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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서 만난 그대
작가 : 판도라
작품등록일 : 201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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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작성일 : 19-10-13     조회 : 42     추천 : 0     분량 : 2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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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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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사내가 떠난뒤 서은은 민가 곳간에서 어렵사리 물지게를 찾아냈다. 근처 피흔적만 없앤다고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의복 곳곳에 묻어있는 선명한 피자욱은, 그들이 생사의 고비에서 겨우 탈출했음을 한눈에 증명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녀는 민가에 오기전 들었던 차분한 물소리를 떠올렸다. 지금 그녀에게 급선무는, 이여백이 독기를 다스릴 동안 정한 물을 길어다 곳곳의 피비린내를 씻어내고 두 사람의 의복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명교의 자객들이 도착하기 전에 여기는 최대한 평범한 민가의 모습을 회복해야 했다.

 

 물지게가 습관이 되지 않았던 그녀는 민가앞 시냇가에서 연속 물 몇동이를 지어나르자 금세 땀벌창이 되었다. 그녀는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훔칠 사이 없이, 곳간의 물독에 물을 가득 채워놓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이여백이 기를 동하여 좌선을 하고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침상 한쪽에 벗어둔, 피에 흠뻑 젖은 그의 도포를 집어들었다. 발걸음소리를 죽여 가만히 방안을 나가려는 순간, 문득 등뒤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그녀는 깜짝 놀라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나는듯이 침상쪽으로 달려갔다.

 

 "형님!"

 

 그의 입가에 흘러내리는 한줄기 검붉은 피가 그녀의 눈을 자극했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옆으로 쓰러지는 그의 몸을 받아안았다. 하지만 필경은 여인의 힘이라 장신의 남자의 몸무게를 당해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녀는 그대로 같이 침상에 쓰러졌고, 그는 그녀의 품속에 깊숙히 머리를 떨구었다.

 

 "형님…"

 

 그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급히 손을 인중에 대어봤지만, 작은 호흡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가슴이 덜컥했다. 사천 당문의 독…당가 출신이 아닌 그로서는 해독약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기로 독을 제거하는 중이었고, 또 그것은 무예를 닦은 사람으로서 얼마나 원기를 상하는 일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초조하게 그를 불렀다.

 

 "정신 차리십시오…형님, 이렇게 쓰러지시면 안됩니다."

 "…"

 "형님은 여기서 이렇게 끝날 운명이 아닙니다. 제가 잘 알고있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오."

 "…"

 "이렇게 쓰러지면 저더러 어떡하라고..."

 

 그녀의 목소리가 입안으로 사라졌다. 모든 게 다 자신때문이었다. 만일 자신을 공격하는 우사를 막지 않았더라면 그는 상하지 않았을 것이고, 무예에 약한 자신이 아니었다면 자객들을 물리치는데 굳이 독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온후로 그는 그녀에게 마냥 수호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녀가 실수를 저질러도, 제멋대로 행동해도 언제나 든든하게 그녀를 지켜주던 이 수호신은, 이제는 자기 사명을 다했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그녀의 품속에 잠들어있었다. 그녀는 다시 그의 인중에 손을 대봤지만 이번엔 싸늘한 기운만 느껴질뿐이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안간힘을 써서 그의 몸을 일으킨 후 침상에 비스듬히 눕혔다.

 

 그녀의 손이 닿는 곳마다 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다시 그의 이마에 손을 대어보니 얼음이 따로 없었다. 그의 얼굴과 목 그리고 가슴으로 더듬어 내려가던 그녀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체온에 용수철 튕기 듯 발딱 일어섰다.

 

 "독을 제거하지 못한 것일까? 이정도 저체온이면 너무 위험한데..."

 

 그녀는 이불을 끌어다 그의 몸에 덮어놓은 후 곳간에 이불이 몇채 더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달려가서 이불과 마른 옷가지들을 죄다 끌어내어 방안으로 안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모두 그의 몸에 덮어주었다.

 

 "저체온이 너무 심한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그동안 참아왔던 큰 울음이, 몸속 깊은 곳에서 새어나왔다. 지옥을 넘나들며 염라대왕을 만났을 때도, 시공간을 뛰어넘어 경성에서 요동까지 오면서도 그녀는 항상 당차고 용감했었다. 역사를 알고있기에,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를 역사의 그대로 겪고 있기에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서 봉착한 모든 일을 감내할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야 한다잖아요...그 역사를, 내가 영향줘서 완성해야 한대잖아...왜 하필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지…그건 알려주지도 않고…"

 

 그녀는 처음으로 이토록 무기력해졌다. 그동안 항상 용감할수 있었던 건, 어쩌면 눈앞의 이 남자때문이었다. 그녀가 실수를 해도 따뜻한 미소만 짓던, 일을 저질러도 꾸지람조차 없었던 남자…하지만 지금 그 남자는 그녀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아니 미약한 숨소리조차 없었다. 잠시후 머리를 든 그녀의 눈에서는 줄 끊어진 구슬마냥 눈물이 걷잡을새 없이 흘러내렸다.

 

 "제가 살려야 하는데...그러니 죽으면 안돼요. 절대."

 

 그녀의 단호한 말에 이번엔 그의 눈썹이 꿈틀 하고 움직였다. 미세한 표정이였지만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바싹 몸을 굽혔다. 그리고는 이불을 제치고 그의 가슴에 귀를 갖다대었다. 잠시후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미약하기는 하지만 분명한, 그의 힘찬 심장 고동소리를 들었기때문이다.

 

 "이럴때가 아니지…"

 

 그녀는 또 한번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뒤늦게야 그의 상처가 생각났기때문이다. 잠시후 돌아온 그녀는 더운 물을 한대야 가득 들고 들어왔다.

