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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서 만난 그대
작가 : 판도라
작품등록일 : 201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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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작성일 : 19-10-23     조회 : 339     추천 : 0     분량 : 13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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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창문살 사이로 비쳐들어오는 늦가을 오후 햇살이 나른해지고 있었다. 서은은 만력을 한동안 주시하다가 머리를 돌려 이여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뭔가 결심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잠깐 오라버니께 드릴 말씀이 있으니 신부님을 대청에 모시고 차라도 한잔 대접하세요.”

 

 이여백은 가볍게 머리를 끄덕인 후 이마두를 향해 두손을 맞잡았다.

 

 “신부님은 저와 함께 앞채로 가서 이 사람의 병증세를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십시오.”

 

 이마두가 이여백을 따라 나간 후 만력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나직히 한숨을 내쉰후 체념한 듯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런 만력의 눈에서 어느샌가 힘이 빠져있었다.

 

 “짐이 무예를 잃었다는 것을…네가 어떻게 아느냐.”

 “자고로 무예를 익힌 사람들은 하체가 든든하여 쉽사리 흔들리거나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허나 어릴때부터 무예를 익혀온 오라버니께서는 방금 신부님이 문을 열어젖히는 힘에도 몸을 휘청거리시더군요. 언제…어떻게 되어 무예를 잃으신 겁니까.”

 

 그녀의 어조에는 안타까움이 묻어있었다. 이래선 안되었다. 앞길이 만리같은 젊은 황제가 벌써 무예를 잃어서는 안되었다. 만력에게 있어서 무예를 잃는다는 것은 곧 건강과 젊음을 잃는다는 것과 같은 심각한 일이였다. 역사에서 그의 30년 태정이 건강때문이라는 말이 결국은 사실이었을까. 그녀의 심란한 마음을 보아냈는지 만력이 처연하게 웃었다.

 

 “장거정이 왜 서법과 무예에 대한 짐의 애착을 그리도 반대했는지 이제야 알수 있겠다.”

 “…”

 “그 어떤 일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집념하는 짐의 성격을 알아서 그런 것이다. 짐이 이제 와서 장거정의 그 깊은 뜻을 알았지만…때는 이미 늦었구나.”

 “늦지 않습니다.”

 

 그녀는 머리를 들었다. 한쪽으로 쓸어내린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출렁거렸다. 그녀의 눈길에도 파도가 일었다. 그녀는 잠깐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늦지 않아…결코 늦지 않았어…절대 이대로 방치할수는 없어…

 

 “무예를 잃었다 하여, 그렇게 쉽게 자포자기 하시다니요…절대 늦지 않았습니다.”

 “무예를 잃은 것은 두렵지 않다…짐이 두려운 것은…주화입마(走火入魔)의 경우다.”

 

 만력이 결코 담담하지 않은 말을 그토록 담담하게 내뱉자,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그녀의 뇌리속으로 한가지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녀는 믿기 어렵다는 듯 만력을 응시했다.

 

 “설마…오라버니께서 설마 <규화보전>을…?”

 

 만력은 묵묵히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벌컥 몸을 일으켰다. 잠시 현훈증이 일었지만 그것을 아랑곳할 계제는 못되었다.

 

 “왜…왜 하필 <규화보전>을!”

 “그 유혹을…거부하기 힘들었다. 무예에 심취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다…”

 

 그녀는 억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양심전 서안위에 놓여져있던 <규화보전>을 만력이 연마했을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는 만력이…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후과를 가져오게 될지 아는 만력이 하필이면…

 

 “주화입마라면…장의원을 부르세요…아니, 이마두 신부님…신부님이 무슨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 신부님을 부르세요…주화입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라버니는 그리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 소용 없다.”

 

 만력의 얼굴에 절망섞인 미소가 엷게 비꼈다.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의도 보였고 전국의 한다하는 명의는 다 보였느니라. 지금으로선 두가지 방법밖에 없다.”

 “어떤 두가지 방법입니까…”

 “첫째, <규화보전>의 마지막 단계인 그 방법을 쓰는 것이다…둘째, 몸상태를 이대로 두어 주화입마의 후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화입마의 후과는…어떤것입니까.”

 “환각, 환청이 나타나며 심하면 정신착란이 오게 되겠지.”

 

 그녀는 만력의 덤덤한 태도가 놀라웠다. 꼭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것처럼 그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이것이 바로 <규화보전>의 위력이였던가. 우선 사람을 냉정하게 만들고 그다음 서서히 무서운 변화가 오게 하는 것일까. 그녀는 오싹 몸을 떨었다.

