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포포가 간후 여자는 전에없는 실의에 빠졌다. 여자는 웃음을 잃고 말을 잃었으며 어느날 한밤중에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후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왜 꼭 헤어져야 하는거야? 왜 꼭 이런 이별이 있어야 하는데…”
남자가 여자의 어깨를 꼭 감싸안았고 여자는 울면서 두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여기가...여기가 꽉 막혀서…숨을 쉴수가 없어. 숨이 막혀. 썅썅…포포…투투…”
“울지마…우리, 투투는 데리고 가자.”
남자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올렸다.
“너한테 투투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그러니 애들만, 애들만 분양주고 투투는 새 집으로 데리고 가는거야.”
“그럼 우리 결혼은…그리고…”
“고양이 한마리 있다고 결혼 못하는 게 아니야. 데리고 가고, 투투 중성화 시켜주자. 그것이 투투와 오래 같이 있을수 있는 방법이라면. 고양이의 생육권을 보장하기 보다는, 고양이와 오래 함께 있을수 있는 게 서로에게 더 중요하니까. 이건 다 내탓이었어.”
“어떻게 다 당신 탓이야?”
“그 누구도 탓하지도 원망하지도 못해서, 그게 골수에 맺히고 한이 되는 거잖아. 날 탓해…날 탓하란 말이야. 그러지 않으면 니가 병들어. 니가 견디지 못하고 이대로 드러누울거 같아.”
여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남자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여자가 다시 잠이 들자 나는 어렴풋한 달빛을 빌어 이불밖에 드러난 여자의 여윈 팔을 바라보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의연한척, 아무런 일 없는척 해도 이별을 앞둔 여자와 나는 지독한 열병을 앓고있는 것이 분명했다. 굳이 표현하지 않았지만 3년이란 세월은 나에게 있어서는 내 삶 전부라고 할만큼 소중한 것이였고 나에게 있어서 여자를 떠난 생활은 잠깐 상상만 해도 심장이 터져버릴만큼 괴로운 일이였다. 단언컨데 여자의 지금 마음도 나와 같았을 것이다. 남자의 제안이 가능하다면 나는 모르는척 욕심을 부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자 또 하나의 불청객이 여자의 집 문을 두드렸다. 우리는 이번에는 제리와 토미가 그 사람의 가방에 담겨 이 집을 떠나는 것을 눈 펀히 뜨고 바라봐야만 했다. 제리와 토미를 데리러 온 사람은 크다란 서류가방을 어깨에 매고 차분해보이는 인상에 안경을 낀 남자였다. 서로 가볍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남자는 그 사람이 가지고 온 가방에 토미와 제리를 넣기 시작했다.
가방에 담긴 토미는 너무 놀라 귀를 뒤로 딱 붙이고 눈을 감고있었지만 제리는 침착한 표정으로 토미를 다독이면서 천천히 머리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잘 지내야 해.”
“제리야…”
“다행이 우리 둘을 같이 분양주게 되었으니까, 엄마가 걱정 안해도 돼. 내가 토미를 보살펴줄께.”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토미의 앙칼진 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고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엄마 미워!”
“…토미야...미안해.”
“낳기만 하면 엄마야? 이렇게 무책임하게 보낼거면서…엄만 참 모진 엄마야! 무서운 엄마야!”
“토미야, 너 왜 그래!”
제리가 토미를 꾸짖는 소리에 나는 얼굴을 토미쪽으로 돌렸다. 토미의 경멸 어린 차가운 시선이 나에게 꽂혀왔고 나는 무덤덤하게 그 시선을 받아들였다.
“그래…토미야. 엄마는 좋은 엄마가 아니야. 너네를 끝까지 끼고 살기에는, 엄마는 너무 무기력해. 우리가 동물이라는 것이…지금처럼 유감인 적은 없었다. 고양이라서...미안하다.”