 

 "일단 상처부터 처치해야…"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겨우 그의 몸을 돌려눕혔다. 등으로 비껴간 검상(剑伤)이 유난히 깊고 끔찍했다. 그녀는 뭔가 생각하다가 그의 행장을 헤쳐 비상용 금창약을 꺼냈다. 그러던 그녀의 손길이 흠칫 멎었다.

 

 행장 깊숙한 곳에 은잠 하나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자신의 상투에로 손을 가져갔다가 다시 행장속의 은잠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겉모양은 같은 은잠이었으나 어딘가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보려다가 그의 미약한 숨소리를 듣고 바로 행장을 원래대로 싸놓았다.

 

 맑은 물로 그의 상처 부위를 닦아내고 금창약을 바른 후 그의 몸에 덮었던 중의를 찢어 상처를 동여매자 어느새 자정이 되었다. 그렇게 반나절이나 들볶다나니 온 몸에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다행이 그의 숨소리가 아까보다는 편안하게 들려와서 그녀는 한시름 놓았다.

 

 침상옆에 앉아 그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니 그제야 물밀듯이 피곤이 밀려왔다. 그의 이마에 손을 대보니 아직 정상체온을 회복하진 못했지만 아까보다는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뭔가 생각하다가 두팔을 벌려 그의 몸을 힘껏 껴안았다. 가물가물한 의식이 그녀를 덮쳤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먼동이 터올 무렵이었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니 자면서도 살짝 구긴 미간을 제외하고는 혈색은 정상으로 회복된 듯 보였다. 다시 그의 가슴에 손을 대어보니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아무런 자취도 내지 않고 가만히 방문을 나섰다.

 

 집주변의 피자욱을 없앤 후 이여백의 피묻은 옷들은 곳간의 물동이에 담그다가 그녀는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이른 아침의 공기와 청량한 물내음이 어우러져 그녀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얼핏 고개를 숙인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옷에 닿았다. 피로 얼룩진 옷은 땀과 먼지까지 묻어 원래 색상을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녀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져서 찬물은 무리였지만, 곳간안에 쌓인 나무장작이 눈에 들어오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잠시후 투덕거리며 불길이 피어오르자 얼마 안지나 물독의 물위에는 안개가 뽀얗게 서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볍게 일렁이는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주위에 귀를 기울이고 동정을 살폈다. 바람이 곳간문을 스치는 소리 외에는 확실히 아무 기척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그녀는 피묻은 도포 옷고름을 끄르고 중의를 벗은 후 그동안 자신을 속박해온 가슴가리개를 내렸다.

 

 "하아…"

 

 따뜻한 물안으로 몸을 담근 그녀는 나직히 탄성을 내뿜었다. 이게 얼마만인가…총병부에 있을 때에도 부중 시비들의 눈치를 살피다보니 이렇게 편안하게 목욕을 즐긴 적은 손가락으로도 꼽을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녀는 손으로 물 한줌을 떠올리며 미소를 머금었다가,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다. 방안에는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누워있는 사람이 있는데 자신은 이렇게 향수를 한다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녀는 일어나려는 생각으로 물안 깊숙히 머리를 담그었다가 몇초후에야 물밖으로 불쑥 몸을 솟구쳐나왔다. 바로 그때었다.

 

 휘익…

 

 누군가가 그녀에게 마른 옷을 덮어 씌웠고, 그녀가 미처 정신 차릴 틈 없이 억센 팔이 그녀를 곳간 안쪽으로 밀착시켰다. 그녀가 입을 벌려 소리치려는 순간 그 사람의 손이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곧바로 한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위에서 낮게 울렸다.

 

 "조용히."

 

 그녀는 순간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럴수가…눈앞의 이 사람은 지금 분명 방에 누워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언제 깨어났을까...독으로 원기가 상해 인사불성이 되어있으면서도, 그녀가 곳간에서 불을 지피고 목욕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니…무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더 무서운 일은 바로 그 뒤에 있었다.

 

 "여기가 틀림없다. 샅샅이 뒤지거라."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우사의 목소리었다. 뒤이어 마당에 어지러운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그와 더불어 방안 구석구석을 뒤지는 소리도 간간히 섞여왔다. 그녀는 오싹 몸을 떨었다. 그가 좀만 늦게 왔었더라면...그녀의 전율을 눈치챘는지 그는 그녀를 끌고 더 낮게 몸을 움츠렸다. 여전히 한손으로는 그녀를 껴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그녀의 입을 막은 채로였다.

 

 "읍…"

 

 그녀가 손을 내저었다. 상황이 위급해서도 아니었다. 숨이 막혀서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알고있는 듯한 그의 눈빛에서, 지금껏 그를 속여왔던 일이 부끄럽고 민망해서 어떻게라도 그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싶었다.

 

 그가 그녀의 입을 막았던 손을 내렸다. 눈을 들어보니 그는 그녀의 옷깃을 자세히 여며준 후, 가벼운 한숨소리와 함께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잔뜩 얼굴을 붉혔다.

 

 ......

 

 우사와 자객들이 수색과정중에 곳간을 빠뜨렸다는 것은 그야말로 다행한 일이었다. 소란스럽던 마당이 조용해지자 이여백은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켜 바깥으로 나갔다. 그녀에게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맥이 풀린채로 바닥에 주저앉아, 도대체 어떤 얼굴로 그를 마주해야 할지 몰라 한참 고민에 빠졌다. 가슴이 방망이질하듯 세차게 뛰는 것도 맥이 풀린 이유중 하나였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벗어두었던 중의를 껴입고 겉옷을 정리하는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걸린 것은 그녀가 문틈으로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다가, 도저히 나가지 못하겠어서 곳간안을 기웃거리며 어디 쥐구멍이라도 없나 찾아본 과정이었다.

 

 쥐구멍은 당연히 보이지 않았고 이대로 마냥 곳간에 들이박혀 있을수도 없었다. 그녀는 걱정이 뒤섞인 한숨을 내쉰 후 문을 열었다. 문소리와 함께 그가 몸을 돌린 것, 그리고 그의 시선이 닿자 그녀가 바로 고개를 숙인 것은 거의 동시었다.

