분양계획 리스트에 제일 먼저 오른 명단은 포포였다. 그날 여자의 엄마가 오랜만에 여자의 집을 찾아왔고 여자는 엄마를 반갑게 맞이했다. 여자가 엄마를 한참 위로하는 소리가 들렸고 여자의 엄마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괜히 나 때문에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는구나.”

 “엄마,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동안 엄마 혼자 집안의 주축이 되어 고생하신 거 다 알아요. 우린 이젠 가족이잖아요. 같이 이겨나가야죠.”

 “남자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 꼭 전해주렴. 그 돈은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먼저 갚으마.”

 “오늘은 늦게 들어온다고 하던데 오면 전해드릴께요.”

 “나…이젠 일 좀 정리하고 집안에 신경을 쓸란다. 아버지 밥도 해주고 가족 챙기면서…”

 

 여자는 엄마의 말에 눈을 크게 떴고 항상 강해보였던 여자의 엄마는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

 

 “어제 간만에 아버지랑 같이 아침밥을 먹었어…아버지가 머라시는줄 알어?”

 “뭐라 하시던데요?”

 “행복하단다.”

 “…”

 “내가 그렇게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데도, 나랑 같이 아침밥을 먹는 그 20분이…너무 행복하단다.”

 “…”

 “바보 같은 양반…내가 미안하지.”

 

 여자의 엄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고 여자는 말없이 엄마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집문을 나서려던 여자의 엄마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머리를 돌렸다.

 

 “아참…한가지 깜빡할뻔했다. 관리센터 직원이…포포를 달라고 하더라.”

 “포포…를요? 왜 하필 포포를…”

 “글쎄...저번에 한번 보고 한눈에 꽂혔다고 하는구나.”

 

 여자의 엄마 눈길은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포포를 잠시 스쳤다가 그옆의 나에게로 옮겨졌다.

 

 “얘는 왜 이리 허약하냐?”

 

 여자의 엄마가 처음으로 내게 관심을 보였고 여자의 눈은 환희에 넘쳐 반짝 빛났다.

 

 “모르겠어요. 엄마 얘 좀 봐줘요. 잘 먹이는데도 항상 허약해요. 점점 마르기만 하구요.”

 

 여자의 엄마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섰고 나는 슬며시 일어서려다가 여자의 엄마에게 목덜미를 잡혔다. 여자의 엄마는 손으로 나를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입을 열었다.

 

 “건강엔 크게 문제가 있어보이진 않는데…”

 “네.”

 “스트레스 받는가보다.”

 “네?”

 “엄마 어릴 때 집에 할머니가 기른 고양이가 있었어. 7년 되어서 사람 말을 다 알아듣던 고양이…엄마 할머니가 세상을 뜨자…따라 갔어.”

 “아무 병도…없이요?”

 “응…종일 할머니 무덤에 가 엎드려있다가…암튼 고양이들은 영물은 영물들이야.”

 

 여자의 엄마는 머리를 흔들면서 여자의 집을 나섰고 여자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나에게로 몸을 돌렸다.

 

 “투투…”

 

 여자는 잔걸음으로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무릎을 꿇고 나를 껴안았다.

 

 “어디가 문제 생긴 거야…왜 이렇게 말라있는 거야…투투…니가 이러면 안돼. 응? 제발 괜찮다고 말해줘…언제 어디서든 괜찮을 거라고 말해줘.”

 “냐앙…”

 

 나는 가볍게 대꾸했고 여자는 나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날 저녁, 여자는 남자에게 포포의 일을 말했고 남자는 무거운 기색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포포를 보았지만 포포는 자기가 제일 먼저 이 집을 떠나야 하는 것도 모른채 흥에 겨워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나는 어쩐지 피곤한 느낌이 들어 쇼썅썅과 울울을 데리고 잠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꿈결에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리자 나는 펄쩍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베란다쪽에 정체 모를 누런 고양이가 포포와 마주한채 귀를 납작 뒤로 붙이고 싸울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포포는 눈을 부릅뜨고 이발을 드러내면서 큰소리로 으르릉 거렸다.

