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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안(鬼眼), 천존을 담은 여자
작가 : 적편혈향
작품등록일 : 20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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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작성일 : 19-10-05     조회 : 25     추천 : 0     분량 : 8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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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미쳤어?! 무슨짓을 한거야 애한테!! 설마 밀었어?!"

 

 샹들리에를 본 오빠가 바로 2층난간쪽에 시선을 옮겼다. 기태오빠는 아직 거기 서있는 듯 했다. 내가 잘 떨어지나 구경이라도 했나.. 하지만 차라리 기명오빠만 본건 다행이다 싶었던 그때, 부모님과 기준오빠까지 들어오셨다.

 

 "너..너 이새끼!!"

 

 여기 지내면서 한번도 들어본 적 없던 아버지의 격한 목소리.. 2층으로 뛰어올라가시는 듯 했다. 어쩔 줄 몰라하며 나를 보는 어머니 눈빛은 참담했다. 왜 안그렇겠어.. 얼굴 낯빛이 파리해져서 비틀거리시다 결국 기준오빠의 부축을 받으셔야만 했다. 파편이 튄것까지는, 아니 내 몸에 박힌것까지도 괜찮은데.. 옆구리 사이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따뜻한 물에 몸을 적시듯이.

 

 몸을 돌리지 않았더라도 나는 샹들리에에 걸리는 위치에 있었다. 어쩌면 더 끔찍한 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몰랐다. 가령.. 샹들리에에 머리가 얹어져서 떨어졌다거나.. 그런거? 다행히도 잡으면서 떨어지며 허우적대는 바람에 철제장식이 뒤로가서 등 뒤에 파편이 다 박힌거 같았다. 그래서 보이지는 않고.. 피만 보이니 더 불안했다. 어딜 어떻게 다친건지.. 혹시나 척추 이런데 다친거 아닐까?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안기명, 일단 주변 파편하고 샹들리에부터 치워라. 그래야 사람을 살피든 뭐든 하지"

 

 어머니를 부축하고 나를 보는 눈빛이 역시나 싸늘하다. 기명오빠가 내 주변에서 파편을 정리하고 있었다. 다 정리할 동안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표정변화 하나 없이 날 주시하고 있다.'역시..기명오빠 아니면.. 내가 이집에서 버티는건 불가능해' 라는 생각이 뇌리에 새겨졌다. 걱정이 아니라 당황한 기색이라도 보여야하는거 아닌가?

 어찌됐든 사람이 피를 흘리고 바닥에 엎어져있으면.. 아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아홉시 뉴스나 시사고발프로그램에나 나올법한 일을 왜 내가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분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아니, 어쩌면 이 상황이 되려 전화위복 일지도 모른다. 설마 이런일이 있었는데도 내가 못나가게 말리시겠나 싶었다. 단 둘이 있을때가 언제일지도 모르는데.. 큰일이 날 수도 있다 생각하시겠지- 했다.

 떨어진 곳이야.. 충격때문에 부러질수도 있다는 걸 상식으로 안다. 그럼 충격을 받지 않은곳은 괜찮지 않을까 해서 일어나보려 했는데 외마디 비명만 지르고 다시 제자리..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유리가 더 깊게 들어가서 큰일 날수도 있으니까"

 

 어머니를 부축만 하며 날 지켜보던 오빠가 입을 열었다. 내가 처음들은 기준오빠의 목소리였다. 엄청 낮고 굵은 목소리.. 안그래도 매섭게 생긴데다 목소리까지 저러니 더 무섭다. 기명오빠가 자잘한 유리까지 다 치우고

 나니 기준오빠가 기명오빠에게 어머니 모시고 방에 들어가라고 말했다.

 

 "형, 내가할게. 형이 모시고 들어가"

 

 "됐으니까, 모시고 들어가. 너보다 내가 낫다."

 

 원래 말이 저렇게 짧구나.. 딱딱 할말만 하고 표정도 그대로고. 기명오빠도 그 말에 어머니를 부축했다. 이마에 손을 짚고서 비틀거리며 들어가시는데.. 한숨만 나온다. 기준오빠는 움직이지말고 그대로 있으라며 2층에서 이상한 상자를 가지고 내려왔다.

