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듣지 않기로 했다. 기태오빠가 그때 느꼈던 그 감정들, 알 것 같았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놔둘 수 없는 시기, 나만 인정받아야 한다는 이기심.. 못났다. 자기는 다 가져놓고.. 남이 가진 그 한가지 재능까지 질투해서 앗아가다니 욕심이 많은건 알겠고 좋은일이지만, 남이 가진 재능까지 뺏는건 아니잖아- 두통약을 가지러 간 기준오빠는 올 생각을 안한다.
"나빴네요. 진짜 나빴어요. 어려서 그랬다고 변명 못할일인거 알죠? 오빠 그때 그 사람 다칠줄 알았잖아! 왜, 왜 거기서 그렇게 밀었어요? 하나 가진게 그렇게도 커보였어요?!"
모르겠다, 이 폭발하는 감정이 어디서 끓어오르는건지.. 눈 앞에 영화처럼 그때의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하프는 두 손 뿐만 아니라 두 발도 다 사용해야 하는 발현악기다. 그렇게 굴러떨어졌을때 문제가 생긴건 손목뿐이 아니었다.
억지로라도 그때의 기억을 내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듯 했다. 그래서 말없이 사라진건가.. 머리가 내려앉을 지경이었다. 대답하라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왜!! 왜그랬어.."
그 오빠가 하지 못했던 말들, 끼어들지 말라던 말. 보여주고 싶었던 과거- 다 읽었다. 굳이 내가 영들과 관련된 물건을 갖지 않아도, 내 의지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에게 말 걸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제 이 영가를 이승에서 보내는것도 아니면 억지로 보내지 않고 자연히 갈때까지.. 아니 가지않을테지만- 그대로 내버려둘건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느껴진다. 여전히 흐느끼고 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려가며 다시 내게 돌이켜 보여준것만 봐도..
충분히 가슴미어지고 힘든 기억일텐데. 눈에서 쉴새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미..미안.. 미안.. 잘못했어 내가..희민아...."
내가 누군지도 분간이 되지 않지만, 기태오빠는 희민오빠에게 용서를 빌고 있었다. 진작에 좀 그러지 그랬어. 왜 친구가 가진 그 하나가 커보인다고 돌이킬 수 없게 뺏으려고 했어..
"왜 그랬어.. 우리 둘도없는 친구였는데.. 너 왜그랬어?"
기태오빠가 놀란눈으로 날 올려다 본다. 분명 말하는 사람은 나지만, 기억의 주인은 희민오빠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기태오빠를 다그치고 있었다.
"그땐.. 내가 미쳤었어 돌았었나봐. 그러면 안된다는거 아는데.. 그래도 니가 그렇게 자살까지 할거라고 생각도 못했어 미안해 희민아...크흑.."
결국 고개를 땅에 박고 울기 시작하는 기태오빠.
"친한 친구를 원망해야 했던 내 심정을.. 니가 이해할 수 있겠냐고..?!"
머리보다는 심장이 미어터질것만 같았다. 모든 배신감과 절망감, 상실감, 그리고 좌절감까지 인생 밑바닥에서도 볼 수 없을것같던 이 전부의 복합적인 감정들이 발끝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살아가는 이유가 눈앞에서 깨져버렸을때의 기분은 아마 평생 살면서 한번도 느끼기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기태오빠가 바닥에 무릎꿇고 앉아 펑펑 울며 숨넘어가는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잘못했다..내가 평생 너한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게... 희민아, 도와주라.. 니 몫까지 내가 열심히 살게. 항상 너 안잊어버리고.. 기억할게"
'조금만 더 일찍 얘기해주지'라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한번이라도 니가 날 찾아와서 그렇게 사과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거야.. 나쁜자식... 너 얼마나 잘되는지 지켜볼거다.."