 

 애매한 옷앞섶을 바싹 여미며 그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은 주위 풍경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채 애써 평온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객들이…가버렸군요."

 

 그 역시 지극히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던 그의 눈길이 그녀의 몸에 와서 멎는 게 느껴졌다. 그의 시선에 그녀는 무척이나 당황해졌다.

 

 "왜…그리 보십니까."

 "옷이 어울리지 않는구나."

 

 그녀는 자기 몸을 내려보다가 저로서도 어이가 없어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아까 그가 씌워준 건 물독옆에 놓아두었던, 그녀가 곳간에서 찾아낸 사내의 옷인듯 했다. 품이 너르고 소매가 좁은 의복이었으나, 묶을 허리띠가 없어 바람에 그대로 부풀려져 있었다.

 

 그녀는 다시 눈을 들었다. 어느새 물색 도포를 갈아입은 그의 얼굴이 옷색상때문인지 단정하고 담백한 기품이 돋보였다. 그녀의 얼굴을 응시한 채 그가 말했다.

 

 "행장속에 여벌의 옷이 있으니 갈아입거라."

 "네…네에."

 

 그녀는 작게 대답한후 머리를 숙인 채 그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행장속에서 흰색 도포를 꺼내어 그녀에게 넘겨준 후, 그는 무표정하게 그녀를 바라보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옷을 받아들고 힐끔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도저히 안되겠는지 불만을 표시했다.

 

 "안나가십니까."

 "먼저 내게 할말이 있어야 하는게 순서가 아닌가."

 

 그녀의 어깨에서 드디어 힘이 빠져나갔다. 이같은 큰 일을 이대로 지나쳐줄 거라는 자신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욕심에 불과했다. 그는 그녀에게서 명확한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고, 그녀는 대체 어떻게 말해야 눈앞의 남자를 이해시킬수 있을지 한참 고민했다. 하지만 옷을 가슴에 안은 채, 그녀기 입밖으로 내뱉은 말은 전혀 엉뚱했다.

 

 "언제부터…아셨습니까. 아니,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의 입가에 잠깐 의미모를 미소가 스쳤다. 뒤이어 그녀를 바라보는 눈동자도 살짝 웃음기를 띄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눈빛에서 안도의 기색도 함께 발견할수 있었다. 그는 그런 표정으로 그녀를 한참 바라보았다.

 

 "망강루에서부터…"

 "처음부터였다는 얘기네요."

 

 그녀의 허탈한 기색에 그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확신은 못했으나 미타한 구석이 한둘은 아니었다. 우선 …그대의 출중한 외모부터 의심이 들었으니까. 남장을 하기에 너무 적합한 얼굴은 아니라는 걸, 본인도 잘 알고있어야 할텐데. 하도 당돌하고 영민하여 헷갈리기는 했지만."

 

 그녀는 불퉁한 표정을 짓고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그의 얼굴을 흘낏 쳐다본 후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형님께서도, 여장을 하시면 충분히 납득이 갈 얼굴을 하고 계십니다."

 

 그녀의 중얼거림은 그의 다음 말에 묻혀버렸다.

 

 "둘째론…그대가 선보였던 시와 그림, 그리고 거문고와 노래가 남자의 호방함에는 결코 미치지 못했다는 걸 아는가. 시의 뜻이 강개하고 그림은 필력을 살리기에 노력을 가했지만 말이다."

 "그건...인정하죠…"

 "하지만, 최종으로 확신한 것은 봉선각이었지."

 "봉선각요?"

 

 예상밖의 대답에 그녀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봉선각이라면...그래서 그랬던가...그날밤 그의 눈빛과 할말이 있다고 갑자르던 태도가 그녀는 지금에야 비로소 이해되었다. 그동안 말하고 싶은 걸 참느라 그도 퍽 마음고생이 심했겠다 싶었다.

 

 "상황이 상황이었지만 봉선각에서 음률에 대한 재간을 펴보인다는 건 큰 실수였지."

 "그게 왜...요?"

 "몰랐더냐, 난 음률과 곡조를 들으면 그 사람의 성정을 가려낼수 있어."

 "성정…만으로 무엇을 알수 있단 말입니까."

 

 그녀는 여전히 불복하듯 말했다. 그렇게 감추고있던 정체를 전혀 엉뚱한데서 들켰다는 것에 회의감마저 들었다.

 

 "음률이 유연하고 섬세했다. 꼭 마치 여인의 성정처럼."

 "유약한 사내도 그럴수 있는거 아닙니까."

 

 그녀의 반박에 그는 다시 알릴락말락 미소를 지었다.

 

 "봉선이 유명한 이유가, 다만 그녀의 망사와 원칙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

 

 그의 느닷없는 질문에, 그녀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글쎄 그거야…신비로워 보여서 그럴수도 있고…또 그녀가 워낙 음률에 정통하다보니…여러모로 매력적인 건 사실이지요."

 "봉선의 특이한 점은 얼굴도 재주도 아니다."

 "네? 그럼 무엇입니까? 그리 뭇사내들의 마음을 끌수 있다면 보통 재간을 가지고는 안되지 않습니까."

 "보통 재간은 아니지."

 "..."

 

 그는 어안이 벙벙해진 그녀를 향해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봉선은 아주 기이한 사향(麝香)을 가지고 있어서, 구태어 얼굴이나 재주를 보이지 않더라도 세상 모든 사내의 마음을 뒤흔들수 있다."

 "사향..."

 

 그녀는 그제야 이해가 가서 그만 풋 실소를 해버렸다. 어쩐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밤 봉선각 대청을 메우던 사내들과, 봉선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하던 신충일까지 머리에 떠올라 그녀는 문득 그를 보았다.

