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들이 몇번이나 질문을 던졌지만 나는 이미 내 생각만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내 몸이 어느정도 나아졌다고 보이면 다시 알아서 나타나겠다는건가? 열쇠고리를
들고 온 경위에 대해서는 설명할 겨를도 없었다. 어째서 눈 뜨고 기명오빠를 보자
마자 왜 그 언니와 기준오빠가 생각난건지. 문득 대무님이 주신 '무주(巫呪)'
라는 것이 생각나 침대 옆 협탁 서랍을 뒤졌다. 기명오빠에게 부적을 건네기 전
부적함과 같이 넣어뒀었기 때문에- 다시 꺼내서 주욱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주문이란것도 아주 특별하거나 신비한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알아두면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많았다. '영가와 대화하는 방법: 영가의 모습과 목소리가 들릴때는
속으로 답을 하면 된다. 대신, 영가가 보여도 말을 먼저 걸지 않으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이게 뭐야! 결국 이것도.. 불러낼수는 없는거네..
결국 답도 나오지 않는것을 한시간을 넘게 붙잡고 있다 이내 눈을 감아버렸다.
'좀 더 쉬자' 적어도 이렇게 아플때는 나만 생각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했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더 잤다.
****
다시 그 언니를 보려면 그저 기다려야만 하는 건지. 기명오빠가 어제 일에 대해
물어봤었는데 본의 아니게 오빠 말을 잘라 먹고선 대무님께 전화를 했다.
그 사이 기준오빠도 병실에 들어오고.. 정말 난리법석이구만
깨어난 것도 알려드릴겸 목소리를 들으시곤 곧 오겠다고 하셨다. 먼저 간단한것부터
해결을 하자 싶었다. 어차피 기태오빠는 죽은 '서희민'이라는 사람의 가족과 연락이
안되거나 되더라도 협조해주지 않으면 그 불편한 손이 완전히 낫는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것도 원한령이라니...
그에 비해 기준오빠는 그 언니가 어디에 있는지만 알면 되는 간단한 문제니까
그정도면 나도 못도와줄게 없었다. 대무님은 도착하자 마자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나를 지켜주시는 분들이 많아 다행이라며 기가 자리만 제대로 잡으면 당신도
능가할 수 있는 무녀가 될거라고 하셨다. 17년전 내 엄마가 그러셨듯이..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일주일동안 꾸준히 오셔서 기를 잡아주셨다 하셨다.
대무님은 남을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지금부터 영가들과 너무 많은 접촉을 하게
되면 기가 자리잡기 전에 몸이 버텨내지 못할거라 하셨다. 그래도 보이고 들리는
데 어떻게 모른척 하겠어요- 생긋 웃었더니 생전에 내 엄마와 어찌 그리 비슷하냐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어보셨다. 그러게요.. 그 말을 듣는 나도 잠시 엄마가 떠올라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오빠들을 내보내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대무님은 한참을
듣고만 계시더니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영들중에 특히 이 언니처럼 지켜만보거나
그리움에 의해 그 사람과 같이 있으려면 어떤 것이라도 자신과 관련된 물건이
하나는 상대방에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물건에 사념(思念)이 담기기 때문에..
그래서 망자의 물건을 태우는 것을 이승에서의 끈을 끊는 행위로 간주하는 것이다.
분명히 내가 열쇠고리를 가져왔을 때 자신의 것이라며 나타난 걸 보면.. 그 열쇠
고리를 내가 다시 갖고 있다면 나타나지 않을까. 대무님은 그 이후의 상황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위험해지지 않게 조심하라고만 하셨다. 흠...
자꾸 숨기는게 있는 것 같은데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으실 걸 알기때문에 더 묻지
않고 배웅해드렸다.
기준오빠와 기명오빠가 대무님이 나가시고 들어왔다. 무언가 잔뜩 물어볼 요량으로
들어온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무슨 용기가 난건지 내 할말부터 해버렸다.