 

 "움찔거리면 신경건드릴수도 있으니까 그냥 숨만 쉬고있어. 병원이 아니라 어쩔 수

 없으니까.. 좀 아프더라도 이해하고"

 

 부욱-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위로 티셔츠를 찢었다. 엎어져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앞으로 떨어졌다면... 민망하고 소름돋고 부끄럽고; 오만가지 감정이 다 겹쳐 느껴졌다. 방에서 막 나온 기명오빠를 보고는 메스 좀 소독해오라는데.. 왜 그게 필요하지??

 

 "저기..오빠.. 그거까지 써야되면 그냥 병원 가면 안돼요? 구급차 불러서.."

 

 뭐라고 부를지 한참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내가 물었다.

 

 "갈거다. 집에서 가까운게 내가 있는 병원인데 유리박힌 이대로 가면 무슨 소릴 듣겠냐. 명색이 의사있다는 집안에서 환자를 이렇게 데려간다고 말 안나오겠냐고-"

 

 핀셋으로 끄집어 낼 수 있는 건 그렇게 하고 있다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가족인거 모를텐데 알게뭐야. 그냥 다친 환자 데리고 왔다고 하면 될.. 아.. 구급차는 그게 안되는구나. 하긴.. 난 아버지랑 같이 가게 되면 오빠 모르지 않냐고 했는데 대답이 없었다. 쓸데 없는 말엔 대꾸 안해주는 건가..? 기명오빠가 소독 다 했다며 메스를 건네는데 겁이났다. 뭘 하려는건진 모르겠지만 수술용칼이 쓰임새가 살찢는거밖에 더 있나? 고개도 못돌리게 해서 어떻게 하는지하나도 모르겠는데..

 

 "박힌건 좀 째서 빼내야 하니까 아플거다"

 

 이 아저씨는 말하는거랑 동시에 행동을 하니 대답도 못하고 별안간 당하게 만드네. 난 그때 생살이 찢어지는 느낌이 어릴 때 눈으로 보던 '영가'보다 더 끔찍한 느낌일 수 있다는걸 알았다. 괜히 소리내면 아프다고 엄살부린다 할 것 같은 사람이라 잡을것도 없는 빈 바닥을 손가락으로 얼마나 움켜잡았는지 모른다.

 

 "..며..몇개나 있어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별 대꾸가 없다. 휴- 낮게 한숨만 내쉬어버렸다. 기명오빠는 거즈랑 붕대를 가지러 가는 바람에 옆에 없었다.

 

 "한 네개,보이는건 그것뿐이라 눈으로 보이는건 빼고 안보이는건 병원가서 빼야지. 그리고 팔은? 떨어진 쪽 괜찮은지 팔만 움직여봐."

 

 .. 팔이 전혀 내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몇번이고 움직여보려고 했는데 되질않았다.

 기준오빠가 못움직이는거면 뼈에 이상있는거라 억지로 움직이지 말고 가만 있으라며

 자기도 2층으로 가버렸다. 대체 사람을 여기 엎어놓고 뭐하는거지?.. 아버지가

 붉어진 얼굴로 내려와서는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하셨다.

 

 "향아, 저놈이 술을 어디서 저렇게 퍼 마시고 와서 너한테 행패를 부렸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보기에 이게 처음 있었던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기태가 얼마나 괴롭혔니?

 왜 이렇게 될때까지 말 한마디 안했어.. 하마터면 더 큰일이 생길수도 있었잖니."

 

 자꾸 기태오빠가 평소에 어땠냐 물으시는데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실대로

 말하려니 상식밖의 일을 잘 해서 쇼크받으실 것 같고.. 안하자니 저렇게 계속

 울것같은 표정으로 계실 것 같고. 그 난관을 기명오빠와 기준오빠가 같이 오면서

 탈 없이 넘어가게 됐다.

 

 "아빠. 여기 계시지 말고 잠깐 가서 앉아계세요. 형이랑 제가 응급처치 하면 바로

 병원 가면 되잖아요."

 

 기명오빠의 말에 내 손을 한번 꼭 잡으시고는 머리를 싸매고 쇼파에 앉으셨다.

 왼팔에 부목을 덧대서 고정까지 시키고 나니 엎어져 있을때 보단 덜 아픈것 같기도

 한 것 같고.. 기준오빠가 와이셔츠를 머리에 덮어주며 티셔츠 못입으니 그거라도

 입으라 했다. 어차피 부목때문에 별 의미 없지 않나요..? 라고 되묻지는 않았다.