한참동안 울컥울컥 했던 마음들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게 영가를 몸에 싣고 넋두리를 하는건가?.. 무주(巫呪)에 씌여있는 주문도 다 읽지 못했는데 이런걸 하게 되다니.. 지켜볼거라며 사라진 영가에 온 신경이 다 쏠려있었다. 그 주문들을 읽어내려 봤지만.. 더 이상은 없었다. 분명 대무님께서.. 이 이상은 나 혼자 터득해야 하노라 말씀하셨었다. 처음부터 난관이다. 혼자 알아내지 못하면 죽을때까지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을거라고.. 그냥 내 의지대로 하면 된다고 믿기로 했다. 내가 말을 걸고싶으면 말을 걸고, 얘기 하고 싶음 얘기하고, 굳이 성불하지 않아도
충분히 영가들을 좋은 쪽으로 돌릴 수 있다고. 그래서 기태오빠 손도, 앞으로 괜찮아 질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괜..괜찮아?"
기태오빠가 바닥에 꿇었던 무릎을 펴며 날 보고 물었다. 한 팔로 부들부들 지탱하는 날 보고는 잡아주려고 했다.
"됐어요.."
그러고보면 이현언니도 그랬고 희민오빠도 그랬다. 내가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이 앞서있었다. 싫었다면 분명 보이거나 들리지 않았겠지.. 적어도 내 눈에 보이는 영가에 대한 확실한 정답은 찾은 것 같다. 더 이상 겁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희민오빠가 차마 이승을 떠나지 못한다고 하면.. 억지로라도 성불 할 생각이었다. 대무님이 주신 무주(巫呪)가 기초일테니.. 얼마나 내가 잘 습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것이다.
기태오빠가 나간 후 기준오빠가 컨디션 괜찮으냐 물었다. 괜찮을리 있겠어요.. 손거울을 갖다 주는데 몰골을 봐줄수가 없다. 어찌나 파리하고 창백한지... 누가 보면 시한부 선고받은 환자라고 해도 믿어주겠어. 무의식적으로 깁스한 팔로 침대 난간을 짚었다가 기절할뻔했다. 전깃줄을 팔꿈치에 꽂아논 줄 알았네. 솔직히 기준오빠는 일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단순히 그리움에 따라다닌거였으니까.
되려 희민오빠가 생각보다는 빨리 단념한 듯 느껴졌다. 분노라는 감정만을 놓고 본다면 평생 따라다니면서 힘들게 해도 모자랄 듯 했는데.. 지켜본다는 그 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따라다녔다. 만약 내가 느끼는 이 느낌이 용서라는 거라면..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내가 대무님까지 불러 가족들을 만날 이유는 없었다. 오빠가 찾아가서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될 일이었던 듯 했다. 굳이 거창하게 굿까지 해가며 난리칠 필요가 없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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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 무리하지 말라는 말은 들어야 하는데, 내가 무슨 강철 로봇이라고.. 하여튼 내 팔 다 낫기만 해봐라 안기태..! 나도 인제 당하고 있지는 않을거라고. 일주일이 지난후에 다리 깁스를 풀며 팔을 다시 검사했다. 팔도 깁스는 풀었지만 무리한 일은 하면 안된다고 했다. 실밥도 풀어야 하고, 큰 충격만 받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다는 선생님 말을 두번정도 확답을 듣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기명오빠는 내 덕분에 본의아니게 휴가를 받았다고 했다. 아니 난 괜찮은데!!!! 굳이 내 팔이 아직 불편하니까 옆에 있어주겠다고 했다는데.. 그렇게 사리사욕 챙기면 좋아? 내가 오빠를 보고 어깨를 으쓱하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먹고 싶은거 있음 말하구.. 신당은 언제 가봐야 하는거야?"
"음.. 저녁쯤에 가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문자로는 언제든 와도 된다시는데-"
"그래? 그럼 나도 좀 씻고 쉬어야겠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러게요, 잠 못자고 신경 곤두서있던건 나였는데 왜 오빠가 피곤한건지. 피식 웃었다. 2층에서 자고 있을테니 여섯시쯤 가자고 말하고는 방으로 올라왔다. 책상위의 편지를 보고는 봉투를 뜯어 편지만 가지고 침대에 누웠다.