 

 "형님은요?"

 

 지금 시점에 왜 하필 이렇게 그에게 물어봤는지 그녀는 자신의 혀를 깨물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궁금했다. 그날 우사가 추기긴 했지만 은근히 이여백에게 관심을 보였던 봉선의 태도도 머리에 떠올랐다. 봉선…그녀는 왜 하필 음률로 지인을 찾고, 망사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던 것일까.

 

 "봉선의 시술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여전히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

 

 "아무리 자제력이 뛰어난 사람도, 사향을 이용한 음률에는 자제력을 잃고 마니까."

 "형님께서도 잃으셨냐는 말입니다. 그 자제력."

 

 그녀는 내친김에 한수 더 떴다. 그리고는 그의 절륜한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제가 나서지 않았다면, 형님께선 그날 기루 역사의 아름다운 한폐이지를 장식했겠지요. 참으로 유감스러우셨겠습니다."

 

 그녀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차분하게 자기 말을 끝맺었다.

 

 "봉선의 그 시술에 네가 넘어가지 않은 것은, 바로 네가 사내가 아닌 여인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조용히 그녀 얼굴에 닿았다. 잠시 그를 응시하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숙였다. 맑고 선연한, 그의 깊은 눈빛을 그녀는 더이상 마주하기 어려워졌다.

 

 솔직히 자신으로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단순히 외형적인 얼굴과 행동에서 행색이 탄로되었다고 믿었던 것이, 막상 그의 말을 듣고보니 아직 자신은 이 시간대에 적응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가 없었다면 그녀는 어찌되었을 것인가.

 

 "죄송합니다..."

 

 그녀는 그동안 그가 그토록 자신을 챙겼던 이유를 막연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이리 서툰 그녀를, 허점투성이인 그녀를 그는 항상 안쓰럽게 생각하며 보살펴 왔으리라. 그런줄도 모르고 그녀는, 그를 구하겠노라고, 역사를 바꾸겠노라고 이리 설쳤으니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일이었다.

 

 그녀는 다시 시선을 들어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동안 미타했던 부분들이 하나둘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그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래서 제게 물으셨군요. 자청비의 이야기를…아냐고."

 "그래…"

 "제게 어떤 대답을 원하십니까. 저 역시 자청비였노라고. 저 역시 버들잎에 제 마음을 써서 고하길 바라십니까."

 "…"

 

 그의 침묵에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처음부터 속일 생각은 아니었습니다…언젠가는 제 입으로…말씀드리고 싶었는데…"

 

 그는 조용히 그녀를 보았다. 그녀를 야단치지도, 그 어떤 분노를 표출하지도 않았지만, 그녀로서는 그의 이런 담정한 태도가 무엇보다도 두렵고 힘들었다. 그는 그녀의 불안섞인 눈동자를 마주한 채 둘사이 침묵을 깼다.

 

 "우리가 의형제를 맺던 그날의 맹세가 기억나느냐."

 "제가 그리 물었을때 형님께서는, 과거를 말하지 않은 것과 기만한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속이고 남몰래 행동해왔다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네가 말했었지."

 

 그녀는 대답대신 머리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내가 듣고싶은 답이 아닌 걸."

 "형님께서 원하시는 답은...어떤 것입니까."

 

 그녀의 의혹에 그가 깔끔하게 대답했다.

 

 "더이상 나를 속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

 "왜 답을 못하느냐."

 "..."

 "설마...아직도 내게 숨기고 있는 일들이 있느냐."

 

 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얼마나 난감한 기색이 스치는지 그는 분명 보았을 것이다. 숨길수밖에 없었던, 또 반드시 숨겨야만 했던 자신의 신분…그녀가 바로 만력의 여동생이자 그가 거절했던 서안공주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그는 지금처럼 차분한 표정을 유지할수 있을까. 그녀는 문득 숨이 막혀왔다. 그녀에겐 생각하기조차 두려운 일들이었다.

 

 그녀의 침묵에 실망한듯, 그가 등을 보이며 뒤돌아섰다. 아주 짧은 순간조차 더이상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그는 곧바로 방문을 나서려고 했다.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건 안된다고 생각되었다. 그의 뒷모습에서 그녀는 그가 자신에 대한 불신을 보아낼수 있었다.

 

 미처 생각할 사이 없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아니, 정확히 뒤에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가지 마세요."

 "…"

 "설마...절 두고 이대로 가시렵니까."

 "금주의 당주가 와서 그대를 지켜줄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차거웠다. 그의 몸도 차갑게 굳어있었다. 그녀는 어찌할바를 몰라 당황해 있다가, 그의 허리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몸이 잠시 움찔했다.

 

 "이렇게 말하면 염치없는줄 알지만...그냥 절 이대로 믿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

 "지금 당장 모든 일을 말씀드리진 못하지만...그래도...그래도 이것 한가지만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마음을 가져야 현대로 돌아갈수 있다는, 염라대왕의 경고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에게 실망을 느꼈다는 점이었다. 그가 자신을 부르는 그대라는 호칭도 왠지 소원하게 들려서 신경이 씌였다. 그녀는 피가 터지도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전...애초부터 형님을 바라보고 여길 온 것입니다."

 

 공기중의 침묵이 순간 뜨거운 열기로 되어 그들 주위에 가라앉았다. 잠시후 그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그녀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그의 눈길을 마주하기 어려워 시선을 내려버렸다.

 

 "이것만은, 더이상 숨기지 않겠습니다…형님을...저는 당신을 연모합니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창졸간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충직하기로 마음 먹었다.

 

 ”잎으로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이것만은 당신을…속이지 않겠습니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녀는 오래도록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던 그녀의 턱이 그의 손길에 의해 위로 들려졌다. 그의 뜨거운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와 닿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그의 손길이 부드럽게 그녀 얼굴에 닿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있던 자신의 다른 한손에 힘을 주자, 그녀가 속절없이 그의 품속에 끌려 들어갔다.