 대답 안해줄거니까. 일어서려는데 골반쪽도 시큰거리고. 안기태 저자식이 날 아주

 상병신으로 만들어놨네.. 내탓으로 돌리는 기태오빠가 미워서 들리는대로 말했는데

 나만 손해보는 짓을 해버렸다. 와이셔츠를 어깨에 걸친채 오빠들과 아버지와 차에

 올랐다. 뒷좌석에 기대자니 아플것 같아 창문에 기대 있었다. '어쩌다가..' 라는

 말만 내내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다. 그래, 내가 어쩌다가. 근데 대체 그 사람은 왜

 기태오빠땜에 자기가 죽었다고 억울해했을까. 물어본다고 대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내가 떨어지던 찰나 그 영혼의 얼굴이 일그러지는걸 봤다. 뛰어내렸다고 했는데..

 자기가 생각나서 그랬던건가- 마음이 심란했다. 지금 내 한몸 지키기도 바빠죽겠는데

 그런 영가까지 생각하는 내가 안쓰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만 생각하자-

 

 점점 몸이 땅으로 꺼지는것 같은 기분이 들때였다. 응급실 앞인것 같은데..

 이동식 침대가 차 앞까지 나오더니 침대에 올라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저기.."

 

 다리가 좀 불편하다고 얘기하려고 했는데 기명오빠가 안아올려 침대에 눕혀버렸다.

 커진눈으로 바라보니 '뭐 별거아니잖아' 라는 표정으로 간호사와 함께 응급실로 왔다.

 

 "일단 1인병실부터 체크해봐요"

 

 기준오빠가 누군가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응급실을 처음와본 내눈에 비친 풍경은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 아프다며 소리치고

 누군가는 술에 취했는지 의사를 붙잡고 주정을 하고.. 이런데가 응급실이었어?

 아파서 오는 곳 치고는.. 정말 정신없고 어수선한 곳이었다. 물론 긴급환자가 많아서

 그렇겠지만- 이라고 생각했다.

 

 "어? 기명씨가 여긴 무슨일이에요? 학교는 일찍 졸업해도 아직.."

 

 기명오빠가 반갑게 말을 걸어오던 간호사의 입을 틀어막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뭐지? 어안이 벙벙했다. 그 신경을 쓸 겨를도 없이 1인실이 있다며 침대가 움직였다.

 누워서 사람들 얼굴 보고 있자니 굉장히 민망했다. 아 이런기분이구나.. 차라리

 드라마에서 처럼 호흡기 달고 눈감고 있는게 마음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식 엑스레이하고, MRI준비해주고..BT체크는 내가 할테니까. 전체적인

 정밀검사 할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리고 올때 탈수증상도 좀 있었으니까

 Fluid ,Valium 같이 처방해요."

 

 뭔소린지 별나라 사람들 말을 하는 것 같다. 저래서 의사보고 멋있다고 하는건가?

 아주 잠깐은 멋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나저나.. 이래가지고 학교는 어떡하지?

 이러다간 뒤쳐지겠다 싶어 신경이 쓰였다. 못따라가는건 아니었지만.. 그냥 남들은

 다 하는데 내가 안하면 불안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노력해보고 안되면 안하겠지만

 되는데 포기하기는 싫었다. 그게 도피처라고 해도, 별로 다친게 아니어서 다시 학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원장님 오늘 가족모임 있으시다고 하시더니.."

 

 밖에서 두런두런 소리가 들려왔다. 등을 대고 누울수가 없어 집에서처럼 엎드려 있는데

 어떻게 누워도 고개가 불편하다. 언제 왔는지 조용히 배게를 바꿔주는 기명오빠.

 

 "불편하지? 등에 있는 상처 꼭 꿰매야 하는지 그런거 알아봐야 해서 그래. 아마 좀

 있으면 들어오실거야. 지금 밖에 계시거든."

 

 한숨을 푹 쉬며 아련돋게 쳐다보는데 낯간지러워서 눈을 못보겠어. 무슨 비맞은 새끼

 강아지 주운 사람 마냥.. 팔은 아예 못움직이겠냐며 서로 묻고 대답하고 있었다.

 

 드르륵-

 

 아버지와 옆에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기준오빠가 같이 들어왔다.

 열심히 차트종이에 뭔가를 적는 오빠, 의사가 잠깐만 등을 보자며 와이셔츠를 살짝

 올렸다. 붕대와 거즈를 떼내고서 유심히 살피는데 봉합수술이 필요하다는 둥 뭐..