“엄마혼자 여기 남을수 있을거 같아서 그러지? 우릴 다 보내면…부담이 적어지니까 주인이 엄마를 데리고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거 아니야. 엄마 그런 생각, 내가 모를줄 알어?”
“토미야…”
“엄마…진짜 주인을 생각한다면…엄마도 떠나. 우리가 가면 엄마도 떠나! 알았어?”
토미의 말은 포포가 남긴 말과 묘하게 일치했고 나는 영문을 알수 없어 머리를 갸웃했다.
“무슨…뜻이야?”
“엄만 아직도 몰라? 엄마가 얼마나 무서운 고양이라는 걸?”
나는 토미의 말뜻을 이해할수 없었고 제리는 당황한 얼굴로 토미의 입을 틀어막았다.
“토미야…제발 그만해. 니가 이러면…우리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거야.”
나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여자와 남자가 안경낀 남자를 배웅하려고 문가로 다가오자 몸을 일으켜 자리를 비켰다. 안경 낀 사람이 여자의 집 문을 나섰고 여자는 뒤로 몸을 비칠했다. 남자가 여자를 부축했고 문밖에는 토미의 가슴 허비는 울음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난 엄마 영원히 미워할 거야!”
......
“괜찮아?”
이틀후 남자가 여자에게 물었고 여자는 천천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전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너무 아파.”
“그래, 진짜 못할 짓이다. 투투를 봐. 아예 넋을 잃고있어.”
남자의 목소리가 내 귀에 아득하게 전해왔고 나는 내가 한식경이나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는 것을 의식할수 있었다. 여자가 내 눈앞에 손을 흔들었고 나는 그런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픽 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동물병원에 있었고 내가 깨어난 것을 본 여자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돌려 수의사를 불렀다. 수의사는 어딘가 낯이 익었다. 나는 잠깐 기억을 더듬어서야 그 의사가 포포를 살려낸 수의사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증세인 것 같습니다.”
수의사의 말에 여자는 머리를 기웃했다.
“고양이도 우울증을 앓나요?”
“당연하죠. 동물들은 우리가 모르는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을수 있습니다. 보아하니 스트레스가 꽤 오래된 것 같군요. 우울증을 앓는 동물들은 자신도 모르는 행동들을 자주 할 겁니다. 몸이 너무 야위였고 털도 까칠하군요. 방법을 대지 않으면 곧 위장의 큰 병도 일으킬수 있습니다.”
“위장의 병요?”
“동물들에게 위장의 병이 얼마나 엄중한지 아시죠? 특히 고양이들은 엄살이 없기 때문에 병이 생겨도 주인이 발견하지 못해서 흔히 거의 죽을 때에야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 토하거나 그렇진 않나요?”
“가끔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토하긴 했습니다.”
“흠…다시 그런 현상이 있다면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오세요. 일단 약을 드리겠습니다.”
동물병원에서 돌아오자 여자는 수심 어린 얼굴로 나를 들여다보았다.
“투투…너 앓으면 안돼…스트레스 많이 받았니? 어떤 스트레스인지 말해줄래?”
“냥…”
“내가 애들 다 분양줘서 원망스럽지? 어떻게 너한테 설명해야 할까…”
(설명할 필요 없어…)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만일 여자가 내 말을 듣고 놀라지만 않는다면, 나는 제일 먼저 여자의 마음을 내가 다 이해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여자의 손에 내 얼굴을 갖다대었다. 선뜩한 느낌이 내 잔등에 떨어졌고 나는 여자의 품으로 깊숙히 파고들었다.
며칠이 지나 여자 혼자 집에 있을 때 이번에는 여자보다 좀 어려보이는 애티나는 여자가 여자의 집을 찾아왔다. 애티나는 여자는 쇼썅썅과 울울을 들여다보더니 만면에 희색을 띄고 들고온 쇼핑백 입구를 벌렸다. 여자는 울울을 잡아서 쇼핑백에 넣고 머리를 돌려 쇼썅썅을 찾기 시작했다. 쇼썅썅은 애티나는 여자가 들어서자마자 책장뒤에 숨어버렸는지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여자는 난처한 기색을 지어보였다.