 

 “첫번째 방법은 절대 아니되옵니다. 외람되이 말씀드리자면 지금으로부터 몇십년 후, 강호에는 일월교라는 사악한 교파가 나타나게 되며 그 교주가 바로 최초로 <규화보전>을 끝까지 연마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남자로부터 여자로 변한 사람으로서 그의 이름은 <동방불패>…”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만력이 이해 안된다는 듯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머리를 저었다. 앞으로의 일을 말해봤자 만력이 이해할리 만무했다.

 

 “암튼…첫번째 방법은 절대 안되옵니다.”

 “그렇다고 미치광이 황제로 역사에 남겠느냐…”

 

 만력의 눈에서 형형한 불빛이 뿜겨져 나왔다. 그리고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며 그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녀는 화뜰 놀랐다. 방금까지의 덤덤한 태도와는 달리 만력은 이유 모르게 잔뜩 흥분해 있었다. 저런 식으로 나가다간 주화입마는 시간문제였다. 그녀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찌 보면 역사에 기재된대로 움직이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지키고 싶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눈을 들어 만력을 응시했다.

 

 “환각, 환청이나 정신착란이 오게 되면 정신이 흐려지게 되며, 심하면 정신분열증이 될지도 모릅니다.”

 “…”

 “하지만 어의를 불러 잘 조섭하시고 정서파동이 심하지 않으면, 오랜 시간 건강을 유지할수도 있습니다.”

 

 만력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짐은…미친 황제라는 소리는 듣고싶지 않다.”

 “하지만 이 나라 백성들에게도, 후세사람들에게도…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으로 변한 황제보다는, 미친 황제가 더 낫지 않겠습니까.”

 “…”

 “그리고 미친 황제보다는 게으른 황제가 더 나을 것입니다.”

 

 만력이 몸을 흠칫했고, 그녀 역시 자신이 내뱉은 말에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바로 이것이었던가…또 한번 자신으로 인해 완성되는 역사…하지만 아무렴 어떠랴…이 길만이 만력을, 오라버니였던 그를 지킬수 있는 길임을.

 

 “게으른 황제?”

 

 만력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마음을 비우고 가만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만력을 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 만일 주화입마의 후과로 정신이 흐려지면 정사를 보기 어렵고 시비를 분간하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하오니, 오라버니께선 이번에 궁에 돌아가신 다음엔 차츰 태정을 하시옵소서.”

 “태정?”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조현을 줄이시고 모든 상소는 믿을만한 대소신료들을 뽑아 직접 건청궁으로 들이게 하시옵소서. 연후에 내시와 궁녀들의 입단속을 엄하게 하고 궁밖의 모든 활동을 자제하시옵소서. 그밖에 정사에 이태후마마의 도움을 받으시옵소서.”

 “그건…”

 “제 말을 들으시옵소서. 일단 오라버니께서 정신이 흐려졌다고 알려지면, 요동과 서북부, 복건과 오령산맥이남으로 동란이 생기고 국내의 모든 정세가 불안정해질것이옵니다. 그러니 차라리 지금부터 정사에 태만하다는 말을 들어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고 정신을 맑게 한다면, 오라버니께서 걱정하시는 변방의 여러 민족들이 그리 쉽게 반란을 꾀하진 못하리다. 그리고 이태후마마의 정치 능력은 일찍 검증된바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그분은 저희의 친어미십니다. 그분께서 오라버니를 지켜주실 겁니다.”

 “꼭 그리 해야 하느냐.”

 “네. 꼭 그리 하셔야 합니다. 오라버니께서 오매불망 바랐던 친정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것이 유감이지만, 이렇게 하셔야만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 앞일을 꾀할수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만력은 덤덤히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녀는 긴 대화에 피로를 느끼고 잠시 베개에 의지해 눈을 감았다. 한참 지나 눈을 떠보니 그때까지 만력은 여전히 창문가에 서있었다. 창밖의 가을 해빛이 만력의 얼굴을 짙은 황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

 

 “오라버니께서 상경일자를 미루셨습니다.”

 

 저녁에 서은의 처소로 온 이여백은, 그녀에게서 자초지종을 듣자 입을 열었다.