 

 “어디서 굴러온 놈인데 감이 내 집을 기웃거려! 당장 물러가지 못해?!”

 ......

 

 나는 잠깐 짧은 한숨을 불어 내쉬었다. 포포는 완연히…전에 킹을 만났을때의 용맹한 썅썅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었다. 썅썅…썅썅…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는지…썅썅은 내가 이렇게 큰 일들을 겪고있는 걸 알고나 있는 건지…

 

 “당장 물러가라니까!”

 

 포포는 다시 한번 호통쳤고 역한 냄새를 풍기는 누런 고양이는 등을 활등처럼 치켜올리며 싸늘한 눈빛을 보였다.

 

 “예쁜 아이들이 많네. 네놈 혼자 끼고 살면서 퍽이나 재미를 보았구나.”

 “내 집에서 꺼져.”

 “네 집이라…이 동네가 우리 거라는걸 모르진 않겠지? 네놈이 네 집이라 하는 이 집도 우리 거야.”

 “꺼지라고 했다.”

 

 포포는 짧게 한마디 던지더니 와락 상대방에게 달려들었고 베란다에서는 순식간에 투덕투덕 하는 싸움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포포와 몇합 어울리다가 못당해내겠는지 누런 고양이는 비실비실 뒤걸음을 치더니 베란다 창문밖으로 몸을 날리면서 한마디 내뱉었다.

 

 “두고봐. 또 올 테니까.”

 “엄마…어떡해…”

 

 토미와 제리가 내 곁으로 몰려들었고 쇼썅썅과 울울은 내 품속에서 머리도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포포는 위풍당당하게 나한테로 걸어오더니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여긴 내가 지킬 테니까.”

 “바보 같은 소리.”

 

 나는 쓸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눈을 들어 포포를 바라보았다.

 

 “넌 진짜 바보구나.”

 “그게…무슨 말이야.”

 “넌 여기가 아직 니 집이라고 생각하냐?”

 “엄마!”

 “말했잖아.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그리고 여긴 더 이상 니 집도 아니야. 넌…곧 분양줄거야.”

 “뭐?”

 

 포포는 천천히 뒤로 물러서더니 풀썩 무릎을 꺾고 주저앉았다.

 

 “엄마…그게 무슨 말이야? 분양? 분양이 뭐야?”

 

 토미와 제리가 눈을 둥그렇게 떴고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간단히 말하면…우린 곧 헤어지게 된다고.”

 “왜?”

 “왜라니! 다 컸는데 헤어지지 않고 뭐하겠니! 고양이로 태어나서 젖을 떼면 어미 떠나서 자립해야 한다는 법도 몰라?”

 

 나는 괜스레 화를 내고있었고 토미는 한참 멍해있다가 처연한 울음소리를 냈다.

 

 “냐양!!! 싫어 싫어! 다 싫어…왜 헤어져야 하는 거야? 우리 왜 이렇게 된 거야?”

 “결국…이거였어?”

 

 포포가 서글프게 입을 열었고 아이들은 눈길을 포포한테로 돌렸다.

 

 “다들 날…버리고 싶었어? 그런 거였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포포는 서글픈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번 두번…주인도 작정하고 날 버린 거였어? 그리고 엄마도…날 버리는 거야? 내가…그렇게도 잘못했어?”

 

 나는 눈길을 돌렸고 제리가 나대신 입을 열었다.

 

 “포포…형…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어. 그리고 조용히…멋있게 떠나자. 솔직히 그번 일 일…우리 그 누구한테나 영원히 잊지 못할 끔찍한 기억이였어. 그 일후로…엄마가 얼마나 형을 무서워하고 꺼려한다는 걸 형이 모르진 않잖아…”

 “…제리야.”

 “그리고 형뿐만아니라…우리 모두가 곧 헤어지게 될거야. 세상에 영원한 거란건 없어…우리가 자라면서 먹는 사료들…쓰는 화장실 모레들…그거 주인들이 모두 돈을 꽤 많이 들여서 사야 하는 거란 말이야. 게다가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이 어디 적어? 집을 어지럽히는 건 둘째치고 가구를 발톱으로 뜯고 정수기 물을 내려놓아 집안 바다로 만들고…특히 형은 사처에 영역표시까지 하고…”

 “그건!”