“죄송해요. 한마리가 보이지 않네요. 번거로우신대로 내일 다시 와주시겠어요.”
“그러죠머.”
애티나는 여자가 돌아가자 여자는 머리를 싸고 드러누웠고 나는 가만히 책장앞으로 다가갔다. 책장과 벽사이 틈새로 쇼썅썅이 천천히 기여나왔고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쇼썅썅, 왜 그렇게 숨어있냐. 빨리 나와서 울울 따라가. 혼자 가기보단, 둘이 가는게 더 낫단다.”
“토미 말이 틀림없어. 엄만 참 무섭고 독한 엄마야.”
“뭐?”
“그렇게도 우리를 다 쫓아내고 혼자 사랑 독차지하고 싶어? 어쩌면 울울 가는데도 눈한번 깜짝 안해? 이것도 포포가 말하던 고양이 본성이였어? 너무 무서워…”
“나도 이해가 안돼.”
나는 눈에 힘을 주고 쇼썅썅을 노려보았다.
“왜 너넨 다들 날 무섭고 독하다 그러는거야. 제리 말대로 그냥 초연하게 헤어지면 안되냐? 내가 애써 초연한척 하는데, 왜 다들 날 무섭다고 그래…”
“엄만 무서운 엄마 맞잖아! 엄마가 그 애들 죽일 때부터…”
“!...”
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뒤이어 쇼썅썅의 말이 이해되자 나는 문득 몸을 휘청거렸다. 삽시에 눈앞이 캄캄해졌고 머리속이 윙 울렸다. 쇼썅썅의 목소리도 아스라이 들렸다.
“그게…무슨 말이야…”
“포포가 못했던 말…토미, 제리가 못했던 말…난 해야겠어. 엄마가 죽였잖아, 내 형제를…”
“말도 안돼!”
나는 머리를 세차게 털면서 심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나는, 쇼썅썅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를 버리려는 내가 미워서, 울울을 보내버린 내가 싫어서 거짓말로 나를 자극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머리를 흔들다가 앞발을 쫙 펴서 쇼썅썅의 뺨을 후려갈겼다. 하악 하는 소리와 함께 쇼썅썅의 흰 얼굴엔 빨간 피가 서서히 내배였고 그 빨간 것을 보는 순간, 나는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감을 느꼈다.
여자의 새된 소리에 나는 내가 어느샌가 쇼썅썅의 목줄을 물고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투투! 너 미쳤어! 당장 풀어!”
여자가 내 등허리를 내려갈겼고 나는 언뜻 정신이 들어 쇼썅썅의 목에서 입을 떼었다. 쇼썅썅이 숨이 막혀 켁켁 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한참 멍해있다가 뒤로 물러섰다. 쇼썅썅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이제야 알겠지? 바로 이거였어. 엄마의 본성이…”
“…”
“엄만…야생고양이야. 야성의 피가 끓고있는…야생고양이…사람 집에 와서 애완고양이로 자랐지만…엄마 그 피는 못속여.포포도 알고 있고 토미도 알고 있었어…우리 모두 알고 있었지만…엄마 자신만 모르고있는 것 같았어. 그래서 우리 모두 엄마한테 말 안하기로 약속했던 거야.”
“…”
“그렇게 무서웠지만…엄만 우리 엄마였으니까. 그날 밤 엄마가 애들 죽였을땐, 어쩌면 애들을 보호하고 싶었으니까…”
“...”
“엄만…그날밤 낯선 고양이들이 애들한테 달려드니 무서웠던 거야. 애들 상할가봐…그래서 엄만 이성을 잃었어. 포포는 그런 엄마를 제지하려고 했던 것이야. 포포가 제일 억울해.”