 

 그녀의 놀란 탄식소리가 그의 입술에 묻혀버리고, 둘은 마치 오래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것처럼 뜨거운 입맞춤을 이어나갔다.

 

 ......

 

 하얗게 부서진 햇살이 수면위로 자잘히 내려앉았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시냇물이 돌돌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고, 물가에 자리잡은 억새풀이 흔들리는 사이로 청순하고 수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작은 얼굴이 나타났다.

 

 좀 커서 허리띠를 착용한 흰색 도포 차림은 남장이 분명하였건만, 살짝 휘어든 눈섭과 백옥같은 얼굴, 붉은 입술과 유려한 턱선은 어디까지나 여인의 그것이었다. 특히 상투를 틀지 않아 폭포처럼 쏟아져내린 비단결같은 까만 머리카락이 여성적인 느낌을 더해주고 있었다.

 

 서은은 민가에서 면경을 찾다못해 시냇가로 나온 것이었다. 사내 혼자 사는 집이다보니 면경이 있을리 없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 것은 뜬눈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운 후였다. 이여백이 체내에 남은 독기를 다스리느라 좌선을 하고있는 사이, 그녀는 가만히 집문을 나섰다. 늦가을 아침해볕이 그리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내리쬐이기엔 충분한 것이였다.

 

 문득 어제의 일이 떠올라서 그녀는 새삼스레 얼굴을 붉혔다. 그녀에게는 가슴설레고 심장이 뛰는 경험이었다. 그녀가 눈을 크게 뜬 채 그대로 멍하니 서있자, 그는 얼굴을 들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대의 맑은 눈망울 때문에 내가 꼭 마치 무례를 범한 것 같군."

 

 귀전에서 울리는 그의 속삭임에 그녀는 급히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촉촉히 젖어있는 눈빛에 그가 말했다.

 

 "눈을 감지 않으면 이보다 더 큰 무례를 범할지도."

 "더 큰..."

 

 그녀는 눈을 둬번 깜빡거리다가 드디어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 확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서둘러 뒤돌아섰다. 두손을 올려 잠시 손부채질을 하다가 그녀는 웅얼거리듯 말머리를 돌렸다.

 

 "당주가 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금주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내일이 될 듯 하다."

 "내일..."

 

 그녀는 말을 중단했다. 그럼 눈앞의 이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남자와 또 하루밤을 지내야 한다니...그것도 아무도 없는 이 민가에서? 그녀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

 

 그런 그녀를 그가 뒤로부터 따뜻하게 감싸안았다. 그녀는 몸이 경직되는 감을 느꼈다. 더이상의 접촉은 무리었다. 그녀의 행색이 탄로나고 그에게 고백까지 한 마당에, 방안의 분위기는 아까부터 더워지기만 했으니.

 

 게다가 그녀의 채 정제하지 못한 옷차림과 젖은 머리카락 때문이었는지, 뒤로부터 껴안은 남자의 품이 새삼 뜨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녀는 살짝 몸을 비틀며 그의 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그의 이마에 가볍게 갖다대었다.

 

 "열이 나는 듯 합니다."

 "왜 열이 나고 있는지 잘 알텐데."

 

 그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는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더니, 뭐가 그리 우스운지 피씩 입꼬리를 올렸다.

 

 "참지 못하겠군."

 "네…네?"

 

 그녀는 눈을 올롱하게 떴고, 그는 그런 그녀의 반응이 못견디겠다는 듯 얼굴을 돌려 웃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말했다.

 

 "혹시, 내 몸의 독이 어떤것인줄 아는가."

 "단혼사라 들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깜빡거렸고, 그는 그녀를 끌어당겨 다시 품안에 안았다. 그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그래...단혼사 중독에는…무엇이 해독작용이 되는지 그대는 혹 알고 있는지."

 "무엇입니까."

 "합방."

 

 그가 결코 담담하지 않은 말을 이토록 담담하게 내뱉자, 그녀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들어가고싶은 마음이었다. 심장이 세차게 두근거리고 귀밑이 확확 달아올라서 그녀는 그의 품속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렸다.

 

 "그럼...어떡하면...되겠습니까."

 "그 말인즉 설마...그대가 지금 내 해독을 도와주겠다는 것인가."

 "저때문에 독을 쓰셨습니다..."

 "그럼 누가 그대를 구해주면, 그대는 이렇게 다 도와줄 셈인가."

 "제가 언제…"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이기에, 그였기에 가능한 것을...아무리 그래도 이리 사람을 몰아붙여도 되는 걸까.

 

 "다 도와준다 했습니까...그렇게 사람 억울하게 할 겁니까."

 

 그는 그녀의 울먹거리는 소리를 듣자, 몸을 바로 세우고 한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네가 그동안 속인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놀림이거늘."

 "형님...!"

 "이렇게 울어버리면 내가 미안하지 않겠느냐."

 "정말 짓꿎으십니다!"

 

 그녀가 앵돌아지자, 그는 웃으면서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해독이 다 안된 건 사실이다. 다만 아직 독기가 채 가셔지지 않았으니 다시 좌선을 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걸릴 것이니 어딜 가지 말고 내 곁을 지켜주면 된다."

 "제가 왜요?"

 "아까 네가 말했잖냐. 너때문에 독을 쓴 것이니까."

 "아까 그 말은 진담이 아니었습니다!"

 "말은 그리하되 눈물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그건...연기였습니다!"

 "옆을 지켜주는 걸로 믿겠다."

 "싫습니다!"

 

 어제 방안에서 있었던 둘의 투덕거림을 떠올리며 그녀는 홀린 듯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사색을 중단시키며 바로 지척에서 청량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두손을 들어올려 홧홧 달아오른 얼굴을 누른 후 허리를 굽혀 자신의 얼굴을 물에 비추어보았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그야말로 익은 홍시를 방불케 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든후 두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틀어올렸다. 바로 그때 그녀의 등뒤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울렸다.