 

 포포는 발딱하다가 고개를 숙이고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본성이야.”

 “그래 말 잘했어. 본성…우리는 고양이니까, 동물이니까 자기 본성만 지키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인간도 본성이 있어. 우리가 지켜본 인간들, 자기 본성을 다 그대로 표현하면서 사는거 아니잖아. 물론 고양이까지 잡아먹는 식(食)의 본성을 지키는 사람도 있고, 여자라면 모조리 덮치고싶어하는 색(色)의 본성을 가진 사람들도 있어. 그런 인간들을 사람들은 흔히 짐승 같은, 혹은 짐승보다도 못한 놈이라고 하지. 그러니 본성은 지켜지는 것보다, 자제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자제...”

 “그래. 일말의 자제력도 없이 본성만 운운하면서 형처럼 그렇게 지내다간, 언젠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고양이들 한테도 배척당하게 될거란 말이야.”

 “…”

 “그러니 그냥 박수칠때 떠나자. 형 오늘 저녁 진짜 용감했어. 사양 고양이로부터 우리를 지켜냈고 터키시 앙고라 고양이의 위엄도 보여줬어. 우린 형을 그런 멋있는 모습으로 기억할거야.”

 “...”

 “우리 고양이로서의 사명, 동물로서의 가치…난 줄곧 그런 걸 생각해봤어. 그래서 난 지금…우리가 떠나기전 주인들한테 해줄수 있는게 뭘까 생각하고 있어. 만일 주인이 우리가 더 이상 골칫덩어리로 존재하지 말고 떠나는걸 바라는 거라면…난 조용히 떠나줄 거야. 그것이 주인에 대한 내 사랑방식이야.”

 

 포포를 향한 제리의 그 말들은 실낱처럼 내 가슴을 잠깐 스쳤다. 쇼썅썅과 울울은 어느새 잠들어 있었고 포포는 날이 희붐이 밝을 때까지 베란다앞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

 

 우리의 사명, 우리의 가치는 대체 무엇일까.

 

 언젠가 썅썅이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해?”

 

 그때 나는, 그냥 태어나서 사는게 아니냐고, 어쩌면 인간들도 그렇지 않냐고 했었고, 썅썅은 자신의 사명은 애완동물로 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고 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머리에 생생하다. 그러고보면 후에 썅썅은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으러 집을 떠난 것이지만 나는 아직도 자신만의 혼돈세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허덕이고 있었다.

 

 제리의 말은 나를 깊은 명상에서 깨어나게 했고, 나는 지금까지 내가 외면해 오던 것들을 새삼스레 정시하고 싶어졌다. 그것은 하나의 각오처럼 나를 각성시켰다.

 

 태어났기 때문에 살고, 살기 때문에 희로애락을 느껴야 하는 것…산다는 것은 참 단순한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고행의 연속인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살면서 공기가 없으면 몇분도 견딜수 없지만, 공기의 고마움을 느껴본 적이 얼마나 될까?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가까이에 우리가 소중하게 느껴야 할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썅썅은 하필 그것을 먼곳에서만 찾으려고 기어이 집을 떠났을까.

 

 아마 그때의 썅썅에게는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제일 큰 행복이고 사명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썅썅이 질문한적 있던 나의 사명이란,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줄수 있는지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설사 그것이 우리의 이별이라 해도.

 

 어느덧 날이 환하게 밝아왔고 내 머리속도 차츰 맑아지고 있었다. 이제 아이들의 입양만 마무리 되면...이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였다. 갑자기 베란다 창문에 언뜰하는 그림자가 보였고 베란다앞에서 졸고있던 포포도 펄쩍 놀라 깨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고 나는 그것이 어제저녁 맡았던 그 누런 고양이 냄새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어쩌면 놈들은 한두마리가 아닌 듯 했다.

 

 “엄마…어제 그놈이야.”