전에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었을 텐데-
"오빠, 열쇠고리 줘요"
그런데 뭐 이걸 어디다 쓸거냐며, 어떻게 할거냐며- 지금 그런 군소리 잡소리
다 대답해가며 신경쓸 겨를이 없단 말입니다. 컨디션이 언제 좋고 안좋을지 모르는
일인데 그냥 주세요 좀!
"이현언니 어딨는지 안궁금하면 나가줘요 좀.. 쉬고싶어요 진짜"
나도 무슨 정성이 뻗쳐서 온전하지도 않은 정신줄 붙잡고 이러는건지. 그래도 분명
남들보다는 훨씬 낫다고 하셨던 대무님의 말이 떠올라 해보기로 했다.
기준오빠는 다른 말 보다 김이현이라는 그 이름에 반응한 듯 했다. 열쇠고리를 건네
받고 생각했다. '이게 당신에게 어떤 의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당신은 이게
자신것이라 말하며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게 오빠가 아닌 내 손에 다시 와있다면
분명히 다시 드러내겠지? 말 걸어주겠지.
'나한테 하고싶은 말이라도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열쇠고리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그 언니. 하얀머리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언니를 본다는걸 알고나서는 오빠가 많이 힘들어해요. 그러니 어딨는지
알려줘요. 오빠 혼자서라도 찾아갈 수 있게요'
언니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내가 직접 어디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꼭 기준씨랑 같이 왔으면
했던거에요- 지금 불편하잖아요. 움직이기가..'
어디라고 직접 말을 할 수가 없다니? 그게 저승의 법이라도 되는건가?
'괜찮아요, 내 걱정이라면 하지말고.. 어디 근처라고 힌트라도 줄 수는 있겠네요?'
'..자주 가던 공원이 있어요. 그 근처에요 아마 찾는건 기준이 몫이겠죠..'
아무래도 그 언니가 말할 수 있는 최대한을 말한 것 같으니까 열쇠고리는 다시
돌려줬다. 다시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준오빠 곁은 떠나야 한다는걸 알겠지..
"오빠, 그 언니랑 자주 가던 공원이 힌트니까 그 근처에 있는 납골당이나 공원묘지
정도 찾아보는게 좋을 것.."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병실문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기준오빠. 기명오빠에게 꼭
그 열쇠고리를 그 언니가 있는곳에 두고 오라고 전화로 알려주라고 했다.
그래야 언니가 마음편히 떠나지. 기준오빠 덕에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뭐 진짜 의도치 않게 이런걸로 가까워지다니 헛웃음이 절로 나긴 하네
"소향아, 괜찮은거지? 나도 형도 솔직히 뭐 이런쪽으론 문외한이니까.. 그냥
쉽게 쉽게 물어보긴 하지만 혹시 무리하게 되는거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좀 된다"
오빠 말을 들으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맑기만 한 하늘에 갑작스런 비가 쏟아졌다
근데 이 아저씨들은 다들 의사라면서 일은 안하시나.. 기명오빠야 그래, 내 전담
이라고 치지만- 기준오빠는 뭐지 대체. 아버님 아시면 불호령 떨어질 것 같은데.
요 근래 있었던 일들 때문에 아마도 아버지 어머니 두분 다 폭삭 늙으셨을 듯 싶다
기준오빠 일은 심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괜찮지만.. 기태오빠는..
"오빠, 그때 내가 말했던건 알아봤어요? 그 가족분들.."
"아.. 그래, 연락은 됐어. 근데 뭐라 설명하기가 그래서 다시 연락하겠다고만.."
"그럼.. 내 그..다리 이건 언제쯤 나을 것 같아요? 경과 어떤지 찍어보면 안되요?"
대무님을 자꾸 부를수는 없고, 그 서희민이라는 가족도 만나야 하고 기태오빠가
행여나 갖고 있을 그 사람의 물건도 필요할테고. 기본적인 준비는 해둬야 하니
다리가 먼저 나아야만 했다.