'막내야! 큰오빠다. 덕분에 요즘 마음도 홀가분하고 기분도 좋다. 아마 이 편지 보고 있는건 집에 왔다는 소리겠지? 하도 병원에 있다보니 냄새가나서 ~ 옷 갈아 입으러 왔다가 고맙다는 말이라도 전하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 한통 남기고 간다. 기명이 신났더라!! 핑계는 너 챙긴다고 그러는데- 똑바로 안챙겨주면 병원으로 내쫓아버려. 진짜 고맙다 막내야. (이름 아직도 못외워서 미안!) 시간 될때 밖에서 밥이나 한끼 하자~'
편지를 읽는 내내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 고맙다는 말은 그냥 말로 전해도 될건데 의외의 모습도 있네요. 삐뚤빼뚤 논두렁 미꾸라지 같은 글씨로도 열심히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이 보여서 좋았다. 생각지도 못하게 가까워져서 좀 당황스럽긴 해도 이제야 서로 가족이라는 마음이 생기는건지도. (그게 왜 내 능력을 확인하고 난후에 가까워진건지 그건 좀 서운하지만) 이름 못외워서 미안하다는 마지막 줄을 보곤 '음...' 이라는 짧은 탄식만 나왔다. 내 이름이 어려워서 그런것도 아닐텐데. 하긴.. 사람 얼굴 몇십번 봐도 기억못하는 안면인식장애라는 병도 있는데- 이름쯤이야. 편지를 다시 접어서 올려두고는 잠깐 누워야지- 했다가 숙면을 해버렸다.
"소향아-"
뭐라고 말하는거 같은데 눈이 잘 안떠진다.
"이제 출발해야 하는데,? 아니면 내일갈까?"
그소리에 오뚜기처럼 벌떡 일어났다.
"가요~오늘 꼭 가서 물어볼것도 있고 그래요"
서둘러 옷갈아입고 신당으로 출발했다. 가까워질수록 긴장이라고 해야하나? 손에서 땀도나고, 도착해서 몇번이고 헛기침을 하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아가, 오느라 수고 많았다. 그래, 그동안 별일 없었고?"
"그럼요, 대무님도 별일 없으셨죠?"
한참 내 얼굴을 잡고선 아무말씀이 없으셨다. 어,음..
"그럼,나야 별일 있을게 있겠느냐.. 그나저나 미안해서 어쩌지? 조금 있다가 굿을 해야해서 그런데 기다릴 수 있겠니?"
시간도 많은데 괜찮다고 했다. 신당까진 안들어가도 밖에서 보는건 괜찮겠지? 신경쓰지 말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신당 사람들이 분주해보였던거구나. 현수재인(絃首才人)이 들어가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가 굿을 하는건
여러번 보긴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거라 그런지 감회가 남달랐다.
무슨굿인지.. 뒤이어 나타난 사람의 얼굴을 보고 단번에 알아차렸다. '내림굿'.....!!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운명인가.. 얼굴에 수심이 그득했다. 하긴.. 뭐 기쁜일이라고 웃으면서 오겠어. 대무님이 '무구'(巫具)를 건네주시며 어디든 숨겨두라고 하셨다. 아..! 이거 찾아야만 선택받은거라고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때 내림굿 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네번을 찾아도 안되서 엄청 힘겨워했었다. 엄마가 안쓰러워서 찾기 쉬운데도 넣어뒀었는데
어찌 거기만 그렇게 피해서 찾는지.. 결국은 신내림 받기는 했지만.. 결론은 쉬운데 숨겨놔도 못찾으려면 끝까지 피해가더라는거지. 그래서 그냥 내키는대로 마루밑에, 장독대안에, 냉장고에- 그렇게 넣어두곤 밖에서 관전했다.
잘 찾았으면 좋겠는데.. 괜히 내 일인양 손을 꼭 쥐고 지켜보고 있었다.
"자- 이제 찾아보거라"
대무님의 말씀에 무엇엔가 홀린듯 맨발로 급히 뛰쳐나와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 했다. 10분쯤 흘렀을까. 난 뒤뜰로 가서 묻어둔게 없는데.. 산발을 해서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어..어딜갔다온거지? 그래도 움직이는 반경자체가 '무구'들이 있는 근처에서 움직이길래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한번에 성공해야 보는사람도 찾는사람도 덜 힘드니까..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장독대 안에 있는 '무령(巫鈴)'을 찾아냈다. 그리고 다시 거행되는 의식들.. 그래도 다행이네- 한번에 끝나서.