 

 "옆에 있어달라 했는데 도망간 처자는 어떤 벌을 줘야 하는가."

 

 서은은 머리도 돌리지 않은 채 불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상투만 틀고 바로 들어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여백은 뒤에서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에서 은잠을 채갔다. 그녀는 깜짝 놀라 머리를 돌렸다.

 

 "형님!"

 "이리 와. 내가 해줄테니."

 

 그가 잔잔하게 눈꼬리를 휘었다. 그녀는 물빛을 닮은 그의 청정한 미소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런 걸 어떻게…"

 "한무제(汉武帝) 때 장창(张敞,애처가로 유명함)이 부인의 눈섭까지 그려줬다는데 이깟 상투가 다 뭐냐."

 

 눈앞의 남자는 어제부터 작정하고 그녀를 놀려주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내렸다. 그녀의 눈길이 그의 손에 있는 은잠에 닿았다.

 

 "저어...한가지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기꺼이."

 

 그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올렸다. 그녀는 시선을 들어 그의 담정한 눈빛을 응시했다.

 

 "그 은잠 말입니다..."

 "..."

 "어제 우연히 형님의 행장속에서 금창약을 꺼내다 발견한 건데...어찌 형님께도 비슷한 은잠이 하나 있는 것입니까."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의 얼굴에 일순간 야릇한 표정이 스쳤다. 그러나 바로 기색을 가다듬은 그가 가볍게 그녀를 돌려세우며 말했다.

 

 "원체 상투를 틀려면 여분의 은잠정도는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습니까."

 

 하긴 이 시대의 사람들이 장식품을 소지하는 습관 같은 것에 대해 그녀가 알리 없었다. 특히 여자의 머리에나 남자의 상투에 꽂는 흔한 은잠 같은 것은 더욱 그러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그의 손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맡겼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 스쳤던 야릇함이 속에 걸렸다.

 

 "말씀 안해주셔도 압니다."

 

 그녀가 물가의 억새풀을 한줌 쥐면서 말했다. 원래도 서툴던 그의 행동이 잠시 주춤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공주님도 거절하신 거겠죠."

 

 그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 다시 자신에게로 돌려세웠다. 그리고는 눈을 들어 가만히 그녀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시선을 아래로 내려버렸다. 그녀의 시선회피에 그의 눈빛에 일순 당혹함이 스치는 것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녀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그녀의 그러한 태도에 크게 당황한 듯 보였다.

 

 "무엇을 안단 말인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부러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전에도 말했었지만...전 형님의 진심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강렬한 불만을 삭이고 있는 말투었다. 서둘러 당혹함을 거둔 그가 이번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진심?"

 "제가 자청비였으면 한다면서요…헤투알라성을 떠날 때는 또 뭐라 하셨습니까. 익수가 삼천이라도 그중 한바가지만 취하시겠다구요…그래서 저는...저는 형님의 마음 또한 제 마음과 같은 것이라 생각되어 어제 그런 말들을...한 것입니다."

 "..."

 "하지만...저는 지금 제가 그 익수 한바가지가 아니라는 걸 드디어 알았네요."

 

 어느덧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는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이었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착각한 거군요. 하긴 형님 탓이 아닙니다. 제가 그만…욕심을 내버렸군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그가 종잡을수 없다는듯 또 한번 깊게 미간을 찌푸리자, 그녀는 아무 말없이 그의 손에서 은잠을 가져온 후 익숙한 솜씨로 상투를 틀어올렸다. 그리고는 흰색 도포자락을 한번 턴후 홱 하고 몸을 돌려 민가쪽으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그가 급히 뒤를 따라왔다.

 

 "서안아."

 "서은입니다."

 

 그녀가 퉁명스레 그의 말을 정정했다. 그리고는 머리를 돌려 어안이 벙벙해진 그를 보았다.

 

 "임서은입니다. 제 이름이요. 잊지 마십시오. 잘못 부르지도 마십시오."

 "본명이냐."

 "네."

 "그래…알았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서 몇걸음만에 그녀앞에 다가왔다.

 

 "설명하라면 하겠다. 그 은잠은…"

 "되었습니다.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듣지 않겠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야…"

 "형님께 중요한 물건임은 틀림 없겠지요. 그렇게 간직하고 다니시는 걸 보면."

 "내게 소중한 물건이긴 하되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제가 뭘 생각했다고 그럽니까. 형님께서 은잠을 간직하든 누구를 그리워하든 그건 형님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화를 내고있지 않느냐."

 "제가 화를 내는 건,"

 

 그녀는 홱 되돌아섰다. 그바람에 그가 주춤했고 그녀는 그를 바라보다가 끝내는 참지 못하고 피씩 웃어버렸다.

 

 "이젠 아시겠습니까. 놀림 당하는 사람 입장이 이런 것임을."

 "너..."

 

 그의 아연한 표정에 그녀는 방긋거렸다.

 

 "되었습니다. 이걸로 퉁칩시다. 어제부터 형님이 어디 저를 적게 놀렸어야죠. 이걸로 퉁친대도 제가 손해입니다."

 "임서은."

 

 그가 괘씸하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글거리며 그에게 다가들었다.

 

 "찬바람에 오래 서계시지 마십시오. 아직 상처도 낫지 않았고 독기도 가셔지지 않은게 아닙니까. 화내시지 말고 어서 들어가시죠."

 

 그의 얼굴에서 감정이 금세 깔끔하게 비워졌다. 순간 싸한 느낌에 그녀는 얼굴의 미소를 거두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휘감았다.

 

 "네가 이리 가까이 다가선 것이다."

 "형...형님..."