 

 “지금 출발하는 것이 무리니 잠시 미루는것도 나쁘진 않지. 하지만 당신이 폐하께 태정을 권장했다니 생각밖인데. 게다가 이태후 마마께 정사의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니…”

 “서방님께서 아직 이태후마마의 일을 마음에 두신다는걸 모르진 않아요. 하지만 만사엔 대와 소를 가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오라버니 주위에 그분만큼 정치가 뛰어난 분이 없어요. 애초에 오라버니가 친정을 하기전 이태후마마께서 수렴청정도 하셨으니 이번에 다시 정사를 돕는다 해도 이상할것은 없죠.”

 “당신 뜻 모르는게 아니야. 나 또한 당신이 이렇게 마음쓰는걸 머라고 할 입장도 아니고.”

 

 이여백은 그녀를 본후 다시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요동의 방위는 우리가 있으니 염려할것 없지. 또 큰형님이 산서 총병으로 계시니 북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근자에 복건이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예로부터 남만은 다루기 힘든 민족이였으니까. 이태후마마가 이런 변방의 일을 모두 아우를수 있을지.”

 “남만도 당분간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녀의 확신어링 말에 이여백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흥미롭다는 듯 그녀를 보았다.

 

 “아무리 심하게 앓는다 해도 그 예지능력은 빛을 잃지 않는 건가. 아니면 지금으로부터 몇백년후의 사람으로서 경험담인가.”

 “병든 사람을 놀리지 마십시오.”

 

 그녀는 나직히 대꾸한 후 머리를 돌려 몇번 기침을 했다. 이여백이 언뜻 눈섭을 찌푸렸다.

 

 “오늘은 왜 아직 음식을 들이지 않는지. 내가 주방에 가봐야겠어.”

 

 이여백이 방문을 나선지 얼마 안되어서 이마두가 찬합을 든 봉선을 앞세우고 문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촛불을 높이 들어 서은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 후 봉선에게 머리를 돌려 지시했다.

 

 “내일부터는 약간의 육류를 들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네, 신부님.”

 

 봉선은 공손히 대답하면서 찬합을 열어 음식들을 꺼내다가, 그만 뜨거운 국그릇에 데었는지 손을 흠칫했다. 그 서슬에 찬합이 엎어지면서 방안 가득 국물이 흘렀다. 그녀는 깜짝 놀라 허리를 굽혔다. 급히 머리를 숙여 수습하느라 얼굴의 면사포가 흘러내리는 것도 미처 감지하지 못한 듯 했다. 뒤이어 그녀가 얼굴을 들었을 때는, 이마두가 그녀의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한 뒤었다.

 

 “아…”

 

 봉선은 잠깐 멍해있다가 급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서은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베개에 의지해 있다가, 머리를 들어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봉선…”

 “저, 잠깐 부인의 옷을 빌리겠습니다.”

 

 봉선이 갈린 목소리로 재빨리 말했다. 그녀를 위로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잠시 서은의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봉선은 번개처럼 빠른 동작으로 서은의 학창의를 벽에서 벗겨내더니, 바로 그것을 머리에 쓰고 방안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던 봉선의 발걸음이 이마두의 말에 의해 잠시 멈춰졌다.

 

 “혹시…”

 

 이마두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의혹에 찬 눈길로 봉선을 주시하다가 다시 서은에게 시선을 돌렸다. 뒤이어 그의 눈빛에서 당혹감이 걷혀지고 거의 확신에 가까운 기색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이분은 남방에 계셨던 분이십니까.”

 “신부님께서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앉은 서은이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봉선도 의아했는지 이마두가 있는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학창의 사이로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런데는요.”

 “그렇지 않으면 그런 피부 과민반응이 생길수 없으니까요.”

 

 이마두가 담담히 내뱉는 말에, 봉선은 크게 몸을 흠칫했다. 서은의 놀란 눈길이 봉선이 있는쪽으로 향했고, 봉선은 이마두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얼굴에 썼던 학창의를 내리고 말았다. 이미 봤던 모습이었지만 서은은 그만 고개를 돌렸다. 빨간 여드름이 가득 뒤덮인 그녀의 얼굴이 촛불아래서 더욱 안스럽게 보였던 것이다. 그녀가 입술을 바르르 떨며 이마두에게 말했다.

 

 “신부님께서…제 얼굴이 어떻게 이리 되었는지 아십니까.”

 “알다뿐이겠습니까.”