기명오빠는 방울소리가 내내 시끄러웠는지 잠시 차에 갔다 오겠다며 가버렸다. 보통 사람들은 이거 계속 듣고 있기 힘들지. 그리고 숨을 고르고 신을 받는 의식이 끝났다. 어찌나 격했던지 땀을 한바가지 흘리고 있는 그 사람을 보는데 대무님이 말씀하셨다
"저기, 저기 계신분이 누구신 것 같으냐"
네? 저요? 주변을 둘러봤지만 우두커니 서있는건 나 혼자다. 당황해서 그 사람과 아이컨택을 본의아니게 하고 있었다.
".. 처...천존님.."
? 네? 뭐라고요?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데 나도 덩달아 같이 고개를 숙였다
"너는 고개숙일 필요가 없다.. 이 아이의 눈에도 보이는것을 보면 이제야 드디어 자리를 잡으셨구나. 천존님은 부디 향이를 잘 보살펴주소서"
그러니까 이게 뭐.. 무슨? 내 얼굴에는 당혹감만 가득했다.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나를 보고 절을 하질 않나, 대무님은 나를 보고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질 않나. 아니, 설명을 좀 해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신내림을 받았던 그 사람은 당분간 여기서 지내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별당으로 보살님이 데리고 갔다. 그제야 나도 신당으로 들어가 앉을 수 있었다. 대무님이 기명오빠를 큰소리로 불렀다. 같이 나란히 앉아 대무님만을 쳐다보고 있는데..
"천존(天尊)이라 함은.. 우리 무녀들이 모시는 신들의 어버이급을 말한단다. 그러니, 나 역시도 네게 존대와 경의를 표해야 함이 맞다. 이것은 현세에서 나이의 차이와 관계없이 모시는 신에 따라 하는 '예(禮)'의 표현이기 때문에 꼭 해야 한단다. 그동안 네 기가 불안정해서 지켜만 보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 갓 신을 받은 아이의 눈에도 보인다면 이제 완전히 네 안에서 자리를 잡으신게 틀림없구나. 다행이다."
머리가 어질어질 하다. 무슨 소리지? 천존은 뭐고. 경의는 뭐야 또? 고개는 왜 숙이면 안되는거지? 복잡하네 진짜.. 여튼 한마디로 정리하면 내가 킹왕짱, 뭐 그런거네?
"그러면.. 전 앞으로 어떻게 해요?"
"천존님이 알아서 하실것이다. 넌 그분의 뜻대로만 하면 된단다. 네 어미도.. 천존까지는 모시지 못했었는데도 그 능력이 천존님 못지 않았는데- 너는 직접 천존을 모시는 몸이니.. 앞으론 내가 향이 네게 도움을 받아야겠구나.."
내가 모시는 천존이라는 분이 내 입을 빌려 말하고 영가들을 오가게끔 해도 빙의라는 것을 겪지 않게 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 분이 점사를 보게되면 그게 곧 현신하시는것이라- 신당을 차리게 되면 대무님도 내게 와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라는 진짜 황당무계한 소리를 장장 한시간을 듣고 있었다. 그냥 가볍게 '내가 짱이다' 이런 마음을 먹기는 했지만 전혀 가볍지 않았다. 자리를 잡았다는 건 또 뭐고, 내 몸인데 내가 모르는 일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그래서 신내림도 필요없다 했던거였고, 무주를 건네면서 알아서 하라고 하셨구나. 대신 영을 싣고 다시 내보내는 과정에서 기가 빠지는것은 어쩔 수 없기때문에 몸은 아플거라고 하셨다. 이 무슨..? 아오.. 게임같으면 먼치킨인데 겁나 약한 몸 뭐 그런건가? 체력 1로 근근히 버티기는 하고 죽지는 않고.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하셨다. 겪어왔던건 발톱의 때만큼도 안되는 일들이라고. 결국은 '네 멋대로 해라'가 되버린 결론에 인사를 드리고 신당을 나섰다
"괜찮겠어? 아니지..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다. 선택권이 없으니까"
근데 난 있죠, 오빠도 신기한게- 이런 말 들으면 보통 안믿고 그러지 않아요? 뭘 이렇게 곧이곧대로 잘 믿어. 것도 의사가. '영혼이 보여요' 하면 정신분열증 증세로 처방내리더만.. 특이한 사람이야 진짜. 기준오빠나 기태오빠는 내가 그 영들을 보고 있었던 일들을 읊고 나서야 믿었는데. 이 사람은 처음부터 의심이란걸 안해..