 "이젠 형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그녀는 멍해졌다. 그래서 그가 자신의 입술을 거칠게 찾아드는 것도 막지 못했다. 잠시후 정신을 차린 그녀가 버둥거렸으나 고양이앞의 쥐 신세였다. 그녀의 가쁜 숨소리에 한참 뒤에야 그가 얼굴을 들고 낮게 말했다.

 

 "이젠 그 호칭도 고쳐야 하지 않겠느냐."

 "형...님."

 "연모하는 이에게 걸맞는 호칭은 아닌 듯 하다만."

 

 순간 가슴이 떨려왔다. 그의 말이 묵직한 울림으로 그녀의 심장을 가격했다. 연모...연모라. 만일 그와 그녀의 마음이 같다면, 그의 마음을...그의 온전한 마음을 가져야 현대로 돌아갈수 있다는 염라대왕의 말이 이제 곧 실현되는 걸까. 두려움이 왈칵 일었다.

 

 그 두려움은 그녀로 하여금 두손을 내밀어 그를 힘주어 껴안게 했다. 그녀의 적극적인 행동에 그가 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잔잔한 물소리는 맞닿은 열기를 식혀주지 못했고, 억새풀을 스치는 바람도 부끄러운 듯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

 

 "거 참 그림 한번 좋구려."

 

 누군가의 시니컬한 목소리가 그들의 달콤한 시간을 중단시키며 나른하게 들려왔다. 서은은 놀란 얼굴을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민가 마당에 우사가 자객들을 벌려세우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가슴이 덜컥해서 이여백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우사를 노려보았다. 우사가 싸늘하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빈정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제 곳간을 빠뜨리고 수색하지 않았단 말이지. 내 짐작이 틀림없구려."

 "우사…"

 "이건 무슨 그림인가. 저 녀석이 남색인가. 아니면 자네가 여인인가."

 

 그녀는 뿌드득 이를 갈았다. 진심을 종잡을수 없고 배신을 반복하는 우사의 뻔뻔한 태도와 파렴치한 모습에 그녀는 일찍부터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더우기 이토록 그들에 대한 추격에 집념하는 우사를 보니 그녀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감을 느꼈다. 독기가 채 제거되지 않아 기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이여백은 둘째치고, 그녀의 무예 또한 명교 고수들을 집결시킨 오늘의 이 고비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예감이 강렬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지옥 끝까지 따라올 무리들이군요. 당신들이 왜 해볕을 보지 못하는지 내 이제야 알것 같소이다."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게 아닌가."

 

 우사가 손을 젓자 자객들은 일제히 검을 빼어들었고, 황량한 민가 마당에는 곧 살기가 차넘치기 시작했다.

 

 ......

 

 "형님…"

 

 서은은 고개를 돌려 아까부터 침묵만 지키고있는 이여백을 돌아보았다. 후자의 눈빛이 담담히 그녀를 응시해왔고, 그녀는 그의 눈빛에서 그 어떤 신호를 읽어낸 듯 잠깐 정서를 눅잦혔다. 이여백의 입이 그녀를 향해 소리없이 움직였던 것이다. 전음입밀(傳音入密,무협에서 특정된 사람에게만 들리게 하는 전음술)의 무공이었다.

 

 "이제 곧 당주가 올 것이니 너무 걱정말아."

 

 그녀는 그를 향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음입밀은 강한 기(气)를 움직여야 통하는 것이므로 지금의 그에겐 무리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항상 사람이 곁에 있을때, 남몰래 그녀를 꾸지람하던 방법이어서 잘 알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문득 아버지의 그 지긋지긋한 잔소리가 그리워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사면초가인 경우, 아버지처럼 무예에 능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금주 당주가 오더라도 명교 우사를 당해낼수 있을까. 그녀의 걱정을 증명하듯 우사가 말했다.

 

 "그대들이 강호의 고수들을 다 청해온다 해도 오늘은 빠져나가기 어려울 걸."

 "형님께서 어떤 말을 해도 저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교주도 제 성정을 알고있을 텐데요."

 

 이여백은 차분한 기색으로 우사를 보았다. 아마 그는 당주가 올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생각인 듯 했다. 우사가 눈썹을 푸뜰했다.

 

 "네놈에겐 충분히 좋은 조건이 아닌가?"

 "…"

 "솔직히 난 네놈에게 그런 조건을 제시하는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하지만 교주께서 그리 마음을 쓰시니까 나로서도 어쩔수 없이 전달하는 거지."

 "..."

 "혼인대사를 정해주지를 않나, 명교에 복귀할 기회를 주지 않나…제멋대로 명교를 탈퇴하고 실컷 떠돌아다닌 놈더러 장가도 들고 명교 좌사로 복귀하라고? 그럼 지금껏 명교를 위해 목숨을 내건 내 입장은 어떻게 되는 건가?"

 

 우사는 말할수록 격해졌고 서은은 얼핏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말에서 실낱같은 단서를 잡아냈기 때문이다.

 

 "명교 교주가…왜 형님의 중매까지 서는 겁니까."

 

 그녀의 질문에 우사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대는 잘못 생각했소. 명교 교주는 그대의 형님의 중매가 아니라, 바로 금상의 중매를 서시는 게요."

 

 그녀는 살짝 미간을 구겼다. 설마…명교가 명조정의 사주를 받고 움직인다는 강호의 소문이 사실이란 말인가.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우사를 주시했다. 그리고는 짐짓 우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그에게 되물었다.

 

 "금상이라니요?"

 "설마 몰랐소?"

 

 우사는 그런 그녀가 어이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대의 이 잘난 정인이 한때는 부마까지 될뻔한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걸."

 "아..."