"음.. 이동식 있으니까 좀 기다려봐. 한번 찍어보자"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를 기다렸다. 오빠가 뭔 차트를 뒤적뒤적 거리더니
별 문제 없으면 이번주 내로 깁스 풀 수 있다고 했다. 듣던 중 다행이네..
"아직 팔은 무리지 싶어. 다리 깁스 풀면 퇴원은 해도 되고, 근데 기태때문에
집에 가기 싫으면 병원에 계속 있어도 되고. 그건 향이 니가 결정해"
"다리 깁스만 풀면 퇴원할게요. 오래 입원하기 싫댔잖아요. 기태오빠 손 나으면
.. 내가 하고싶은 말 할게요 그땐"
잊고 있었던 독립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집에서 같이 살면서 기태오빠를 제제할
조건을 내걸어야 할지, 그냥 끝까지 내 의견을 내세워서 집을 나갈지. 아니면 신당
에 두어달쯤 들어갈 맘도 있었다. 이미 학교는 안될 것 같고, 이 상태라면 차라리
검정고시가 낫지. 그냥 정리되지 않는 머리속 때문에 짜증만 더 해가고 있었다
찢어질듯한 이명소리가 났던것도 신경쓰이고- 좀 걷고 오겠다며 잠시 병실을 나섰다
적막한 복도를 지나 창가로 다가갔다. 아직도 쏟아지는 비, 오빠는 찾으러 간걸까?
아니면 나중에 가볼 생각인걸까. 아까 기명오빠 전화를 받지를 않아 메세지로
남겨뒀다고 하기는 했는데 그건 또 봤을런지.. 내 일도 아닌데 괜히 심란했다.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 없는데.. 소속감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한참을 쏟아붓던 비는 그쳤다. 멀리 무지개가 떴다. 이쁘다- 하고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창가쪽 의자에 앉아 무지개가 사라질때쯤이었다. 내 어깨를 잡는 손길에
뒤돌아보고 심장마비 걸릴뻔 했다.
"..기..기태오빠..?"
뭐야 이 인간은, 어떻게 알고 온거지..
"크흠.. 여기서 뭐하냐. 들어가자"
뭐 지 혼자 씨부리고 가는건 좋은데.. 뭐 저렇게 당당하게 나타난거야.
나도 꿀릴거 없는데 따라 들어갔다. 기명오빠는 간호사들하고 얘기중이었다.
기태오빠를 보더니 나를 보고 조금만 있으면 된다고 눈짓했다
드륵-
병실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앉았다. 찾아왔으면 할말이 있을텐데 왜 말없이
가만히 앉아있는지 모르겠다.
"..미안"
생각지도 못한 사과였다. 왜? 그렇게 원망하더니 쉽게 사과하는 이유가 뭐야
"....."
대답하지 않았다. 하마터면 어딘가 영원히 복구되지 않아 영영 망가질수도 있었다.
팔이든 다리든, 운이 좋아 비켜갔을뿐인데. 그런 사과자체가 달가울리 없으니까
"그렇게까지는 하면 안되는거였는데.. 미안"
꼭 진심이 아니라고 느껴서 그런게 아니었다. 그냥 이럴때 이런 사과를 어떻게
받야아 하는지를 모르겠어서 가만히 있었다. 기명오빠가 들어오며 기태오빠를 보고
왜 온거냐고 물었다. 사과하려고 왔다는데.. 아직 사과를 받을 준비는 안되어있다.
이제 겨우 뼈를 붙여놓고 제대로 아물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등을 돌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었다. 말하기 싫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기태형, 나가서 나랑 얘기하자"
기명오빠가 캐치하고 기태오빠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기태오빠보다는 기준오빠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 꼭 찾았으면 좋겠는데. 찾으면 얘기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