"오빠는 이게 그냥 믿어져요? 의심같은거 안해봐요?"
"왜? 세상엔 내가 모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의심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래요 오빠똥 칼라똥이에요. 집으로 가는 내내 아무말도 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웃고 있어도 웃는게 아닌 기분. 이해 되는데 이해 안되는 머리. 진짜 반쯤 바보가 됐다고 해야 하나.. 하마터면 집에 계신 부모님도 지나쳐서 그냥 방으로 갈뻔했다
"향아? 왜 그렇게 넋이 나가서 들어와?"
어머니가 날 보고는 한마디 하셨다. 아차! 실수할뻔 했네..
"아니에요~ 기명오빠랑 볼일이 있어서 잠깐 신당에 다녀오느라.. 오늘 일찍오셨네요?"
"응~ 우리 막내 퇴원했는데 기명이랑만 두는게 미안해서 말이야.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먹기로 했어 씻고 내려오렴"
크헐.. 여섯명이 한자리에 모이는거임? 아마 처음이지 싶은데.. 같은 밥상은. 기태오빠는 집에 있었고, 기준오빠는 조금 늦게 도착한다고 전화가 왔다. 나도 씻고 내려와서 부모님 맞은편에 정자세로 앉아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지으신다. 음? 덩달아 나도 웃기는 했는데 어색하게 웃어버렸어!!
"팔은 이닥터 말로는 성공적이라던데, 나도 엑스레이 다 봤지만.. 기명이 니가 봤을땐 어떻더냐"
"네? 아..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빨리 아물긴 했어요. 다리쪽도 원래는 두달은 걸리는데- 보름도 안되서 아문거 보면.. 팔도 길어야 일주일이면 괜찮아 지지 싶어요"
아버지가 기태오빠를 째려보며 말씀하셨다
"너..니놈자식 내가 너를 병원 옥상에 매달아 두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소향이가 너한테 해코지를 했냐, 아니면 너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기를 했냐? 목소리도 몇번 못들어봤는데 그런 애를 니가 우악스럽게 밀어서 떨어트려?!"
그날 일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신 듯 관자놀이에 핏줄이 곤두섰다. 엄마야...
"죄송해요..다신 그런일 없어요.."
기태오빠도 풀이 죽어 말하는데 약간은 안쓰럽기도 했다. 시간이 좀 지나서 들을수 있었지만.. 부모님은 기태오빠와 희민오빠가 같이 집으로 오던길에 장난치다 계단에서 굴렀고 그 책임이 기태오빠에게 있다고 생각해서 치료비를 건네신거였다. 물론 그 부모님은.. 그걸 홀라당 다 날려먹으셨지만.. 자살했다고 소식을 들으셨을때 누구보다 슬퍼하셨던건 우리(..!?)부모님이라고 하셨다. 기명오빠에게 희민오빠 어디에 안치 됐는지 알아봐달라고 했었다. 퇴원하고 한달이 지나 희민오빠가 있다는 납골당에 찾아가게 됐다. 이제 여기서 그만 마음을 풀고 영면하기를.. 마음속으로 수천번 수만번을 되뇌었다. 몇시간을 그렇게 서서 빌고 나서야 되돌아 나올 수 있었다.
'좋은곳으로 가길 바래요'
납골당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잊지 않고 건넨 말.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건 이제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었다. 이제 시작이라니- 잘하면 퇴마사가 될지도 모르겠다.