 

 이마두는 봉선의 얼굴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녀의 얼굴을 처음 본 사람치고 놀랄만도 하겠는데 이마두는 마치 몸에 작은 상처가 난 환자를 보는 듯 무심한 태도로 말했다.

 

 “다행이 뿌리가 깊지 않아 그정도인데 이제 몇년이 더 지나면 몸에도 퍼질 것입니다.”

 “아…”

 “그리고 낭자께선 그 병을 고치기 위해 한동안 남북을 전전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후에 따른 과민반응이긴 하나, 결코 생활환경을 바꾼다 하여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요.”

 

 한켠에서 듣고만 있던 서은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봉선의 얼굴을 한참 보다가 다시 이마두에게 말했다.

 

 “저렇게 고운 사람이 저런 몹쓸 병때문에 자기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있답니다. 저 역시 저 병을 단순한 피부병으로 알고있었을뿐, 기후에 의한 과민 반응이라는건 오늘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부디 신부님께서 방도를 대어주셨으면 합니다.”

 “방도라면, 면역균형을 맞추어 면역 과민반응을 개선해야 합니다…보통 과민반응은 유전적 혹은 환경적 요인으로, 면역이 인체에 해가 되지 않은 물질도 해가 되는것으로 간주해서 일으키는 불필요한 반응…”

 

 이마두의 설명이 채 끝나기 바쁘게, 풀썩 하고 봉선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마두는 놀란 기색으로 둬걸음 물러섰고, 봉선은 눈물이 가득 뒤덮인 얼굴로 그를 향해 처연하게 말했다.

 

 “봉선이 강호와 퓽류장을 전전하며 구차하게 살게 된것도, 차마 세상을 볼수 없는 이 흉한 얼굴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신부님께서 제게 치료법을 알려주신다면, 이길로 세상의 모든 인연을 버리고, 평생 신부님이 신앙하는 그 교리를 받들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절레절레 머리를 저으며 이마두가 가슴으로 십자를 그었다. 그리고 그는 봉선을 똑바로 보면서 경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성직자로서 복음을 전도하는 일보다는, 이미 저의 친구가 된 당신들로 하여금…그대들을 괴롭히는 병마의 고통에서 헤어나오게 하는 일이 훨씬 행복합니다.”

 

 하얀 촛불이 조용히 타오르는 가운데, 이마두의 미소띈 얼굴은 그토록 신성해 보였다. 그를 바라보는 봉선의 눈에도 경외의 빛이 가득차 있었다. 서은은 고개를 숙이고 깊은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지휘사님이 돌아올 날도 멀지 않았을텐데.”

 

 남방으로 갔던 우사가 돌아오면, 만력이 상경하는 길에 봉선도 같이 상경하게 하자는 것이 그녀의 속셈이었다. 그때까지 봉선의 얼굴이 완전히 회복된다면, 상경하기 전에 그들에게 간소한 혼례식을 치뤄주자는 계획도 남몰래 세우고 있었다. 그동안 뼈속깊은 자비감으로 서로를 소원히 했던 그들사이의 사랑싸움은 그들의 결합에 결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정리가 되는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리는 말이, 누구도 모르게 서서히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녀의 입가에 허한 미소가 번졌다. 창밖에서 불어들어오는 찬바람에 촛불이 조금씩 흔들렸다. 그 흔들리는 촛불의 끝자락에 겨울이 스치고 있었다.

 

 ......

 

 “제가 적어드린 식단에 맞춰 식사를 하시고, 시간을 맞추어 가벼운 운동도 하셔야 합니다. 자고로 사람의 생명은 운동에 있다 하였거늘…”

 

 초겨울의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있었다. 서은은 베개에 기대어 거의 한달째 지속되는 이마두의 잔소리를 귀따갑게 듣고있다가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명에 온 시간이 길지 않지만 이마두는 명나라 사대부들의 지호자야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시간을 정확히 알수가 없어요. 시계도 없고…신부님이 가져오신 유일한 시계도 신부님이 오라버니께 선물해버려서. 이제 오라버니가 상경한다면 더욱 시간을 알수 없어요.”

 “그래서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서은은 머리를 기웃하고 이마두의 손에 들려진 도구들을 보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뭔가요.”

 “해의 그림자를 측정해 시간을 알수 있는 태양 시계입니다.”

 

 이마두의 말에 서은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그럼 시간을 알려고 매일 밖에 나가 해의 그림자를 지켜봐야 한다는 건가요?”

 “운동도 되고 일석이조 아닙니까.”