“…”
“나 내일 울울이 간 그 집으로 갈거야. 내일은 안숨어있을거야. 그러니까 엄마도 떠나. 언제 야성이 발작할줄 모르는 엄마는…애완동물 삶이 적합하지 않아. 그러니 엄마가 있어야 할 그곳으로 돌아가.”
쇼썅썅은 내게 그런 말들을 남겨놓고 이튿날 찾아온 애티나는 여자한테 순순히 몸을 맡겼다.
나는 쇼썅썅이 내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아무 반응 없이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
여자의 추측이 정확했다. 내 아이들은…내가 죽인 것이였다.
흉수는 바로 나였다. 쇼썅썅의 말을 듣자 그동안 정시하기 싫어했던 내 잠재의식속의 기억의 편린들이 퍼즐 맞추어지듯 드디어 하나로 맞물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 밤의 참극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듯 또렷이 내 머리에 윤곽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날밤…우리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날밤 포포는 어린 아이들이 신기해서 상자안에 비집고 들어오려고 했고, 바로 그때 거실에서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났다. 내가 화장실을 가느라 자리를 비운 틈에 한무리 떠돌이 고양이들이 베란다로 침입해 들어왔던 것이다. 떠돌이 고양이들은 갓 태어난 생명들을 향해 무자비한 이와 발톱을 휘둘렀고, 나는 그 모습에 히스테리적으로 고양이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떠돌이 고양이들이 달아나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면바로 포포가 얼룩이의 시체를 옮기려고 입에 물었을 때였다. 나는 포포의 입에서 얼룩이를 빼앗아내려고 앞으로 덮쳤다. 그리고는…그리고는…나는 포포와 토미, 제리한테 덮치고 말았다.
아마도 어린 아기들을 포함한 그 현장에 있었던 모든 고양이들이 이성을 잃어버린 내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집안은 피투성이 되어있었고, 나는 절반 남은 얼룩이의 시체를 안타깝게 맴돌고 있었다. 여자와 남자가 나온 것도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그날 포포는 이성을 잃은 나를 제압하기 위해 나한테 덮쳤지만, 나는 그것을 나를 여자로 본 포포의 잔폭한 행동으로만 치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포…포포…불쌍한 포포는 결국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가버렸고…이 집을 떠날 때까지 나에게 그날 밤 일에 대해서 굳게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토미와 제리 역시 비밀을 지켜왔고, 토미는 분양되기전에야 쇼썅썅에게 이 모든것들을 가만히 알려준 것이 분명했다.
“우울증을 앓는 동물들은 자신도 모르는 행동들을 자주 할 겁니다.”
부지중 수의사의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우울증…나는 언제부터 우울증을 앓았을까…썅썅이 나를 버리고 갈 때부터…아마 그때부터였으리라. 썅썅…내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가지고 가버린 썅썅…
“아악!!!!!!!!!”
나는 갑자기 머리를 싸쥐고 바닥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내 머리를 짓쫗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집안을 미친듯이 뛰어다녔다. 나는 멀리서부터 달려가 닫힌 여자의 방문에 탕! 몸을 부딪쳐봤다가 다시 반대방향으로 냅따 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당장 심장이 터져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이미 미쳐있었다.
여자가 급히 달려나왔고 나는 여자의 몸에 사정없이 내 몸을 부딪쳤다. 여자는 나를 꽉 끌어안았고 나는 숨을 돌린 후 버득거리면서 그 품을 벗어나려고 기를 쓰다가 기어이 여자의 팔에 깊은 상처를 내고말았다. 여자는 몸을 흠칫했지만 끝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투투…진정해. 니가 스트레스 극심한줄은 알겠지만 이건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게 아니였어. 하지만 받아들여야 해. 살면서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벅찬 것들이 많을 거야. 하지만 다 견뎌내야 해…알겠니?”
여자는 내가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모르고 위안했지만 여자의 이 말은 나를 조금씩 진정시키고 있었다. 나는 간헐적으로 경련하다가 여자의 품에 깊숙히 내 머리를 파묻었다.