 일단 수술해야한다는 소린 것 같았다. 불안한 얼굴로 기명오빠를 쳐다봤다.

 

 "괜찮아, 심각한거 아니야"

 

 기명오빠 말은 믿겠는데 의사도 아닌 오빠가 어떻게 뭘 알고 괜찮다는건지..

 의사가 몇번 상처 주변을 꾹꾹 눌러보더니 또 뭔가 말하고 받아적고.

 

 "원장님, 열상정도는 심한게 아니라 괜찮습니다. 상처부위 근처에 남아있는 잔여파편이

 있는지 확인후에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검사부터 하시죠"

 

 원장님이라니? 누가? 사장님이 아니라? 분명히 그냥 사업을 좀 크게 하신다라고만

 알고 있는데.. 내가 굳이 이것저것 묻지 않아서 더는 알지 못했지만.

 어제 아프더니 귀가 잘못됐나. 검사 몇번하고는 의사 몇명이 더 왔다. 꽤나 심각하네..

 결국 수술해야겠다는 결론이 나버려서 마취가 풀리기 전까지는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

 

 "정신이 좀 들어?"

 

 아직은 몽롱한 정신에 눈앞에 있는 기명오빠를 초점없이 바라봤다. 이내 괜찮다고

 대답했다. 왼쪽팔이 묵직해 내려다봤는데 무슨 마징가 제트 팔 같았다. 깁스를 원래

 이렇게 두껍게 하나? 팔에 거는게 없었다면 어깨가 먼저 빠졌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물을 한잔 마시고서 몽롱하던 느낌을 떨쳐냈다. 기준오빠가 침대 맞은편에 앉아있다

 내가 일어나 앉은걸 보고선 설명해줄테니 잘 들으라고 말했다.

 

 "등 뒤에 난 상처들은 나중에 흉지지 않게 하려고 수술한거고. 팔은 조각조각 나서

 깁스만으로는 안되겠더라고. 대퇴부 골절이 있는데 거기는 내일 수술해야 하고.

 아주 직각으로 떨어졌나보더라. 왼쪽 전체가 뼈 성한데 없이 다 문제야."

 

 "대퇴부요?그게뭐..?"

 

 "아,미안. 그러니까 골반하고 허벅지 사이에 이어주는 뭐 쉽게말하자면 그런부분.

 거기도 문제가 있기는 한데.. 팔에 있는 뼈가 너무 조각조각이라, 철심 박는것만도

 몇시간 걸렸다. 마취를 그렇게 오래하면 안되거든. 그래서 오늘은 팔, 내일은 그

 골반쪽. 이렇게 나눠서 하게 된거지. 결론은 내일까진 절대 일어나지 말것."

 

 아.. 그냥 쉽게 왼쪽이 아예 쓸수없는 상태다 한줄로 설명해주면 될걸..

 그럼 입원이 하루로 끝나는게 아니잖아! 하..내가 제일 싫어하는 곳이 세군데가 있다.

 첫번째는 폐가. 그런곳에서 불쑥 나타나는 지박령들을 보면, 몇일은 잠을 잘 수 없게끔 만드는 몰골로 나타나서 장난치는 령들이 많아서다. 그리고 두번째는 묘지. 핑계없는 무덤 없다고 했던가.. 부모님 기일마다 찾아가기는 하지만- 찾아가서 숙연하게 있고 싶어도 도저히 있을수가 없다. 거기다 가져가는 음식 먹으며 품평회까지 친절하게 해주시는데- 기절할 노릇이고. 세번째가 병원이란 말이다..!! 여기는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한 맺힌 영가들이 많아서다. 뭐 실수가 되었든, 그 사람 목숨이 거기까지였건- 죽은사람은 모르니까. 자신이 죽은데서 떠날수가 없는거다.

 그래서 여기저기 왕왕 돌아다니며 사람구경하고, 때때로 자신을 보고 놀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옆에서 장난도 치고 말도 걸고.. 입원하는거 싫단 말이야..

 그냥 병원오는것도 싫어하는데..

 

 "그럼 내일 수술하고 집에서 몸조리 하면 안돼요?"

 

 내일까지야, 뭐 어찌어찌 버티겠다만.. 뼈가 언제 붙을 줄 알고 여기에 있어-

 아까 응급실에서도 멍하게 서있는 아저씨를 보고 가족이 많이 아픈가 했었는데.