 

 부지런히 일손을 놀리며 이마두가 대꾸했다. 서은은 그를 바라보며 잔뜩 불만어린 어조로 말했다.

 

 “사자성어를 능란하게 구사하지 마십시오. 신부님의 외양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위화감이 듭니다.”

 “오우, 그게 어때서요. 다들 저를 보고 이런 사대부 유복차림이 어울린다고 하는 걸요.”

 

 이마두의 말에 서은은 살짝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그녀는 몸을 뒤채어 자리에 누운 후 한참 천장을 올려다 보다가 유유히 입을 열었다.

 

 “유복만 입어서 뭘합니까. 공자를 마음속깊이 받아들이시지도 않으면서.”

 “그것까지 아십니까.”

 

 이마두는 일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공자님은, 내세는 모르면서 세상을 잘되게 하는 법에 관해서만 말하고, 왕국을 평화속에 통치, 유지하려는 법만 가르치셨습니다.”

 “공자님을 그렇게 평가하시다니…이 나라 사대부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서은이 피씩 웃자 이마두는 지려고 하지 않았다.

 

 “명의 사람들은 유교가 종교라는 것을 부정하지만, 사람들의 사상을 억압하는 면에서 보면 유교는 불교나 도교보다 더한 종교입니다.”

 “유교는 종교라기보단 이데올레기죠.”

 

 그녀의 반박에 이마두는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사람의 사상을 틀에 맞추어 억압하는걸 본다면, 유교보다 더한 종교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명은 자유, 민주, 평등의 길을 걷기에는 아직 먼 거리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도, 그리고 세상도 그 세가지를 위해 피를 흘리고 싸우는 날이 오겠죠.”

 

 서은은 무심하게 대꾸한 후, 고개를 들어 이마두를 보면서 말머리를 돌렸다.

 

 “봉선의 회복은 어떻습니까.”

 “눈에 띄이게 회복되고있지만, 오늘은 거문고를 타며 애상에 젖어있으니 별일입니다.”

 

 이마두의 말에 서은은 피씩 입꼬리를 올렸다. 이마두가 봉선의 치료를 시작하자 서은은 전에 나치야가 묵었던 정원으로 그녀를 보내 조용히 정양하게 했던 것이다. 한방에 환자가 둘씩 있으면 치료가 헛갈릴수 있다는 것이 핑계였지만, 그녀에게는 따로 속셈이 있었다.

 

 “같이 가보는 게 어떨까요.”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이마두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그의 팔을 잡고 천천히 문밖을 나섰다. 그동안 이마두의 치료법이 효과를 보아 이같은 가벼운 출입쯤은 하고있던 터였다. 그녀가 문밖을 나서자 마당에 있던 령이가 금세 모전으로 지은 겉옷을 가져왔다.

 

 “바람이 차니 걸쳐야 합니다. 어디로 가시렵니까.”

 “봉선에게 가려고.”

 

 서은의 말에 령이는 입을 삐죽했다.

 

 “가보십시오. 초상집이 따로 없습니다. 매일 한숨과 눈물로 보내니 어찌 병이 낫겠습니까.”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

 

 서은은 가볍게 꾸지람한 후 이마두와 령이의 부축을 받아 봉선의 거처로 향했다. 대나무 우거진 정원으로 들어서니 구슬픈 거문고 가락이 방안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봉선각에서 연주한적 있는 “봉구황”가락이라는걸 그녀는 쉽게 알수 있었다.

 

 봉(鳳)아, 봉아, 고향에 돌아왔구나!

 너를 찾아 사해에서 찾기를 원하였지만

 이제까지 그 원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오늘밤에야 이 마루에 올라 만나게 되었구나

 아름다운 낭자가 규방에 있으나

 방은 가까워도 사람은 멀어 비통하게 하는가

 그녀와 함께 한 쌍의 원앙이 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함께 저 높은 하늘을 날 수 있을 텐데

 봉(鳳)아, 봉아, 나를 따라 머무르렴!

 부지런히 여신님을 위해 뒤를 밀어주렴

 정이 흐르고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나니

 깊은 밤 서로 의지하길 알아주는 이 누구이던가

 두 날개 활짝 펴고 하늘위로 날아오르니

 나는 더 이상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도다...

 

 서은은 조용히 듣고있다가 고개를 돌려 이마두를 보았다.

 

 “저 혼자 들어가 보겠으니 잠시 처소에 돌아가 계십시오.”