그날 저녁, 남자는 웹서핑을 하다가 여자를 불렀다.
“중국에서 애완동물 식용으로 먹는거 금지할거라네. 이젠 고양이도 마음대로 먹지 못할거야.”
“법으로 책정되었어?”
“검토중이래. 네티즌들 찬반이 반반이야. 난 찬성에 한표 했어.”
“잘했어. 이런 귀여운 애들을 식용으로…참 나쁜놈들이야.”
여자는 내 목언저리를 가볍게 쓰다듬다가 갑자기 무엇을 생각해낸 듯 머리를 들었다.
“오늘, 관리센터 찾아갔다면서?”
“…”
“포포 잘 있는가 물어보러 갔댔지?”
“응.”
“잘…있대?”
“관리센터 그 여자분, 날 보더니 그 한마디만 했어.”
“무슨 한마디.”
“포포…너무 이쁘고 착하대. 성격도 좋고.”
남자가 웃으면서 말했고 여자도 피씩 웃었다. 그리고 여자는 가만히 얼굴을 돌렸다. 굵은 눈물이 여자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포포에 대한 말이 나오자 나는 몸을 움츠리고 여자와 남자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후 나는 사료 그릇으로 다가가 여자가 사다준 간식을 조금 입에 댄후 바닥에 배를 붙이고 앉아 조용히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지금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아가기 위해서…나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여자의 일거일동을 주시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뇌였다.
“절대 인간을 믿어서는 안돼...”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뭐지? 이 익숙한 한마디의 정체는...맞다. 낡은 판자집 슈퍼의 허름한 창고에서 차갑게 식어가던 엄마가 남긴 그 메시지...엄마는 왜 내게 이런 말을 남겼던 걸까.
그날 밤, 별들은 멀고도 높이 걸려있었고 손톱눈만한 초생달은 어스름한 달빛을 창문으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여자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소나마 평온을 되찾은 여자의 얼굴은 무슨 꿈을 꾸는지 이마를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이윽토록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거 알어? 고양이 별이라고 있어...”
나는 깊이 잠든 여자를 바라보면서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언젠가 썅썅에게 못다한 이야기였다.
“우리 고양이들은...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너 고양이별로 올라가. 그래서 천사가 된다고 해.”
나는 여자가 나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여자는 어떻게 우리 고양이들이 천사라는 걸 알았을까.
“엄마가 그렇게 얘기해줬어. 어느 유명한 드라마에서 사람에게는 네번의 생이 있다고 해. 첫번째는 씨를 뿌리는 생, 두번째는 뿌린 씨에 물을 주는 생, 세번째는 물 준 씨를 수확하는 생, 네번째는 수확한 것들을 쓰는 생이라고 하지.”
나는 어스름한 달빛을 빌어 여자의 찌푸린 미간에 살짝 내 얼굴을 부볐다.
“사람뿐만이 아닌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생물에게 네단계의 삶이 있어. 하루는 아침, 점심, 저녁, 밤이라는 네단계의 시간을 거치고, 사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네단계의 계절을 거쳐. 사람의 일생도 유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이렇게 네단계의 시기로 나뉜다고 했어.”
나는 여자의 옆에 잠든 남자의 이마에도 살짝 꼬리를 대었다 뗐다.
“그러면 우리 고양이들은 어떨거 같어?”
나는 몸을 돌려 방문을 연후 소리없이 거실 베란다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썅썅이 가출한 흔적을 따라 창문턱에 위태롭게 올라선후 몸을 날려 철조망 구멍에 내 발톱을 걸었다.
“끝내는 떠나는구나.”
베란다 창문 맞은켠에 크다란 얼룩고양이가 모습을 나타냈다.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킹은…전보다 살짝 여위여있었고 털도 많이 빠져 푸석푸석해졌다. 나는 그런 킹의 모습을 보면서 알릴락말락 수염을 치켜올렸다.