 침상을 보니 거기엔 아무도 없었단 말이야. 펜던트 덕에 시덥잖은 영들은 안보이는

 것 같은데. 그럼 내 눈에 보이는 영들은 그만큼의 한이나 미련을 가지고 있다는 뜻.

 입원은 안된다.

 

 "응, 안돼. 어차피 기명이가 여기 계속 있을건데 뭐"

 

 진짜 단1초의 망설임도 없이 로보트처럼 받아치는 기준오빠. 고민 하는척이라도 좀

 해주지 그래요??

 

 "오빠는 아버지..회사 나가야 하잖아요"

 "뭔 헛소리야. 안기명 너 뭐라고 했길래 얘가 널 회사원으로 아냐?"

 

 엉? 내말이 헛소리라고? 다시 오빠를 쳐다봤는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얘도 직장이 여기라고, 그래서 내일부터는 얘가 널 전담할 의사라고"

 

 ...????

 머리에 오빠들 나이계산으로 복잡해졌다. 기명오빠 말고 다른 오빠들 얘기는

 기명오빠에게 들은게 전부다. 어차피 말 섞기 싫어해서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하나씩

 듣게 된게 전부다. 스물아홉에 레지던트라면 맞는거 같은데.. 스물 다섯에 의사라니?

 

 "네?! 기명오빠 나이가 몇살인데 벌써 의사에요. 어려도 알건 알거든요? 의대6년인거.

 그러니까 오빠가 지금 레지던트잖아요"

 

 "점입가경이구만. 안기명, 애한테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내가 레지던트라디?

 미안하지만 난 지금 전문의란다. 얘랑 난 둘다 중고등학교 월반해서 대학 일찍갔어.

 그러니까 지금 기명이가 레지던트고, 아버지는 여기 병원장. 어머니는 가정의학과

 교수. 정리되지? 유일하게 기태가 음대간거 말곤 의사집안이다"

 

 할말을 잃어버렸다. 큰오빠만 의사인것도 엄청난 압박이었는데.. 왜 근데 부모님도

 나한테 그런 말씀을 안하셨지? 기죽을까봐 그러셨나. 그나저나 기명오빠는 나한테

 왜 쓸데없이 그런 거짓말을 한거지. 오빠를 보며 눈을 흘겼다. 괜히 나만 바보만들고.

 

 "아..아니, 그게 소향아. 어.. 니가 부담느낄까봐서.. 나쁜뜻으로 그런건 아니야"

 

 기명오빠가 당혹스런 얼굴로 말까지 더듬어가며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 오빠를 바라보며 기준오빠는 재밌다는듯 병실이 떠나가라 웃고 있고.

 

 "아아- 기명이 말도 틀린건 아니니까. 여튼 이름이 소향?인가보네. 내가 집에 신경쓸

 겨를이 없어서. 내 이름은 아마 기명이가 말했을 것 같아서 소개는 따로 안할게.

 여튼 내 말 명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옆에 주치의한테 말씀하셔. 난 호출이 들어와서

 가볼게"

 

 기준오빠는 파문만을 남긴채 유유히 사라졌다.

 

 "그게 있잖아 향아"

 

 또 엄청 미안한 얼굴 하고 있다. 됐어, 뭐 그게 큰 거짓말이라고.

 

 "아, 괜찮아요. 뭐 그게 나한테 피해주는 일도 아닌데.. 근데 오빠, 그것보다 중요한건

 나 아까 응급실에서 영가를 봤는데.. 입원하기가 싫어요. 길게 있으면 분명 또

 보이고 그럴텐데.. 혼자 짜증내고 하는것도 이상해보일테고, 여기가 아버지 병원이면

 소문나서 좋을것도 없는데.. 그렇잖아요?"

 

 "아..그래서 집에가겠다고 한거였구나.. 근데 어쩌지? 그게 힘들것 같은데..

 대신 오빠가 여기 있을테니까 괜찮지 않겠어? 많이 거슬리긴 하겠다."

 

 그래도 편하게 말할 수 있어서 이건 좋은 것 같네.. 안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여기가 아버지 병원이라니..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지금 의사집안이고 뭐고 중요한것도 아니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걱정이다.

 보이는 걸 안보인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당장 내일부터 걱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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