 “네, 부인.”

 

 이마두와 령이의 모습이 멀어지자, 그녀는 목소리를 돋우어 방안을 향해 말했다.

 

 “아름다운 낭자가 규방에 있으나, 몸은 가까워도 마음이 멀어 비통하게 하는가.”

 

 방안에서 거문고 소리가 멎었다. 잠시후 방문이 열리면서 봉선이 문밖을 나섰다.

 

 “아직 허약하실텐데 어찌 오셨습니까.”

 

 서은은 눈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면사포를 쓰지 않은 얼굴이 배꽃처럼 청초해 보였다. 아직 양볼에 약간의 여드름 흔적이 남아있지만, 그것이 그녀의 미모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작아보였다. 서은은 봉선의 손을 잡으며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신부님의 의술이 출중하시군요. 이렇게 빠른 시일내에 당신의 미모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시다니.”

 “아직 완전히 회복된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지금 상태로도 대만족입니다.”

 

 봉선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말에, 그녀는 방안으로 들어서면서 다음 말을 이었다.

 

 “입으로는 그리 말씀하시니 얼굴로는 아닌 걸 어떡하시겠습니까.”

 “이 세상 그 어떤 일이나 부인의 눈은 속이기 어려우리다.”

 

 봉선이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이유 모를 슬픔이 담겨있었다. 그런 슬픔이 서은의 마음을 묘하게 뒤흔들었다. 이제 자신이 내뱉을 말을 봉선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별로 확신은 서지 않았지만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분을 기다리는 봉선의 마음을 제가 잘 압니다. 그래서 이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전해주려고 왔습니다.”

 “소…소식이라니요?”

 

 봉선의 얼굴이 금세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부르르 몸을 떨며 서은의 옷깃을 잡았다.

 

 “혹…그이가 상하기라도…”

 “그런것이 아니라…지금 지휘사님은 광녕성밖에 주둔하면서 오라버니를 영접하여 직접 상경하실 예정이십니다. 군졸이 와서 이르기를 굳이 성안으로 들어올 이유가 없다 하여…”

 

 봉선의 눈에서 순간 불꽃이 일었다. 하지만 곧 기색을 고치면서 그녀가 참담하게 웃었다.

 

 “그러시겠지요…그리 여길테지요.”

 

 뒤이어 몸을 돌린 그녀가 거문고앞에 앉더니, 아무렇게나 거문고 줄을 타기 시작했다. 조잡한 곡조가 흘러나왔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은이 말했다.

 

 “이대로 계시렵니까.”

 “…”

 “만일 저라면 한번쯤은 만나 따져보겠습니다. 왜 수많은 길을 에돌아 오고서, 결국은 눈앞에서 길을 달리해야 하는가를.”

 “…”

 “그렇게 해도 그 사람의 마음이 굳어있다면, 그앞에서 그 봉구황을 연주한 후 그 사람에 대한 미련을 끊을 것입니다. 시작과 끝을 확실하게 맺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봉선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앉아있었다. 한참 지나도 그녀가 아무런 동정을 보이지 않자, 서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바로 그때 봉선이 벌컥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잠시후 그녀의 품에는 어느새 깁으로 감싼 거문고가 안겨져 있었다.

 

 “어딥니까.”

 

 고개를 돌린 서은은 그녀의 아름다운 두눈에 형형한 불꽃이 튕기고 있는것을 보았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 봐온 그녀의 여느 모습보다도 더 황홀하게 느껴졌다. 서은은 그런 그녀를 향해 가만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마음 한가득 축복을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

 

 “광녕성 동문밖입니다.”

 

 ……

 

 “그렇게 보내면 당신의 계획은 틀어진 것이 아닌가.”

 

 언제 다가왔는지 한 그림자가 그녀의 머리를 덮었다. 봉선이 나간지 한식경이 된 후였다. 머리를 들지 않고서도 서은은 그 사람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수 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가 있는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계획은 변수를 따라갈수 없습니다. 저 둘이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깟 혼례준비가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우사형님한텐 당신이 시키는대로 봉선이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어. 지금쯤 동문안으로 들어오고 있을 걸.”

 “저 두 사람은 그동안 서로의 속마음을 너무 깊숙히 감추고 있었습니다. 이참에 서로의 진심을 알수 있게 된다면, 저희가 한 거짓말을 그리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의 말에 이여백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뭔가 말할 듯 하다가, 이내 단념한 듯 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던 그가 뭔가 생각난듯 멈춰섰다.