 

 제리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포포는 어느새 등을 활처럼 구부리고 싸울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적막한 공간에서 새벽공기는 팽팽해졌고 바람에 풀잎의 이슬이 떨어지는 소리가 우리의 귀를 파고들었다. 포포가 귀를 쫑긋하는 찰나 누런 고양이가 베란다에 뛰어내렸고 나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포포야…혼자 싸우지 마. 내가 있어.”

 “엄마.”

 

 포포는 머리도 돌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지금 날 걱정해주는 거야?”

 “…그래.”

 “그걸로 됐어. 나 이제는…원망 안하고 떠날수 있을거 같아.”

 

 포포는 와락 앞으로 덮쳤고 베란다에서는 전에없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남자가 기척소리를 듣고 나왔을 때 포포는 한바탕 치른 전투로 거의 탈진한 상태였지만 목을 빳빳이 쳐들고 누런 고양이를 노려보았다. 누런 고양이를 위수로 한 길고양이들은 사람이 나오자 드디여 서서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베란다 상황을 보자 슬리퍼를 집어들어 누런 고양이에게 한방 날렸고 누런 고양이는 면바로 정수리를 맞았는지 웩 소리를 내면서 베란다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그바람에 다른 고양이들도 우르르 흩어졌고 베란다에는 고양이 털들만 어지러이 날리고 있었다.

 

 “야웅~~~~~~~~!”

 

 포포는 자신의 승리를 알리기라도 하는 듯 목을 빼들고 길고 울었고 남자는 가까이 다가와 포포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기특한 것…네가 아이들을 지켰구나.”

 “야웅!”

 “그래그래…잘했어. 이젠 너도 이젠 용맹한 고양이전사가 되었구나.”

 

 남자는 낮게 중얼거리더니 한숨을 내쉬었고 포포는 남자의 손에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그날 저녁, 여자는 어디서 얻어왔는지 자그마한 종이박스를 들고 집에 들어섰다. 남자는 그때까지 들어오지 않았고 여자는 한참 묵묵히 앉아있다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왜 아직 안들어와?”

 “…”

 “오늘이 포포 보내는 날인 거 알지.”

 “…”

 “당신…포포 보내는 거 차마 못봐서 그러는 거잖아. 하지만 언젠가는 당면할 일이야.”

 “…

 “알았어…내가…보낼께.”

 

 여자는 입술을 깨물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박스에 작은 구멍들을 내고 테이프로 칭칭 감기 시작했다. 잠깐사이에 종이박스는 위에만 자그마한 구멍을 남겨둔 밀봉상태로 되었고 여자는 눈물을 참느라 빨갛게 된 눈으로 포포를 돌아보았다.

 

 “포포…미안해.”

 

 뒤이어 포포의 다음 행동에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호기심인지 체념인지 포포는 박스 곁으로 다가가더니 몸을 날려 훌쩍 박스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박스 구멍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천천히 우리를 둘러보았다. 여자가 왈칵 오열을 쏟으면서 방안으로 향했고 나는 그동안 준비했던 이별 멘트를 어렵게 입밖으로 내뱉었다.

 

 “잘가…아들.”

 “가기전 엄마한테 할 얘기가 있어.”

 “해.”

 “엄마도 떠나.”

 

 포포의 말에 나는 살짝 미간을 구겼고 포포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주시했다.

 

 “여기는…아니 사람의 집은…엄마가 속해있는 곳이 아니야. 엄마도 떠나. 아빠처럼…”

 “…”

 “내가 순순히 떠나가는 것이…우리를 길러준 주인에 대한 마지막 배려라면…엄마가 떠나는 것도 똑 같은 도리야. 엄만…꼭 떠나야 해.”

 

 포포는 그런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겨두고 눈이 퉁퉁 부은 여자의 손으로부터 관리센터 직원여자의 손에 인계되었다.

 

 그날밤 남자는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찌는 듯 무덥기만 하던 도시는 그날 한밤중까지 질척질척 궂은 비를 쏟아붓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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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천사의 구출 10/11 272 0
7 천사의 위기 10/10 281 0
6 천사의 가출 10/9 273 0
5 천사의 사명 10/8 263 0
4 천사의 구원 10/7 285 0
3 천사의 대결 10/6 290 0
2 천사의 동거 10/5 280 0
1 천사의 생일 10/4 49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