 

 뭔가 아리숭하던 것들이 서서히 퍼즐조각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지금의 명교는 지금 그녀가 환생한 서안공주와 이여백을 혼인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눈앞의 이 모든 것은 명조정 즉 만력황제의 지시를 받들어 움직이는 걸로 설명이 된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뭔가 섬광 같은 것이 그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미 여자라는 정체가 알려진 마당에 공주의 신분을 드러내지 못할 것도 없다 싶었다. 그렇다면 만력의 지시를 받고있는 우사로서는 제아무리 담이 크다 해도 황제의 여동생까지 해하지 못할 터였다.

 

 다만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면 이여백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것이 걱정이었다. 겨우 그녀에게 마음을 연 사람에게 또 다른 불신을 안겨줄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녀가 머뭇거리는 틈을 타 이여백이 입을 열었다.

 

 "명교도 이젠 조정과 공공연히 손을 잡았군요. 금의위 무사로 자객 지원까지 해주니 말입니다."

 "눈치 하나는 빠르군."

 

 우사는 냉랭하게 웃으며 이여백을 향해 턱을 쳐들었다.

 

 "금의위를 움직인다고 안될 것도 없지. 내가 금상께 금의위 지휘사 직위를 받은지 하루이틀이 아니니 말이다."

 

 이여백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우사는 또 한번 쌀쌀하게 웃었다.

 

 "금의위 지휘사였던 내 동생 간수의 자리를, 형인 내가 잇는다 해서 문제될 건 없겠지. 지금의 내 무예에 이의가 있는자 조정엔 없을 터이니."

 

 이여백은 담담히 우사의 얼굴을 보았다.

 

 "허나 형님의 신분이…"

 "내 신분이 왜."

 

 우사의 말은 한결 더 쌀쌀해졌다.

 

 "세상이 아는 장무수는 일년전에 이미 죽었고, 난 교주에게서 새로운 성씨와 이름을 받았다. 천하에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은 이젠 아무도 없다."

 "..."

 "그리고 아비가 무함받아 청산을 당했다 하여, 그 아들들이 영원히 밑바닥에서 헤매란 법은 없지 않느냐."

 

 "하지만 당신의 신분을 아는 교주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희도 있구요."

 

 서은이 불쑥 끼어드는 말에 우사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교주는 나를 구한 은인이시니 구태여 더 말할 필요 없고, 그대들은 오늘 교주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비밀을 무덤으로 갖고 갈 것이네. 그러니 내 더이상 무엇이 두렵겠나."

 "교주가 말을 안들으면 죽이라 하더이까."

 

 그녀가 냉랭하게 묻자 우사의 눈에도 야유섞인 미소가 살짝 스쳤다.

 

 "아직 늦은 건 아니니 그대의 정인이 선택하기에 달렸지. 그대로서는 이 상황이 억울하긴 하겠지만 누가 저런 정인을 두라던가. 나 역시 옛정을 생각해서 그대들을 위한 기회를 빌었으니, 그대들 또한 내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무의미한 시간낭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려."

 

 우사는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 검을 빼어들었다. 당주는 아직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서은은 초조한 마음으로 민가마당 바깥쪽을 바라보았다.

 

 이여백도 서서히 접선을 들어올렸다. 검을 빼든 자객들은 바싹 포위망을 조이면서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뒤로 둬발자국 물러서면서 이여백과 등을 맞댔다.

 

 "괜찮습니까? 형님."

 

 그녀가 낮게 속삭이자 그가 조용히 답했다.

 

 "일단 시간은 충분히 끌었으니 한번 싸워보자꾸나."

 "그래도 기를 동하시면..."

 "다 회복되었으니 걱정 말거라."

 

 이리 빨리 회복될리 없었다. 그의 등에 길게 나있는 상처며 사천 당문의 독이며 어느것 하나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달은 누워있어야 하는데 하도 무예가 출중한 사람이다보니 겉보기에 멀쩡할 정도로 버티고 있는 터였다. 그녀는 입술을 옥물었다.

 

 그의 말대로 사생결단하고 한번 싸워볼까. 이리 생각하고 뭐든지 무기로 쓰려고 품속에 손을 넣다가 그녀는 멈칫하고 말았다. 뭔가 딱딱한 것이 손끝에 맞혀왔고 그녀는 기억을 되살렸다. 눈앞의 자객들이 금의위 무사들이라면…그리고 눈앞의 우사가 금의위 지휘사라면...

 

 "…위기가 닥치면 이 옥패가 너를 구할수도 있을 것이다."

 

 위기…지금보다 더한 위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새 교주에게 그들을 숙청하라는 명을 받은 우사라 하더라도, 금의위 지휘사 직위를 겸하고있는 지금, 감히 금상의 여동생인 공주의 명에 왈가왈부 하겠는가. 또한 명교가 지금은 조정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만큼, 이여백을 지키려고 공주가 나선다면 명교 교주 또한 할말이 없지 않겠는가.

 

 그녀가 고민하는 사이 그들을 향해 자객들이 우르르 덮쳤다. 이여백이 검기를 동했다. 하지만 챙 하는 소리와 함께 우사가 그의 검기를 막아나섰다. 이어백의 입귀로 붉은 피가 한줄기 흘러내렸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궁을 떠나기전 만력이 선사한 옥패를 꺼내기로 그녀는 마음먹었다. 자객들이 검을 들고 이어백에게 다가오자 그녀는 한손을 들어 그들의 행동을 제지시켰다.

 

 "우사, 아니 금의위 지휘사님…우선 이것을 보시지요. 연후에 다시 공격하셔도 늦지 않을터이니."

 

 그녀는 품안에서 옥패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우사와 자객들에게 높이 들어보였다. 옥패를 확인하는 순간 우사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고, 자객들은 흠칫 놀라더니 일제히 검들을 버리고 그녀앞에 무릎을 꿇었다.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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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모순 10/19 310 0
27 갈등 10/19 296 0
26 혼례 10/19 314 0
25 총병 10/18 325 0
24 재회 10/17 311 0
23 단검 10/17 353 0
22 태후 10/16 28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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