 

 “폐하께서 상경을 하신 후, 신부님도 소주쪽으로 내려가겠다고 하는데…당신의 건강 상태를 봐서 다음달까지는 부중에 머물러 달라고 부탁해놓는 건 어떨까.”

 “저는 조신하여 몸조리를 하면 별탈 없을 것입니다. 신부님은 소주에 있는 구태소(瞿太素,이마두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최초의 천주교 교화인)를 찾아 사서오경에 대한 가르침을 청하려 하니 굳이 막지는 마십시오.”

 

 그녀의 담담한 말에 이여백이 그녀쪽으로 되돌아섰다. 그리고 그녀는 영 못마땅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 의아해졌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서 그의 팔을 잡았다.

 

 “또 무엇이 서방님의 심기를 어지럽혔습니까.”

 “당신 말고 날 흔들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겠어.”

 

 그의 자못 퉁명스러운 말에, 그녀는 연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병색으로 파리한 얼굴에 오래간만에 홍조가 피어났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이여백은 짐짓 무심한 표정을 짓고있는 듯 보였지만, 그의 눈빛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감지할수 있었다.

 

 “제가 또 어떤 일로 서방님을 괴롭혔는지요.”

 

 그녀가 공손한 태도로 하는 말에, 그는 채근하 듯 딱딱하게 그녀를 보았다.

 

 “나 모르게 뭔가를 획책하고있는 느낌을 받았어.”

 “…”

 “우사형님과 봉선의 일도 그렇고, 신부님의 남하를 막지 말라는 것도 그렇고…이렇게 차츰 주변정리를 하고 당면할 일을 당면한다는 건가. 난 당신이 혼자 몸이 아니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명부를 상대할때 당신 혼자가 아니라 내가 있다는 걸 기억하고.”

 “왜 그렇게 불안해 하십니까.”

 

 그녀가 차분하게 손을 내밀어 그의 얼굴에 대었다. 그녀의 그런 부드러운 행동에, 그리고 허를 찌르는 그 한마디에 무너졌는지 그가 말을 잇지 못한다. 한참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 그녀가 조용히 웃었다. 겉으론 침착한척 의연한척 하지만…그 역시 잃을 것이 있어 두려움에 떨고있는 한낱 평범한 사내였던 것을.

 

 “대장부라면 쉽게 마음을 들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엄정한 태도로 말하고 싶었는데, 저도 모르게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 그녀의 말을,그가 받았다.

 

 “마음을 들키지 않는 건, 그만큼 동하지 않았기때문이야.”

 

 역시 말만은 지지 않는군. 눈물 젖은 눈을 들며 그녀가 웃었다. 그런 그녀를 그가 깊이 응시했다. 뒤이어 금방까지의 불안감을 씻은 듯 거두고, 그가 모든것을 정리하는 듯한 태도로 단호하게 말했다.

 

 “이젠 다 내게 맡기면 어떻느냐.”

 

 그녀는 시선을 내리고 웃었다. 하지만 눈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는걸 결국 막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의 이런 말을,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는 이 말을 내심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온전히 얻는 것이 두려워서, 그리 되면 종국에는 그를 잃을까 두려워서 강한척 의연한척 했던 자신이다. 그는 알까, 차라리 정신을 놓아버릴 정도로 슬퍼서, 그 지독한 슬픔을 감추고 담담한척 하는 마음을.

 

 “내가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 당신과 우리 아이를. 그러니 제발 내게 맡기고 당신은 몸조리만 했으면 좋겠어.”

 

 정중한 태도로 말하는 저 가엾은 남자…어차피 이 세상에 홀로 남게 되는 남자, 슬하에 혈육이 있다는 기재조차 남지 않은 남자…애초에 그의 생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다시 울컥하고 올라오는 마음을 애써 억누른 채, 그녀는 순종하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저 쉬어도 되겠죠?”

 

 그렁그렁 고였던 눈물이 다시 흐르고 만다. 이 아이가 태어나면 명부가 가만히 있을까. 감추듯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손에 의해 다시 얼굴이 돌려졌다. 그리고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 그리고 더이상 가슴아파서 못봐주겠다는 듯 그의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둘이 인연이든 아니든, 그리고 그 어떤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든, 그저 이기적이고 평범한 여자가 되어 평생 그와 함께 살고싶다. 그리 생각하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창밖에서 눈부시게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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