“킹…”
“이젠 킹이 아니야. 이 동네 킹…딴 놈이 대체하고있어. 그리고 이 동네 구역을 절반으로 나누었어…”
“변화가 크네.”
“새로운 킹이 누군지 알고싶지 않냐?”
“누군데?”
“버미야.”
킹의 말에 나는 또 한번 움찔 수염을 움직였다.
“짐작하고 있었어. 널 따라간 게 그 아이의 복이야.”
“하지만 나머지 절반 동네가 누구것이라는 건 넌 짐작 못했을 거야.”
“…”
“썅썅이야. 애완고양이 출신 주제에, 꽤 날랜 놈이야. 버미 못지 않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킹의 말이 허탈하게 들려왔고 나는 무표정하게 킹을 바라보았다. 킹은 그런 내 반응에 허구픈 표정을 지어보였다.
“듣고 놀랄줄 알았는데…”
“잘됐네. 참 잘됐어.”
나는 하늘을 보며 희미하게 중얼거렸고 킹은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머리를 기웃했다.
“그런데 투투…너 너무 말랐다…어디 아픈거 아니야?”
킹의 어조에는 관심이 묻어났고 내 눈앞은 천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희미한 킹의 모습과 나 사이에 헐렁해진 철조망이 있었고, 서로 목을 감고 잠들던 낡은 판자집 슈퍼 상자안의 두 코숏고양이는 3년이라는 긴 공백의 시간을 뛰어넘어 처음으로 석연한 눈길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오빠…”
킹은 한결 부드러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멀리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면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기억하지?”
“절대 인간을 믿어서는 안돼...”
“…맞어. 바로 그 한마디야. 왜 그 메시지를 남겼는지는 알고있어?”
“그건...”
킹이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그의 영롱한 눈동자는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인간을 믿게 되면...우린 앞으로 고양이별로 올라가 천사로 되지 못하고 영영 인간세상의 고양이로 살아야 하니까.”
“천사...가 아니야.”
“그래, 인간을 믿게 되면 우린 천사가 될수 없어. 세상의 모든 생에는 네단계가 있지만 유독 우리 고양이들은 두단계뿐이라고 엄마가 말한적 있잖아.”
“두단계...그건 엄마가 내겐 알려주지 않았어.”
“바로 고양이의 생과 천사의 생. 삶을 마음대로 선택할수 없는 것도 우리 고양이 천사들의 숙명이지.”
나는 머리를 끄덕인후 고개를 돌려 킹을 보았다.
“그런데…우리 고양이를 보고…천사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
“누가…”
킹은 귀를 쫑긋했고 나는 대답대신 여자의 방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내쉰후 몸을 날려 철조망을 벗어났다. 멀리 어디선가 귀에 익숙한, 허스키한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냐웅~~~~~~”
나는 확 트여진 시야에 적응하지 못한채 몸을 비틀거렸다. 넓고 무연한 세상이 내 앞에 펼쳐졌고, 킹은 그런 나를 보면서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바로 그거야. 이젠 더이상 인간에게 의지하지 않고 우리 고양이들의 길을 개척하는 거야.”
“냐앙~~~~~~~~”
나는 몸을 늘구어 기지개를 켠 후, 멀리서 들려오는 그 울음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목소리를 돋우어 길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금방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고양이처럼…한걸음 한걸음 조신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의 차거운 바람이 나를 스치고 있었고, 그 바람에 그 어떤 선득한 것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비?...”
나는 머리를 돌려 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발견했다…킹의 눈가에 맺힌 작은 이슬방울을…
“고양이는 눈물을 흘려선 안되는데…”
나는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는 느꼈다. 차츰 내 눈에도…서서히…물기가 차고 있음을.
나는 머리를 쳐들고 크게 심호흡을 했고…그 정체 모를 물기는 곧 굵은 액체로 변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후에 나는 생각했다…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을 향해 자유의 신고식을 하는…한 천사의 눈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